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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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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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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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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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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우리 잘 해봐요.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도시 칸(Cannes).

이 도시가 지구 어디쯤에 붙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곳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최대 규모의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 도시인지는 몰라도 영화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영화 축제다.

사실 칸은 인구 7만 명밖에 안 되는 프랑스의 작은 휴양도시다.

그런데 칸영화제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최대 항구 도시이자 2대 도시는 부산이다.

외국인들은 부산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부산은 인구 380만 명이 사는 제법 큰 도시다.

그런 부산에서 한국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꿈꾸고 바라왔던 행사가 열렸다.

마침내 부산국제영화제가 닻을 올린 것이다.

9월 13~21일까지 수영만 야외 상영관과 남포동 극장가에서 31개국의 영화 171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7가지 주제로 나누어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다.

그 주축은 아시아 영화들이다.

처음으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이다 보니 서구권의 영화를 유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신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아시아 감독들의 신작·화제작 18편을 엮은 ‘아시아 영화의 창’, 독창적인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작품 13편을 모은 ‘새로운 경향’ 부문 등 순수한 아시아 영화들의 잔치를 벌인다.

그 외에 ‘월드 시네마’, ‘와이드 앵글’, ‘코리안 파노라마’, ‘한국영화 회고전’ 등으로 나뉘어 상영되는데, 이 영화들이 모두 남포동에 밀집한 극장가에서 상영된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국내외 작품 7편은 매일 저녁 7시30분 수영만 요트 경기장의 야외 상영관에서 상영된다.

이번 영화제 중 상금이 걸린 경쟁 부문은 ‘새로운 경향’(1만 달러)과 ‘와이드 앵글’(코리안 앵글, 월드 앵글 각각 1만 달러) 부문이다.

나머지 영화는 2002년까지 비경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류지호는 토론토 국제영화제 일정 때문에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단편영화 특별상영회에 맞춰 부산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의장님.”

“환영합니다!”


김해공항에 황재정을 비롯해 비서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미국에서는 데이빗 브레이텐바크와 제니퍼 허드슨 두 사람만 동행했다.

영화제가 마련해 준 숙소로 향하며 류지호가 황재정에게 물었다.


“내 단편영화는 어떤 부문에서 상영되는 거야?”

“와이드 앵글 부문의 특별 상영 형식인가 봐.”


와이드 앵글 섹션은 걸작 단편·만화·기록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극장은?”

“부산.”

“단편영화를 메인관인 부산극장에서 상영한다고?”

“너는 특.별.하니까.”


영화제 메인 스폰서 기업의 오너이니 특별대우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류지호의 단편영화 한 편 한 편이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고.

해운대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부산의 대표적인 극장가인 남포동 극장에서 주로 영화제 초청 영화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초청작들은 부산극장을 중심으로 부영, 제일, 국도, 아카데미 극장 등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메인 상영관인 부산극장은 1,000석 규모로 부산 최초의 대형극장이다.

1982년 현대식 극장으로 재신축했고, 1993년에 멀티플렉스 시설로 변신했다.

현재는 G.O.M Cinemas에서 위탁 운영 중이다.

참고로 외환위기로 내수가 얼어붙는 시점에 인수협상을 제안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WaW의 멀티플렉스의 정식 브랜드는 지오엠(G.O.M)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곰’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직원들까지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오동석 본부장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극장체인의 한글 브랜드를 지오엠 시네마로 표기하도록 지시했다.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곰’이라고 불렀다.

어쨌든 부산극장은 7개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7mX7.5m 대형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부산극장은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거리의 중심 극장으로 대영극장과 함께 남포동 극장가를 지키고 있다.


“인수협상은 잘 되가?”

“글쎄.....”

“.....?”

“동석이형은 대영과 혜성을 함께 인수해서 대형극장 규모로 만들고 싶은가봐.”

“대영은 폐관했다고 하지 않았어?”

“폐관했지. 아예 대영과 혜성을 인수해 허물어 버리고, 14개관짜리 복합상영관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더라.”


애매했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남포동은 2000년대 부산 상권이 서면이나 해운대로 이동하면서 구도심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유그룹 영화사업부는 남포동의 부영극장과 3년 간 임대 운영하는 계약을 맺었다.

부영극장은 1,730석을 가진 남포동의 핵심 극장이다.

2000년대 초반 남포동 극장가에 손님이 줄고 매출부진이 이어지면서 부산극장에 매각되는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다.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매각될 시기 즈음에 멀티플렉스로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남포동 극장가의 상권이 서면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그런 시도조차 무의미해진다.

