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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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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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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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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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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내키는 영화를 찍고 싶어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ParaMax가 제작한 영화.....?“

“예.”

“어떤 영화를 말하는지....”

“<The Killing Road>.”

“정확하게 제작은 JHO Pictures에서 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투자·배급을 ParaMax Films이 한다는 거죠.”

“<The Killing Road>의 개봉을 미뤄 달라?"

“그렇습니다.”

“얼마나 말입니까?”

“이왕이면 하반기로 미뤄 주길 기대합니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프로듀서 호크 코흐(Hawk Koch)는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창 <The Killing Road>가 포스트프로덕션을 진행하고 있을 시점이다.

최근 패러마운틴의 <프라이멀 피어>가 촬영을 마쳤다.

<프라이멀 피어>의 제작사 라이셔 엔터테인먼트는 해리슨 노튼이 이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역할을 맡아 영화에 출연했음을 알고 ParaMax Films에 수차례 배급일정 조정 협상을 제의해왔다.

알버트 마샬은 구체적인 배급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며 논의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패러마운틴에서 직접 나서서 압력을 행사했다.

알버트 마샬은 그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일방적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ParaMax Films이 무조건 양보해야 했다.

이젠 아니다.

배급일정을 조정하는 조건으로 패러마운틴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수 있는 협상력이 생겼다.

결국 <프라이멀 피어>를 책임지고 있는 호크 코흐가 직접 산타모니카 ParaMax 본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듣게 될 모든 이야기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밖으로 새어나갈 일이 없다는 걸, 제 명예와 스튜디오를 걸고 약속합니다.”


그러니 왜 배급일정을 늦춰달라고 요구하는지 사실대로 말하라는 의미다.

알버트 마샬은 할리우드 업계에서 입이 무겁고 진중한 영국 신사로 알려진 인물.

호크는 괜히 말을 꼬고 빙빙 돌리는 것보다 정공법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는 판단을 내렸다.


“해리슨 노튼이 귀사에서 배급하는 영화에서 연기한 배역이 연쇄살인마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외부에 많은 정보를 풀지 않았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죠.”

“배급일정이 확정되지 않았고, 현재는 포스트프로덕션을 진행 중입니다.”

“<프라이멀 피어>에서 해리슨이 수행한 역할과 유사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알지 못합니다.”


<프라이멀 피어>는 엔딩에 반전이 있는 영화다,

심리스릴러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감추는 것은 기본이다.

패러마운틴은 다중인격자를 연기한 무명의 해리슨 노튼을 철저히 감추는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오로지 주연배우인 릭 기어(Rick Gere) 위주로 홍보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해리슨이 연기한 캐릭터는 19살입니다. 말을 더듬기도 하면서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순박한 성격이지요.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극적 반전을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The Killing Road>에서는 20대 후반의 풋내기 FBI 요원행세를 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캐릭터입니다.”

“만약 귀사의 영화가 <프라이멀 피어>보다 먼저 개봉하게 된다면, 관객들로서는 해리슨 노튼이란 배우에 대해 혼선이 생깁니다.”


혼선을 초래하는 정도가 아니다.

관객들이 영화의 결말과 극의 반전을 쉽게 눈치 챌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반면에 <The Killing Road>는 처음부터 주인공이 연쇄살인마라는 걸 대놓고 알려주고 시작하는 영화다.

영화의 극적 반전이랄 수 있는 에필로그가 있지만,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위한 반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열린 결말을 위한 장치다.


“<The Killing Road>가 먼저 개봉함으로써 귀사 영화의 김을 빼는 걸 우려하는 군요?”

“<프라이멀 피어>의 예산은 3,000만 달러입니다.”


중급 규모 영화이니 저예산 독립영화인 당신들이 양보해주면 안되겠냐는 의미다.


“....흠.”


알버트 마샬과 프로듀서 게리 켐프는 즉답 대신 뜸을 들였다.


