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연재수 :
899 회
조회수 :
3,827,118
추천수 :
118,652
글자수 :
9,955,028

작성
24.01.23 09:05
조회
1,723
추천
101
글자
26쪽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새해가 밝은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 말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여주 가운타운에 머물고 있던 류지호가 서울 여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된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국내외 귀빈과 일반 국민 등 5만여 명이 참석한 취임식에 류지호는 경제인으로 초청됐다.


‘문화예술계 인사도 아니고 왜 매번 경제인인데?’


한국 기득권이 류지호를 바라보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인과 공무원이 류지호를 바라보는 시선이기 그렇기 때문이다.

‘딴따라‘보다는 기업 오너가 훨씬 품위 있고 ’있어’ 보일 테니까.


“젊은 대통령은 처음 아닌가요?”

“신임대통령보다 어린 나이에 대통령이 된 한국대통령도 있어요.”


대통령의 연령만 살펴봐도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알 수 있다.


“40대의 더 젊은 대통령 임기가 모두 4번 있었는데, 자유나라당 전 당대표의 부친이었던 양반하고 저기 대머리가 40대에 대통령을 해먹었죠.”


이 시기까지 역대 한국의 대통령 중 60대는 4명, 50대 4명, 40대 4명, 70대 3명, 80대 1명이다.

역대 최고령은 3대 대통령 이성만으로 나이가 81세였다.

최연소 대통령은 쿠데타로 1963년 집권한 5대 대통령으로 집권 당시 46세였다.

정의국은 민주적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한국 최초의 40대 연령의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갖게 됐다.

물론 한국식 나이로는 50세이지만.


‘연속으로 환갑을 넘지 않는 대통령이 당선되어서 앞으로 한국의 정치인 연령도 낮아질 수 있으려나....?’


기계적인 박수를 치며 류지호는 그런 생각을 해봤다.

노회한 대통령이 국가를 잘 이끌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21세기는 예측하지 못한 국제적 정세가 수시로 발생하는 시대다.

정치력과 이념으로 무장한 리더보다는 똑똑하고 순발력 있는 리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기업경영도 마찬가지.

전통적인 경영관과 판단력만으로는 수시로 혁신이 요구되는 경영환경에 대처하기 쉽지 않다.


‘다음 대선 프레임은 연륜이나 노련 같은 키워드가 될 수도 있겠는걸.’


정의국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게 되면 ‘애송이‘ ’아마추어‘라는 표현이 언론에서 자주 등장할 것 같았다.


하아...


입김이 절로 나오는 제법 쌀쌀한 날씨다.

류지호는 대한상의, 전경련 등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나란히 앉았다.

취임식에 초청받을 때마다 일부러 앞자리에 배치를 하는 느낌이다.

눈에 잘 뜨이라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다만 얼굴마담 취급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취임사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

젊고 활력 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요약하자면 그 두 가지다.

경제·통일·복지·환경 등 정책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비전도 제시했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누가 보수정당 출신 아니랄까봐 건국 60년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취임식 이후로 건국 시기와 관련한 논란이 있을 것 같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로 한국 사회에서 배금주의와 힘과 권력을 추종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본래 보수의 기준은 전통, 법, 윤리, 안정 같은 것들이다.

힘(권력, 돈)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힘과 이익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고 그저 기회주의일 뿐인데.

한국에서는 보수의 개념이 해가 갈수록 훼손되고 있다.


‘진보와 좌파의 기준도 엉뚱하게 변질되고 있으니... 공평한 건가?’


철지난 ‘빨갱이‘ 타령하는 보수나 ‘민주주의‘ 타령하는 진보다.

시대를 역행하는 것은 똑같았다.


‘팬데믹, 메타버스, AI시대에 이념논쟁이 뭐가 중헌디~’


친가온 성향의 인사들이 대통령 인수위원에 몇 명이 들어가 활동했다.

그들을 통해서 임기 중 벌어질 수 있는 국제적 이슈에 대해 귀띔을 했다.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를 하면 다행이다.

아니라면 류지호로서도 어쩔 수 없고.


“.....”


정의국이 전임 고유현과 작별 인사를 했다.

여러 사람들을 거쳐서 류지호도 장갑을 벗어 신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이어서 내·외빈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정의국 대통령이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연단에서 중앙 통로를 거쳐 차량이 있는 곳까지 가는 데 무려 20분이나 걸렸다.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느라 꽤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추워 죽겠구만....’


