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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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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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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6.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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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2
추천
89
글자
19쪽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2]

DUMMY

사회자 역할을 맡은 접수원 아가씨 양쪽 옆에는 어느 새 두 명의 기사가 서 있었다.


[자! 본격적인 시합에 들어가기에 앞서, 해설에 도움이 되실 기사 분들을 모셔왔습니다!]

[어, 예. 안녕하십니까. 기사 웰즈라고 합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올베린을 수호하기······ 예? 끊으라구요? 거 참.]

[폴리덴카 왕국 기사, 멘델입니다.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고기 냄새 맡고 왔다가 여기 서 있군요. 하하하하.]


메인이벤트를 즐기기 위해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나 대인전차전은 올베린에서만 볼 수 있고, 이 장소에는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도 많았다.

그 때문에 올베린의 기사와, 우연찮게 서 있던 다른 나라의 기사를 데려온 것이다.


[자, 멘델 님. 저희 올베린의 대인 전차 결투는 처음 보시죠?]

[아, 예. 처음 봅니다. 대인전차는 올베린에서 쓰니까요. 다른 국가들은 전부 기마병이고, 마상시합도 다릅니다.]


관록 있는 기사로 보이는 멘델은 술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설명에 들어갔다.


[제 조국인 폴리덴카를 비롯해서 다른 국가에서 마상 시합은 보통 양 끝에서 최대 속도로 돌격해서 합을 주고받는 겁니다. 한 번의 창 끝에서 모든 것이 결정 나지요.]

[아하, 그렇군요. 웰즈 님? 우리 올베린은 어떻나요?]

[올베린의 전차 결투도 마상시합과 비슷합니다. 다만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수차례 랜스를 주고받습니다.]

[어째서죠?]

[대인전차의 힘은 증폭장치를 거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기사 자신의 힘입니다. 상대적으로 다리 힘이 좋고 체력 좋은 기사는 단번에 가속해서 힘을 축적하기 쉽죠. 반대로 기술이 뛰어난 기사는 랜스를 피하며 자신의 힘을 더 많이 축적한 뒤, 다음 돌진 때 역습을 가하는 겁니다.]


해설이 이어지는 사이, 대결에 나선 두 사람은 천천히 시합장의 외곽의 군중들을 따라 죽 돌기 시작했다.


[지금도 서로 무기를 겨누지 않고 결투장을 죽 도는 것도, 맞부딪치기 위한 힘을 쌓는 겁니다. 실전에서 외곽으로 돌아 힘을 축적해서 돌진하는 것 대신입니다.]

[마상시합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만, 단순히 참가자들이 군중을 향해 자신을 과시하는 의식 정도입니다.]

[오호라, 그러면 공주님께서 굳이 저런 세발자전거를 탄 건 동력증폭장치의 보조 없이 순수하게 기술로 받아치겠단 의미일까요?]

[어······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를 못 타는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릴 세발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는 아로엔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우스꽝스럽기까지 보였다.

이 모습을 보던 접수원은 곧바로 다른 기사를 돌아보았다.


[멘델 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흐음, 대인전차와 기마병의 싸움이 동등한 건 동력증폭장치가 기사의 힘을 말의 힘에 가깝게 끌어올리기에 가능합니다. 헌데 그 장치가 없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한 사람과 말 한마리가 부딪치는 겁니다.]


다시 한번 목을 축인 기사 멘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타국의 기사로서 무례한 언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공주님께선 다소······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 있으시기에 고른 선택 아닐까요?]

[글쎄요, 제 부하가 기마병과의 싸움에서 보병으로 싸우겠다고 하면 오만하기 짝이 없다고 질타했을 겁니다. 그리고 장치 없이 저러는 건,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멘델은 술을 죽 들이켰고, 공주님에 대해 안 좋은 소리가 나오자 웰즈가 날이 선 반응을 보였다.


[크흠, 거 말이 너무 직설적인 거 아닙니까? 술이 들어가기 취하기라도 한 겁니까?]

[그러라고 해설자로 초빙된 거라고 봅니다, 기사 웰즈.]

