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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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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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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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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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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류지호와 황재정이 재단법인 태권도진흥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태권도원이 들어설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년 3월에 태권도 성지화 사업의 첫 삽을 뜰 예정이다.

총면적 76만 평에 총사업비 2,475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류지호는 설천면의 한 식당에서 용연태권도장 출신의 김홍일과 마주했다.


“무주CC에서 골프치고 서울 올라가려다가 후배님이 내려와 있다고 해서 연락 한 번 해봤어.”


김홍일이 함께 자리한 인물을 소개했다.


“인사해, 송 사무총장. 여기 이 친구가 류지호 의장이야.”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태권도진흥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송명훈입니다.”

“류지홉니다. 반갑습니다.”


류지호는 의례적으로 사무총장과 악수를 나눴다.

황재정도 사무총장과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막걸리 한 잔, 어때?”

“서울 안 올라가세요?”

“내가 운전하나.”


김홍일이 따로 앉아 있는 고우찬을 향해 물었다.


“아우는 근무 중인가?”


류지호도 거들었다.


“껴서 막걸리 한 잔 할래?”

“괜찮습니다.”


홍 관장의 제자들은 곧잘 모여서 막걸리를 마시곤 한다.

고우찬이 보기에는 서민코스프레에 불과했다.

이미 한참 전에 서민의 삶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서민을 상징하는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다고 해서 서민의 눈높이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태권도 성지 사업에 여기 사무총장이 큰 공헌을 했어.”


김홍일이 류지호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을 이었다.


“재단설립부터 행정적인 체계를 거의 다 잡아 준 친구야. 가장 힘들었던 태권도진흥과 공원 조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했지.”


김홍일이 사무총장을 한껏 띠웠다.

태권도인인 줄 알았는데, 정통 행정 관료인 모양이다.


“조성사업에서 건설사 선정에 잡음이 없나 보던데.... 날파리가 꼬이지 않았나 봐요?”


김홍일이 대신 대답했다.


“컨소시엄에 오성물산과 두진건설이 참여하니까. 대기업이 메인 시공사로 참여하는 턴키방식으로 진행하니 어중이떠중이는 끼질 못했어.”

“2013년 상반기 준공이 목표였나요?”

“응. 드디어 태권도인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하하.”

“태권도로 장사하려는 사람, 정치하려는 사람의 염원 아니고요?”


컥.


시원하게 막걸리를 삼키던 김홍일이 사래가 걸렸다.

사무총장이 입을 열었다.


“태권도 성지가 조성되면 연간 3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오고, 경제적 부가가치 효과만 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태권도계뿐만 아니라, 무주 지역경제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류지호는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전북의 인구가 210만 명인가 그렇죠? 전북 인구보다 90만 명이 더 많은 외지인이 태권도성지를 찾아온다.... 국내 태권도 수련 인구의 95%가 어린이들인데, 태권도공원이 그 아이들에게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유인할 수 있을지. 방문객 예상 수치와 경제 효과가 너무 희망적인 것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외 방문 관광객만 242만 6천 명에 이르고, 태권도 지도자 연수와 각종 태권도 대회 참가자 등을 포함하면 308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 태권도진흥원이 발표했다.

방문객이 전북에서 3만 원 정도를 사용할 경우, 태권도성지의 직접적인 부가가치 효과는 1,000억 원에 달한다는 추산도 덧붙였다.

문화관광상품 창출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관련 산업을 동시에 성장하게 한다는 기대효과로 인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환상을 심고 있다.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호기심이 생긴 적이 있어요.”

“......?”

“과연 태권도 산업 규모가 얼마나 될지에 관한 호기심이었죠. 나름 생활스포츠로서 역사가 짧지 않은 태권도에 관련해서 데이터가 없더군요. 명색이 올림픽 종목인데, 통계보다 항상 추정치를 근거로 제시하더군요.”


세계태권도연맹(WTF) 회원국 179개 국가.

세계태권도인구 대략 6,000만~8,000만 명 추산.

태권도 용품시장 규모 연간 5000~7000억 원 추산.

