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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358,793
추천수 :
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6.05 19:45
조회
3,052
추천
82
글자
21쪽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3]

DUMMY

갑작스러운 도전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사 우’는 한껏 자신감에 찬 자세로 그들의 승부를 받아들였다.


“그래, 전통 좋아하는 우리 친구들은 뭘 그렇게 준비를 해왔나 모르겠네.”

“그 오만한 자세도 거기까지요. 봉인을 풀도록.”


그 말을 신호로 항아리와 뚜껑 사이를 틀어막기 위해 발라둔 종이가 뜯겨졌고, 그 틈새로 무지막지한 향기의 폭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

“대체 저건 무슨······.”

“뭔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맛있는 건 알겠어······.”


청명하면서도 달콤한 향.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냄새. 군침을 절로 끌어모으는 냄새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허나 그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누군가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대체 이 향의 근원은 무엇인가.


“본디 이 고장의 이름은 ‘멜리타’, 향신료 멜리타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듯 온갖 산천에서 난 향신료의 고장.”

“향이 나는 풀, 향이 나는 잎, 향이 나는 모든 것이 나고 자라는 고장은 언제나 상쾌하고 사람의 기분을 어루만지는 향기로 그득한 곳.”


노인들이 한 구절씩 그 이야기를 담는다. 이델린의 머나먼 과거. 그들의 변해버린 고향의 머나먼 모습.

한 때 향기로 가득했을 이 지역의 모습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그려나가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 상상이 그려지기도 전 틀어막은 사람이 있었다.


“아, 그만. 향신료 사업해? 뭔 광고를 그렇게 하는 거야? 뭐? 니들이 무분별하게 다 뜯어가서 그 향신료의 95%가 전멸해서 동네 망할 뻔했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광고하고 싶니?”

“······.”


미화 쏙 뺀 이델린의 과거를 축약하자면 딱 일우의 말대로고, 스카웃의 데이터베이스에 떡하니 적혀있는 참고 문헌 중에는 ‘멜리타, 향신료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멸종’이라는 서적도 있었다.

확실한 건, 저 노인들이 그렇게 미화할 만한 과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향신료 다 조져서 망한 동네에서 공구함같은 애가 와서 깔짝이니 이름 냅다 바꿨다는 역사 강의라도 하게? 쪽팔리지도 않아?”

“아, 아무튼!”


일우가 그렇게 이죽대자 한껏 분위기를 잡으려던 노인들은 황급히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항아리를 가리켰다.


“그 때의 정수, 이곳의 정체성이었던 향의 집결체. 바로 그것이 축약된 것!”

“천연기념물 급 멜리타 군락이 또 희생되는군. 내가 아무리 고기에 환장했어도 이건 좀 아닌데. 식물은 고기의 조력자지 적이 아니야.”

“커흠!”


한번 더 지적이 들어왔지만 이번에 노인은 헛기침 한 번으로 넘어가버렸다.

어차피 이 내용물이 공개가 되는 그 순간, 모든 관중의 지지는 자신들을 향하리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 궁극의 고기 요리, ‘멜리타의 항아리’올시다!”


그 말과 함께 항아리 속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 하나가 등장했다.

국물 속의 맛을 듬뿍 머금었음이 짐작되는 어지러울 것 같은 향기가 폭발했고, 순간적으로 사방을 채운 고기 구이의 냄새는 기세가 꺾여 후퇴했다.


“이 곳의 야만스러운 고기 구이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선사하겠소!”

“오오오!”

“나, 나 좀 줘요!”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저 요리를 원했다. 이것만으로도 승기는 확실해보였다.


“잠깐.”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질 싸움을 할 생각도 없고, 이대로 맞설 계획도 없었다.


“대결하자면서 니들만 비장의 요리를 꺼내 와서 붙자고? 야, 졸렬하지 않니?”

“······”

“하지만 나는 고기에 대해서 관대하다. 그리고!”


