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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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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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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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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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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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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글자
20쪽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DUMMY

엔셀 상단의 저택은 그야말로 죽음 투성이였다.

여기저기 쓰러진 시체들 중 상당수가 얕은 상처로 가득해고, 개중에 멀쩡한 상태인 이들도 있었지만 모든 시체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고통으로 범벅된 표정이라는 것.


“하루 만에 다시 온 장소 치고는 인테리어가 많이 바뀌었어. 취향 참.”


참혹한 현장을 본 일우는 짤막하게 이죽댄 뒤 시체들을 따라 응접실까지 도달했다.

응접실에서는 복도나 건물 바깥보다 더 많은 수의 시체가 보였다.

팔이 뜯겨나가고 온몸에 충격을 받은 시체, 그리고 수많은 칼날에 난도질당한 듯한 시체, 거기에 더 격렬한 부상의 흔적들.

유독 눈에 띄는 건, 이 와중에도 딸기가 올라간 케이크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어우, 저놈의 딸기는 죽지도 않고 멀쩡히 있네.”

“저, 저 말 들어보시오! 저 자가 여기에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지금 당장에라도······.”

“아 시끄러워. 내가 있을 땐 케이크처럼 사람들도 멀쩡했다고. 조사 좀 하자. 그렇게 성질이 급하니 머리카락이 머리에서 도망쳤지.”


그 말을 한 일우는 주위를 쓱 둘러보고 턱을 쓰다듬으며 조사를 하는 시늉을 한 뒤, 자신을 향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을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대충 원인이 뭔지 알겠는데, 너희들은 모르겠지? 뭐 그러니 나 같은 무고한 사람을 붙잡으려 했겠지.”

“일단 추측을 이야기해보시지.”

“또 말투 바뀐 거 봐라. 이 동네 인간들은 아주 사람 취급이 들쑥날쑥해.”


세리카에게 그렇게 이죽댄 일우는 소매에서 얼마 전 구매한 독극물 감식용 종이를 꺼내들었다.


“자, 원리원칙을 따지는 너 같은 녀석 때문에 아깝게 돈 주고 산 규격품이야. 잘 봐?”


일우는 아직까지 멀쩡히 남아있는 케이크에 종이를 가져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에는 몇 가지 색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자, 반푼이. 내 입으로 떠들어대면 다들 안 믿을 테니 네가 결과 말해봐.”

“슬리피 스파이더······ 아니, 변종의 독이군요. 그리고 이 표시는······.”

“빨리 좀 말해. 물버섯독이랑 필로 독이라고.”

“······이 쪽의 말대로입니다. 종이에서 확인한 성분은 ‘12시간의 영면’, 물버섯독, 그리고 필로 독입니다.”


세리카가 검출된 성분을 언급하자 길드마스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해독사 안젤라의 작업장을 매입했다고 했었지.”

“아, 아. 해독사가 뭔지 몰라?”

“해독제를 만드는 작업장은, 반대로 독을 만들 수 있기도 하지요.”

“그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게 쉽게 되니? 야, 반푼아. 네가 알기로 이 독은 공통점이 있지 않니?”


독극물을 제조할 환경을 갖췄기에 의혹이 한층 더해졌지만, 일우는 자신에게 철저히 유리한 증거를 갖추고 있었다.


“······전부 성분 추출로 구하는 자연독이군요.”

“또 봐라. 말투 바뀐 거. 아무튼 들었지? 내가 아무리 천재고 똑똑해도 자연독은 어떻게 못 건드려. 비슷한 건 만들어도, 그랬다면 그 ‘표준’에 걸렸겠니?”


현장에서 나온 증거는 모두 자연물로 얻는 독이고, 그 중에서도 ‘12시간의 영면’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슬리피 스파이더의 독은 입수경로가 굉장히 까다롭다.


“자! 그럼 독은 알았으니 이 친구들이 왜 나자빠 죽어있는지도 천천히 둘러보면서 추리를 해 보자고.”


‘연금술사 우’가 입수할 수 없을 독이 들어간 만큼, 그를 향한 의혹 역시 옅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실은 명백히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


하루 전, 이 응접실에서 벌어진 일은 이러했다.


“축하한다! 너희들은 12시간 안에 무조건 죽는 독에 노출되었다. 물론 난 아니지.”


가스, 정확히는 에어로졸 상태로 뿌려진 독극물에 노출된 엔셀 상단의 부하들은 일우의 외침에 기겁했다.

