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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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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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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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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잉글우드 오일 필드 끝자락에 위치한 컬버시티 공원 바로 앞 건물.

몇 년 전까지 폐건물로 방치되던 곳이다.

몇 해 전에 류지호가 구입해 스턴트 전문 회사로 탈바꿈했다.

건물 벽면에 근사한 필체로 회사 로고가 새겨져 있다.

Vic & Jay Action Design(Center).

실내에는 체육관, 사무실, 장비보관실, 영상 편집실, 샤워장, 헬스 트레이닝장 등이 들어서 있다.

과거 창고로 쓰이던 건물답게 천장이 매우 높았다.

와이어액션을 구현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설치하기 안성맞춤이다.

때에 따라서는 와이어액션 장면을 촬영 할 수 있도록 블루 스크린과 조명을 달 수 있는 바텐까지도 설치해 놓았다.


“여기가 스턴트 회사라고?”

“응.”

“몇 평인데?”

“300평.... 그 정도 된다고 했던가?”


류지호가 오랜만에 Vic & Jay 센터에 나왔다.

그의 곁에는 껌딱지처럼 고우찬이 찰싹 붙어있다.

두 사람은 반바지, 티셔츠 차림이다.

티셔츠 가슴팍에는 멋들어진 붓글씨 필체의 Vic & Jay Action Design 로고가 새겨져 있다.

본래 Vic & Jay 크루들에게만 지급되는 단체복이다.

고우찬이 하도 졸라서 한 벌 선물했다.


“아까 너랑 인사한 그 흑인.... 혹시 웨스 스나입스 아냐?”

“맞아.”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별로 크지 않대?”

“네가 큰 거야.”


워낙 비율이 좋고 어깨가 벌어져서 그렇지 웨스 스나입스는 류지호보다 작았다.


“케이아누 립스도 여기서 운동한다며?”

“응.”

“언제 와?”

“나야 모르지. 빅키에게 물어봐.”

“말이 안 통하잖아.”

“미리미리 영어회화 배워두라니까.”

“......”

“이 자식.... 하여간 뻔뻔한 거 봐라?”

“한국 사람이 한국말만 잘하면 되지.”

“넌 한국말도 버벅 거리잖아.”

“씁. 까분다. 겨루기 한 판 뜰래?”


류지호가 고우찬의 도발을 무시하고 전면유리 앞쪽으로 바짝 다가갔다.


쫙.

부웅.


류지호가 태권도 발차기를 수련했다.

태권도를 수련할 때만큼은 진지한 고우찬..... 일리가 없다.


“발차기 맞으면 간지럽겠다. 뭐냐 그건?”


고우찬의 계속된 도발에도 류지호는 넘어가지 않았다.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수련하고 있는데.


“Jay!"


류지호가 숨을 고르며 소리가 난 곳을 돌아봤다.

십대 여자애들이 환장할 꽃미남 소년이 우두커니 서있다.

<굿바이 프랜드>로 인연을 맺은 아역배우 배런 렌프로다.


“네가 왜 여기서 얼쩡거려.”


류지호의 목소리는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이 소년은 현재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비밀>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못 올 데라도 왔어?”


녀석의 태도가 싸가지가 없다.


“나보고 여기 나와서 운동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이리 와봐.”

“왜, 왜!”


배런 렌프로가 한 걸음 뒤로 물렀다.

고우찬이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왜 쫄아서 저러냐? 너한테 맞기라도 했어?”


단박에 류지호가 한소리 쏘아붙였다.


“내가 사람 패고 다니는 거 봤냐?”


류지호가 다시 배런 렌프로를 향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이 와서 이야기 해. 멀리 떨어져서 그러지 말고.”

엄한 목소리 정도가 아니다.

명령조다.

배런 렌프로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껏 드러내며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냐?”

“영화 촬영 준비해야 하잖아. 그래서.....”

“크랭크인은 4월 2일. 엘리어트 중학교.”


배런 렌포로가 류지호의 눈을 피하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쳇. 학교 측에 허락받았어.”