국기원 단증발급 수입 연간 100억 원 추산.

각종 태권도 프로그램 수입 400~700억 원 추산.

해외파견 및 이주 태권도 사범 대략 2만 명 추산.

외국인 태권도 사범 대략 4만 명 추산.

사범 수입 연간 3조 6천억 원 추산.

이 시기에서 4조~5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왔다.

태권도복, 태권도화 같이 대회에서 직접 사용하는 제품을 비롯해 발차기미트, 손미트, 샌드백 등 훈련할 때 사용하는 수련용품 등도 전 세계에 팔리고 있다.

태권도를 관장하는 기관인 국기원은 전 세계에 단증을 발급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워낙 국기원 비리가 많아 점차 해외에서 자체적으로 단증을 발급하는 추세긴 했지만.

한때 국기원은 국내에서 43만장, 해외에서 9만여 장, 재발급 5만~6만장의 단증을 연간 발급했다.

태권도를 세계 각국에서 가르치는 사범들의 수입도 태권도 산업의 큰 부분을 담당한다.

사범의 임금은 천차만별이지만 국기원이 저개발 국가에 파견하는 사범의 평균 연봉이 2,000만 원임을 감안하면 4,000억 원의 인력시장이 존재하고 있다.

태권도 종주국에서 열리는 태권도문화엑스포, 태권도한마당, 각종 국제대회 등 관련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태권도인도 연간 약 2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보통 2~3주 정도 체류하는데, 하루 평균 체재비로 120~150달러를 쓴다.

적게는 386억 원에서 많게는 724억 원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태권도 캠프, 관광, 세미나 등 태권도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방한하는 외국인까지 합치면 관련 시장의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각보다 태권도 산업 규모가 커서 류지호는 꽤나 놀랐다.

그래서 문의를 해보았다.

태권도 산업의 통계, 산업현황, 경제적 부가가치 등 객관화 된 것이 있는가를.

없었다.

태권도 관련 단체든, 태권도 학과든, 정부든, 그 어떤 곳에서도 태권도를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한 적이 없었다.

무려 4~5조원 대(추정) 시장을 가진 산업임에도.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이면서 태권도 전문 용품 브랜드가 없다.

니케, 아디다슬러 같은 세계적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받아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해서 쓴다.

류지호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았지만, 누구하나 지루해 하지 않았다.

사무총장은 입까지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홍일이 입을 열었다.


“가온그룹이 새만금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에 기대를 걸고 있어. 아마 전북도가 들썩들썩 하겠지. 아마 태권도성지를 찾아오는 이들도 당초 예상보다 많아질 거야.”


의욕에 불타고 있는 사무총장과 김홍일에게 황재정이 찬물을 확 끼얹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 태권도성지라는 곳이 어떤 선호도와 구매력으로 태권도인과 일반인들을 끌어들일지 의문입니다. 설사 태권도성지 개장 초기에 300만 명을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독립기념관과 엑스포공원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방문객이 급감할 것 같은데 말이죠.”


황재정은 꽤나 신랄했다.


“태권도협회나 그런 데서 정확한 태권도인구를 계산할 수나 있습니까?”

“현재 대한태권도협회에 등록된 도장은 8,000개가 조금 넘고. WTF 회원국이 179개 국가에 달하며 등록된 태권도장 수가....”


황재정이 말을 끊었다.


“WTF 가입국이 179개국인 것과 태권도 인구가 6,000만 명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그런 통계를 추정하는 과학적인 방식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수련생들이 그 6,000만 명 수련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들었는데, 거기 사람들이 무슨 돈으로 한국을 방문할지도 모르겠고. 그 가난한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무슨 돈을 써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납득이 되겠습니까?”

“....!”


전 세계 태권도인 규모를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순 없다.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에 상당한 수련생이 있는 것은 알지만,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동호인들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최대한 합리적으로 추정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황재정의 태도는 다소 싸가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북미와 유럽에서 태권도의 정신과 예절 가르침이 나름 존중을 받는다.

정작 종주국에서는 조롱을 받는 처지다.

과도한 스포츠화로 무술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기에.

