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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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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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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9. 모자람 없는 고민 [3]

DUMMY

페니카.

지리적으론 대륙 동북부에 위치한 단순한 고원지대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은 유래 깊은 어원들의 뿌리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페니카에서 대머리 찾기’, ‘페니카에서 털 나는 소리’, ‘페니카가 되다’.

유독 대머리가 많은 땅. 그것이 페니카다.


“지역도 헐벗고 사람 머리도 헐벗고. 이게 바로 인간이 적응한다는 증거 아니겠니?”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이지만, 돌아다니면서 그런 표현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모로 분란의 소지가 있으니까.”

“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한다 그거군. 머리만 벗겨진 동네가 아니라 아량과 배포도 휑하구만.”


수많은 노천광과 분출되는 마력원 덕분에 이곳은 예로부터 마법 소재가 많이 나는 풍요로운 땅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톨라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상인과 마법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지만, 이곳에 오래 머무르진 않는다.


“아시겠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는 탈모 현상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바로 ‘저주받은 땅’이라는 소문 때문이다.


“타 지역에서 이주하는 사람들 역시 10년 내에 탈모 증상이 발현되는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됩니다.”

“그 정도야 다 아는 지식이지. 대머리의 땅. 대머리가 되는 땅!”

“······이 지역에서 누군가의 협력을 받으실 생각이시라면, 적어도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시면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만.”

“내가 대머리로 노래를 부르는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니?”

“그야, 비공정에서 곁에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일행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다분해졌으니 말이지요.”


랑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는 주변 사람, 특히 머리 벗겨진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그들이 슬쩍 시선을 돌리자, 랑키는 고개를 돌려 일우 쪽을 바라보았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 곳 사람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 님이 저와 손을 잡고 같은 일을 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그런 거 아니었어? 우리 서로 협력관계이긴 하잖아.”

“······전 대머리 치료제 찾아서 온 게 아니라, 여기 근처에 숨어있다는 용사를 찾아온 겁니다.”

“그래. 대머리 치료제 표본. 같이 구하자고 했잖아?”

“그러니까아, 저는 그 사람을 대머리를 구제하려고 찾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랑키는 어느 새 자신의 옷차림, 정확히는 노출된 부분에 시선을 주는 이들을 다시 한 번 째려본 뒤 일우를 돌아보았다.


“아무튼, 조금 신중하게 행동해주셨으면 합니다. 만일 섣부른 행동으로 이 지역의 민심이 등을 돌려서 저까지 영향을 받으면, 저희 사이에 있었던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라? 내가 손해니? 너희가 손해지. 그리고 쟤들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건 나랑 너랑 관계된 쪽보단 네 헐벗은 옷 때문에 그러지 않나 싶은데.”

“······으으으윽. 이래서 이 지역에 오기 싫었는데.”


다시 한 번 주변 사람들을 째려본 랑키는 일우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아무튼! 이해하신 것으로 간주하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차라리 옷을 걸쳐. 쳐다보는 게 싫으면 갈아입으면 되지.”

“이래보여도 자존심입니다.”

“도서관에서 본 애는 가리려고 애쓰더니 넌 드러내려고 애쓰는구만. 그리고 그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고.”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대충 알겠네요. 캐피탈에서 자기가 가진 무기를 활용 못 하는 멍청이는 한 사람밖에 안 떠오르니까요.”


랑키가 광장 저 너머로 향하는 걸 바라본 일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했고, 그 누구도 자신에게 신경 안 쓴다는 걸 확인하고 스카웃에게 지시를 내렸다.


“좋아. 시선 끌리는 애랑 떨어졌으니, 슬슬 작업 시작해보자고. 일단 이 동네 정보 좀 수집해보자고.”

[매직 스트림 네트워크 내 페니카 지역 관련 정보 수집······ 경고! 심각한 오류 감지!]


느긋하게 스카웃의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던 일우는 미간을 좁혔다.


“뭐야? 왜? 설마 그놈이랑 근접해 있어서 문제라도 생겼어?”