대통령이 사라지자마자, 류지호는 얼른 행사장을 나섰다.

취임식에 초청된 피겨선수 김예나가 아는 체를 해왔다.


“의장님~”

“어, 예나야. 4대륙대회는 기권했다며?”

“고관절이 안 좋아서요. 코치님들이 조금 쉬자고 하셨어요.”

“치료는 받고 있는 거야?”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훈련은?”

“다음 달 세계선수권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어요.”

“연습은 어디서 하고 있어?”

“전주요.”

“전주 내려가면 맛있는 거 사줄게. 나중에 또 보자.”

“네~”


김예나는 고관절 부상으로 4대륙선수권을 기권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전 삶에서는 세계선수권에서 진통제를 맞고 프리스케이팅에 나서 아깝게 동메달에 그쳤다.

이번에는 가온 스포츠단에서 김예나를 비롯한 소속 피겨 꿈나무들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훈련장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가온그룹이 만들어 전주시에 기증한 아이스링크에서 훈련하거나,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보내 마음껏 링크에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한국에는 피겨스케이팅 전용 아이스링크가 없다.

류지호는 사비를 털어 전용 아이스링크를 만들 생각이 없다.

만들어봐야 국가나 지자체에 빼앗길 뿐.

공무원들의 온갖 간섭으로 골치만 썩을 테니까.

가온그룹 스포츠단 피겨 선수들은 전주의 원더러스 아이스하키 전용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아이스하키팀이 일본 원정 중이기에 피겨 선수들이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홈경기를 하게 될 때는 해외로 전지훈련을 나가면 되고.


짝짝짝.


취임식 이후로 각종 리셉션들이 열렸다.

류지호는 방한한 몇몇 해외 재계 인사들과 미팅자리를 가졌다.


“보아오포럼...?”

“예. 미스터.”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중국 국무위원이 류지호에게 보아오퍼럼 참석을 요청했다.

보아오 포럼(Boao Forum for Asia)은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을 표방하고 매해 중국의 하이난 섬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많은 명사들이 찾아와 2박3일 간의 일정을 통해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과 미래에 대해 대화하고 토론하며 각국 지도자들의 정상외교가 활발하게 진행되는가 하면 국제적으로 유수한 기업가들이 세계화의 현장 속에서 경쟁과 협력을 도모합니다.”


주로 아시아 지역 경제 이슈를 다루는 보아오포럼은 2001년 아시아 26개국 대표가 모여 출범했다.


“야스오 전 일본총리가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고, 전 싱가포르 총리 우쭤둥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 15명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죠. 한국의 선경그룹 최 회장도 이사회 멤버입니다.”


중국은 보아오포럼을 통해 ‘아시아 맹주’라는 이미지를 점점 굳혀가고 있다.


“4월 일정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가능하면 참석하는 것으로 해 보죠.”

“부디 아름다운 휴양지 보아오에서 미스터 류와 재회하길 기대하겠습니다.”

“위원님도 포럼에 참석합니까?”

“그럴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외에 대통령 취임식 전후로 잇따라 열리는 재외동포 행사에도 얼굴을 비췄다.

오랜만에 재외동포 단체장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 정관계, 지자체장들과 비공식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대부분이 정치성이 다분한 행사들이다.

명분만 재외동포가 새로운 정부 출범을 축하하는 행사지 실제로는 지지자 모임이나 마찬가지다.

즉 재외동포 단체장 지지자들이 모여 신임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는 자리다.

류지호는 미주경제인들이 주최한 행사에만 잠시 얼굴을 비췄다.


“어느 국가에 살던지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남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대한민국의 힘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닭살 돋는 멘트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사다.

만약 이선택이 취임했으면, 일본의 재일본대한민단이 대규모 취임 축하 행사를 벌여주고, 귀빈 중 일본 총리를 제일 먼저 만났겠지만, 정의국은 미국을 최우선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민단은 정의국 신임 대통령을 위한 축하 행사를 열어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회복과 동포사회의 발전을 위한 역할을 기대했다.

취임식 다음날에도 많은 재외동포 행사가 열렸다.

국내기업과 동포기업들이 새 정부와 동포들 간의 경제적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재외동포 실업인 교류 간담회’를 개최했다.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장, 독일 클럽코리아나 회장 등이 참석해 양국의 투자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류지호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다.