일우는 성큼성큼 다가와 대표격으로 선 마법도구점 주인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니들이 그 레시피를 꺼내올 줄은 여기에 고기 구워먹을 불을 피웠을 때부터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고, 그 향신료 다 구해 와서 열나게 삶아댈 동안은 찍소리도 안내고 기다릴 거 다아, 예상했지.”

“······!”

“그런 내가, 그정도로 똑똑한 내가 너희들이 걸어올 싸움을 그냥 여기 것들로 상대할 거라고 생각했나?”


이 상황을 예상했단 말에 상대는 물론이고 자신감에 찬 노인들 모두의 눈빛이 흔들렸다.

‘연금술사 우’에게 결정타를 먹이려던 급습은 애초에 모두 간파되었다.

그렇다면, 사전에 들이닥칠 습격을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꺼내.”


노인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했을 즈음, 일우는 그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듯 일꾼들에게 간단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저택의 한 구석, 모든 회전식 고기구이 장치에 동력을 제공하던 그 장소 아래가 천천히 개방되었다.


-끼기기기긱--- 끼이이이---!


예상도 하지 못한 장소가 개방되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거기에는 복잡한 파이프들로 연결된 거대한 화로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 화로가 열리자, 거기엔 새카맣게 탄 것 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드러났다.


“세상에······.”

“저건 대체······.”

“그 항아리, 열 가한지 며칠이 됐지? 2일? 3일? 아마 100시간까진 안 갔을 거야. 72시간을 넘어서면 아예 식감이 망가질 테니까. 일부러 질기고 단단한 고기를 골라서 쓰면 몰라도, 보통은 이틀일걸.”


그 말대로다. 사전에 이 ‘항아리’를 조리할 때 육수를 뽑아내고 졸이는 기간이 5일이고, 그 뒤에 48시간을 들여 푹 익힌다.

‘연금술사 우’가 자신들의 비장의 조리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노인들이 동요하는 사이, 일우는 막 도착한 거대한 숯덩이를 툭툭 쳤다.


“이건 1주일의 숙성기간을 거친 녀석을 아주 천천히, 이 곳 화로들의 잔열이 실린 열풍으로 아주 느긋하게 구워냈다.”

“수······숯?”

“근데 다 탄 거 아냐?”


오랫동안 구워냈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우는 망설임 없이 외쳤다.


“당연히 탔겠지. 그러라고 붙여둔 겉껍질이니까!”

“겉껍질······?”

“하지만 저렇게 껍질을 둘러쌌으면 분명 속은 찜이 되어있을 거 아냐?”

“찜?”


일우는 그 말을 중얼거린 구경꾼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시선을 마주친 구경꾼은 움찔댔다.


“잘 봐라.”


히죽 웃은 일우는 숯덩어리를 내려쳤다.


-쩌저적---! 파삭!


새카맣게 타버린 껍질이 균열이 생기더니, 이내 큼지막한 조각으로 나뉘며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군침 도는 황금빛으로 물든 고깃덩어리였다. 그것도 맞은편의 항아리에서 내는 향기와 정면으로 싸울 정도의 군침도는 냄새를 풍기면서 등장했다.


“이 향은······!”

“대체 어떻게······.”

“스으으읍, 어으, 뭐야? 침이······ 계속 고여······.”


관중들의 반응이 더 극적이자 노인들의 표정이 당혹감에 물들었지만, 일우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 향신료 조합, 너희들만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겠지?”

“하, 하지만······ 이건 구웠잖소. 구워버리면 향신료가 타서 향이······.”


일우는 그 말을 듣자 뭔가를 꺼내들었다.

말린 향초의 이름은 멜리타. 이제는 이 지역에서 이렇게 말려 가공한 마법시약으로나 볼 수 있지만, 말리기 전에는 그 무엇보다 상쾌한 향기를 머금는 향신료.


“연금술사 앞에서 멜리타 다루는 법을 가르치려 드냐? 멜리타는 너한테는 먹는 거에서 끝이지만, 나한테는 재료야.”

“크윽······!”