‘ParaMax는 손해 볼 것이 없지. 패러마운틴에게 빚을 하나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고.’

‘어차피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할 계획이었잖아.’


두 사람이 내심 머릿속으로 득실을 따졌다.


“만약 3월이나 4월에 개봉한다면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게리 켐프의 물음에 호크가 반문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자신들의 정보로는 <The Killing Road>가 이제 막 포스트프로덕션이 진행 중에 있고, 내년도 개봉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수입한 영화 하나를 빼고, 그 자리에 넣는 걸 고려하고 있긴 합니다.”

“.....음. 제한 상영이겠죠?”

“48개 스크린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유주얼 서스펙트>의 개봉 첫 주 스크린 수와 비슷한 수준이다.

첫 주 42개 스크린에서 시작해서 3주차에서 517개로 늘어났다가 최종 800개 스크린에서 상영된 후에 극장에서 내렸다.

제작비는 대략 600만 달러.

최종 박스오피스는 3,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ParaMax가 6월에 배급한 <스모크> 역시 비슷한 규모로 시작해서 1,200개 스크린까지 늘어난 바가 있다.

ParaMax Films 배급팀에서 최대치로 기대하는 <The Killing Road>의 스크린 숫자다.


“영화제에서 선공개 하지 않습니까?”

“선댄스에 보내려고 했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디렉터가 포스트프로덕션에 공을 들이고 있어서. 영화가 기대보다 더 잘 나올 것 같거든요.”


게리 켐프가 알버트 마샬의 말을 받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 편집본을 보내긴 했습니다. 디렉터 류는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와 인연이 깊지요. 그가 UCLA 1학년 때 만든 영화가 그 곳에서 꽤 주목을 끌었지요. 물론 베니스와 토론토도 출품 리스트 상단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국제 영화제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거나, 주목을 받은 감독들을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칸 영화제가 태런티노와 고언형제를 밀어주는 것과 베니스 영화제가 한국의 영화감독을 유독 챙기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국제영화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북미의 영화제들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키운(?) 감독들의 영화를 초청해 영화제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과 함께, 그들 영화 타이틀 앞에는 칸이 사랑한, 베니스에서 극찬 받은, 선댄스가 선택한 등의 수식어가 붙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비판을 한다.

어쨌든 류지호가 단편영화를 찍으면 클레르몽-페랑에서 연락이 온다.

장편영화는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영화제에서 편집본을 보내보라는 연락을 받는다.

미리 영화를 선점하려고 하는 영화제 측의 발 빠른 움직임이라고 할까.

물론 영화가 형편없으면 초청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샌프란시스코 영화제는 봄, 시카고, 베니스, 토론토 영화제는 가을에 열린다.

게리 켐프의 말에는 묘한 뉘앙스가 담겨있다.

마치 봄과 가을 중에서 고민 중이라는.


“그렇습니까?”


호크 코흐가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패러마운틴이 겨우 ParaMax 따위에게 저자세를 보일 필요는 없다.

자신들은 <프라이멀 피어>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을 수 있고, 홍보 면에서도 <The Killing Road>를 압살할 수 있다.

다만 만에 하나 일어날까 말까한 바로 그 일이 문제다.

흥하고 망할지 예측이 어려운 것이 영화흥행산업이다.

만에 하나 저예산영화로 인해 스타배우 릭 기어를 기용해서 만든 3,000만 달러짜리 영화의 박스오피스가 망가진다면 그것처럼 억울할 것도 없다.

게다가 그린라이트를 켜는 영화마다 흥행성공을 이룬다는 영화신동의 첫 데뷔작이다.

화제성은 <프라이멀 피어> 못지않았다.

그가 소유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메이저에 편입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돌고 있다.

할리우드 빅 식스는 겉으로는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블록버스터에서는 협력을 하기도 한다.

공동 투자제작배급을 함으로써 피 튀기는 경쟁을 피한다던가, 대작을 두고 스튜디오 사이에서 사전논의를 통해 개봉시기를 조율하기도 한다.

