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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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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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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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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설 명절 연휴 동안 여주의 부모님 저택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오인방을 시작으로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 류지호 부모님께 새해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오후에는 류지호 식구가 모두 강화 외가로 가서 연로하신 외할머니와 외가어른들께 세배를 드렸다.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서울로 올라갔던 순호·아라 남매가 오후가 되어 각각 며느리와 사윗감을 데리고 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버님, 어머님.”

“어서 와. 둘째 며느리.”


먼저 새해인사를 드리러 온 커플은 둘째 류순호와 신예림다.

신예림은 서글서글한 성격 탓에 예비 시부모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신예림은 미국 의사 면허시험인 USMLE를 통과했다.

인턴으로 일할 병원도 정해졌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프란시스코 대학병원(UCSF)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집안에 의사 며느리를 들이게 생겼다며 부모님이 무척 좋아했다.


“형, 혹시 예림이한테 조언해 주고 싶은 말 없어?”

“내가 병원 쪽에 아는 게 있어야 조언을 해 주지.”

“예림이가 학교에서 공부만 죽어라 해서 미국을 진짜 몰라. 솔직히 나도 녹음실에서만 짱박히는 스타일이라.....”

“굳이 조언을 해야 한다면. 한국에서 보던 의학드라마나 미드를 보고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

“십대도 아니고 그 정도야 뭐....”


말끝마다 토를 다는 순호와 달리 제수씨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류지호가 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또 하나, 미국에서 의사 생활하면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내가 알기로 많은 의사들이 큰돈 벌지는 않아.“


신예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진료과마다 다를 거예요.”

“일반적인 의사들은 그저 먹고 사는 정도더라.”

“벨에어에 사는 의사도 많던데? 다 개업의들인가?”

“부자동네에 사는 의사는 대체로 마취과 전문의가 많고 다음이 외과, 치과였던 것 같아. 정신과도 연봉이 15만 달러 정도 되는 것 같고.“

“한국계 선배들을 몇 분 만나봤어요. 주로 가는 과가 비인기 과인 내분비내과, 가정의학과 같은 곳이더라고요. 급여가 외과 계열의 절반 수준이고요.”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국의 많은 의사들이 보험과 관련해서 보상 범위가 좁으면 진료를 거부하기도 해.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매우 낯선 환경일 거야. 내 동창 중에 개인병원 하는 녀석이 있는데, 치료비 흥정이니 보험 관련 서류에 쏟는 시간, 노력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고 투덜대더라고.”

“미국 병원은 서민들에겐 지옥이야.”


류순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도 영어는 평생 숙제일 거야. 나도 미국 생활이 20년 다 되가는데, 가끔 영어 때문에 고민하고 있어. 모국어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이 평생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봐. 특히 제수씨는 전문직이니까 일반인보다 더 영어소통이 잘 되어야 할 거야.“

“아주버님도 영어로 스트레스 받으세요?”

“가끔.”


류순호도 처음 들어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반 사회나 조직보다 좀 더 전문적인 분야에서 인종차별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지식계층 혹은 중산층과 교류하려면 여러 인종적인 문화 차이, 언어, 피부색... 각각의 문화 차이는 알아둬야 돼.”

“.....?”

“우리나라에서는 '침묵은 금이다'라거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사고방식이 있잖아. 미국에서 인턴을 하던 레지던트 수련을 받던지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바보 취급을 받을 수 있어. 교수가 이렇게 하자 이야기 할 때 수련 받는 레지던트가 자기 의견을 밝히지 않으면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할 거야. 대학에서도 이미 경험했을 거고.”

“....네.”

“아메리칸 드림은 분명히 존재해. 하지만 기회까지 평등하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돼. 세상 어디에도 기회가 평등한 사회는 없으니까.”

“네. 아주버님.”

“순호와 무조건 영어로 대화를 하도록 버릇을 들여. 영어 만만히 보면 안 돼.”

“용기를 북돋아줘야지, 왜 겁을 주고 그래?”

“조언해 달라며?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야. 안 그래? 제수씨?”

“아, 네? 네. 고맙습니다.”


