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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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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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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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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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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 한국영화 붐은 애당초 없었다. 단지 욘사마와 드라마의 인기였을 뿐.

└ 붐이 있었기 때문에 몇 개 건진 작품은 있는데.

└ 차분하게 저변을 넓히기보다 갑자기 너무 요란스럽게 홍보를 해대는 바람에 역효과가 난 것 같다.

└ 결국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안보는 것이다.

└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일본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

└ 한류붐이라는 게 애당초 중년여성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래로의 파급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고, 이것이 한국영화가 전체 관객에게 퍼지는데 한계로 작용했다고 본다.


- 일본은 영화 티켓값이 한국보다 훨씬 비싸. 관객들의 눈도 까다로워서 붐을 일으킨다고 해서 그것이 쉽게 흥행으로 연결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 한류붐은 끝났지만, 적어도 10편은 멋진 영화가 있었어.

└ 그러니까 아줌마들께 감사하고 있어.


- 미스타 할리우드가 한국에서 만든 영화들은 일본영화가 채워주지 못하는 아시아 영화만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

└ 박진우, 공진형도 있지.

└ <살인의 추억> → <괴물> 크게 기대 → 그러나 실망....!

└ 솔직히 <괴물>의 유머를 이해할 수 없었어. 누가 설명 좀 해줘.

└ 그래도 CG는 좋았던 것 같아.

└ 모르는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무척 난감 했어.


- 일본에서 한국영화 부진에 관해서 혐한 무드가 붐에 찬물을 끼얹고, 여러 사정으로 정당하게 작품이 평가받지 못한다는 게 한국 언론의 논조야.

└ 말도 안 되는 소리!!!

└ 영화를 수출산업으로 띄우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조선인 주제에!

└ 재미없는 영화를 일본 관객이 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망상.

└ 예를 들면 한국영화계의 자랑 <괴물>은, 한국 말고 히트한 곳이 별로 없잖아. 자국민이 평가한 작품이 그대로 해외에서 평가받을 것이라는 황당무계한 자신감을 보고 있으면 웃기기도 하지만, 묘한 표현을 쓰자면 번지수를 잘 못 찾은 셈이다.

└ 그런 것을 탁상공론이라고 한다. 실제 부딪쳐보고 분석하고 깨달아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숫자만 가지고 평가한 것들.

└ 한국영화의 질과 자국민의 심미안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성을 더하지 않으면 홍콩영화계가 빠진 장기침체의 늪에서 헤매게 될 거야.

└ 모든 사람이 좋아할만한 할리우드 비즈니스의 흉내는 그만두고 한국영화 말고는 그려낼 수 없는 것을 진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해. 영화가 아닌 드라마였지만 <대장금>의 조선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 열심히 띄웠을 뿐 어차피 만들어진 붐, 식는 것도 빨라. 게다가 부자연스럽게 띄우니까 그 반동으로 혐한류 같은 것이 대세가 되고 말이지.

└ 미스타 할리우드가 한국에서 만드는 영화는 일본에서 그래도 선전하지 않았나?

└ 끝났다고 본다. 내가 생각할 때 한류 같은 건 없었어. 드라마가 반짝 관심을 끌었을 뿐. 대중이 받아들이지 않은데, 착각해서 할리우드 대작 같이 홍보를 하니까 흥행실패가 확실히 강조되는 거지. 크게 홍보를 해서, 대규모 로드쇼를 하면 실패 했을 때 더욱 비참한 결과가 되었지.

└한국영화를 사온 일본 배급회사도 엄청 바보라고 생각해.

└ 소극장이나 단관 영화관에서 작게 상영하면, 일부 마니아들이 보러 가서 좋은 작품이라면 입소문으로 인기가 생겼을 지도.

└ 배급회사가 한국영화를 할리우드 영화나 방화랑 같이 취급해서 상영하는 것은 너무 무모하지.


- 눈앞의 이익에 눈이 돌아가니 좋은 작품까지 못 보게 되잖아.

└ 그래도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복수의 꽃> 같은 좋은 작품도 많아.

└ 극소수야. 대부분은 대책 없는 것들이어서 말이지.

└ 한국인들은 빨리빨리가 문제야. 차분하게 기반을 다지지 않고 대량의 졸작을 보내서 꺼진 불이 된 거지.

