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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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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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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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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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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만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있는 백인남자.

워너-타임의 해외배급 부문 총괄사장 폴 크럼위드(Paul Krumwiede)다.


“폴이 상하이엔 어쩐 일입니까?”


폴 크럼위드는 할리우드에서 배급 업무만 수년째 해오고 있다.

류지호와는 국제영화제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다.


“차이나필름그룹과 합작 건 때문에 출장 왔습니다.”

“멀티플렉스 사업을 철수하게 됐다면서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유감입니다.”


폴 크럼위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스터 류도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중국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하하. 워너-타임으부터 많은 걸 배웁니다. 앞으로도 폴의 뒤를 잘 따라갈 생각입니다.”


워너-타임이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에야, 자신이 시장에 진입했다는 농담이다.

일본에서 그랬고, 이번 중국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UOL-타임워너 이사회 의장이었다면 반드시 미스터 할리우드와 손을 잡을 겁니다.”

“내년에 워너-타임이 UOL에서 분사를 하고 나면, 모리스 메타보이씨와 의논해 보세요. 혹시 압니까? 우리가 고전하고 있는 몇 개 나라에서 조인트벤처로 성과를 거두게 될지.”

“정말입니까?”

“내 생각은 그런데... 워너-타임이 날 미워해서 성사가 될지 모르겠네요.”


두 스튜디오는 자타공인 최대 라이벌로 인식되고 있다.

Tri-Stellar VS Wanner Bro.

Tri-StellarTV VS TBO.

Timely Comics VS AC Comics.

DVD 표준부터 D-Cinema 표준 경쟁까지.


“젠장! 그러게 말입니다. 워너-타임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UOL과 분사하고 나면... 그때 가서 뭔가 워너-타임의 미래가 보일지도 모르죠.”

“모르겠습니다. 저도. 워너-타임은 지난 10년 동안 인수합병으로 덩치만 커졌지. 어딘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분명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난 당신의 경쟁 기업 오너입니다. 말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이곳에서 우리 대화를 훔쳐들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하. 폴이 워너-타임에서 쫓겨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스탠 크레이그가 유럽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는 모양이던데. 워너-타임이 날 해고하면 트라이-스텔라로 옮길 생각도 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폴.”


폴 크럼위드는 워너-타임 미디어그룹에서 아시아를 총괄하는 총책임자를 수년째 역임하고 있다.

워너-타임은 90년대부터 UPI와 함께 해외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메이저였다.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할리우드 스튜디오도 워너-타임이었다.

2004년에 외국 영화사 최초로 중국 땅에서 합작 영화사를 세웠다.

중국 정부가 외국 영화사의 합작회사 설립을 법적으로 허용한 뒤 처음 이뤄진 합작이었다.

그런데 워너-타임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수년 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시장은 군침을 삼킬 만한 매력이 있었다.

20편에 묶여 있는 외국영화 쿼터와 외국 기업에게는 매우 불리한 환경이 문제지만.

암튼 할리우드는 중국 영화시장의 완전 개방을 위해 중국 정부에 줄기차게 로비를 벌이는 한편, 미국의 외교통상 당국과 함께 직접 무역협상에 나서고 있다.

중국 당국은 좀처럼 영화시장을 확대개방할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중국의 쿼터를 뚫기 위해서 할리우드 빅7 사이의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이다.


‘문제는 시장 개방으로 더 큰 불확실성이 생긴다는 것이지.’


자국 영화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수시로 정책이 바뀌는 것이 문제다.

가깝게는 2년 전 당국의 갑작스런 정책 변경으로 인해 워너-타임은 몇 년 동안 투자하고 운영해 왔던 극장을 폐쇄한 일이 있다.

게다가 한국의 극장 시장과 비슷하게 기존 중국 자본이 주요 상권을 모두 독차지 하고 있다.

뒤늦게 뛰어든 만달그룹조차 부동산 재벌 출신이다.

진출 초기부터 점포 입지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면에서 중국시장은 접근성이 매우 어렵다.

중국정부는 할리우드 영화가 자국에서 지나치게 흥행에 성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국 영화를 정부차원에서 노골적으로 밀어준다.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 대박을 막기 위해 같은 시기 극장에 걸린 자국 영화의 티켓을 공산당 차원에서 구입해 당원들에게 마구 뿌리기까지 한다.