재외동포 단체장들은 류지호가 각종 행사와 연회에 참석해 주길 바랐겠지만, 류지호는 미주경제인들이 주최한 행사에 눈도장만 찍었다.

세계한국인유권자총연합회.

류지호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는 단체다.

한마디로 재외동포에게 참정권을 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앞장선 이들은 주로 미국 시민권자들이다.

의도가 의심되는 것은 그들 전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국 보수당과 인연이 깊다는 점이다.

즉 보수집단의 어용단체 성격이 꽤나 짙었다.


- 재외동표에게 투표권을 달라.

- 보수당에 표를 몰아주겠다.


그동안 재외국민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당연히 국내 각종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 심판에서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를 결정했다.

개정 입법시한을 2008년 12월31일로 정했다.

류지호는 미국 영주권자다.

서울 한남동 주택에 주민등록이 살아 있고.

한국국적자이기에 한국의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가 있다.

현행법에서는 단지 주민등록이 돼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선거인명부에 오를 자격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재외동포라도 선거인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 한국의 투표에서 선거를 할 수 있게 된다.

유·불리를 놓고 각 당들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새로 유권자로 편입될 만 19살 이상 재외국민의 정확한 수는 외교통상부가 취합 중이다.

대략 21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선의 당락을 결정하고도 남을 수치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당선자와 차점자의 표차는 각각 39만여, 57만여 표에 불과했다.

보수당은 장·노년층이 많은 영주권자까지 투표권을 주자는 주장이고, 진보당은 젊은층이 다수인 단기체류자부터 우선 투표권을 주자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의 유·불리를 놓고 따지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젊다고 무조건 진보성향도 아닐뿐더러 장년층이라고 해서 보수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동포단체 관리가 중요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정치인들이 LA나 뉴욕 또 밴쿠버 등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대략 2~3년 후부터 정치인들의 해외 출장이 부쩍 늘어나게 된다.

일정 부분 재외동포 선거관리 목적도 있는 출장이다.


“어려울 때 도운 동포들 잊지 말아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런 거다.

류지호는 딱히 탓할 마음은 없었다.

재외동포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함으로써 권익향상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순수한 뜻도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국민세금으로 한민족문화엑스포 같은 행사를 개최하고, 그 안에서 눈먼 돈들이 이 지갑 저 지갑으로 흘러 들어가고, 유력 정치인 지지자 행사처럼 변질되는 모습을 볼 때만큼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각 나라의 한인회 지도부는 대체로 보수색을 많이 띤다.

당연한 것이다.

조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다보면 저절로 민족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한국의 정치인들은 일반 동포들을 접촉할 기회가 적다.

한인회의 정치성향이 보수라고 보고 받은 것을 통해 재외선거에서 보수 지지가 높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한국 정당의 보수성과 해외 거주 한인들의 민족주의적 보수 성향은 전혀 다르다.

게다가 젊은층은 한인회 기피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인터넷을 통해 조국의 정치 상황을 쉽게 접할 수도 있고.

북미와 남미,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JHO/DirecTV를 통해 아리랑TV, KBC등 7개 한국 채널을 볼 수가 있다.

한국의 상황을 낱낱이 해외에서 실시간으로 접할 수가 있는 시대다.

보수당이라고 재외동포 약 210만 명의 상당수 지지를 얻을 것이라 자신 할 수 없다.

물론 개신교인 비율이 매우 높은 동유럽, 북미 일부 지역 교민사회에서는 보수정당 지지가 종교수준으로 광적이긴 하지만.


[가장 어려울 때 고유현 대통령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서울역 광장에 걸린 현수막이었다.

고유현은 잠시 이 현수막을 눈에 담고, KTX를 타고 낙향했다.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돌아갈지 류지호로서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게 됐다.

이전 삶과 많은 부분에서 변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 일부 구태와 적폐가 개혁되었다.

보수정부의 대통령이지만, 이전 삶과 완전히 다른 성향의 인물이 권력을 잡게 됐다.

국가 주요 정책과 국정 방향이 이전 삶과 꽤 많이 달라질 터.

이전 삶처럼 개발독재시대의 구태를 답습하게 될지.

6공화국처럼 사회주의적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꾀하면서 토지공개념과 재벌 견제 정책을 펼치는 보수정부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 보수는 경제.


