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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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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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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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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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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생명의 항해> 제작진이 실리콘밸리의 Los Trancos Woods란 곳에 도착했다.

개인이 만든 전차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Military Vehicle Technology Foundation(MVTF).

1998년 자콥 리틀필드라는 사람이 설립한 사설 탱크 박물관 및 복원센터다.

<생명의 항해>에서 프롭 마스터를 담당하는 앤드류 팩커드가 이 박물관의 창립자와 친분이 있었다.

전투차량에 관해서는 할리우드의 그 어떤 미술·소품 담당자보다 자콥 리틀필드가 훨씬 해박했기에 앤드류 팩커드가 전쟁영화를 작업할 때마다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MVTF에는 고물 탱크를 원상복구하기 위한 300평 규모의 공장까지 따로 가동하고 있어요.”

“단순 수집가가 아니라 엔지니어이기도 한 모양이군요?”

“자콥이 MBA가 있지만, 탱크 복원과 수리를 위해 제조업체에서 근무하기도 했지요.”

“박물관이라면서 관람객이 없네요?”

“사전예약을 받아야 합니다. 허가를 받은 관람객만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지요.”


까다로운 절차에도 불구하고 매해 3,000~4,000명 사이의 관람객이 다녀가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스터 리틀필드.”


자콥 리틀필드의 안색이 그리 좋아보지 않았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대장암 치료를 받고 있어요.”


앤드류 팩커드가 몰래 알려주었다.

자콥 리틀필드가 박물관 곳곳을 직접 안내했다.


“모두 몇 대의 전차를 수집한 겁니까?”

“이곳에 150대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으니 얼마나 더 늘어나게 될지는 알 수 없죠.”


생각했던 것보다 많아서 류지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복원한 전차들은 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것들입니다.”


자콥 리틀필드는 세계적인 전차 수집가이자 엔지니어로 밀리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인사였다.

지난 30년 간 전 세계에서 탱크 66대를 포함해 전투차량 150대를 수집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곳 부지에 사설박물관을 마련했다.

MVTF에는 전투차량만 있지 않았다.

소련군 스커드 미사일, 맥심 수냉식 기관총, 대전차포 등 다양한 화기도 전시돼 있다.

자콥 리틀필드가 전시관 한쪽에 놓여있는 육중한 독일군 탱크 판터(Panther)로 류지호를 이끌었다.


“몇 년 전 러시아가 독일군의 Tiger-1 탱크를 복원했다고 하던데, 그것은 탱크의 새시를 토대로 설계도를 보고 새로 제작한 관상용 복제품일 뿐이었습니다.”


앤드류 팩커드는 마치 자기의 성과를 자랑하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판터의 복원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러시아가 티거-1의 관상용 모델을 만든 것과 차원이 다른 복원 작업이긴 했다.

자콥 리틀필드가 회상하듯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판터가 활약했던 지역을 샅샅이 수색했지요.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의 한 강물 속 뻘 깊숙이 숨겨져 있던 걸 찾아냈습니다. 50여 년 동안 뻘 속에 파묻혀 있던 판터 탱크 한 대를 끝끝내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수입해 와서 역사적 고증에 의한 복원작업에 매달렸지요.”


덕후의 집념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원천이다.

앤드류 팩커드가 류지호의 귓가에 마치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 속삭였다.


“3년에 걸쳐 외형을 복구하고, 차체에 엔진을 장착시켜 기동이 가능하게 제작하느라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 MVTF는 꿈의 공간이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탱크 66대와 대전차포와 자주포 및 전투용 지프와 수륙양용전투차량 등 150여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미칠 지경인데, 모든 차량이 실제로 구동된다.

운이 좋으면 직원들이 전시실 마당에서 차량들을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고정된 전시실에서 멈춰있는 탱크를 구경하는 것을 넘어 실제 구동하는 탱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차원이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자콥 리틀필드가 수륙양용 장갑차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


“나의 첫 수집품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병력수송용 장갑차로 당시 수집 가격은 비교적 싼 3,500달러였지요.”


그가 탱크 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82년 무렵이었다.

당시 1942년형 M5A1 스튜어트 미군 탱크를 2만 달러에 사들였다.


“저쪽에 독일 4호 전차 역시 내 애장품 중에 하나이지요.”


독일 4호 전차는 그 기구한 운명으로 인해 자콥 리틀필드의 대표적인 애장품으로 꼽힌다.