또한 중소영화사들과 문제가 생기게 되면 소송을 거는 것으로 방해를 하거나, 사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약간의 돈을 쥐어주는 방법도 동원하고 있다.

사실 <프라이멀 피어> 측의 안일함도 있었다.

해리슨 노튼이 먼저 계약한 <The Killing Road>가 300만 달러짜리 저예산 영화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작은 영화에도 잡아먹히는 것이 영화 흥행판임을 간과했던 면이 없지 않았다.


“패러마운틴이 도울 건 없겠습니까?”


어떻게 듣는가에 따라서는 협박이 될 수도 있는 물음이다.

한편으로 트라이-스텔라가 있는데 무얼 도울 수 있겠나 싶지만, ParaMax 영화의 해외 배급을 패러마운틴이 도울 수 있다.

패러마운틴은 UPI와 CIC 합작회사 중 하나다.

UPI는 거대한 해외 직배 배급망을 보유하고 있다.


“<The Killing Road>가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되면 UPI를 통한 해외 배급을 논의해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대답을 드릴 사안은 아니군요.”


UPI는 패러마운틴의 자회사나 계열사가 아니다.

호크 코흐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ParaMax는 지금까지 소닉과 트라이-스텔라 해외배급망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UPI 혹은 패러마운틴과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결론이 도출되길 기대하겠습니다.”


호크와 알버트가 악수를 나누고 첫 번째 논의를 마무리했다.


“디렉터는 어떻게 하고 싶대?”


호크 코흐를 배웅하고 돌아온 알버트 마샬이 물었다.


“결정하면 따르겠답니다.”


류지호는 개봉시기가 빠르든 늦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직 학생신분이기도 하고, 특정 시즌에 맞춰서 기획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개봉 전에 영화제에서 평가를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여기고 있을 뿐.


“선댄스가 <The Killing Road>와 잘 맞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어. 일정이 안 맞는 것을.”

“샌프란시스코에 초청되었다면 꽤 밀어줬을 테고요.”

“하반기에 토론토도 있고, 베니스도 있다네.”


이들은 <The Killing Road>의 영화제 초청을 기성사실화 하고 있었다.

그 만큼 결과물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 ❉ ❉


샌프란시스코에서 베이 브리지(Bay Bridge)를 건너면 나오는 도시 중에 한 곳 버클리(Berkeley).

미국의 명문 UC버클리 대학 소재지로 유명한 도시다.

샌프란시스코 만과 인접한 버클리 웨스트 지역의 새하얀 색깔의 7층 건물.

이 건물이 북부 캘리포니아 소재 3개의 영화 제작 시설 가운데 한 곳이다.

바로 사울 젠츠 필름 센터(Saul Zentz Film Center)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는 코폴라의 아메리칸 조트로프(American Zoetrope)와 루카스의 Skywalker Film Studios까지 세 곳에서 영화 제작과 후반 작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잘 지내셨어요?”


류지호가 칠순 노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 동글동글한 얼굴, 하얗게 샌 풍성한 수염.

이곳 필름 센터의 소유주이자, 영화 제작자인 사울 젠츠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와 <아마데우스>를 제작한 거물 프로듀서다.


“어서 와라.”

“여전히 건강해 보이시네요.”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게냐?”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야 제가 사울을 위해 와인을 사오죠.”

“나이가 들수록 어째 아부만 늘어?”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사울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다.

류지호가 와인 상자를 사울에게 내밀었다.


“마셔보세요.”

“이번엔 뭐냐?”

“로쉴드요.”

“샤토 무통?”

“네. 메타보이씨가 추천하더라고요.”

“바라는 것이라도 있느냐? 이번엔 또 뭔데?”

“제가 무슨 부탁을 드렸다고 그러세요?”

“소설 하나 빼앗아가지 않았느냐?‘”

“빼앗다니요? 어차피 배급회사가 필요하셨잖아요.”