[댁 나중에 전장에서 한 번 봅시다. 감히 공주님보고 뭐가 어쩌고 어······]

[얼마든지. 댁 정도의 애송이라면 술을 한 통을 마셔도 하품하면서 목을 칠 수 있소.]

[뭐야? 이 새끼가? 야, 다음엔 나랑 붙자.]

[자자자자자! 진정들 하시고! 해설하라고 했지 왕국 기사들끼리 싸우라고 모신 게 아닙니다!]


기사들 간의 신경전을 황급히 뜯어말린 사회자는 어느 새 대결 준비가 된 두 사람을 가리켰다.


[지금은 기사님들이 아니라 저쪽! 저쪽의 대결 시간입니다!]

[칫, 공주님이 나와 계시지만 않았어도 댁은 작살났어.]

[뭐, 누구 입장에선 목숨 건사한 거니 얼마나 다행이오.]

[그만들 하세요오오. 대결 곧 시작되니까요.]


자신의 다소 경박한 가신이 추태를 부리는 것에 아로엔은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지만, 몬델은 매우 불쾌한 표정이었다.

시합에 집중되어야 할 분위기가 이상한 것들 때문에 흐려지고 있다.

이 자리는 오로지 아로엔이 추하게 패배하고 알몸을 드러내 수치심 속에 치욕을 당하기 위해 존재해야만 했다.


“좋아. 네 녀석들의 공주님은 불패라 그거군. 어디 결과가 나와도 그럴 수 있는지 보자고.”


낮게 으르렁댄 몬델은 랜스를 들었고, 맞은편에 선 아로엔 역시 랜스를 들었다.

결투장의 양 끝에 선 아로엔과 몬델은 서로를 바라본 채 랜스를 겨누었다.


-펄럭---!


신호 깃발이 펄럭이자 몬델의 대인전차가 축적된 힘으로 급격히 가속을 시작했다.

랜스를 든 몬델은 아로엔의 흉갑, 그것도 연결부위에 손을 대 조금이라도 충격을 주면 벗겨질 그 갑옷을 노렸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고작 세발자전거에 탄 채 적당한 속도로 다가와야 할 아로엔이 아니었다.


-콰가가가각---!


몬델과 엇비슷한 속도,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맞은편을 향해 다가오는 아로엔은 매서운 눈빛으로 몬델을 주시하며 랜스를 뻗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몬델은 그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상황 파악을 못하는 아로엔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여겼다.

랜스의 끝이 스쳐 지나가고 서로의 몸을 향해 꽂히기 전까진 그렇게 여겼다.


-쿠와아아앙----!


아로엔의 흉갑에 몬델의 랜스가 아슬아슬하게 닿기 직전, 그녀의 랜스가 몬델에게 먼저 닿았다.

그리고 몬델에게 닿자 랜스의 끝에서 폭발이 터졌고, 폭발의 힘에 밀려난 몬델은 아로엔의 흉갑을 건드리지도 못한 랜스를 쥔 채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대체 뭐지?’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간다.

저 보잘것없는 세발 자전거를 탄 공주의 랜스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의 일격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마치 폭발할 것 같은 강력한 힘으로.

세발자전거를 탄 공주기사 아로엔이 추잡한 시선에 모멸감을 느껴야 할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몬델이 랜스 끝에서 일어난 폭발하는 힘에 날아가버리고 만다.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던 몬델의 시간은 땅바닥에 처박히는 순간 고통과 함께 정상으로 돌아왔다.


“커헉!”


예상 밖의 상황에 놀란 건 아로엔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타고 있던 것이 세발자전거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랜스에서 폭발같은 힘이 터진 것에 놀랐고, 이 대결에서 이겼다는 것을 자각했다.

마치 거짓말같은 상황이었지만, 사회자인 접수원 아가씨의 외침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일깨웠다.


[승자는---- 우리의 공주님입니다아아---!]

“와아아아아!!”

“휘---익!”

“역시 올베린의 기사!”


그리고 이어진 함성과 환호.

말도 안 되는 대결이라 여겼으나 당당히 승리한 공주기사를 향해 제각각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사회자 역시 이 놀라운 결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떠들어댔다.


[이야아! 역시! 세발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나는 공주기사다! 내가 말 정도는 이긴다! 그런 거였군요!]