한국에서는 어릴 때 재미삼아 잠시 배우고 지나가는 코스내지는 태권도장이 어린이집 대용으로 위상이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무주 태권도성지가 세계 태권도인들의 성지로 조성될 예정이지만, 성지가 가져야 할 상징성과 특별함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세계 태권도인들이 매년 찾아 올 수 있는 성지순례 코스가 필요한데, 현재 명예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명인전의 기부금이 많이 모이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돈 좀 보태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태권도성지에 명인전을 조성하기로 했다.

예산이 없다.

할 수 없이 기부금을 모아 건립하기로 했다.

당초 기대와 달리 기업은행 협찬금 22억 원을 제외하고, 실제 태권도인들이 낸 기부금은 1억 원도 안 모였다.

심지어 류지호마저 한 푼도 기부하지 않은 상황이다.


- 무늬만 태권도 성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자칫, 여의도 절반 면적의 넓기만 한, 파리만 날리는 관광지로 끝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류지호가 한국의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후배님이 관장님 좀 설득해 주면 안 되겠나?”


류지호는 정색까지 하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싫습니다. 가뜩이나 연로하신 관장님 속 시끄럽게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선배님도 관장님께 쓸데없는 말하지 마세요.”


태권도성지에 태권도 명인을 상주시키는 문제가 논의 중이다.

명예의 전당에 전 세계 태권도 거물의 일대기와 물품 등을 전시하자는 의견도 있다.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정신적·문화적으로 선도할 권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용연태권도의 홍 관장을 무주 태권도성지로 모실 생각을 했다.

홍 관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선배님, 관장님 귀찮게 하지 마세요. 내가 화를 낼지 모릅니다.”

“이보게. 여기 재단은 예전에 그런 썩은 곳과 많이 달라.”

“세상에 절대 안 바뀌는 데가 있어요. 그런 곳 중에 한 곳이 나랏돈에 의지해서 운영되는 단체들입니다. 열심히 노력 안 해도 국가가 매년 꼬박꼬박 재정지원을 해주고. 삥땅을 치든 뭐든지 끼리끼리 눈감아주고. 공무원들이 먼저 나서서 덮어주고. 그리고 고위 관료들이 퇴임 후 한 자리 차지하려고 눈독 들이고 정치인들까지 기웃거리기 때문에 부정과 비리가 없을 수가 없잖아요.”


류지호는 스승인 홍 관장을 까마귀 노는 곳에 발을 들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미스터 할리우드의 태권도 스승이란 명예만으로 충분하다 넘쳤다.

미국의 ABC, 영국의 BBC에서도 홍 관장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할 정도로 나름 유명인사다.

부패한 태권도인들이 한탕 해먹는 프로젝트에 발을 담글 이유가 없다.


“정말 태권도성지는 이대로 모른 척 할 텐가?”

“알아서들 하세요. 나는 관심 없습니다.”


이후로 태권도성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

사실 김홍일은 태권도 영화를 제작하자고 제안하려고 했다.

말도 못 꺼냈다.


“태권도성지와 관련해서 무주 리조트가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협조하라고 말은 해 놓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김홍일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빌어 류지호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하려던 사무총장이 풀이 죽어 떠나갔다.

김홍일은 체면만 구긴 채 막걸리에 취해 먼저 떠났다.


“......”


자칭 태권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류지호에게 태권도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류지로서는 그 같은 청탁이 매우 귀찮았다.

사실 JHO Pictures에서 태권도 영화를 한 편 기획 중이긴 했다.

이전 삶에서 쫄딱 망했던 한국/태국 합작 태권도 액션영화 <더 킥>은 아니다.

<풍운아>와 <이니셜 D> 등을 연출한 박은상 감독이 준비 중인 할리우드 영화다.

태권도 영화라기보다는 휴먼드라마에 가깝긴 하지만,


“진짜 태권도성지에 기부 안 할 거야?”

“안 해.”


류지호는 단호했다.


“무주 리조트와 연계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부로부터 지원 받는 각종 협회나 단체의 내부사정을 알면 알수록 정나미가 떨어져.”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태권도계 내부가 꽤나 복잡하고 방대하다.