[유형, 매직 스트림 네트워크 상의 오류. 페니카 지역 관련 정보 중 일부 불러오기 불가! 해당 정보, 오염 가능성 존재!]

“······제기랄. 그나마 그 놈 때문은 아닌 것 같은 건 다행이네. 일단 위험한 데이터 걸러내고 안전한 것만 수집해.”

[다운로드 가능한 정보에 대한 검증 실시. 오류 항목 분류 작업 중.]


여신 누아즈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용사’ 때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일우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고, 스카웃은 곧 안전성이 확인된 정보를 수집했다.


[무결점 확인된 데이터 분류 완료. 시스템 안정성 확보.]

“뭐가 문제야? 원인은? 분석 되냐?”

[지역정보의 매직 스트림 네트워크 간섭으로 추정. 해당 문제로 인해 오염된 정보사항, 접근 차단 처리로 인해 세부사항 확인 불가.]

“다운로드만 허용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서 덮어씌우기라도 된 건가?”

[스카웃의 논리회로 상의 가설, 요원의 추정과 유사함.]


이전에 일우는 ‘매직 스트림 네트워크’를 일종의 데이터 통신 통로로 활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스카웃의 설명대로라면, 매직 스트림 네트워크는 일종의 다운로드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서버에 가깝다.

그런 시스템에 역으로 접속해서 데이터를 덮어씌우는 건, 일우의 생각에 딱 하나밖에 없었다.


“바이러스잖아 그거.”

[해당 가설의 가능성, 높음.]

“머리털도 혹시 거기의 연장선은 아닌가 모르겠네.”


페니카 지역의 매직 스트림 네트워크가 바이러스 비슷한 무언가에 오염되었다는 가설에, 일우는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농담삼아 꺼낸 말이지만, 세상에는 농담처럼 꺼낸 말이 사실이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해당 사항에 대한 가능성, 유의미한 수준.]

“······농담을 진지하게 그렇다고 말하지 말아줄래?”

[오류 검출 내역 상의 오류 유형, 정보 오염 및 변조로 확인됨. 바이러스 존재 시 해당 결과 도출 가능. 해당 지역의 인적사항 변이, 정보 오염의 부수적 결과로 구현될 가능성 존재함.]

“뭐 DNA에 영향을 끼치기라도 하는건가······.”


하지만 일우가 여기 온 건 용사짓에 심취해 있을 멍청이 때문이지, 탈모의 근원일지도 모를 무언가를 조사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만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더라도, 이 땅에는 거기에 관심을 둘 이가 이미 일우와 함께 와 있다.


“씁. 그건 넘기고, UAV는 안정성 확인된 뒤에 띄우기로 하자.”

[확인. UAV 리콘, 사용 취소.]


하지만 그 정보 오염이 얼마만큼의 피해를 줄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불분명하다.

일우는 자칫 오염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카웃의 기능을 최소한도로 활용하는 노선을 택했다.

지금부터는 ‘연금술사 우’가 활약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일단 직접 돌아다니면서 얻는 정보부터 모아보자고. 그러라고 대놓고 사방에 떠들어댔으니까.”


일우는 성큼성큼 페니카의 길드 지부 건물로 향했다.

모든 길드 지부의 공통점은 각 지역별로 가장 왕래하기 편한 도시나 마을에 위치하고 있고, 거기서도 가장 사람이 오가기 편한 장소에 길드 건물을 세운다는 것이다.

보통 지역의 대도시 광장이 딱 거기 맞는 조건에 해당되고, 페니카의 상업도시 ‘야드’ 또한 거기에 해당된다.

희소 마법소재의 채집, 험지에 위치한 채집장소까지 호위, 거기에 광산의 운영을 방해하는 몬스터 퇴치와 같은 일 덕에 페니카 길드 지부는 꽤나 북적였다.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다면, 페니카 길드 지부는 거의 대부분이 페니카 토박이거나, 페니카에 눌러앉은 모험가 위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페니카 주민, 혹은 페니카 토박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길드 건물 내부 사람들의 머리는 죄다 휑한 상태였다.


