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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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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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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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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작성
21.06.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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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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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0. 모난 놈이 맞는다 [6]

DUMMY

용사였을지 모르는 한 사람은 사라지고, 고자가 된 대머리만이 남아버리게 된 지 며칠이 지났다.

하지만 그대로 모든 게 끝나진 않았다.


“······신성왕국 노비우스에서 이 소식 들으면 쳐들어오는 거 아냐?”

“그, 글쎄다.”

“마스터. 이러다 페니카가 전쟁터 되는 거 아닙니까?”


신성왕국 노비우스.

모든 신전과 성직자들의 통솔자이자 동쪽 땅을 다스리는 거대한 나라.

신전이나 성직자들을 보기 힘든 땅이었기에 소문이 용케 퍼지지 않았지만, 슬슬 그 이야기가 다른 곳까지 흘러갈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만일 용사를 정말 붙들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들고 일어날 일은 없다.

용사를 적대한 게 아니라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용사 한 명을 세상에서 지워버린 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 일단 우리는 가짜 용사를 처단한 거야. 걔 보니까 용사도 아니었잖아.”

“우 님 말로는 용사긴 한데, 자격 미달이라서 힘이 쪼그라든거잖수. 대충 용사 새싹 정도?”

“새싹을 자근자근 밟아버렸다는 소식 들으면 노비우스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 같은데.”

“······.”


집회소에 있던 모험가들은 순간 침묵했고, 식은땀을 흘리던 길드마스터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 님! 우 님 어디로 가셨어?!”

“어······ 며칠동안 안보이시던데요. 그놈 끌고 어디론가 사라지셨잖아요.”

“어디로 갔는지는 말 안하셨고? 어?!”

“언제 그 분이 말하고 왔다갔다합니까?”

“젠자아아아앙!”


길드마스터는 뒤늦게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길드 건물을 뛰쳐나갔다.

그 시간, 인근의 찻집.

마법사와 연금술사, 혹은 그쪽 계통의 직종들이 야드 시에 머물 때 이 찻집을 거점으로 삼는다.

이유는 두 가지, 마법사의 힘을 회복하는 여러 약초를 이용한 차를 주력 상품으로 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장거리 마법통신용 증폭기를 설치해놓고 고객들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 때문이다.

랑키는 그 찻집의 구석에서 장거리 통신용 마도구를 이용해 다른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체 며칠이 지난 겁니까!]

“몬돈 의원,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나한테 짬처리하고 튄 건 이해해요. 빡세겠지. 사방에서 징조가 나오는데 또 통수 맞기 싫다고 지랄들 하는 양반네들 등쌀에 밀려서 최고 등급 계획 떠맡으니 압박이 되겠지.]


캐피탈의 마도의회 의원은 명예직이 아니고, 산더미 같은 일거리를 항상 떠안는 직위다.

다만 필요성에 따라 출장을 가거나 긴급한 사안에 힘을 쏟아 붓는 경우가 있는데, 랑키도 출장을 가면서 친한 의원에게 자신의 업무를 대리로 처리해줄 것을 부탁했다.


[근데 댁이 이러면 안 되지! 나한테 일 떠넘기고 튀었으면 말이라도 했어야지!]

“마, 말씀을 드렸잖습니까. 중요 사안이 발생했으니 제 주 업무를 좀······.”

[게다가 보고 듣기론 아무 성과도 없다면서! 대체 뭐 하러 거기 있는 거야?! 놀아? 어?!]

“그러니까, 다소 시일이 걸리는 일이라는 건 아시잖습니까······.”

[아, 됐고! 지금 당장 돌아와서 댁 업무 싸악--- 돌려받아! 아니면 대신 처리할 사람을 댁이 직접 찾으시던가! 난 더 이상 댁 업무 안 봐줄 테니까!]


랑키가 한참 일을 떠넘긴 의원에게 들들 볶이는 와중, 찻집의 다른 구석에서는 에멜린이 마법통신으로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구박을 받고 있었따.


[신소재는?]

