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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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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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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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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5,028

작성
24.02.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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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글자
22쪽

오빠, 화이팅!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의 국회의원 혹은 어(쩌다)공(무원)에 법조인과 교수 출신이 많은 이유가 뭘까.

이전 삶부터 류지호는 그것이 무척 궁금했었다.

약간의 실마리를 이번 삶에서 얻었다.

두 직업세계 모두 뇌물과 정치질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교수 되는 것부터 정치질과 뇌물로 시작한다.

예체능계 교수임용에만 뇌물이 오가는 줄 알았다.

천만에 말씀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전임교원으로 채용될 경우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할 때마다 돈이 오간다.

심지어 시간강사와 겸임교수 직을 얻기 위해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논문 발표에 있어서 독창적인 연구는 시간과 노력이 오래 요구된다.

그런 논문을 몇 개씩 발표해야 교수직 유지가 된다.

어지간한 교수는 짜깁기 날림 발표로 때운다.

그리니 실력이 퇴보될 수밖에 없다.

아님 말고 식으로 꼬리 자르기 기술만 늘어서 뻔뻔해진 교수가 허다하다.

한국 대학에는 지성인은커녕 지식 전수 기술자 축에 못 끼는 교수가 즐비하다.

대기업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프로젝트는 다 외국의 유수 대학에 연구를 의뢰한다.

그나마 있는 똑똑한 이들이 학계의 카르텔에 좌절하거나 환멸을 느껴 한국 교육계를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학계에 있는 이들 말고 일반인들은 대한민국교수협회 역시 거대한 카르텔 중 하나라는 걸 잘 모른다.

한국의 대학교단에는 무늬만 교수인 이들도 수두룩하다.

부정부패로 유명했던 제물포에 있던 모 대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하다가 재단이사장 눈에 들어 경영학과 교수로 수십 년 해먹을 경우까지 있다.

지방 사립대에 그런 케이스가 제법 많았다.

의대의 경우도 지방의대에서 학업을 마친 후에 거의 예외 없이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한다.

전국의 어지간한 종합병원은 서울대 출신들끼리 다 해먹고 있다.

교수에서 물러날 때가 되면 가관이다.

대기업 고문에 위촉되려고 매사 기업에게 유리한 발언만 일삼는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약자를 위해 증언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대한민국에는 시대의 지성이니 양심 같은 표현이 과분한 지식인들 천지다.

특히 이념적으로 좌파에서 우파로 노선을 변경한 지식인들의 발악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한국에서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일본재단이나 사사키재단의 러브콜에 쉽게 넘어가게 되고, 1~2년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로는 마치 자신들의 조국이 일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전 삶에서 이선택 정부부터 그런 이들이 보수진영 내부에서 기독교 카르텔과 함께 사회 곳곳에 독을 퍼트리기 시작했었다.


“1995년 12월, 아시아 연구기금이 설립되는 전주곡으로 전범가문 사사키 자손이 낭송하는 윤동주의 시가 알렌관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의 윤동주! 그분이 살아계셨다면 그 광경을 어떻게 지켜보았을까요? 아시아 연구기금을 받기 위해 편법까지 동원하는 연희대학의 지도자들을 향해 그분께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요? 20세기 전반부의 과거사가 아니라 엄연히 21세기의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에 매우 통탄하셨겠지요. 친일적인 모교의 핵심 인물들에 의해 자행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과연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 서글픈 질문들을 우리 연희대 졸업생과 재학생 모두는 스스로를 향해서 반드시 던져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표 사학인 연희대학교 총동문회관 앞에서 열린 재단이사장 퇴진 집회에서 류아라가 한 연설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류지호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우.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야 할지 혼을 내야 할지....”


가족 중에서 류지호만 별종인 것으로 충분했다.

굳이 막내 여동생까지 사회참여적 활동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암튼 연희대학교 총동문회관 앞에 운집한 사람들의 면면이 나름 대단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가나다연합선교회, 대한감리회총리원, 미국북장로교선교회, 미국남장로교선교회, 미국감리교선교회, 호주장로교선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등 국내외 기독교관련 단체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모두 연희대학교 이사회에 참여하는 멤버들이다.

연희대학교 이사회의 골격은 1957년에 만들어졌다.

‘재단법인 연희대학교’와 ‘재단법인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하나로 합쳐지면서였다.

당시에 이사회를 15~30명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 시기에 와서는 기독교 단체들과 동문회, 총장, 지역사회유지 등 12명으로 구성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사회를 기독교계에서 맡는다는 뼈대가 흔들리지 않았다.

