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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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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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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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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06.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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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
18쪽

10. 모난 놈이 맞는다 [3]

DUMMY

영규의 긴 설명을 모두 들은 일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연금술사 우’가 무슨 반응을 해야 끝까지 속여 넘어갈지 가닥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더 설명을 해야 해······요?”

“용사라는 녀석들의 약 절반 이상이 왜 말수가 적었다고 기록되었는지 아니?”

“그, 글쎄······요?”

“중요한 순간에 방정맞게 입을 놀리면 모양이 안 빠지니까 그러지! 그런 의미에서 감점!”


잠시 시간을 번 일우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를 연기하는 건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일우가 연기하는 ‘연금술사 우’는 남들과 격이 다른 정신상태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람이 지적할 문제를 넘기고 엉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야말로, 적당한 반응이었다.


“좋아! 납득이 돼.”

“그. 그치? 그렇지? 내가 용사라는 거 믿지?”

“반말.”

“······요?”


영규에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살짝 보여준 일우는 감옥 안을 뱅뱅 돌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쓸데없이 창조된 가짜 세계관에서 인생을 헛되게 낭비한 놈들만 끌고 왔다는 건, 다른 녀석이라면 절대 용사라고 못 받아들이는 내용이겠지.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있어.”

“진짜······요?”

“네가 설명한대로 아예 우리와 다른 문명을 이룩한 세계라면 그게 맞아. 일종의 재활용 정신이지. 그쪽 세계에선 쓰레기! 하지만 우리에겐 영웅!”

“······.”


칭찬하는 척 하며 영규의 인생을 격하시킨 일우는 히죽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게임’이라고 하는 걸 매개체로 한건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야.”

“어······ 왜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뭔가에 그렇게 노력을 퍼붓는 놈이라면 아예 자기랑 관계없는 세계에서도 호구짓 하는 놈이니까!”

“······.”

“자원봉사자 차출하기 딱 좋은 방식이군! 다음에 기회 되면 나도 써먹어야겠어. 결과적으로 무가치한 것에 자신의 열정을 쏟다니! 넌 정말 머저리 같지만 대단해! 그러니 내 유용한 일에 네 그 쓸데없는데 퍼붓는 열정을 써주지 않을래?”


물론 그냥 떠드는 말은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 심리공작이다.

상대의 행적을 교묘하게 비하하고 낮춰 전반적인 자존감을 깎고, 그 행적과 연계된 현 상황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작업이다.

당하는 사람으로선 굉장히 기분 나쁜 방식의 행위지만, 어차피 ‘연금술사 우’는 남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데 도가 튼 인물이다.


“그렇게 요령 없이 가상세계에서 힘만 왕창 길러댄 녀석들이 정말 위험하다는 건 여신도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갖고 있는 장비며 힘이며 죄다 날려버린 거고.”

“끄응······.”

“긍정적으로 보자고. 보통 용사라는 녀석들은 수련이나 노력이나 뭐 그런 식으로 각성을 하기도 하니까. 한 번 도달한 힘이라면 그걸 되찾는 건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쉬워.”

“아, 아무튼······ 이제 믿는 거죠?”


‘연금술사 우’의 말을 듣던 영규는 상대가 자신을 용사라는 걸 인정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우는 믿는다고 말할 생각이 결코 없었다.


“뭘?”

“용사요. 아까 제 말이 납득이 된다고······.”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일우는 그렇게 딱 잘라 말한 뒤 손가락을 뻗어 영규를 가리켰다.


“하지만! 여신이 그렇게 보냈다는 말이 그럴싸하고, 사실이더라도 나는 네놈을 용사로서 결코 인정할 수 없어!”

“용사 맞다니까요! 대체 뭐가 문제인데요!”

“바로 망토다!!”

“······망토?”


여태까지 그래온 것처럼, ‘연금술사 우’는 듣는 상대가 상상도 못한 요소를 언급하며 격하게 반응했다.


