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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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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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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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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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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고마워요. 내게 다시 일할 기회를 줘서.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업계 2~5위가 모두 적자라면 제대로 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류지호가 WaW를 방문해서 한 첫 마디였다.

류지호는 한국영화 산업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 서 한국의 메이저들의 작태부터 꼬집었다.

12년 연속 영화시장 점유율 1위 WaW 엔터테인먼트는 논외로 하고, 대기업 자본을 바탕으로 한국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메이저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충무로 토착 영화사라고 할 수 있는 무비서비스는 류지호의 지원으로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처지다.

BS 엔터테인먼트는 2005~2007년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놈놈놈>, <모던보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 기대작들을 내놓을 예정지만, 류지호가 보기에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요새 BS는 왜 그 모양이래요?”


BS 엔터테인먼트는 뮤지컬로 돈을 벌고 영화로 까먹는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


“공연 쪽 매출이 쏠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BGV마저 없었다면 흑자는커녕 매해 적자만 누적되어 진작 영화판에서 뜰 궁리를 했을 겁니다. 업계 3위 광성 엔터테인먼트 역시 쇼핑사업 부문의 자회사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황인지라.”


광성 엔터테인먼트는 매출액과 자산규모가 광성쇼핑의 10%에 미칠까 말까한 상황이다.

영화사업이 주력도 아니다.


“올리온그룹은 극장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면서요?”

“대신 한국영화 투자를 공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꾸준히 영화를 쓸어가고 있습니다. <님은 먼 곳에>, <70 고고> 같은 대작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사업 내에서 정확한 한국영화 비중은 알 수 없지만, 전체 매출은 3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영업 손실이 20억 안팎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배급 순위는 무비서비스에 이어 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비서비스는 잘 버티고 있습니까?”

“작년에 210억의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천만 원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손실이 없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강 감독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시는 것이 어떨지....?”

“어떤 진지한 대화요?”

“WaW 엔터로 흡수 되는 것 말입니다. 프로덕션만은 독립적으로 운영하실 수 있게 보장해주면서....”

“몇 년 만 더 지켜봅시다.”

“그러다 나중에 저희가 부채만 떠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BS에 넘기면 되지 않습니까? 꼭 WaW가 인수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

“일본 보세요. 그게 건강한 산업생태계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영화판에 대기업만 남게 되면 비슷한 소재, 매번 똑같은 배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오락성 위주의 영화만 양산될 겁니다. 관객 취향과 선호도가 변해도 그들은 안전 위주로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해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영화사업에서 철수라도 한다면... 설거지는 남은 영화인들이 하게되겠죠.”

“대기업들이 투자한 자금이 막대한데.... 설마 그렇게 하겠습니까?”

“외국계 사모펀드에서 BS 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 부문을 7억 달러에 사겠다는 오퍼를 넣었답니다. 2위 회사가 그 정도 수준인데 나머지 메이저들은 얼마나 싸겠어요? 아마 사모펀드에 팔리게 되면 그들은 포장하기 바쁠 겁니다. 억지로 기업가치를 뻥튀기 시켜서 어디론가 또 팔게 되겠죠.”

“독과점 이슈로 저희가 대기업 계열 영화사를 인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영화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겠습니다.”


창의적인 작품공급.

한국영화산업의 선순환구조.

그 일환으로 90년대부터 류지호는 줄기차게 영화인 노조설립을 촉구했다.

한편으로는 고용주 측의 한국영화배급협회를 설립하도록 지원했고.

한국영화계도 할리우드의 작가조합 파업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류지호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영화가 산업임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인건비가 상승하면 저절로 산업개편이나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싼 임금으로 고용하고 싶다면 비노조원을 고용하면 되고.

그렇게 되면 영화의 완성도도 떨어지겠지만.

영화사들은 스타들의 출연료가 너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연기력도 평범하고, 국내용인 스타배우가 출연료로 7억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꼴을 보기 싫으면 새로운 스타를 계속해서 발굴하면 된다.

과거와 달리 21세기 산업현장에서는 서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치열하게 협의를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합의를 도출해야 발전이 있다.

이 시기까지도 충무로는 자본과 네트워크를 쥔 측의 일방 독주였다.

그러니 소비자의 취향이 크게 변화해도 그에 발을 맞추지 못했다.

여전히 과거에 먹혔던 영화소재와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고, 설사 트렌드를 선도하는 작품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를 더욱 발전시키기보다 단순 복제품만 양산해 왔다.


