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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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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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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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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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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우리 잘 해봐요.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내가 뭘 몰라?”

“나중에 외신이나 해외 쪽 관계자들 이야기 모니터해봐.”

“......?”

“남포동에서 영화인들과 시민들이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저 모습은 금방 사라지겠지만, 저렇게 늦은 시간까지 소박하게 왁자지껄한 모습이 부산국제영화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서 진짜 시민과 어울리는 축제처럼 보이게 해 줄 거니까.”


극장과 스타들을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는 젊은이들의 거대한 인파.

해가 지면 거리 곳곳에서 벌이는 술판.

1989년에 만들어진 남포동 영화관 골목(포장마차 골목)에서 한국과 해외 영화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해외에서 온 게스트들에게 회와 소주를 대접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풍경.

그것들이 부산국제영화제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게 해준다.

또 그런 풍경들이 카메라에 담겨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전 세계 영화관계자들은 신생아 같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그 같은 열기에 깜짝 놀라게 된다.

해운대의 큼직하고 번듯한 분위기의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다만 남포동 특유의 복작복작한 분위기 역시 그것대로 낭만적이란 사실.


“나도 간이무대에 올라가 관객에게 인사하는데 가슴이 엄청 뛰더라. 하물며 해외에서 방문한 감독과 배우들은 어떻겠냐? 그 사람들 표정만 봐도 얼마나 감동을 먹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 국제행사를 하게 되면 열렬한 환영과 애정을 드러내니까.”

“네가 후진국 수준의 시민의식이라 얘기했던 저런 길거리 음주 역시 외국 손님들에게 꽤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일거야.”


서구권에서는 노상에서의 음주가 불법이다.

게다가 밤을 새워가며 거리에서 논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봐봐. 저기 부산 시민이 아무 거리낌 없이 외국에서 온 영화제 관계자들과 손짓발짓하면서 막걸리를 나눠 마시잖아.”


거리 곳곳에서 벌어지는 술판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영화인과 일반인, 젊은이와 중년, 부산시민과 외지인 구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몸짓과 손짓으로 의사를 소통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건배!”

“원샷!”


사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길거리 파티 문화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기획했다.

일부 영화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으면서 시민과 함께 하는 축제를 고민하다가 튀어나온 아이디어였다.

마치 조상들이 바닥에 멍석 깔아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춤추고 노래했던 것처럼.

해운대 시대로 넘어가면서 사라지는 ‘길거리 노상 파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영화인들과 부산시민의 기억 속에 남게 되는 추억 중에 하나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앞 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와 더 낯선 도시 부산을 찾은 해외 손님들이 ‘길거리 파티‘를 경험하며 기억에 남게 될 추억은 부산시민의 추억보다 훨씬 강렬하다.

처음으로 열린 국제영화제라서 해외에서 손님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오진 않았다.

부산영화제의 대단한 환대에 반한 그 많지 않은 게스트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여기저기에 소문을 퍼뜨리게 된다.

오죽하면 부산영화제가 초반부터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술과 이야기와 운치가 있는 한국식 길거리 파티 덕분이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말이 유럽 쪽 영화제 관계자들 사이에서 파다했을까.


“외국에 오래 나가있더니 애국자라도 됐냐? 내 눈에는 그냥 개판인데?”

“누가 황재정 아니랄까봐. 좀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되겠냐?”

“사돈 남 말 하시네! 긍정적인 놈이 <The Killing Road> 같은 영화 찍었냐? 그러다 다음 영화는 <크래쉬> 같은 영화 찍는 거 아냐?”

“못 할 건 없지.”


황재정이 대번에 성질을 냈다.


“뭐? 이 청개구리 같은 놈!”


크로넨버그의 <크래쉬>를 예로 든 것이 아니다.

이전 삶에서 2004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던 <크래쉬>를 언급한 것이다.

인종전시장이라고 불리는 LA를 배경으로 인종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는 영화다.

한국인 부부를 노예상인으로 묘사해 한국인에게는 불쾌감을 주는 영화였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인데?”