“어이쿠, 잘못 들어왔네. 제론 수도회 건물이었잖아?”

“길드 맞소.”

“근데 수도사들 천지인데?”

“······.”


제론 수도회는 스탈리스 대륙에서 번성한 무투파 수도사들의 집단으로, 입교시 머리를 밀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대머리들을 놀릴 때 쓰이는 호칭이기도 했다.

들어서자마자 대놓고 시비를 걸어대는 일우를 향한 모험가들의 시선이 한층 싸늘해졌다.

특히 로브 속에 보이는 머리카락을 본 몇명은 이를 박박 갈아댔다.

그 뜨거운 시선 속에서 ‘연금술사 우’는 천연덕스럽게 길드에서 머리카락이 남아있는 몇 안되는 사람인 접수원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어우! 이곳 길드 지부는 뭔가 ‘반짝반짝’ 눈이 부시구만.”

“여기서 그 표현은 금지입니다.”

“거 참. 마음 씀씀이 좀 ‘모자라지 않게’ 쓰라고. 꼴랑 그거로 표정 안 좋아지긴.”

“그 표현도 금지에요.”

“아, 거. 금지의 바다에 ‘빠진’ 것도 아니고 뭐 그리 금지가 많아?”

“그 표현 쓰시면 안돼요.”

“그럼 난 금지를 금지하지.”


접수원은 말을 더하는 대신 손가락을 들어 접수대 위에 내걸린 팻말을 가리켰다.


-페니카 길드 지부 내 금지단어 목록.


길드 지부에서 지정한 금지단어는 전부 ‘빠진다’,‘안 난다’,‘벗겨졌다’와 같은 특정 헤어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에게 민감한 단어 뿐이었다.

그걸 본 일우는 콧방귀를 뀐 뒤, 손가락을 튕기며 접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농담 따먹기 집어 치우고, 정보를 원하는데.”

“······당신에게 협력할 이는 없소만.”


접수원 아가씨가 응대하기 전, 꽤나 험악한 인상의 대머리가 일우 쪽에 접근했다.


“당신 같은 떠돌이는 반기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아. 거기다 들어서자마자 놀려대놓고 우리 협조를 구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 그냥 여기서 꺼지시지.”

“아, 그래? 발모제 필요 없다 그거지?”

“?!”


그 말을 들은 험악한 대머리 남자는 물론이고, 근처에서 언짢은 분위기를 풍기던 모험가들 모두가 일우를 주목했다.

사실, 여기 있는 모험가들 대부분은 원해서 페니카에 온 것은 아니다. 나름의 사정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이 곳에 흘러들어온 것이고, 그 문제가 해결될 가닥이 보이지 않아 눌러앉아버린 것이다.

모험가 사이에는 이런 격언이 있을 정도다.


‘머리 벗겨진 모험가가 갈 곳은 페니카밖에 없다.’.


모두들 전설 속의 대머리 연구가, 로닌의 숨겨진 연구 성과물을 찾아 흘러들어온 것이다.


“로닌의 비밀 연구소를 찾으려고 하는데, 내가 일일이 들쑤시고 다니는 건 너무 무식한 짓이야. 그래서 좀 정보를 모아볼까 싶어서.”


허나 일우가 그 말을 언급하자, 모두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험악한 대머리 모험가 역시 미간을 좁히며 투덜댔다.


“여기 있는 사람이 그냥 있는 것 같소? 그런 정보는 당신 말고도 이미 수도 없이 찾아보려 시도했소.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지.”

“하지만 발상을 전환해서, 뭔가 불법적이거나 숨어지내거나 아무튼 간에 떳떳하게 못 돌아다니는 놈을 찾으면 어떨까?”


일우가 뭔가 다른 노선을 제시하자, 순식간에 험악한 대머리의 눈이 번뜩인다.

아무래도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숱하게 노력해온 모양이다.


“무, 무슨 계획이라도 있소?”

