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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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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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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작성
21.06.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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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5]

DUMMY

이델린 지방을 괴롭히던 근심거리가 해결되고 평화가 찾아왔고, 올베린의 국왕을 만족시킬 보고서가 수도에 도달하면 곧 모든 것은 끝난다.

국왕 폐하가 만족하여 기사들을 소환할지, 공로를 세운 공주기사 아로엔에게 영지를 내어줄 지, 혹은 정신 나간 연금술사에게 모든 일을 맡긴 잘못을 따져 당분간 거기 머무르라 할 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여기서 국왕의 명령이 도달할 때까지 고기를 즐길 뿐이다.


“마싯써어어어어······.”

“최고야······.”

“크으으으으!”

“이게 사는 거지!”


모든 억압에서 해방된 공주와 기사들은 한창 고기와 술을 즐겼다.

잘 쉬어야 잘 싸운다는 명분 하에 그들은 한껏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냥 수도로 복귀하지 말까?”

“혹시 모를 치안 공백을 우려하여 당분간 이 곳에서 머문다고 자알 설명을 드리면······남을 수 있겠지?”


기사 중에는 너무 이 분위기를 즐겨서 푹 빠져 살고픈 이도 있는 모양이다.

이전의 아로엔이라면 그 말을 듣고 목을 쳐야 하는 추태라며 질타했겠지만, 지금은 그 말을 넘겼다.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억지로 하는 말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머무르고프면 기사의 책무를 내려놓으면 된다만.”

“크흠, 농담입니다.”

“아무리 술과 고기가 좋아도 그건 좀······.”


대신 부드러운 언행으로 그들의 양심을 푹푹 찌르는 노선으로 변경되었고, 오히려 이쪽이 더 강력한 위력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웰즈는 술잔을 들며 말했다.


“더 이상 공주님의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해 괜한 사람 짓밟는 일은 없어서 참 다행이군요.”

“그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지. 다들 내가 괜한 일을 한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하하, 깨달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허나 그대에 대한 처우는 변함이 없으니, 언행 조심하도록.”


아로엔은 잘 구워진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자리에 앉으며 방긋 웃었고, 웃으면서 밟아주겠다는 말에 웰즈는 고개를 돌렸다.


“······방긋 웃으시는 공주님에게 밟히는 취미는 없습니다.”

“마히허!”

“넌 고기 질렸다면서 언제 또 말이 바뀌었냐?”

“여기허 이르 아하이하 고히 마시 다히 살아나허!”

“씹고 말해라. 아무리 그래도 공주님 앞인데.”


노역에서 해방된 밀리아렌이 되살아난 고기의 맛을 한없이 즐기는 모습에 웰즈가 투덜거렸지만, 적어도 이 장소에선 바람직한 태도다.


“어느 놈이 고기를 즐기는 놈을 타박하냐.”

“윽.”


두 사람 사이에서 고개를 불쑥 내며 ‘연금술사 우’가 등장했고, 곧바로 웰즈를 자리에서 끌어냈다.


“으억!”

“남의 행복을 보고 툴툴대는 놈은 서서 먹어.”

“쌤헝이하.”


그리고 밀리아렌도 자리에서 끌려나왔다.


“나는 왜요오오!”

“난 사람한테만 고기를 제공하지 짐승같이 처먹는 놈한텐 고기 안 줘.”

“너무해!”

“다시 노동교화형에 처하고 싶냐?”

“······칫.”

“그리고, 나는 이 빈 자리를 이 쪽이랑 이야기하는데 쓸 거야. 훠이. 물러가.”


억지로 일으켜 세워진 두 사람은 구시렁대며 다른 빈 자리를 찾아 나섰고, 일우는 아로엔을 향해 팔짱을 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거 봐라. 내가 뭐랬어. 고기는 행복이라니까.”

“아······ 여긴 어쩐 일인가?”

“까먹었니? 여긴 내 거야. 내. 거.”


저택의 소유권을 강조한 일우는 주변을 향히 손을 좍 펼쳐보였다.


“이거야말로 내가 원한 것이지. 고기를 통한 행복, 행복이 차오르면 자신의 신분 따윈 잊어버리고 그저 고기 먹는 사람만이 남아있지. 그렇지 않나?”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보자면 나보다 훨씬 낫다고 볼 수 있겠군.”

“당연하지. 나는 천재니까.”

“헌데 어쩐 일로 나와 독대를 하려는 것인가?”


그 말을 하며 아로엔은 자신의 접시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를 향해 나이프와 포크를 가져갔다. 접시를 내어 준 사람의 말에 따르면, 오늘 제공되는 메뉴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면서도 각별한 고기 요리라고 했다.

막 고기가 썰어지는 순간, 일우의 입이 열렸다.