이 전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산되어 사용되다가 1960년 무렵 시리아로 팔려갔다.

19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에게 노획 당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한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자콥 리틀필드는 독일 4호 전차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국산 탱크와 물물교환을 성사시켜서 마침내 소장할 수 있게 됐다.


“탱크 수집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류지호의 취미 중에 필름 카메라와 픽업트럭 수집이 있다.

뉴멕시코 사유지에 소박하게 클래식 픽업트럭 전시관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지금은 각 박물관 별로 물물교환이 주로 이루어집니다. 정말 운이 좋은 경우 고철상에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내가 수집한 탱크들의 가격은 평균 3만5천 달러인데, 탱크들은 퇴역할 당시 무장해제조치를 당해 실전에 사용할 수 없도록 본체에 구멍을 뚫어 고철상에 넘겼지요. 80~90년대는 주로 그렇게 구했습니다.”

“지금은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겠네요?”

“소련연방의 해체과정에서 노후 탱크들이 대거 매물로 쏟아져서 그때 탱크 수집에 도움이 되었죠. 동구권 국가 붕괴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현재는 러시아처럼 복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는 예전 탱크를 구할 순 없습니다.”


자콥 리틀필드는 녹슬고 고철이나 다름없는 탱크를 사들였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

지금까지 퇴물 탱크의 매입과 복원에 투입한 자금은 약 500만 달러에 달했다.


“전투차량에 한해서는 없는 거 빼고 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디렉터.”


앤드류 팩커드의 말처럼 온갖 종류의 전투차량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표적인 전차로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첫 탱크였던 M-1917,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던 소련제 T-34/85 전차,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했던 미국산 M4 셔먼 전차, 일부 국가에서 현재도 사용 중인 미국산 M60 패튼전차 및 스위스 육군의 팬저 61식 전차와 서독 육군의 레오파드-1 전차 등을 들 수 있다.

류지호가 필요로 하고 있는 M46 패튼도 한 대가 있다.


“이거 움직일 수 있는 겁니까?”

“타보시겠습니까?”


직원이 M46 패튼 전차에 탑승한 후 류지호를 포탑에 태우고 마당을 몇 바퀴 돌았다.

멀쩡하게 잘만 구동됐다.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미스터 류에게는 언제든 MVTF의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자콥 리틀필드는 탱크의 복원 작업을 지휘하고 직접 참여하고 있다.

30여 년 동안 세계의 전차를 수집해 개인 박물관을 운영했던 억척스러운 사나이다.

안타깝게도 1년 후에 60세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리고 류지호는 <생명의 항해>로 맺은 작은 인연으로 미망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MVTF의 최대 후원자가 된다.

2013년에는 이곳의 물품 전체를 인수하게 된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조성중인 미추홀 파크의 유휴지에 Michuhol Military Vehicle Museum을 설립한다.

류지호는 밀덕이 아니다.

그런데 픽업트럭 수집에 이은 골동품 전투차량 수집 취미가 생기게 된다.

심지어 벨라루스 공화국 민스크 소재의 게임 개발사 워게이밍(Wargaming)에도 투자한다.

이 게임 개발사의 대표작이 바로 <World of Tanks>다.

2013년부터 이 게임이 JHO 산하 E-스포츠 리그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


“장진호 전투에서 인상적인 탱크전이 없었던 것이 아쉽네....”


한국전쟁에서 극초반 이후로 UN군이 전쟁 내내 제공권을 장악했다.

전쟁 초반에 북한 탱크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혔다.

그로 인해 전쟁 중후반부터는 탱크vs탱크 전투가 사실상 실종됐다.

중공군의 소위 ‘백만 대군’설에서도 보듯 그들도 보병 위주로 파병했다.

장진호 전투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미공군의 제공권, 탱크 돌격, 포병 지원 등.

적보다 우월한 전력으로 후퇴작전을 원활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지만, 중공군에게 포병과 탱크가 있었다면.

퇴각작전은 무척 암울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영화 <생명의 항해>에서도 탱크가 중공군 매복을 사전제거하거나 벙커를 무력화시키는 모습이 심심찮게 등장할 예정이다.


“공중전도 문제이긴 한데.....”


류지호는 장진호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에 일명 미그 회랑(Mig Alley)에서의 미공군의 F-86과 소련제 미그-15의 공중전도 보여줄 계획이다.

