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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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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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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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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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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서울지검 특수3부(최성욱 부장검사)는 지난 14일 00신문 강 모 부장을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강 부장은 윤씨로부터 홍보성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6,000만 원 상당의 패스2.1 주식 300주를 150만원에 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언론사 관계자 3~4명을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영화배급사와 기자들 간의 촌지 문제를 수사했던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조우정 부장검사)는 지난 14일 이 모 전 스포츠00 편집국장과 신 모 전 000스포츠 차장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4개 스포츠신문 기자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모 전 국장은 영화배급업체에서 1,9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이 당시만 해도 금품 수수 액수가 2,000만 원 이상일 경우 구속, 1천~2천만 원은 불구속 기소였다.


“특히 일 년에 10여 편의 미국 영화를 수입하는 대형 영화사는 이런 촌지관행이 일반적인 행태인 것으로 드러나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강현도가 분한 듯 씩씩거리며 물었다.


“이 자식들이! WaW를 콕 집어서 이야기 하는 거네요?”


장문식이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털어서 진짜 먼지만 나오니까, 전 방위로 조지려고 드네. 자식들이.....”

“이 자식들이 선전포고를 날린 거 맞죠?”

“누가? 검찰이?”

“아닙니까?”

“우리가 오성이나 대유도 아니고, 그럴 깜이 되냐?”

“한국에서 일 년에 10편 수입하는 대형 영화사가 WaW 말고 또 있습니까?”

“직배사 말고는 없지.”

“내 말이요! 딱 WaW를 노리고 있다고 대놓고 선전포고 하는 거 아닙니까?”

“오바 하지 마!”


쩝.


강현도가 무안함에 입맛을 다셨다.


“시사회 할 때마다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들 모조리 불러서 걔들한테 촌지를 싹 다 뿌리는 겁니까?”

“보도자료를 봉투에 넣어서 건넨다면 백퍼센트 촌지가 들어가 있다고 보면 맞아.”


액수는 크다면 크고, 적으면 적었다.

대략 10~30만 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극장에 와준 것에 대한 교통비와 식사비조의 성의 표시다.


“우리 깐깐한 의장님이 그걸 용인한다고요?”

“홍보마케팅 비용에 따로 항목은 없지만, 당연히 책정되는 비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걸? 아직도 의장을 몰라?”


영화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반에 걸쳐 행해지는 촌지 관행이다.


“상식적인 선의 액수가 넘어가면, 단순한 식사비가 아니라 뇌물이야. 그래서 금액에 있어서 업계 전체가 암묵적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


이러한 영화계 촌지 관행이 실종 되는 것은 앞으로 10년을 훌쩍 넘겨서다.

현찰 대신 다른 방식으로 뇌물이 전달되지만.

이런 관행은 WaW 픽처스라고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쨌든 2010년대가 되면 연예부 기자의 권력보다 스타배우, 재벌 대기업 배급사 파워가 더 강해진다.

한국 언론사에서 광고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기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박건호 대표님 모토가 정도경영 아닙니까?”

“얀마..... 다른 배급사 홍보팀이 모두 촌지를 주는데, WaW만 깨끗한 척 교통비도 식사대접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냐?”

“돈도 안 주는데 기자들이 시사회장에 올 리 없겠죠. 아마도.....?”


연예부 기자가 영화평론가 행세를 하는 시기다.

그들의 악의적인 영화 리뷰가 관객에게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주던 시기다.


“정도경영이고 나발이고 관행 무시하고 선비질하면 순식간에 병신 만들어 버리는 게 기자야.”

“그런 기자들한테 목줄을 걸어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가?”

“회사차원으루다가요.”

“하도 미친 개새끼들이 많아서 목줄 걸다가 물리는 수가 있어.”


강현도가 걱정스레 말했다.


“검찰 새끼들이 공사치는 게 짭새보다 더 한데.... WaW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장문식이 가소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털어보라지. 먼지나 찾으면 다행일 거다. 큭큭.”