“그리고 여기엔 이거 안 썼어. 생 멜리타를 굳이 쓸 필요도 없거든. 이건 내 기준에선 향신료가 아냐. 그냥 약재지.”


그 말을 한 일우는 마른 멜리타를 질겅대며 말했다.


“향신료라 알려진 것들 중에는 연금술이나 마법 재료로 쓰이는 녀석이 많지! 이 녀석도 그 중 하나고, 요리 재료로 쓰는 것보다 활용 여지가 다양하지.”

“······.”

“하지만 네놈들의 선조는 이 귀한 재료를 고작 고기를 삶는데 썼다. 다른 향신료를 이용할 생각 없이, 그저 가장 강한 이미지를 따라서 썼을 뿐이다.”


일우의 일갈에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댔지만, 개중에 이런 분야의 지식을 가진 이들은 공감했다.


“맞아······ 아무리 멋진 고기 요리를 만드는데 쓰더라도 멜리타를 약재로 쓰는 것만 못해.”

“이정도의 향을 낼 정도로 들어간 멜리타라면······ 최소한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약은······.”


전문가들의 말이 더해지자 노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를 등에 업은 일우는 손가락을 죽 내밀었다.


“너희들은 고기를, 요리를 지켜온 게 아냐. 향신료를 떠받들어왔고, 다른 고민은 하지 않았지.”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래, 네가 처음 먹어봐라. 먹고 느껴봐라. 네 패배를 인정하게 될 테니까. 향신료에만 의지한 안일함이 얼마나 나약한지.”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도발을 해왔지만, 노인은 지지 못한다는 듯 버텼다.


“나는 지지······ 아니, 우리의 전통은 지지 않는다.”

“진다니까 그러네?”

“네놈이 먼저 먹어봐라! 이 요리를 부정하기 전에!”


오히려 일우를 향해 먼저 먹어보라는 말을 하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카웃을 통해 저 요리의 상태가 어떤지, 결과가 어떤지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굳이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먹는 건 모양도 살아나지 않는다.


“아, 그래. 좋아, 그러면 공평한 결정을 위해 대리인을 뽑지. 너!”

“녜?”


술 먹고 주정부리다 저택의 일꾼 신세가 된 밀리아렌이 일우의 손길에 지목 당했다.


“일로 와. 앉아. 먹어.”

“이, 일은요······?”

“일하고 싶니?”

“아니여어어어어어!!”


과한 노동에서 벗어나고픈 본능에 이끌려 대결장 한가운대의 시식 테이블에 앉은 밀리아렌은 어느 새 자신을 향해 쏟아진 시선을 느끼고 위축감을 느꼈다.

정확히는, 그들의 기대감에 만족시킬지 자신이 없었다.


“으와아아아······.”

“먹고 솔직하게 말을 해.”

“······근데 저 여기서 붙들려서 일하는 와중에 계속 고기 먹어서 질리는데.”

“······.”


왜냐면 너무 고기를 먹어서 질렸기 때문에, 그 어느 요리가 나오더라도 맛있게 먹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고되니 배 채우려고 먹고, 갓 구워낸 고기가 먹음직스러워서 한 점 집어먹고, 억울해서 야채는 못 먹겠다고 고기만 계속 먹어댔기에 질려버린 것이다.

허나 일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어! 오히려 이 순간이 바로 평가를 내리기 적합한 순간이지. 정말 맛이 있으면, 물려도 들어간다!”

“······.”


품평할 상태가 아닌 대리인은 애매한 자신의 위장 상태를 속으로 원망하며 불안하게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좋은 향기가 풍겨지는 접시가 눈앞에 놓인 순간, 그 위장은 순식간에 공간을 비워냈다.


“냄새 좋다아아······흐으으음. 상쾌해······.”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중얼거린 밀리아렌은 포크를 들고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안에 가져갔다.

그리고 맛을 음미하듯 눈을 감고 천천히 고기를 씹었다.


“······.”

“어때? 감상은?”

“흥,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그 맛에 취해 넋이 나가버렸을 터.”


