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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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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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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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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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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호텔 창가의 류지호는 속속 도착하는 중국의 유력자들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전개될 중국 내부의 권력지형 변화에 대해 생각해 봤다.

혁명 원로의 자제들로 구성된 태자당은 중국의 당·정·군·재계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국유기업의 요직이란 요직은 모두 그들 차지다.

5대와 6대 국가주석 집권 시절, 당·정·군·국유기업에서 종횡무진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태자당의 전성시대는 다음 대까지도 이어질 것이라 다들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러면 뭐해? 더 지독한 독재자가 등장하는데....’


태자당이든 상하이방이든 공청단이든, 그들의 시대가 저문다고 해도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 정치 독점, 자원 독점, 여론 독점 등 3대 독점은 불변이다.

그 독점을 토대로 곰의 얼굴을 한 여우같은 독재자가 탄생해 새로운 파벌이 중국대륙을 장악하게 된다.

대략 10년 전후로 해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류지호가 몸을 돌렸다.

ENG 카메라를 수습하는 촬영기자와 한국인들이 보였다.

YNTV 베이징 특파원들이다.


“그런데... 의장님. 어디 류씨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인터뷰를 진행했던 베이징 특파원 역시 성이 류가였다.


“류 기자는 본이 어디에요?”

“전주입니다.”

“나는 개평에요.”

“황해도 개평이요?”

“남한에는 종친이 거의 없어요. 본가는 한국전쟁 때 망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남한에는 개평 류씨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상 류지호 가족을 빼면 열 명 남짓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YNTV 특파원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곧장 회사로 갑니까?”

“예.”

“식당에서 식사하고 가세요. 비서가 안내해 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가온그룹은 더는 YNTV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신문방송법 상에서 대기업은 신문, 지상파, 라디오, 보도PP를 소유할 수 없기에.

따라서 가온웨딩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류지호의 가족재단이 다울재단으로 이양했다.

그에 따라서 YNTV의 지분구조는 자사주 29%, 우리사주조합 27%, 비영리재단인 다울재단 29%, 기타로 구성되어 있다.

재벌들이 언론사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류지호 역시 가족 재단을 통해 YNTV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때문에 시민단체로부터 족벌언론 소리를 듣고 있다.

YNTV는 자사주와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이 과반이 넘는다.

따라서 외부 주주로부터 뉴스편집에 대해 간섭이나 압력을 덜 받을 수 있다.

촬영기자들이 철수하고 홀로 남아 쭈뼛거리던 YNTV 특파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미국 국적 취득하시면 다솜미디어 소유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온그룹이 소유한 거잖아요.”


류지호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가온그룹은 외국인이 투자한 대한민국 법인이 된다.

대주주가 외국인이지만, 법인 자체는 내국인인 셈이다.

한편으로 일부 사업체는 외국인 투자촉진법에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부산 센텀시티 가온복합쇼핑 타운이 대표적이다.

새만금간척지 개발사업도 혜택을 받고 있고.

어쨌든 류지호가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가온그룹은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가 된다.


“기존과 딱히 바뀌는 것은 없는 모양이군요?”

“그런 걸 언론이 취재해서 알아보고 대중에게 알려야겠죠?”

“아, 예.”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이란 것이 있다.

대표적인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이 항공 및 해상 운송, 원자력 발전 같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한국의 외국인투자 제한업종은 1995년까지 150개에 달했다.

그랬던 제한업종 수가 1997년 54개로 급감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1998년 5월에 다시 31개로 크게 감소하더니 이후로는 30개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개방업종이 4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다솜미디어는 크게 유선방송업, 프로그램공급업자로 분류되어 있다.

법적으로 외국인은 투자비율 49% 이하만 허용된다.

뉴스제공업은 25%미만이어야 하며, 외국인이 최대주주여선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이전 삶에서는 이선택 정부가 미디어법 개정을 통해 종합편성채널 신규허가와 함께 외국인에 대한 신문방송 문호를 대폭 개방했었다.


“지금 당장도 크게 문제가 없지만, 2012년 1월부터는 더 문제가 안 될 겁니다.”

“왜요?”

“한미FTA가 발효되잖아요. FTA 체결국가의 유선방송업 외국인 소유지분은 외국의제법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에 따를 테니까.”

“걱정이 돼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장시간 인터뷰 하느라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YNTV 베이징 특파원이 객실을 떠났다.