결국 부영극장은 상가 건물로 재건축되어 쇼핑몰로 변신하게 된다.

부영극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15개 정도 존재하던 부산의 극장들은 10년 후부터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인해 점차 사라지게 된다.

당연히 부산만의 일은 아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의 공세에 기존 토착 극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해 2010년에는 전체 상영관에서 토착 극장은 5%만 남게 된다.


“남포동이 G.O.M 부산의 거점이 되어선 안 돼. 차라리 서면이나 해운대 쪽으로 강남점 규모의 복합건물을 올릴 수 있는 부지를 미리 알아보라고 해.”

“동석이형도 부산에 내려와 있어. TFT팀장도 함께 왔어. 그 부분은 비서실보다는 의장인 네가 직접 지침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알겠어.”


십 수 년 후에는 남포동의 멀티플렉스가 망할 수도 있다.

대신 그 손해를 상쇄시켜주는 것이 부동산가치의 폭등으로 인한 시세차익이다.

특히 외환위기로 대한민국 전체의 부동산이 폭락한다.

바겐세일 기간이다.

그 기간에 멀티플렉스가 들어갈 전국 주요 도시의 알짜 부지나 건물을 쇼핑해 두면 극장사업이 잘 안 된다고 해도 부동산 시세차익만으로 돈을 벌수도 있다.

지난 1990년에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인 ‘5.8조치’를 시행했다.

이에 48개 대기업은 비업무용 부동산을 의무적으로 매각처분해야 했다.

재벌의 부동산 신규취득과 금융기관의 부동산 담보 취급도 제한됐다.

그런데 1995년 부동산실명제 시행을 앞두고 재벌 법인뿐 아니라 임원 등 개인 소유 부동산 현황을 공개하면서 드러난 바로는 ‘5.8조치’ 시행 4년 후에는 재벌의 토지 자산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들이 부동산에 큰돈을 묻어두고 있는 한 이 나라에서 부동산이 망할 리가 없다.


‘어차피 비업무용도 아니고 업무용 부동산들이니까.’


류지호의 머리에 번개처럼 뭔가 중요한 내용이 번쩍거렸다.


“재정아.”

“응?”

“부산공항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냐?”

“부산공항?”

“지금은 수영비행장이라고 하던가? 암튼 거기 정보단지 개발되고 있지 않냐?”

“잠시만....”


황재정이 얼른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서실 직원에게 류지호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류지호가 호텔에 도착해 객실에 여장을 풀고 나자, 처음 보는 얼굴의 비서가 황재정과 함께 왔다.


“안녕하십니까. 비서실 오영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영환은 사무 비서다.

업무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잡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오영환이 수영비행장 부지에 관해 긴급하게 알아본 내용을 보고했다.


“정리하자면, 올해 4월에 부산시와 육군본부 사이에 계약이 체결됐다?”

“넵. 국유재산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부산시에 부지를 넘기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뭘 어떻게 하고 있죠?”

“부산시에서 건설교통부에 도시기본계획변경 승인을 신청한 상태라고 합니다. 늦어도 올 연말에는 승인을 받아 기본계획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부산공항부지 개발 즉 센텀시티 개발 사업에 끼어들 생각이라면 전사적으로 나서야 할 프로젝트다.

당장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알겠어요. 수고했어요.”

“쉬십시오.”


류지호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황재정까지 객실에서 나갔다.

샤워를 마친 류지호가 맥주를 한 캔 따서 마셨다.

한 캔으로 술기운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취침으로 장거리 비행의 여독을 풀었다.


✻ ✻ ✻


다음날 이른 점심을 먹은 류지호가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류지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특별전을 관객들과 함께 관람했다.

특별전 타이틀이 너무 거창했다.

단편영화 ‘새로운 시선‘ 마스터클래스.

무려 마스터 클래스란다.

우리말로 ‘명인강좌‘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제 막 장편영화에 데뷔한 애송이 감독 류지호에게 과분한 명칭이다.

하도 낯이 뜨거워서 프로그래머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내 영화들이 상영되기 전에 <Les Mistons>부터 상영해 주세요.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특별전은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준비위원들은 영화 선수들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류지호가 무엇을 말하는 지 알아듣지 못했다.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첫 단편영화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개구쟁이들‘정도 될 겁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400번의 구타>의 전조같은 영화지요.”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서는 프랑스문화원의 협조를 받아 본국에서 23분짜리 트뤼포의 공식적인 첫 단편영화(실제로 두 번째) <Les Mistons>를 구해왔다.

그리고 류지호의 단편영화들 <영정사진>, <Help Me, Please>, <Life Goes On>, <내 삶의 물고기>, <The Tailor>가 상영되었다.