장진호 전투 시기와 실제 타임라인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전쟁 당시 미공군 최고의 전공을 올린 공중전을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을 섞어 압도적인 비주얼로 보여줄 생각이다.

일명 ‘대화도 공중전’을 Eye-MAX 화면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전쟁에 소련 공군이 비밀리에 투입되었다.

드러내놓고 전쟁에 개입할 수 없어서 주로 압록강 북쪽의 만주지역 즉 당시 중국 영토에 기지를 뒀다.

따라서 소련 공군 전투기들은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서 주로 활동했다.

처음 전장에 출현한 Mig-15에는 소련 조종사들이 중공군 복장으로 하고 있었다.

기체 역시 소련 전투기임을 숨기기 위해 위장도색을 했다.

사실 미국은 한국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 영토 내의 소련 공군 기지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미군의 폭격기는 북한 전체를 폭격했다.

하지만 미소 양측 전투기들의 교전을 일부 한정된 곳에서만 벌어졌다.

오로지 북한 최북단의 좁은 지역에서만 공중전이 벌어지는 기묘한 양상이 3년 내내 지속되었다.

압록강 근처에 미군 폭격기가 뜨면 소련군이 요격기를 내보낸다.

미국과 소련의 전투기들이 소위 미그 회랑(Mig Alley)에서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 한국전쟁 공중전의 흔한 양상이었다.

미그 회랑으로 불린 지역이 바로 압록강과 청천강 지역 사이다.


“이왕 Eye-MAX로 전쟁영화를 찍기로 한 것... 할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지.”


이 시기까지 Eye-MAX 경험이 가장 풍부한 영화감독이 류지호다.

심지어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들보다 경험이 많았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누구보다 잘 구분해 낼 수 있다.

또한 어떻게 하면 Eye-MAX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고.


“문제는 VFX인데....”


오리지널 포맷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CG를 거의 쓰지 않아야 한다.

Eye-MAX DMR이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맞지만, 본연의 매력을 반감시킨 것도 사실이기에.


❉ ❉ ❉


류지호가 윌리엄 파커라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가족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 덧 20여 년이다.

그 세월 동안 꾸준히 한국전쟁 참전용사회를 후원하고 있다.

미국 단체를 후원하면서 장진호 전투 참전 단체와도 인연을 맺게 됐다.

미해병 1사단은 한국전쟁에서 장진호 전투로 표창을 받았다.

1983년에는 장진호 전투 생존 전우들이 모임을 결성했다.

바로 The Chosin Few라는 단체다.

Few가 붙게 된 것은 장진호 전투 생존자가 소수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 모임을 설립하는데 한국인도 기여했다.

류지호의 카투사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이중현 변호사다.

네 명의 미해병 전우들과 함께 모임을 만든 후로 해마다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90년 후반, 류지호는 이 모임의 창립멤버인 이중현 변호사에게 일본식 표기인 초신(Chosin) 대신 Changjin이나 Jangjin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선배님, 장진호를 초신이라 부르는 것이 마치 동해를 일본해로 부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류지호가 한국전쟁 참전용사회를 지원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 '초신'이란 명칭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지나친 상상일지 모르지만, 한국전쟁의 장진호 전투가 미국인들에게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과의 전투로 잘못 알려질까 걱정도 들었다.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구만. 초신이란 명칭을 접할 때면 사람들이 일본 땅이라고 생각할 개연성이 높다는 걸 간과했어.”

“미국인들이 동해를 일본해로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것도 당연히 바꾸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한국전쟁사에서도 잘못된 정보나 인식을 심어줄 수 부분 역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음.”

“심지어 교포들까지 그들을 '초신 퓨'라 부르더군요. 단체가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소식지의 명칭도 'Chosin Few'고.”


일부는 자동차 번호판에 'Chosin Few'라고 붙이고 다니는 일까지 있다.


“듣기로 미국이 새로 제작하는 초계함에 '초신 함'이란 명칭을 새겨 넣을 예정이랍니다. 알래스카 국유림에 '초신 마운트'라는 명칭을 붙일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고.”

“....그랬구만.”


장진호 전투 생존자 모임은 최대후원자 류지호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90년대 말부터 미국 내 각종 공식적인 표기에서 Chosin과 Jangjin을 병기하는 것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일거에 Jangjin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기에.

따라서 인내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살펴야 할 일이다.