[세상에, 저게 뭐래.]

[어······ 웰즈 님?]


웰즈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아로엔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기사 멘델은 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오러블레이드, 혹은 포스 익스텐션이라 불리는 기술이군요. 부끄럽지만 저도 일부 쓸 수 있는 기술이지요.]

[오오······! 어쩐지! 그 기술이군요!]


멘델이 언급한 건 모험가들이나 기사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이들도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최정상급 실력자들은 자신의 힘을 무기에 실어낼 수 있고, 때에 따라선 그 힘의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관록 있는 기사가 그렇게 설명을 하니, 진실이 어찌되었건 간에 모두들 그 설명을 받아들였다.


[허허······ 이거 참, 폴리덴카 왕국에서도 저 정도의 실력을 지닌 건 몇 되지 않는데, 아무래도 공주님의 소문이 너무 없지 않았나 싶군요.]

[어······ 저희 쪽도 저런 힘이 있으시다는 건 몰랐습니다만.]

[겸손하시군요.]

[아니 진짠데요. 저 분 저런 기술 없으셨는데?]


사실대로 말한 웰즈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지만, 멘델은 오랜 관록으로 이 상황을 납득시키는 한 마디 말을 했다.


[그럼 이 자리에서 각성하신 모양이군요.]

[오오! 자신에게 무게추를 단 결과라는 견해! 타국의 기사마저 인정하는 저 위용!]

[아니, 제가 언제 그런 발언을 했습니까? 단지······.]

[아무튼 간에! 우리의 공주기사, 아로엔 님께서 이 자리에서 새로운 힘에 눈을 뜨며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아---!]


그리고 접수원 양의 포장을 통해, 공주기사 아로엔은 자신에게 시련을 준 상황을 통해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승리자가 되었다.

관중들이 그녀의 이름을 외치고 공주기사의 높아진 경지를 칭송한다.

물론 모든 이가 그 분위기 속에 함께하는 건 아니다.


‘이게 아닌데.’


바닥에 나뒹굴던 몬델은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환호가 아니라 비웃음이어야 했다.

그 오만한 권력이 보잘것없는 패배 속에서 추잡한 시선 속에서 더럽혀져야 했다.

저렇게 칭송받아야 할 게 아니라.


[랜스의 끝에서 그야말로 폭발이 몰아닥쳤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 이건······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만.]

[패널티 매치였음에도 오히려 숨겨둔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시다니! 그야말로 폭렬의 창!]

[그, 그 별명은 좀 부끄럽다만······.]


어느 새 승자의 소감을 묻기 위해 다가선 접수원은 아로엔에게 본 것 그대로의 느낌을 말해주었고, 그 호칭이 매우 부끄러운 듯 아로엔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더욱 몬델의 화를 치솟게 만들었다.

칭송해주는 광경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광경이 되어야만 했으니까.

온 몸이 부서질 것 같고 타오르는 것 같지만 그는 일어나 그 화기애애한 현장으로 향하려 했다.

저 모습을 박살내야 한다. 부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끄으······.”

“왜? 계획대로 잘 안 흘러가니?”


몬델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고, 거기엔 ‘연금술사 우’가 히죽 웃고 있었다.


“네, 네놈······.”

“고기 사이에서 썩은내가 풀—풀 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니? 그 같잖은 최면이 무적이었을 것 같았니? 풀떼기는 아무리 양념을 쳐 바르고 뭔 짓을 해도 풀인 거 몰라?”

“······!”


몬델은 저도 모르게 눈동자가 커졌고, 일우는 몬델을 스쳐 지나가며 궤에다 속삭였다.


“진작에 알고 있었지. 이 도시, 이 땅에 발 디뎠을 때 금방 알겠더라. 어휴, 어떤 능력도 권력도 재력도 그렇다고 똑똑한 것도 아닌 잡놈이 이상한 짓을 또 꾸미는구나 싶었거든.”


한껏 빈정댄 일우는 소감을 막 끝낸 아로엔과 떨어져 패배자 쪽 소감을 물어보려던 접수원을 향해 다가갔다.


[자, 그럼 쓰디쓴 패배를 겪으신······.]

“자 다들 주모오오오옥!!”