‘한국의 공짜표는 어린애 장난이지.’


류지호는 중국진출에 있어서만큼은 지나치게 신중하게 굴고 있다.

중국시장에 겁을 집어먹고 있다고 놀림까지 받을 정도다.

겁을 먹고 있는데 중국의 주요 IT기업에 그렇게 많이 투자할 리가 없지만.

2000년 즈음이었다.

중국의 16개의 국유영화제작소가 6개로 통폐합했다.

민영영화그룹으로 개편되면서 북경영화그룹과 상해영화그룹이 중국의 양대 영화 그룹으로 성장했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시라소니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풍운아>로 처음을 중국시장에 접근했다.

이후로 SEMG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여담으로 한국의 BGV 역시 SEMG와의 합작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BGV는 상해원선에 속해 영화의 배급 및 관리 받고 있다.

중국기업과 합작이 절대 쉽지 않다.

민간 차원에서 합작이 잘 진행되다가도 중국 정부가 승인을 하지 않으면 그간 준비하던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런 황당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고 WaW나 G.O.M이 아닌 GH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고.’


GH 오락집단유한공사의 주요 주주 면면은 매우 화려하다.

최대 주주인 가온그룹, 동남아시아 최고 갑부 홍콩의 리자싱, 음반회사 EMI, 영국 대형 투자회사, 중국 본토의 부동산 재벌 및 미디어 그룹, 국무위원(중앙정부 관리), 삼합회, 동남아 화교(싱가포르계) 자본, 홍콩 유력 영화인 등이 포진되어 있다.

특히 중국의 유력자들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에 본토에서 겪을 수도 있는 불이익을 덜 받을 수 있다.

반면에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차이나필름그룹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상 류지호는 중국의 양대 영화 권력에 모두 줄을 대고 있는 셈이다.

이 시기까지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차이나필름그룹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외국계 직배가 철저히 금지된 중국 영화 시장에서 차이나필름그룹(49%) 또는 그 라이벌인 화하전영발행유한책임공사(점유율 26%)를 배급사로 선택하지 못하면, 중국에서 영화상영을 포기해야 하기에.

두 그룹 모두 사실상 중국 공산당이 최대주주다.

사실상 공산당 영화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차이나필름그룹은 증권거래소에 상장이 되어있을 뿐.

어찌 되었든, 중국영화 시장이 개방되더라도 류지호는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GH 오락집단유한공사를 통해 중국에서의 투자·제작·배급 및 극장 사업과 합작을 벌일 계획이다.

공산당의 간섭과 검열에 창의력이 제한되겠지만...


‘한국인이 등장한다면 지나가는 행인조차 호감도 있게 묘사하면 그만이니까.‘


심리학에서 쓰이는 점화(Priming)라는 용어가 광고에서 점화효과(Priming Effect)로 적용된다.

앞서 어떤 자극에 노출이 되면, 이미 기억 속에 있는 어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증가 하게 된다.

특정한 정서와 관련된 정보들이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가지 정보가 자극을 받으면 관련된 기억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광고에 대입하면 상품평가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띄고 있는 속성이 점화되어지면 전반적인 상품평가 또한 향상되고, 반대로 부정적인 면을 띄고 있는 속성이 점화되어지면 전반적인 상품평가 또한 낮아진다.

류지호는 중국에서 주로 상영되는 합작영화에 한국 혹은 가온그룹에게 긍정적인 속성을 은밀하게 심어둘 계획이다.

중국 관객들이 더 우호적인 태도를 한국인과 가온에 보일 수 있도록.


❉ ❉ ❉


류지호는 마지막 행선지 베이징으로 이동한 후에도 시간 단위로 일정을 소화했다.

공식일정은 칭화대학과 북경대학에서의 특별초청강연으로 마무리했다.

적어도 영화 분야에서 류지호는 ‘D-Cinema 개척자이자 선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칭화대학에서는 ‘디지털시대의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강연했다.

칭화대학 강연장에는 무려 1,0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졸업생 스타트업 창업자까지 몰려왔다.

공교롭게도 칭화대학 강연을 전후로 해서 JHO Company Group 산하 디지털 기업들의 합동제품설명회가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미지센서가 핵심사업인 DALLSA는 중국 얼리어답터들에게 디지털 프로젝션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또한 소닉을 따돌리고 중국정부로부터 디지털 방송카메라 100대 납품계약을 따냈다.