└ 홍콩 영화는 10년은 갔는데, 한류라는 것은 3년 반짝하고 사라졌어.

└ 한국영화 팬층이라는 게, 이상하게 중년여성에게 편중되어 있잖아.

└ 그게 단명으로 끝난 커다란 요인!

└ 자멸의 길로 뛰어가는 상황이야! 유감!

└ 그래도 쓰레기 방화(일본영화)보다는 100배 낫다.

└ 인정. 방화는 말이지 세계에서 가장 쓰레기지. 한편도 기억이 안 난다.


최근 Yaaho! Japan에 달린 일본 관객들의 댓글들이었다.

한국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 물고 욕하기 바쁜 댓들도 상당했지만, 이성적인 것들만 추린 것들이 앞 서 언급한 내용이다.


- 한류스타 팬층 이외의 관객층을 확보하지 못했다.

- 영화의 주요 관객인 20~30대에게 한국영화는 한류 팬인 ‘아줌마 부대’를 위한 영화라는 선입견이 크다.

- 일부 세계적인 유명세가 있는 감독 작품과 소수의 한류스타 영화를 제외하면 매력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겠다.


최근 한국영화 혹은 한류에 대한 일본 젊은층의 진단들이었다.

일본의 전문가들 분석도 일반 관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괴물>은 북미와 아시아 지역에 수출되어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다.

그것과 달리 괴수 영화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시장에서는 매우 저조한 개봉 성과를 기록했다.

사실상 쫄딱 망했다.

평가도 별로 좋지 않았고.

영화 홍보도 엉망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수준의 터무니없는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한 것도 패착 중에 하나다.

특히, 국내 개봉 성과만 믿고 개봉 일정을 조정하지 않은 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경쟁시킨 것은 배짱이 아니라 망신주기가 아닌지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캐리비안의 해적>, <슈퍼맨 리턴즈>외에 일본 산 블록버스터 <일본 침몰>과 같은 시기에 개봉해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은 영화의 홍보 기간이 보통 6개월 이상이에요. 그런데 한국영화의 경우 한국에서의 마케팅 포인트를 그대로 가져가거나 한류스타에게만 의존해서 준비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씨네콰논의 부사장 이성연의 말이었다.

그녀는 한국의 배급사들과 일본의 수입업체들의 대책 없는 한국영화 마케팅과 전략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에서는 개봉 규모가 중요하겠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한국 영화의 인지도가 높지 않아요. 적은 수의 스크린으로 가면서 입소문을 노려야 하는데, 한류붐을 타고 일본 대형 배급사가 배급을 맡고 스크린 수를 너무 많이 잡으면서 비용만큼 결과가 안 나왔어요. 그러니 흥행실패가 더욱 크게 부각되는 거죠.”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의 스크린이 무려 200여 개였다.

일본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다.

한국의 배급사 입장에서 자국에서 400개 이상에서 개봉했기에 적어보였겠지만.


“한국영화를 일본에 개봉한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아마추어들 같아요.”


이성연이 그런 말 할 자격은 없었다.

사실상 <괴물>의 일본 홍보마케팅 전략을 제시한 것은 류지호였으니까.

류지호는 <괴물>을 일본영화 비수기에 개봉하자고 주장했다.

홍보마케팅 전략도 완전히 갈아엎도록 주문했다.

한국에서의 흥행은 강조해도 무방하다.

다만 블록버스터라는 대작 느낌을 강조하지 말 것.

일본 괴수영화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 같은 뉘앙스를 절대 풍기지 말 것.

가족 메시지와 한국 사회에 대한 풍자를 전면에 내세울 것.

한국식 블랙유머를 일본의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에 안내할 것.

류지호의 지침에 따라서 <괴물>의 일본 개봉 전략과 홍보마케팅이 원점에서 재검토됐다.

<괴물>이 담고 있는 사회풍자에 대한 TV광고 버전을 만들어 3개월 전부터 집중 방영했다.

일본관객이 공감하지 못하는 유머코드들에 힌트를 주기 위해 메이저 주간지를 50페이지 정도 사서 특집기사를 실었다.

<태풍>의 경우에는 탈북자들에 대해 소개하는 도쿄아사히TV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두 명의 한국의 미남배우들의 근사한 화보집을 관객에게 선착순으로 선물하기도 했다.

또한 두 영화 모두 첫 개봉은 30개 스크린에서 시작했다.

