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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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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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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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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6,637

작성
21.06.1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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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 모자람 없는 고민 [4]

DUMMY

페니카는 많은 부가 잠든 땅이지만 생각만큼 소란스럽지도 않고, 분쟁이 많지도 않고, 혼란스럽지도 않다.


“그게 다아, 이런저런 사정이 엮여서 이렇게 됐단 말이지.”

“뭔 소립니까요?”

“여기서 광물이나 마력소재 캐내는 게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톨라에서 사람을 보내. 그걸 아니 큰 도적단은 얼씬도 못 해. 몇 번 탈탈 털리니 학습이 됐거든.”


소규모 도적단의 대장은 부하에게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듯 떠벌댔다.


“덕분에 우리 같이 작게 벌어먹고 사는 것들이 한 입 할 거리가 넘치지. 우린 본격적으로 때려잡는 수준까진 못 되거든.”

“그래서 형님이 적당히 먹고 빠지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는 거구나.”

“그으래. 톨라에서 때려잡을 수준까지 해먹으면 안 돼. 그럼 우린 며칠도 안 지나서 마법으로 화끈하게 구워질 테니까.”


톨라에서 본격적인 토벌대를 만들지 않을 규모, 적당한 도적질을 해서 큰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이 도적단의 대장은 이 적당한 수준을 잘 조절해 페니카의 막대한 부에 기생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적단을 퇴치하는 일은 국가 규모의 토벌대만 있는 건 아니었고, 페니카에 모험가 길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근데 우리가 여기 눌러앉은 지 석 달은 되는데 모험가 놈들은 얼씬도 안하네요.”

“그게 왜인줄 아니? 여기 온 대머리새끼들은 의욕이라는 게 없어요.”


도적단의 대장은 자신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빈정댔다.


“페니카 모험가 놈들은 전부 대머리 아니면 반대머리야. 죄다 여기에 돈 벌려고 온 게 아니라 돈을 쓰려고 왔거든.”

“그게 뭔 뜻입니까?”

“발모제. 그놈의 전설의 발모제가 여기 있다는 소문만 듣고 빠지는 머리털 붙잡고 왔는데······ 그딴 게 있을 리 없잖니.”

“어우 저런.”

“그러니 왕창 실망하고 실의에 빠져서 자기 대가리 광내는 일이나 하고 있다, 그거라고.”

“거기다 성실하게 일하는 놈들은 진짜로 위험한 일 처리한다고 바빠서 우리 같은 좀도둑 일은 신경도 안 쓴단다.”


발모제만 믿고 페니카에 온 모험가들의 최후는 대머리 잉여고, 멀쩡하게 활동하는 이들은 대부분 생산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몬스터 습격이나 중요한 운송 의뢰를 받느라 여유가 없다.

소규모의, 그것도 적당하게 먹고 빠지는 이런 소소한 도적단을 굳이 퇴치하겠다고 나서는 성실한 모험가는 거의 없고, 안 성실한 모험가들은 수익성 안 나오는 좀도둑 퇴치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알겠냐? 우리들 정도로 일을 벌이면 페니카에서 아무도 신경 안 써.”

“······덕분에, 다른 녀석들이 한 탕 거하게 할 때 우린 돈 아껴가면서 성실하게 살지만 말이지.”

“시끄러워. 평생 이 지역에 머물다 니들도 대머리 되고싶어?”

“아뇨오오.”

“그러니까 적당히 모일 때까지만 이 짓거리 하다 손 터는 거야. 알겠어?”


아무리 소소한 규모라도 도적질은 도적질이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보단 훨씬 많이 번다.

이 도적단의 대장은 그런 소소한 도적질로 열심히 벌어들인 다음 적당한 시기에 빠질 계획이었다. 머리털 뽑히기 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제까지나 통할 계획이었다.


“여기 있다.”

“으힉?”

“뭐, 뭐야 이 대머리들은!”


수풀 속에 숨어있던 도적들의 등 뒤로 살벌한 인상의 대머리 무리들이 불쑥 튀어나오자, 도적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의 대장이 이야기했던 바로 그 ‘발모제가 없어 의욕이 사라진 대머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제기랄! 뭐야!”

“너희를 족치면 발모제를 얻을 수 있어······.”

“무, 무무무······ 무슨 개소리야?! 우리랑 발모제랑 무슨 상관이야?!”

“야! 튀어!”


당연하게도, 단순한 도적과 모험가는 격이 다른 이들이다. 아무리 수준 낮은 모험가라도 그들은 최소한 몬스터를 때려잡을 능력이 되는 자들이고, 도적들은 그 정도의 힘이 없다.

상황의 여의치 않다는 걸 눈치 챈 도적단의 대장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도적들은 뿔뿔이 도망치려 했다.

허나 모험가들은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길드마스터로부터 철저하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들었다.


‘알았냐? 절대 죽이면 안 돼. 도망치도록 내버려둬선 더 안돼. 아니, 도망치는건 괜찮아. 그 자식들의 은신처가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도 괜찮아. 무조건 알아내.’