송일성 대표가 하도 독점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베이징에 온 김에 인터뷰를 해주었다.

이번 인터뷰를 토대로 류지호의 중국에서의 성과를 포장해서 널리 알려줄 터.


‘핑계 김에 이사회에서 빠지는 시점도 조율해 보고...’


이제 가온그룹은 권력자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할 정도의 기업이 됐다.

류지호에게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준이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회로 재계 3~4위권으로 점프하게 되면 더욱 탄탄해진다.

슬슬 이사회의장에서 물러날 시점을 고민할 시점이다.

남은 시간, 가족과 오순도순 살면서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서.


✻ ✻ ✻


북경귀빈루반점(北京贵宾楼饭店)은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철저하게 중국식이다.

황금빛, 붉은빛이 사방에서 넘실댄다.

처음 류지호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온통 반짝반짝한 원색들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중국영화 많이 봤다면서? 익숙하지 않아?”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헐벗고 굶주린 민중이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달렸던 궁전으로 몰려가 ‘빵을 달라’고 외쳤잖아.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던 철없던 왕비와 능력 없는 왕이 있었지.”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던 이들 부부는 민중들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며, 프랑스 절대 왕정의 마지막 상징이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응. 베르사유 궁전 가봤어?”

“아니.”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귀족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세금을 내야 하는 수많은 민중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지. 지금 이 나라에서 누군가가 공산주의 사상에 따라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국가 권력의 착취에 맞서고자 시도한다면, 그는 곧바로 체포되고 말거야.”

“큭큭. 공산당이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자본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거니까.”

“내가 보기에 중국식 사회주의는 근대 초기 서유럽 체제와 비슷한 것 같아. 근대 초기 서구 부르주아 계급은 경제적 권력을 취하고자 하면서도, 정치적 권력은 계속 귀족 계급에게 맡겨두고자 했잖아. 그것과 유사하게, 중국의 자본가들은 정치적 권력을 공산당에 맡겨두길 원하는 것처럼 보여”

“공산당이야말로 자본의 이익을 가장 잘 보호해주는 이들이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를 폐지하면서도 시장의 자유를 폐지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중국이 보여주고 있잖아.”


소위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중국식 형태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의 극우주의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스!”


경호팀장 러셀 뱅크스가 초소형 도청기를 보여주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아프리카를 횡단할 때 묵었던 호텔마다 심심치 않게 발견되던 도청기다.

도청기를 심어둔 조직도 실로 다양하다.

CIA, 중국 공안, MI6, 묵고 있는 국가의 군정보기관, 한국의 국가정보원까지.

명백한 민간인 사찰이지만, 누가 했는지 명확한 증거가 없다.


“보스와 관련된 정보를 캐기 위해 급하게 설치된 것인지. 원래 설치 된 것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중국만 아니었다면, 외교루트를 통해 해당 국가에 항의했을 터.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올 것이 확실하기에 항의는 의미가 없다.

매튜 그레이엄이 류지호를 재촉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 호스트가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지. 내려가자.”


이래저래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류지호로서는 태를 낼 수 없었다.

오늘 파티의 호스트가 류지호와 매튜 그레이엄이기에.

파티 내내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시밍핑은 아내와 부부동반으로 파티에 참석했다.

그 외에도 부부가 함께 참석한 이들이 많았다.


“레오나가 없으니까 허전하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임신한 아내를 해외일정에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총리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고위관리들이 줄줄이 마이크 앞에 섰다.

류지호 또한 귀빈들을 환영하는 인사를 했다.

지긋지긋한 축사가 끝이 나고, 중국 전통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혹시나 박쥐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나올까 싶어 사전에 비서들에게 요리 메뉴를 확인하라고 일러두었다.

박쥐요리는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먹는 음식이다.

문제는 박쥐가 수백 종이 넘는 갖가지 병균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충분히 가열하면 병균이 사멸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류지호로서는 임신한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몸속에 이상한 바이러스를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암튼 날것을 먹지 않는 이상 미지의 병균에 감염될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요리를 했을 때에 해당하는 말이다.

중국 최고 권력자들에게 음식을 내는 요리사들이 조리를 허투루 할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어서 절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류지호다.

최고급 요리들로 테이블이 가득 채워졌다.