‘연금술사 우’가 다시 나타나자 시선이 집중된다.

몬델을 향해 관심을 쏟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기서 일어난 꼬챙이 싸움 같은 사소한 데 집중할 게 아니다! 여긴 고기를 위한 장소지, 고기가 곁다리가 되어선 안 되거든!”


그리고 저 연금술사는, 조금 전 몬델이 싸웠던 현장에서 모두의 관심을 거둬들이기 위해 새로운 말을 꺼냈다.


“내 말이 뭔 소리냐! 이제 고기의 즐거움을 방해했던 모든 도적단이 박살이 났다. 정확히는, 박살이 나기 직전이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다들 저쪽을 보라고.”


군중들 중 누군가의 질문에 일우는 도시 저 너머에 솟아오른 산을 가리켰다.

잠시 후 산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먼지구름이 치솟았고, 몇 초 뒤 이곳에서도 소음과 진동이 느껴졌다.


-쿠웅-----쿠르르르르-!!!


“워어······.”


거대한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산사태가 산의 한쪽을 쓸고 내려가는 모습은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 저기에 휩쓸려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거기에 무엇이라도 세워져 있으면 하나도 남김없이 쓸려갔을 것이다.

좌중이 조용해진 가운데, 일우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모두에게 똑똑히 들렸다.


“이걸로 고기를 방해하는 놈들은 없다.”

“······.”

“끝. 해결. 그러니······.”


어느 새 그는 가득 채운 술잔과 구운 고기를 양 손에 쥐고 번쩍 들어 올렸다.


“먹고 마시고 즐기면 된다!”

“와아아아아아!”


처음엔 단순한 미치광이였지만 현실이 되었고, 새로운 흐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구원자가 되었다.

그런 구원자가 끝이라고 이야기한 순간, 모두가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다른 의미로 끝이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단······말이다.”


한 순간에 무너졌다. 복수를 위한 모든 것들이.

몬델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믿을 수밖에 없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을 일으키려 하고 소리도 내기 벅찬 성대로 소리를 내지르는 건 그 집착 때문이다.

하다못해 이 웃고 떠드는 것들의 즐거움만이라도 불쾌하게 만들겠다.

허나 현실은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이 빌어머······.”

“잠까아아아안---!”

“크윽!”


몬델이 비척거리며 일어나며 악을 쓰던 그 때, 수많은 노인들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막 일어나려던 몬델을 밀어버렸고, 몬델은 바닥에 다시 나뒹굴었다.

노인들은 몬델을 향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그들의 대표는 연단 위에 올라선 우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더 이상 델린의, 이델린의 전통과 역사를 모욕하는 행위를 놔둘 순 없다! 이 야만스러운 자 같으니라고!”

“뭐야, 저 양반들?”

“저거······ ‘어르신’들 아냐?”

“아······.”


‘델린 시의 어르신’들.

단순한 노인들의 집단으로 보이지만,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가진 이들.

시의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델린의 고기 요리를 모두 삶아버리게 만든 장본인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이 고기구이의 광풍에 맞서 반격을 시작했다.


“이, 이 빌어······크으······.”

“전통! 전통! 전통!”

“보존! 보존! 보존!”

“계승! 계승! 계승!”

“전통을 보조하고 계승하는 것! 그것이 이 지방에서 나고 자란 이의 의무!”


노인들의 반격의 물결에 바닥을 나뒹구는 패배한 모험가 따윈 이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왜 저 노인네들이 튀어나왔는지에 집중할 뿐.

‘연금술사 우’는 난데없는 이들의 등장에 피식 웃으며 낯익은 이를 가리켰다.


“이거, 마법도구상에서 본 그 양반 아닌가? 왜? 놀러 왔니?”

“당신의 그 오만하고도 야만스러운 행위에 종지부를 찍으러 왔소.”

“야만스럽다는 말은 뭐 인정해도······ 오만은 좀. 거울 안 봐?”


대중들도 심히 동감한다는 표정이지만, 노인들은 표정변화 없이 ‘연금술사 우’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아들이는 이는 귀찮다는 듯 술잔을 든 손을 내저었다.