“아카데미는 개뿔. 상업영화 좀 해.”

“아카데미 수상작도 상업영화야.”

“아카데미가 밥 먹여 주냐?”

“밥도 먹여주고, 명예도 주고, 흥행도 성공시켜 주지.”


황재정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The Killing Road>는 <크래쉬>에 비하면 전체관람가 수준인데, 어떻게 되려나.”

“편집 다시 하면 안 돼?”

“심의 때문에? 기분이 매우, 많이, 굉장히... 안 좋을 것 같아.”

“극장에 걸어야 의미가 있지. 영화는 관객에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아시아는 심의·검열이 좀 오락가락 하니까, 일단 유럽부터 개봉해보고.”

“동시개봉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49개 극장 제한상영부터 시작할 거야. 영화 등급 때문에.”

“돈 벌긴 글렀다.”

“<스크림>도 300개도 안 되는 스크린에서 시작해서 거의 2,000개가지 스크린이 늘었어.”

“그런 쌈마이 영화가?”

“영화가 그래.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누구도 터질지 망할지 모르지.”

“미국도 일단 극장에 걸었다 내리면 부가시장 가격이 달라지지?”

“응.”

“일주일이라도 극장에 걸어야겠다. 부가시장에 풀리면 300만 달러는 회수하겠지.”

“돈이야 벌면 되고, 나는 할리우드 데뷔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비평가가 준 상이 돈 벌어 주냐?”

“비평가가 엉터리 영화에 상을 주겠냐?”

“고언형제나 태런티노랑 친하다고 하더니 이상한 물만 들어서는....”


하하하.

류지호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 못 믿어?”

“믿게 생겼냐?”

“작품성도 있으면서 돈 버는 영화 찍을 게. 엉아만 믿어라.”

“너는 WaW의 얼굴이야. 앞으로 폼 나는 영화 좀 찍어. 칙칙한 영화는 정말 어쩌다 한 번씩 찍고.”

“싫은데?”

“이, 이 뺀질이 자식!”

“누가 뺀질이야, 이 잔소리쟁이야!”


청바지에 후드 점퍼, 모자를 푹 눌러쓴 류지호가 황재정과 투덕거리며 남포동 거리를 활보했다.

딴에는 변장을 한다고 안경도 썼다.

동행하고 있는 경호원들도 평상복을 입었다.

겉모습만 보면 영화제를 보러온 평범한 청년들 같았다.

참고로 크로넨버그의 <크래쉬>는 영화제 측에서는 가장 큰 문제가 된 장면 10분을 들어냈다.

일부 장면은 뿌옇게 처리해서 상영했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영화를 수입한 대유영화사업단에서도 영화제 측에 많은 로비를 했다.

그들로서는 무조건 영화를 상영해야 했으니까.

어쨌든 향후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 검열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3회까지 사전심의 문제로 공연윤리위원회와 끈질기게 갈등을 빚게 된다.

4회 이후부터는 국제영화제 상영에서 검열이라는 가위질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마침내 여론을 등에 업은 부산영화제 조직위가 판정승을 거둔다.


❉ ❉ ❉


호텔로 향하던 김자영은 출출함을 느꼈다.

가볍게 요기나 할까 해서 남포동 극장가를 거닐었다.

골목 곳곳마다 인파들로 들어찼다.

원래 남포동이 밤에도 사람이 많은 것인지 영화제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다.

처음으로 부산에 와 본 것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영화제 측에서 부산시에 협조를 얻어 심야가 되면 차량 통행을 막았다고 들었다.

길바닥에 돗자리와 신문지를 깔고 앉아 막걸리를 파티를 벌이는 사람이 많았다.


‘대학 때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네.’


물론 김자영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신 경험은 없다.


“김 실장! 김자영 실장님!”


영화제 관계자이거나 영화인으로 보이는 무리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 시간에 이런 난장판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지호?”

“여기로 와서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세요!”


워낙 생경한 분위기라 마음은 망설였다.

분명히 그랬는데, 김자영의 몸은 이미 돗자리 위에 앉아 있었다.