관련 법률은 물론이고 지도, 각종 훈장, 규정, 문서 등 미국 내 모든 관련 기록에 두 명칭을 병기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마침내 2005년부터 장진호 생존 모임 전우회 명칭을 '장진 퓨(JangJin Few)'로 바꾸고, 소식지 이름도 변경했다.

다른 공식부문에서도 두 명칭의 병기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연로하신 선배님께 일을 맡겨서 죄송하네요.”

“자네 같은 카투사 후배가 있어서 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네.”


이중현 변호사는 올해 팔순이다.

그럼에도 장진호 전투 생존모임과 관련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 해결하려 들었다.

장진 퓨(Jangjin Few) 창립 멤버인 이중현은 한국전쟁 당시 장진군의 군청 소재지인 하갈우리(里)의 사단본부 본부사령실에 배속되어 장진호 전투부터 흥남철수까지 생생하게 경험한 생존 용사다.

일종의 민사(民事)장교 역할을 수행했다.

주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부대 시설물들을 설치하고, 유엔군 수송기가 너무 먼 곳에 보급품을 떨어뜨리면 그걸 회수해 오는 일을 수행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겐가?”

“예. 촬영에 들어가면 몇 분의 노병을 고증자문으로 모실 생각입니다.”

“자네가 참 고생이 많네.”

“고생은 요.”


류지호는 마지막으로 이중현 변호사로부터 몇 가지 사실 확인 작업을 했다.

<생명의 항해>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노병들의 경험담을 청취해 두었다.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들을 만날 때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을 녹취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도 한 편 준비했다.

현역 미해병대 대위를 후원해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180명의 Jangjin Few 회원의 인터뷰 영상을 촬영했다.

그렇게 제작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Jangjin Battle>은 류지호의 <생명의 항해>가 개봉하기 직전 한국은 물론 주요 한국전쟁 참전국에서 프로모션 일환으로 상영 될 예정이다.

일종의 <생명의 항해> 관람 가이드 역할을 기대했다.

한때 장진호 전투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군의 가장 굴욕적인 전투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랬던 전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장전호 전투 참전용사 모임은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한반도 북부 지역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무려 17일 동안 장진호 주변에서 중공군과 싸워 사실상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재조사와 연구를 통해 장진호 전투로 인해서 중공군의 중동부 전선에서의 남하가 지연되었다는 평가가 새롭게 내려졌다.

흥남부두로 모여든 피란민들을 외면하지 않고 배에 태워 철수한 점.

다른 후퇴작전들과 달리 전쟁 물자를 적에게 하나도 넘기지 않았다는 사실.

심지어 많은 전쟁 물자를 무사히 싣고 퇴각했다는 것들에서 재평가가 이뤄졌다.


‘그렇다고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가 다분하지.’


류지호가 보기에 미군과 중공군 모두 승리자가 아니었다.

두 군대의 대결로 죽은 이보다 얼어 죽은 이가 훨씬 많았고, 전투로 부상당한 이보다 동상으로 불구가 된 병사가 월등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미군과 중공군 양측 생존자 모두가 추위가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고 회상할까.

류지호가 장진호 전투를 선택한 이유다.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기에.


✻ ✻ ✻


장진호 전투는 흥남철수 작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진호 전투부터 철수작전까지 카투사 875명이 전사했다.

영화 <생명의 항해>에서 카투사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주연급 분량은 아니지만, 비중 있게 묘사될 예정이다.

그런 카투사를 연기할 한국 배우 두 명이 LA로 날아왔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했다.

오디션에서 탈락하게 될 경우 망신일 수도 있기에 소속사에서만 조용히 요청했다.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류지호가 오디션 카메라 앞에 서있는 잘생긴 한국 배우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시차 때문에 그래요? 후딱 끝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미육군 7사단 31연대에 배속된 카투사 배역을 위한 오디션 대본을 손에 쥐고 있는 배우는

<늑대의 유혹>으로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던 조현석 배우다.

<열혈남아>로 연기와 커리어 모두에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타는 추세다.

<늑대의 유혹>에서 함께 출연한 또래 배우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에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영화 모두 기대보다 못한 성적들을 거두며 스타는커녕 그저 그런 배우로 전락할 위기다.

그러던 차에 세계적인 한국계 감독이 할리우드영화 오디션을 제안했다.

항공권까지 보내주었다.

