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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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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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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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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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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작년에 개봉한 <트랜스포머>는 한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에 <트랜스포머>는 한국이 세계 최초 개봉 국가 타이틀을 달았다.

한국 관객수가 세계 점유율에서 8%를 차지해서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트렸다.

Timely Studios의 <아이언맨> 역시 <트랜스포머> 효과를 기대했다.

따라서 한국 프로모션에 큰 공을 들였다.

4월 14일, <아이언맨>의 배우와 감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틀 간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했다.

이전 삶에서는 토니 스타크 역할을 맡은 밥 일리아스 주니어와 감독 조나단 패브로가 한국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때문에 화려한 팬 행사보다 시사회 위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반면에 비슷한 기간 방한한 케이아누 립스는 레드카펫 행사를 비롯해 온갖 화려한 이벤트와 기자회견, 팬들과의 만남 같이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려 팬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이번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TCU의 총괄프로듀서로서 류지호가 한국 프로모션에 힘을 실어주었기에.

이틀 동안 열심히 영화 홍보에 나섰다.

<아이언맨>은 미국(5월 2일 개봉)보다 빠른 4월 30일에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하게 되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이전 삶보다 백만 명을 더 동원해서 530만 명을 기록하게 된다.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관객을 동원한 국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틀 간 한국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류지호가 다시 중국으로 왔다.


‘진정한 TCU의 막이 오르긴 올랐네.’


이전 삶에서 중국은 Timely Studios의 주력 시장이었다.

TCU 탄생 이후로 무려 10년간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던 시장이었다.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한 <토르>, <퍼스트 어벤져>를 제외한 32편을 통해 무려 104억 위안(약 1조7,5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중국 영화 시장 전체 흥행 수익을 놓고 보면 30%에 달하는 규모였다.

문제는 흥행 분배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Timely Studios가 실제 받아간 수익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중국 박스오피스가 글로벌로 집계에 포함 될 때 뻥튀기 되는 금액이 여타 국가의 흥행에 도움이 되었다.

제일 큰 시장인 북미의 부가시장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이번에도 중국 시장에 공을 많이 들일 생각이다.

다만 프로모션만은 한국에 총력을 쏟아 붓는 분위기다.

중국에서는 영화 홍보도 당국의 검열을 받기 때문이다.


‘<퍼스트 어벤져>는 한국에서 쫄딱 망했던 것 같은데....’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도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럭저럭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정도였던 것 같았다.

한국의 경우 BS ENM이 배급을 맡았었는데, 자사 한국영화에 주력하느라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개봉한 지 겨우 열흘 만에 막을 내렸을 정도로 흥행은 참패했다.

제아무리 류지호가 개입했어도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는 여전히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원작 코믹스를 접해 보지 못한 일반 관객으로서는 캡틴 아메리카의 매력이나 캐릭터성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류지호는 <퍼스트 어벤져>의 액션 안무에 공을 들이기로 했다.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와 태생으로 야기되는 패권주의 논란은 <Frank Castle>에 등장했던 모병 포스터 패러디를 가져오는 것으로 중화시킬 예정이다.

미국적 애국주의나 영웅주의 비판을 피해갈 생각이다.

그럼에도 <퍼스트 어벤져>는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만세‘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개봉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기로 했다.

이전 삶에서 중국에서 TCU 영화들의 인기가 워낙에 높아서 두 편 정도를 빼곤 거의 모든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흥행에도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은 철저히 수입 쿼터를 고수한다는 사실.

Timely Studios로서는 배급사와 함께 수익성을 검토할 수밖에 없고, 북미와 다른 아시아권 흥행 성적을 지켜본 뒤 중국 개봉을 결정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아시아권 흥행 지표가 되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으니까.

한국에서의 성공은 중국에서의 흥행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

그로 인해 TCU(와 할리우드 영화)는 언제나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을 했고, 대략 1~3주 동안 흥행 추이를 지켜본 후에 중국에서 개봉하는 패턴이 구축됐다.

그런 이유로 할리우드 스타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홍보를 위해 무조건 혹은 강제적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밖에 없다.


“제니퍼! 나도 중국 프로모션에 함께 하는 것으로 합시다.”

“<아이언맨> 프로모션 말씀이세요?”

“아무래도 나도 전면에 나서서 홍보에 힘을 실어주어야겠어요.”