“보, 보고서대로에요. 일단 현지에서 신형 소재를 개발 중인 공방과 접촉해보았지만 딱히 소득은 없었고······.”

[신소재는? 신소재는?]

“그······ 소문 들으셨던 그 연금술사 님은······ 아예 저랑 말을 나누려고도 안 해요.”

[신소재는? 신소재는? 신소재는?]

“······가망이 없는 것 같은데요.”


통신 상대는 에멜린의 상급자로, 그녀가 별로 오고 싶지 않았던 페니카로 보내버린 장본인이다.


“그러니 오늘 예정대로 철수를······.”

[그 출렁대는 가슴이라도 밀어붙이면서 유혹이라도 하란 말이다아아아아!]

“히이이익!”

[거기서 개발을 하던, 네가 유혹을 하던, 훔치던 간에! 소재 확보 못 하면 못 들어올 줄 알아!]

“자, 잠깐만요! 출장은 오늘까지라고 하셨잖아요!”

[웃기지 마! 성과도 없는데 뭘 돌아오려고 그래! 얻는 거 없으면 올 생각도 하지 마!]


각자 다른 사람에게 한참 갈굼을 당한 두 사람은 우연찮게도 동시에 찻집을 빠져나왔다.


“아아······.”

“으······.”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 뒷감당 어떻게 하지.”

“돌아가고 싶어······ 여기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서로 입장은 정 반대지만, 현 상황이 괴로운 건 마찬가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두 사람은 슬쩍 서로를 바라보았다.


“······바꿀래?”

“······그게 가능했으면 참으로 좋겠다만, 불가능한 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아아아아아······ 싫어어어······.”

“나도 마찬가지다······.”

“니들 뭐 하냐.”


절규하던 두 사람 앞에 그들의 괴로움을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연금술사 우’가 나타났다.


“어느 분께서 조금만 도와주시······.”

“뭐, 사실 니들 문제는 알 바 아냐. 중요한 건 내 문제지.”

“······그러실 거면 왜 물어보신 건가요.”


에멜린이 볼멘듯이 투덜대자, ‘연금술사 우’는 히죽 웃었다.


“관심 안 둬서 까먹었는데, 너희들 뭐 하러 왔냐?”

“신무기 개발 문제로 왔었습니다만, 용사가 사라진 이상 그의 기술을 모방한 개발은 포기해야겠지요.”

“신소재가 필요하지만······ 관심도 없으신 것 같네요.”

“해줄까? 신무기랑 신소재.”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물론 공짜로 해주겠다는 건 아냐. 그냥 간단한 자료가 필요한데, 뭐 너희들 정도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만 하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드리겠습니다!”

“무슨 자료요? 어떤 거죠? 바로 드릴게요! 갖고 있으면 싹 다 드릴게요!”

“어, 그래? 자신 있어? 내가 무슨 정보를 달라고 할 지 자신감이 넘쳐나? 못 구해주면 어쩔 건데?”

“······.”


딱 봐도 감당 못 할 엄청난 비밀이나 대단한 규모의 정보를 원하는 모습에 두 사람의 눈에 불타오르던 희망이 꺼져버렸다.

그 격한 변화를 보던 일우는 히죽 웃었다.


“쫄지 마. 너희들이 구해줄 만한 수준이니까. 다만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수집하기 귀찮아서 달라는 거야.”

“어떤 자료가 필요하십니까?”

“이, 일단······ 말씀을 해주세요.”

“지리정보. 정확히는, 외부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적인 지점에 대한 정보들.”

“······?”


일우가 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 모두 이해하지 못하자, 일우는 검지손가락을 까딱였다.


“아니면 대륙 전체 정보를 주거나. 거기서 내가 적당한 거 추려내서 쓰면 되니까. 한쪽은 의원이니 쌓아둔 자료를 빼낼 수 있을 거고, 다른 한 쪽은 신형 측정장비 개발한다고 했으니 이런 쪽 연구를 해왔을 거 아냐.”

“그렇긴 합니다. 다만······.”