일우는 그 반응이 매우 흡족한 듯 모인 이들 중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 걸작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기 전에 먼저 저 친구부터 소개하지. 창의력 제공자거든.”

“뭐······?”

“애매한 슬리피 스파이더 변종을 내 눈앞에서 살랑거린 그 순간에 이 죽여주는 독을 떠올렸다.”


이전 슬리피 스파이더를 이용해 엘라를 인질로 삼으려고 했던 그 자가 지목 당하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개중에는 저 미친놈을 자극한 원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일우는 바로 그런 생각들을 하게끔 굳이 지적했다.

자신을 습격한 상대방에게 원한이 쌓일 시간을 기다린 일우는 천천히 독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알다시피 슬리피 스파이더 변종 추출 독, 속칭 ‘12시간의 영면’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약 12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사이 해독제를 찾으면 말짱 꽝이고, 더군다나 그 사이엔 아무런 조짐도 없잖아?”


변종 슬리피 스파이더의 독은 유명한 협박용 재료지만, 전용 혈청 해독제가 존재하는 이상 만능은 아니다.

암투에 쓰이는 전형적인 독인만큼, 협박에 시달리는 이들은 항상 전용 해독제를 구해놓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좀 섞었다. 그 12시간이 좀 더 자극적이게끔, 그리고 인생을 돌아보며 무력감을 느낄 감정과 육체를 통일시키기 위해······ 두 성분을 조합했지.”


일우는 히죽 웃으며 다른 독성분을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의 팔과 다리에서 힘이 쪽쪽 빠지기 시작할 거야. 그러라고 필로 독을 좀 추가했고, 30분 뒤부턴 폐에 물이 차오를 거야. 물버섯독은 온몸에서 수분이 쫙 빠지지만, 그건 너무 꼴 보기 싫어서 딱 한 부위에만 수분이 빠져나오도록 손을 댔거든.”


그 말과 함께, 일우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참고로 여긴 숨 쉴 때 쓰는 장기야. 물이 차면 숨쉬기 어려워질걸?”


거기까지 일우가 말한 순간, 모여있는 이들 중 몇 명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약병이나 가루약을 꺼내 입안에 황급히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말했던 성분에 딱 맞는 해독제를 갖고 있던 모양이지만, 해독제를 먹었던 이들은 제각각 격한 반응을 보였다.


“푸억!”

“어그어어거걱······ 컥, 칵!”

“허어······!”

“아, 그거 말 안했네? 단일 성분 해독제를 먹으면 나머지 두 성분이 폭주하도록 손을 써 놨다. ‘12시간’ 해독제를 먹으면 팔다리에 힘이 좍 빠지면서 선 채로 익사하고, 물버섯독 해독제는 먹으면 그대로 쓰러져서 숨 쉬지도 못하고 죽고, 필로 독 해독제는 12시간 독을 12초 독으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일우는 특정 성분을 말했지 독극물 조합의 모든 원리를 다 설명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독 가지고 장난치는 집단이면 해독제정돈 갖고 돌아나리라는 것 역시 예상했기에, 꼼수를 쓰는 이들은 빠르게 고통스러워지도록 수를 썼다.


“자! 이론상 너희들은 점점 힘이 빠지는 동시에 선 채로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12시간 딱 지나면 점점 정신을 잃으면서 끝.”

“으윽······!”

“하지만 안 그래도 돼! 아까 내가 먹은 거 기억나지?”


그 말과 동시에 일우는 빈 약병을 들고 까딱였다.


“이 병, 몇 개나 있을까? 네 개다.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너네 주인이 먹었고······.”


손안에 쥔 약병을 본 이들의 시선이 간절해지는 걸 본 일우는 건물의 위쪽과 아래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남은 건 저택 금고랑, 이 상단에서 취급하는 불법품목들 사이에 숨겨 놨다. 금고는 이해갈테지만 왜 나머지 하나는 거기냐고?”


일우의 계획을 위해 고른 장소 선정이지만, ‘연금술사 우’의 기준에서는 다른 명분이 필요하다.


“이것도 엄연히 따지면 합법은 아니잖니? 친구들 사이에 끼워둬도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리고 그 선정 사유는 정상적인 기준이 아니었지만, 정신 나간 연금술사라는 걸 고려하면 충분히 합당한 사유다.

모든 설명을 끝내진 일우는 박수를 몇 번 쳐 주위를 환기시켰다.


“자! 빠르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살 확률은 높아지지만, 그거 하나는 명심하도록!”


일우는 손가락으로 주변을 쓱 훑었다.


