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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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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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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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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5.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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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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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글자
11쪽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DUMMY

코모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사방을 뒤덮은 어둠이었다.


“으으······.”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가던 코모스는 한껏 이용해먹으려던 미친 연금술사에게 호되게 당한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주변이 어두컴컴한 걸 봐선 아무래도 꿈인 모양이다. 세상에 딸기 하나로 그렇게 미쳐 날뛰는 인간 따위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으읍---!”

“잠자는 공주님도 아닌데 좀 일어나지?”


애석하게도 그 인간은 실존했고, 지금 코모스의 눈 앞에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강렬한 빛을 디밀고 있었다.


“며칠 동안 어둠 속에 처박아놔서 햇빛이 모자랄 것 같으니까 보충 좀 시켜줄게. 사람이 햇빛을 못 받으면 미쳐요.”

“흐읍! 읍! 으읍!”


암흑 속에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을 쬔 코모스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광원을 치워버린 저 너머 어둠 속에서, ‘연금술사 우’의 것으로 보이는 안광만은 확실하게 보였다.


“왜 아냐고? 내가 한 10년은 넘게 태양 아래에 발 한 번 안 내딛은 적이 있었지. 생각해보면 그 날 이후로 세상이 바뀐 것 같기도 해.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으읍---! 흐으읍!”

“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미치광이다. 이 자는 정말 미치광이다.

냉혹하고 잔인한 암투극을 일상처럼 겪었더라도, 사람을 눈 깜빡 하지 않고 죽일 수 있더라도, 공포라는 것은 존재한다.

코모스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질서 바깥에서 홀로 날뛰는 자.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광기.


“몇 번을 강조하지만 나는 천재고, 너희들은 다 머저리 등신이야. 그래서 천재를 핍박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워낙 똑똑해서, 그런 너희들마저 이해해.”


코모스가 안광을 번뜩이는 상대로부터 솟아오른 공포를 주체할 수 없어 벌벌 떨어대는 와중에도 ‘연금술사 우’는 자기 할 말만을 쏟아 붓는다.


“그래서 너에게 만회의 기회를 줄 거야.”

“으, 으어어어······ 으어읍······.”

“뭐라고 말하는지 못 알아듣겠지만 알아들어도 신경 안 써. 왜냐면 난 내 말만 할 거거든. 지금부터 내 설명을 잘 들으려무나.”


동굴과도 같은 공간인 듯 웅웅대며 울리는 ‘연금술사 우’의 목소리는 한층 더 기괴함을 자아냈고, 그의 손에서 다시 광원이 켜졌다.


“으읍!”

“아, 눈 돌리라는 말을 안 했네. 알게뭐람. 아무튼 네 몸에 칭칭 감긴 밧줄들 느껴지지?”

“흐읍······.”

“그 밧줄들은 또다른 밧줄에 이어져 있고, 그 밧줄에 밧줄과 이어진 밧줄에는 또다른 밧줄······은 선 넘은것 같으니 다른 걸 연결해놨어.”


빛 속에서 어렵사리 시력을 회복한 코모스는 자신과 이어진 밧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치에 연결된 걸 볼 수 있었고, 그 장치는 갱도 지지대로 보이는 나무 기둥들에 붙어있었다.


“저게 뭘까? 건드리면 네 주변에 있는 이 기둥들 중 하나가 뽝! 하고 박살이 날 거야. 그러면?”

“흐으으븝.”

“무너지겠지? 아, 이 광산이 주저앉아서 광부들 밥줄 끊기지 않을까 걱정은 안 해도 되. 네가 조진 광산 중 하나에서 협찬 받았으니까. 물론 아무한테도 동의는 받지 않았지.”


폐 갱도 구석에 처박혀 있다는 걸 알게 된 코모스는 버둥거리려다, 이내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심하게 몸부림치다 어느 한 쪽의 밧줄을 과하게 잡아당기면, 저 폭발물이 터지고 만다.

순간 이 상황에서 저 미친 자와 함께 죽을 마음이 생겼지만, 뒤이어 ‘연금술사 우’는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는 낄낄댄다.


“끄흐흐흐, 그래.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저세상 길동무가 떡하니 서있으니 같이 죽자 싶겠지. 그거 아니? 그래봤자 너만 금방 죽어요. 난 안 죽어.”

“으으읍······.”