역시 <Help Me, Please>의 반응이 가장 좋았다.

한국의 영화비평가들은 충무로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며 류지호를 비난해 왔다.

80년대 말 그것도 십대 나이에 당시 충무로 상업영화를 능가하는 완성도의 단편영화를 보게 되자 입을 다물었다.

문제작 정도로만 알고 있던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수상작 <Life Goes On>의 현란하면서도 정돈된 테크닉에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


- 감독님, 혹시 <Help Me, Please>를 장편영화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까?


류지호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단박에 대답을 내놓았다.


“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남아있던 관객들의 입에서 아쉬움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 장편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단편은 단편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때 미숙함을 반성하며 좀 더 완성도 있는 영화를 찍을 수 있을 테니까요.”

- 미국에서 장편영화를 찍었다는데, 왜 이번 영화제에는 보내지 않았나요?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날짜가 겹쳐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래도 부산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다음 영화제부터는 <The Killing Road>보다 좀 더 발전하고 성숙해진 영화를 가지고 부산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초청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면요.”

- 내년 영화제에서는 감독님 장편영화를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시점에서 약속드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UCLA 졸업반이라서 졸업 작품을 찍어야 하거든요.”

- <The Killing Road>는 한국에서 언제 개봉하나요?

“글쎄요. 그 부분은 수입배급사인 WaW가 알지 않을까요?”


‘못할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은 삼켰다.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는 것과 별개로 몇 장면에서 가위질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위질 당할 바에는 아예 개봉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쨌든 류지호는 개인적인 신변잡기에서부터 영화관, 단편영화 작업 경험담까지 관객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

영화제 측에서는 특강을 기대했다.

류지호는 일방통행식 강의가 아니라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때론 토론을 했다.

영화제 운영요원이 다음 상영을 알려오지 않았다면,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될 뻔했다.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사무국에 들러서 인사하고.”


부산극장을 나선 류지호와 수행원들이 영화제 사무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영화제를 처음부터 준비한 프로그래머 3인방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BIFF 광장을 지나다보니까, 첸가이거와 장이모 감독이 보이던데요?”

“일단은 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짰으니까요. 두 분을 어렵게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 아시아에서 20여 명의 감독이 부산을 찾아주셨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죠.”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의 국제비평가상 수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젊고 전도유망한 감독이 해외에서 인정받으니. 영화인으로써 참 뿌듯합니다.”


류지호는 괜히 칭찬이 길어질 것 같아,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말도 마십시오. 몸무게가 벌써 6Kg이나 빠졌습니다. 영화제가 끝나면 한 10Kg은 빠질 것 같습니다.”


결코 엄살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들은 국제영화제를 연 적이 없었다.

당연히 경험이 부족했다.


“작품을 초청하던 중 쫓겨나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다보니 무엇 하나 술술 풀린 게 없었어요.”

“용케 <Les Mistons>를 구해 왔네요.”

“솔직히 그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메인 스폰서이자 부산국제영화제 태동에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 류지호다.

류지호의 단편영화특별전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부여한 미션을 완수하는가가 영화제 준비위원 3인방의 최대 고민이었다.

프랑스문화원을 시작으로 단편영화 <Les Mistons>를 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유럽에서 온 영화관계자들이 경제 수준과 시민의식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 국제영화제는 10년 전에 태동했어야 했다고 말하더군요. 권위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국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인데 속으로 냉가슴을 앓았죠.”


이 당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10위권의 영화 시장의 국가였다.

해외 영화관계자들 입장에서는 어지간한 신흥국도 다 있는 국제영화제가 맏형 격인 한국에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일 겁니다. 영화제가 성공하면 정·관계의 개입이 심해질 겁니다. 괜히 그쪽에 휩쓸리면 영화제 취지가 훼손될 거라서 걱정이 되긴 합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인데, 성공이라니요. 그리고 정치인들이 영화제에 빨대 꽂아봐야 주워 먹을 것도 없습니다.”


빨대를 꽂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영화제를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정치 진영이 어딘가와 상관없이.


“올해 200편 가까이 영화를 초청했잖아요. 점점 늘어날 겁니다. 나는 여러분의 노력과 헌신을 믿어요. 여러분이 애쓴 만큼 보람과 결실을 맺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는 재정 문제와 함께 검열·규제 때문에 국제영화제를 여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많아요. 우리의 경우 김성호 위원장이 아니었으면 아마 성공적으로 열지도 못했을 겁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은 덕분이죠. 고생스럽겠지만 자리 잡을 때까지 고생해주세요. 그때까지 WaW가 물심양면으로 도울 겁니다.”