사울 젠츠(Saul Zentz)는 1992년에 소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판권을 구입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세기 PARKs와 진행했는데, 몇 년 동안 진척이 없었다.

그랬던 프로젝트를 ParaMax가 투자·배급할 수 있도록 류지호가 손을 썼다.

현재는 제작이 완료되어 개봉만 앞두고 있다.

류지호가 나선 것은 영화 자체적으로 좋은 것도 있지만, 다른 꿍꿍이도 있었다.


“극장에 언제 걸리게 돼?”

“11월 첫째 주요.”

“알았다. 와인은 이번에도 잘 마시마.”

“아껴 드실 필요 없어요. 나중에 또 사다드릴 게요.”

“나도 돈 많아.”

“자신이 돈 주고 사서 마시는 거와 선물 받는 건 기분이 다르죠.”

“일부러 이걸 주려고 오진 않았을 테고,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느냐?”

“제 영화 파이널 믹싱이 있어요.”


이 역시 LA에서 해도 되는 것을 굳이 샌프란시스코까지 와서 작업했다.


“네 영화는 언제 쯤 볼 수 있지?”

“다음 달 초쯤이요. 시사에 초대할 게요.”

“처음으로 영화를 찍어보니 어때?”

“단편영화만 10편 가까이 연출해 봤는걸요.”

“장편과 비교가 되더냐?”

“비할 바가 아니긴 하죠. 굳이 이번 작업에 대한 제 감상이랄지 소감을 말한다면. 많이 배웠고 많이 생각했고 많이 아쉽고 조금은 뿌듯하고 즐겁기도 했고, 조금은 고독하기도 했고....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해요.”

“뭐가 그리 복잡해?”

“그 모든 걸 합해보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어요.”

“영화감독은 밖에서 보면 모르지. 무척 고독한 직업이란 것을.”

“틀렸어요.”

“틀렸어?”

“재밌다! 이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어요.”


사울 젠츠가 껄껄 웃었다.


“맞다. 무슨 일이든 즐긴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법이지.”

“예.”

“영화 예술가가 되고 싶으냐?”

“아니요. 그냥 그때그때 내키는 영화를 찍고 싶어요.”

“오만한 녀석.”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 살아남으려면 적당히 건방져야 하겠더라고요.”

“그 만큼 역량이 따라주어야 하지. 저기 옆 동네 누구처럼.”

“설마 코폴라씨는 아닐 테고... 혹시 루카스씨요?”

“그렇다.”

“조지프는 늙었고, 저는 젊어요.”

“늙었다고 무시해?”

“제가 배우고 익힐 시간이 많다는 의미에요.”

“다음 달에 내 친히 LA를 방문해 네가 찍은 영화를 봐주마.”

“저로서는 영광이죠.”

“흥. 말만 앞세우는 놈인지 그렇지 않은지, 어디 내가 한 번 보마.”

“보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차라리 부르지 말걸 하는 후회나 하지 말거라.”

“제가 리무진 보내드릴까요?”

“됐다. 그럼 가서 볼 일 보거라.”

“네.”


류지호가 사울 젠츠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사울 젠츠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다.

그가 톨킨의 <반지의 제왕>, <호빗>의 영화 권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 젠츠는 1982년에 두 소설의 영화, 연극을 포함한 무대 공연, 상품권 권리 모두를 사들였다.

8개 에피소드 미만의 TV시리즈 권리까지 가지고 있다.

류지호는 미래를 대비해 사울 젠츠와 계속해서 친밀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서.

본인이 연출할 것은 아니다.

감독은 따로 있다.

<반지의 제왕>은 본래대로 로비 잭슨의 것이다.

다만 투자·공동제작·배급은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에서 하게 되길 바랐다.

그래야 잡스러운 이들이 끼어들지 않고 트라이-스텔라가 <반지의 제왕> 저작권을 소유할 수가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 진행할 프로젝트가 아니다.