중국에서 언론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아이언맨> 홍보를 손 놓고 구경만 하기에 불안했다.

류지호는 주인공인 밥 일리아스 주니어와 함께 저장위성TV 프로그램 <中國夢想秀>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국의 TV매체 중에서 저장위성TV만 독점으로 인터뷰했다.

한 곳만 인터뷰하는 것이 효과가 없을 것 같지만, 중국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저장위성TV는 독점 인터뷰를 중국의 수백 개 지역 방송사에 촬영 소스를 판매하게 되니까.

중국 내 주요 매스컴이 그걸 편집해서 프로그램을 내보내게 되고.


“내 TCU에는 중국합작은 없어!”


이전 삶에서 <아이언맨Ⅲ>는 수작 상업영화로 남을 뻔했다.

중국과의 합작으로 야기된 온갖 추문과 뒷말만 없었다면.

중국물이 묻은 영화가 어떻게 졸작으로 ‘흑화‘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에 하나가 이전 삶의 <아이언맨Ⅲ>였다.

혹시나 중국에서 개봉을 못하는 한이 생기더라도 그 같은 바보 같은 짓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류지호다.


✻ ✻ ✻


<아이언맨> 영화 홍보를 하는 와중에 SE전매집단유한공사(SEMG) 회장과 비공식 미팅자리를 가졌다.


“이번 만남을 기회로 WaW의 상하이 로케이션이 좀 더 늘어나길 기대하겠습니다.”

“아마도 GH와 WaW 혹은 ParaMax의 합작영화들이 자주 찾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숙련된 스태프들이 중국에 많이 진출해주길 바랍니다.”

“양국 영화계의 교류를 확대해 나갈 방안을 마련해보라고 WaW에 말을 해 놓겠습니다.”


중국의 영상 부분은 심각한 인력난에 처해 있다.

홍콩, 대만, 한국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까지 중국에 들어와 영상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다.

과장 조금 보태서 자고 일어나면 대륙 곳곳에서 지역 방송국이 생겨나고 또 그곳에서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되고 있다.


“현재 중국 영화 및 TV프로그램의 문제는 이곳 상하이나 베이징 특히 홍콩과 비교해 콘텐츠의 질적인 부분에서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말해 중국의 대표적인 상업영화의 수준이 한국영화를 따라가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암담합니다.”

“한국영화도 하루아침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양국의 교류가 확대되고 협력이 많아질수록 질적으로도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겁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우수한 인력이 중국으로 넘어와 작업해주길 바랄 수밖에.

충무로 일각에서 한국의 스태프들이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영화 산업을 발전시켜주고 있다며 우려한다.

호랑이 새끼를 키워준다면서.

천만에 말씀이다.

중국의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한계가 명확하다.

스태프 개인이 중국에서 돈 버는 것 가지고 뭐라 할 필요는 없다.

비공식적인 자리를 갖은 두 거물은 WaW와 SEMG가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국뽕’에 현혹되어 마치 한국 영상미디어업계 관계자가 중국을 산업적으로 크게 성장시켜준 것처럼 과장되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중국 미디어와 영화업계에는 홍콩과 대만인들이 가장 많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고, 할리우드와 영국에서 온 이들도 활약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 관계자들이 중국 영화 기술 발전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고 주장할 순 있지만, 모두 한국인 덕분이라는 말은 크게 무리가 있다.

이 시기 중국은 세상의 좋은 것들은 다 가져다가 모방하고 따라하고 있다.

과거에 일본이 그랬고, 한국도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주의 특성상 국가가 나서서 집중적이고 전폭적인 투자육성을 하고 있기도 하고.

외국의 영화 관계자들이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아도 빠른 시간 안에 중국영화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에는 그것이 훨씬 용이하며 쉽기도 하고.


‘어차피 한국영화는 중국영화와 해외에서 경쟁할 일 자체가 없으니까.’


어쩌면 WaW와 GH 오락집단유한공사가 합작으로 제작하게 될 한국식으로 해석된 신무협 콘텐츠들로 인해 OTT 시장에서 중국풍 콘텐츠가 인기를 끌 수도 있다.

중국 한정 OTT 콘텐츠가 아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권 공략을 위한 맞춤형 OTT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 류지호는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적인 무협(사무라이)장르를 고민하고 있다.