“자본과 권력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스태프들의 교묘한 태업도 짚어봐야 한다고 봅니다.”


정운규 사장이 말하는 것이 실제 현실이다.

일부 스태프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촬영단계에 들어가서 손을 놔 버리는 것으로 표출한다.

즉 성실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심지어 권위적인 사용자 측에 불만을 갖게 된 스태프들이 촬영에 들어가서는 열정을 다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업무만 한다.

창의력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영화촬영 현장에서 기본만 한다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를 고의로 저하시킨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 영화사의 일방통행과 횡포도 문제지만, 스태프들의 그런 태업성 작업태도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따위의 전근대적인 구태가 있어요?”


류지호는 90년대부터 한국영화산업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시스템의 근간은.


“받은 만큼 일한다.. 였죠.”

“저희야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한 두 사람 선동을 한다고 프로덕션이 흔들리진 않습니다만. 영세한 현장에서는 회사의 갑질과 스태프의 교묘한 태업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절레절레.


영화인노조도 만들어지고, 최저임금도 협상하고, 근로환경도 몰라보게 개선됐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구태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모양이다.

WaW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류지호의 신념을 충무로에 투사하고 있음에도 개인의 힘만으로 판 전체를 재설정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나마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현장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최대 120편 중에서 1/3 정도... 최대한 많이 잡았을 때,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갈 길이 멀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류지호의 마음 같아서 무비서비스에 영화선택 권리라는 방식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대주주이기에 영 불가능하진 않다.

문제는 한국 영화시장의 40% 이상 점유 중인 WaW가 3위 권 배급사까지 손에 쥐고 흔드는 모습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본진이 허술하면 밖에 나가서 용 써봐야 다 헛짓거리인데.....”


내수가 전부인 시장, 극장 수입이 유일한 수익구조, 대여섯 개 메이저가 나눠먹는 구조.

해외시장 공략도 각개전투다.

한국영화배급협회를 만들어서 해외 배급에서 한국영화계가 공동대응하길 기대했건만.

다들 제각각 해외에 영화를 판매하고 있다.

그러다 일본이란 거대 시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내가 무비서비스 영화중에서 밀어줄만한 영화가 있는지 알아볼 게요.”

“의장님께서요?”

“내가 점찍었다고 다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무비서비스의 리스크를 조금 줄여봐야겠어요.”


그렇게 해줬는데 못 버티면 할 수 없고.


“혹시 대형 영화사를 M&A 해서는 안 되는 겁니까?”

“각오를 좀 다져보자구요.”

“....예?”

“아니다 싶으면... 일본 메이저처럼 WaW가 다 해먹어야겠죠.”


무비서비스, 아스트로 FNH 같은 중형급 영화사를 인수합병하게 된다면 WaW 엔터테인먼트도 개편이 불가피하다.

GH 오락집단유한공사, 씨네-콰논까지 자회사로 받아들여서 아시아 최대 미디어그룹으로 자리매김하는 방안도 궁리해 볼만 하고.


“......”


류지호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충무로는 그렇다고 치고, WaW는 애로사항 없어요?”


정운규 대표가 WaW 엔터테인먼트의 상황을 설명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제휴영화사가 늘어나면서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해외합작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해마다 IP와 자산이 늘어남에 따라 회사 덩치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차입금이 워낙 적어서 부채관리도 잘되고 있으며 더딘 성장을 보이는 사업분야도 없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부문도 없다.


“다만 그룹 차원에서 케이블TV, 영화, 극장, 엔터테인먼트 사업군에서 겹치는 부분에 대한 정리 혹은 통합과 관련한 이슈가 내부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통합도 논의 중이에요?”

“예. 그룹의 다른 분야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서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통합해 복합미디어그룹으로 정리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계열 분리나 분사시켰던 사업부문을 모두 통합하게 되면 자산규모 17조 원대의 아시아 최대 미디어그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것도 아닌데, 서두르지 말라고 하세요.”


정운규 대표가 아쉬움이 가득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의장님.”


중국진출을 포함해서 해외사업의 성과, 재무 상황을 꼼꼼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실화된 시점이기에.

Rehman Bros 파산이라는 충격파가 한국경제와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금융위기 이후 도약하기 위해서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


정운규 대표가 집무실을 떠나고 난 후 한참 동안 류지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BS ENM 전성기 매출이 얼마였더라....?“


이전 삶에서 BS ENM의 2010년대 중후반 재무상황이 자산규모가 대략 2.8조 원, 매출이 1.5조 원, 순이익이 600억 원 수준이었다.