“언제까지 인도되는 겁니까?”

“올해 안에 100대를 모두 납품완료하기로 했습니다.”

“합동제품설명회에서 팬텀도 좋은 실적을 올렸다죠?”


계열사 Vision Analysis는 중국의 방송국들로부터 디지털 고속 카메라 팬텀(Phantom)시리즈에 대한 대량주문을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 육상경기를 비롯해서 여러 종목 중계방송에 저희 팬텀 카메라가 쓰일 예정입니다.”


올해 출시된 따끈따끈한 저가용 4K 카메라 RED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영세 제작사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만달그룹이 Eye-MAX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안타깝지만 이미 중국에는 독점계약자가 존재했다.

대신 중국 부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Eye-MAX Private Theatre'였다.

압도적인 화면 크기와 최고의 화질로 유명한 Eye-MAX를 가정에서도 구현하는 서비스다.

처음으로 Eye-MAX 홈시어터를 설치한 고객을 류지호였다.

이후로 미국의 미디어업계와 실리콘밸리 슈퍼리치들 사이에서 Eye-MAX 홈시어터를 주문하는 것이 유행이 된 적이 있다.

아랍 왕족은 물론이고 남미의 마피아 갱단 대저택에서도 주문이 몇 건 들어오기도 했다.


“미스터 할리우드의 저택에 설치된 홈시어터는 얼마짜리 입니까?”


중국의 내로라하는 부자를 대리하는 이들이 Eye-MAX 관계자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었다.


“최소 설치 공간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플래티넘(Platinum), 팔라시스(Palasis), 프레스티지(Prestige)로 나눠집니다. 현재 미스터 할리우드 저택에 설치된 시스템은 플래티넘입니다.”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됩니까?”

“플래티넘 클래스는 20석에서 최대 40석 시트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미스터 할리우드의 벨에어 저택에는 40석 시트에 맞는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플래티넘 서비스는 대략 24~45평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다.

팔라시스는 13~21평의 공간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사이즈.

프레스티지는 6~12평 공간에서 최대 9명까지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극장 디자인도 고를 수 있습니까?”

“스튜디오, 스테이트, 룩소르 항목에 12개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과 블루, 레드, 화이트 세 가지 컬러의 조명으로 다양한 조합을 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프레스티지 모델 20만 달러(약 2억 2천)부터, 중간 사이즈 모델인 팔라시스는 40만 달러(4억 5천), 가장 큰 사이즈인 플래티넘 모델은 최소 100만 달러(약 11억)부터 제공됩니다.”

“프로젝션은 어떤 제품이 설치되는 겁니까?”

“기본옵션은 DALLSA D-Cinema의 제품입니다만. 고객이 원하시는 제품이 있다면 업체와 논의해 볼 수 있습니다.”


Eye-MAX는 차세대로 주목 받는 LED램프 프로젝션을 건너뛰었다.

곧바로 차차세대인 레이저(LASER)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현재 Eye-MAX 프로젝션에 제논(XENON) 램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시기 디지털 Eye-MAX 전용관 가운데 온전한 4K 화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단 4곳밖에 없다.

캐나다 토론토, 대한민국 부산, 독일 베를린, 호주 시드니다.

그곳들의 Eye-MAX 상영관들은 DALLSA의 4K 프로젝션 두 대를 초대형 스크린에 동시에 쏘는 방식으로 상영하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Eye-MAX MPX 시스템은 2K 디지털 프로젝션 두 대를 동시에 틀어 스크린에 겹치게 하는 방식으로 상영하고 있다.

물론 4K 영사기 두 대를 스크린에 동시에 쏘았다고 해서 8K 해상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디지털 4K보다 조금 더 밝은 화면과 화질로 볼 수 있다는 정도다.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이 쉽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MPX는 오리지널 1.43:1이 아닌 DMR 사이즈인 1.9:1만 지원하기도 하고.


“Eye-MAX Dual Laser가 시급해.”


그때 가서야 DLP가 제공하지 못하는 Eye-MAX만의 화질과 고유 화면비 1.43:1까지 얼추 커버할 수 있게 되니까.