돗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는 30대 초반에서 후반의 남자들에게 류지호가 김자영을 소개했다.


“여기 미녀는 대유그룹의 멀티미디어 사업단의 김자영 실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김 실장, 내 옆에 분은 박진택 감독님. 뉴욕대 졸업작품 <영창이야기>로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했어. 그 옆에 분은 <닥터 봉>을 연출하신 이경운 감독님....”


류지호가 둘러앉아 있는 감독들을 한명한명 소개했다.

이미 데뷔한 감독도 있고, 데뷔 준비를 하고 있는 감독도 있다.

미국 쪽 유학파들은 주로 동부지역 대학에 치중되어 있다.

그 외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헝가리 국립영화학교, 폴란드 우쯔국립영화학교 출신 등.

모두가 유학파 영화감독들이다.

특히 예술영화를 주로 수입·배급·상영하는 백두대간의 이강모는 류지호와 UCLA 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을 졸업한 것이지만.

어쨌든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감독들 절반 정도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류지호와 인연이 있었다.

연출부 크레디트는 올리지 못했지만, 엎어진 영화에서는 최소 일 년 동안 동거 동락한 감독도 있었다.

어차피 영화를 하다보면 다시 만날 사람들.


‘이 양반들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입봉을 한단 말이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200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 인연을 맺었다.

류지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따라서 과거의 인연들과 재회하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하하하.

낄낄낄.


감독들이 만나면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진지한 대화만 오갈 것 같다.

아니다.

샐러리맨들과 똑같다.

직업세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주된 화제다.

특히 술자리에서는.


“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것은 별다른 특기사항이 아니더라.”

“한국의 영화 교육체계가 부족해 보여서 프랑스에서 공부했더니, 충무로에서 다시 배워야할 판이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난 진짜 매 학년 열심히 단편영화에 참여하고, 내 영화도 찍었거든. 실습위주 교육으로 실무를 충분히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막상 감독으로 충무로에서 한 편 찍어보니까, 이상과 현실은 달라. 의지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고.”

“암, 한국적 상황을 무시하고는 아무것도 안 돼.”

“충무로에서 영화 찍는 게 그 자체가 새로운 영화공부의 시작이야.”


유학파 신인감독들이 겪고 있는 충무로 적응의 애로사항들이 쏟아졌다.

맏형 격인 이강모가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석사 마치고 돌아올 때 지도교수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그러더라. 여기서 배운 것은 다 잊고 새로 배우기 시작하라고. 지호 너도 알지? 맥도웰.”

“신입생 시절 맥도웰이 지도교수였어요.”

“깐깐한 양반이지.”


별로 깐깐하지 않았다.

물론 류지호에게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매우 엄격한 교수가 맥도웰이다.


“교수의 말이 뭐였겠나. 선진적인 학교에서 얻은 실무적인 기술보다, 내 조국 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의 삶을 조망하는 경험과 세계관을 넓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란 말이겠지.”


두어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고, 또 다른 이들은 심드렁했다.

이 당시 유학파 감독들에 대한 충무로 기획 피디들의 기대감이 매우 컸다.

그들의 단편영화에서 예감되었던 날카로운 영화적 분석력과 톡톡 튀는 참신성을 높이 샀다.

때문에 유학파 출신 신인감독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막대한 제작비가 투자되고 있었다.

상당히 기대를 모았던 몇 편의 영화가 망하면서 적잖이 실망하게 된다.

작품의 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고전영화에서 빛나는 장면들을 멋지게 차용하면 뭐할까.

영화에 대한 지식이 많더라도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편작업하고 차원이 다르기도 하고.

유학파 신인감독 중 상당수가 충무로 제작 시스템에 대한 실무 경험 부족으로 현장 장악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공통된 한계를 보여주게 된다.

게다가 이상주의적인 실험성을 추구한 나머지 관객은 물론 스태프들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작진행도 종종 볼 수가 있게 된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후 재기를 노릴 때 류지호가 이들 감독 몇 명과 조감독으로 만났었다.