류지호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우,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배런 렌포로는 <의뢰인>에서 아역배우 출연해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굿바이 마이 프랜드> 주연, <슬리퍼스> 아역 등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문제는 벼락스타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굿바이 마이 프랜드>를 촬영할 때 전국의 소녀 팬들로부터 각종 선물과 팬레터를 받을 정도로 십대 소녀들의 최고 인기스타가 되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담배를 피웠다.

술도 마셨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겨우 14살 밖에 안 된 녀석이.

심지어 자신보다 10살이 많은 성인 여성과 섹스를 즐기기까지 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벼락스타의 후유증이다.

거기에 늦은 사춘기까지 섞여 사생활이 엉망진창이었다.

그의 에이전트는 온통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자였다.

배런 렌포르의 일탈을 방관했다.

녀석의 부모는 마약중독 치료소와 감옥에 각각 수감 중이다.

따라서 할머니가 녀석을 돌보고 있다.

할머니로서는 녀석을 통제를 할 수 없었다.

급기야 류지호에게 도움을 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녀석의 일탈과 류지호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굿바이 마이 프랜드>를 제작할 때 아역들의 정신 상담을 신신당부한 바 있었다.

심지어 배런 렌포로는 더욱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할 만큼 했다.

류지호는 그 같은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꽃미남 배우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망가지는 꼴이 보기 싫기도 했고.

어쨌든 류지호는 녀석을 돌봐주기로 했다.

첫 번째 조치가 보호자인 할머니와 상의해서 에이전트부터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The Killing Road>로 인연을 맺은 캐스팅 디렉터 수잔 베일리와 계약하도록 주선했다.

수잔 베일리는 즉시 Pinkerton Corp. LA와 계약해 경호원 겸 감시자를 붙였다.

그런 후 강제로 Vic & Jay 체육관에 보내서 운동도 시켰다.


“자꾸 할머니 마음 아프게 할래?”

“시키는 대로 얌전히 학교 다니고 있어.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단 말이야.”


여자 친구인지 섹스파트너인지.


“마리화나에 손대는 걸 모를 줄 알아?”

“누, 누가 그래! 술은 마셔도 그런 건 이제 안 해. 호, 호기심으로 한 번.....”

“네 생활이 바뀌지 않으면 영화고 뭐고 없어. 보호시설로 보낼 거야.”

“네가 뭔데 내 인생을 자꾸 간섭하는데?”

“할머니도 내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다.”

“네가 아빠야? 법적 보호자도 아닌 주제에.”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진짜 알고 싶어?”


류지호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리고 똑바로 배런 렌포르를 쳐다봤다.


“.....헙!”


차갑고 무감정한 류지호의 시선을 받으며 배런 렌포로는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연기로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네 할머니만 아니면.... 너 같은 녀석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

“할머니 핑계 대지마.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니잖아.”

“배런! 이 세상에 널 가장 아끼고, 네 편이 되어줄 사람이 누구지?”

“.....”

“너에게 친근하게 구는 그 자식들이 진짜 너의 친구라고 생각해?”

“.....”

“어른인 척 아무리 해봐도, 할리우드의 어른들 속에 섞여 배우로 살아간다고 해도, 넌 아직 15살이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널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를 배신할 생각이야? 이대로 쓰레기가 되고 싶어?”


고우찬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뭘 말로 해? 말 안 듣는 애새끼들은 패야 말 들어.”

“시끄러워!”


뻥!


류지호가 짜증과 화를 듬뿍 담아 고우찬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왜 나한테 화를 내!”


고우찬에 엉덩이를 힘껏 걷어차자, 조금은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다.

류지호가 감정을 추슬렀다.


“배런.”

“으, 응?”

“가서 도복으로 갈아입고 와.”


배런 렌프로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연기다.


“그냥 평소처럼 대화만 나누면 안 될까?”


류지호가 예의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수잔에게 전화해서 너와의 계약을 파기한다고 말할 거야.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비밀> 투자금 집행을 정지시킬 거야. 널 영원히 내 영화에 출연을 못하게 할 거고.... 네가 범죄에 연루된다고 해도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거야. 할머니와의 인연도 끊을 것이고..”