점차 입소문이 퍼지면서 180개 스크린까지 늘어났다.

결국 이전 삶과 달리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대흥행했고 한류스타가 나온다고 해서 모두 일본에서 성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괴물>의 유머와 한국사회가 가지 모순을 모르고 있다면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일본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온정적이고 순응적이다.

자국 내 사회 모순을 들춰내는 영화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내에서도 일부가 <괴물>의 풍자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한국 관객들이 <일본 침몰>을 돈 주고 안보는 것처럼, 일본 관객들도 굳이 <괴물>을 돈 주고 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 삶에서는 한국에서 1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적으로 흥행이 검증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짱을 뜨는 만용을 부렸다.

그러니 수입사는 본전도 못 건졌다.


“또 하나, 한국의 영화배급사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 있어요. 영화와 관련한 수입이 대부분 극장에서 발생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극장 수입은 30∼40%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한류스타, 한류스타 하는 거죠. 한류스타의 영화는 망해도 부가 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이니까.”


일본은 부가시장의 천국이다.

영화 관련 캐릭터 사업이나 화보집, DVD 등 부가판권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소설, 드라마 가이드북, OST 음반, DVD 세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판매고를 올렸다.

일본 방영 첫 해 관련 상품 매출이 45억 엔(약 425억 원)이었다.

<가을연가>, <올인>까지 합하면 한국 드라마로 NHK는 한 해 동안 77억 엔의 매출을 올렸다.

<겨울연가>의 경우 방영권 외에도 기타 일본 내 부가판권을 모두 NHK에 넘겨줬다.

실질적인 수익은 일본 측이 더 많이 가져갔다.


“배우의 홍보활동이나 초상권을 사용한 부가판권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 배급사와 한국 매니지먼트사 간에 마찰이 많다면서요?”

“한국측이 일본의 복잡한 계약에 익숙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고 있어요.”

“CHAN도 그래요?”

“할리우드식 계약에 익숙해서 그런지 큰 무리는 없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괴물>의 최종 스코어는 어떻게 되요?”

“12억 엔(130억 원)으로 겨우 체면치레는 했어요.”


류지호가 보기에 그 정도면 선방한 것이다.

아직 한국 영화가 많이 모자람에도 다른 이들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한류라는 ‘뽕’에 취해서 한국영화를 과대평가하는 경향들이 있어보였다.


“한국 콘텐츠로 당장 한 몫 잡겠다는 접근은 곤란해요. 한류 마니아층을 더 넓고 탄탄하게 구축하겠다는 마인드로 접근하길 바랍니다.”

“예!”


쥐뿔도 모르는 인간들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에서 천만 영화인 <괴물>이 일본에서 겨우 12억 엔의 수입으로 박스오피스 2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며 갑론을박이 상당했다.

일본 내에서는 <괴물>이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의 ‘폐기물 13호’를 표절했다며 영화를 깎아내리려고 애쓰는 세력도 활개 치기도 했다.

일부 문화평론가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 코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안타깝지만 주목 받지 못했다.

류지호는 본격 괴수 영화로 일본에 홍보하지 말라고 했다.

<살인의 추억> 감독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라고 했다.

괴수장르가 일상인 일본에서는 <괴물>을 그렇게 홍보해선 관객과 엇박자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생각하기에 일본의 괴수영화 팬들이 괴물이 늦게 등장하고 영웅이나 자위대에게 멋지게 처단되는 기존 괴수 영화의 공식과 한국영화 <괴물>의 차별성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했다.


“<괴물>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끌려가서 보는 괴수영화가 아닙니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데려가는 재난장르영화가 되어야 합니다.”


류지호는 일본판에 한정해서 <괴물>을 괴수영화가 아니라 일종의 재난영화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괴물> 포스터 카피는 다음과 같았다.


[만약 스미다 강에 괴물이 ‘짠’ 하고 등장하면 어떻게 할래, 너?]


한국인에게 이질적이고 유치한 카피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카피가 일반적이다.

일본의 영화 광고 카피에도 좋은 것이 많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카피도 그 만큼 많아서 그렇지.

이전 삶에서 Timely와 일본은 <어벤져스> 이후 악연으로 점철되었다.


[일본이여, 이것이 영화다.(日本よ、これが映画だ)]


<어벤져스> 일본 개봉 포스터 홍보카피였다.