따라서 틈날 때마다 고려 무신정권 100년 시기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당시에 무신이든 지방 호족이든 적게는 100명 많게는 1,000명까지 사병을 두었고, 승려들이 해체된 지방군을 규합해 무신정권과 싸웠는가 하면, 무신들끼리 수시로 권력쟁탈을 벌이던 폭력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무협(사무라이)식 세계관을 짜고 있다.


‘고려시대판 마피아물을 기획해 봐도 좋고.’


고려 무신정권을 정치 마피아라고 규정한다면, 사병 조직을 현대의 조직폭력배에 대입한 후에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혼란스러운 폭력의 시대 세계관을 짜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무신정권이 국가의 군사력을 빼돌려 사유화하고 조직폭력배로 만들어 서로 대립하며 국가의 이권을 땅따먹기 식으로 경쟁하고 나눠먹는 모습을 마피아들의 구역쟁탈전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일본의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들의 모습에서 착안했다고 할까.


“보스, PDA 드려요?”


냅킨에 괴발개발 메모하는 류지호를 보다 못해 제니퍼 허드슨이 물었다.


“줘 봐요.”


PDA를 건네받은 류지호는 SEMG 회장이 떠난 자리에 남아서 마피아 쟁투판 고려 무신정권 스토리 라인을 메모했다.


❉ ❉ ❉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은 중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상하이,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 8곳에 흩어져 있다.

임정은 최초 수립 이후 일제의 감시와 핍박으로 인해 여러 차례 옮겨 다녔는데, 활동하던 지역에 따라 상하이 시기(1919~1932), 이동 시기(1932~1940), 충칭 시기(1940~1945)로 구분하기도 한다.

상하이 시기는 임시정부 수립부터 윤봉길 의거로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난 1932년 4월까지이다.

현재 보존된 임시정부 유적지는 상하이, 항저우, 두 곳 뿐이다.

충칭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상하이 쇼핑가 신톈디(新天地) 앞 2차선 도로.

재규어XG 코드명 X358 세단이 도로가에 멈춰서고, 류지호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헨리 모터스 PAG 산하에서 품질 개선이 많이 이뤘다고 하는데도 드라이버들이 체감하는 품질은 기대 이하였다는 바로 그 재규어.

다시 태어날 동안 부를 견인차를 이번 생애에 다 불러봤다는, 바로 그 브랜드.

디자인은 정말 아름다운데 관리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손대기가 두려운 차.

그런 차 중에 하나가 재규어다.

그런 부담을 가온그룹이 떠안게 됐고.

암튼 류지호의 눈에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한국인이라면 뉴스나 여러 매체를 통해 제법 눈에 익을 법한 ‘마당로 청사’ 혹은 ‘보경리 청사’라고 불리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임시정부 청사가 마당로란 길가에 위치해서, 또 보경리 건물의 ‘4호’가 청사로 쓰여 붙여진 이름들이다.

바로 옆집인 보경리 1·2호는 상하이대중가스유한공사의 통지서가 붙은, 진짜 가정집이다.

때문에 청사를 특정하기 위해 4호를 붙여서 불렀다.

한 세기 전 대한민국의 요람은 지금도 매립이 안 된 전깃줄로 뒤엉켜 입구가 어지러웠고, 당당한 태극기 대신 이불과 속옷 빨래가 나부꼈다.


웅성웅성.


보경리 임정 골목 앞 도로변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대부분이 취재진이다.

방송 카메라를 보면서 연예인이라도 온 줄 알고 몰려든 일반인들도 있다.

중국 공안과 류지호의 경호팀이 골목 앞 양쪽으로 인의 장막을 치고 있다.

류지호가 나타난 이후로 장쑤성 유력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상하이시 서기, 장쑤성 당서기, 상하이시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관리처장, Aliba의 제이크 마, JHO 금융그룹 매튜 그레이엄 회장, 상하이 한인상인회장, 한인회장, 상하이총영사, 대한민국 보훈처 국제협력담당관 등.

중국의 최대 계파 중에 하나인 상하이방과 태자당 인사들도 여럿 초대했다.

특히 차세대 권력인 중국 국가부주석 시밍핑의 참석이 하이라이트였다.

류지호는 제이크 마를 따로 불러서 상하이방 외에 태자당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줄타기를 잘하는 건 제이크 당신의 몫입니다.’