“아, 됐고. 여기 지금 고기 구워먹고 술 마시고 볼거리 즐긴다고 신난 사람들 흥 깨진 거 어쩔 거야? 조심들 하라고. 술 먹은 사람들은 이성 잃기 쉬워.”

“뭐야 이 늙은이들아!”

“왜 좋은 때 방해를 하는 거냐고!”

“우우우우! 삶는데 환장한 노친네들, 물러나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군중들이 그동안 쌓인 불만을 담아 야유를 퍼붓는다. 전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이들은 구운 고기의 맛도 모르고 살아왔으니, 이 현장에서 불청객 취급 받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 광풍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때를 기다려왔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바로, 이 열풍을 잠재울 궁극의 무기가 완성될 순간을.


“오래 전, 이 도시가 델린이 아니었을 적, 이델린 지방이 아니었을 적. 그 때 이 곳에서 궁극의 레시피가 개발되었다.”


대표로 나선 노인이 입을 떼자, 노인의 무리 사이에서 무언가가 등장했다.

수레에 실린 거대한 항아리.


“이게······ 무슨 냄새야?”

“되게 향긋하고, 달콤한데다······ 어, 아무튼 되게 군침도는 냄샌데.”


단단히 봉인되었으나 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은 주변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향기였다.

이것은 매우 맛있는 무언가라는 보증 수표와도 같은 유혹.


“허나 세월 속에 수많은 이들이 잊거나 그 레시피를 지키려는데 소홀해지는 사이, 점점 많은 과정들이 생략되었지.”


선두에 선 노인 곁에 그 항아리가 도달했고, 자신의 곁에 선 이 ‘비장의 무기’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네가 벌인 거만한 맛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만 천하에 공개하겠다!”

“허, 요리 대결을 하자 그건가? 얼마든지!”


노인의 의중을 파악하자, ‘연금술사 우’는 히죽 웃었다.


“쌈박질 대기표 뽑고 선 녀석들! 오늘 너희들을 위한 행사는 취소되었다! 미안하지만 다음 기회에 참석해라. 지금부터 진정한 메인 이벤트가 시작되었으니까!”


연단으로 올라선 ‘연금술사 우’는 항아리를 호위하듯 둘러싼 노인의 무리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같잖은 창질이 아니라, 고기와 고기가 맞붙은 진짜! 고기의 승부다!”

“좋다! 승부를 하겠다! 너의 그 오만한 불이 이길 것인가, 이 궁극의 향이 이길 것인가!”

“쓸데없는 칼부림 장소는 필요 없어! 시식대를 설치하고 진열대를 깔아라! 고기의 진정한 승부를 위해 깔짝대던 모든 걸 밀어버리란 말이다! 고기를 위한 무대를 세워라!!”


공주기사의 몰락의 시발점이 되었어야 할 무대는 어느 새 대중의 기억 속에서 까맣게 사라졌고, 몬델이 준비한 그 모든 것들은 어느 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작가의말

글쓰는 인간이 언급했던 거 : 이번에 최면에 약한 공주기사가 나와요!

실제로 글에 나온 내용 : 고기! 고기! 고기! 고기!

우리의 공주기사님이 각성한 건지 아닌지는.... 뭐 뻔하죠. 
자세한건 다음에 나옵니다.

아무튼 간에 이걸로 음울한 음모의 장본인이 세팅한 모든 밑밥이 조져졌습니다. 고기에 묻힘. 
여러분, 고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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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9. 모자람 없는 고민 [5] +3 21.06.13 2,638 9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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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9. 모자람 없는 고민 [2] +8 21.06.10 2,907 8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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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너만 빼고 모두 즐거워 [2] +7 21.06.05 3,093 8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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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2] +5 21.06.03 3,574 90 23쪽
29 7. 공짜로 베푸는 고기는 없다 [1] +7 21.06.02 3,697 10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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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6. 문 열어 [3] +8 21.06.01 3,916 11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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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6. 문 열어 [1] +5 21.05.31 4,391 9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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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5] +3 21.05.29 4,699 118 11쪽
20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4] +2 21.05.29 4,681 117 20쪽
19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3] +8 21.05.28 4,721 118 17쪽
18 4. 용사는 대량학살극 따윈 안 한다네 [2] +5 21.05.28 4,758 1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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