그 같은 프레이밍이 생긴 것은 보수이면서 가장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폈던 6공화국과 금융실명제 같은 금융개혁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 문민정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정부패의 규모가 워낙에 크고,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원죄로 인해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리긴 힘들어도, 대통령 직선제 이후로 경제 분야에서 가장 개혁적인 정책이 쏟아졌던 시기는 주로 보수정부 시절이었다.

이전 삶에서 참여정부는 경제정책면에서 꽤나 수구적인 행태를 띄었었다.

류지호와 가온그룹이라는 변수로 인해 이전 삶과 달리 경제 분야 개혁에 손을 완전 놓치는 않았다.

정의국 역시 고우현 못지않게 스마트한 인물이다.

개발독재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자신의 경제정책에 적극 반영할 것 같지는 않았다.


‘부동산 문제만 해결해도 역사에 길이 남을 테지만....’


❉ ❉ ❉


대한민국의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은 장교든 부사관이든 일반 병이든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회원이 되는 단체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재향군인회다.

류지호는 두 번의 군복무를 경험했다.

억울한 면이 없진 않지만,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병장으로써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헌데 재향군인회와 관련된 비리 뉴스가 나올 때마다 군미필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장관 등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서 군대 의무를 다 하지 않고도 높은 지위를 누리는 자들을 보면 괜히 억울해지기도 하고.

십 년 전 처음 류지호는 재향군인회 탈퇴를 요구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잘 나갈 때가 아니어서 그랬을까?

절대 불가였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이 그렇다면서.

재향군인회 회원에서 벗어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관에 ‘본회의 임직원과 회원으로서 법 및 이 정관과 그에 의하여 제정된 제규정에 위배되는 행위 및 본회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거나 또는 본회의 명예를 손상한 자’는 제명, 자격정지 등 징계를 할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그래서 류지호는 여러 차례 재향군인회를 비판하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제명을 절대 안 시켜줬다.

가입은 자동이지만, 탈퇴가 거의 불가능한 단체.

단체의 우파적 정치성향은 차치하고,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단체의 회원으로 남아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도 따지고 보면 일제 청산 미비의 후유증이 상당한 조직이다.

한국전쟁이 반발하고 설립된 후, 61년에 대한민국재항군인회가 정식 법인이 되었다.

이후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관변 조직의 필요성이 커지게 되고, 재향군인회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20년 안에 G7에 편입될 수도 있는 선진국이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같은 독재시대 잔재를 여전히 법률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역사에도 부끄러운 일이다.

민간단체라기보다는 부실 독점기업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썩어 있고.

관변단체가 아니라 마치 부패한 공기업 같다고 할까.

문제가 많은 법이고 단체임에도, 국회의원들은 바꿀 생각을 안 한다.

왜?

매년 100억 원 상당의 국고를 지원받아야 하고, 사업체를 운영함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이미지메이킹이 되며, 비리 은폐에 용이하며, 우파정당에 힘을 실어주는데 아주 유용하기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손을 보려고 했다.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그렇다고 손을 못 댈 것도 아닌데, 저항에 부딪치자 손을 놔버렸다.

시끄러워지는 것이 귀찮아서.


“마지막으로 요청 드립니다. 재향군인회 회원에서 탈퇴시켜 주십시오.”

“안 된다니까 그러네.”

“마지막입니다. 진짜 안 됩니까?”

“법이 그래, 법이.”

“알겠습니다. 이후 벌어질 일은 전적으로 재향군인회의 책임임을 알려드립니다.”

“....책임?”


재항군인회관을 나선 류지호가 비서실에 연락해 기자를 모으라고 지시했다.

오후가 되자 내외신 기자들이 상암DMC 가온타운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임신한 아이가 쌍둥이래?”

“청와대에 미국발 금융위기 리포트를 줬다고 하더니 그것 때문에 그런가?”

“그거 새로운 청와대 경제파트에게 대차게 까였다던데?”

“리틀 버펫이자 투자의 귀재라는 미스터 할리우드의 리포트를 깠어?”

“미국 정부와 신용평가사들이 금방 진정될 거라 했대.”

“가온그룹 이사회의장직에서 물러나기라도 하려나?”

“실질적으로 그룹은 김 회장이 책임지고 경영하지 않나?”

“조용. 왔다!”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찰칵찰칵!


간이 단상에 류지호가 올라섰다.


“안녕하십니까? 모두 오랜만입니다. 류지호입니다.”


류지호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여유가 넘쳐흘렀다.

한편으로는 오만함도 느껴졌다.