또한 영사 시스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6채널에서 천정과 양 사이드 채널이 추가된 12채널 사운드를 사용하게 된다.

그로인해 특유의 묵직하고 짱짱한 사운드가 한층 보강된다.

암튼 류지호의 베이징 방문과 합동제품설명회를 계기로 Eye-MAX 홈시어터 7건을 주문 받았다.

대략 25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었다.


“추후 관련한 문의는 한국의 부산 아시아 본점으로 해주십시오.”

“유지 및 보수 서비스팀도 부산에서 오는 겁니까?”

“상하이에 사무소가 개설될 예정입니다.”


Eye-MAX의 아시아 관련 업무는 모두 센텀시티 지점에서 하고 있다.

MPX(멀티플렉스 전용관) 시공, DMR(디지털 미디어 리마스터링), 홈시어터 시스템 시공, Eye-MAX 장비 렌탈 등의 모든 업무를 부산 지점에서 관할하고 있다.

부산에는 DALLSA와 GMG Technology 산하 기업들의 지점들도 입주해 있다.

차후 새만금의 아리울에 입주가 시작되면 그곳으로 이주하게 되겠지만.

중국과 일본에는 연락사무소와 서비스센터만 둘 예정이다.

Eye-MAX 지사 및 서비스센터는 미국 LA, 중동에는 두바이, 유럽에는 프랑스에만 있다.

그 이상 늘릴 계획이 없다.

어차피 Eye-MAX의 고객은 한정적이니까.

온갖 국가에 진출할 이유가 없다.

여담으로 Eye-MAX Laser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전 세계 전용관을 캐나다 본사에서 원격으로 정기점검을 하게 된다.

이전 삶에서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그 같은 원격 모니터링 유지·보수 서비스가 시행됐다.

이번에는 수년을 앞당겨 시행될 수 있게 됐다.


“Jay, 너는 타고난 장사꾼이야.”


상하이에서 따로 움직였던 매튜 그레이엄이 베이징에서 합류하고 한 첫 말이었다.


“포럼에 참석하고 꽌시나 맺으면서 중국을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이런 대대적인 판촉행사까지 준비했을 줄이야.”


비꼬는 말이 아니었다.

대견해서 하는 칭찬이다.

온통 영화 생각만 하는 것 같다가도 적절한 타이밍에 상인적인 면모를 보이는 류지호다.


“이번 이벤트를 개최하기 위해 얼마나 썼대?”

“300만 달러.”

“뇌물까지 포함해서?”


류지호는 대답 대신해서 어깨만 으쓱했다.


“암튼 그 이상을 뽑았으면 됐지.”

“돈을 번 것보다 다른 것이 더 기분이 좋아.”

“뭔데?”

“ARiCH가 DALLSA 이미지센서를 자사 카메라에 쓰기로 한 거.”


세계 최고의 영화장비 메이커 ARiCH는 그 동안 DALLSA와 소닉의 이미지센서를 놓고 저울질을 해왔다.

마침내 ARiCH가 자사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 이미지센서를 결정했다.

세계 점유율 50%를 상회하는 소닉의 제품이 아닌 중견기업 DALLSA 제품으로.


“그게 뭐가 어때서?”

“ARiCH는 파나플렉스와 영화 카메라 시장을 양분하는 전문기업이야. 역사도 90년이 넘은 독보적인 회사지. 비록 DALLSA가 소닉과 이미지센서 분야에서 전면적으로 경쟁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영화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선언인 셈이지.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디지털 영화가 필름을 이겨서 좋은 건가....? 아니면 소닉을 이겨서 좋은 거야?”

“그 것과 다른데...”


ARiCH에는 영화장비 장인들이 많다.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소닉 제품 대신 선택을 받은 점이 중요했다.


“ARiCH에 대한 M&A 플랜을 한 번 짜봐?”

“안 될 걸?”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가질 수 있으면 좋고....”


매튜 그레이엄이 손가락으로 턱을 쓸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단 말이지....?”


이전 삶에서 ARiCH는 디지털 카메라로 옮겨갈 생각이 크게 없었다.

그런데 RED 4K가 출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을 지켜보며 크게 당황했다.

아날로그를 고집하다가 영화촬영장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손 놓고 바라봐야 했다.