“모든 영웅의 전설과 삽화, 조각과 회화! 어린아이들의 노랫가닥에서부터 대서사시를 찬양하는 그 웅장한 화음까지! 모든 것은 용사의 그 등 뒤에 펄럭이는 망토를 언급하지!”

“아니 망토가 어쨌다고······.”

“용사의 등은 만인을 향해 보이고 있다! 왜? 용사는 항상 누구보다 앞서 있으니까!”


‘연금술사 우’는 허공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격양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 등을 가리다 한 줄기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 망토야 말로! 용사가 가져야 하는 기본 소양이자 사상이고 행적이며 정수다!!”

“······망토가 그런 의미라구요?”

“그래! 모든 용사는 위기에 맞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한다는 소양! 위험에 맞서 결코 등을 돌리지 않고 맞서 싸우는 사상!”


듣는 영규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헛소리 같은 말도 없었지만, ‘연금술사 우’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뻗어 연규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위업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과 기록에 강렬히 남는 건 싸움보다 그 용사의 등과, 그 등을 가리는 휘날리는 망토!”

“······.”

“왜 휘날리느냐! 용사는 결코 정적인 존재가 아니니까! 바람이 불어서 펄럭이기도 하지만 용사가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비유이기도 하지!”


두 팔을 펼치며 망토를 펄럭이는 모습을 묘사한 ‘연금술사 우’의 모습을 본 영규는 그야말로 질려버린다는 표정이었다.


“따라서! 너같이 망토도 갖추지 않고 남에게 그 망토를 펄럭이는 걸 보여주지도 않는데다, 그걸 이해도 못하는 네놈은 용사라고 주장하더라도 결코 용사가 될 수 없다!!”

“고작 망토잖아요!”

“고작? 고오자아아아악?”


듣다 못한 영규가 저도 모르게 소리치자, 그걸 기다렸다는 듯 일우는 영규의 멱살을 붙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윽!”

“네 말대로 여신이 보낸 게 너라고 쳐. 하지만 네 마음마저 용사일까?”

“용사라고 왔으니 당연히 용사잖아요! 다른 게 뭐가 필요······.”

“네가 용사라는 걸 다른 사람들이 인정받을 수는 있을까?”

“윽······!”


허를 찌르는 질문에 영규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고, ‘연금술사 우’는 또박또박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고, 그 놀이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네 행동이 과연 용사라고 부를만한 자의 것이겠냐고.”

“그, 그건······.”

“거 봐. 용사라는 건 ‘네!’가 나와야지 ‘네······.’가 아니란 말이다. 자기 확신도 없는데 무슨 영웅적 위업을 도달할 것이며, 무슨 용사를 하겠다는 거야?”


망토가 없다는 것에서 시작된 발언은 어느새 용사의 철학론으로 변해있었다.

그 망토가 없다고 용사로서의 마음가짐이 결여되었다는 건 그야말로 헛소리다.

하지만 뭔가 찔리는 점이 있고 부족한 사람은 그 헛소리에도 걸려 넘어지는 법.

영규의 입장에선, 헛소리를 나불대던 이에게 정곡을 찔려버린 꼴이었다.

멱살을 놓은 일우는 손을 탁탁 털었고, 영규는 다소 풀이 죽은 표정이 되었다.


“좋아. 네가 아직 용사라고 주장하고 싶냐?”

“다, 당연히 저는 용사니까······.”

“그러면 나 말고 다른 녀석을 데려와서 물어보자고. 과연 네가 용사라는 말을 누가 믿어주기는 할 지 말이야.”


그 말을 하고 일우는 감옥 방을 빠져나와 자리를 벗어날 것처럼 움직이다 이내 벽에 찰싹 붙었다.

그리고 스카웃을 통해 영규의 행동을 몰래 지켜보았다.


“······아냐, 난 용사로 여기 온 거야. 저런 이상한 사람 말에 안 흔들려.”

[주시 대상, 심리 상태 불안정.]