이 카피로 인해 TCU 영화들이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렸다.

일본영화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일본 영화평론가들이 난리를 쳤다.

이후로 TCU가 일본에서 찍혀서 흥행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할리우드 배급사들의 고민 중에 하나가 일본 현지 포스터 문화다.

포스터에 들어가는 홍보 카피가 스포일러하기 일쑤다.


[직소! 반드시 죽인다.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


<Frank Castle>의 일본 포스터 홍보 카피다.

일본 표현법이 오글거리는 경향이 있다.

한국영화 포스터가 별로라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일본도 못지않다.

점점 좋아지곤 있긴 하지만.


“지금 한국영화 걱정할 때가 아니고. WaW 재팬에 대해 짤막하게 브리핑 해보세요.”


아직은 일본 영화계에서 WaW 재팬은 미미한 존재다.

다만 도쿄다카라와의 협력으로 매해 수익률을 좋은 편이다.

일본영화 시장도 2006년부터 르네상스가 다시 찾아오는 분위기다.

지난해 사상 최초로 1천억 엔을 넘겼다.

일본 영화들도 선전하고 있고.


“최근 <HERO> 극장판으로 17억 엔 상당의 수익을 분배 받았어요.”

“한국영화 붐은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예.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

“마켓 담당자들 반응은요?”

“예전처럼 한국영화라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하는 일은 많이 없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감독님이나 몇몇 글로벌 인지도를 가진 감독들의 좋은 작품은 여전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결국 일본영화가 제공하지 못하는 퀄리티의 영화를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인데....”


일본에서 한류가 죽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일본시장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일본 관객들은 외화에 대해 무척 까다로운 편이다.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도쿄다카라에서 뭐래요?”

“미온적이에요.”

“<일본침몰>과 유사하다고 봐요?”

“그런 것 같아요.”

“씨네콰논이 자체적으로 제작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일단 30억 엔 상당의 제작비 마련부터, 방송국을 물론이고 제작위원회 구성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다른 메이저와 접촉하면 되잖아요?”

“도쿄다카라와 관계가 돈독한 상황에서 다른 메이저와 접촉하는 것은.....”


한 번 쌓은 신뢰를 저버리는 배신행위다.

이전 삶에서, 2011년 3월 12일 15시 36분.

후쿠시마에서 인류 역사상 두 번째 7등급 원자력 사고가 벌어졌다.

도호쿠 지방에 일본 관측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무려 10m에 달하는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후쿠시마 원전 시설은 도쿄전력(Tepco)이 운영하고 있는데,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면서 핵연료가 녹아내려 수소 폭발이 발생했고 그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인근 47만 명이 긴급 피난을 떠나게 되었고,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 수는 1만8,500여 명에 달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게 되었다.

도쿄전력은 일본의 지독한 관료주의 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회사다.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의 문화도 여실히 드러났다.

WaW 엔터테인먼트에서 대표적인 일본통인 한중기 프로듀서의 입봉작품 <후쿠시마>의 대략적인 기획 방향이다.

류지호가 기본 방향을 잡았다.

스토리 라인만 보면 <일본침몰>과 유사한 대형 재난영화다.

아시아 최고 VFX회사인 WaW Digi Lab의 기술력이 총동원될 예정이다.

대지진부터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하는 모습까지.

이 시기 아시아권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비주얼을 보여주겠단 야심으로 가득 찬 기획이다.

제작비는 무려 30억 엔.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류지호는 <Collapse>라는 재난영화의 각본을 쓰고, 제작했다.

그를 통해 삼봉백화점 참사에 대해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난 속에서 사투를 벌였던 시민들이란 메시지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영화 <후쿠시마>는 도쿄전력의 직원들이 영웅으로 그려질 예정이다.

이전 삶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한 이후 최후까지 원전에 남아 있던 50명의 실제 이야기(회귀 전에)를 다룬다.

그 이야기는 한국의 원전사고 영화 <판도라>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내용은 이렇다.

원전 사고 발생으로 회사직원 750명이 철수했다.

그런데 50명의 근로자가 남아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원전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1년간 노출될 수 있는 방사선량의 100배가 넘는 악조건 속에서 냉각수를 주입하고 원자로의 압력을 낮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중기 프로듀서가 쓴 초고에서는 도쿄전력 직원들의 숭고한 희생을 중심으로 영웅담처럼 완성됐다.