류지호는 신예림과는 미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서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류아라가 남자친구라고 데리고 온 웬 사내놈은 영 불편했다.


“......”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매제도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나 다시 한 번 동생과 인연을 맺게 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헌데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을 애인이라고 데리고 오니.

류지호로서는 쉽사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설 명절에 세배를 드리겠다고 찾아왔다는 것은 진지하게 교제를 하고 있다는 뜻.

결혼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봐야했다.

어떻게 키운(?) 여동생인데 아무 놈에게 시집을 보낼 수 있겠는가.

일단 족보부터 캤다.

이름은 권영진이다.

올해 31살로 1남 2녀 중 막내아들이란다.

연희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 현재 아버지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때가 되면 부친의 회사를 물려받을 예정이란다.

가업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는 특수비료를 생산하고 있단다.

연매출 98억 원으로 중소기업치곤 내실이 제법 탄탄하단다.

물에 희석해 잎사귀에 살포하는 엽면시비용 비료에 강점이 있고, 특수비료 외에 살충제를 비롯해 농약 15종과 토양개량에 쓰이는 유기농업 자재도 생산하고 있단다.


“두 사람, 어떻게 만난거야?”

“아네모네 커피프랜차이즈에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가 매년 수십 톤이야. 커피 찌꺼기를 가지고 친환경 천연 제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궁리를 했지.”

“가온에도 비료 회사가 있지 않냐?”

“대농비료는 잘 나가잖아. 강소기업을 찾아 지원하려고 했어.”

“그러다 여기 권 부장을 만났다?”

“아버님 회사에서 농촌지역에 좋은 일을 많이 하셔. 영진씨와는 자원봉사 다니다가 만났고, 한 두 번이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이상하게 자주 만나게 되더라고.”

“여기 권 부장이 자주 만나게 될 수밖에 상황을 만들었다고는 의심 안 했고?”

“.....!”


류아라가 새침한 표정으로 권영진을 째려봤다.

권영진의 등 뒤로 땀이 한 줄기 흐르는 것 같았다.


“아라씨, 절대 아닙니다. 그저 우연입니다. 진짭니다!”


권영진이 손사래까지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첫눈에 반했다면서요? 그래서 내 마음을 얻을 때까지 죽자 살자 따라다니려고 했다면서요?”

“따라다니려고 했다고 했지. 진짜 따라다녔다고는 안 했습니다. 스토커도 아니고, 왜 아라씨를 따라다니겠습니까?”

“뭐예요? 그럼 내가 영진씨를 따라다녔다는 거예요?”

“그 말이 아니라....”


여동생과 예비 매제 후보의 싸움 붙여놓은 류지호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마당을 나와서는 휴대폰을 꺼내 고우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 외출 하려고?

“아니. 받아 적어.”

- 잠깐만.

“권영진, 31세, 연희 경영대학원 졸업, 부친이 풍년비료 경영.”

- 뭐하는 놈인데?

“매제 후보.”

- 뭐? 아라 신랑감이라고?

“응.”

- 알았어. 이 자식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여자문제까지 아주 싹 털어 볼게.“

“매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자식이 뭐냐 자식이....”

- 일주일만 기다려. 정보팀을 총동원해서라도 싹 다 털어줄 게.“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청년의 뒷조사를 하는 것이 조금 찜찜하지만.

안 할 수도 없다.

류지호의 집안은 이제 평범하지 않다.

집안에 사람 하나 잘못 들이는 것보단 사전에 따져보는 것이 났다.

가사도우미 들일 때도 매우 꼼꼼하게 따져보는데, 매제가 될 청년이라면 말 할 것도 없다.

제수씨인 신예림도 이미 다 거쳐 갔던 일이고.


“동생들도 짝을 찾은 것 같고. 이제 애기들만 집안에서 뛰어 놀면....”


그렇게 바라고 꿈꾸던 아름답고 화목한 집안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 ❉ ❉


단 하루.


미국작가파업 사태 극적 타결과 관련해서 미국 방송에서 류지호를 언급했던 날짜다.