워낙 기상천외한 재료를 음식에 사용하는 민족이다 보니.

별의 별 요리가 다 있었다.

그 중에서 슝장(熊掌)요리라는 것이 있다.

곰발 요리다.

중국에서는 1989년 야생동물보호법이 만들어지면서 곰이 국가보호동물로 제정되었다.

때문에 슝장 요리를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떻게 곰발요리가 나온 것인지.

총리가 류지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슝장이 아니라 퉈장(駝掌)으로 만든 겁니다.”


즉 낙타발 요리였다.

현 총리는 중국 인민들에게 서민총리로 인기가 많았다.

공산당 최고위관계자임에도 부패의 최고 해법은 민주주의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천안문 사태 당시 시위대에 동조했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는 인물이다.


“아, 예.....”


더 불안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진 낙타고기.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쳤고, 충분히 익혔겠지만.

그쪽으로는 손이 가질 않았다.


챙챙챙...


변검 공연을 관람하며 저녁식사를 했다.

이어서 다양한 중국 전통 쇼와 공연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사교의 장이 펼쳐진 후로는 공산당 내 파벌 사이를 돌아다니며 친교를 맺기 위해서 쉴 틈이 없었다.

류지호는 시밍핑 부부와 좀 더 시간을 보냈다.


“한국은 eminently(탁월하게), middle-range power(성공적인 중견국)이며, 앞으로도 경제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나라입니다.”


총리가 대한민국을 한껏 칭찬했다.

그러자 태자당의 일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거들었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자면 18세기 네덜란드와 같은 위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궈오방이란 이름의 남자는 태자방에서도 젊은 축에 끼는 편이다.


“한국은 지극히 창조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막강한 무역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8세기 네덜란드도 3대 강대국인 프랑스, 러시아, 영국으로 둘러싸여 있었지요.”


분명 띄워주는 말인데, 듣는 입장에서 어딘지 찝찝한 말이었다.

총리가 류지호에게 물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나 국민은 18세기 네덜란드보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되길 바라겠지요?”

“글쎄요. 워싱턴DC의 한 싱크탱크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지표와 장애물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한국 경제 규모가 향후 20년 안에 프랑스를 앞설 것이라고 전망한다는 겁니다. 한국인의 일인당 GDP도 프랑스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보더군요.”

“장애물은 뭡니까?”

“한두 가지겠습니까?”


류지호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프랑스와 비교하자면....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프랑스어는 유럽위원회와 UN 공용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력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는 EU를 좌지우지할 순 없지만 자국에 불리한 것은 막을 수는 있습니다. EU라는 거대한 국가연합체가 프랑스의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프랑스는 UN 안보리에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과거에 비해 쇠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의 실질 기술력이나 인구 규모보다 더 큰 힘을 여전히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영국은 또 어떻습니까? 냉정하게 보면 15개 정도의 중견국 중 하나의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향력은 상당하죠. 영어, 전통,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영·미 관계의 특수성 덕분입니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국력 수준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에 한국처럼 가진 국력을 다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도 있는 법입니다. 한국이 자신이 누릴 만한 위상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체제는 유럽 국가들이 수백 년을 들여 수립한 체제이기 때문이고, 현시대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것은 미국이니까요.”


류지호의 냉정한 진단을 들은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국의 인구 규모와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미국·중국·인도 등이 포함될 강대국 리스트에 들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만약 한반도에 통일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강대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앞으로는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한국과 관련된 화제로 주로 대화가 흘러갔다.

듣는 류지호는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대체로 한국이란 국가를 별 볼일 없이 치부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식 허세라고 해야 할지.

한국을 언제든 밟고 올라갈 나라로 여기는 인상을 받았다.


“통일 이후 한국은 북한 지역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야 할 겁니다. 독일의 경우, 지금도 동부 지역은 옛 서독 지역에 비해 한참 뒤져 있습니다. 만약 통일 된다면 한국의 성장은 15~20년간은 지체될 것 같습니다. 최첨단 미래에 투자해야 할 재원을 북한 지역의 산업 인프라와 의료체제를 구축하는 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지역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린 다음에는....?”

“미국·중국·인도와 경쟁하기는 힘들 거야. 섬나라 일본은 따돌릴 순 있겠지.”

“내가 만나본 한국의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은 남북통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어.”

“역사 속에서 참조할 만한 사례는 독일통일 정도일까?”