“그건 명백히 협박이야! 내 변호사에게 이를 거야!”

“해 봐. 보호시설로 보내버릴 테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 나한테만 왜 그래.....!”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줬었다.

그랬더니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었다.

엄하고 모질게 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잘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배런 렌프로가 요지부동인 류지호를 한 번 째려봐주고, 라커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쟤하고 무슨 관계인데, 그렇게 화를 내?”

“불쌍한 놈이야.”

“불쌍하면 잘 해줘야지. 왜 원수 대하듯이 하는데?”


고우찬은 류지호가 살벌한 표정으로 차갑게 누군가를 대하는 모습을 본 것이 아네모네 술집에서 다구리 당할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저 놈 주변에 알랑방귀나 뀌는 놈들 천지야. 15살 먹은 놈과 섹스하려고 달려는 정신 나간 년, 돈벌이 도구로 보는 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마구 굴리는 놈, 얼마 되지도 않는 출연료 빼먹으려는 사기꾼년놈들. 부모라는 작자들은 마약 중독자에 자식의 삶에는 관심도 없고. 보호자라고 할머니가 계시는데, 연로하셔서 애를 제대로 캐어할 수도 없어.”


레티 조핸슨 역시 아역배우다.

부모의 감시를 받긴 하지만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환경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맥커리 컬킨이나 배런 렌프로 같은 아역들의 부모들은 오로지 자식들이 벌어들이는 돈에만 관심을 뒀다.

아역배우들은 할리우드의 화려하고 난잡한 문화에 쉽게 물들어버린다.

어떤 마약보다 무서운 것이 대중들의 사랑 즉 인기다.

연예계에서 경력 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인지도다.

그 인기를 토대로 몸값이 결정된다.

한 순간에 쌓아온 인기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자신을 향했던 박수가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오직 결과만으로 평가를 받는 냉혹한 세계다.

그 속에서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배런 렌프로는 지금은 뭐든지 재밌고 신나는 것투성이일 터.

문제는 성인이 돼서 맞닥뜨릴 냉혹한 세계다.

그에 대한 맷집을 키워놓지 못하면 배런 렌프로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배런 렌프로의 필모그래피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은 매우 좋은 편이다.

다만 앞으로가 문제다.

사기꾼 같은 에이전트를 해고하고 믿을 수 있는 수잔 베일리로 교체했다.

메이저 에이전시와 계약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경호원이 일일이 쫒아 다니며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

한국이었으면 태권도 수련을 핑계로 패서라도 인간을 만들어보겠지만.


“저 놈 얼굴은 레오날드 그레이프 뺨치게 생겼네. 연기는 잘하냐? 싹수가 있는 놈이야?”

“잘생겼지. 저대로만 자라면.”

“근데 삐쩍 마르고, 눈 밑이 검은 거 보니까, 밤마다 독수리오형제와 자주 면담하는가 보다?”

“독수리오형제가 아니라 아줌마들하고 침대에서 뒹군다.”

“자식... 난 놈일세.”

“난 놈 같은 소리하고 있다!”

“왜 자꾸 화내는데? 저 놈이 너무 잘 생겨서 질투라도 하냐?”


고우찬은 류지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우월한 외모도 재능이다.

연기도 타고난 재능이 분명 영향을 미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오를 수가 있다.

외모는 아니다.

과학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단순히 잘생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매력적으로 잘생긴 것은 타고나야 한다.

하늘과 부모가 내려준 재능.

그런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 배런 렌프로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타고 난 주제에 이리저리 한 눈 팔며, 생애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다.

류지호는 그런 배런 렌프로에게 안타까운 것을 넘어서 화가 났다.


“차렷! 경례!”


배런 렌프로가 도복으로 갈아입고 왔다.


“앞차기 하나!”

“오른발 돌려차기 하나!”


태권도 수련을 핑계로 무려 3시간을 굴렸다.

세상에서 배런 렌프로를 이렇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류지호 뿐이다.

칭얼거리고, 반항하고.