그 이후로는 작가와 제작자측의 노사합의에 관한 뉴스 어디에서도 미스터 할리우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작가협회가 파업을 멈추었다는 뉴스도 단신으로 처리하고 넘어갔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레오나의 임신 소식이 가십으로 온 언론에 도배가 되었다.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 임신이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하루 만에 할리우드 노사합의 중재를 위해 애쓴 류지호와 관련한 뉴스가 미디어와 언론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어딘지 뒷맛이 씁쓸했다.

미국의 미디어계는 변하지 않는다.

아니다.

변할 생각이 없다.

그들로서 외국인이자 아시아인이 업계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싫을 수밖에 없다.

아시아계가 리더가 되는 꼴은 못 본다.

심지어 JHO Company는 모든 복합미디어 그룹의 경계대상 1호다.

해가 바뀔 때마다 업계 지형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으니까.

업계 사람들은 겉으로는 류지호를 칭송한다.

속마음까지 그럴까.

지금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의 결과를 놓고 보면 그들의 속내를 모를 수가 없다.

프로듀서 류지호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히트작과 작품성 있는 영화를 기획·제작했음에도 오스카 트로피를 단 두 번밖에 들어 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이전 삶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던 영화가 수상에 실패할 뻔 한 적도 있다.

그 사건 이후로 류지호는 아카데미 작품상이 유력한 영화(류지호만 알고 있는)의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욕심을 내지 않게 됐다.

다만 JHO Pictures 제작 영화에서는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도 아카데미 시상 부문에 많은 JHO 계열 영화들이 노미네이트됐다.

그 가운데 고언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협력프로듀서 크레디트에 류지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프로듀서 크레디트를 받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혹시나 수상에 실패할까봐.

류지호는 프로듀서 크레디트를 스캇 루든과 고언형제에게 양보했다.

따라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에 류지호를 빼고 고언형제와 스캇 루든이 무대에 올랐다.


“달링이 저기 있어야 했는데....”


DCN에서 생중계로 방송되는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레오나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류지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불참했다.

아내의 임신과 심한 입덧을 핑계로 댔다.

시상자로도 선정되지 않았기에 불참의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상을 너무 많이 받으면 거만해져. 저거 봐. 고언형제가 엄청 거만해졌잖아.”

“호호. 질투하는 거야?”

“친구들이 잘되면 내게도 좋은 일이지. ParaMax도 돈을 벌어들일 거고.”

“ParaMax가 오스카 트로피를 하나 더 수집할 수 있었는데....”


류지호가 협력프로듀서 크레디트를 받게 됨으로써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자가 스캇 루든 프로덕션이 됐다.

함께 무대에 오른 고언형제도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고.

스캇 루든 프로덕션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의 오랜 제휴영화사다.


“어차피 올해도 ParaMax 잔치구만 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작년 한 해 온갖 국제영화제를 휩쓸고 다녔다.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등을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JHO Company Group 특히 ParaMax Entertainment가 주요 상을 모두 쓸어 담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세 개 부분을, <There Will Be Blood>가 남우주연상과 촬영상을, 자회사 JHO/Working Title이 제작한 <어톤먼트>가 음악상을, <엘리자베스 : 골든 에이지>가 의상상, Pixart의 <라따뚜이>가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본 얼터메이텀>으로 음악효과상, 음악 편집상, 편집상 세 개 부문을 수상했다.

자회사 Rock Castle의 <마이클 클레이튼>은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류지호의 <Frank Castle>은 각색상, 남우조연상(죠 트래볼타), 주제가상(Take Me Away) 등 세 개 부문에 후보를 올렸다.

수상에는 모두 실패했다.

만약 <There Will Be Blood>가 작품상을 수상했다면 류지호가 무대에 올랐을 수도 있다.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류지호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영화 선택 권리를 사용한 프로젝트였는데, 가장 중요한 제작비 조달과 캐스팅에 직접 나선 바 있다.

2년 이상 투자를 받지 못하고 할리우드를 떠돌던 스크립트가 JHO Pictures까지 흘러 들어왔는데, 류지호는 보자마자 프로젝트를 ParaMax로 가지고 갔다.

오랜만에 영화 권리를 사용해 죽어가던 프로젝트를 회생시켰다.