“꿈 속에서 알로메를 봤어.”

“······지인인가?”

“아니, 어느 농가에서 애지중지 키웠던 우.”

“······.”


정말 뜬금없는 대상이 언급되었다.

심지어 아로엔은 그게 어느 집에서 키운 가축인지조차 모른다.

물론 일우도 모르지만, 그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축의 과거사를 즉석에서 만들어냈다.


“어린 소녀와의 추억을 품고 들판을 뛰어 다니던 녀석이었고, 결국 소녀와 헤어져 도축되어 이곳에 고기가 되어 도착했지.”


마침 아로엔의 접시에 담긴 건 우의 사촌 뻘 되시는 소고기. 그것도 송아지 스테이크였다.


“그, 그런가······ 꽤 구체적인 이력이로군.”


저도 모르게 송아지의 어린 눈망울을 떠올린 아로엔은 입맛이 싹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선을 내려도 고기, 돌려도 고기, 하늘을 쳐다보아도 사방이 향긋한 고기 굽는 냄새로 들어찬 장소 한가운데였기에 식욕은 다시 치솟았다.

그리고 절제와 자제심을 잊은 본능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우는 자기 할 말만 계속했고, 어느새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그 녀석이 말했어. 고맙다고. 살아서 소녀와 행복했고 죽어서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해줬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위로해주진 않았었다고.”


식욕에 이끌려 기어코 스테이크를 썰어낸 아로엔이 포크로 막 고기 한 점을 찍으려는 순간, 일우는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내가 세운 탑이······ 틀리지 않았던 거야.”

“자······잘 된 게로군.”

“그래! 이걸로 나의 여정은 완성되었어! 행복!”


‘연금술사 우’는 아예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 말을 했고, 아로엔은 결국 고기를 씹어 삼키는 걸 포기하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고기의 행복! 행복한 고기! 먹는 사람도! 먹히는 쪽도! 모두가 행복한 결말! 이것이 행복의 순환!”

“······.”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익숙해질 만 하면 또다시 참신한 기행을 선보이고, 거기에 적응하려는 순간 새로운 것을 꺼내는 사람.

아로엔은 저도 모르게 그런 ‘연금술사 우’의 모습에 질려버릴 것 같다가도 새로운 흥미가 생겨났다.

새로운 해가 뜰 때마다 새로운 뭔가를 불러오는, 마치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고로 내가 더 이상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뭐?”


허나 세상 앞에 영원한 법은 없는 법.

‘연금술사 우’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모든 것을 마무리 짓겠다고 선언했다.


“떠날 거야. 물론 저택은 계속 고기를 굽겠지. 행복은 끊이지 않아야 하니까.”

“그, 그러면 어찌하여 날 찾아온 겐가?”

“지금 고기 굽는 저택, 원래 영주네 저택이라며?”


아로엔이 고개를 끄덕이자, 일우는 턱을 괴었다.


“새 영주라는 놈이 와서 훼방을 놓으면 내가 직접 궁둥짝을 걷어차주면 되지만, 내가 여기 다시 돌아올지는 나도 모르거든.”

“그러면······.”

“만일 여기 영주가 새로 오면 저택 가져가라고 해. 대신, 몇 가지 지킬 게 있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던 일우는 손가락을 하나씩 들면서 조건을 말했다.


“첫째, 저택을 인수하는 그 순간부터 고기 굽는 역할은 그쪽이 하는 거야. 둘째, 열심히 일하는 애들은 이제 고기구이 전문가야. 내치지 마. 그리고 셋째, 지하실 새로 파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튼 지하는 절대 건드리지 마.”


아무래도 아로엔 공주를 공증인으로 삼을 생각인 모양이었고, 그녀 역시 그 점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내건 조건 중 앞의 두개는 그간의 행적과 일치하기에 별 문제 없었지만, 마지막 것은 엉뚱한 것이었다.


“저택에······ 뭔가 숨겨놓은 겐가?”

“무너져.”

“무너······진다고?”

“구조적으로 그렇게 튼실한 구조물도 아니고, 꽤 지은 지 오래됐어. 보강은 해뒀지만 그 밑에 뭘 파서 공간 만들 생각하지 마. 폭삭 무너진다고.”

“······아, 아아······ 그런 의미였는가?”

“그래.”


지극히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이유였지만, 기행만을 선보인 남자가 이런 말을 하니 오히려 정신이 멍해졌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아로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폐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혹은 새로운 영주가 임명되기 전까지 일시적인 관리 책임은 내게 있지. 후임으로 올 영주가 누구더라도 그 말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보장하지.”

“아무튼 나는 간다. 이제 이곳에서 내가 이룰 것은 없으니까.”


일우는 거기까지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로엔의 접시를 가리켰다.