류지호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 폭군! 악마!”

“시끄러워! 닥치고 바닥에 누워 봐.”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나와 한 시간 더 운동할래? 아니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래.”


배런 렌프로가 이를 박박 갈며 바닥에 누웠다.


“우찬아, 이 놈 마사지 좀 해줘.”


고릴라 같은 고우찬이 크고 우악스럽게 보이는 손으로 배런 렌프로의 다리를 붙잡았다.


“으악! 날 죽일 셈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고우찬은 능숙하게 배런 렌프로의 근육을 풀어주었다.


“티노!”


한쪽에서 묵묵히 운동하던 티노와 말릭이 동시에 달려왔다.


“네! 보스!”

“내 동생 순호 어디서 뭐하는지 알아봐 줘요. 그리고 말릭은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밴드 합주실이나 라이브 클럽 하나 렌트해 놓으라고 데이빗에게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류지호는 젖은 빨래처럼 늘어진 배런 렌프로를 부축해 샤워실로 향했다.

Vic & Jay 센터를 빠져나온 일행이 머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의 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안쪽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합주실에 도착했다.

이미 류순호가 데니스 정과 도착해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조금 전에 왔어.“

“형이 부탁 하나만 하자.”

“뭔데?”

“저기 저 놈.”


류지호가 티노와 말릭 사이에서 멀뚱히 서있는 배런 렌프로를 가리켰다.


“쟤는 왜?”

“저 놈하고 몇 시간만 놀아줘.”

“.....?”

“저 놈 일렉 기타 치는 거 좋아해.”

“그래서?”

“저 놈 기타 치는 것 좀 봐주고. 즉흥연주도 같이 해주고 하면서 1시간만 놀아줘.”

“난 또 클럽에서 공연이라도 시켜주는 줄 알았네.”

“공연 주선해줘?”

“밴드도 없는데 뭘. 여기 악기 써도 된대?”

“마음대로.”

“와씨... 진짜 재벌 같아. 비서한테 합주실 하나 빌려. 하니까, 몇 시간 만에 통째로 떡 하니 빌리고.”

“재벌 아냐. 적당히 부자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킥킥. 그게 그거지 뭐.”

“암튼 쟤하고 1시간만 기타도 봐주고 연주하면서 놀아.”

“그러지 뭐. LA메탈의 본토 합주실 경험한다고 칠게.”


이 지역은 LA 메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LA메탈(GLAM METAL)씬은 할리우드의 선셋 스트립의 클럽들이 본산이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스래쉬 메탈의 본산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이리어였고.


“배런, 이리 와.”


배런 렌프로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기적 걸어왔다.


“여기는 내 동생이야. 한국에서 밴드 활동을 했지.”


배런 렌프로가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생기를 되찾으며 격한 관심을 보였다.


“밴드?”

“어릴 때부터 기타도 배우고.... 악기도 이것저것 다룰 줄 알아.”

“.....?”

“내 동생하고 여기서 연주 실컷 하면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께는 내가 연락해 놓을 테니까.”

“진짜? 여기서 기타 치면서 놀아도 돼?”

“지난번에 기타 사준 건 어떻게 했어? 혹시 팔아먹은 건 아니겠지?”

“내 보물 1호라구. 팔긴 왜 팔아?”

“암튼 재밌게 놀다가.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그럼 네가 어른이냐?”


휙.


배런 렌프로가 대답도 하지 않고, 얼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짜고짜 거치대에 걸려 있던 일렉트릭 기타를 맸다.


지지잉~


마치 류지호에게 시위라도 하려는 듯 배런 렌프로가 다짜고짜 연주를 시작했다.


“......”


한껏 폼을 잡고 기타를 연주하는 배런 렌프로를 류지호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할리우드에서 마리화나는 기본이고 마약에 빠진 사람들도 정말 많다.

배우치고 마리화나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처음에는 우울감이나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해 손을 댄다.

결국 성공과 실패에 대한 중압감으로 더 센 마약으로 갈아탄다.

핑계다.

그냥 중독이 된 것 뿐이다.

삶을 마약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끝내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된다.