❉ ❉ ❉


[검찰은 태양영화사 대표 이씨, 동우수출공사 회장 왕씨를 포함해 5개 영화업체 대표 8명과 배급업자 및 지방 극장주 등 그동안 소환 조사했던 30여명도 세금 포탈 혐의가 확인되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유림영화사 성모 회장은 95년 3월 법인세 1,700여만 원을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아들이 대표로 있는 유림영화배급사의 94년과 95년 1·2기분 부가가치세 2,000여만 원 및 종합소득세 900여만 원을 내지 않은 것도 드러났다. 검찰은 협동영화사 대표 겸 서울시극장업협회장 박씨에 대한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영화업체들이 세금을 포탈하는 과정에서 세무담당 공무원들이 관련됐을 것으로 보고 국세청과 일선 구청 세무담당 공무원도 수사하기로 했다.]

- YnTV 사회부 송일성 기자.


벌컥!


WaW 픽처스 사무실 문이 열리며 양복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검찰 수사관의 외침에 업무를 보고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교육을 받은 것인지 일체 당황하지 않았다.

박건호 대표와 신효정이 집무실에서 나왔다.

신효정이 수사관들을 지휘하는 선임 수사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뭡니까?”

“압수수색 영장 보여주셔야죠.”

“팩스로 보냈잖습니까? 팩스 못 받았어요? 어이! 일루.....”


검사,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은 압수 수색영장의 집행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미리 압수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참여권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증거물을 은닉할 염려 등 급속을 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전에 압수수색을 통보해야 하는 것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신효정이 선임 수사관의 말을 끊었다.


“팩스로 보낸 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세요? 영장원본을 제시하셔야죠.”

“뭘 그렇게 따박따박 따져요. 우리가 영장도 없이 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절차대로 하셔야죠. 만약 얼렁뚱땅 넘어가면, 추후 재판에서 오늘 수집한 증거들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법원에서 발급한 압수수색 영장 원본을 피의자나 관련자에게 제시하지 않고, 압수수색을 벌이는 것은 나중에 법정에서 그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원칙이 그렇지만, 대부분 팩스로 통보하고 끝인 경우가 많았다.

선임수사관이 부하 직원에게 신경질적으로 명령했다.


“야. 영장 보여드려!”


신효정이 영장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압수 수색영장에는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성명, 죄명, 압수할 물건, 수색할 장소, 신체, 물건, 발부연월일, 유효기간과 그 기간을 경과하면 집행에 착수하지 못하며 영장을 반환하여야 한다는 취지, 압수 수색의 사유, 압수 수색할 물건이 전기통신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작성기간을 기재 등이 명확하게 적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제 됐죠? 집행합니다.”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다.


“되긴 뭐가 됩니까? 압수물 목록 보여주셔야죠.”

“아씨, 증말!”


신효정은 압수물 목록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영장주의 원칙상 압수 수색의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 강제처분을 허용하는 일반영장은 금지되고 있다.

압수 수색영장에 ‘압수할 물건’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기재하는 문언은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하며, ‘수색할 장소’도 압수 수색영장을 집행할 때에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한다.


“직원들 모두 퇴거 시키는 게 작업하는데 좋아요?”


선임수사관이 다소 짜증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어휴. 변호사님들이 계속 저희를 따라다니실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검찰 수사관들이 WaW와 G.O.M Cinemas를 압수수색했다.

압수목록에 들어있지 않은 것을 가져가려고 할 때면 다온의 변호사들이 여지없이 저지했다.


“그거 가져가려면 법원에서 영장 다시 받아오세요.”

“정말 이럴 겁니까!”

“여러분은 합법적인 법집행을 하시고, 저희 또한 법에 따라 의뢰인을 보호하면 되는 겁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다가는 나중에 문제 생길 수 있으니까 절차와 법규를 준수해 주세요.”


나름 성실하게 검찰에 협조했다.

때에 따라서는 압수목록에 없던 것까지 내주었다.

거리낌이 없다는 투다.

직원들은 대담하려고 해보지만,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공권력에 대들어 봐야 손해만 볼 뿐인 것을.

반나절 꼬박 압수수색을 받았다.

박건호 대표가 직원들을 다독였다.


“별 일 없을 것입니다. 동요하지 말고, 다들 업무 재개하세요!”