“지금은 두 나라가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지만, 18세기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통합은 성공적이었어. 영국·스코틀랜드 사이의 인구비도 현재의 남북한과 비슷했을 걸?”

“시너지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영국에 유리했던 것 같은데?”

“스코틀랜드는 대영제국에 병력의 반을 제공했어. 스코틀랜드는 조선·광업·철도 등의 분야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빨리 일어난 지역이기도 했고. 그래서 통합이후 양측 모두 부자가 됐지. 남북한의 경우와 다른 점은 경제 발전단계 상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통일의 경우에서도 북부 지역의 일인당 소득은 남쪽의 3~5배였지. 이탈리아의 경우도 통일 비용이 막대했고 오늘날에도 남북 간 격차가 심해. 한반도 통일의 효과가 스코틀랜드·영국형이 될지 독일이나 이탈리아형이 될지 알 수 없어. 스페인 통일이나 베트남 통일 사례도 흥미롭게 분석할 만한 사례야.”


장궈오방은 차기 혹은 차차기 외교부문 수장을 노리고 있다.

딴에는 세계사를 보는 관점이 탈중국적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한국의 학자들은 남북통일을 대비해서 주로 독일의 통일 사례를 연구하는 편이다.

그런데 20세기 이전 세계사를 뒤져보면 동일 민족 간 혹은 이종 민족 간 통일을 한 사례가 꽤 존재했다.

대부분의 사례가 통일 후유증이 꽤나 크다는 걸 알려주고 있지만.

가장 최근 통일된 베트남의 경우, 공산통일이라는 점과 무력통일이라는 점 때문에 진지한 연구에서 벗어나 있다.


“내가 볼 때 한국이 직면한 도전은 두 가지야.”


류지호는 중국의 차차기의 중국 지도층이 될지도 모를 젊은 세대의 대화를 가만 듣기만 했다.


“북쪽의 미친 정권?”

“글쎄. 남한 출신인 미스터 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 북한의 통치자들은 미치지 않았어. 어쨌든 북한과 관계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한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야. 두 번째 도전은 4대 강국이 중견국인 한국을 포위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래서 더욱 한국이 이룩한 성공이 경이롭지. 한국 국민은 그래서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고 봐.”

“때문에 한국은 특히 외교를 중시해야 돼. 한국은 세계 최고의 외교력을 확보해야 해야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해. 모든 주변 강국과 대화해야 하지. 한·중 관계도 중요하다는 것을 반드시 미국에 설득해야 하고.”

“난 한국의 외교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봐. 한국의 의회 정치는 형편없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경제나 외교는 인상적인 것 같아.”

“한국은 강점과 약점을 포함해 여러 가지 특성이 혼합적으로 나타나는 나라야. 상당히 흥미로운 나라이지. 역사적으로도.”

“한류를 봐도 그렇고. 뭔가 역동적이지....!”

“세계의 지정학적 공간에서 부상하려는 한국은 스스로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어. 그 비교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야.”

“한국은 너무나도 독특한 나라지. 억지로 다른 나라와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장궈오방과 일행은 한동안 저들끼리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훈수를 놓았다.


“......!”


류지호는 ‘얼다이(二代)’는 다 쓰레기 망나니만 있는 줄 알았다.

아닌 이들도 많다는 것을 이번 베이징 방문으로 알게 되었다.


‘이런 것이 머릿수에 힘인가....?’


‘얼다이(二代)’는 부모에 이어 그 자식에게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어 세습이 이루어지는 사회 현상을 의미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대물림, 세습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얼다이’는 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어떤 학자가 말했다.


“사회주의 중국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 금권주의에 적합한 나라다.”


세습과 겸직이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견고하게 짜인 폐쇄적 사회구조.

그 속에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게 바로 중국의 지도층이다.

선친의 부를 물려받은 재벌2세를 뜻하는 푸얼다이(富二代).

고위 관직의 대물림을 뜻하는 관얼다이(官二代).

시밍핑 부주석을 포함해 혁명원로의 자식이 영도자 자리에 오르는 홍얼다이(紅二代).

인민해방군 장성 자리의 대물림을 뜻하는 쥔얼다이(軍二代).

스타 연예인 2세들의 활약을 뜻하는 싱얼다이(星二代).

문화예술인 자제들을 뜻하는 이얼다이(藝二代) 등.