제이크 마가 상하이방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밍핑 파벌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좋고, 아니어도 크게 상관없다.

류지호에게는 그 외에도 마즈한이나 PAIDOU의 창업자도 있으니까.

이번 대한민국임시정부 방문 이벤트는 여러 포석이 있는 쇼였다.

미국 시민권 취득문제로 한국의 여론이 좋지 못한 것을 완화시키는 것과 <아이언맨> 홍보에도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

올해 3월 중국 국가부주석이 된 시밍핑까지 동원된 대형 쇼다.

절대 시시한 이벤트가 아니다.

사실 시밍핑으로서도 류지호의 초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차기 중국 주석 후보자 중에서 존재감이 가장 약했으니까.

태자당, 상하이방, 공천당 파벌 등과 두루두루 친분을 닦아놓아 중국 권력층 사이에서는 점수를 따고 있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우시라이(吳熙來)에 비해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았다.

중국 대중들이 선호하는 세계적 유명인사가 연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베이징에서 한달음에 달려올 수밖에.

게다가 상하이는 지난 몇 년 간 시밍핑이 정치적 입지를 다졌던 지역이다.

저장성 서기를 거쳐 상하이시 공산당서기를 지낼 시기 한국정부의 상하이, 항저우 임시정부 보존에 큰 도움을 준 장본인이 바로 시밍핑이었다.

시밍핑은 저장성 공산당서기로 재직한 2006년, 항저우 임시정부청사 복원을 승인했다.

또한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는데 도움을 준 바 있다.

이 시기만 해도 한국 언론에서 시밍핑을 지한파로 분류하고 있다.

저장성 당서기 재직시 자매결연 한 전라남도 지사와 친분을 쌓고, 2005년에는 한국 외교통상부의 중국 고위인사 초청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에 저장성 고위인사들과 대규모 무역사절단을 이끌고 전남 광양제철소와 제주도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류지호가 시밍핑에게 예의를 갖춰 감사함을 표현했다.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이렇게 상하이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곳은 내게도 뜻 깊은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공감합니다. 선대의 애국적인 행동은 후세를 위해 보존되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주석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항저우의 역사적인 장소가 사라질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별 대화는 아니다.

그저 포토타임의 짧은 시간 동안 오간 의미 없는 대화들.

그렇다고 아무 이야기나 할 순 없다.


“얼추 인사를 한 것 같은데, 안쪽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럽시다.”


류지호와 시밍핑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통역이 각각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중국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권력서열 6위)에서 국가부주석에 임명되면서 단숨에 중국의 차기 대권 후계자로 부상한 시밍핑이다.

그런 인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임시정부 건물로 들어가는 류지호.

그 모습이 고스란히 촬영되어 중국 관영매체를 통해 외신으로도 타진 될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도 이 소식이 전해질 터.

한국 국민들 보라고 하는 쇼였으니까.


“현재 푸칭리(보경리) 4호에 복원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1926년부터 상하이를 떠나기 전인 1932년까지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이곳은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던 곳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이후 국내외에 설립된 8개 임시정부조직이 통합돼 그해 9월 11일 상하이 모처에 세워졌습니다. 몇 년간 상하이 시내 이곳저곳을 떠돌던 임시정부는 1926년 지금의 이곳 3층 석조 건물에 입주했습니다. 김구 선생을 필두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다 1932년 윤봉길 선생의 훙커우(虹口)공원 폭탄투척 거사로 일제탄압이 강화되자 청사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은 가이드는 한국인도 조선족 자원봉사자도 아니다.

중국인이다.

상하이시 구지관리처 그 중에서도 문화재를 담당하는 현지 공무원이다.

때문에 중국어로 설명했다.

통역을 거쳐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류지호는 귀를 기울이진 않았다.

이곳에 모인 한국 출신의 역사교수나 학자를 제외하고, 임시정부 역사에 가장 해박한 사람이 류지호였기에.

항일투쟁, 독립 운동사는 아주 좋은 영화 소재다.

이전 삶부터 류지호는 관련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


“한국정부는 1980년대 후반 들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청사 건물을 찾기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하이시의 협조로 인해 198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찾기 위해 공동조사를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상하이시 마당로 306통 4호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사용했던 청사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중국 공무원은 자국 위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 관련 사실을 설명했다.


