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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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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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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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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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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두 개의 '3B' 지역과 홈비 힐스 지역의 매물들도 나흘에 걸쳐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저택 중에서 초대형 맨션을 메가 맨션(Mega Mansion) 또는 맥맨션 (McMansion)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대체로 연건평 3,000스퀘어피트(84평) 이상으로 주변에 밀집된 주택이 없고 주택 내외부를 초화화로 꾸며 놓은 고가의 주택을 메가 맨션이라고 부른다.

류지호는 연건평 200평 이상 초고가 주택만 골라서 둘러봤다.

LA 부촌들을 둘러본 후 가족들만 따로 불러서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다.


“두 분은 지금까지 둘러본 집들 어떠세요?”


류지호가 부모님께 물었지만, 류아라가 먼저 대답했다.


“큰오빠, 난 네 번째 본 집이 마음에 들어!”

“아빠엄마가 살 집도 아니고, 네가 마음에 들어야하지 않겠니?”

“제 집이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의 집이기도 해요. LA로 오시면 머무실 거니까. 두 분 마음에도 들어야죠.”

“......”


당연히 모든 집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때 매튜 그레이엄이 입을 열었다.


“동생아, 그 지역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 더 한적하고 대지면적도 훨씬 넓은 곳도 많아. 산타모니카 해변도 좋고. 마이키 잭슨처럼 목장을 사서 파커 저택처럼 꾸미던가. 교외가 싫고 자주 옮겨 다닐 것이 아니라면 베벌리힐스에 2에이커(3,600평) 정도 대지를 사서 집을 새로 짓는 건 어때? 천리포에 사는 병길 아저씨처럼 한국 전통식으로 근사하게.”

“몇 달만 지나면 졸업이야. 언제 집을 새로 짓겠어.”

“한 일 년 이 집에서 살면서 한옥을 짓던가.”

“안 돼!”


별안간 류아라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한옥이 어울릴 것 같아? 서양 사람들은 한옥을 불편해 한단 말이야. 신발 벗고 들어가는 집을 싫어할 걸? 큰오빠, 내 말이 틀려?”

“꼭 그렇진 않아. 내부를 입식 거주시설로 만들면 되니까.”

“....엥?”

“순호는 어때?”


류순호 입장에서야 과분한 집들이다.


“난 얹혀 살 건데 뭘. 형이 좋으면 나도 좋아.”


류지호는 가족들의 의견을 종합해 판단을 내렸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오래 전에 건설된 주택이 아니라 최근의 지은 모던 건축양식의 메가 맨션 위주로 새롭게 알아보라고 부탁했다.

비서실에는 괜찮은 터를 구입해서 건축하는 방안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 ✻ ✻


2월 첫 주에는 동생 류순호와 사인방만 LA 남아 있었다.

웨스트우드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류지호의 정신을 번잡스럽게 만들었다.


“형! 도널드 실장님 왔어!”


지하 작업실 밖에서 류순호의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후 도널드 제이콥이 들어왔다.

그 뒤로 슬그머니 황재정이 따라 들어왔다.


“보스.”

“어쩐 일이에요?”

“마음이 드신다는 주택을 주인이 팔겠답니다.”

“그래요?”


류지호가 LA 지역의 부촌을 보러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호화주택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동산 회사에서 전화가 폭주했다.

이미 부동산 중개인과 계약했음에도 여러 에이전트가 달려들었다.

원래 미국의 초고가 주택의 주인들은 아는 사이의 사람들끼리만 알음알음으로 주택을 거래하는 편이다.

또 실제로 계약한 가격과 흥정에 오르내린 가격을 비공개로 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비밀 유지는 필수다.

류지호는 부동산 에이전트가 제시한 비밀 유지에 동의한다는 서류에 서명했다.

또한 매도자에게 자신의 사업과 재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류지호를 모르는 LA 지역의 부자는 없다.