모험가들이 원하는 건 이 도적단들이 숨어 지냈을 아지트의 정보다.

그 중 한 군데에 자신들을 구원해줄 단서가 있다.


“발모제 복권 잡아라아아아앗!”

“뭔 소리들이야! 복권? 발모제!”


누군가의 외침대로다.

모험가들의 눈에 이들은 도적단이 아니었다.

잡아 족치면 희박한 확률로 당첨이 되는, 걸어 다니는 발모제 복권이었다.


“이런 미친! 형님! 저 자식들 눈깔이 뒤집혀졌수다!”

“나도 알아! 아까 소리 들었지? 뭐? 복권? 우리가? 발모제에?”

“미친 소리에 신경 쓰지 말고 다리나 움직여요!”

“그러고 있다고오!”

“잡아아아아! 저새끼들 다리를 쪼개서라도 붙잡아! 도망치게 내버려두지 마!”

“목은 치지 마! 목을 치면 다 쓸모 없어! 다리나 팔은 돼!”


살기등등한 대머리들의 추격에서 황급히 다리를 놀리는 도적단 대장과 그 부하는 뒤에서 들리는 모험가들의 외침에 질겁했다.


“제기랄! 이 미친 대머리새끼들!”


***


페니카 어딘가에 전설의 탈모 연구가, 로닌의 비밀 연구소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지역에 숨어 사는 누군가가 그곳을 은신처로 삼고 있다.

거기에서 출발한 소문은 어느새 ‘숨어 사는 놈들의 아지트 중 한 곳에 발모제가 숨어있다!’가 되었고, 페니카에 숨어 살던 자들은 어느새 대머리 추격자들의 눈에 복권이 되었다.

당첨되면 전설의 발모제를 받을 수 있는 대머리 탈출 복권.


“대체 무슨 일을 하신 겁니까?”


용사 수색에 진전이 없는 와중에 페니카 전역에 밀어닥친 ‘복권 광풍’으로 한층 더 수색이 어려워진 랑키는 일우에게 찾아와 대놓고 이 소란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당연하게도, ‘연금술사 우’는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니었기에 딱 잘라 말했다.


“인간의 욕구가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된 결과지. 흔하잖아?”

“현상 수배금으로 발모제를 내거신 겁니까?”

“있지도 않은 걸 무슨 수로 내걸어? 그리고 난 복권 안 좋아해. 지극히 낮은 확률을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종이쪼가리 사기니까.”


그 말을 하며 일우는 병 안에 들은 작은 액체를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랑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소란이 벌어지면 좋을 거 하나 없습니다. 용사가 이 소란에서 튀어나오지도 않을 거고, 혹시라도 저 모험가들이 오해해서 붙잡으려고 했다가······.”

“용사라는 게 뭐라고 생각해?”


뜬금없는 질문에 랑키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 뒤, 다시입을 움직였다.


“그야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

“힘만으로 용사는 결코 설명되지가 않아. 넌 내가 용사로 보이니? 나도 꽤 센데.”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나도 아니라고 생각해. 보통 책이나 이야기에 나오는 용사는 뭔가 초월적인 존재에게서 엄청난 능력을 받고, 그 능력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소양도 갖추고 있지.”


그 말을 하면서도 일우는 계속 병 속의 액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거야. 힘이라는 건 한가지 속성이지만, 그걸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만 진정한 용사다. 마치 이 병 속의 내용물과 같지.”

“그러고 보니 그 병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시는군요.”

“자아, 모든 효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약이라 불리는 것도 적당히 써야 약이지, 과하게 쓰면 오히려 내장을 해쳐. 풀을 죽이는 독성물질도 약하게 희석해서 쓰면 제초제라는 농약이 되지.”


그 말을 한 일우는 탁자에 약병을 내려놓으며 랑키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마찬가지. 성분과 역할은 정해져 있지만,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지.”

“······제가 찾는 용사도 그렇다는 뜻입니까?”

“너한테는 용사지만, 내게는 발모제를 위한 대조군이라 볼 수 있단다.”


뜻 모를 말에 랑키가 애매한 표정을 짓는 사이, 길드 건물의 문이 활짝 열리며 대머리들이 누군가를 질질 끌고왔다.


“어르신! 한 놈 더 잡았습니다!”

“좋---았어. 새로운 후보자가 등장했군!”


그 말과 함께 벌떡 일어난 일우는 랑키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이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나?”

“어떤 것······.”

“용사가 인과에서 벗어난 존재라고 했던 것.”

“······.”

“그 때 언급한 내 이론에 따르면, 용사라는 건 대머리라는 인과에서 벗어난 존재! 언제나 찰랑대고 윤기있는 머릿결을 가지고 튼실한 모근을 가지고 있지. 반대로 말하면······.”


일우는 그 말을 하며 약병을 집어들었다.


“용사라는 존재는 대머리가 되어선 안 돼.”

“······.”

