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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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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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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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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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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국영화관람등급은 모두 4개의 등급으로 나눠진다.

이 등급은 미국영화협회(MPAA) 등급위원회가 결정한다.

등급위원회 위원은 40대 이상 연령의 백인으로 모두 7명.

명단은 외부에 절대 밝히지 않는다.

다만 Unrated 등급만은 이 위원회를 거치지 않고도 업자 스스로가 매길 수 있다.

미국영화관람등급은 G(General Audiences), PG(Parent Guided), R(Restricted), NC-17(No One 17 and Under), 그리고 무등급(Unrated)으로 나눠진다.

G는 모든 연령층이 볼 수 있는 영화다.

폭력·누드·섹스장면이 나오지 않는 영화에 표시된다.

PG는 약간의 내용이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표시다.

섹스장면은 없으나 누드는 나온다.

따라서 이 등급이 표시되는 영화는 부모가 영화내용을 미리 알아보고 동반해서 보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R은 17세 이하는 반드시 부모와 동행을 해야만 하는 영화다.

욕설과 폭력, 누드와 섹스가 암시적으로 묘사되는 영화는 모두 포함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체로 이 등급을 받는다.

NC-17은 17세 이하는 무조건 입장불가의 영화다.

과거 X등급이 이에 해당된다.

참고로 R등급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15세 미만 관람불가 수준이고(17세 미만의 경우 부모의 동반 필수) 완전히 청소년 관람불가는 NC-17 등급이다.

포르노 영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섹스가 노골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다.

미국에서는 욕이나 피 중 하나가 조금만 들어가도 무조건 R등급을 받는다.

그리고 R등급부터는 상영관 수가 급격히 적어지기 때문에 영화 흥행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된다.

이렇게 판정된 등급은 미국의 모든 영화에 반드시 표시하게 되어 있으며 등급위원회 위원장의 사인이 곁들여 진다.


“재심의를 받았다고요?”


류지호가 의아한 얼굴로 알버트 마샬 ParaMax 사장에게 물었다.


“MPAA의 등급심사의 이중 잣대는 문제가 있으니까.”

“그들의 보수적이고 오락가락하는 심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죠. 등급에 연연하지 말자고 했잖아요.”

“도전적인 인디영화에 등급은 의미가 없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항소해야 하지.”


NC-17 등급 혹은 무등급 제한상영은 대개 4개 안팎의 스크린에서 개봉된다.

헌데 <The Killing Road>의 스크린 수가 49개다.

<유주얼 서스펙트>, <스모크> 수준의 스크린 숫자다.

류지호가 처음으로 투자했던 <늑대와 춤을>의 스크린 숫자와 똑같았다.


“사과 해야겠네요.”

“......?”

“ParaMax의 배급력을 낮춰본 것 같아요.”

“배급력과 상관없네. 관람등급이 한 단계 내려감으로 해서 스크린 수를 늘릴 수 있었던 거야.”


미국은 시장구조나 규모가 워낙에 크고 복잡해서 신생업체가 전국적인 배급망을 까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물론 수십 년 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어진 시스템과 관행이 잘 갖춰져 있긴 하지만.


“MPAA의 등급 분류는 자유로운 소재의 영화창작은 백퍼센트 보장하면서 그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층을 세분해 제약하자는 취지였지. 즉 연령층에 따른 관람기준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었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검열이 되기도 해. 지금처럼. 매우 부당한 처사야. 당연히 이의를 제기하고 올바르게 바로잡아야지.”

“토론토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도 영향을 미쳤겠네요.”


영화제 초청 상영 정도에 그쳤다면 항소는 없었을 터.

토론토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하게 되자, ParaMax Films 배급팀의 생각이 바뀌었다.

포스터에 국제영화제 수상 마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서 흥행성적이 유의미하게 차이가 나기에.


“윌리엄 스톤의 <킬러>와 비교하면 <The Killing Road>에 대한 등급은 가혹한 면이 있지.”

“그렇긴 하죠. 기자를 향해 연쇄살인범이 산탄총으로 난사하는 건 괜찮고, <The Killing Road>에서 부패한 경찰관을 살인하는 건 안 괜찮고. 일관성이 없긴 해요.”


비록 많은 부분이 잘려나갔지만, <킬러>는 핏빛 향연 그 자체였다.

그런 영화조차 R등급을 받았다.

<킬러>와 비교하면 <The Killing Road>는 PG등급을 받아도 될 정도다.

그런 면에서 등급 재조정 신청은 당연한 일이었다.

등급에 불만이 있을 때 등급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문제의 장면을 잘라내는 방법.

다른 하나는 등급항소위원회에 제소하면 된다.

후자는 장면삭제가 어렵거나 문제가 된 장면이 영화적으로 가치 있다고 판단할 때 하게 된다.