“어······ 예, 뭐, 그렇죠. 다만 전 실시간으로 측저······.”

“아니, 너에 대해 알고 싶진 않고. 자료 있어?”


과한 정보를 차단한 일우가 재차 묻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빠르게 가져올수록 빠르게 주지.”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자료를 구하기 위해 황급히 찻집으로 되돌아갔고, 일우는 달려가는 두 사람의 등에 말했다.


“자료가 마음에 안 들면 이 제안은 없는 거로 칠 거야. 그러니 날 만족시키려면 최대한 많이 가져와봐. 하나 정돈 얻어걸린다 생각하고.”

“여기 계셨습니까!”


때마침 ‘연금술사 우’를 찾던 길드마스터가 나타났고, 길드마스터는 황급히 우에게 다가갔다.


“아, 뭐야. 대머리 길드마스터잖아. 왜. 또 어떤 놈 대머리 만들어달라고 하게? 이제 용사도 안 찾는데?”

“그게 아닙니다! 용사 때문에 이렇게 온 겁니다! 노비우스가 이곳의 일을 알게 되면······.”

“내가 그걸 생각 안 하고 사는 줄 알아? 지금 그거 해결하는 중이잖니.”

“예?”

“좀 기다려. 노비우스가 들으면 감동 먹고 눈물을 줄줄 흘릴 일을 벌일 테니까.”

“어, 그러면······ 걱정 안 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으로선, 네 최대 걱정거리는 그 벗겨져가는 가발이 아닐까 싶은데.”

“어이쿠.”


황급하게 뛰어다니느라 가발이 흘러내리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길드마스터는 황급히 가발을 정리했고, 일우는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며칠 뒤, 랑키와 에멜린이 제공한 막대한 자료를 받은 일우는 길드 사무소에서 거대한 유백색 알과 함께 나타났다.


“인간의 정신은 너무 약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놀라울 정도의 끈질긴 면모도 가지고 있지!”

“······저희들을 불러 모은 이유가 그 알 때문입니까?”

“알이라니? 그렇게 보여?”


길드마스터와 랑키, 에멜린, 거기에 몇몇 모험가들 앞에 선 일우는 거대한 알 모양의 구조물을 손으로 내려쳤다.


“이 놀라운 결과물의 이름은 ‘정신복원장치’라고 한다.”

“······그냥 실험 실패작을 처분하는 용도 같습니다만.”

“설명 이해를 못 했구나? 복원이라고, 복.원.”


알의 크기는 성인 남성이 온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기 딱 알맞은 크기였다. 랑키의 눈에는 그냥 처치 곤란한 누군가를 넣고 파묻는 용도로 보일 뿐이지만, 일우는 복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자, 여기에 들어간 녀석은 이제 천천히 정신을 수복할 거야. 물론 원상태로 돌려놓는 건 아냐. 조금씩 용사스럽게, 좀 영웅스럽게, 원래 자기가 가진 힘에 어울리는 사람이 갖춰야 할, 그런 식으로 고쳐질 거야.”

“······그러니까, 사람 정신을 마개조하는 장치인 건가요?”

“어허! 복원! 걘 원래 폐급이었잖니. 그러니 이건 올바른 용사로 복원하는 거니까 복원장치! 정신개조도 아니고, 세뇌도 아니야. 복원이야.”


에멜린의 지적에 일우는 다시 한 번 복원을 강조했다.

설명을 들은 길드마스터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신성왕국 놈들이 들으면 용사를 입맛대로 뜯어고치는 장치에 잡아넣고 파묻는 거로 오해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왜 다들 내가 파묻을거라고 예상들을 해?”


그 말을 들자, 모험가들은 서로를 돌아보다 어렵사리 자기 생각을 꺼냈다.


“그야 이전에 저 두 사람에게 지리정보를 대량으로 입수하셨잖습니까.”

“외부영향 안 받는 장소나······ 별로 주목 안 받을만한 구석에 폐기하는 것 밖에 그림이 안 그려지는뎁쇼.”