“그야 그런 놈들은 은신처가 있을 거고, 운이 엄청 좋으면 남들이 못 찾던 비밀 연구소 같은 데 둥지를 트고 앉아있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이런 방식을 시도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고, 꽤 참신한 방법은 실망한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는 법이다.

일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향해 얼굴을 들이민 모험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눌러 밀어냈다.


“그게 죽을 때까지 성과 못 냈다는 어떤 양반의 최후의 연구소일지도 모르지. 안에 뭐가 있는 진 뒤져봐야 알 일이고.”

“당신이라면 찾을 수 있다는 소리요?”

“아니, 내가 해낸다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보자고. 여태까지 이런 발상은 아무도 못 했으니 이런 반응인 것 같은데.”

“크흠.”


멋쩍은 표정으로 모험가가 물러났지만, 접수원 아가씨는 무덤덤한 표정 그대로 의뢰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른 방식의 실패만 나올 뿐이겠죠.”

“······남의 희망을 꺾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다.”

“글쎄요. 수십 번은 더 넘게 ‘내가 찾는다!’고 하신 분들, 다 지금 집회소 근처에서 술이나 홀짝이시는 걸 봐서 그런지 별 감흥도 없네요.”

“패배한 대머리들 이야기 들으려고 온 거 아니야, 아가씨.”

“뭐, 여러분들 문제지 제 문젠가요.”


아무래도 ‘페니카의 대머리 저주’는 여성에겐 예외인 모양이고, 접수원 아가씨에겐 남의 이야기인 모양이다.


“일단 정보 제공 의뢰 등록해드리겠습니다. 모험가라면 신분증을, 아니라면 신원을 증명할 징표와 선수금부터 지불해주세요.”

“옛다.”


일우는 모험가 신분증을 내밀었고, 접수원 아가씨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건조한 태도로 신분증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눈동자가 커졌다.


“우······?”

“왜? 글자 못 읽니?”

“마스터어어어어어!!”


접수원 아가씨가 경악하듯 외치자, 건물 2층에서 길드마스터로 추정되는 남자가 내려왔다.

이 길드의 분위기와는 정 반대인, 풍성한 머리카락을 과시하듯 드러낸 남자는 접수원의 다급한 외침에 한껏 짜증을 내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손에 들린 도끼를 봐선, 자신을 부른 원흉을 반으로 쪼개버리겠다는 의사가 확실히 드러나보였다.


“뭐야! 밀레느! 왜! 이번엔 어떤 개쌍놈이 너한테 찝적댔어! 아무리 페니카에 여성 모험가가 안 온다고 해도 말이야, 접수원 건드리는 건 길드 전 지부의 최대 금기인데 어떤 썅놈의 새끼가······!”

“그거 아니에요! 여기서 저 건드릴 미친 인간 아무도 없어요!”

“그럼 왜!”

“우! 그 사람이요!”


그 말을 들은 길드마스터는 곧바로 도끼를 내던지고 황급히 밀레느라고 불린 접수원 아가씨 쪽으로 달려왔다.

신분증을 확인한 길드마스터는 멍한 눈으로 일우를 돌아보았고, 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나다.”

“세상에······.”

“카이옌에 그······ 대량의 마법물품을 제공했다는 그 사람?”

“어. 맞아.”

“이델린에 그 고기에 미친······.”

“아, 그건 끝. 지금은 그건 안 해. 고기 구워달라 하지 마. 내겐 이제 새로운 과업이 생겼으니까.”


아무래도 일우가 벌인 일은 이미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소문이 퍼지라고 과시하듯 해낸 일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퍼졌기에 일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내 소문 들었다는 건 좋은 소식인데, 소식을 무슨 수로 들은 거람.”

“그야 길드 정기 소식통을 통해 지역의 중요 사건은 꼬박꼬박 전달됩니다. 특히나······.”

“그러면 전해지고도 남겠군. 아, 지금 막 생각난건데 돈 들어온 거 얼마나 되는지 확인 좀 해주지 그래?”