김우영 비서실장이 집회에 참석한 외국인 중에 한 사람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쪽에 있는 사람이 언더우드 가문 후손입니다. 의장님.”

“그 옆에 옆에 있는 양반은 전 서울지검장 아니던가요?”

“맞습니다. 그 옆으로 전 겨레일보 대표이사, 전 오성언론재단 이사장, 전 경일건설 상무, 전 대법원장, 전 특허법원장, 대형 NGO 대표들도 있고, 동계스포츠 단체장들도 몇 명이 보입니다.”

“저들을 다 막내가 불러 모았다죠?”

“예.”


저들이 류아라의 간청을 수락하고 집회에 참석한 이유가 있다.

백원일보 명예회장이자 연희대학 재단이사장이 학교 정관을 개정해 연희대학의 사유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연희대를 백원일보 것이라 알고 있고 있었다.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재단이사장으로 10년째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이 막내의 뒷배경만 보고 이런 시위에 참석했을 리는 없고....”

“이사회가 정관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협력 교단 4곳, 즉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가 파송하도록 돼 있던 이사 4명을 기독교계 인사 2명으로 뭉뚱그려 축소하고, 교단들이 가지고 있던 이사 추천 권한도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장의 권한을 강화해 연희대를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군요?”

“한국기독교장로회 파송이사가 임기가 끝났습니다. 대한성공회 파송이사는 내년에 임기가 끝나 물러날 예정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빈자리 하나를 채우기 위해 여러 차례 추천 인사를 이사회에 통보했지만, 이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언더우드가 학교를 설립할 때부터 누군가 사유화할 수 없도록 기독교계, 학교 동문회, 외부의 이사진 등으로 재단 이사회를 구성해 왔다.

적어도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재단이사장을 10년 간 연임하기 전까지는 사유화 논란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류지호의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사유화 시도가 장기간에 걸친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호원 너머에서 중년 남자가 경호원을 헤치고 류지호에게 다가오려고 애쓰고 있다.

김우영이 남자의 정체에 대해 알려줬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관계자 중에 한 명입니다.”


류지호가 경호원들에게 길을 열어주라고 손짓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교회협 총무를 맡고 있는 임학범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목사님.”


잠시 인사말이 오가고, 임학범 목사가 본론을 꺼냈다.


“10년 간 연임을 하면서 백 이사장의 말을 이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의장님도 아시겠지만, 사립학교에서 이사회는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죠. 현재 연희대학은 개인이 10년째 이사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사람이 아닌 백원일보가 배경인 사람이 말입니다.”


백원일보 명예회장은 지난 1997년 동문회장 자격으로 연희대학 이사회 이사장이 됐다.

그 후로 무려 10년 동안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에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어서 개방이사를 두도록 한 것으로 아는데.... 기존 교단의 파송이사와 중복되는 거 아닙니까?”


류지호의 말이 바로 기존 이사회 측 논리였다.

연희대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해 파송이사를 개방이사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국회와 정부에 줄곧 해오고 있다.

개방이사를 따로 두도록 한 다른 사학들과 동일한 잣대로 보지 말라면서.

백원일보 명예회장이니까 할 수 있는 짓거리다.


“교단 파송이사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기독교계 이기주의로 보지는 말아 주십시오.”


류지호는 딱히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크게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여동생이 깊이 연루되기 전에는.


“권력과 자본이 교육 현장까지 사유화하려는 것을 감시하고 막아내기 위한 활동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류지호가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자신의 모교도 아니고.

교회협 총무가 연희대 이사회 논란에 대해 한참 동안 설파했다.

이미 김우영에게 들었던 내용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집회가 한창인 가운데 류아라가 언더우드 후손과 함께 류지호를 찾아왔다.


“오빠도 진짜 함께 갈 거야?”

“물가에 내놓은 아기 같아서 안심이 돼야지....”

“핏, 나도 낼 모레 서른이거든.”

“서른인 놈이 이러고 있냐?”


연희대학교 총동문회가 있는 회관 4층 엘리베이터.

내리자마자 백원일보 명예회장의 흉상이 가장 먼저 일행을 맞이했다.


“아라야, 너희 학교 김일성 대학이냐?”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야, 오빠는!”

“근데 왜 이런 같잖은 흉상이 떡하니 학교에 있는 거냐?”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1981년~1997년까지 무려 1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1~19대 총동문회장으로 재임하면서 모교와 동문회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기리는 조각품이란다.