“전용 해독제는 1인분이고, 너희 곁에 있는 친구는 다 경쟁자야.”

“······.”

“살아 남아라 청춘들아!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니?”


서로를 향하는 시선, 특히 일우에게 섣부른 짓을 한 그 남자를 노려보는 시선은 점점 흉흉해지기 시작했고, 충분히 분위기가 달궈졌다고 생각한 일우는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아, 혹시 포기하고 싶으면 나한테 덤벼. 빠르게 끝내줄게. 아까 봤지? 하하하하!”


호기롭게 도발을 하며 멀어져 갔지만, 어느 이 하나 일우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확실한 죽음보단, 실낱같은 생존의 가능성에 기대보길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위해선, 주변의 이들 모두가 적이라는 것도.


***


그렇게 되어 저택은 시간제한이 걸린 피의 혈투장이 되었고, 최종 승리자는 없었다.

저택 지하의 비밀 창고로 통하는 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유도하는 것 마냥 시체들이 죽 깔려있었다.

그리고 제일 깊고 비밀스러운 공간 앞에는 적지 않은 수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반쯤 열린 금고를 본 일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 전형적인 위험물질 관리실패 사례로군.”

“무슨 의미입니까?”

“잘 보라고. 이것들 쓰러져 있는 상황을 봐선, 여기에 들어있는 걸 노렸겠지.”


그 말과 동시에 일우는 반쯤 열리다 만 금고를 가리켰다.


“이 독이 뭔지 알고 있을 녀석들은 해독제가 얼마 없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황급히 자기 살자고 내려왔지만······.”

“그렇다면······ 그 해독제를 노리고 서로 싸웠겠군요.”

“그래. 그리고 이런 유형의 독이 다 그렇듯, 격렬하게 싸우면 싸울수록 독이 더 빠르게 퍼지지.”


그럴싸한 설명이지만, 실제로는 일우가 설치한 함정 때문에 몰살한 것이다.

지하 공간에 내려왔던 이들이 이 금고를 열자, 독이 더욱 빠르게 퍼지는 촉매제가 뿜어져 나왔다.

12시간의 시간 제한은 12초짜리가 되었고, 밑에 몰려들었던 모든 이는 전부다 시체가 되어버렸다.

물론 일우가 준비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끼이이이---!


금고 문이 열리자 일우는 약병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다.


“아, 그래. 원래라면 여기에 해독제가 잔뜩 쌓여있었겠지. 근데 하나밖에 없었으니 서로 싸우다 여기서 다 죽었겠군.”

“코모스가 저지른 짓인겁니까?”

“모올라아. 작정하고 했으면 싹 다 치웠겠지. 이렇게 하나만 남겨뒀겠니? 한 놈이라도 살아나오면 어쩌자고······.”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약병을 열고 내용물을 살펴보다, 이내 작은 깃펜을 꺼내 내용물을 찍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손에 묻히더니 냄새를 몇 번 맡고 미간을 찌푸렸다.


“······물인데? 생수야.”

“예?”

“물만 먹으면 해독될 리는 없으니······ 아하, 그나마 남겨둔 희망으로 우롱하겠다는 작은 배려군. 음, 멋진 아이디어야.”


코모스가 한 것 마냥 떠들어대지만 이것 역시 일우의 정성 가득한 준비물이었다.

만에 하나, 정말 운이 좋게도 이 해독제를 차지했을 누군가가 있더라도 일우는 그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약병에 맹물을 채워 넣었고, 골로 가는 길 목이나 축이라는 나름의 배려였다.

일우는 세리카에게 약병을 건네주었고, 약병 안의 것이 물이라는 걸 확인한 세리카는 길드마스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코모스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걸 알아보려면 걔 집무실도 한번 봐야지.”


어느 새 길드마스터도 일우의 말을 믿어갔고, 일우는 경비와 길드 사람들, 그리고 대머리 시의원을 데리고 저택 상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무실에서도 한가득 모여있는 시체들을 보더니 고개를 과장스럽게 끄덕였다.


“으음, 그러면 대충 말이 맞는군. 그래, 그런 식이겠네.”

“무슨 의미입니까?”


병사들 중에서 누군가가 질문하자, 일우는 히죽 웃으며 두 팔을 좍 펼쳤다.


“어느 날, 상단 지부장인 콤퍼스인가 뭔가는 사고를 거하게 쳤다. 실수를 수습할 정도도 아닌, 목숨 건지면 다행인 수준의 사고.”