“좋아. 밑밥을 쳤으니 당연히 흔들리겠지. 전문적인 심리전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게임만 줄창 하던 녀석이 이런 압박을 버티는 건 쉬운 게 아니거든.”


영규가 흔들리기 시작한 걸 확인한 일우는 곧바로 길드 건물을 빠져나와 무언가를 사서 돌아온 뒤, 길드 집회소에서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용사의 검증은 끝마치셨습니까?”


바로 랑키였다.

용사를 찾기 위해 페니카까지 왔으니, ‘연금술사 우가 용사가 진짜인지 의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바로 여기에 올 것은 뻔한 일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랑키가 길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일우는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대꾸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쁜 소식만 두 개 있는데 들어볼래?”

“······.”


만나자마자 기대를 왕창 무너뜨리는 말을 꺼낸 일우는 한층 어두워진 랑키의 얼굴을 보고 히죽 웃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 크리스탈 조형물 하나는 꺼내놓았다.


“이게 뭔지는 아니?”

“······뜬금없이 장난감이 등장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내 이야기를 듣는데 필요한 소품이라고 쳐. 그리고 우리의 그 ‘용사’라는 녀석이랑 큰 관련이 있지.”


일우가 꺼낸 건 일명 ‘크리스탈 놀이터’라 불리는 놀이 도구로, 이쪽 세상의 게임기와 비슷한 물건이었다.

지구로 치면 TRPG와 비슷한 놀이를 하는데 주로 활용되는데, 여기에 푹 빠져 생활을 도외시하는 이들도 종종 있는 물건이었다.


“전문가로서의 내 소견은······ 이 녀석은 여기에 과물입해서 머리가 훼까닥한 어느 부잣집 도련님, 혹은 도련님처럼 꾸미고 다니는 아가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지.”

“절 속이시려는 겁니까? 아무리 그 물건으로 그런 꼴을 하는 자들이 많다 하더라도······.”

“그 말 나올 줄 알았다. 나도 이해해. 내가 너라도 거짓말 치지 말라고 말했을 거야.”


일우는 그 말을 하며 물건을 회수한 뒤 랑키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같이 가서 보자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우를 뒤따라간 랑키는 지하 감옥에서 꽁꽁 묶인 영규와 마주했다.


“자, 데려왔으니 아까 나한테 말했듯이 네가 어떻게 용사가 되었는지를 설명해보라고.”

“당신이랑 같은 편 아니에요?”

“이쪽은 널 당장 풀어주고 캐피탈로 데려갈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 난 널 여기에 영영 봉인해두고 싶은 쪽이고.”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영규는 조금 전 일우에게 했던 설명을 다시 쏟아냈다.

꽤나 긴 이야기를 들으며 랑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고, 모든 설명이 끝났을 때는 그야말로 실망감이라는 단어만으로 요약될 수 있는 표정이 되었다.


“······.”

“표정이 왜 그래요? 저는 솔직하게 다 말씀드린 거에요.”

“거 조용. 아까 내가 용사로서의 소양 중에 입 다물고 있는 게 더 멋지다고 말 안했어? 이친구도 생각을 해야 결론을 내지.”

“······일단 자리를 벗어나시죠.”

“저기, 이제 저 좀 풀어주실래요? 그리고 캐피탈로 데려가신다고 하셨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도록 하죠.”


풀어달라는 영규의 말을 완곡하게 거절한 랑키는 곧바로 집회소로 빠져 나왔고, 의자에 앉자마자 얼굴을 감싸쥐며 좌절했다.


“······세상에. 그 말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저런 놀이판에 정신이 나간 꼬맹이였다니.”

“용사를 인긴병기로 쓸 계획이라면 저 녀석도 훌륭한 대안이 될 거야. 수많은 이들에게 정신충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잖아.”

“제가 원하는 분야는 아닙니다.”


일우가 한 말에 냉철하게 대답한 랑키는 곧바로 얼굴에서 손을 떼고 일우를 돌아보았다.