❉ ❉ ❉


서울지검 특수부.

영화계 비리수사를 지휘하는 부장 검사가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소집했다.


“모법 납세자상은 또 무슨 말이야? 자세하게 설명해 봐.”

“그 흔한 절세 방법 하나 쓰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군복무 동안 배당금이나 월급을 한 푼도 받아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가족을 근로자로 등록해 비용 처리를 한다거나 차를 리스해 실제로는 개인용으로 쓰면서 업무용으로 썼다고 하는 일이 일체 없었습니다.”


법인 차량의 경우 엄격하게 적용하면 걸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런데 류지호는 그 흔한 법인차량 유용으로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미국에 체류 중이라서 회사차량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간혹 귀국할 때 간간이 쓰고 있을 뿐.

그것도 의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류지호는 법인카드가 없다.

개인 신용카드를 쓰고 있다.

회사에 비용처리도 일절 안 한다.

최연소 억만장자 소리 듣는 류지호다.

회사 돈 안 써도 미국과 한국의 주거래 은행 계좌에서 돈 떨어질 일이 없다.

배당 잘 주는 기업의 주식을 워낙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어쨌든 부장검사는 이대로 WaW 픽처스 문제를 넘길 수 없었다.

뭐라도 하나 파봐야 했다.


“의장 쪽에서 비용 처리된 거는? 거기서도 건질 게 하나도 없어?”

“부장님도 아시다시피 영화판이란 데가 참 애매합니다. 기획이니 후반작업 진행비니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됩니다. 그리고 의장 류지호는 처음 영화사를 설립할 당시를 제외하고는 미국유학이다 군대다 실제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는 걸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회사가 자기 것이고 의사회 의장이긴 한데 특별히 엄청난 수익을 챙겨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 임원들이나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를 하지 않은 것 같고요.”

“그럴 리가 있어? 류지호가 초이스한 영화가 대박을 쳤다고 온 영화잡지와 스포츠신문에서 떠들어댔는데.”

“어떤 시나리오를 읽고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이 정도 가지고는 지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의장의 품위유지비로 책정된 비용처리도 황당합니다.”

“뭐가 황당한데?”

“그 비용처리라는 게 기부금입니다.”

“뭐?”

“회사에서 의장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이런저런 명목으로 비용을 책정하면, 그걸 안 쓰고 연말에 기부를 했습니다.”

“자기 돈을 썼다는 거야?”

“국세청의 업무협조를 좀 받았는데, 개인종합소득세도 과납부했다고 하더군요. 금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부자들은 최대한 많은 비용을 인정받기 위해 세법을 이용한다.

과다 계산만 되지 않는다면, 국세청에서도 일일이 트집을 잡지는 않는다.

조사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게 바로 암묵적인 관행이다.

작정하고 세무조사를 벌이지 않는 한 대부분 신고대로 세금을 징수한다.

대신 고액 소득자에 대한 것만 따로 관리한다.

그래야 중요한 순간에 그 자료들을 써먹을 수가 있다.

지적을 하기에도, 그렇다고 놔두기에도 애매한 비용들에 대해서 엄격하게 법의 잣대를 적용해 세금을 추징하려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빠져나갈 방법은 별로 없다.


“더 황당한 것은 류지호 의장이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 40억 정도 된 답니다.”


일순 검사들이 할 말을 잃고,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압구정 35평대 아파트 10채 넘게 살 수 있는 엄청난 액수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재의원금으로 5만원을 납부하던 것에서 가장 최근 주식대박을 터트려 10억을 홀트아동복지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물론 주식대박으로 번 돈은 정확하게 십 원 단위까지 신고했고요.”


회의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회사 차원에서도 지금까지 30억 가까이 기부를 했습니다. 류지호의 부친은 자선재단을 설립해서 장학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설령 WaW가 탈세를 저질렀다고 하더라고 태양영화사나 서울무비타운이 탈세한 5억 정도 규모라고 가정했을 때, 공식적인 기부금액이 의장 개인이 40억, 회사가 30억 규모라고 하면.... 상을 줘도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매표 부정도 없어?”