“참고로 그냥 무너진다고 바로 죽지도 않아. 내가 의도한 거지만 될 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돌 더미에 깔려서 온 몸이 찌그러지는 기분을 한껏 느끼다가······ 공기가 부족해서 죽을 걸? 대충 그러길 바라고도 있고.”


코모스는 엔셀 상단의 지부장이 될 동안 수많은 사람을 보았다. 미친 사람과 똑똑한 사람 둘 다 많이 보았고, 많이 이용해먹기도 했다.

그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건 눈앞에 있는 ‘연금술사 우’는 진심을 담아 말하고 있다는 것이고, 사람 한 명을 최대한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죽어나가게 만드는데 도가 튼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는 의외로 자기 규칙에 철저해서 그 규칙에만 따르면 순순히 살아날 수도 있다는 것도.


“자,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주일. 그 안에 빠져나가지 못하면 시간 초과로 기둥은 모조리 부러진다.”

“흐으읍? 으흐흡? 으읍?”

“뭐, 진짜로 살려줄 거냐는 말이냐면······ 알 게 뭐람. 어차피 뜰 동네라서 더 이상 뭐 하기도 귀찮아. 너랑 놀아난 덕에 길드 놈들도 도시의 어느 놈도 날 보는 시선이 따갑기 짝이 없거든. 동네도 시시하고.”


흥미를 잃은 것 같은 상대의 말에 코모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복수심이라는 감정은 저 안광에서 느껴지는 공포에 이미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그럼 열심히 해 봐? 힘내?”


어두컴컴한 공간 너머로 그가 사라지자, 코모스는 몸을 꿈틀거리며 이 지옥 같은 함정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운이 있어서, 우연찮게 날카로운 돌끝이 밧줄을 갉아먹기를 바라며.

코모스에게 최후의 복수를 선사한 일우는 폐광을 나서며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소매에 넣은 뒤, 스카웃에게 지시를 내렸다.


“좋아, 센서 세팅. 입구측 대인 동작 감지 센서랑 트랩 트리거 센서 둘 다 작동시키고, 144시간 뒤 모두 폭발하는 거로 해 둬.”

[타이머 및 센서 세팅, 완료.]


당연하게도, 일우는 코모스를 살려서 내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매우 높은 확률로 밧줄을 풀려고 시도할 때 실수해서 트랩을 건드려서 터질 것이다.

어떻게 요령을 써서 풀어내 입구까지 빠져나가거나, 정말 기적같이 구원이 와서 그를 구해주기 위해 폐광 갱도로 들어서는 순간 대인 감지센서가 작동해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6일 내내 탈출을 위해 노력하며 희망을 품는다면, 그 희망을 배신하는 폭발이 그를 덮칠 것이다.

그에게 남은 건 지금 당장 죽거나, 며칠 있다 죽거나, 혹은 좀 더 길고 괴롭고 고통스럽게 목숨을 부지하다 죽는 것 밖에 없다.


“좋아, 이건 여기까지 했으면 됐고 슬슬······.”

[인공지능 개선을 위한 정보 제공 요청.]

“뭔데?”

[눈 부위 보조장비, ‘아이라이트 선글라스’장착의 필요성에 대한 답변 요청.]

“아, 이거?”


일우는 스카웃의 말에 다시 선글라스를 꺼냈다.

CIS에서 흔히 쓰는 코스튬 아이템으로, 실질적인 기능보다는 특수효과 때문에 몇몇 사람이 끼고 다니는 물건이다.

쓰면 눈에서 안광이 뿜어지는 것처럼 보여서,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눈뽕 선글라스’라고도 불리는 물건이다.


“사람이라는 건 생각보다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연출에 약해. 예를 들면, 이런 눈깔에서 빛 나오는 연출 말이지.”


일우는 그 선글라스를 한 손으로 잡아 까딱였다.


“흔히 말하는 안광이라는 거, 다 반사광이야. 밤에 야생동물 만나면 보는 그 번뜩이는 안광도 자기가 빛을 비추니 반사되어서 보이는 거지. 근데 사람들은 그게 광기니 공포니 하며 포장한단 말이야.”

[사고회로 계산 중. 완료. 요원의 장비 사용, 목표대상의 공포심 자극을 위한 보조적 연출장비로 추정.]

“어, 그래. 이렇게 해야 좀 가르칠 맛 나지.”