감평을 내놓으라는 닦달에도 불구하고 밀리아렌은 천천히 고기를 씹었다.

그리고 예상 밖의 행동을 보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기 때문이다.


“뭐, 뭔가? 대체 왜······.”

“······저기, 저기요. 여기 소금 좀 주세요.”

“소금?”

“웰즈 님아. 소금 죰 줘봐효.”


뜬금 없는 소금 요청에 모두가 멍하니 지켜보는 사이, 웰즈가 소금병을 들고 다가갔다.

밀리아렌은 소금을 친 뒤 한 점을 다시 입안에 가져갔고, 눈을 감고 고기 맛을 천천히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랬구나. 으음······.”

“무,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간 안 맞아요. 밍밍해.”

“미, 밍밍······?!”


간이 안 맞아 소금을 원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상황이었지만, 노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는 법이고, 노인은 노호성을 내질렀다.


“그럴 리 없다! 이 요리에 얼마나 노고를 쏟아 부었는데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가만, 우리가 소금을 넣었던 겐가?”

“아니, 자네가 넣기로 하지 않았나?”

“아······ 아아! 깜빡했네! 늙어서 기억력이 쇠해지더니······!”


‘연금술사 우’의 구운 고기 폭주를 막기 위해 나선 건 모두 노인들이었다. 그것도 어디에서 장로 소리 듣는 노인들.

그리고, 노인들은 기억력이 가물가물할 때가 있기에 무엇 하나를 깜박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

“좋아, 땡. 간도 안 된 고기 요리라니. 세상에. 끔찍하구만.”


군중의 기대는 노쇠한 기억력 덕에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저 남아있는 일우가 만들어낸 저 고기가 제발 맛있기를 바랄 뿐이다.

저것도 맛이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이 흥미진진했던 대결이 정말 김 빠진 촌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자, 다음!”

“저기, 아저씨이······ 저 이제 고기 질리는데에······.”

“그러니까 먹어. 질리니까 먹어야지. 그래야 일이지.”

“으으으······.”


방금 전 먹었던 고기에 굉장히 실망한 밀리아렌은 딱 봐도 군침이 도는 향이 나는 고기마저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꾼 신세고, 일우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처지다. 그렇기에 의무감을 가지고 눈 딱 감고 고기를 씹었다.

그리고 말없이 고기를 씹어 삼킨 뒤, 한 점을 더 집어먹었다. 그것을 몇 차례 반복하자 어느 새 접시는 텅 비어버렸다.


“······한 접시 더 먹어도 돼요?”


굳이 품평하지 않더라도, 과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결과는 명백하다.

고기가 질린다는 입을 자기 스스로 했고, 조금 전에 간도 안 된 고기를 먹고 더욱 질려버린 사람이 더 먹겠다고 말을 했다.

더 먹고 싶은 고기라면, 풍겨나오는 향기를 실망시키지 않는 맛임이 분명하다.


“안 돼. 나와.”

“하, 한 접시만 더 줘봐요오오오! 아직 평가 안 내렸잖아!”

“승부는 결정났군요. 자, 가자.”

“놔봐아아! 나 저거 더 먹을래애애! 놔봐 이 변태야!”


그리고 물러나게 하자 저렇게 광분하는 걸 봐선, 여태까지 나왔던 그 어떤 고기보다 압도적인 맛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는 있기 마련.


“수,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편파판정이다!”

“꼬우면 댁도 먹어보던가.”

“나는 네 녀석에게 속지 않······.”


일우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인의 입에 고기를 쑤셔 박았고, 좋든 싫든 맛을 보게 된 노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르신?”

“······크윽! 으으으으으윽!”


부들거리던 노인은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을 내려치며 통곡을 했다.

물론 고기는 철저하게 씹어서 하나도 남김없이 삼켰다.


“······맛있잖아! 우리들의 궁극의 레시피보다 더 맛있어!”

“마,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묘사할 수가 없다. 무엇이, 무엇이 이 맛을 해명할 수 있는지 이해가지 않는다. 그야말로······ 궁극의······ 맛이다.”