작품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살아있는 메소드 연기의 화신 다니엘 D 루이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촬영상도 가져감으로써 두 개 부문 수상 작품이 됐다.

참고로 <There Will Be Blood>는 영국의 유력지 The Guardia이 선정한 100대 영화 1위, BBC 선정 21세기 최고 영화100선에서 8위에 랭크된다.

그렇듯 아카데미 수상 무대에 서지 못하더라도 류지호 이름 석 자는 할리우드는 물론이고 세계 영화 역사에서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새겨지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와 언론이 류지호의 업적을 감추고 축소시켜봐야 소용없다.

유대계 할리우드 자본이 류지호의 영향력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

류지호를 놀리기 위해 붙였던 ‘Mr. Hollywood'라는 닉네임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씨앗이 몽글몽글 꽃봉오리를 계속해서 키워가고 있고.

그 꽃봉오리가 열리며 개화되는 순간.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영웅서사는 강한 적에 의해 완성되듯이.


❉ ❉ ❉


최근 여주에서 시 승격 바람이 불고 있다.

류민상은 그 움직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 승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문제로 여주 군민들이 편을 갈라 갈등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형님들, 나도 갑시다.”


여주 읍내 나들이를 나서는 류민상과 황봉호 무리에게 고성재가 따라붙었다.

말만 나들이다.

사실은 여주군수의 초대로 군청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여주군은 ‘여주시 설치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을 신설했다.

내년을 시 승격 원년의 해로 선포했다.

주민의견 수렴 절차도 시작했다.

새해가 밝자마자 두 번째 설명회를 개최했다.

다음 달 초순에는 주민 여론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보게.”


류민상의 부름에 황봉호가 고개를 돌렸다.


“여주가 시로 승격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거야?”

“문제없지.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인구 5만 명 이상의 도시 형태를 갖춘 지역이 있고, 도시적 산업종사자 가구수가 45% 이상이고, 또 재정자립도가 전국 군 평균치를 넘으면 시가 될 수 있다고 나와 있네.”


나름 구청장까지 지내다가 정년퇴임한 황봉호다.

여주에 불고 있는 시 승격 바람에 대해 류민상보다 더 많은 걸 유추할 수 있었다.

평생 공무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행정업무에 관해 밝았다.

어렵고 복잡한 행정절차에 대해 류민상에게 종종 조언을 해주고 있다.

암튼 여주군은 인구 5만4천명이 사는 읍이 있고, 도시적 산업종사자 가구수가 76.8%며, 재정자립도가 47.9%로 전국 군 재정자립도 평균치 28%를 훌쩍 넘어선다.

이미 시 승격 자격은 충분히 갖췄다.

가온그룹 사업체가 다수 군에 들어와 있고, 젊은 인구가 상당수 유입되면서 지방자치법에 정해진 시 설치 기준인 인구, 도시 산업종사자 비율, 재정자립도 등을 넉넉하게 갖추고 있다.

현재 여주군 전체 인구는 11만을 훌쩍 넘겼다.

여주읍만 5만 4천여 명이다.

도시 산업종사자 가구 비율 하한선인 45%를 넘어야 하는 조건 역시 77%로 너끈히 넘었다.

재정자립도는 43.9%로 전국 군 지역 평균(17%)의 배가 넘고.


“시로 승격되려면 어디서 허가를 해줘야 하는 거야?”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해야 할 걸? 최종적으로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


시로 승격하려면 군의회 동의를 얻어 경기도와 도의회를 거친 건의문이 행정안전부 심사에서 통과돼야 한다.

이후 국무회의와 국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아직 농사를 짓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지.....”

“그래서 일반도시가 아니라 도농복합도시 형태가 될 거야.”


지표상으로는 시 승격이 문제될 게 없다.

관건은 여론이다.

도시 지역인 여주읍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시로 승격되면 도시 지역은 동(洞)이 설치돼 지금까지 누려온 농촌 지역의 혜택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로 승격되면 안 좋은 거 아닌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고성재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물었다.


“시골보다 도시가 되는 게 좋은 거 아니요?”

“사실 시승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주읍에 살고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라고 할 수 있지. 새롭게 행정개편이 되는 여주읍 지역은 농어촌 수험생 특례 혜택이 사라지거든.”