류지호가 배런 렌프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

그저 녀석이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펴주고, 의지하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을 때 상대가 되어 준다거나, 오늘처럼 육체적으로 힘들게 해서 잠시나마 딴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것 정도.

부모도 못하는 일을 남이 해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합주실을 빠져나오며 고우찬이 물었다.


“저 놈도 사람 만들어 보게?”

“오지랖이지 뭐.”

“오지랖 스타일이 굉장히 터프해졌는데?”

“저 놈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고 그래. 옛날의 어떤 놈 생각이 자꾸 나서.”


내심 켕기는 것이 있는 고우찬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영화배우로 잘나간다며?”

“15살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20살 차이 나는 아줌마랑 침대에서 뒹구는 게 정상은 아니잖아.”

“미국 애들은 원래 그러는 거 아니었냐? 자유의 나라. 뭐든 다 할 수 있는.”

“모든 청소년들이 그렇게 개판이면 미국이 진즉에 망했겠지.”

“망하기까지야 할까..... 야, 애들은 그러면서 크는 거야.”

“재정이 같은 녀석이면 그러려니 했을 거야. 근데 배런 저 녀석은 멘탈이 약해.”

“쪼그만 놈이 바락바락 대는 게 한 성깔 하겠던데? 정신력이 약해?”

“어른도 벼락스타가 되면 정신 못 차려. 애들은 오죽 하겠냐?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은 게 아역배우야.”

“저 놈 스타병 걸렸어?”

“소녀팬들이 팬티까지 벗어 준다. 호텔 객실로 속옷차림으로 쳐들어오는 여자애들도 있고.”


그루피(Groupie)는 락 밴드를 쫓아다니는 열성팬을 이르는 말이지만, 현재는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 모든 연예인을 열성적으로 쫓아다니는 여성팬을 이른다.

배런 렌프로, <터미네이터Ⅱ>로 일약 스타가 된 에드워드 위티그 등 꽃미남 아역배우 출신 주변엔 그루피들이 극성이다.

동료 여자연예인이 나이가 적건 많건 파리처럼 꼬여들고 있고.


“무슨 영계백숙이나 몸에 좋은 백사도 아닌데 말이지.”

“이야, 정말 부러운 놈일세.”

“계속 헛소리 할래?”

“부러운 걸 부럽다고 하지 자식아! 내가 너처럼 선비인줄 알아? 지나가는 불알 달린 놈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부럽다고 하나 욕하나.”

“백번 양보해서 그건 그렇다고 쳐. 근데 녀석이 마리화나를 피운다는 거야.”

“대마초?”

“또 백번 양보해서 호기심으로 대마초를 피워봤다고 쳐. 문제는 이놈에 할리우드는 섹스와 마약에 둔감하다는 거야. 마리화나가 나중에 코카인 흡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게 문제지. 우리나라와 달리 여기는 구하기도 쉬워. 레온 부룩하이머라고 들어봤지?”

“<나쁜 녀석들> 만든 사람?”

“레온의 불알친구 중에 돈 심슨이라는 프로듀서가 있었어. 나도 몇 번 식사도 하고, 안면이 있었지. 그 양반은 정말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잘나가는 프로듀서였거든.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스마트 한 사람이기도 했고. 그런 대단한 양반도 몇 년 동안 마약을 하다가 약물중독으로 죽었어.”

“그런 건 좀 미리 말하지!”

“.....?”

“내가 할리우드가 그렇게 아사리판인 걸 알았으면 널 영화판으로 보내지 않았을 거야!”

“뭔 개소리야?”

“지호야, 그냥 한국 가서 영화해라.”

“자꾸 헛발질 할래?”

“그렇잖아. 네가 지금은 잘 나가지만, 혹시나 영화가 잘 안되고 그러면 스트레스 받고, 그러다보면 대마초 피고, 결국 뽕까지. 구하기 쉽다며 이 동네는?”

“에휴! 우찬아, 난 이제 담배 냄새도 역겹게 느껴지거든. 근데 무슨 대마초야.”