“참고로 그 송아지 이름은 페피야.”

“······.”

“페피가 헛되이 희생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맛있게 먹어주라고.”


마지막까지 사람 입맛을 확 떨어뜨리는 발언을 하고 훌쩍 떠나는 일우의 뒷모습을 본 아로엔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바라보다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잘 먹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송아지 이름도 일우가 그냥 던진 말이었다. 허나 아로엔은 고기가 되기 위해 희생되었을 송아지를 향해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그런 아로엔을 뒤로하고, 고기를 즐기는 사람들과 고기를 굽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 일우는 홀로 거리를 걸어갔다.


[사고회로 업데이트 패키지 구성 중. 정보 요청.]

“이번엔 뭐가 궁금해?”

[지역 이탈 고지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

“앞으로 내가 어디 갈 거라고 말은 안 해도, 일단 공식적으로 떠났다는 건 알려져야 해. 괜히 이상한 놈이 들쑤시고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


‘연금술사 우’는 이 곳에서 단기간에 엄청나게 많은 걸 해왔고, 이 행적은 길이길이 이야기가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이는 이런저런 말을 낳기 마련이고, 개중에는 확실하게 해명되지 않은 자취를 캐내려 드는 이도 있다. 어쩌면 이곳 어딘가에 은둔했다는 풍문이 돌면서 여기저기 들쑤시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도록 떠났다는 기록을 새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 짓거리를 하면 소문이 돌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 미친놈이 이번엔 저기로 갔군’이 되는 거야.”

[확인. 정보를 갱신합니다.]

“아무튼 간에······ 이건 뭐 더 파낼 구석도 없으니 진짜 여기서 할 일은 이제 없구만. 던전이 남았지만 그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찬 가운데 크리스탈의 미약한 빛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공간.

몬델은 옴짝달싹 하지 못하도록 꽁꽁 묶여있었다.


“으읍---!”

“한 바퀴 돌아보니까, 도시는 행복하고 평화롭고, 아무튼 참 보기 좋더라구. 너도 직접 봤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지.”

“읍--- 으으읍!”

“아, 아닌가? 너는 여기가 불싸질러지길 원했으니까. 참 배알 뒤틀리는 모습이겠다. 그치?”


희미한 크리스탈의 빛은 몬델의 눈에 보이는 일우의 얼굴에 짙은 음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음영으로 한껏 부각된 일우의 미소는, 왠지 모르게 섬뜩하면서도 음울한 느낌이었다.


“근데 아직 안 끝났어. 이제부터 너는 내가 그동안 고기를 어떻게 구웠는지, 얼마나 잘 구울 수 있는지 알게 될 거야.”


그 말과 동시에 이 어두컴컴한 공간에 열기가 느껴졌다.


“네 몸으로.”

“으읍---!”

“저온조리라고 들어봤니? 원래 단백질은 조금만 온도가 높아도 익어. 다만 익는데 엄청난 시간이 들어가지.”


몬델은 주변의 온도가 올라간 것을 느끼며 버둥댔지만, 그저 쓸모없는 몸짓에 불과했다.


“일주일 동안은 별 문제 없을 거야. 하지만 2주일부터는 뭔가 이상할 거야. 왜 팔다리가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지?”

“흐으으븝---- 으읍!”

“3주일부터는 팔다리가 붙어있으리라고 장담을 못하겠어. 그 정도 되면 다 익어서 떨어질 것 같거든. 아, 그래도 걱정 마. 몸통은 아직 돌아갈 테니까.”


자신을 산 채로 익혀버리겠다는 말에 침착함을 유지할 사람은 얼마 없겠지만, 몬델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모양이다.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소리를 내지르지만, 일우는 계속해서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지만 4주에 들어서면 얼굴에도 문제가 생길거야. 이것저것 붙여놓고 냉각을 해놔도 그 기간까진 못 버틸 테니까. 슬슬 눈이 안 보이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뇌가 익기 시작할 테니까.”

“으으브븝! 으브븝---!”

“그래, 넌 아주 천천히 익는 거야.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모두가 행복해하는 도시 구석에서, 너만 끔찍스러운 불행 속에서 죽어가는 거지. 아주 천천히.”

“으으으으읍!”

“후회하니? 아니면 뭘 어떻게 하고 싶니? 근데 너한텐 선택권이 없어. 이제 구워지는 길밖에 없거든.”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몬델이 갇힌 공간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크리스탈을 집어들었다.

눈앞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빛을 일우가 앗아가자, 몬델은 그야말로 미친듯이 발버둥쳤다.


“길고 지루하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서글프고······ 외로운 죽음 잘 맞이하라구.”

“흐읍----!”