“보경리 4호 임시정부 청사는 1925년 건축된 중국 근대식 석고문(石庫門) 양식의 건축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이에 1993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지관리처’는 청사 복구공사 완공 기념식을 거행하고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2001년에는 한국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노후한 청사를 전면적으로 정비하고 수리했으며 전시실 공간의 확장과 전시 내용을 보완하여 재개관했습니다.”


시밍핑 듣기 좋으라고 그러는 것인지, 상하이시의 노력을 유독 강조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까?”

“애석하지만, 그런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참고로 이전 삶에서 2010년대 초반 이 지역이 인접한 행정구역과 통합되면서 지역 문물보호단위(지역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수립된 후 만 13년 동안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안에 청사를 두고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처음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장소나 청사의 위치는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이곳 청사도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1989년 상하이의 도시개발계획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았다고 하지요.”


천만 다행으로 독립기념관이 나서고 한국의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면서 1993년 복원 작업을 시작해,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하지만 유적지 관리의 주체는 중국이다.

인근 지역의 개발 계획이 나올 때마다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는 훼손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독립운동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로 연간 약 2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시밍핑이 안내인에게 물었다.


“중국의 인민은 방문하지 않나?”

“20만 명 중 2만여 명이 중국인 방문객입니다.”


류지호가 물었다.


“프랑스 조계지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까?”

“당시의 자료에 근거하여 부근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어느 정도 밝혀냈지만. 애석하게도 정확한 위치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과거 프랑스 조계지 지역의 옛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일대가 온통 상하이 발전의 상징인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어쨌든 보경리 4호 임시정부 청사는 상하이 다른 여러 곳의 임정청사와는 달리 역사적 고증에 이견이 없으며, 건물 자체가 지금까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불편하시더라도 덧신을 신어주시기 바랍니다.”


실내는 고무줄 달린 투명 비닐 덧신으로 양발을 감싸야 입장이 가능했다.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나무 바닥과 계단은 이미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상태다.

90년대 개방했을 때는 관광객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자유롭게 맨신발로 실내를 활보했다.

뒤늦게 건물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류지호와 시밍핑이 14.8평짜리 회의실 1층에 들어섰다.

대각선으로 엇댄 태극기 사이로 주름살 가득한 백범의 동상이 류지호를 맞이했다.


“......!”


류지호의 가슴이 묘하게 아려왔다.

제아무리 쓰레기 짓을 벌이더라도 태극기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의 애국심을 돌아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한다.

류지호는 한국국적을 버리기로 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던 선조들 앞에서 부끄러운가 물어본다면.


‘제 딴에는 애국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배신했다고 여기지 말아주세요.’


류지호는 2층의 백범이 사용한 집무실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막말로 나보다 더 애국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세금 꼬박꼬박 잘 내지. 기부 많이 하지. 사재 털어서 공군 레이더까지 교체해 주려고 하지....’


2층 집무실에서 <백범일지> 상권이 쓰였다.

중국인 공무원이 참 공부도 많이 했다 싶다.

상하이 공무원이 <백범일지>에 대해 시밍핑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가이드는 평범한 가이드가 아니었다.

상하이 문물관리 담당관이며, 역사학도였다.

다행인 점은 이 중국인 학도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

연구 분야가 주로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의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투쟁역사였다.


“1993년 최초 개관 이후 지금까지 약 250만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방문했습니다.”


이전 삶에서, 2010년대로 들어서며 한국인 방문객 수가 대거 줄었다.

암튼 임정 청사 건물의 1층과 2층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생활하였던 공간이 복원되어 있다.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이 있는데, 회의실은 회의용 탁자와 함께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 임시정부 초기 사용했던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주방은 당시 사용했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2층에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 겸 침실, 임시정부 요인들의 집무실,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가 복원되어 있었다.

3층에는 임시정부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다

2001년 말에 4호 건물에 인접한 3호와 5호를 매입하고 전시실을 확장·재개관했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3.1운동 이후 탄생할 때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의 역사를 소개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최초로 사용했던 청사 사진과 독립선언서, 국민대회 취지서 및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 등을 풍부하게 전시할 수가 있게 되었다.

또한 상하이 시기 임시정부의 활동과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 이동 시기 및 중경에서의 임시정부 활동, 해방 후 환국 과정 등도 소개되어 있다.


“미스터 류가 생각하는 김구 선생은 어떤 분입니까?”


시밍핑의 물음에 류지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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