기회라고 여기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단 두 페이지짜리 오디션 대본일 뿐이었지만, 몇 주 동안 철저히 준비했다.


“감독님, 이제 해보겠습니다.”


류지호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앨런 포스터와 수잔 베일리를 돌아봤다.


끄덕.


그들은 들러리로 참석했다.

조현석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아, 아~


조현석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연기를 시작했다.

하갈우리 철수 전날이다.

루테넌트(중위) 리는 스무 명쯤 되는 사람이 마을의 한 집에 모여드는 것을 발견한다.

수상하게 여기고 집으로 몰래 접근한다.

숨어서 그들을 관찰한다.

마을 주민들이 조용히 오래된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꺼내서 예배를 보기 시작한다.


[....!]


하갈우리에는 일제강점기 감리교가 들어왔다.

그런데 태평양전쟁과 공산치하를 거치면서 종교적 기반이 무너진 상황이다.

예배를 보는 신도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등져야 할 상황이기에.

미군들과 함께 피란길에 오르기로 했기 때문에.

함흥 일대에는 UN이 중공군을 몰살시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거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다.

전쟁 중인 나라의 백성은 소문에 매우 취약하다.

세상이 뒤숭숭하다 보니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사실인양 퍼지고 있다.


- 12월 2일에 남한의 국방 장관이 한반도 북부에 원자탄을 투하해 달라고 유엔에 간청했다.


그 같은 뜬소문이 돌았다.

UN에 원자폭탄이 있을 리 없다.

무지한 대중들은 그 말을 믿었다.

전쟁으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이라 배운 사람조차 믿지 않을 수 없다.

UN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맥아더는 우리의 은인이다. 한반도 북부와 중국의 단동, 심양, 북경, 상해, 천진, 남경 등 6개 도시에 투하할 원자탄 26개를 미 합동참모본부에 요구했다. 일본도 원자탄 두 발에 손을 들었다. 북한과 중공은 이제 망할 일만 남았다.]


심지어 미국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이 전황에 따라서 원자폭탄을 쓸지도 모르겠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공식석상에서 함으로써 함흥 일대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겁에 질린 한반도 북부의 민간인들은 우선 살고 보잔 생각에 피란 보따리를 꾸렸다.


털썩!


조현석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꽉 쥐며 기도자세를 취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살길을 찾아 엄동설한에 길을 나서야 하는 이들의 고단한 운명을 생각하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 부디 저들을 살려주시옵소서. 저들을 가엽게 여기소서. 저들의 피란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애가 꿇고 절절한 기도는 아니다.

그래야만 했다.

조현석은 선배 배우 몇 명에게 류지호의 성향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한국식 신파연기를 무척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배우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신파 같은 장면에서 맛은 내되 도를 넘지 않도록 연기하는 것이 포인트다.

말은 쉽다.

실제 신파가 아니되 신파적인 감수성을 연기로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됐어요. 한국어 대사는 그 정도면 됐고. 이제 영어 연기 볼까요?”


영어 발음에 신경 쓴 태가 역력했지만, 딱히 지적하진 않았다.

캐스팅이 된다면 어차피 전문 다이얼로그 코디네이터를 붙여줄 테니까.

류지호는 얼마나 간절하고 충실하게 오디션을 준비했는지 중점적으로 확인했다.


“수고했어요.”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주변에 배치된 미군은 미해병 1사단, 미육군 7사단 2개 대대, 영국해병 41 코만도였다.

유엔군이 북쪽으로 진격하는 길은 장진호 서안과 장진호 동안을 따라 난 길뿐이었다.

미 10군단 지휘본부는 미해병 1사단이 장진호 서안으로, 미육군 7사단이 장진호 동안을 통해 각각 압록강까지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미해병 1사단과 육군 7사단을 지원하는 한국군으로 카투사가 배속됐다.

영화 <생명의 항해>에서는 많은 카투사들 사이에서 두 명의 조연급이 등장할 예정이다.

두 사람 외에 중요한 한국인 캐릭터는 민간 고문으로 참여한 닥터 현이다.

배우 조현석이 미육군 7사단 31연대와 함께 한 카투사로 낙점 받았다.

미해병 1사단의 카투사는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 출신의 유진우로 결정했다.

22살의 이 어린 배우는 충무로 차세대 기대주로 막 부상하기 시작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는 다들 하는 거고. 평소 하던 대로만 해. 많이도 안 바라니까.”

“옛!”