“보도자료를 통해 소식을 알려도 되지만, 이왕이면 직접 기자분들과 대면한 상태에서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불이익도 많이 받았습니다. 부담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뭐라고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는지.”


기자들은 은퇴라도 선언하는가 싶었다.

그것과 맞먹는 폭발력을 가진 선언이 류지호 입에서 나왔다.


“다음 주에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바쁘게 자판을 두들기던 한국 기자들의 손이 멈췄다.


“.....”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갑자기 미국 시민권?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영화감독으로 또 투자자로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곤란한 점이 꽤 많습니다. 따라서 미국 시민권을 얻어 살아가려고 합니다.”


CNN 한국특파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 혹시 지난 미국작가협회와 메이저 스튜디오 사이의 중재를 하면서 불이익이라도 받은 겁니까? 아니면 매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인이기에 받는 불이익 때문입니까?

“...음. 모두 아니라고 말 하고 싶지만....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류지호는 잠시 단상 옆으로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고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세 가지 일에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다다다다탁.


노트북 자판 위의 기자들 손이 분주해졌다.

류지호는 자주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었다.

영화 시상식 생방송에서까지 할 말을 다 하던 위인이다.

기자들은 이번에도 뭔가 폭탄발언을 할 것임을 직감했다.


“첫 번째 일은 가온그룹이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겁니다. 가온그룹은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정기세무조사라는 것 자체가 없는 모양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세무조사를 받으니까 말입니다. 마치 세무당국은 가온그룹에서 부정이 나올 때까지 파보겠다고 작정한 같습니다. 물론 국세청의 그런 노력 덕분에 가온그룹에는 십 원 하나 부정이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부분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정의국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한 바 있다.

특검이 오성그룹 일가와 기업에 대해 한창 압수수색을 할 때였다.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고는 대기업의 성장 독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대기업들이 움찔해서 일자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리가 들여오고 있다.

소나기는 피하랬다고, 대기업들은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에 고용과 투자를 늘리고 하청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로 약속해 위기를 넘기려고 고심 중이다.

소위 우파라는 사람들은 류지호의 가온그룹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쳐 사세를 불린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보고 있다.

당연히 두 정권과 유착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집권하자마자 가온그룹부터 조질 것이란 것은 여의도와 언론계에서 정설처럼 굳어졌던 사실이다.

자유나라당 유력 대권주자 이선택을 중도하차 시킨 이가 류지호라는 소문도 괘나 신빙성을 인정받고 있고.

역대 모든 정권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재벌을 두드려 서민과 중소기업의 분노가 대기업으로 쏠리게 만들어 왔다.

재벌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선전해 지지도를 올려보겠다는 전략이다.

정의국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검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이 가온그룹을 상대로 기획 사정(査正)에 나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마음대로 세무조사하고, 조사하고 싶은 거 다 하십시오. 대체 새 정부가 하고 싶은 경제 정책이 무엇이기에 칼로 압박을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물론 가온그룹은 관계 당국에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몇몇 기자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지금까지 한국 재벌 중에서 기자들 불러놓고 정부에 선전포고를 한 이가 없었다.

미국 시민권 딸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 막나가는 모양새다.


“내가 어릴 때는 방위성금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중퇴할 때까지 성금을 냈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고 많이 성공했죠. 그래서 방위성금조로 나라에 좋은 일 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엉뚱한 말을 합니다. 기부 하지 말랍니다. 공군에서는 기부가 고맙다고 하는데, 국방부는 기부를 받지 않는다면서 방사청과 사업으로 하랍니다. 나는 그들을 믿지 못하겠으니 그냥 공군과 다이렉트로 협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안 된답니다. 반드시 방사청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답니다.”

- 도대체 무슨 기부이기에 그렇습니까?

“내 전용기 파일럿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입니다.”


원하는 대답은 안하고 갑자기 자가용비행기 자랑이라고 하려는 것일까.


“JHO에는 FBO.. 항공기 토탈 서비스 회사도 또 사설 공항도 운영 중이지요.”


뉴멕시코의 소유 목장에 사설비행장을 갖춰놓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참여정부 대통령실 의전비서관들이 류지호를 매우 싫어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대통령도 변변한 전용기가 없는데, 새파랗게 어린 사람이 전용기는 물론 사설비행장까지 갖추고 있으니, 얼마나 편치 않았겠는가.