“그리고 넌 어차피 죽을 놈이니, 이런 빛도 아까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일우의 손아귀로 크리스탈의 미약한 빛이 꺼지듯 가려졌고, 사방은 캄캄한 어둠에 휩싸였다.

몬델을 가둬둔 밀폐공간에서 나온 일우는 문을 철저하게 봉쇄한 뒤, 겉에 꼼꼼하게 벽면으로 위장하기 위한 건축자재를 발랐다.

그러면서 스카웃에게 계획해둔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생명유지기능은 돌아가지?”

[모니터링 상의 상태, 정상 작동 중.]

“좋아. 천천히 아주 긴 기간 동안 고통받으라구. 걔 때문에 벌린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니 좀 오랫동안 되갚아줘야겠어.”


사실 몬델에게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다. 일우는 몬델을 익혀버릴 생각이 없었고, 그냥 저 상태로 한없이 머물도록 영양공급장치를 두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난방장치를 설치해놨다.

그 동안 차디찬 공간에 난방장치가 켜졌고, 일우가 남긴 저온조리라는 말 덕분에 몬델은 자신이 꼼짝없이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구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우는 이것만 준비해두지 않았다. 계획은 항상 생각대로 돌아가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천재지변이 걜 구원할지도 모르니, 독극물 세팅 잊지 말고.”

[즉사용 독극물 투입 기능. 전자식 감응장치, 청산가리 즉사량 확보 완료. 기계식 조건부 투입장치, VX. 구강 투여 준비.]

“운이 정말 좋으면,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서 저 장치가 돌아갈 거야. 운이 없으면, 한 몇 개월 천천히 고통 받으면서 죽어가겠지.”


몬델에게 앞으로 남은 건 기나긴 고통이고, 하늘이 돕는 최상의 결과는 독극물로 하루라도 빨리 이 고통을 끊는 것 뿐이다.


“최면 같은 건 필요 없어. 상황과 분위기, 연출만으로도 사람의 정신은 충분히 속아 넘어가. 이딴 거에 의존을 할 이유가 없지.”


일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몬델에게서 뺏은 아티팩트를 꺼내들었다.

이 아티팩트가 바로 몬델이 쓰던 최면의 비밀이었다.

던전에서 모종의 경로로 입수한 이 아티팩트의 힘으로 그동안 설치고 다녔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최면앱 걸린 스마트폰이 아니었어.”

[현 상황에서 최면 애플리케이션의 등장 시 불이익 발생.]

“왜?”

[대상 포착 및 확보 시, 해당 분야에 대한 분석 작업 개시로 인한 연산능력 낭비 예상 가능.]


쓸데없는 데 귀한 자원을 투입할 가능성이 문제였던 것이다.


“뭐, 돌발변수는 적을수록 좋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법이니까.”


일우는 그렇게 대꾸하며 최면 아티팩트를 두 손으로 붙잡고 쪼개버렸다.


-빠각---!


동강난 아티팩트는 일우의 인벤토리에서 폐품으로 분류되었고, 때가 되면 다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재활용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복수에 큰 도움이 될 물건이지만, 일우는 결코 쓸 생각이 없었다.


“갚아주려면 자기가 자신만만한 근원을 박살내줘야 하는 거야. 강한 무기, 힘, 권력, 사회적 명망, 민심 같은 원천을 와르르 무너뜨려야, 진짜 복수지.”


상대방이 철저하게 맹신하는 것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을 무너뜨리고 좌절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인 법이다.

홀가분하게 떠나온 도시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도달한 일우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을 보았다.

지금도 고기들은 구워지고 있을 것이고, 그 고기들을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즐겁구만. 결정적인 단서 얻은 나도, 한동안 고기 걱정 안 해도 될 이 도시 사람들도, 임무 때문에 좌천됐던 그 공주님이랑 떨거지들도 모두 즐거운 결말이야.”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었다.


“한 놈 빼고.”


일우는 그 말을 하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허나 일우가 웃는 건 결코 아니었다.


“이제 곁다리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진도를 빼러 가보자고.”

[확인. 현재 임무 목표, 용사 수색 및 접선. 예정 목표, 용사 관련 정보 수집 및 분석. 최종 목표, 용사 무력화.]

“일단 한 놈은 잡아야겠어.”


본격적인 복수를 위해, 일우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작가의말

주인공의 철학은 최면 따위는 장식품이라는 겁니다.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게 끝난 것보단, 정신 말짱한데 이상하게 말려들어가서 와장창 나서 ‘헐 왜 망했지? 대체 왜망했지?’라고 상대방이 고통받는 쪽을 선호하죠.


아, 그리고 지난번에 누가 댓글로 청산가리 쓰냐고 물어보셨는데... 보시다시피 다 씁니다. 혹시라도 독에 내성이 있을지도 모르니 두개 동시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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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3 9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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