상대방의 수장이 패배를 선언했고, 대결의 승자는 결정났다.

그 와중에 입맛을 다시는 밀리아렌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간 안 된 고기 요리랑 비교하면 뭐든 다 맛있는 거 아닌······으읍.”

“좀 가만히 닥치고 있어봐. 분위기 파악 좀.”


웰즈가 입 방정 떠는 자신의 부하이자 소꿉친구의 입을 틀어막는 사이, 노인은 일우의 발치에 매달려 갈구했다.

이 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대체 이 맛을 어떻게 냈는지······ 가르쳐 주시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오!”

“비밀은 바로······ 비밀이다!”

“?!”


일우의 대답에 모두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곧 설명을 해주길 기다렸다.

허나 그들이 원하는 속 시원한 해답 따윈 없었다.


“나는 니들 같은 머저리들 집단처럼 구질구질한 설명은 안 해! 왜냐? 나는 이 레시피를 완벽하게 이해했으니까! 나만이 이 요리를 구상하고, 완성할 수 있다!”


왜냐면 일우는 가르쳐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내가 고안한 궁극의 고기 요리, 고기를 구운 요리, 고기를 완벽하게 구운 요리!”

“허, 허나······.”

“너희들한테 가르쳐 줘 봤자야. 니들은 갖고 있던 레시피도 제대로 못 따라하잖아.”

“······.”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할 거면, 대체 왜 레시피를 전수해온 것이냐? 해낼 줄도 모르면서 어설프게 쳐내고 쳐내다 결국 단순한 삶은 고기만을 먹게 만든 주제에!”

“크윽······!”


사실이었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델린 시의 고기 요리는 구하기 힘든 향신료를 대체하거나 간편한 수단, 혹은 더 저렴한 방법으로 대체되어왔다. 그 사이에 조리법은 단순한 삶기로 변질되어버렸다.


“전통? 그래, 지키는 건 좋다. 하지만 너희들, 이 순간을 제외하고 그 요리를 누군가에게 선보인 적이나 있긴 한가?”

“······!”

“난 그딴 전통 원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미래만이 눈앞에 있다면······.”


‘연금술사 우’는 두 팔을 좍 벌리며 소리쳤다.


“차라리 전설이 되겠다!!”

“오, 오오······.”

“자! 모두 맛보아라! 이것이 바로, 이것이야말로, 전설에 길이길이 남을 나의 궁극의 레시피, 궁극의 맛이다!”


전설을 선언한 궁극의 고기 요리를 향해 사람들이 모두 향했고, 그 사이 꺼내진 고기들이 점점 썰리고 접시에 담겨졌다.

군중이 이 요리를 맛보기 위해 몰려든 와중, 일우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명심하도록. 다른 건 넘치도록 있지만 이 요리는 오직 이 순간만, 지금 한정된 양만 존재한다. 먹고 더 달라는 욕심쟁이가 있다면 그 순간 저 산적 소굴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체험하게 될 줄 알아라.”

“명심하겠습니다요!”

“줄 서요! 줄 서라고!”

“나, 나부터!”

“이봐! 뒤에 서! 차례 지키라고!”


사람들은 이내 전설을 맛보기 위해 아우성이었고, 일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사실 전부 다 거짓말이었다.

저 요리는 단순히 폐쇄된 화로에서 저온으로 좀 오래 구운 뒤, 일부러 겉면에 반죽을 바르고 바짝 태워버린 것에 불과하다. 화로 안에 처박아 넣은 건, 완성된 요리가 공개되기 전까지 식지 않도록 유지하는 역할이었다.

맛의 비밀은, 어마어마한 양의 마늘과 후추, 거기에 글루탐산나트륨에서 비롯되었다.


“뭐, 전설이라는 게 다 그렇지. 내막이랑 좀 다르게 굴러가는 거.”


간단히 말해, 스카웃의 크래프팅으로 제조한 조미료를 있는 대로 다 쏟아 부은 물건이었다.