등급항소위원회는 미국영화협회·전국극장협회·외국영화수입업자 및 배급업자 대표24명으로 구성된다.

회원의 3분의2 찬성을 얻으면 등급을 변경시킬 수가 있다.

ParaMax는 등급항소위원회 제소와 함께 언론플레이를 시작했다.

윌리엄 스톤도 힘을 실어주었다.

자신의 영화들이 등급심사에서 불합리한 판정을 받았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 외에도 많은 할리우드 감독들이 <The Killing Road>를 지지했다.

UCLA 출신 영화인과 각 대학 영화과 교수들도 힘을 실어줬다.

<The Killing Road>가 도화선이 된 것 같았다.

뉴욕을 중심으로 영화비평계와 각종 언론에서 연일 MPAA 등급심사위원회의 말도 안 되는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사실 등급심사위원회에 대한 비판여론이 처음은 아니다.

할리우드 독립제작사와 감독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미국영화등급위원회와 갈등을 벌여왔다.

과도하고 보수적인 등급심사가 영화 현장의 창작의지를 위축시킨다며 맹비난하고 있다.

ParaMax Films는 <The Killing Road>보다 더욱 폭력적이고 적나라한 성적묘사를 하고도 R등급을 받은 영화들의 예시들을 들어가며 등급항소위원회를 설득했다.

결국 <The Killing Road>는 R등급으로 재조정되었다.

다만 고문장면의 일부를 편집해야 했다.


“아쉽지 않아?”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류지호는 크게 마음이 상하진 않았다.

창작자로서 누군가의 검열에 의해 영화가 변경된다는 것은 기분이 몹시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류지호는 감독이면서 프로듀서다.

광고와 극장 확보가 극도로 제한되는 NC-17등급보다 R등급을 받는 것이 그나마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난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지킨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고집스러움으로 <The Killing Road>를 만들지 않았다.

일부 장면에서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 의도에 부합하긴 했다.

그런데 상상과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편집이 관객에게 더욱 끔찍한 악몽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사운드를 조금 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세 번의 상영에서 어느 정도 확인했다.

일부 비평가가 MPAA에 굴복했다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담백하고 간략한 묘사로 살인자의 쾌감 대신 그 상황 자체를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도록 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세기말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의 광기, 그걸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영화의 사실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자극적인 영상 실험과 거침없는 폭력 묘사 대신에 생략과 암시가 주는 묘한 연상작용으로 영화가 가진 은유와 상징이 더욱 구체적으로 살아났다는 해석이 힘을 받았다.

류지호는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영화를 포장해 주는데,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으니까.


- 처음 볼 때는 불편하고 난해한 영화. 하지만 다시 보게 되면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다. 가령 수다스러운 연쇄살인범이 영화 내내 떠벌이는 이야기들의 파편을 하나로 그러모으면 그 의도와 의미가 명확해 진다. 즉 폭력이 만연한 세태와 연쇄살인을 영웅화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교묘한 풍자가 섞여 있다.


뉴욕비평가협회에서 신인감독상(Best New Director) 명단을 발표하며 <The Killing Road>에 대해 내놓은 평이다.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 가운데 가장 먼저 수상자를 발표한 뉴욕비평가협회다.

뉴욕비평가협회상은 전미비평가협회상, LA비평가협회상, 시카고비평가협회상과 함께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 중 하나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버금가는 공신력 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토론토에 이어 뉴욕비평가협회로부터 상을 받게 됐다.

그것도 신인감독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시상은 1월 하순에 있을 예정이다.

여담으로 다른 4대 비평가협회상에서 존 터튜와 마리아 베리가 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꽤 훌륭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비평가협회 수상이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

입소문까지 터지면서 한 달 후 <The Killing Road>의 스크린이 대폭 늘어난다.

최대 900여개 스크린까지 늘어난다.

최종적으로 6개월 동안 150개 스크린에서 더 상영되고 극장에서 내려온다.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은 2,100만 달러.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양분됐지만, 흥행에는 성공하게 된다.


❉ ❉ ❉


<The Killing Road>가 프랑스에서 첫 주에만 27만 관객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르몽드>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호평도 쏟아졌다.


- 미국식 유머가 없는 할리우드 풍자극.


조롱인지 칭찬인지 모를 의미심장한 비평이다.

본래는 유럽 프로모션이 없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흥행에 청신호가 켜지자 부랴부랴 일정을 잡았다.

<The Killing Road>는 프랑스에서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북미에서 R등급을 받은 영화가 프랑스에서는 12세 관람가를 받았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The Killing Road>를 볼 수 없다.

폭력묘사와 암울하고 비관적인 내용.

그보다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이라는 이유가 상영불가의 이유다.

폭력미화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나.