<아바타>는 아날로그 영화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결국 전통의 영화장비 명가 ARiCH는 소닉의 이미지센서를 사용한 독자적인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게 된다.

바로 알렉사(ALEXA)다.

명가는 역시 명가라고 해야 할까.

ARiCH는 디지털 환경에 빠르게 안착했다.

필름 룩에 근접한 영상과 안정성은 다른 디지털 카메라 메이커가 따라올 수 없는 ARiCH의 정체성이었다.

10여 년 간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던 RED를 따돌리고, ARiCH가 아날로그 시절의 왕좌를 되찾았다.

심지어 Eye-MAX와 합작해 커스텀 카메라까지 개발해 Eye-MAX 포맷에 대한 문턱을 대폭 낮추는 결과까지 불러온 메이커가 바로 ARiCH다.


“차라리 Carl Zeiss나 Leitz라면 몰라도....”

“....뭐라고?”

“아니야. 아냐!”


류지호는 칭화대학 강연 이후로 북경대학 경영대학원에서도 강연을 했다.

강연이란 타이틀을 붙였지만, 매튜 그레이엄과 대담을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특별한 투자 철학이나 이론을 설파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자신이 10대 시절부터 투자해 성공했던 사례들을 소개하고, 주로 투기와 투자의 다름 점에 대해 강조했다.


“투기자는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함으로써 돈을 법니다. 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창출하는 가치에 의해 돈을 벌지요. 투기와 투자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투기는 제로섬 게임이며, 투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투기 판은 누군가는 항상 패배해야 하는 게임이지만, 투자는 상생의 게임이니까요.”


류지호는 PayPalMafia라 불리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슈퍼스타들과의 인연과 재밌는 일화들을 들려주는 시간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투자한 모든 기업들이 성공한 것으로 압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란 곳은 10군데 투자하면 보통 7개가 사라집니다. 대략 3개 정도가 망하지 않지요. 그 3곳도 성공한 것이 아니라 망하지 않는 정도입니다. 투자자문과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는 마크 버네이스는 StreamFlicks로 성공이력을 쓰기 전까지 7번 창업했다가 실패한 전적이 있습니다. 내 조국인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아시아권에서는 대체로 한 번 실패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풍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속담에 네발 달린 말도 넘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친숙한 당서(唐書) 배도전(裵度傳)에 유명한 말이 있죠?”


누군가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고 외쳤다.


예. 맞아요. 勝敗兵家之常事라는 말입니다.”


류지호는 ‘승패병가지상사‘ 부분을 중국어로 발음했다.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인생의 보탬이 되는 좋은 결과가 찾아올 것입니다.”


예시를 들어야 할 경우는 주로 중국의 성공한 인터넷 기업가들을 언급했다.

청중들 듣기 좋으라고 중국 역사와 고사에 빗대기도 했다.

중요한 키워드는 어설프지만 중국어로 강조했다.

작년 이맘때 헨리 게이츠 회장도 이 자리에서 강연을 벌였다.

강연 도중 한 오픈소스 지지자가 연단으로 난입한 사건이 벌어졌다.


“소프트웨어를 독점하지 말라!”


연단 위로 뛰어 올라온 남자가 외친 말이었다.


‘왜 잠잠하지?’


류지호는 내심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했다.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다.

내심 섭섭할 지경이다.


‘내가 아직 왕관을 쓰지 못해서 그런가?’


안타깝지만, 류지호의 JHO는 PS와 달리 독점 기업이 아니다.

한 분야의 황제라고 불리기에 많이 부족했다.


짝짝짝!


질의응답까지 모두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강연장을 흔들었다.

마치 더 분발하라고 촉구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류지호만의 착각일까.


❉ ❉ ❉


북경귀빈루반점(北京贵宾楼饭店).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에 인접해 있는 오성급 호텔로 중국풍이 물씬 풍겼다.

거대한 황금빛 용 문양 아래로 고급 승용차들이 쉴 새 없이 통과했다.

베이징은 중국 공산당 중앙당 간부들이 거주하는 도시.

당 행사 외에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매일 귀빈들이 드나드는 곳이긴 했지만, 오늘 저녁의 방문객들은 한 명 한 명이 특별했다.

서열 1위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서열2위 총리를 위시해 부주석 등 서열 10위 권 내에서만 3명의 거물이 나타났다.