일우는 다시 선글라스를 집어 넣고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간에, 어두컴컴한데서 눈알이 번쩍이면 이런저런 거 다 겪은 놈도 겁먹게 되어 있어. 아, 저놈은 정말 미쳤구나 싶은 거지.”

[데이터 갱신. 인간의 고정관념 및 통상적 관념에서 비롯된 심리전 관련 정보.]

“저장 잘해둬. 이런 걸 잘 활용해야, 사람이랑 싸우는 게 유리해지는 거야.”


게임에서 무슨 심리전이냐 싶지만, 단순한 컨트롤 하나에서부터 적용된다.

우측으로 돌 것인지 좌측으로 돌 것인지, 수류탄을 집어던지느냐 그 딜레이를 노리고 급습에 나서느냐, 장전 타이밍을 노리고 그 노림수를 역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탄을 남겨두고 사격을 멈추느냐.

일우가 거대한 클랜을 무너뜨리고, 그 이후에도 잔당들과 숱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심리전은 그의 주요한 무기가 되었다.


“무기는 중요한 게 아냐. 사람 마음이 휘둘리고 꺾이면 그걸 쥔 손이 영향이 가는 법이니까.”

[요원이 과거 작전 기록내용 열람 중. 요원의 발언 상의 신뢰도, 매우 높음.]

“그래, 너도 봤겠지. 보기보단 데이터 기록이 남았겠지만.”


CIS에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고 만들었던 일우의 캐릭터 ‘우좌뒤앞’의 인터페이스가 바로 현재의 스카웃이니, 그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남아있을 것이다.


“미친놈을 연기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골때려. 정석적인 미친놈의 공식을 따르더라도, 전형적인 미친놈은 또 미친놈처럼 안 보일 때가 있거든.”

[사고회로 계산 중······. 해당 정보를 기반으로 한 신규 업데이트 패키지 구성.]

“미친놈이 되려면 창의성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그거지. 공식만으로는 이런 짓 못해.”

[사고회로 업데이트 중······ 업데이트 실패. 사유, 사고회로 분석 불가능 유형.]

“그래, 사람도 잘 이해를 못하는데 너라고 이해를 하겠니.”


스카웃의 현 수준으론 일우의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다.

별 기대도 안 했기에 일우는 곧바로 넘어가버렸다.


“좋아, 짧게 마무리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하고······ 이번에 한 건 해준 거로 할 수 있는 일에는 이제 제약이 생길 테니, 좀 움직여야겠어.”

[보조 목표, 길드 지부에 대한 반격 미실시.]

“작전대로만 돌아간다면 지금은 손 안대는 게 훨씬 좋아. 걔들도 다 까먹을 즈음에, 생각지도 못할 때 빡!!”


모든 것을 한 번에 끝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결코 넘어갈 생각은 없다.

카이엔의 길드마스터 지부가 일우에게 한 짓은 언젠가 되돌아올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상상도 못한 규모로.


“멍때리고 있다 먹는 타격은 배로 아픈 법이거든. 거기다 이런 집단을 공격하는 방법은 좀 작업이 길어져.”

[요원의 작전계획 내역 재검증······ 완료. 해당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인적. 사회적 자원 확보가 요구됨.]

“그래서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안 하겠다는 건 아냐. 그건 명심하라고.”

[확인.]


일우는 걸음을 멈추고 이제 잘 보이지도 않을 거리까지 멀어진 폐광 입구를 돌아보았다.


“난 쟤가 끝까지 버텨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좀 더 오래 고통 받을 거 아냐.”

[답변 불가.]

“네 답변이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는데.”


이내 일우는 몸을 홱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작가의말


...그리고 영웅은 누구를 트랩한가운데에 넣어두고 희망고문도 안하죠.


아직 원한 대부이자도 안갚은 쪽 이야기는 조금 있다 에필로그로 나올 겁니다. 약... 뭐 아무튼 시간이 좀 지난 뒤의 시점일겁니다.

그렇게 오래 지난 뒤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묵히면 묵힐수록 더해지는 맛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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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9. 모자람 없는 고민 [6] +2 21.06.14 2,606 83 13쪽
43 9. 모자람 없는 고민 [5] +3 21.06.13 2,637 90 17쪽
42 9. 모자람 없는 고민 [4] +7 21.06.12 2,723 9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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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7 8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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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3] +9 21.06.03 3,497 92 28쪽
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3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6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60 115 24쪽
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5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8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1 9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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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5 111 12쪽
»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9 118 11쪽
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0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0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8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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