“매표소에 CCTV까지 설치해두고 자체적인 감시를 하고 있고, 관련 비디오 녹화테이프도 자발적으로 저희에게 넘겨줬습니다. 그간 판매한 극장표 또한 모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저희가 일일이 장부와 대조했고요. 극장표를 폐기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조금의 오차는 있지만,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은 딱히 없습니다.”

“임대해서 운영하는 지방극장도?”

“WaW가 운영하기 전에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전에 운영하던 자들은 극장표를 폐기처분했고, 장부만 봐서는 증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대략 추측만 할 수 있습니다. 이전 운영자들에 대한 탈세혐의 정도는 엮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요.”

“WaW는 나온 게 없다는 말이지?”

“소환 조사한 사람들의 진술도 일관되고, WaW는 평판도 좋습니다. 그 의장이란 친구도 마찬가지고요.”

“일단은 알겠어.”


특수부 검사와 수사관들은 WaW와 류지호의 비리정황을 잡기 위해 열심히 털었다.

당연하지만 먼지가 안 날 수가 없다.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이나 기업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 먼지만으로 사건을 만들기는커녕 기소는 물 건너갔다.

되레 수사발표로 인해 류지호와 WaW만 띄워줄 판이다.

일부 내용이 검찰 출입기자들을 통해 알려졌다.

트집 잡아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WaW의 이미지가 좋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류지호가 40억이나 기부를 했다더라.”

“미국에서는 그것보다 몇 배는 더 기부를 한다던데? 차별하는 거 아냐?”

“한국보다 미국에서 몇 배를 더 버니까 기부도 많이 하겠지.”

“곰이 와우 거지?”

“그럴걸.”

“거기 사운드 죽이지 않냐?”

“가끔 직원이라면서 관객들에게 영화 소리 어땠냐고 물어보더라.”

“뭐라고 했는데?”

“죽인다고 했지 뭘.”


이미 몇 년 전부터 류지호는 이 같은 상황을 대비했다.

WaW 픽처스와 장문식을 포함한 나래안전의 정보팀은 철저하게 영화사업부분을 관리했고, 신효정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법적 다툼까지 준비했다.

검찰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무죄로 풀려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류지호가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까지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겠지만.


✻ ✻ ✻


충무로의 배급판은 한마디로 복마전이다.

아직까지 지방극장주들이 미리 시나리오와 출연배우를 보고 제작사에 선금을 주고 상영권을 구매했다.

그런 후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입장수익을 전액 가져가는 구조다.

사실상 영화제작사들은 돈을 벌 수가 없다.

당연히 자본축적이 될 리가 없다.

다음 영화도 극장주들한테 헐값을 받고 상영권을 미리 팔 수밖에.

악순환이다.

영세한 제작사는 결코 자립을 할 수 없는 산업구조다.

극장주들은 관객수를 조작해서 매출을 축소 신고했고, 연계된 배급사, 제작사 모두 회계처리를 엉터리로 했다.

돈이 되는 외화수입과 배급도 비슷한 형태다.

당연히 정확한 관람객 집계, 매출통계는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매표 누락과 매출 축소를 한 당사자들도 정확한 영화 매출을 모를 정도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한국영화판에서는 너무 당연했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이라고 투명하고 합법적이었을까.

직배사들과 한국 대행사들은 이번 사정정국에서 시정명령 정도로 넘어갔다.

전방위적인 로비로 잘 넘어갔다.

당장의 위기는 모면했다.

여담으로 몇 년 후 새로운 정부에서 수십억 원의 추징금을 징수 당하게 된다.

죄의식 없이 도둑질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종상 ‘애니깽 사태‘와 충무로 거물들의 구속은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충무로 질서가 붕괴하는 신호탄이었다.


결국.


이번 영화계 탈세비리와 부당한 관행에서 WaW 픽처스는 무혐의.

외화수입 가격 및 매출을 축소 신고한 할리우드 직배사와 대기업 계열 배급사, 그 외 여러 영화사는 세금 추징과 함께 불기소 시정 명령.