즉 전형적인 재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르는 장르영화였다.

거기에 류지호가 일본 정부의 무능과 도쿄전력의 책임 회피 및 거짓말을 버무렸다.

일본 사회 관료사회의 병폐도 꼬집었다.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키길 기대했다.

전 세계 해안가에 지어진 원자력 발전소들이 <후쿠시마>를 계기로 안전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지금까지 류지호의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걸 보스도 잘 아시잖아요.”

“내가 도쿄다카라 회장을 한 번 만나 볼까요?”

“아니에요., 저희가 진행해 볼 게요. 카드를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10년에는 개봉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일본에서 도쿄다카라와 푸지TV가 함께 제작위원회로 참여하면 어지간해서는 안 망한다.

영화팬이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장장 6개월 동안 TV만 틀면 해당 영화를 홍보해대니까.

<후쿠시마> 역시 제작만 된다면 절대 망할 리가 없다.


“예. 근데... 보스?”

“.... 또 뭔데요?”

“진짜 국적을 바꾸시려고요?”

“인터뷰도 마쳤어요. 사실상 선서만 남은 셈이죠.”

“그, 그러셨구나....”

“국적이 뭐가 중요해요. 요즘 같은 글로벌 세상에.”


재일동포인 이성연 입장에서 국적은 매우 중요했다.

오빠와 자신은 아직까지 일본인으로 귀화를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일본사회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귀화를 거부하고 있다.


“보스께는 글로벌 세상이겠군요....”


이성연의 다소 씁쓸한 중얼거림을 류지호가 흘려들었다.


“뭐라고 했어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만에 하나 일본업자들이 한국영화를 수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WaW 재팬과 씨네콰논은 한국영화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도록 해요. 한국 콘텐츠가 꾸준히 일본에 소개되어야 한류 스타도 늘어나게 됩니다.”

“WaW 본사 영화와 함께 타 회사 영화도 열심히 리서치 하고 있어요.”

“잘 할 거라 믿어요.”


현재 일본영화시장은 극단적인 포화상태에 놓여 있다.

올해만 해도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인 자국영화가 400여 편이 넘는다.

일주일에 평균 8편이 개봉되어야 한다.

100여개가 넘는 영화들은 아예 극장 상영도 포기할 상황이다.

일본영화산업이 이런 포화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은 영화감독과 스타들에게 충격적일 만큼 적은 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감독들은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찍어 수입을 충당하고 배우들은 명성과 수입을 얻기 위해 TV드라마와 광고에 출연해야 한다.

인건비가 워낙 저렴하기에 영화를 날림으로 제작할 수가 있다.

한국 영화계가 표준계약서로 돌아가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일본영화산업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영화 티켓값이 한국 가격의 세배에 이르는 약 2만4천원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으니 좋을 것 같지만, 소득도 그대로인 것이 문제다.

국가의 경제 성장 둔화의 악순환의 고리는 일본 영화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저임금과 생산성 저하라는 문제를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러니 생산자나 소비자나 ‘아주 확실한’ 것만 찾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명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TV시리즈 실사화에만 집중한다.

그것이 안전한 길이니까.

이전 삶에서 2010년대 후반 한국영화도 똑같은 길을 따라갔다.

그 안전한 길이 결국 시장을 파괴한다는 걸 모른 채.


❉ ❉ ❉


도쿄의 신주쿠.

하라주쿠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 젊은이 거리다.

이 거리에는 20여 개 극장이 있어 '영화의 거리'로도 불린다.

주로 단관극장들이다.

그런 신주쿠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백색의 세련된 고층 건물.

8층 높이의 그리 높은 빌딩은 아니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들락거렸다.

젊은층 대부분이 신주쿠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극장, '신주쿠 G.O.M'을 찾는 이들이다.

건물 입구부터 Gate Of Movie가 눈에 확 들어온다.

G.O.M 직영점 특유의 시그니처 theatre Sign 때문이다.

올 초 문을 연 신주쿠의 두 번째 직영점이다.

일본 멀티플렉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분위기라서 일본 젊은이들에게 기념촬영 핫스팟으로도 유명하다.

신주쿠 거리 최초의 멀티플렉스는 도쿄다카라와 도쿄에이가가 공동으로 설립한 신주쿠 바르토다.