중국 사회에는 수없이 많은 ‘얼다이’ 시리즈가 있다.

부와 권력의 세습 그리고 권력과 부를 넘나드는 겸직의 만연은 중국 사회를 대혼란으로 몰아갈 수 있는 숨은 뇌관이다.

많은 의식 있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부패 척결에 힘을 쏟고 있다.

시밍핑 집권 이후 공산당이나 국무원 등 정부의 간부들이 기업체의 경영자나 임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겸직이 정경유착의 고리가 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시밍핑의 조치에 따라 기업체에서 쫓겨난 당·정 간부의 숫자가 4만 명을 넘게 되고, 장차관 급만 200명을 넘어선다.

시밍핑의 이런 행보가 수평적 불공정 구조인 ‘겸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는 한편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능까지 한다.

한마디로 일석이조를 거두게 된다.


‘얼다이에 대해서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야 할 시기가 머지않아 오겠지.‘


신분제 봉건 왕조를 무너뜨린 혁명을 경험했던 중국인들이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져버린 이 새로운 신분사회를 언제까지 용인할 수 있을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문제는 공산당 독재체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런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자본가들이 힘을 모아 개입한다면 중국을 어찌 해볼 수 있을까.....?’


음모론 단골메뉴인 유대자본이나 서구 상속가문들도 권력 독점과 세습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중국에서만큼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장담 못할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럴 힘이 있어도 개입하지 않는 걸 수도.’


현재의 체제를 그대로 놔둬도 충분히 벗겨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암튼 류지호는 시밍핑과 부인과의 친교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이변이 없는 한은 중국 최고 권좌에 앉을 테니까.

나중에 벌어질 수도 있는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여차하면 중국 기업들 주가가 고점을 찍었다고 판단하면 다 처분해도 되고.’


외국인이 중국 정계 쪽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삼류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다.

류지호는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알 수 없는 마귀들의 소굴에 스스로 발을 담글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이번 방한을 계기로 Aliba 등 류지호가 투자한 중국 IT기업의 현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분을 탐내는 일부 권력자들을 다독이기 위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류지호가 보기에 자금세탁과정이 질릴 정도로 복잡했다.

그럼에도 매튜 그레이엄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미국 금융사 입장에서는 딱히 불법은 아니야.”

“중국 입장에서는 불법이라는 게 함정이잖아.”

“암튼 가급적 중국에 진짜 영웅이 나타나지 않길 바라야 할 것 같아. 그러면 세계인들이 골치가 아파질 테니까.”


매튜 그레이엄은 절대 애국자가 아니다.

월가 마인드로 무장한 자본가다.

그런 매튜 그레이엄조차 중국의 부상을 보며 미국을 염려하고 있다.


“딱 지금처럼 겉으로 온갖 살벌한 문신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덩치가 큰 힘 센 바보 형. 그게 적당해.”


미국 입장에서야 내부적으로 곪아터진 썩은 중국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좋다.

결코 대국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한국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야 옴짝할 수 있는 틈이라도 만들어질 테니.

비즈니스를 하는데 덜 수고스럽고.


“찰스 부코스키가 그랬다지. 민주주의와 독재주의의 차이는 민주주의에서는 표를 던지고 명령을 받지만, 독재에서는 표를 던지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명령을 받는다는 것이라고.”


분위기가 너무 침체된 것 같아 류지호가 짐짓 깐죽거렸다.


“오오. 형이 부코스키를 다 읽고.”


'언더그라운드의 왕' '하층민의 국민시인' '반실업자들의 선지자'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현대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미국 부자들이 좋아할 수가 없는 인물이다.

작품들에서 대체적으로 술과 섹스, 도박, 사회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 가족이나 부나 명예, 가혹한 노동에 대한 반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으니까.

미국의 영화평론가들이 류지호 영화를 분석할 때 종종 언급하는 미국 최고 작가다.


“나도 한때는 아웃사이더였거든.”

“퍽이나.”

“뭐? X까라고!”


수 십 조를 운용하는 유명 투자회사 회장이 틈만 나면 실없는 말꼬리 잡기를 늘어놓고 한다.

그걸 또 비공식 세계 최고 부자가 받아주고.

한 동안 류지호는 의형과 말꼬리 잡기 놀이를 했다.

덕분에 꿀꿀했던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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