WaW 엔터테인먼트로 관련 사업 분야가 통합되게 되면 자산 17조 원, 매출 9조 원이라는 엄청난 복합미디어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자산과 매출 대부분은 해외사업이 차지하게 된다.

글로벌 멀티플렉스 기업 G.O.M International 때문이다.

마음이 동 할 만 함에도 류지호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WaW만 혼자 독주해선 곤란해.’


한국 영화는 정체냐 쇠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작년 한국영화 투자수익율이 -11%였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21편에 불과했다.

한국 영화 점유율도 꺾이고, 전체 관객수 또한 600만 명이 줄었다.

올해는 3,000만 명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등이 들어왔다.

WaW와 BS가 무리해서 제작 편수를 110편으로 유지했다.

일단 영화산업의 규모가 쪼그라드는 것은 막았다.

많은 이들이 일본 수출길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꾸역꾸역 버티는 양상이란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시급한 것이 수익률이 아니라고 조언하고 있다.

영화산업이 안정적 정체 상태로 접어들게 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이른바 ‘소프트 랜딩론’이다.

고도성장이 끝난 다음에 자동적으로 정체기가 따라오는 게 아니다.

급격하게 몰락할 수도 있다.

한국 경제에만 연착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영화산업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경제는 연착륙을 위해 IT와 엔터테인먼트 같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끌어들였다.

그렇다면 영화산업에서는 무엇을 끌고 들어와야 하는 것일까.

WaW 엔터테인먼트는 자사가 보유한 성공한 IP를 활용해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하고 또 판매하고 있다.

TV드라마, 게임 소프트, 소설과 코믹스 등 부가시장을 적극 개척했다.

약간의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고.

대표적인 IP가 <퇴마기록>과 <풍운아>다.

온라인 게임과 웹툰으로 탄생했다.

그를 바탕으로 굿즈도 몇 종류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해외에 리메이크 권리도 꽤 많이 팔았다.

<엽기적인 그녀>는 이 시기까지 모두 7개 국가에 리메이크 권리가 팔렸다.

매년 한국에서 성공한 WaW 영화들의 리메이크 권리가 해외로 판매되고 있다.

또한 TV드라마 시장에도 진출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영화 전문 프로덕션이 TV시리즈로 진출하는 것은 처음이다.

성공한다면 새로운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

영화 산업의 연착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적절한 투자다.

한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이어가는 것은 좋은 신호다.

적어도 산업의 주체들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지난 15년 동안 한국 영화는 승승장구해왔다.

너무 쑥쑥 자라나는 것 말고는 걱정할 게 없었다.

뭘 해도 칭찬만 받았다.

올해부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

외부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던 집권세력이 교체됐다.

새로운 정부는 문화진흥책조차 시장경제 논리에 맡길 공산이 컸다.

수익률이 좋지 못한 부분을 걸고넘어지며 지원 부분에 손을 댈 것이다.

그를 악용해 좌파 영화계 길들이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넓게는 다른 문화상품들과의 경쟁도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 영화관람은 모든 여가활동의 기본이 아니게 된다.

프로스포츠와 게임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

심지어 가온과 JHO가 합작으로 조성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라는 강력한 경쟁상대가 몇 년 안에 등장할 예정이다.


‘땅 짚고 헤엄치던 시절은 영원히 안녕이지.’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찾아온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한 동안 굳게 닫힐 터.

내·외적으로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사실상 끝을 맞이하는 형국이다.

위기는 항상 기회도 함께 찾아오는 법이다.

류지호는 위기의 시기에 NeTube를 더욱 공격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StreamFlicks 역시 한국 상륙을 앞당길 예정이다.

그 때문에 영화감독 류지호가 한국에서 TV시리즈를 찍기로 한 것이다.

류지호가 영화감독으로 처음으로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2006년에 <연애시대>라는 드라마에서 영화감독이 처음으로 드라마를 연출한 바 있다.

더 이상 영화인들이 영화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

TV가 되었든 뮤직비디오가 되었든 광고계가 되었든 전문성을 살려 입지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반대로 그쪽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영화로 들어와야 하고.

영화만 전문적으로 쓰는 시나리오 작가로는 모자라다.

방송작가에게, 소설가에게, 심지어 게임 스토리 작가와 웹소설 작가에게도 영화 대본을 맡겨야 한다.

이 분야, 저 분야 굳이 나눌 이유가 없다.