로비 잭슨과 94년에 설립된 TreeWeta Studios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Hues & Rhythm Studios 역시 아직은 부족했다.


‘그래도 올 해 안에 영화 제작 계약은 맺어두어야 해. 로비 잭슨과 하비 웨인스타인이 사울 어르신에게 접근하기 전에.’


물론 완고한 사울 젠츠는 순순히 영화제작을 허락해 줄 리가 없다.

특히나 B급 영화를 주로 연출한 로비 잭슨을 탐탁지 않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울 젠츠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목이다.

무려 두 작품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제작했다.

로비 잭슨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게다가 <잉글리쉬 페이션트>에는 하비 웨인스타인이 끼어들 틈이 없다.

원래대로라면 그 작업을 통해 하비가 사울 젠츠를 설득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걸 류지호가 하고 있다.


‘<The Killing Road>가 영화제에서 주목을 좀 받아야 할 텐데....’


그저 안목이 조금 있는 프로듀서로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다.

류지호의 제작자로서의 성과는 대부분 상업영화에 한정되어 있으니까.

<터미네이터Ⅱ> 같은 영화에도 관여한 점을 어필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아직 프로듀서로서 필드를 뛴 경험도 없고.

류지호는 영화 선택권리 다섯 편을 제외하고, 기획개발에 간섭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망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직접 프로듀싱에 나서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기획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덕션부터 배급까지는 딱히 끼어들지 않았다.

류지호는 사울 젠츠, 가깝게는 모리스 메타보이 같은 대단한 프로듀서들을 볼 때마다 프로듀서야 말로 진정한 종합예술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최초 기획부터 투자유치, 감독과 주연배우 캐스팅, 프로덕션 관리, 배급 관리, 부가시장 배포, 마지막에는 수익 분배까지.

영화의 모든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것이 프로듀서다.

따라서 전 분야에 걸쳐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프로듀서는 일정 부분에서 감독의 창작을 도울 줄도 알아야 한다.

반면에 영화감독은 창작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렇다고 감독이 프로듀서보다 쉽고 편한 건 아니다.

촬영현장의 디렉터 체어에 앉아 받아먹기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영화감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갈 수 있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책임감을 리더에게 필수요소다.

실상 그 같은 책임을 다 하는 감독은 많지 않다.


‘오로지 성공은 내 덕분. 실패는 모두 남 탓.’


류지호는 프로듀서 마인드를 갖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계획을 철저히 한 후에야 움직이는 편이다.

영화 전반뿐만 아니라 후반작업, 그리고 마케팅 포인트까지 철저하게 고민한다.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프로듀서와 감독이 사전 기획 단계를 철저히 밟아나가고, 프리프로덕션을 충실히 준비해 놓으면, 나머지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다 한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감독은 타협하는 위치가 아니라 무언가를 요구하는 위치다.

그럴 때마다 프로듀서가 예산을 들먹이고 스케줄이나 실무를 들먹이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다.

좋은 프로듀서라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감독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위와 권력으로 입을 닫게 하는 것은 안일한 방식이다.

또한 프로듀서가 단순히 돈과 사람만 움직이는 게 다가 아니다.


‘감독은 나를 대신하는 사람.’


프로듀서로써 류지호가 영화감독을 대하는 속마음이다.

감독을 조종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류지호가 프로듀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는 영화 또한 그의 작품이다.

누구도 자신의 작품을 대충 혹은 게으르게 작업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감독이 창작적인 부분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프로듀서인 류지호는 지원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충무로 생활을 할 때 류지호가 인연을 맺은 몇몇 감독은 야심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좋아하는 영화를 찍고 싶어 할 뿐이었다.

반면에 할리우드 감독은 대부분이 야심 덩어리들이다.


“반드시 이 영화로 성공해서 누구처럼 A-list 감독이 되고 말겠어!”