최근에는 G.O.M Cinemas가 무서운 기세로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특히 프리미어 레드카펫이 열릴 때면 영화팬이 아닌 이들까지 운집해 성황을 이루곤 한다.

바로 오늘처럼.


“Jay의 나라보다 팬들 반응이 재미가 좀 없는데....?”


<Frank Castle>의 일본 프로모션 레드카펫 행사를 마친 죠 트래볼타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기분 탓이겠죠. 마지막으로 언제 방문했는데요?”

“<페이스 오프>때 찾아왔으니까. 오랜 만이긴 해.”


한 때 정점을 찍었다가 내려오는 과정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다.

예전 같지 않은 것을 본인만 모른다.

죠 트래볼타는 비교적 일찍 받아들인 경우다.


‘그러니 A급, B급 가리지 않고 영화에 출연하는 걸 테지.’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후, 주요 일본방송에 출연해 영화 홍보에 열을 올렸다.

<Frank Castle>의 경쟁작이랄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다만 일본영화가 큰 적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들이.


“일본은 올 때마다 크게 안 바뀌는 느낌이 들어. 어째 시간이 멈춘 것 같다랄까.”

“마지막으로 온 것이 <페이스 오프>때라면서요?”

“그 후에 광고 찍으러 몇 번 왔었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의 침체기는 사회 곳곳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느낌이다.

류지호는 주로 영화계를 통해 그런 인상을 받곤 한다.

한국이었으면 두세 개 멀티플렉스 브랜드가 박 터지게 경쟁하고도 남을 도쿄 중심가가 평온하기만 하다.

그럴 정도로 일본의 멀티플렉스가 늘어나는 속도는 거북이가 따로 없다.

여전히 일본은 단관극장이 전체 극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시기 일본의 전체 스크린 수는 대략 3,000여 개.

일본의 극장체인 1위는 도쿄다카라 시네마즈다.

그런데 멀티플렉스 영업점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단관극장이 차지하고 있다.

순수 멀티플렉스 점포수만 놓고 보면 G.O.M Cinemas JAN이 16개로 1위다.

그 뒤를 109메가플렉스가 차지하고 있다.

영국계 극장 브랜드가 5위, 미국계 워너-타임과 AMT 등은 순위권에 겨우 올라와 있다.

일본의 멀티플렉스 시대를 연 것은 워너-타임 일본법인이었다.

이후로 G.O.M International이 인수한 버진 시네마즈가 지방을 중심으로 점포를 늘리기 시작했다.

정작 일본 3대 메이저는 뒤늦게 멀티플렉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에 진출해 있는 WaW와 G.O.M은 아니꼽더라도 도코다카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영화를 주지 않으면 16개 영업점에 흥행이 보장된 영화를 걸지 못하기 때문이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한국영화 역시 도쿄다카라 극장 체인에 걸리지 못하고.

G.O.M이 진출한 국가 중에서 중국 다음으로 상황이 녹록치 않은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홈그라운드 텃세가 알게 모르게 G.O.M의 확장을 압박하고 있다.

할리우드 메이저 워너-타임과 세계적 극장 브랜드 AMT도 고전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은 일본에 비해 한국은 양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3대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위원회부터 상영 심지어 배우조달까지 수직계열화를 완벽하게 형성하고 있다.

다만 디지털 시대에도 단관극장이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예술영화의 나라’ 프랑스도 수직계열화한 3개의 멀티플렉스 체인(CGR, UGC, 고몽 파테)이 극장 전체 수익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파리 지역만 보면 전체 수익의 89%를 세 개 멀티플렉스 체인이 가져간다.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 같아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파리의 88개 영화관 중 33개가 독립영화관이라는 사실이다.

즉 멀티플렉스는 그것대로 활성화되어 있고, 소규모 예술영화관도 그것대로 운영이 된다는 점이다.


“츠마부키 료타씨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면서 매우 미안하다고 전해달랍니다.”

“일본에 온 김에 녀석과 밥이라도 먹을까 했는데 나중을 기약해야겠네요.”


<군계>의 베를린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츠마부키 료타의 인기와 위상이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생활이 달라진 것이 없다.

4~5편의 영화·TV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어 너무나 바빴다.


‘그래야만 돈을 번다고 해도. 이 동네는 해도 너무 하네.’


류지호로서는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환경에 도무지 정이 안 갔다.

업계 종사자로서 동업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남의 나라 엔터 판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지만.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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