실제 부산국제영화제는 5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이후로 안정권에 접어들게 된다.

예산, 참가국 수, 상영작 편수, 관객수, 산업적 중요성 등을 놓고 볼 때 전 세계 영화제 가운데 10위 권 안에 들게 된다.

그것도 단기간에.

그때부터 집행위원장의 위상도 올라가기 시작한다.

유럽영화아카데미에서 매년 10군데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초청해 행사를 갖는다.

5회가 넘어가는 시점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초청을 받기 시작한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초청받는다.

영화제 관련 세계에서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강국 일본과 홍콩 및 대만의 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초청 받지 못하는 행사에.

게다가 영화제 빅3라 불리는 칸·베를린·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식이나 리셉션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빅5에 해당되는 로열석을 배정받게 된다.

20여년 후, 부산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 순위에서 5~6위권 위상으로 성장하게 된다.


“내년 대선에서 고생 좀 할 겁니다.”

“대선이요?”

“대선후보들이 너도나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얼굴을 내밀 테니까.”

“설마요? 이제 겨우 간신히 1회를 열었을 뿐인데....”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이들이 정치인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국제영화제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이 해낸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직 자각을 못하는가 보네요. 암튼 영화제의 순수성을 지켜내려면 정치인, 고위공무원, 지역유지와 너무 가까우면 좋지 않아요. 개인적인 바람은 영화제에 정치인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해외 국제영화제들의 경우 정치인·공무원들이 숟가락을 얹는 일이 없다.

만약 정치인이 영화제를 이용하려거나 그곳에서 어떤 정치적인 일을 벌인다면, 당장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표를 얻는 것이 아니라 표를 깎아먹는다.

따라서 선진국의 국제영화제들은 비교적 국가나 정관계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철저하게 민간이 주도한다.

관공서는 지원만하는 체계다.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당장 부산시만 해도 각종 지원을 명목으로 영화제에 간섭하려고 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한다.

시민의 세금이 들어간 행사이니 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공무원이 행사의 주체가 되려는 욕심을 품는 것이 문제다.

영화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어야 정치인 출신 선출직 공무원의 치적으로 포장할 수가 있다.

선거운동으로 신나게 써먹을 수도 있고.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부산시의 돈이 들어가면서 시작된 불행이다.

한국에서는 민간사업에 세금을 받게 되면 돈을 먹고 입을 싹 닦거나.

그로 인해 발목이 잡혀서 반드시 난처한 상황에 처하거나.

둘 중 하나다.

류지호는 철저하게 민간이 주체가 되는 행사를 유지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영화인과 시민이 주최하는 영화제.

공무원은 행사를 도와주는 지원자 그리고 감시역할.

정치인들은 멀리 떨어져서 축하와 응원을 보는 정도.


‘그게 쉬울 리가 없지.’


외부에서 부당한 압력과 간섭을 해온다면, 류지호가 모든 자금을 책임질 각오도 했다.

메인 극장이 필요하면 G.O.M 체인점을 최소 다섯 개까지 만들어 영화제 기간 스크린을 내줄 생각까지 하고 있다.

절대 손해가 아니다.

열흘 남짓 극장을 열어주는 것만으로 전 세계에 G.O.M 브랜드를 홍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영화제 관련 기사에 상영관도 반드시 언급되니까.


“영화의 전당을 만들면 공공재로 옭아 매 부산시에서 빼앗아 가겠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부산시가 달콤한 말로 이것 해주겠다 저것 해주겠다 말하면 신중하기 바랍니다. 꿀인 줄 알고 받아먹었다가 독약인 줄 알게 되어 후회하게 될 테니까.”

“......?”

“고생하세요.”


류지호가 떠난 영화제 사무국에 뜬금없이 피자와 치킨이 배달되었다.

주문한 사람은 류지호로 되어 있었다.

류지호의 지시로 비서들이 보낸 야식이다.

사람들은 결과만 기억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겉으로는 승승장구한다.

사실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과정을 겪었다.

영화제를 출범시킨 6인방은 1994년 세미나를 갖고 준비 작업에 들어가 95년 8월 집행부를 구성, 96년 2월 창립총회를 가진 데 이어 9월13일에야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게 되었다.

물론 2년 만에 뚝딱 만들어진 영화제가 아니다.

무려 10여 년 간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 산파 역할을 했던 세 명의 프로그래머와 문체부 고위 관료출신 김성호 집행위원장, 박광우 부집행위원장, 오근석 사무국장은 각종 영화에 다녀본 경험이 풍부했다.