일우의 말에 접수원 밀레느는 곧바로 신분증과 연결된 ‘연금술사 우’의 계좌를 확인했고, 곧바로 계좌 증명확인서류를 작성해 내밀었다.


“좋아, 안 떼먹고 열심히 사나 보네.”

“······마스터, 소문이 사실인가 봐요. 저 분 계좌에 들어간 금액 봤어요?”

“소문이 전부 사실이라니······.”

“그으럼. 당연하지. 나는 너희들이 상상하는 그 무엇이던 뛰어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럼 발모제도······?!”


그 말에 일우는 선을 딱 그었다.


“어허, 그건 아냐.”

“······.”

“불모지를 쑥쑥 자라나는 생명의 땅으로 만드는 과업을 해내면 나야 좋지. 세상에 길이길이 남을 업적이 될 테니까!”

“가능······ 한 겁니까?”

“그야 모르지. 오늘 처음 왔고, 이제 시작해보려고 단서 찾잖니. 된다는 확신은 못 해. 지금부터 될까 안 될까 알아보려고 하거든.”


길드마스터의 상황 파악을 돕기 위해 밀레느가 귓속말로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하자, 길드마스터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이 문제에 손을 대실 의향은 확실히 있으신 모양이군요.”

“그래. 너희들만큼 간절하진 않지만, 일단 호기심은 생겼거든. 왜, 원해?”

“예!!”

“그럼 협조 좀 잘 해봐.”


일우는 곧바로 의뢰서 종이를 흔들어보였고, 길드마스터는 곧바로 길드에 있는 다른 모험가들, 대머리들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쏘았다.

‘무조건 협력해야 한다’라는 신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연금술사 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렇게 협조적인 모습을 보니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반짝’이겠어.”

“저기, 죄송한데 그 표현 쓰시면 안돼요.”

“그래? 아까 내가 금지를 금지한다는 거 까먹었니? 난 내 말이 법이거든.”


일우는 그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가다, 이내 걸음을 멈추고 길드마스터 쪽을 돌아보았다.


“아, 한 가지 질문. 여기 길드마스터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은 걸 가진 것 같은데.”


그 말에 길드마스터는 머리 쪽을 들어 올렸고, 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길드마스터는 여러모로 대외업무 많은 직책이니까! 패션 아이템 좀 끼고 살아도 이해를 해 줘야지! 너무 과해 보이는 것 같지만 말이야.”

“······슬프게도 세상에는 보이는게 전부인 경우가 많지요.”

“아무튼, 내 도전에 대한 과한 관심도 대충 설명이 됐어. 기대를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라는 거 명심해.”

“기대하겠습니다!”

“알 게 뭐람. 난 내 기대에만 움직여.”


‘연금술사 우’는 그렇게 페니카에 원치 않는 붙박이로 살게 된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문을 나섰다.


작가의말

참고: 페니카 지역의 성비는 8:2이며, 모험가 길드의 남녀 성비는 9:1입니다.

벗겨진 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모여듬 + 주변에 하이빔 쏘는 남캐가 많아져서 런함 + 머물던 사람도 점점 벗겨짐 + 그거 보고 질려서 딴데감 = 현 상황

캐피탈과 달리 이 지역에서 헐벗은 빈유 아가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놓고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캐피탈엔 헐벗은 옷차림 한 사람들 많고, 이 지역엔 헐벗은 사람은 고사하고 여자가 거의 없음.


어떻게 보면 공모전도 이번 에피소드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시작은 풍성했지만 빠져나가고, 중간중간 새로운게 나오지만, 결국 끝에 보면 휑해지잖습니까?

중간중간 원동력을 주면 죽으려던게 막 살아나기도 하지만, 애초에 글러먹은 건 그래도 못 살아남는것도 똑같죠. 그리고 태생적으로 빠져나갈 운명인 것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크으, 인생은 거대한 규모의 두피와도 같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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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모자람 없는 고민 [3] +8 21.06.11 2,874 95 18쪽
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7 8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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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4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7 10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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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6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9 10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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