1997년 동문회장 임기를 마치자마자 재단이사장에 올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립자도 아니고 임기제 이사장 흉상이 버젓이 학교에 있다니.


“이런 꼬라지가 너희 동문들은 퍽도 자랑스러운가 보네?”


류아라와 총학생회장이 류지호의 신랄한 독설에 귀가 빨게 져서 얼른 동문회관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어 언더우드 후손, 기독교단체 이사회 관계자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류지호를 마지막으로 동문회관 회의실 문이 닫혔다.


“....?”


마지막으로 회의실에 입장한 류지호를 향해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외부인이 이 자리에 왜 끼냐는 눈초리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여동생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보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럼에도 누구도 입 밖으로 류지호의 무례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하다.

몇 다리 건너면 가온그룹이나 류지호와 알게 모르게 다 연결되어 있기에.

그들 입장에서는 괜히 나서서 미운털이 박힐 필요가 없었다.

총장이 이사장을 열심히 두둔했다.


“재단이사장으로 계시면서 학교 돈을 1원도 안 썼어요. 또 이사들 눈치 보지 않고 총장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습니다. 특히 우리 대학처럼 주인 없는 기관에는 어느 정도 권위 있는 분이 지켜주는 것이 학교에 도움이 됩니다.”


기독교계 관계자가 말을 받았다.


“무색무취한 종교계 인사들이 이사회에 들어가 활동하다 보니 과거에는 이사회의 역할을 두고 말이 나온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인가 이사회가 학교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배후조종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도 특정한 진영논리를 가진 어떤 분에 의해서.....”

“모두 오해에요. 우리학교와 백원일보는 성대와 오성그룹, 중대와 두진그룹 같은 관계가 절대 아닙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교수평의회나 동문회 등에서 교단 파송이사들이 학교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어요.”

“기여를 다 떠나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지 않습니까? 반면에 과거에 물의를 일으켰던 일부 인사들이 이사회에 들어오는 것 같이 언젠가부터 마치 연희대 이사회가 복마전 비슷하게 됐습니다. 이사 구성이나 총장 선출도 의대나 상대 같은 특정 단대로만 계속 쏠리다 보니 학교가 고르고 다양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셉니다.”

“세계적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나마 조금 똘똘해 보이는 총학생회장이 재단이사장을 향해 날선 질문을 날렸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서로 돌아가면서 감투 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과연 시대적 요청을 따라갈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백원일보 명예회장은 아무런 대꾸 없이 류지호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한참 동안 양측이 평행선을 달렸다.

의미 없는 설전이 오랜 시간 오가며 류지호가 지루함을 느낄 무렵.

류아라가 가방에서 두툼한 종이뭉치를 꺼내 재단이사장 앞에 놓았다.


“뭐냐?”

“연판장입니다.”

“가소로운 짓... 잘도 했구나.”

“이사장님도 연판장을 확인해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아마 뒤통수도 얼얼 하실 걸요?”

“천둥벌거숭이 같은 년....”


장내가 갑자기 찬물을 부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재단이사장 입에서 욕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류지호를 의식해서인지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욕설이 아니다. 우리 때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쓰인 말이다.”


의자에 붙이고 있던 등을 떼고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제3자인 내가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뭔가 합의가 도출될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평소 존경하던 회장님과 대화를 좀 나눠보고 싶은데....”


벌떡.


류아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저희도 할 이야기 다 끝났어요. 오늘 면담을 요청 드린 것은 저희 의지를 전달하고 졸업생들의 연판장을 전해주려고 했던 거예요. 이제 저희는 나가 보겠습니다.”


류아라가 일행을 데리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류지호가 총장을 비롯해 이사장 측근들을 빤히 쳐다봤다.

너희들도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눈에 가득 실어서.

재단이사장의 고갯짓으로 총장과 측근들이 마지못해 자리를 피했다.


“날 만나려고 했으면 미리 연락을 했으면 좀 좋아. 따로 자리를 만들었을 텐데....”


류지호는 백원일보 명예회장과 길게 대화하며 입씨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점잖게 타이를 생각도 전혀 없었고.


“물러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짜고짜 찾아와서 그게 무슨 망발인가?”

“그만 노욕을 내려놓으시죠.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시겠다고 젊은 사람들 앞길을 막고 계십니까?”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탕.


“보자보자 하니까! 지금 뉘 앞에서 그따위 말을!”