직접 운영해 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메인 스폰서는 류지호가 되었지만, 부산시는 비협조적이었다.

여섯 명의 영화제 주역들은 백방으로 공무원들을 쫒아 다니고, 때로는 WaW 픽처스의 오동석 본부장의 해외 인맥을 빌린 끝에 어렵게 닻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이보다 훨씬 힘겨웠다.

이전 삶에서는 6월에 조직위 현판식을 할 때 사무실에 달랑 책상 3개를 들여놓은 쪽방이었다.

팩스도 개인 물건을 갖다 썼었다.

김양호 프로그래머는 여동생과 둘이 초청업무를 병행했고, 이관용 교수가 배차업무를 맡는 등 실무자들이 홀로 서너 가지 업무를 처리했었다.

오죽하면 10년간 영화제를 진행한 것보다 1회 때가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을까.

류지호가 개입하게 됨으로써 원래 역사보다는 고생이 덜했다.

덜했다는 것이지 수월했다는 것은 아니다.

암튼.

내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더 큰 어려움과 싸워야 한다.

바로 외환위기라는 높은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재정적인 도움은 류지호가 상당부분 책임질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류지호가 책임질 수는 없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명색이 국제영화제다.

개인의 사비를 들여서 개최해서는 권위를 인정받기 힘들다.

WaW 픽처스가 혹여 경쟁부문에 영화를 출품하게 되면 특혜시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심의·규제 문제도 난제네.’


국제영화제의 생명은 세계 각국 영화를 무삭제로 보여주는 데 있다.

관련 법규를 영화제 상영에 한 해 면제받는 것도 문제다.

필름 통관에 따른 절차와 관세도 신생 영화제의 목을 죄고 있다.

이래저래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알아서들 하겠지.....’


지지고 볶든 말든.

사실 류지호가 일일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부산이 망가지면 전주를 밀어주면 된다.

전주가 망가지면 부천을 밀어줘도 된다.


‘부천까지 망가지면 영화제를 열망하는 새로운 지역을 밀어줘도 되고.’


안정적인 스폰서가 있는 국제영화제를 유치할 도시는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작가의말

한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불금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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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영화 기술사의 한 획! (3) +5 22.10.14 4,510 139 24쪽
303 영화 기술사의 한 획! (2) +11 22.10.13 4,532 156 24쪽
302 영화 기술사의 한 획! (1) +7 22.10.12 4,765 148 25쪽
301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2) +11 22.10.11 4,624 151 23쪽
300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1) +9 22.10.10 4,605 144 26쪽
299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12 22.10.08 4,691 156 24쪽
298 JHO CONVENTION. (5) +8 22.10.07 4,728 143 31쪽
297 JHO CONVENTION. (4) +9 22.10.06 4,911 161 25쪽
296 JHO CONVENTION. (3) +7 22.10.05 4,756 151 24쪽
295 JHO CONVENTION. (2) +8 22.10.04 4,657 150 23쪽
294 JHO CONVENTION. (1) +6 22.10.03 4,892 161 23쪽
293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3) +6 22.10.01 4,778 159 22쪽
292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11 22.09.30 4,790 146 21쪽
291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 +12 22.09.29 4,760 164 21쪽
290 우리 잘 해봐요. (5) +6 22.09.28 4,845 157 26쪽
289 우리 잘 해봐요. (4) +7 22.09.27 4,752 153 25쪽
288 우리 잘 해봐요. (3) +8 22.09.26 4,776 154 23쪽
287 우리 잘 해봐요. (2) +3 22.09.24 4,830 157 21쪽
» 우리 잘 해봐요. (1) +8 22.09.23 4,976 147 23쪽
285 박스오피스는 내가 더 높거든! +11 22.09.22 4,903 173 28쪽
284 토론토 국제영화제. (6) +6 22.09.21 4,836 164 24쪽
283 토론토 국제영화제. (5) +13 22.09.20 4,725 163 27쪽
282 토론토 국제영화제. (4) +13 22.09.20 4,425 140 26쪽
281 토론토 국제영화제. (3) +7 22.09.20 4,472 122 25쪽
280 토론토 국제영화제. (2) +7 22.09.19 4,711 157 26쪽
279 토론토 국제영화제. (1) +4 22.09.17 4,923 162 28쪽
278 쯧.... 역시 생각이 많은 녀석! +6 22.09.16 4,808 153 26쪽
277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3) +5 22.09.15 4,788 162 26쪽
276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2 22.09.15 4,508 140 23쪽
275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7 22.09.14 4,730 15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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