내부갈등이나 이해관계가 굉장히 첨예해서 파벌도 은근히 많다.

그걸 풀 해법도 딱히 없다.

정부나 관련 기관도 손대기 어려울 정도다.

담당 공무원들도 태권도 부서에 발령받으면 '죽었다' 생각할 정도로 온갖 골치 아픈 사안이 많다.

민원은 뭐가 그리도 많은지.

시도 때도 없이 비리 사건이 터지다보니 국기원을 신뢰할 수 없다며 자체 단증을 발행하는 해외태권도 지부가 많아지고 있다.

고우찬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지만 해외에서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위상이 말도 아니게 추락하고 있어. 아프리카같이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 태권도 수련생들만 뭔가 환상이 있지.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국의 태권도 협회나 국기원 권위 인정 안 해.”


미국의 태권도인들이 류지호를 찾아와 미래를 걱정하며 문제의식을 토로하곤 한다.

하소연을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따라서 종주국과 관계를 멀리하며 점차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어떤 단체나 마찬가지지만, 양아치들이 물러나니까 정치인들의 놀이터가 되었어. 태권도판이....!”


류지호가 비아냥댔다.


“언제는 뭐 태권도계가 맑고 깨끗한 청정지대였냐?”

“그전에도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완전 정치판이야. 회복불능으로 완전 망가졌어.”

“오죽하면 태권도인들 사이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 퇴출된다면 그 이유가 태권도 시합이 박진감이 떨어져서도 재미가 없어서도 아니라고 하겠냐. 발본색원할 수 없는 비리 때문일 것이란 자조까지 나온다.”


류지호의 말에 고우찬이 킥킥거렸다.

태권도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었기에.


‘나중에 우찬이 네가 태권도판을 한 번 크게 뒤집어 놓던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황재정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개혁을 힘으로 하냐?”

“뭐로 하는데?”

“대의.”

“지랄한다.”


류지호가 황재정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막걸리 몇 잔에 술기운이 기분 좋게 올라왔다.


“애들아, 세상에 나쁜 사람 진짜 많다.”

“뭘 새삼스럽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자기들끼리 왕국을 만들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냐고.”


황재정이 류지호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 왕국을 자기 돈으로 만들었다면 또 몰라. 세금에서 나오는 국고가 지원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기관조차도 사유화되어서 왕국처럼 운영되고 있어서 문제잖아!”


고우찬이 황재정의 다른쪽 어깨에 팔을 걸쳤다.


“5단 딸 때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성질 같아서는 다 조져버리고 싶은데... 국기원이 100억 넘게 나라에서 지원받고 태권도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거든. 낙하산으로 오는 새끼들이 자기 정치 놀이터처럼 만들었어. 지들이 무슨 조폭 두목도 아닌데 직원을 부하처럼 부리고, 옳은 소리하는 사범들 자격까지 취소하고, 무자격자 단증 발급에... 일일이 나열하면 입만 아프다, 아주.”


황재정이 고우찬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다.

꿈쩍하지 않았다.

체념한 황재정이 짜증을 부렸다.


“그런 곳이 얼마나 많겠냐? 개나 소나 전직현직 국회의원이야. 새만금개발하면서 만나는 인간들 중에서 정치인하고 연결이 안 된 인간이 없어. 국회의원은 300명밖에 안 뽑는데, 무슨 정치인들이 그렇게 많아? 개나 소나 다 전직 의원이래?”


누군가는 정치인의 위세를 빌려 호의호식하고.

정치인은 그런 이들을 부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구조.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다.


“왜 내가 낸 피 같은 세금으로 뭣 같은 인간들 영달에 기여 해줘야 하냐? 나도 지호 따라서 확 한국 뜰까 그냥?”

“우찬아, 한국인으로 그냥 살어. 미국은 더해. 저기 북유럽 나라라면 모를까 다른 나라도 다 거기서 거기다.”

“한국이 그렇게 좋으면 넌 왜 국적 바꿨는데?”