또한 <스크림>까지 수입이 보류되었다.

고등학생이 선생을 죽인다는 게 문제라나.

<The Killing Road>가 완벽한 예술영화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제7의 예술이라는 영화를 바라보는 잣대는 유럽과 한국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였다.

여담으로 <The Killing Road>와 <스크림>은 3년 간 수입이 보류된다.

1999년에 가서야 개봉하게 된다.

두 영화 모두 서울관객 30만을 넘기는 대박을 거두게 된다.

다만 <The Killing Road>는 개봉 전 불법복제 비디오와 파일 공유로 웬만큼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은 이미 보고난 후라는 것.

그럼에도 서울관객 31만을 동원하게 된다.

암튼 <The Killing Road>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좋은 출발을 보이는 가운데, 극우보수 카톨릭주의자들의 단체인 AP가 <The Killing Road> 관람등급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


- 지나치게 사실적인 몇 장면의 살인 묘사가 미성년자 관객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


AP(Association Promouvoir)의 항의 내용의 골자다.

그런데 파리행정법원의 1심에서는 그 소송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AP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파리고등행정법원에 항소했다.

AP의 항소에 따라 1심의 판결을 취소하여 프랑스 문화부의 등급 재심의를 요청했다.

항소에서 1심에서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심 요청을 받은 프랑스 문화부는 국가평의회에 항소를 제기했다.

최종적으로 최고행정사법기관인 국가평의회에서는 문화부의 요청에 따라 그간 축적된 자료들을 참고해 판결을 선고했다.

그 과정에서도 영화는 계속 상영되었다.


- <The Killing Road>의 일부 폭력적인 장면은 실제와 매우 유사하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며, 폭력과 섹스 장면을 수준 낮은 눈요깃거리(예를 들어 포르노그래피)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이 장면들은 모두 영화에 녹아들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내러티브와 영화 예술적 상징에 들어맞는다. 이 작품의 테마와 목표는 누구나 살인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에 던져진 두 젊은 범죄자의 행각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며 그에 관련된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이에 대한 무감각성을 표현하는 것은 정당하다. 영화의 표현양식을 주제의식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예술작품과 관련한 등급 심의는 다른 이유를 검토할 필요 없이 2심 판결을 취소한다.


대략 이런 사유로 프랑스 문화부는 12세 관람가 등급 판정을 유지시켰다.

국가평의회가 <The Killing Road>>에 내린 2심 결과를 취소하자, 이 사건은 다시 파리고등행정법원으로 환송되었다.

등급과 관련된 결정에 더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 AP가 총소송비용을 지급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었다.

최고 행정사법기관의 결정답다고 해야 할까.

판결문의 맨 위에는,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가 적혀 있었다.


“요식행위든 뭐든. 이런 것은 정말 부럽네.”


프랑스는 개인의 창작활동을 제한하지도, 관람하는 것도 지나치게 강제하지 않겠다는 걸 드러내는 판결이다.

프랑스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함께 높은 자긍심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학부모들은 싫어하겠지만.

암튼 등급관련 소송으로 유럽 전역에 <The Killing Road>가 광고되는 효과가 있었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던 것.

재밌는 사실은 AP(Association Promouvoir}가 올해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회원 수가 400여명이었는데, 전직 유명 법조인 등 사회 유력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첫 공격 대상으로 삼은 영화가 하필 <The Killing Road>였던 것.

자신들의 기준에 예술이 아닌 것에 대해 극렬한 반대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해지는 단체다.

<The Killing Road>를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를 대상으로 상영 관람가 변경이나 상영제한, 금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게 된다.


“프랑스 영화등급은 전체관람가, 12세 관람가, 16세 관람가, 18세 관람가, 전체 관람불가의 5등급으로 나눕니다. MPAA의 기준과 동일하게 과도한 성행위 장면과 지나친 폭력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다만 그런 장면들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에 얼마나 걸맞은지, 동시에 성행위와 폭력을 담아내는 방식이 적합한지 여부를 포괄적으로 검토한다고 합니다.”


도널드 제이콥은 여전했다.

류지호가 따로 지시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성행위 장면과 폭력 장면의 수위와 함께 예술에 부합하는가를 함께 고려한다는 거네요?”

“예술이냐 아니냐가 개인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갈리기는 하지만, <The Killing Road>는 토론토와 뉴욕비평가협회가 인정한 예술영화입니다. 다른 국가에서 R등급 이상을 받은 <The Killing Road>가 프랑스에서 12세 관람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프랑스에서의 등급과 관련된 소송이 다른 국가들의 등급심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꽤나 시끄러워서 영화팬이 아닌 이들까지 알게 되었으니까.