다양한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섞일 필요가 있다.

단 복권 긁는 식이면 곤란하다.


‘유능한 프로듀서와 쇼러너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전국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을 정작 충무로가 담지를 못하고 있다.

충무로에서 고언형제나 쿠엔 태런티노 같은 자기세계가 확고한 감독을 골라낼 선구안이 있는 프로듀서가 몇이나 될까.

심지어 그 몇 안 되는 유능한 프로듀서들조차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대학 강단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추세다.

과일은 신선한 게 좋다.

때론 딴 후에 조금 숙성과정을 거쳐야 단맛이 더 올라오는 과일도 있다.

그걸 고르는 것은 사람이다.

숙련자들이 더 잘 고르는 법이고.

류지호가 인터폰을 눌렀다.


- 예. 의장님!

“박지근 감독 연락처 알아봐 줘요.”

- 박지근 감독 말씀이십니까?

“<겨울나그네>로 입봉해서 <사랑하니까, 괜찮아>가 유작... 마지막 작품일 겁니다.”

- 미팅 약속 잡을까요?

“연락처만 알아봐요 줘요. 내가 다이렉트로 컨택할 거니까.”

- 예. 곧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류지호가 또 한 명의 80~9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을 주류영화계로 소환하려고 한다.

그 주인공은 한국의 평론가들이 분류한 이른바 ‘코리안 뉴 센티멘털리즘’의 대표적인 멜로드라마 작가 박지근이다.

뉴 센티멘털리즘 영화는 쉽게 말해서 신파성을 배제한 멜로드라마다.

즉 이전까지의 한국영화의 과잉된 감정으로부터 벗어난 세련된 멜로드라마를 지향하는 영화들이다.

류지호가 좋아하는 <두 여자의 집>을 연출한 양반이다.

이전 삶에서 2010년 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여분이 흐르고 김우영 비서실장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박지근 감독은 마지막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후로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전혀 연락이 안 되고 있답니까?”

“투자를 받기 위해 충무로 제작사를 찾아다니고 있긴 하답니다.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이 닿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직 서울에 있지요. 대전으로 내려가진 않았대요?”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이맘 때 영화 일을 접고 대전에 내려간 뒤로 칩거 생활을 했다.

그러다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함께 영화준비를 하는 프로듀서를 통해 의장님 전언을 전했습니다. 늦어도 내일 중으로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몇 시간 뒤, 박지근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 영화계에서 류지호가 보자고 하는데 튕길 사람은 없다.

그날 저녁 바로 약속을 잡았다.


“감독님께 영화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영화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전 삶에서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 그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었다.


“산다는 것... 그것과 같고. 구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삶에서 느끼는 이 고통들과 부조리들 그리고 희열 같은 것들 또 요즘에 날 괴롭히는 우울증마저도 진실한 감동의 차원으로 포착하는 것. 뭔가 횡설수설이지만, 뭐.....”

“메가폰을 잡게 되시면 감독님을 괴롭히는 우울증도 치유되겠습니까?”

“모르지. 내 영화가 우울증의 거울이 될 지도....”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세요?”

“입봉 때부터 변함이 없어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정교하게 해부하는 영화. 그 속에서 인간의 구원의 실마리를 찾길 바랍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이었나요? 그런 말이 나오죠. 인생의 구원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현욱이가 수미에게 한 말이었지요.”


류지호가 박지근 감독 앞에 무협소설 한 질(10권)을 꺼내놓았다.

멜로무협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호위무사>다.


“상당한 장편이라 영화로 압축을 하게 될지, 드라마로 제작할지는 전적으로 감독님이 결정하세요.”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합니까?”

“소설을 읽어보셔야죠. 혹시 무협소설을 싫어하십니까?”

“딱히 싫어하진 않는데... 썩 즐기지는 않는 편이라.”

“일단 읽어보시고. 영화화할 영감이 떠오르면 언제든 WaW에 이야기 하세요.”


<호위무사>는 신무협 흐름에 맞게 명문정파가 대부분 사악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무협 작가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의를 부르짖고 역사를 부르짖는 개인이나 집단치고 진실로 그런 사람은 드물다.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어두운 측면을 무협소설에서 표현했을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담겼을 수도 있다.


“애정소설이라고 보시면 큰코 다치십니다. 음모구조가 다소 난잡하고 일부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스릴과 서스펜스를 살리는 것이나 박력 넘치는 전투묘사, 우정과 사랑도 제법이고요.”