심지어 비밀 유지 각서에 고문 변호사의 이름과 주소까지 적시했다.

매수자의 기본 정보를 매도자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 고급 주택 거래의 암묵적인 룰이라니 따를 수밖에.


“미국의 주택 상식은 알고 계시죠?”

“대략적인 것은 알아요.”


미국은 본인과 가족이 거주용으로 사용하는 5년 된 주택에 대해 2년 이상 거주했다면 집을 매도할 때 이익금에서 최대 25만 달러의 세금을 면제해 준다.

기혼자에게는 50만 달러까지 세금을 면제해준다.

주거주 주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직장의 소재지, 가족들이 주거지 사실, 집 소유자의 연방·주 소득세신고, 자동차등록증에 기재된 주소, 각종 영수증에 기재된 주소 및 우편물에 기재된 주소, 소유자의 은행 소재지, 소유자가 속한 종교 단체나 클럽 등의 소재지 등 여러 조건들이 부합해야 연방국세청으로부터 주거지로 인정받을 수가 있다.

한 채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면 한 채를 뺀 나머지 집들에 대한 세금을 내게 된다.


“보스는 그린카드 소지자이기 때문에 부동산 거래에는 문제될 소지가 없습니다. 다만 한국의 법률검토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에 일반인의 외환보유가 풀리지 않았던가요?”


1996년부터 일반국민도 규모에 관계없이 외화를 마음대로 소지할 수 있게 됐다.

그 전까지는 5만 달러이상은 외국환 은행에 등록해야만 했다.


“한국의 현행법상의 외환관리법상 국외체류자에 한해 20만 달러 한도 내에서 해외 부동산 구입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메가 맨션을 보스의 명의로 매수하게 될 경우 불법 외화유출 및 해외 재산은닉 혐의를 비켜가기 힘들다는 법률가들의 조언입니다.”


류지호는 비사업용 해외부동산 투자가 허용되었다는 뉴스만 확인했다.

전면적인 허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국의 재무부에서 작년 외국환관리법을 개정한 것에 이어서 99년쯤에는 외환관리법을 폐지하거나 다른 법률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신고를 해도 안 되는 것인가 보죠?”

“해외 재산은닉 같은 혐의를 피하시려면 직접 구입하는 것보다는 법인을 만들어 구입해서 사용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황재정이 끼어들었다.


“전 정부 때 해외투자 완화조치를 했다가 해외 부동산 투자붐이 일었어. 그때 사기당한 사람들이 많았나봐. 다시 바짝 조였다가 작년에 불가피한 업종만 최소화하면서 해외투자를 전면 자유화하는 완전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되었거든. 그에 맞춰서 해외 비업무용 투자에 대한 것도 일부 완화가 되었고. 앞으로 3년 내 점차적으로 확대할 건가봐.”


부동산뿐만 아니라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에 필요한 외환자유화가 외환위기 이후로 대폭 자유화된다.

해외직접투자 지분율 조건도 20%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완화되고 해외투자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제와 해외직접투자 사전협의제도가 폐지된다.

2006년에는 개인의 해외직접투자까지 완전히 자유화하게 된다.

암튼 현재는 외환거래에 있어서 규제가 상당했다.

개인의 주거목적 부동산 취득한도도 엄격했고, 심지어 귀국일로부터 3년 이내 처분해야 하는 의무까지 있었다.

개인의 해외 투자에 대한 규제는 상당한데 비해 기업의 해외투자는 관대한 편이다.


“이참에 부동산 개발회사 하나 설립하시는 것이 어떠실지...”

“투자신탁이나 자산관리가 아니라 개발회사를?”

“보스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엔젤이십니다. GARAM Ventures를 통해 해당 지역의 부동산도 조금씩 확보하고 있고요.”


류지호가 검지로 볼을 긁적거렸다.

오랜만에 선뜻 결정하기 곤란한 문제에 봉착했다.


“지호야, 부동산 투자는 변치 않는 영원한 재테크 수단인 거 알지?”