여주읍 3개 고등학교에서 평균 200여명이 농어촌 특례로 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전체 학생의 73%나 된다.

여주군의 16세 미만 학생 1만 7천여 명 중 60%가 여주읍에 살고 있다.

입시혜택을 보기 위해 수도권 도시 지역에서 여주군으로 일부러 이사 온 주민들도 꽤 많다.

여주군 입장에서도 시로 승격 후 그런 가구를 묶어둘 메리트가 사라지게 된다.


“아마 고등학교 입학금과 수업료도 오를 거야. 군청에 물어보니까 연간 115만 원 정도 농어민자녀 학자금이 있었대. 농어촌교사 특별근무수당이 한 11만 원 정도 되는데 그것도 받지 못하게 되겠지.”

“여주에 1만 7천 명이나 학생이 살고 있는 줄은 몰랐네.”

“입시생 빼고.”

“협력업체 사장한테 들으니까 주민세, 사업자의 면허세, 국민건강보험료도 오른다고 하던데... 맞는 거요?”

“군청 공무원이나 경제적인 능력이 되는 가온타운 주민 같이 특정인에게만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갈 뿐, 오히려 주민 부담만 늘어나게 될지도 몰라.”


황봉호는 시 승격에 대해 부정적이다.

건강보험의 경우 농어촌 감면과 농어민 감면 등 50% 감면 혜택이 사라지면서 전체 2만2천여 가구의 30%가량인 7천여 가구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각종 인·허가에 따른 등록면허세는 1건당 2000원~1만2000원 오르고, 자동차 환경개선부담금은 1대당 3만원, 시설물은 1건당 1만5,000원 늘어난다.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지원을 받는 복지 대상자가 추가로 늘어난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나 노령연금 대상자의 선별을 위한 기본공제액이 상향 조정돼 1천 600여명이 추가 혜택을 보게 된다.


“우리 류 의장은 뭐라고 해?”

“큰 애?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장점도 많다고 하더구만.”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장점?”

“대규모 택지개발과 기반시설이 확대돼 기업체와 병원, 학교, 문화시설 등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더군. 여주가 시가 되면 읍이 하나, 동 세 개, 면이 여덟 개로 나뉘게 되고, 가온타운도 정식으로 동으로 승격되면서 행정서비스가 개선되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고 해.”

“아마 땅값도 오르게 되겠지.”


고성재가 끼어들었다.


“형님들, 여주 사람들이 왜 편을 나눠서 싸우는지 이제야 알겠수.”


고개를 끄덕인 황봉호가 류민상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류 의장은 시로 승격되는 걸 찬성하는 거야?”

“큰 애 입장에서는 여주가 시로 승격되는 것이 좋은 가봐.”

“형님! 그렇다면 우린 군청에 힘을 실어야줘야겠소.”


끄덕.


류민상과 황봉호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세 사람은 여주군이 구성한 추진위원회 주민설명회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류민상에게도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다.


“주민들끼리 싸우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더이다. 내가 가온타운의 대표도 아니고 대변할 자격도 없지만.... 내 아들이 그럽니다. 여주가 시로 승격되면 종합병원도 짓고, 대학도 짓고 할 텐데...라고.”


설명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술렁였다.


“지금 여주읍과 가온타운에 주로 주민들이 모여살고 있고, 군 전반적으로 주민들의 생활 인프라가 들쑥날쑥하지요.”


시승격 반대 측 남자가 외쳤다.


- 어르신! 가온타운은 외부인을 받아주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살지 않습니까!

“그곳은 가온그룹의 사유지니까요. 지금 화를 내는 분은 가온타운 근처 농가들에 가온그룹에서 새집으로 고쳐준 것은 못 들은 모양입니다. 하수처리장도 두 개를 지어서 여주군에 기증했던 것도 잊은 모양이고요. 종합촬영소 소방대가 여주군 내에서 발생하는 산불 진화에 출동해서 수차례 도운 것도.”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큰 애가 그럽디다. 당장 종합병원을 지을 순 없고, 먼저 여주와 이천에 있는 병원을 확장시킬 거라고. 또 이천, 여주, 양평 이쪽에 극장이 없는데, 극장도 만들어야겠다고. 대형마트는 전통시장 상권에 피해가 갈 수 있을 것 같아 유보 중이라고.”