일우야 게임판타지 소설 같은 장르를 알고 있으니 대충 이해하고 받아들이더라도, 랑키의 입장에선 황당무계한 헛소리였다.

게다가 넓은 생각을 가지고 가능성을 고려하려 했지만, 그런 생각은 일우가 사전에 꺼내든 장난감으로 차단되어버렸다.

그렇기에 랑키는 영규를 그저 크리스탈 놀이터에 환장해서 현실과 놀이를 구분 못하는 정신 나간 녀석으로 결론 내려버렸다.


“저게 가짜인 이상 아무 가치가 없는데, 계속 저렇게 둘 이유가 있습니까?”

“어······ 그냥 이 지역 친구들의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거든.”


랑키를 속이긴 했지만 영규는 진짜 여신이 보낸 자고, 일우는 그를 붙잡아둬야 했다.

물론 잡아둬야 할 이유는 이미 준비해뒀다.


“내 연구는 그 연구소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빡빡이들한테 용사도 연구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은 했는데, 용사에게 바라는 건 일종의 검증이지 원료 수집 같은 역할이 아니거든.”

“그게 그 자와 상관이 있는 겁니까? 가짜인데도?”

“연구소 만들어질 때까지 희망좀 심어주려고. 머리는 못 심으니 다른 거라도 심어줘야하지 않겠어?”

“······뜻이 그러시다면 그러시지요.”


발모제를 찾아 헤매는 대머리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용도라는 말에 랑키는 순순히 믿어버렸다.

영규가 가짜 용사가 된 이상, 더 이상 관심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녀는 그냥 이 지역을 떠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규는 그대로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 당분간 연구를 하지 그래?”

“연구 말씀이십니까?”

“난 자료가 확보되면 마도연산도구를 마구잡이로 써먹어서 연구에 들어갈 생각이었거든. 일종의 ’탈모 연구소‘를 세울까 싶어.”

“저와 그게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공동출자 어때?”


뭐라도 이용해먹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고, 캐피탈의 마도의원이면 마도연산도구를 대량으로 입수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도연산도구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새로운 프로세스센터를 세울 수 있다.


“······.”

“원자재 조달하기 쉬운 지역에 연구소를 세우는 것도 꽤 좋은 전략이야. 무기 만든다며?”

“별로 내키는 제안은 아닙니다만. 게다가 우 님은 탈모 연구소를 세우시는 거잖습니까.”

“난 정치에 별 관심은 없지만 넌 아니지 않아?”

“일단 마도의회의 의원이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톨라의 의원이 탈모연구소에 투자를 했다는 소문이 돌면, 그동안 도외시했던 탈모문제에 톨라가 도움을 준 게 되지 않아?”


일우가 톨라와 카이옌의 냉랭한 관계 개선을 위한 떡밥을 던지자, 랑키는 잠시 턱을 괸 채 무언가를 생각했다.

허나 정치적인 입장으로는 긍정적일지 몰라도, 그녀는 일단 마도사다. 마도사로서의 판단은 별로 매력적인 연구는 아닌 모양이다.


“······그런 연구에 투자할 가치는 없다고 봅니다만. 캐피탈의 의원들 모두 이런 연구에 투자하라는 의견을 들으면 기각할겁니다.”

“마도연산도구를 내가 본격적으로 쓰려면 뭐가 필요하다고 했지? 자료가 필요해. 근데 그게 언제 찾을지 보장을 못하잖아.”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지 않자 일우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거부 의사를 밝힐 때 대안으로 제시할 것도 미리 생각해두었다.


“그 동안은 네가 쓴다는 식으로 가는 건 어때?”

“내키지 않군요. 그게 우 님에게 어떤 도움이 됩니까?”

“톨라의 의원이면 뭐 고급 마도연산도구정돈 쉽게 확보할 수 있지 않니? 그런 거 사들이느라 발품팔기 귀찮거든.”

“······.”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한 뒤, 랑키는 고개를 내저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제 개인연구소가 있는 만큼 중복된 투자입니다.”