“연말이나 내년 초에 가면 내 고충을 알 수 있을 거다.”

“올 연말까지 뭐 하러 기다려. 당장 말해 봐.”


류지호는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 고충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 특별한 이유는 아니다.

어차피 몇 달 지나면 저절로 알 게 된다.


‘우찬이나 재욱이는 재정이가 일일이 설명해줘야 알 수 있으려나....?’


❉ ❉ ❉


이번에 출국하면 올해 안에 류지호가 한국에 들어올 일은 없다.

따라서 가온그룹의 CEO들이 류지호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몇 개 사안을 들고 찾아왔다.

월가에서 금융부문 대형사고(Rehman Bro 파산 같은)가 터지게 되면, 이후로 가온그룹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게 될 터.

특히 몇 개의 기업을 인수·합병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소닉센터?”

“그렇습니다.”


가온그룹 회장 래리 킴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에 뜬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에 있는 그 소닉센터요?”

“예.”


베를린 광장에 위치한 소닉센터는 6억 달러를 들여 지난 2000년 준공했는데, 이후 스탠리모웬에 매각 후 재임대(Sale And Lease Back) 옵션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다.

그걸 가온그룹에서 인수하겠단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로 스탠리모웬도 상황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일부 해외자산을 매각하려고 하는데 마침 베를린 영화제가 치러지는 빌딩을 내놓을 것 같아서 6억 유로 선에서 구매협상을 진행하고 있죠.”


한화로 약 8,000억 원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구미가 당기는 매물이긴 했다.


“소닉센터에 독일 최대 Eye-MAX 상영관과 멀티플렉스가 있긴 하죠.”


최초의 Eye-MAX 상업극영화 <복수의 꽃>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 상영관이기도 했다.


"G.O.M이 독일의 베를린을 전진기지로 해서 동유럽 시장을 공략 중이지요.“

“폴란드의 멀티플렉스 체인 인수를 타진 중이란 이야기는 들었어요.”

“오 사장은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폴란드 시장에 진입하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란 생각입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G.O.M이 직접 점포를 늘려 가면 되니까.”


가온그룹 극장사업 부문에서는 동유럽 국가에서 수십 개 극장을 운영할 계획이 없다.


“독일의 제조업체를 노릴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리서치를 하긴 하지만, 의약품, 바이오기술, 의료기술, 홈케어 등에 관심을 두고 있지요.


류지호는 내심 세계 4대 로봇업체 중 하나인 Industrie KUGA를 눈독 들이고 있다.

당장은 인수할 엄두가 나진 않지만.

벌써부터 중국에서 탐을 내고 있기도 하고.

돈싸움에서 류지호가 중국에 질 이유가 없기에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 외에도 식사 중에 M&A 타깃으로 삼고 있는 몇 개 기업이 래리 킴 입에서 오르내렸다.


“금액에서 이견을 보일 순 있어도, 적어도 국가가 나서서 제동을 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룹이 크게 성장할 수도 있다.

워낙에 준비를 철저히 해두었기에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은 계획대로 될 것 같았다.


“좋은 결과 있길 바래요.”


래리 킴 회장과 식사를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오자 의외의 인물이 찾아왔다.

WaW종합촬영소 정인국 사장이었다.


“Gekko?”

“예. 감독님!”

“뭐 하는 회사입니까?”

“영화 조명장비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영화 조명업체를 인수하겠다는 겁니까? 왜 요?”

“Gekko는 LED 기반 조명기구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감독님께서 프로듀싱 하신 할리우드 영화 <Mamma Mia>와 <Star Trek>의 스튜디오 세트 촬영에 사용되었습니다.”

“아, 그 회사였군요?”

“아직 로케이션용으로 사용할 순 없지만, 스튜디오용 조명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색온도 문제가 해결되었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수하려고 합니다.”

“한국에는 LED 조명기를 만들 업체가 없어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LED 패키지와 램프를 한양반도체와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할 수 있어 두 회사 간 시너지가 기대됩니다.”

“굳이 LED 생산 업체를 인수해야 하나 싶은데....?”