“우리가 본 어르신이면 무조건 그렇게 하실 것 같습니다요.”

“너희들 사람 보는 눈 참 없구나?”


일우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모두가 마지막에 한 모험가의 생각과 같았다.

여태까지 본 ‘연금술사 우’는 누군가 파묻어버리지, 사람을 멀쩡하게 되돌리는 데엔 별 관심 없는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금술사 우’는 두 팔을 좍 펼쳤다.


“자! 세상은 언젠가 용사를 필요로 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랬으면 이놈이 이 꼴로 세상에 나타나진 않았을 테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 징조 자체는 보이지만······.”

“중요한 건, 그 녀석이 진짜로 멀쩡한 용사였어도 아직 활동을 할 시기가 아니라는 거야.”

“그러면 더 문제가 되지 않나요? 용사가 성장할 기회를 아예 박탈을 하신 거니까.”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다!”


일우는 그 말을 하며 다시 한 번 알을 내려쳤다.


“이 장치의 힘으로! 폐급으로 머물렀을 가능성이 한없이 높은 썩어 빠진 정신머리를 가진 놈을, 진짜 용사로 만드는 거지!”

“······.”

“그리고, 용사가 절실해질 그 어느 순간에 이 녀석은 알을 깨고 나와서 자기 힘에 맞는 여정을 시작하는 거다.”


그 설명을 듣자, 몇몇 이들은 일리가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길드마스터는 아직 납득이 덜 된 모양이다.


“······신성왕국 쪽이 뭐라고 안 하겠습니까?”

“아! 그게 중요해! 이쪽이 뭘 열심히 하더라도, 그놈들이 ‘신성 모독이다!’라고 말하면 다 쓸모없긴 하지.”


‘연금술사 우’는 그렇게 빈정거렸고, 모여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 표정에 공감했다.

스탈리스 대륙의 동부는 신성왕국을 필두로 한 교단과 성직자, 사원의 입김이 강한 반면, 서부와 중앙은 그들이 벌인 몇 가지 일 덕에 그리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 안 좋더라도 대놓고 반발할 수도 없다.

‘마족’이나 ‘악마’와 같은 존재들과 맞서 싸우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고, 다소 분열된 정치체계를 가진 서부나 중부와는 달리 한 종교를 통한 결집력은 비교할 수 없다.

그런 종교를 떠받드는 이들은 대체로 원하는 기호나 취향이 정해져 있고, ‘연금술사 우’는 그 점을 고려한 계획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전설에서 가끔 나오는 게 있지. 전설의 무기나 신이 내려주신 중요한 물건을, 어느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자격이 맞는 누군가가 쨘! 하고 발견하는 그런 상황!”

“어······ 그런거 많이 있지요. 막 전설의 검이나, 성검이나······ 용사가 썼던 검이라던가······.”

“무식한 칼잡이 대머리라서 검밖에 못 떠올리겠지만, 생각보다 이런 ‘봉인’의 종류는 다양해. 그 중에 용사 자체를 봉인하는 게 추가되어도 나쁘진 않을거야.”


그 말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래! 나는 시대의 흐름을 잘못 타고나고 정신도 잘못 타고난 쓸모없는 놈을 옳은 시대로 보내는 역할을 맡는 거다! 알겠냐?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내가 저축을 하는 거랑 같은 원리라고!”

“저, 저축······?”

“그래! 무기고처럼! 여태까지 전설에선 그냥 장신구나 칼 정도지만, 난 화끈하게 규모를 키워서 용사 째로 보관하는 거다!”


어느 새 퇴물을 어떻게 처분하는지가 아니라 닥쳐올 미래의 위기를 위해 용사를 보내는 흐름이 되었다.

이런 식의 흐름은 신성왕국의 역사를 생각해봐도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실제로 그들의 역사에서 스스로를 희생해 봉인을 유지해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성직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 그 정도면 확실히 신성왕국도 뭐라고 말은 못하겠군요. 지금 이 시대는 용사가 딱히······ 뭐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하진 않잖습니까.”