“사고라면······.”

“물론 나야 모르지. 아무튼 사고 뒷감당이 안 되서 튀어야 하는데, 오늘의 부하가 내일의 암살자가 되는 건 싫었던 코마스는 모두 싹 쓸어버리기로 작정을 한 거지.”

“코모스입니다.”

“알게 뭐람. 아무튼, 그 친구는 우리가 확인했던 독을 터뜨리고 몰래 튀었고, 뒤늦게 독이 돌기 시작한 걸 눈치 챈 부하들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충 그렇게 흘러간 거야.”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해독제를 찾아 나선 쪽은 이 독이 뭔지 아는 놈이고, 독이 뭔지 모르는 놈들은 남겨진 재산 들고 튀려다 골로 갔고······.”


다시 응접실로 돌아온 일우는 자신이 팔을 뽑은 남자의 시체와 바닥에 내려친 메이드장의 시체, 그리고 무수한 이들에게 칼을 맞아 죽은 자의 시체를 하나씩 가리켰다.


“그 와중에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폭발해서 서로 죽이는 과정도 있었겠지. 혹은 오해나 갈등의 심화거나.”

“······.”


일우의 손가락은 어느새 초콜릿 케이크를 가리켰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 딸기 케이크 보고 바로 일어나서 ‘꺼져! 날 모시려면 최소한 레몬이라도 따 왔어야지!’라고 외치고 가버렸거든. 이 케이크가 남아있는 걸 봐선, 아마 내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거짓말이오! 그럴 리 없소!”


일우의 정리를 듣던 대머리 시의원이 반박하듯 나서자, 일우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잘 봐. 상황이 그렇잖아. 내 추리보다 더 그럴싸한 생각 있어?”

“다, 당신이 이 모두를 학살하고 거짓말을 꾸미는 것이잖소!”

“그래서, 증거 있어? 내가 이놈들 싹 조진 독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그, 으······.”

“아니, 다른 건 몰라도 ‘12시간’을 무슨 수로 구해? 저 길드마스터 날강도놈이 던전 출입은 고사하고 일반 의뢰도 다 틀어 막았구만. 내가 구할 능력이 되어도 출입 자체를 못하는데 뭘 어떻게 구해? 뭐 밀수하니? 얘들한테서 샀겠어?”


일우가 이렇게 대놓고 사기극을 벌일 수 있는 건, 길드가 본의 아니게 성립시킨 알리바이 덕분이었다.

물론 독은 전혀 다른 경로로 입수했고, ‘던전은 물론이고 길드의 어느 의뢰도 받지 못해서 별다른 활동을 못 한 연금술사 우’의 행적은 고스란히 남들을 통해 증명되었다.

유력한 용의자의 무고함이 증명되면, 자연스럽게 남은 건 그 다음 의심 대상으로 화살이 향하는 법.

시의원으로서는 의혹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조사가 시작되면 공개적으로 엔셀 상단과의 연결점이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의 모든 것이 끝장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궁지에 몰린 사람은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다.


“바로 그거요! 이들에게서 어떻게 받아냈겠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갖고 있는지도 모를 걸?”

“확인했었으니······읍!”


시의원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일우는 더없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귀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뭐요? 뭐라고오?”

“······그, 으, 창고에 있던 재고들 중에 그 독이 있는 걸 봤으니 하는 말이오!”

“밀봉된 독극물을 무슨 수로 알아봐? 너도 연금술 했니? 성적 딸려서 진로 변경했어?”


한층 더 시의원을 향한 의혹의 시선이 커져갔고, 일우는 손가락을 튕기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자,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독극물 반응시험을 어디다 했지?”

“케이크······.”

“······야, 반푼아. 넌 진짜 반에 반도 안되는 애인 것 같다.”

“······아! 그 말대로라면 당신은······ 무고하다는 게······.”

“그치?”


궁지에 몰린 시의원이 바락바락 달라붙었지만, 세리카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우가 무고하다고 판단했따.


“그게 무슨 말이시오! 당신도 연금술사라고 같은 편을 드는 것이오?!”

“세 독 전부 액체독입니다.”

“액체독을 보통 어떻게 쓰지?”

“무기에 발라 상처를 입히거나, 아니면······.”

“음식에 탔을 수도 있지. 그러면 이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군. 중독된 녀석이 살 가망성이 없으니 멀쩡한 놈도 길동무 삼으려 했다. 그러면 상처가 대충 이해가는군 그래.”