“백씨 가문이 이 학교를 공식적으로 접수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솔직히 나와는 크게 상관도 없고요. 그런데 내 여동생이 걸려있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내가 여동생에게 참 몹쓸 오빠였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주는 편입니다. 아라가 이사장님의 퇴진을 간절히 원하더군요. 자기 모교를 백씨 일가가 사유화할 것 같다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내 앞에서 이런 건방을 떠는 거야, 도대체가!”

“백원일보가 WSJ보다 잘 나갑니까? 글로벌 톱 쓰리 복합미디어 그룹보다 대단합니까? 이사장님은 뭘 믿고 그리 당당한데요?”

“네 놈이 미국에서 힘 좀 쓰는 모양인데,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감옥에 보낼 수 있어. 내가, 이 백가가.....”


류지호는 백원일보 명예회장의 말을 차분히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다 떠나서 프랑스 같았으면 백원일보는 국가에 몰수되어 국유화되거나 폐간되고, 언론인 쉬아레스처럼 사형과 재산몰수, 수치국민 판정을 받았을 겁니다.”


프랑스 언론 ‘오늘’의 정치부장인 조르쥬 쉬아레스.

나치에 협력한 반역죄로 처형됐다.


“뭐라고! 이, 이놈이 말이면 단 줄 아나!”

“한국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없어요. 이사장님 같은 양반들이 기를 쓰고 입법을 막고 있죠. 재벌들과 함께. 1997년인가 김태평 대통령 당선 직후, 당선인에 대해 다룬 WSJ 영문 기사를 조작해서 가짜뉴스를 백원일보가 버젓이 발행한 적이 있을 겁니다. 이대충인가 김대충인가 하는 논설위원이 조작했던 것으로 아는데.... WSJ가 그때는 백원일보 따위 안중에 없었는데 말이죠. 상황이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백원일보가 The Wall Street Journal의 기사를 인용보도하면서 조작·날조한 것이 한두 건이 아니다.

이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겠지만, 오너가 JHO Company Group이 되면서 신경을 쓰자고 들면 못 할 것도 없다.

관련해서 미국에서 소송이라도 걸게 된다면.... 백원일보는 꽤나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세울 수가 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거의 무한대로 인정하는 편이다.

그것도 진실과 사실에 입각하거나 사회 상궤에 입각했을 때에만.


“뭐, 그 전에 ABC협회 건부터 수습해야 할 것 같지만.”

“감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어디서 협박질이야!”

“왜요? 킬러라도 고용하시게? 참고로 며칠 전 미국시민이 되었습니다. 미국시민 함부로 건드리셨다가는.... 큰일 나실 수도 있어요. 자칫 해외계좌 동결이라도 당하시면 일가분들 재산 다 어쩌시려고.”


류지호가 마음만 먹으면 테러자금 명목으로 백씨 일가의 해외자산을 모조리 동결하거나 미국에서 압수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래봐야 국내에서 형성한 재산이 워낙 많아서 해외자산을 뺀 것만으로도 몇 대가 먹고 살 수 있겠지만.

다만 해외에 빼돌린 자금이 날아가면 아마 일부 가족이 화병으로 암에 걸릴 수도 있지 싶다.


“......”


백원일보 명예회장은 더는 대거리를 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자식들이 그 같은 농간에 큰 봉변들을 당하지 않았던가.


“이보게.... 내 자식들이 이미 자네에게 싹싹 빌지 않았나. 굳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세워서 되겠나.”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태세를 전환했다.

그래봐야 소용없었지만.


“돈과 인맥을 가지고 나서.... 언젠가 백 회장님을 만나게 되면.... 언론인의 양식과 양심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고귀한 가치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꼭 묻고 싶었습니다. 매번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역사와 시대정신을 왜곡하고. 국민을 영원히 바보인 줄 아는 백원일보의 수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습니다. 근데... 그냥 늙은 고집쟁이일 뿐이라는 걸 마주하게 되니.... 그냥 환상으로 남겨둘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듭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래야 덜 억울했을 것 같았다.

겨우 이 정도 되는 사람에게 바보같이 휘둘리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억울함과 함께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사장이 더는 참지 않고 일이서서 삿대질을 해댔다.


“뭐야! 이 건방진 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금수저로 태어나 부모가 물려준 언론사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

자수성가로 뭔가 엄청난 업적을 이룬 것도, 고난을 헤쳐 나가며 참 언론인 혹은 시대정신 같은 가치를 품은 선구자는 더더욱 아니었던 그저 기회주의자였을 뿐인.

시대에 편승해 권력에 야합하고, 약자를 짓밟으며 온갖 특권과 부와 권력을 향유하기만 한 탐욕자.