충무로에서 후배들이 박지근을 옛날 감독이라고 한다.

전성기가 80~90년대였으니까.

박지근은 자신만의 미학을 정립한 감독이다.

영화는 누구나 찍을 수 있다.

자신의 영화에 미학을 입힐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동사서독> 아시죠?”

“알지.”

“이 소설 가지고 그렇게 만들어도 됩니다. 제가 책임집니다.”


무협멜로영화의 탈을 쓴 예술영화를 찍어도 된다는 의미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뭐든 궁금하신 거 다 물어보세요.”

“배 감독도 그렇고... 류 감독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니까 옛날 감독들에 대해서.”

“한 명의 인간이 성숙하고 변화할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감독도 마찬가지죠. 90년대는 삼세번이라는 암묵적 룰이 있었어요. 감독의 종합능력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면서 한 번의 실패만 보고 감독의 역량을 속단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냉정하게 프로듀서로서 감독님을 판단하면 이미 10여 편의 전작들로 검증이 끝났다고 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감독님 영화들을 좋아하고. 나는 WaW의 차림표에 분식과 패스트푸드만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더라도 손맛이 깃든 음식도 메뉴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고.. 고마워요. 내게 다시 일할 기회를 줘서.”

“성급하세요. 먼저 그 소설을 완독하시고 나서.”

“그래요. 그럽시다!”


충무로에서 외면을 받고 있던 중견감독 한 명을 또 다시 현대한국영화판으로 소환했다.

군부독재가 강요한 에로티시즘이 판 치던 시기에 데뷔해서, 사회파 리얼리즘이 득세하고, 새로운 세대가 기획영화 콘셉트의 로맨틱 코미디와 장르영화들을 쏟아내고, 블록버스터 대작과 액션 스펙터클로 트랜드가 바뀌는 와중에 물밑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감독들이 여럿이 있다.

류지호는 그들에게 어울리는 프로젝트를 발굴해서 계속 맡겨볼 생각이다.

류지호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떠나가는 박지근 감독의 뒷모습에서 활력이 느껴졌다.

이전 삶에서 뼈저리게 느껴봤다.

더 이상 영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과 좌절감을.

영화쟁이들은 다 똑같다.

영화를 위해 사는 영화인은 없다.

영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 뿐.

류지호나 박지근이나 영화감독으로서의 능력이나 감각 같은 부분에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다.

다만 삶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자신의 고민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란 점은 다를 수가 없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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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1) +3 24.02.26 1,608 83 25쪽
780 이 사업은 무조건 된다! +11 24.02.24 1,691 80 27쪽
» 고마워요. 내게 다시 일할 기회를 줘서. +7 24.02.23 1,672 83 23쪽
778 놀면 뭐해...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지 (2) +4 24.02.22 1,615 79 23쪽
777 놀면 뭐해...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지 (1) +2 24.02.21 1,661 74 20쪽
776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6 24.02.20 1,677 74 23쪽
775 내가 오너인 걸 고마워해라... +5 24.02.19 1,662 83 23쪽
774 오빠, 화이팅! (3) +5 24.02.17 1,679 83 23쪽
773 오빠, 화이팅! (2) +6 24.02.16 1,594 84 22쪽
772 오빠, 화이팅! (1) +5 24.02.15 1,668 77 27쪽
771 복댕이! +9 24.02.14 1,675 90 25쪽
770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3) +7 24.02.13 1,598 88 25쪽
769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2) +3 24.02.12 1,662 84 27쪽
768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1) +8 24.02.10 1,677 89 22쪽
767 진작 이런 시나리오 가져오지 그랬어....! +4 24.02.09 1,662 80 26쪽
766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7) +7 24.02.08 1,658 84 29쪽
765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6) +4 24.02.07 1,641 81 25쪽
764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5) +8 24.02.06 1,646 78 26쪽
763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4) +6 24.02.05 1,640 78 25쪽
762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3) +3 24.02.03 1,687 82 24쪽
761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2) +2 24.02.02 1,726 78 25쪽
760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1) +5 24.02.01 1,738 77 24쪽
759 슈퍼스타 납셨어, 아주~ +6 24.01.31 1,763 78 27쪽
758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 +6 24.01.30 1,797 80 23쪽
757 아무나 대기업 총수로 살아갈 순 없는 법이지. +8 24.01.29 1,731 88 25쪽
756 감독님은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3 24.01.27 1,768 86 25쪽
755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6 24.01.26 1,742 85 27쪽
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41 88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719 8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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