한국전쟁에서 낙동강 전투 당시 한국정부의 내무부 장관은 한국 경찰을 유엔군의 각 대대와 중대에 배속시켜 줄 것을 미 제8군 사령관에게 요청했다.

통역업무를 기본으로 오열색출, 탄약집적소 경비 등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마침 제8군 사령관도 적 유격대에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다.

미 국방부에 승인을 얻어서 유엔군 부대에 한국 경찰을 배속했다.

1950년 8월, 한국의 전투경찰중대가 미 해병대 5연대에 배속되었다.

이 전경중대는 미 해병대와 함께 낙동강 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다.

장진호 전투에서는 미해병 7연대 3대대와 함께 기관총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들 카투사들은 부산에 소집되어서 곧바로 일본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짧은 훈련을 받고 곧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때문에 카투사 1기 대부분은 군번도 계급도 없었다.

당시 카투사 모두가 영어가 유창하지도 않았다.


“진우 네가 연기할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미해병대에 처음 배속됐을 때는 당연히 이질적인 존재였을 거야. 그런데다 네 외모는 미국인들에게 마치 덩치 큰 어린이처럼 보일 테고.”


유진우 배우는 서양 배우들과 비교해 피지컬이 밀리지 않는다.

다만 얼굴은 십대 같았다.


“일부러 그들과 섞이려고 노력하는 캐릭터인가요? 아니면 인종차별적인 백인 병사들에게 반항하는 캐릭터인가요?”

“둘 다 아니야.”

“네?”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을 테니까.”

“....!”

“20만에서 30만 명의 어마어마한 머릿수의 중공군도 버거운데 혹한까지도 정말 힘겨웠을 거야. 당시 총상이나 포탄에 맞아 죽은 병사의 몇 배가 얼어서 죽었다고 해. 그런 상황에서 인종차별이니 뭐니 따질 겨를이 있었을까...?”

“그래서 흥남부두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서로가 얼싸안는 거군요. 카투사는 추운 한국의 겨울을 충분히 경험해 봤고, 미해병대원들에게 추위를 버티는 법을 어드바이스하기도 하고... 나름 최선을 다했던 거네요?”

“그런 디테일까지 모두 관객에게 전달될지 알 수 없지만, 감독과 배우는 최선을 다해서 담아내야 하겠지?”


물론 연출력이 중요하다.

어설프면 안 하느니만 못하기에.


“작은 부분도 허투루 넘겨선 안 돼. 어려보이는 한국의 군인. 한국인 통역장교와 달리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카투사. 적군과 똑같이 생긴 외모. 그럼에도 함께 전투를 치르면서 특히 장진호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같이한 후, 그들은 카투사를 자기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게 되지.”

“그렇기 때문에 흥남부두에 무사히 도착한 후 부대원들이 제게 진짜 미 해병대원이 된 것을 축하해라든가... 그런 말을 하는 거네요?”

“맞아.”


미국식 신파이며 전형적인 할리우드 서사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유입되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인종간의 차별이나 갈등을 최소화 하고, 사회적 통합을 추구하는 다문화 정책에 관한 지속적인 노력을 추구해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그 같은 메시지들이 알게 모르게 심어져 있고.


“영어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조현석은 류지호를 어려워했다.

유진우는 정반대였다.

똘망똘망한 눈을 한 채 허물없이 이것저것을 질문했다.


“현석이 형처럼 코디네이터가 저한테도 붙어서 도와주나요?”

“아니.”


작가의말

설 연휴 마무리 잘 하십시오.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4.02.12 10:42
    No. 1

    잘 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4.02.12 11:50
    No. 2

    언어라는게 참 묘한 것 같아요 ㅋ 미나리에서는 스티븐 연의 억양 때문에 깨고, Past Lives에서는 그레타 리의 어설픈 한국어가 오히려 조금 자연스럽기도 하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4.02.15 17:29
    No. 3

    탱크 박물관도 팬저 강에서 건져 복원 하는것도
    다큐멘타리로 봐서 감이 확 업니다.
    미그기 전투도 전쟁사 흑백 필림에서 봤는데
    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인지메서 세계 함공 전투사
    3D 로 복원해 둔걸 봤는데 세이버와 미그기가
    직접 붙은게 한국전쟁 외 에는 크게 없어서
    볼게 없었는테 영화에 제대로 재현 하면 멋있겠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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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40 88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719 87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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