- 최연소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이 영화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주목을 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 사안에 디렉터 류의 다른 신분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진 않나?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과 웨스트우드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억만장자 아니다. 허황된 이야기다. 내가 생각할 때는 백만장자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프랑스는 뤼미에르 형제의 나라다. 영화팬이 아닌 일반인이 과연 있기나 할까?”


도널드 제이콥이 끼어들었다.


“오늘은 영화 이야기만 합시다.”


처음으로 류지호와 단독 인터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리포터가 욕심을 부렸다.

어림도 없다.

류지호 정도 되는 유명인사는 인터뷰에서 말 한마디가 언론에 의해서 해석되어 실린다.

공식적인 발언이 언제든지 왜곡되어 전달될 소지가 있다.

때문에 모든 인터뷰 질문은 사전에 조율이 된다.


- 영화에서 스테파니가 환영이란 건 알겠다. 그런데 벤이 죽을 때 똑같이 환영을 본다. 도대체 그 의미가 뭘까?

“카이에 뒤 씨네마에서 분석한 것으로 안다.”

- 티아라 이브는 성경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그 이브. 이브는 결국 에덴에서 쫓겨났지만, 영화 엔딩에서 다시 에덴으로 향하는 것 같은 암시를 준다. 디렉터 류는 미국의 소외계층이자 차별받는 인종인 흑인이자 여성을 이브로 상징했고. 원래 성경에서는 이브가 아담을 가스라이팅하지만, 영화에서는 자본주의 최전선인 월가 출신의 잘생기고 겉보기에는 매력적인 엘리트 백인 남자가 가스라이팅을 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그 반대라고 해석하던데....?”

- 마치 미국의 백인 기득권이 흑인을 노예시절부터 가스라이팅한 것처럼 패배의식을 계속해서 주입하고 있다. 그런 것인가?

“연쇄살인범이 이브를 가스라이팅해서 범죄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브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연쇄살인범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바로 Folie à Deux다.”


류지호의 불어 발음이 썩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리포터에게 정확하게 전달된 모양이다.


- Folie à Deux?


감응성 정신병을 뜻하는 정신의학 용어다.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정신병으로, 한쪽 사람은 우세하고 지배적이며 다른 한 사람에게 정신병을 일으키는 근원이 된다고 한다.

공유정신병(shared psychotic disroder)이라고도 하는데, 망상적인 믿음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연쇄살인범은 이브를 가스라이팅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환각을 보는 정신병을 서로 공유하게 된 것이라고 할까. 현대인들의 사회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특히 비평가는 영화를 낱낱이 해부해서 영화가 담고 있는 온갖 것들을 다 찾아내는 직업이다.

류지호는 카이에 뒤 시네마에 비평을 쓴 평론가가 벤 사이퍼와 티아라 이브의 관계 속에서 가스라이팅과 공유정신병까지 연결시킬 줄은 몰랐다.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해석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근접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감응성 정신병이 그렇게 흔한 정신질환은 아니다. 그렇다고 극히 드물지도 않고. 시골 같은 작은 단위의 사회공동체에는 정신질환까지는 아니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비상식적인 믿음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 미국은 땅 덩어리가 넓어서 지방 구석구석 폐쇄적인 공동체도 많다. 그런 걸 암시한다. 정신과 전문의들 말을 들어보니 좀 더 개방되고 사회적 관계가 잘 만들어지면 병은 자연스럽게 줄어 들 거라 한다. 나는 사회문제가 대체로 소통의 단절, 혹은 폐쇄적인 공동체 구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다. 그것을 꼬집고 싶었다.”


리포터가 준비를 잘하고 온 것인지.

프로듀서와 작가가 유능한 것인지 모르지만, 질문의 수준이 꽤나 높았다.

몇 번 대답에 고비가 있기도 했다.

암튼 <The Killing Road>를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했다면 배우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날아가 프로모션을 진행했겠지만, 캐나다에서 열린 영화제에 출품했기 때문에 월드 프로모션을 따로 하지 않았다.

300만 달러 예산의 영화가 월드 프로모션을 하는 것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고.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는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법이다.

<The Killing Road>가 유럽에서 화제가 되자 알아서 방송사와 언론사들이 LA로 찾아와 인터뷰를 하고 갔다.

결과적으로 예전 <늑대와 춤을>처럼 <The Killing Road> 역시 북미보다 유럽에서 영화가 흥행폭발한다.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8,000만 달러의 절반을 유럽에서 거둘 정도다.

1년 후에 최종 집계된 박스오피스 총수익이지만.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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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토론토 국제영화제. (1) +4 22.09.17 4,924 162 28쪽
278 쯧.... 역시 생각이 많은 녀석! +6 22.09.16 4,808 153 26쪽
277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3) +5 22.09.15 4,789 162 26쪽
276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2 22.09.15 4,509 140 23쪽
275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7 22.09.14 4,730 15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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