때문에 결코 낯선 이들이 아니었다.


‘결국 유학파 감독들에 대한 거품도 서서히 걷히게 되지.’


박진택 감독과 한두 명은 충무로에 잘 적응한다.

작품이로든 상업적으로든.

나름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내게 된다.

문득 과거로 돌아오기 전 어느 시점이 떠올랐다.


‘진택이형이 입봉 시켜줄 테니까 몇 작품 더 하자고 했을 때, 계속 이 형님한테 붙어있었으면 이른 시간에 입봉할 수 있었을까?’


이전 삶에서 류지호가 조감독으로 잘 나갈 때였다.

좀 더 큰 회사에서 조감독을 하겠다며 박진택의 영화사를 뛰쳐나갔다.

사실 박진택의 영화사가 조금 어려울 시기이기도 했다. 박진택은 류지호를 볼 때 마다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가라고 말하기도 했고.

어쩌면 의리를 저버린 행위일 수도 있었다.

나가서 잘 풀렸다면 서로 오래 보고 살았을 텐데.

박진택의 영화사를 나간 후로 류지호의 감독 데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감독 데뷔를 하긴 했다.

데뷔작 이후로 급격하게 영화계 변두리로 밀려났지만.

반면에 박진택은 부침을 겪었지만 메이저에서 끈질기게 영화 작업을 이어갔다.

그를 거쳐 간 조감독들도 모두 순탄하게 입봉했었고.

박진택을 빼고 롱 런 한 감독들은 없었지만.


“류 감독, 무슨 생각해?”


박진택이 류지호의 상념을 깨웠다.


“예전 생각이요.”

“말 편하게 하라니까. 우리는 한 번 마음 맞으면 의리로 가는 거야. 뭘 샌님처럼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고 그래. 운동부 출신이라며?”


박진택 특유의 부산사투리 어조가 술김에 섞여 나왔다.


“장편영화는 재석이형, 창수형이랑 찍어요?”

“연말에 한국 들어오기로 했어.”

“아무래도 뉴욕에서 손발을 꾸준히 맞춘 그 형들하고 작업하는 게 편하겠죠.”


박진택은 뉴욕에서 함께 단편영화와 광고를 작업했던 교포친구들을 한국으로 불러 작업할 예정이다.

박진택의 충무로 데뷔작은 제이콤에서 진행하는 저예산 프로젝트 가운데 한 편이다.

제이콤은 백설그룹 산하 미디어사업부 자회사다.


“......”


막걸리가 몇 순배가 돌아가자 김자영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주당들에게 둘러싸여 막걸리를 대작하는 모습이 제법이다.

류지호가 김자영의 빈 컵에 막걸리를 따라주는데 박진택이 물었다.


“류 감독하고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라고요?”

“같이 롤라장에서 놀던 사이에요. 호호.”

“롤라장?”


류지호가 대답했다.


“인천에서 유명한 롤라장이 있었어요. 라이프라고. 김 실장이 거기 죽순이였죠.”


김자영이 류지호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런 지는?”

“난 조금 다니다가 안 갔어.”

“웃기시네.”

“우찬이한테 물어봐.”


이후로 대화는 각개전투였다.

서로 옆에 앉은 사람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나 짝사랑했었지?”

“응.”


물어 본 김자영이 순간 할 말을 잊을 만큼 즉각적이었다.

류지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김자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어?”

“네 순진한 얼굴에 다 티가 났어.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그랬을라나.....? 누나는 그때 퀸카였잖아. 대쉬하는 형들도 많았고.”

“하도 디스코 타임에 같이 춤추자고 해서, 막 재밌어지려고 할 때 발길을 끊어버렸지.”

“똥파리들이 꼬여서 롤라장에 안 온 거야?”

“복합적이야. 부평 공장에 다니던 아빠가 본사로 발령을 받기도 했고.”

“누나가 한 순간에 사라지니까, 별의 별 소문이 다 나더라.”

“서울로 이사 온 후로는 인천에 내려가지 않아서 난 몰라.”

“그랬구나.”

“여자 친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없구나?”