“따라서 전직 공군 출신도 많이 근무하고 있지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난 카투사를 나왔기에 공군과 해군 사정은 잘 모릅니다. 가끔 관련 기사나 다큐멘터리가 있으면 관심을 가지고 보는 정도였지요. 전국의 공군 비행단 11군데에 설치된 항공관제레이더가 대부분 수명을 넘겼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공군 출신 직원들에게 물었더니 수명이 이미 7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군 당국자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내가 공군 비행단 항공관제레이더를 교체해 주고 싶다.”

- .....?

“그랬더니 가능한지 검토한 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 말씀 중에 정말 죄송한데.... 공군 레이더를 왜 의장님이 교체를 해주시겠다는 것인지....

“수명이 7년이 넘었다잖습니까? 그로 인해 항공사고라도 나면 어쩝니까?”

- ......?‘

“사업비가 대충 3,200억 정도 된다고 합니다.”

- 와우!

- 허허....!


사연은 이랬다.

1986년 대한민국 공군은 항공관제레이더를 대구와 광주비행단에 처음 도입했다.

이후로 다른 비행단에도 차례로 9개를 더 설치했다.

항공관제레이더는 비행장 주변 약 100km 안쪽에 있는 항공기의 위치·방향·고도·속도를 파악하고, 관제사는 그 정보를 보고 항공기의 이착륙을 통제한다.

항공기 간 충돌을 막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체로 15년을 쓰면 레이더 수명이 다했다고 본다.

대구와 광주의 레이더는 7년 전인 2001년에 사용기한이 이미 끝났다.

공군은 일부 부품을 교체해 수명을 늘렸다.

이마저도 기한을 한참 넘긴 상태다.

전국의 11개 레이더 전부가 최초 수명을 넘겼고, 공군이 억지로 늘린 수명도 대부분 끝나가고 있다.

당연히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

오래되다 보니까 최근 몇 년 사이 20번이 넘게 멈출 정도였다.

더구나 80년대부터 설치한 아날로그 방식의 레이더여서 위험한 상황이 생겨도 자동으로 감지를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류지호가 최신 디지털 항공관제레이더로 교체해 주겠다는 것이다.


- 국방부에서 의장님의 기부를 반대하는 이유가 뭡니까?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82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2) +2 24.02.27 1,575 82 23쪽
781 돈을 번다는 건 분명 좋다! (1) +3 24.02.26 1,608 83 25쪽
780 이 사업은 무조건 된다! +11 24.02.24 1,690 80 27쪽
779 고마워요. 내게 다시 일할 기회를 줘서. +7 24.02.23 1,671 83 23쪽
778 놀면 뭐해...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지 (2) +4 24.02.22 1,615 79 23쪽
777 놀면 뭐해... 일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지 (1) +2 24.02.21 1,661 74 20쪽
776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6 24.02.20 1,676 74 23쪽
775 내가 오너인 걸 고마워해라... +5 24.02.19 1,662 83 23쪽
774 오빠, 화이팅! (3) +5 24.02.17 1,679 83 23쪽
773 오빠, 화이팅! (2) +6 24.02.16 1,594 84 22쪽
772 오빠, 화이팅! (1) +5 24.02.15 1,668 77 27쪽
771 복댕이! +9 24.02.14 1,675 90 25쪽
770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3) +7 24.02.13 1,598 88 25쪽
769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2) +3 24.02.12 1,662 84 27쪽
768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1) +8 24.02.10 1,677 89 22쪽
767 진작 이런 시나리오 가져오지 그랬어....! +4 24.02.09 1,662 80 26쪽
766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7) +7 24.02.08 1,658 84 29쪽
765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6) +4 24.02.07 1,641 81 25쪽
764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5) +8 24.02.06 1,646 78 26쪽
763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4) +6 24.02.05 1,639 78 25쪽
762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3) +3 24.02.03 1,687 82 24쪽
761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2) +2 24.02.02 1,726 78 25쪽
760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1) +5 24.02.01 1,737 77 24쪽
759 슈퍼스타 납셨어, 아주~ +6 24.01.31 1,763 78 27쪽
758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 +6 24.01.30 1,797 80 23쪽
757 아무나 대기업 총수로 살아갈 순 없는 법이지. +8 24.01.29 1,731 88 25쪽
756 감독님은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3 24.01.27 1,768 86 25쪽
755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6 24.01.26 1,741 85 27쪽
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40 88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719 87 2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