이 연출을 위해 여태까지 제공된 고기 요리에 일부러 마늘과 후추를 제외한 다른 향신료를 활용해왔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한참 사람들이 전설의 고기요리에 열광하는 와중, 일우는 바닥에서 나뒹굴던 누군가를 마치 까먹은 것 마냥 짓밟았다.


“으극!”

“아, 맞다. 이거 깜빡하고 있었네. 다들 신경도 안 쓰는데 나까지 잊을 뻔 했어.”

“네, 네놈······ 끄으으으.”

“잘 봤지? 이제 네가 하려던 모든 건 없는 일이 된 거야. 네가 최면으로 만든 도적? 없어. 네가 공주기사한테 부리려던 수작? 걘 너랑 만났다는 것도 잊어버릴걸?”


쭈그려 앉아 바닥에서 꿈틀대던 몬델을 향해 그 말을 한 일우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내 기준에도 참······ 음, 좀 낯부끄러운 메인 이벤트였군. 근데 그거 아니?”


몬델은 그야말로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었지만 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깔보듯 내려다보며 이죽댔다.


“넌 저 유치찬란한 이벤트에게 묻힌 거야. 네가 하려던 모든 게, 소금도 안 친 고기요리보다 못한 게 됐다고.”

“보, 복수할 거다······ 네놈을 기필코······ 끄어어어어어!”

“아, 한 가지 더. 저 공주가 탄 세발자전거랑 랜스, 생각보다 성능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내 계산상으론 지금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건데.”


아로엔이 보여준 그 말도 안되는 일격 또한 일우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들은 몬델은 모든 게 그의 손에 놀아났다는 사실에 분노하려 했다.

애석하게도 그는 지금 상처 입은 상태고, 일우가 뿌려댄 가는 소금이 피부에 닿자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악!”

“음, 간 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하지만 비명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쓰니 그건 좀 불쌍······.”

“커헉!”

“하지가 않지! 네놈 때문에 고기를 망칠 뻔 했잖아! 이 고기의 원수! 넌 아직 벌을 덜 받았어! 내 고기를, 감히 내 즐거움에 훼방을 놓으려고 해?!”


노출된 상처에 소금이 닿아 고통스러워하는 몬델을 짓밟은 일우는 이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질질 끌고갔다.


“아직 안 끝났어. 간을 쳤으니 이제 익혀야지.”

“끄극, 끄으으으······.”

“자, 전용 화덕으로 가자. 널 위한 아주 소박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면서도 아무도 너라는 놈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를 장소를 준비해놨어. 참고로 설치한 나도 까먹을 거야.”

“끄그그—커거, 꺽!”

“방치해놓고 까맣게 탄 고기마냥 슬픈 것도 없지.”


몬델은 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 비참하게 퇴장했다.


작가의말

결국 대결은 조미료가 중요하다는 결론만을 남겼습니다.

예? 마늘이랑 후추는 향신료 아니냐구요? 고기 구울 때 쟤들은 조미료입니다. 필수죠.


그리고 마지막까지 충실히 고기에 미친 컨셉을 지키는 우리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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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7 86 15쪽
39 9. 모자람 없는 고민 [1] +7 21.06.09 2,994 95 14쪽
38 ?. 건드리지 마시오 +7 21.06.08 3,023 83 13쪽
37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5] +7 21.06.07 3,057 99 17쪽
36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4] +7 21.06.06 3,053 91 18쪽
»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3] +6 21.06.05 3,053 82 21쪽
34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2] +7 21.06.05 3,092 89 19쪽
33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1] +2 21.06.04 3,268 74 18쪽
32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4] +10 21.06.04 3,466 96 19쪽
31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3] +9 21.06.03 3,497 92 28쪽
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4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7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60 115 24쪽
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6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9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1 91 18쪽
24 ?. 아직 계산 안 끝났어요 +8 21.05.31 4,612 121 26쪽
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8 114 12쪽
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5 111 12쪽
21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9 118 11쪽
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1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1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8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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