류지호는 로버트 폭스 같은 언론계 최종 빌런 같이 뭔가 아우라라도 있길 기대했다.

그저 천박한 안하무인의 노인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사사키 재단의 돈 받는 것도 이사장님 생각입니까? 아니면 전 총장과 동서문제연구소 사람들 단독으로 하는 겁니까?”

“더는 네 놈과 말 섞기 싫어! 나가 당장!”


당장 새천년관 704호에 가보면 답이 나온다.

이사장이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을.


“사사키 재단의 한국 거점이 아시아 연구기금이잖습니까? 아시아 침략을 ‘대동아 해방‘으로 보는 일본 극우세력의 온상 그 자체... 모르지 않잖아요? 그런 단체의 돈을 지난 10년 동안 이 대학교의 핵심 지도자들이 뿌리고 다녔어요. 아시아 연구기금의 설립 및 운영에 이 학교 지도부가 대대적으로 가담해 왔는데, 재단이사장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전·현총장이 이사장님 사람으로 아는데... 전임 총장 2명, 현 교무처장, 현 국제학대학원장, 그리고 지난 10여 년 동안의 이 대학교의 모든 재무처장들 및 동서문제연구소장 등. 모두 한통속 아닙니까?”

“그 입 닥쳐라!”


백원일보 명예회장이 얼굴이 벌게져서 악다구니를 써댔다.

백원일보는 가온그룹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연간 250억 이상 광고비를 집행하는 중요한 광고주이기에.

그 잘난 언론계 흑막이 류지호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욕설을 내뱉고 테이블에 분풀이하고 악을 쓰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

류지호는 너무나 씁쓸했다.


‘현실의 악당과 영화 속 악당의 민낯이 이렇게 다른 법이지.’


류지호는 백원일보 명예회장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가장 도도한 얼굴로 가장 비열한 짓을 침착하게 해내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흑막의 수괴 정도 캐릭터를 예상했다.

지금까지 류지호가 만나본 에드윈 터너, 존 말론 같은 꼬장꼬장하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품고 있는 언론계의 노장이거나, 로버트 폭스처럼 여우와 늑대처럼 능수능란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전혀 아니었다.

저잣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욕심만 많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일 뿐.

미국 휴스턴에서 오성그룹 회장을 직접 마주했을 때도 상상했던 것이 깨지면서 다소 허탈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때 보다 좀 더 심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머지않은 장래에 종이신문이 폐지 줍는 노인들의 하루 일당을 책임져주게 되고, 동남아시아에 팔려나가 과일 포장지로 사용되는 것처럼.

이전 삶과 달리 백원일보 명예회장 또한 폐지의 운명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류지호는 확신했다.

참여정부에서 종편진출을 원천봉쇄했다.

정기세무조사와 족벌사주 지분의 제한 등 방송과 언론 관련 법률도 개정했다.

정의국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문화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어림도 없다.

내각에 친가온계 인사들이 암암리에 포진하고 있기에.

백원일보와 동양신문은 애당초 광고 수익으로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세습하는 이윤추종 사기업일 뿐이다.

제일신문은 오성그룹 사보나 마찬가지고.


'큭큭. 그렇게 따지면 YNTV는 가온그룹 사내방송인가...'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즐거운 불금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99 문연판타
    작성일
    24.02.16 09:21
    No. 1

    왠지 마지막 속마음이 최종빌런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lo******
    작성일
    24.02.16 10:31
    No. 2

    잘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2.16 12:01
    No. 3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4.02.16 12:14
    No. 4

    참고로 한국 대학은 교수 고용할 때 나름 쿼터제가 있어서 출신대학별로 제한이 있습니다. 다만 일단 들어온 사람이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서울대 카르텔이 비서울대 출신을 따돌리거나 하는 식으로 나가게끔 해서 다수를 유지하고는 하죠.

    뭐 제가 떠난지 15년도 넘어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ㅎㅎ 하여튼 2010년까지만 해도 대학랭킹 때문에 신임교수들에게 논문실적 죄다 떠밀고 기존 교수들은 연구실적이나 강의시수 감면되는 보직만 찾아가면서 행정교수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신임교수들 결국 많이들 떠나고. 정규교수는 또 어차피 기존 교수들이나 이사장 입김이 많이 작용해서 정교수가 된 다음에도 대학원 지도교수 운전사 노릇하고 다니던 교수들도 있었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도뮤
    작성일
    24.02.16 21:07
    No. 5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4.02.19 05:58
    No. 6

    한숨만 나오네요.
    내 조국의 현실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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