여기에 허베이성, 저장성 당서기와 차기 중국 최고지도자로 점쳐지는 충칭 당서기 오시라이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톈진시 성장이 투덜거렸다.


“흥, 겨우 영화 제작사를 만나려고 이렇게 모여야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아직 마흔도 안 된 애송이라고 하던데.....?”


막 실내에 들어선 충칭시 당서기 오시라이가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했다.


“그 애송이를 보려고 총리께서 왕림하셨지.”


오시라이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총리에 부주석까지 참석한 공식행사에 빠질 순 없겠지.”

“미스터 할리우드란 자를 크게 대접할 이유라도 있나?”

“헨리 게이츠와 맞먹는 위상이라면 설명이 되겠나?” “설마 그 정도란 말인가?”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헨리 게이츠는 PS라는 독점기업을 가지고 있지만, 미스터 할리우드는 알짜 기업을 수십 개 가지고 있거든.”

“...흠. 대체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큰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긴 하군.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지역에서나 힘주고 다니지 베이징 정가에서는 그리 높은 서열도 아니다.

총리에 부주석 그리고 충칭 당서기 같은 차기 주석 후보들이 참석한 행사에 빠졌다가는 나중에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억지로 참석한 이들도 많았다.

현재 중국 권력 내부적으로 서너 개 파벌이 분리되어 이전투구 중이다.

가장 큰 세력을 과시하는 파벌은 상하이방이다.

그 다음이 공산청년당(공청단)이고 전통의 태자당도 힘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상하이방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상하이방은 수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특징이 있다.

철저한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젊은 유망주보다는 검증된 중년층을 더 중용했다.

그렇다보니 젊은 유망주가 파고들 틈이 적을 수밖에 없어서 일반 인민들에게 노인정이란 비아냥거림도 듣고 있을 정도다.

실제 상하이방의 중요 인물 대다수가 1930~40년대 출생이다.

가장 젊은 층이 1950년대 초반에 출생자이다.

전임 국가주석이 물러나고 순식간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상하이방은 전임 주석의 지도력에 크게 의지하는 위태로운 세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중국 공산당 내부와 정계에 많은 상하이방 사람들이 요직을 점하고 있다.

상하이방의 남은 인원들이 태자당과 마지못해 손을 잡았다.

본격적으로 공청단을 견제하기로 했다.

실제로 태자당 출신의 시밍핑을 밀어줘서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만들고, 상하이방 사람들은 한동안 요직을 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길어봐야 10년이다.

2013년 전국인민대표대회때 마지막 입김을 불어넣은 이후, 상하이방은 빠르게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태자당의 핵심 멤버는 차기 주석을 노리고 있는 오시라이다.

건국에 공이 있는 원로들의 자식들을 주축으로 하는 태자당 파벌의 일원으로 아버지가 이른바 8대 혁명원로의 한 사람이라서 태자당 내에서도 성골 중에 성골로 꼽히는 인물이다.

186Cm의 훤칠한 신장에 나름 훈남 이미지다.

다음 대 최고지도자 후계군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혁명원로 집안이지, 엘리트로 머리도 좋지, 행정능력도 뛰어나고, 빈부격차 해소와 복지정책 확충이라는 괜찮은 비전도 제시하고 있으며 곧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언변까지 탁월해서 인터뷰나 연설을 했다하면 허구한 날 신문에서 대서특필해 준다.

기자들이 가장 많이 달라붙던 정치인 중 하나다.

충칭을 중심으로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까지 올랐다.

문제는 사생활이다.

문란한 성생활, 엄청난 비자금 및 해외반출, 가족 기업의 비리, 부인의 권력남용 등.

리더로서 혹은 정치인으로 뛰어날지 모르지만, 사생활과 가정사는 총체적인 난국이다.


‘지금이라도 관리를 해야 할 텐데....’


류지호가 중얼거린 것처럼 이전 삶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 몰락은 정해진 수순이다.

별로 바뀔 것 같지 않았다.

누구도 오시라이를 위시한 태자당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혁명 원로로 공산당 요직에 올랐던 부모를 둔 예비 영도자 집단을 가리키는 '태자당'이란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주석과 총리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는 인물이 오시라이였다.


‘그래 봐야, 권불십년이거늘....’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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