“영화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예술가가 될 거야.”


이런 속내를 감추지도 않는다.

노골적으로 야망을 드러내곤 한다.

충무로 감독들은 순수가 지나쳐 때론 바보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그때 뭔가 입맛에 맞거나 불현 듯 떠오르는 영감을 가지고 영화를 완성시키겠다는 소박한 목표만 있을 뿐이니까.

물론 모든 감독이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야심만만한 감독들도 충무로에는 많다.

오로지 인맥질과 위선으로 감독생활을 영위하는 이들도 많고.

누구의 마인드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정답도 없는 문제다.


‘내 코가 석자다. 류지호.‘


류지호는 머릿속에서 날뛰는 상념들을 날려버렸다.

어느덧 사울 젠츠 필름 센터의 믹싱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끼익-


류지호가 방음문을 열고 들어갔다.


탕! 탕! 탕! 탕!


건물이 들썩거릴 정도의 사운드가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사운드 슈퍼바이저가 보안관 사무실 총격전 장면을 가믹싱하고 있다.

류지호는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가에 멈췄다.

한참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슈퍼바이저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곳 시설은 한국의 남양주종합촬영소 믹싱실보다 못하다.


‘영진공 녹음실 시설이 제 아무리 좋으면 뭐해?’


그 좋은 시설과 장비를 다루는 기사들의 마인드가 너무나 아쉬운 류지호다.

그리 대단해보이지 않는 이 사운드 믹싱룸에서 <세7븐>을 비롯해 수많은 할리우드 명작들의 사운드 숨결을 불어넣었다.

<세7븐>의 사운드 디자인과 믹싱은 세션맨이자 사운드 에디터 라이언 클라이스(Ryan Klyce)가 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이 바로 류지호의 <The Killing Road>다.

라이언은 <세7븐>을 작업했지만 본래 직업은 신디사이저 세션이다.

팝의 여왕 또는 크리스마스의 여왕이라고 불리게 될 마리아 캐리의 앨범마다 참여하고 있는 실력 있는 뮤지션이다.

<세7븐>과 <The Killing Road>를 계기로 영화 사운드 디자이너로 전향했다.

아직은 주목받은 사운드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의 위상은 4년 후에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는 영화 음향분야의 대가라거나 비싼 몸값의 음향 전문가는 아니다.


“어?”


가믹싱 된 사운드를 확인하는 라이언 클라이스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한국인 남자가 류지호를 발견했다.


쉿.


류지호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모른 척 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한국인 남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콘솔을 조작하는 라이언 클라이스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라이언 클라이스가 콘솔을 조작할 때마다, 어깨너머로 그 모습을 꼼꼼히 구경했다.

그의 눈은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했다.

이따금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마치 장인(匠人)의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는 도제(徒弟) 같았다.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라이언 클라이스의 작업을 지켜보는 남자는 한국에서 온 음향기사 김정혁이다.

10년 넘게 TV·광고 전문 녹음실에서 각종 광고의 음향을 작업했다.

한국의 광고 포스트프로덕션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다.

작년 프리랜서로 독립해서 <돈을 갖고 튀어라>로 처음 영화 사운드를 시작했다.

완전히 영화 사운드로 넘어올 결심을 하고, 영화 음향을 배우고 싶다는 일념 하에 사비를 털어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왔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프로덕션을 수소문하다가 우연히 류지호의 영화가 포스트프로덕션 중인 걸 알게 되었다.

웨스트우드의 JHO Pictures를 찾아왔다.

당연히 류지호도 기억하는 영화인이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감독들이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충무로 엔지니어 가운데 한 명이었다.

류지호는 고민도 없이 <The Killing Road>의 파이널 믹싱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외부인에게 자신의 작업과정을 보여줄 리가 없다.

그런데 라이언 클라이스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작자이자 감독이 보여주겠다는데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작가의말

민족대명절인 추석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여럿이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았던 만큼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연후 끝나고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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