“그래 없다. 됐어?”

“호호호.”

“누난?”

“집안에서 만나라고 해서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나쁘지 않아.”

“결혼상대로?”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난 결혼도 내 마음대로 못할 거....”

“그만. 거기까지!”

“응.”

“내 판타지를 깨지 말아줘.”

“무슨 판타지?”

“누나가 아줌마 돼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아. 으아~ 확 깨네. 꽉 끼는 청바지 입고 엉덩이를 씰룩씰룩 하면서 뒤로 롤라 타던 누나가.... 애 엄마가 돼서...”


김자영이 쌜쭉한 표정으로 류지호를 째려봤다.


“크크크.”


류지호와 김자영은 잠시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계속 영화 쪽에서 일하려고?”

“호텔이나 케이블TV 쪽으로 옮기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적성이 안 맞아?”

“재밌어. 영화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순수하고. 하지만 뭔가 성취감 같은 걸 못 느끼겠다고 할까?”


류지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가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영화판이 밖에서 보는 것과 많이 다르다.

막상 안으로 들어와 부딪치다보면 답답하고 한심하고 합리적이지 않는 문화가 많다.

꿈과 환상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떠나는 사람이 들어오는 사람보다 많은 것이 영화판이다.

일반 스태프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해 못 버티고 떠나지만.


“이직할 거라면 대유의 엔터분야 말고, 다른 쪽으로 생각해 봐.”

“다른 분야?”

“백화점도 있고, 호텔도 있잖아. 누나가 제2 외국어가 좀 되니까 무역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음.”

“힐튼이 대유 거지?”

“대유개발이 운영하고 있어.”


이 당시 대유그룹은 국내 오성급 호텔 둘, 하노이대유호텔를 비롯해 해외 호텔 여럿을 소유하거나 위탁 경영하고 있었다.


“누나가 호텔 사장 돼서 내가 해외출장 다닐 때 싸게 객실 좀 줘봐.”

“돈도 많으면서 디씨하고 싶냐?”

“연줄, 인맥 몰라? 사회생활은 다 그렇게 끼리끼리 해 먹는 거야.”

“우아! 그 순진하고 착했던 지호는 어디 갔지?”

“안 순진했어. 착하긴 했지만.”

“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혈한이 되어버리다니.... 우리 지호 돌려 놔.”

“누가 냉혈한이야!”

“충무로에 소문 다 났어.”

“누난 그걸 믿냐?”

“안 믿어.”

“근데 왜 그런 말을 해.”

“놀려 먹으려고.”

“그게 잘도 놀려먹는 거겠다.”

“칫. 이제 머리 컸다고 하나도 안 지려고 하네.”

“암튼, 대유 안에서 옮기든 완전 다른 회사로 가든. 빨리 움직여.”

“근데 WaW로 스카우트 하겠다는 말은 안 하네?”

“누나보다 유능한 사람이 널리고 널렸는데, 재벌집 딸래미를 왜 스카우트 하냐?”

“것 봐. 냉혈한!”

“겉보기는 뭘 겉 봐. 안을 봐 안을. 사람은 내면이 중요한 거야.”

“혹시... 미국식 유머?”


아재개그다.

류지호는 김자영과의 대화를 마치고, 막걸 리가 담긴 종이컵을 들었다.


“선배님들, 한 잔 찌그리죠!”

“류 감독, 내가 부산 출신인 건 알지?”

“그럼요.”

“단골 횟집 있는데, 거기로 2차 갈까?”

“곧 12시인데요?”

“샷따 내리고 마시면 되지.”

“그러죠. 제가 쏘겠습니다.”

“당연히 류 감독이 계산해야지. 제작자 아닌가.”

“제가 막내인데요?”

“막내는 무슨! 류 감독이 이 자리에서는 대장이야!”

“술값 내는 대장!”


하하하.

호호호.

웃음을 터트린 일행은 남은 막걸리를 비웠다.


“류 감독! 어디가?”

“어디겠어요? 오세요. 오랜만에 술 한 잔 해요.”