용산경찰서에 일부러 찾아가서 소변검사까지 자청한 바 있다.

류지호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마치 결벽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 되겠어.”

“.....?”

“내가 타락하지 못하게 옆에서 철통같이 감시를 해야겠다.”

“누굴? 배런을?”

“아니. 내 친구 류지호를!”

“인간아!”


류지호가 고우찬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휙.


고우찬이 민첩하게 피했다.


“아~ 거 새끼! 함부로 발 놀리면 혼난다.”

“헛소리 그만 하고. 넌 졸업하면 뭐하고 싶어?”

“생각 안 해봤는데?”

“4단은 땄지?”

“응.”

“국제심판 자격증도 딸 거야?”

“아니.”

“자격증은 따놓으면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어. 알지?”

“난 심판 같은 거 못 봐. 아니 안 봐.”

“태권도장 차릴래?”

“별로.”

“그럼 뭘 할 건데?”

“넌 뭘 했으면 좋겠냐?”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그냥 너한테 붙어있으면 안 돼?”

“요즘 아저씨 회사 잘 나가잖아. 거기서 일 배워.”

“난 펜대 굴리는 건 못해.”

“인테리어 회사에서 너한테 사무직 시키시겠냐?”

“걱정 마. 다 계획이 있어.”

“그 계획이 뭐냐고. 도대체!”

“빅제이 체육관에서 운동할까? 이참에 이민 올까봐.”

“고우찬, 일루 와. 좀 맞자.”

“아니면, 문식이형 쫒아 다녀야 하려나? 나래 안전은 어떨 것 같냐?”

“나쁘지 않지. 나래 안전에서 보안업무나 경호업무 배우는 것도 고려해 보자.”

“회장 친구라 날로 먹네, 아주.”

“날로 먹든 데쳐 먹든. 이번에 확실하게 정리해.”

“쓸데없이 진지 빨지 말고, 애들 불러서 술이나 한 잔 하고 들어가자.”


류지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고우찬이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사인방은 베니스 비치의 오션뷰가 일품인 펍에서 해가 지기 번부터 술잔을 기울였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앞날에 대한 희망도 이야기 했다.

펍이 문을 닫자, 웨스트우드 주택으로 돌아와 2차를 했다.

부모님과 여동생들은 라스베이거스로 놀러간 상태라서 류지호의 집은 사인방의 차지가 됐다.


“졸업하기 전에 집도 미리미리 알아 봐야겠어.”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은 혼자 지내기에는 크고, 가족과 지내기에는 좁았다.

매일 함께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호텔에서 지내게 하는 것보다 집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훨씬 좋다.


털썩.


류지호가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졌다.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듯 노곤했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았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고르게 하며 수면에 들어보려 애썼다.

잠은커녕 정신만 더 또렷해졌다.

별안간 류지호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까지 하고 나자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목욕타올만 걸친 채 객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습관이 되어버린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본래 생각을 비워야 했다.

류지호는 떠다니는 잡념에 맡겼다.

친구 고우찬에 대한 생각이 떠다녔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몇 년 만에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고 타박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

고우찬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욱하는 성질머리다.

결코 바보 멍청이는 아니다.

태권도를 배우고, 단전호흡도 꾸준히 하면서 다혈질도 많이 누그러졌다.


“나도 참 어지간하네.”


고우찬은 배런 렌프로처럼 어린애가 아니다.

그럼에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여기고 있다.


“선을 넘은 거지.”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단전호흡도 잊었다.

대신 지금까지 써 놓았던 시나리오들을 떠올렸다.

어느새 창문 밖이 어스름한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벼락인생..... 벼락부자.... 벼락스타....’


거저 얻는 성공이란 없다.

성공은 매일 반복한 작은 노력들의 합이다.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란 탑을 쌓는 것이다.

알찬 하루로 쌓아올린 탑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법.

각자가 쌓아올린 탑의 높이와 크기는 다 다르다.

오늘 하루치 쌓은 탑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류지호로서는 알지 못한다.

그저 오늘 쌓아올린 인생의 탑이 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높아져 있길 바랄 뿐.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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