일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독극물은 전부 에어로졸 형태로 분사되었다. 분사용으로 쓴 압축가스가 자극성이 있는 유형이었기에 독가스라고 오해받기 딱 좋지만, 실제 독성물질은 그 가스로 분무된 에어로졸 형태의 액체에 들어가 있었다.


“자, 그러면 종합해 볼까? 몇 가지 좀 고칠 점도 있고.”


자신을 향한 의혹을 벗어던진 ‘연금술사 우’는 그만의 추리, 현 상황에서는 거의 정설이 되다시피 한 사건 현장의 흐름을 이야기했다.


“그 개같은 콤프레스 놈은 애초에 뭔가를 조졌다. 그래서 다 엎을 계획이었다. 마침 미친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이놈에게 다 뒤집어씌울 생각으로 디저트에 멋진 독을 넣었다. 알아도 해독 못 하는 거로.”


다시 한 번 딸기가 올라간 초콜릿 케이크를 강조한 일우는 주위를 향해 손가락을 죽 그었다.


“동시에 부하들에게도 골고루 먹이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전부 다 중독 시키는 건 실패. 거기에 범인으로 몰아넣으려던 놈은 취향 안 맞는 디저트라서 안 먹고 돌아갔고, 수 틀린 코마스가 몰래 튄 사이, 뒤늦게 부하 놈들은······ 설명했던 전개로 돌아갔다. 끝!”


용의자였던 일우는 날조된 추리로 현장에서 의혹을 벗어버렸고, 오히려 코모스의 계략에 휘말릴 뻔한 희생자가 되었다.


“내가 말려들어갔다면 완전범죄가 되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군. 하! 정의는 승리했다. 아니, 나는 정의가 아닌데? 그럼 나만의 승리군.”

“······.”

“그리고, 추가 스테이지.”


그리고, 엔셀 상단과의 연줄이 있는 것이 의심되는 대머리 시의원은 더없이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이친구는 여기에 ‘12시간 독’이 있는 줄 왜 알고 있을까아? 응?”

“그, 그건······.”

“뭐해, 경비병 친구? 이 상황에서 용의자 가능성 누가 더 높아?”

“······.”


현장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은 어느 새 시의원이 되었다. 병사들은 이 상황에서 자신들이 무얼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이거 놔! 나는 시의원······.”

“엔셀 상단 카이펜 지부 상인 112명 살해 혐의, 지부장 코모스 실종 혐의, 그리고 왕국간 협약 제 11조 ‘위해성 독극물 취급에 관한 조항’ 위반 혐의.”

“오해다! 나는 아무 것도······.”

“카이펜 경비대 직속 권한으로, 시 규약에 따라 당신의 권한이 일시 정지되었음을 알립니다.”

“놔! 이건 음모다! 저 놈이······!”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독 알아본 건 어쩔 건데? 응?”

“으으······!”


일우는 이죽대며 시의원의 부패를 강조했고, 시의원은 그대로 경비들의 손에 끌려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일우는 자신에게 다가와 사과의 말을 전하려던 길드마스터와 세리카에게서 시선을 홱 돌리고, 구면인 경비병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봐, 형씨들. 나 들여보냈던 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어, 음······ 뭐 그건 넘어가시죠. 그것도 나름 시 규약에 걸리는 일인지라······.”

“크흠,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요.”

“지금 일이랑 비교하면 경범죄 수준이잖아.”

“뭐 그렇긴 합니다요. 저 대머리놈 증거만 없었지 이 쌍놈들한테 돈 받아쳐먹는다는 건 다 아는 건데 이렇게 까발려지면 뭐······.”

“저 새끼 머리마냥 다 털리는 거지.”


저 대머리 시의원은 시의 경비병들에게도 꽤나 골칫거리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비병이 일우에게 도시의 문을 열어준 덕에, 어떻게 해결의 실마리를 볼 수 있었다.

일우는 그 점을 강조하며 등 너머에 서 있을 길드마스터와 세리카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이게 다아, 좋은 첫인상이 만들어낸 여파지.”

“으윽.”


작가의말

주인공이 한 일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알겠지? 이제부터 서로 죽여라.’

하지만 아직 되갚아줘야 할 놈들이 하나 둘... 많이 남았네요. 그건 다음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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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4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7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60 115 24쪽
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6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9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1 91 18쪽
24 ?. 아직 계산 안 끝났어요 +8 21.05.31 4,612 121 26쪽
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8 114 12쪽
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5 111 12쪽
21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9 118 11쪽
»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1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1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8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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