박진택의 단골횟집으로 향하는 길에 일행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WaW 픽처스 제휴영화사 제작자가,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배창훈, 이명수 감독이,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영화배우 아무개가 또 김영복 기사가, 조명기사가, 동시녹음 기사가.

그런 식으로 일행의 규모가 점점 커졌다.

비록 여배우는 없었지만(?)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감독, 제작자, 프로듀서, 배우, 배급업자, 극장 관계자, 현장 스태프, 영화제 사무국 직원 등 다양한 사람과 마주쳤다.

박진택의 단골 횟집에 영화인들로 득실거렸다.

모두가 어제도 어울렸고 내일도 어울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왁자지껄 다들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다.

소소한 촬영 에피소드에도 배꼽을 잡고 웃어재끼기도 하고,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싶으니까 부산 출신의 연극배우가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아 마이크 대용으로 사용하곤 멋지게 판소리 한 자락을 선보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서 술을 마신 이들은 아침 해가 바다 위로 떠오르는 것을 함께 봤다.


‘다시는 충무로의 이런 파티에 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충무로 제작환경은 개판이었지만, 작은 즐거움에도 행복해 하던 이들.

90년대 한국영화계는 충무로라는 이름의 화목한 공동체다.

또 영화인들의 즐거운 놀이터다.

불합리한 일이 밥 먹듯이 벌이지는 곳이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영화사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다.

매우 고된 촬영현장이다.

선배·후배들과의 끈끈한 전우애로 똘똘 뭉쳐 헤쳐 나갔다.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에서 없는 돈 있는 돈 탈탈 털어 소주 한 잔 마시며 영화 이야기를 하고, 영화인으로서 꿈과 미래에 대한 설렘을 가졌던 시절.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현실감각이 떨어졌던 충무로 사람들이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도 없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그런 분위기에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다.

한국영화계와 세계영화계를 이어주는 튼튼한 파이프라인이었고, 해외 비즈니스가 전무하다시피 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한국의 영화인들의 시야를 넓혀줬던 기회의 장이 되어주었다.

부산영화제는 그 해의 충무로를 정리하는 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부산 곳곳이 들썩거린다.

해가 뜰 때까지 떠들썩한 남포동 혹은 미래의 해운대 포장마차 거리는.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영화인이든 영화팬이든 시민이든.

모두가 친구였다.

그 속에서 류지호가 잊고 있었던 90년대 풍경이자 순수했던 시절의 희미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작가의말

아침저녁으로 꽤 선선합니다. 건강 유의하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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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1) +9 22.10.10 4,606 144 26쪽
299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12 22.10.08 4,692 15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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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JHO CONVENTION. (3) +7 22.10.05 4,758 15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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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11 22.09.30 4,791 146 21쪽
291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 +12 22.09.29 4,761 164 21쪽
290 우리 잘 해봐요. (5) +6 22.09.28 4,845 157 26쪽
289 우리 잘 해봐요. (4) +7 22.09.27 4,753 153 25쪽
» 우리 잘 해봐요. (3) +8 22.09.26 4,777 154 23쪽
287 우리 잘 해봐요. (2) +3 22.09.24 4,831 157 21쪽
286 우리 잘 해봐요. (1) +8 22.09.23 4,976 147 23쪽
285 박스오피스는 내가 더 높거든! +11 22.09.22 4,904 173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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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토론토 국제영화제. (5) +13 22.09.20 4,726 163 27쪽
282 토론토 국제영화제. (4) +13 22.09.20 4,427 140 26쪽
281 토론토 국제영화제. (3) +7 22.09.20 4,473 122 25쪽
280 토론토 국제영화제. (2) +7 22.09.19 4,712 157 26쪽
279 토론토 국제영화제. (1) +4 22.09.17 4,924 162 28쪽
278 쯧.... 역시 생각이 많은 녀석! +6 22.09.16 4,808 153 26쪽
277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3) +5 22.09.15 4,789 162 26쪽
276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2 22.09.15 4,509 140 23쪽
275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7 22.09.14 4,731 15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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