한국영화 양대 거목인 태양영화사 대표와 서울극장의 박 회장은 탈세, 횡령 등 여러 죄명으로 구속과 함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 외에 유림영화사 성 회장 역시 추징금과 함께 실형, 지방 배급업자 다수가 무더기로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문체부 산하 영화 기술협회 몇 곳은 기존 회장과 임원들이 공금 유용 등 다양한 비리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지도부 선출에 들어갔다.

영화배급업계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기존 영화계 거물들이 구속되자, 국민여론이 좋지 않았다.

자발적인지 알 순 없지만 영화인들의 탄원서가 연이어 제출되었다.

그런 노력에도 영화계 거물들의 실형을 막을 수 없었다.

지방의 영화배급을 쥐락펴락하던 업자들 대다수가 비리로 구속되면서, 지방배급의 공백이 생겼다.

신진세력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성영상사업단, 대유영화사업부, 신일창업투자 등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전국 배급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강은석 감독의 무비서비스는 후견인이던 박종환 회장의 구속과 관계없이 서울극장 라인을 그대로 넘겨받아 본격적으로 전국 배급에 뛰어들었다.

그런 거대 배급사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신생영화사도 있다.

기존 돈줄이 되었던 지방배급업자들이 충무로에서 쓸려나가자, 벽산, 해태, 한보, 새한, 진로, SGC가 본격적으로 한국영화에 직접 제작비를 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충무로 배급은 2강, 3중, 그 외 영화사들로 급격하게 개편되었다.

UPI와 WaW가 절대적인 강자.

나머지 할리우드 직배사와 무비서비스, 오성영상사업단이 3중.

고만고만한 수준의 배급사들이 할거하는 형국이 되었다.

한국영화계는 주먹구구식 가내수공업에서 탈피해서 자본이 주도하는 영화산업으로 질적인 도약을 준비하게 됐다.

WaW 픽처스가 터놓은 물길에 다른 물길들이 가세하면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판이 펼쳐지게 되었다.

기획-투자-제작-홍보-배급-상영-2차 시장 전 분야에서 기존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이른 봄에 찾아오는 추운 날씨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늙지도 않은 중늙은이가 얼어 죽을 정도로 꽤 춥다는 의미다.

WaW 픽처스는 젊고 건강한 영화사다.

추구하는 이상 역시 건전하다.

앞으로 무수히 많은 시샘과 견제를 견뎌내야 할 터.

비록 WaW 픽처스가 역사가 오래된 영화사는 아니지만, 최근의 꽃샘에 추위를 탈 정도로 연약하지 않았다.

충무로에 대한 사정정국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박건호 대표가 오동석을 위로했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지?"

"별로요."

".....?"

"우리 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 대표님도 알면서 그러세요? 별 일 없을 줄 알았어요."

"감독님이 본부장 말을 들으면 좋아하겠군."

"아부한다고 구박하지 않으면 다행일 걸요."

"암튼, 별 일 없이 잘 넘어간 것 같아."

"이번에 알았습니다."

"뭐를?"

"WaW에는 류지호 감독님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도 감독님만한 인물은 없지."

"오. 지금 대표님이 아부성 발언 하신 거죠? 맞죠?"

"사실인 걸 어째. 위기를 대비하고, 또 그걸 기회를 삼는 건 쉽지 않은 법이지."

"우리 감독님은 때로 너무 재고 따져요. 가끔 답답할 때가 있긴 합니다."


WaW 픽처스의 오너 류지호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매우 신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실은 충무로가 발전하는 흐름과 사건들을 꿰고 있는 것이었지만.


❉ ❉ ❉


뉴욕 웨스턴 50번가의 Timely Enterprise 본사가 입주해 있는 빌딩.

Timely Enterprise는 지식재산권에서 ‘작은 Laugh-O-Gram’이라고 불린다.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회의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파산보호신청은 절대 안 됩니다!"

“대안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할 거요!”


최대 주주 가운데 한 명인 로니 페럴만과 주요 주주들이 언성을 높이며 입씨름을 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위임 받고 참석한 행동주의 투자자라고 쓰고 기업사냥꾼으로 읽는 칼 아이젠(Carl Eisen)이 씩씩거렸다.