어느 새 길드마스터도 넘어가버리고 말았지만, 랑키와 에멜린은 끝끝내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생매장 같은데요.”

“뭐, 왜. 이 상황에서 나보다 더 뛰어난 대안 제시할 녀석 있어?”

“전적으로 우 님의 책임 아닙니까? 왜 저희가 대안을······.”

“용사로서 빵점짜리인 녀석이 더 책임이 크지! 자기가 멀쩡한 용사였어도 이런 일이 일어났겠냐! 검증이 왜 필요해? 용사로서 버티기만 했어봐! 이 꼴 안 났지!”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에 일우는 궤변을 늘여놓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그의 말이 옳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모험가들 대다수가 일우의 말에 넘어가버렸으니, 소수자인 두 아가씨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시련을 못 버티는 용사라고 부를 수 없는 개쓰레기인 게 잘못이지. 그렇고말고!”

“······.”

“정말 먼 훗날, 용사가 필요해질 그 날까지. 이 녀석은 용사로서의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해 긴---잠에 빠지는 거야.”

“그나저나 그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안에 들어가 있어.”

“······이미 결론 다 정해두신 모양이네요.”


저 알같은 구조물을 바라보던 에멜린은 저도 모르게 속 내용을 상상해버렸다.

대머리 남자가 헐벗은 차림으로 온 몸을 구긴 채 잠든 모습을 상상했고, 상상의 결과는 저도 모르게 몸이 반응했다.


“풉!”

“크흡!”


생각한 건 에멜린만이 아닌 모양이었고, 랑키도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했떤 다른 이들은 정색했다.


“아가씨들 저 안에 대머리가 구겨넣어진 걸 생각하고 웃었지?”

“아, 아닙니다.”

“아니긴. 우리도 그 생각 났는데 댁들이 안했다고?”

“저, 정말로 그런 생각 한 게 아니라······프흡!”

“크극, 큭······ 아니, 저기, 저희는 매우 웃긴 농담이 생각나서 그런 거에요. 마법사들이랑 알이랑 엮인 농담이요. 진짜에요.”


두 마법사 아가씨가 알에 봉인된 대머리를 연상하고 웃는 걸 다른 대머리들이 싸늘하게 바라보는 사이, 홀로 생각에 빠진 듯 ‘연금술사 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다 터뜨리듯 소리를 내질렀다.


“음! 평화로운 시대에서 미래로 보내는 희망! 좋아, 이 정도면 역사에 길이길이 남겠군!”

“지금 그 생각 하셨던 겁니까?”

“응. 당연한 거 아냐? 이정도면 충분히 역사에 내 이름 정돈 새겨 넣을 정도 아니겠어?”

“······다른 의미로 새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연금술사 우’가 바라는 건 좋은 쪽이겠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안 좋은 쪽으로 역사에 남을 행동이다.

허나 역사는 미래를 살아갈 이들이 남길 것이고, 지금 살아가는 이들은 눈앞에 있는 이 ‘용사가 들어간 알’이 어디에 모셔질지가 중요했다.


“그런데 그 용사를 어디다 파묻······ 아니, 봉인하시려는 겁니까?”

“그건 비밀이지. 봉인을 어디다 해놨다고 다 밝히는 놈이 어디 있냐?!”

“아니, 그러면 미래에 누가 진짜로 필요해서 찾을 땐 어쩝니까?”

“그것도 다 생각이 있단다. 재촉하지 마라. 네가 내 엄마니?”


그 말을 남긴 일우는 알을 번쩍 들고 자리를 벗어났다.


작가의말

대머리 고자로 만들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용사에겐 용사에게 어울리는 대우가 있죠.

봉! 인! 미래의 어느 힘들고 고난이 닥쳐올 순간을 위해 저---장.
당연히 주인공은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이전 분량에서 왜 뜬금없이 그런 게 끼여있는지는 조금만 더 있으면 아시게 될 겁니다.

아무튼 간에, 네 명의 용사 중 한놈은 확실하게 처리가 되었습니다. 박혁거세형에 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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