“싫음 말고.”

“그 제안, 제가 받아들일게요!”


막 랑키가 거부의 뜻을 밝힌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어 일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개를 돌린 일우와 랑키의 눈에 들어온 건 캐피탈에서 봤던 에멜린이었고, 그녀를 보자 랑키는 혀를 찼다.


“쯧.”

“······아! 생각났다! 가슴 보니까 생각났어.”

“으윽!”

“근데 넌 여기 왜 왔니?”

“누가 용사 같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삽질을 하는 거랑 달리, 저는 이곳에 실용적인 연구를 하기위해 왔거든요. 소재 연구요.”


이전에 확인했다시피 두 사람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았고, 에멜린은 랑키가 가망성 없는 일에 달라붙었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성과가 시원찮은 것도 대충 파악한 모양이다.


“······신경 끄시지. 캐피탈 마도 의회의 행동에 너 같은 비관계자가 참견할 여지는 없어.”

“아, 그러니? 그래서 없는 용사는 찾아졌어?”

“의회의 일을 네게 보고해야 할 의무는 없는데.”

“당연히 없겠지. 능력이 안 되니 몸으로 남이나 유혹해대는 주제에 무슨 실력이 있어서 성과를 보이겠니? 보나마나 의원 자리도 그 천박한······.”

“시끄러워! 니들끼리 싸울 거면 캐피탈로 꺼져!”


하지만 일우는 두 사람이 싸우는 꼴을 볼 생각이 전혀 없었고,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들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크흠, 흠.”

“죄송해요. 하지만 제시한 안건을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어쩌시겠어요?”

“필요 없어.”

“아니 왜요?! 저는 협력할 의사가 충분해요!”


에멜린이 여기까지 온 건 단순히 누구를 비웃기 위해서 온 건 아니었다. 소재 연구를 위해 온 건 맞지만, 정확히는 ‘연금술사 우의 협력을 받아 소재를 연구한다’는 목적일 게 뻔했다.

그리고 일우는 자기에게 별 도움 안 되는 에멜린과 협력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넌 의원 아니잖아. 난 의원의 권력이 필요해. 권력으로 마구잡이로 사들인 마도연산장치가 필요하다고. 너 내가 원하는 양 구해다 줄 수 있니?”

“공급해드릴 수 있어요!”

“이 정도가 필요한데?”


일우가 탁자에 필요한 수량을 대략 써보이자, 에멜린은 살짝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연구를 하시려고 그러시는데요.”

“탈모.”

“고작 그런 거에 이만큼의 연산력을 낭비······윽!”

“가슴만 크고 탈모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너나, 없는 가슴 드러내는 헐벗은 옷 입으면서 탈모에 대한 투자를 거부하는 너나, 둘 다 필요 없으니 꺼져!!”


마도연산도구를 구하는데 시큰둥한 랑키와 협력을 받는 대신 엄청 귀찮은 부탁을 떠맡길게 뻔한 에밀린을 동시에 쫓아낸 일우는 곧바로 길드 접수원 밀레느 쪽을 돌아보았다.


“이봐, 거기. 마도연산도구 대리구매 의뢰 같은 거도 받아?”

“가능하지만, 의뢰를 하실 거면 서류를 작성해주세요.”

“다행이구만. 발품 안 팔아도 되서.”


일우는 그렇게 말하며 밀레느 쪽으로 걸어갔다.


작가의말

용사라는 자는 모름지기 망토를 착용해야 합니다. 정통 용사는 원래 망토 다 낀 복장을 입습니다. 요즘같이 막 이세계 전생이다 게임 빙의다 뭐다 하는 것들은 도외시하지만, 전통있고 혈통 갖춘 용사들은 다 망토 입습니다. 

팬티맨이 고수의 상징이듯, 망토는 용사의 시그니쳐인겁니다. 일종의 전통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요즘에 안보이는 겁니다. 전통의상 요새 잘 안입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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