로니 페럴만은 뻔뻔스러운 얼굴로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요?”

“그걸 왜 우리에게 묻습니까?”

“대안도 없이 무작정 반대만 하면 답니까?”

“그래도 파산보호신청은 안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Timely Enterprise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손해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지난해 Timely Enterprise의 적자규모가 4,800만 달러에 달했다,

이에 파산보호신청을 하자는 로니 페럴만 측과 투자자인 칼 아이젠을 비롯한 소액 주주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이다.

Timely Enterprise의 주식을 일부 보유하고 있는 장난감 회사 Toy Biz는 이도저도 아닌 듯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Timely에서 이익만 챙겨가고, 막대한 부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았습니다.”

“회사 경영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들이 한 것이요. 책임을 물으려거든 그들에게 물어야지 왜 내게 따진단 말이요!”

“당신은 책임이 없다는 거요? 회사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흥!”

“흥? 이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칼 아이젠은 당장에라도 로니 페럴만에게 주먹을 날릴 듯 으르렁거렸다.


“신사답게 굽시다!”


야곱 펄뮤터가 비웃음을 담아 말하자, 셰인 아라드가 동조했다.


“진정들 하세요.”


두 사람은 Timely Enterprise의 자회사인 장난감 회사 Toy Biz의 회장과 최고경영자다.

특히 셰인 아라드는 Timely Films의 수석 기획자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도 했다.

이해관계에 따라서 서로 언성을 높이고 있을 때.


벌컥!


일단의 남자들이 회의장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회의 중에 누굴 함부로 들이는 거야!”


잔뜩 예민해져 있는 칼 아이작이 성질을 부렸다.


“안녕하십니까!”


어딘지 장난스런 음성.

이사들의 시선이 회의실 입구로 향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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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영화 기술사의 한 획! (2) +11 22.10.13 4,532 156 24쪽
302 영화 기술사의 한 획! (1) +7 22.10.12 4,765 148 25쪽
301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2) +11 22.10.11 4,624 151 23쪽
300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1) +9 22.10.10 4,605 144 26쪽
299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12 22.10.08 4,691 156 24쪽
298 JHO CONVENTION. (5) +8 22.10.07 4,728 143 31쪽
297 JHO CONVENTION. (4) +9 22.10.06 4,911 161 25쪽
296 JHO CONVENTION. (3) +7 22.10.05 4,756 151 24쪽
295 JHO CONVENTION. (2) +8 22.10.04 4,657 150 23쪽
294 JHO CONVENTION. (1) +6 22.10.03 4,892 161 23쪽
293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3) +6 22.10.01 4,778 159 22쪽
292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11 22.09.30 4,791 146 21쪽
291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 +12 22.09.29 4,760 164 21쪽
290 우리 잘 해봐요. (5) +6 22.09.28 4,845 157 26쪽
289 우리 잘 해봐요. (4) +7 22.09.27 4,752 153 25쪽
288 우리 잘 해봐요. (3) +8 22.09.26 4,776 154 23쪽
287 우리 잘 해봐요. (2) +3 22.09.24 4,830 157 21쪽
286 우리 잘 해봐요. (1) +8 22.09.23 4,976 147 23쪽
285 박스오피스는 내가 더 높거든! +11 22.09.22 4,903 173 28쪽
284 토론토 국제영화제. (6) +6 22.09.21 4,836 164 24쪽
283 토론토 국제영화제. (5) +13 22.09.20 4,725 163 27쪽
282 토론토 국제영화제. (4) +13 22.09.20 4,425 140 26쪽
281 토론토 국제영화제. (3) +7 22.09.20 4,472 122 25쪽
280 토론토 국제영화제. (2) +7 22.09.19 4,711 157 26쪽
279 토론토 국제영화제. (1) +4 22.09.17 4,924 162 28쪽
278 쯧.... 역시 생각이 많은 녀석! +6 22.09.16 4,808 153 26쪽
277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3) +5 22.09.15 4,788 162 26쪽
»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2 22.09.15 4,509 140 23쪽
275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7 22.09.14 4,730 15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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