“예전에 감독님께서 미래형 스튜디오에 대한 비전을 들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완제품을 구입해서 테스트를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사운드 스테이지가 지금 9개였던가요?”

“그렇습니다. 9개 세트장 모두 LED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면 수 십 억이 필요합니다. 차라리 그 자금으로 Gekko 같은 기술력을 갖춘 업체를 사들여 종합촬영소 세트장 시설을 테스트베드로 사용하면, 비용절감과 R&D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Gekko는 어디에 소재하고 있어요?”

“영국 업체입니다.”

“인수자금이 모자라서 내게 온 건 아니죠?”

“아닙니다. 최근 몇 년 간 스튜디오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 것이 없어서, Gekko 정도 업체를 인수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한양반도체와도 의논해 봤습니까?”

“예. 몇 개 시제품을 만들긴 했지만, 자신들은 완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계속 지키고 싶답니다. Gekko를 저희가 인수합병하면 향후 공동연구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좋습니다.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정인국 사장이 힘찬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떠나갔다.

이로써 종합촬영소에 촬영 시설 및 장비 임대 외 새로운 사업모델이 생겼다.

정인국 사장은 Eye-MAX의 MPX가 부럽다고 종종 이야기 하곤 했다.

방송·영화용 조명시장은 원천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한 미국과 독일 회사의 독무대다.

LED 조명이 날로 발전하면서 그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 기회가 왔다.

정인국 사장은 방송·영화 조명장비에만 매몰될 생각이 없었다.

옥외용 대형 간판이나 매장 간판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의 3대 통신사 혹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자사 CI(Corporate Identity)를 교체할 때가 있다.

그 시기에 전국의 오프라인 매장 간판이 일시에 교체된다.

그런 사업을 수주해도 된다.

류지호는 잘 몰랐는데, Gekko Technology의 LED 조명기들이 영국 영화현장에서 제법 사용되고 있었다.

MSM의 자회사 AF Studios의 <Casino Royale>과 <Quantum of Solace>는 영국을 중심으로 프로덕션이 진행되었는데, 일부 장면에서 Gekko Technology의 LED 조명이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 역시도 LED 조명 장비들이 꽤 개발되어 있다.

생각난 김에 류지호는 미국의 데온 비베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봤다.


- Eye-MAX 영화에 쓸 정도는 아니야. 실내에서 조금 써볼 순 있겠지만.


<생명의 항해>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들었다.

아직은 필름 카메라에 적용할 정도로 기술이 올라오지 않았다.

70mm 필름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NCN USA 대표이사 김진수가 류지호를 찾아왔다.

몇 년 간 가족들과 PC방 투어를 하며 게임을 하고, 여행을 다니고, 음악에 심취하는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아이폰이 막 출시될 즈음 연락을 하더니 투자를 요청했다.

투자를 받고자 하는 스타트업은 이전 삶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애용했던 메신저를 탄생시켰던 아이윈랩이었다.


“이제 게임은 접었어요?”

“법사 레벨 40 찍어서 공대 좀 돌아볼까 했는데, 게임 그만 하고 출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와우가 유저 한 명을 잃었네요.”

“직장 생활한다고 게임 못하진 않습니다. 마누라 눈치는 좀 봐야겠지만....”


이 시기 김진수가 막 창업한 아이윈랩은 블로그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일 뿐이었다.

2년 후, 실시간 그룹형 커뮤니티 서비스 마이크로카페 ‘바나나아지트’가 출시되며 본격적으로 모바일 메신저 앱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류지호(가온투자파트너스)의 아이윈랩 지분은 49%고 나머지 51%는 김진수와 서울대 출신 후배 공동 창업자들이 나눠 보유했다.

아이윈랩 투자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에는 황재정, 김석민, 이태경 등 서울대 출신들이 찾아와 김진수의 투자유치를 축하를 해 주기도 했다.

NAVE에 이어 BANANA까지 투자함으로써 국내 포털과 메신저 두 분야에서 모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작가의말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새 두 달이 후딱 가버렸습니다.

활기차게 봄을 맞이하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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