시 승격을 반대하는 측 주민들까지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때 황봉호가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공무원 한 명이 얼른 달려와 마이크를 건넸다.


“그런데 말이요. 우리 의장이 병원도 지어주고 극장도 지어주면 뭐합니까? 사람이 있어야지. 여주는 11만이 살고 옆에 이천은 21만 명이 살아요. 여러분이 기업하는 사람이면 어디에 병원을 짓고 어디에 극장을 지을 것이며 어디에 대학교를 지을 것이요.”


군수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저어... 어르신. 군이라고 해서 못 지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도시하고 농어촌은 법도 다르고 혜택도 다른 법이라오. 군수도 잘 알지 않소?”


일장일단이 있다.

그런데 듣기에 따라서 시로 승격되지 않으면, 가온그룹이 여주에 병원이나 대학을 안 지을 것이란 소리처럼 들렸다.


“늙은이의 어쭙잖은 참견인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서로 편을 갈라 싸울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쪽으로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내가 먼저 양보를 해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양보를 하는 법이에요.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여주가 젊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나이 많은 이들도 많이 살지 않소? 노인도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조금만 양보를 해주길 바랍니다. 서로 한 발씩 물러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할 말은 다 하되 목소리 볼륨만 조금 줄여보세요. 옛 말에 소인은 목소리만 크고 대인은 할 말만 한다고 하지 않소.”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한 류민상이 마이크를 돌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긴장감마저 흐르던 주민설명회였다.

류민상과 황봉호의 발언으로 맥이 탁 풀려버렸다.


우르르.


반대측 주민들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여주·이천 지역에서 류지호 부친에게 함부로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에.

여주는 1469년 예종 원년에 세종대왕의 능침이 헌인릉에서 여주로 천장(이장)해 오면서 여흥보호부에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시(市)에 해당하는‘여주목(牧)’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전국의 20개 목(牧) 중에서 경기 동남부권의 중심지였다.

주변지역을 아우르며 번영의 시기를 누렸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년) 여주목이 여주군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충주부의 속군으로 재편되어 지금까지 수도권정비계획법, 자연보전권역, 상수원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로 개발이 제한되는 등 경기도내에서도 몇 개밖에 되지 않은 군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여주군이 시로 승격하게 되면 110여년 만에 여주목의 영광을 되찾는 셈이다.

추후 가온그룹뿐만 아니라, 뉴월드그룹 등의 투자로 도농복합도시를 넘어 스튜디오 시티 및 웰빙 휴양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은퇴한 중장년들이 선호하는 도시가 된다.


작가의말

활기찬 한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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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4.01.22 09:16
    No. 1

    뭐 언어에 대한 부분은 이민온 가족마다 가치관이 다르지만 집에서 영어한다고 늘지 않아요 성인들은. 애를 낳고 애랑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하거나 배우자가 원어민이 아닌 이상. 1세대들끼리는 서로 영어 해봤자 (하기도 힘들지만) 의만 상할 수도 있죠 ㅋㅋ 부부가 서로에게 운전교습시켜주는 상상을 하시면 될 듯.

    영어 빨리 느는 방법은 또 성격에 따라 다 다르지만 원어민이랑 자주 많이 얘기하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전문직업군은 같은 직종 사람들끼리 대화를 많이 할 필요가 있는데 의사는 환자들과도 대화를 해야 하니 난이도가 많이 올라가죠.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1.22 23:30
    No. 2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4.01.23 18:43
    No. 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도 처음 들었을때 확 와닫고
    영화도 재미 있었습니다.
    이제 초대형급 영화에 도전 해볼때 아닌가요?
    기술도 있고 돈도 있는데 이제 시작해도
    편당 제작기간이 길어 몇편 못만들 텐데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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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 아무나 대기업 총수로 살아갈 순 없는 법이지. +8 24.01.29 1,730 88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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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6 24.01.26 1,741 85 27쪽
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40 88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719 8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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