“아, 너한테 용사 자질이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론의 한 가지 가설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네가 용사가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지금은 그냥 일개 대머리지.”


누군가를 끌고 온 모험가에게 악담과 같은 말을 퍼부은 일우는 끌려온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래, 자네는 어디에 숨었나?”

“모, 몰라······ 댁은 대체 누구야?”

“이것저것 실험하는 사람. 그리고 널 시험할 사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으윽!”


일우는 붙잡힌 남자의 머리에 병 속의 용액을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잠시 후, 일우는 용액을 떨어뜨린 부위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으윽! 이게 뭐 하는 짓이······야······아.”

“애석하게도, 이녀석은 꽝이군.”

“그게······ 대체 뭐야? 머리카락?”

“용사는 대머리가 될 수 없다. 이 용액은 떨어뜨린 부위의 털을 날려버린다. 이 남자는 용액의 효과를 저항할 수 없었으니······.”


일우의 말에 남자는 황급히 머리를 매만졌고, 머리에 구멍이 뻥 뚫리듯 머리카락이 뽑혀나간 걸 확인하고 비명을 질렀다.


“안돼! 내 머리카락!”

“이놈도 용사는 아닌가보다. 그리고 그 연구실에 들어선 것 같지도 않고.”

“쳇, 꽝이잖아!”


일우의 말에 대머리 모험가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남자를 질질 끌고갔다.

대머리에게 붙잡힌 채 자신의 뽑혀나간 머리를 매만지던 남자는 악을 쓰듯 말했다.


“이 자식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네 운명이 용사가 아니라는 걸 탓해야지. 알게 뭐람. 어차피 길드 감옥에 잡혀있다 죄목 다 까발려져서 어디론가 잡혀갈 놈인데.”

“······.”

“내 머리카라아아아악!”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무계한 상황은 랑키의 머리로 이해하기엔 약간 어려운 모양이다.

혹은, 별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일우는 랑키에게 히죽 웃었다.


“여기 안에 든 게 뭐냐고? 내 식대로 말하면 ‘발모제 실험의 수많은 실패사례 중 하나’, 혹은 ‘발모 촉진제로 개발되었으나 역반응 결과만 나와버린 못 쓸 물건’정도가 되겠군.”

“세상에······.”

“하지만, 널 위해 붙일 그럴싸한 이름이 있지.”


일우는 그 말을 하며 용액이 담긴 유리병을 흔들었다.


“용사찾기 물약.”

“······.”

“뿌리면 그 즉시 용사인지 아닌지 감별할 수 있어! 용사라면 머리카락이 안 뽑힐 테니까! 쓸래?”

“사, 사양하겠습니다······.”

“싫음 말고.”


랑키는 ‘연금술사 우’에 대한 소문은 생각보다 과소평가되었다 생각했다.

그녀가 직접 본 상대는 알려진 것보다 더한 인간이었다.


작가의말

전설속 용사는 대머리가 아니다 -> 그럼 머리카락이 뽑히면 용사가 아니겠네? -> 기적의 용사 감별 용액 완성


당연히 개소리지만, 이 연금술사는 대외적으로 맛탱이가 간 양반이라고 알려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동지가 늘어나니 마다할 이유가 없죠. 네가 우리의 저주를 풀 열쇠가 아니라면, 우리와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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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0. 모난 놈이 맞는다 [1] +4 21.06.16 2,587 90 15쪽
45 9. 모자람 없는 고민 [7] +5 21.06.15 2,588 96 19쪽
44 9. 모자람 없는 고민 [6] +2 21.06.14 2,606 83 13쪽
43 9. 모자람 없는 고민 [5] +3 21.06.13 2,637 90 17쪽
» 9. 모자람 없는 고민 [4] +7 21.06.12 2,723 99 12쪽
41 9. 모자람 없는 고민 [3] +8 21.06.11 2,873 95 18쪽
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6 86 15쪽
39 9. 모자람 없는 고민 [1] +7 21.06.09 2,993 95 14쪽
38 ?. 건드리지 마시오 +7 21.06.08 3,022 83 13쪽
37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5] +7 21.06.07 3,056 99 17쪽
36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4] +7 21.06.06 3,052 91 18쪽
35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3] +6 21.06.05 3,052 82 21쪽
34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2] +7 21.06.05 3,092 89 19쪽
33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1] +2 21.06.04 3,267 74 18쪽
32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4] +10 21.06.04 3,465 96 19쪽
31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3] +9 21.06.03 3,497 92 28쪽
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3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6 101 15쪽
28 6. 문 열어 [4] +10 21.06.02 3,959 115 24쪽
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5 113 24쪽
26 6. 문 열어 [2] +6 21.06.01 4,008 109 17쪽
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0 91 18쪽
24 ?. 아직 계산 안 끝났어요 +8 21.05.31 4,611 121 26쪽
23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2] +4 21.05.30 4,567 114 12쪽
22 5. 여기 연금술사님 왔다 감 [1] +4 21.05.30 4,554 1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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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0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0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7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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