“법인이 소유하게 되는 거지, 내가 소유하는 거냐?”

“엎어 치나 메치나. 새로 만들 법인도 어차피 네 거잖아.”


황재정과 잠시 한국말로 이야기 하다가 류지호가 다시 도널드 제이콥을 향해 말을 이었다.


"Don...."

"네 보스.“

“내 목표 중에..... 한국에 미키마우스랜드 규모의 테마파크를 세우는 것도 있어요.”


처음으로 밝힌 목표다.

사실 목표가 생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기대 이상으로 잘 성장하고 있기에 세운 목표다.


“이참에 JHO Company 산하에 종합부동산 법인 설립하죠. 비서실에서 검토해 봐요.”

“종합부동산 회사라면 어떤 수준까지.....?”

“부동산 자산운용부터 시행 그리고 시설관리까지. 건설 빼고 다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재정아....?”

“응?”

“가온이 대유건설을 인수하면 어떻게 되겠냐?”

“미친놈! 말이야 방귀야.”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큰 건설사를 가온 따위가 집어삼킬 수 있을 리 없다.

JHO Company라면 몰라도.


“Don. 웨스트우드 비서실에서 미국의 종합부동산 법인 설립하는 것과 함께 한국의 가온이 대유건설을 인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기획서를 만들어 봐요.”

“알겠습니다.”

“재벌 놀이라도 하게?”


황재정의 삐딱한 물음에 류지호가 웃으며 설명했다.


“앞으로 G.O.M이 입주하게 될 전국의 복합건물도 그렇고, 종합촬영소도 그렇고 10년 안에는 올리지 않을까 싶은 본사 사옥도 그렇고, 또 부산 수영비행장 개발.... 이건 넌 몰라도 되겠다. 암튼 앞으로 가온에서도 개발사업을 꽤 많이 벌일 것 같은데 계열사로 건설사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한국에 금융위기 오면 망하는 건설사 많을 텐데, 하필 왜 대유인데. 잘 못 먹으면 체하지 않을까? 인수를 한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 것 같은데.....”

“비서실에서 연구를 해보겠지.”


더는 황재정도 딴죽을 놓지 않았다.

웨스트우드 헤드쿼터 의장 비서실과 뉴욕의 GARAM Invest가 머리를 맞대면 류지호를 위해 해답을 만들어 낼 것이기에.


✻ ✻ ✻


올해 가을학기부터 동생 류순호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 예정이다.

한인타운 북쪽 이스트 할리우드에 위치한 로스엔젤리스 시티 칼리지(LACC)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할 계획이다.


“순호가 여기서 2년만 다니면 네가 다니는 대학도 갈 수 있다는 거지?”

“하기에 따라서.”


류순호는 LACC에서 2년의 정규학업을 마친 후 4년제 UC계열 대학으로 편입할 계획이다.

즉 형과 함께 LA에서 지내면서 UC계열 대학 편입을 준비하게 됐다.

류지호가 다니고 있는 UCLA는 재즈와 영화음악이 강점이다.

미 서부에서 탑3 음대 가운데 하나가 UCLA이기도 하고.

뮤직 테크놀로지 분야로는 UC 산타바바라 대학이 서부지역에서 유명하다.

음악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음반산업 혹은 연구소를 지망한다면 고려해 볼 만했다.

그 외 샌프란시스코의 아카데미예술대학(AAU)도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했다.

미술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유명한 대학인데 필름 스코어링, 사운드 디자인, 사운드 엔지니어링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UCLA, UC버클리 음대와 비교해서 손색은 있지만, 미서부에서는 꽤 유명했다.

학교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류순호가 물었다.


“혹시 ‘디아블로’ 게임 만든 회사는 멀어?”

“넉넉잡아서 한 시간.”

“구경 시켜 줄 수 있어?”

“안 될 건 없지.”


어바인의 Snowstorm Entertainment는 아직은 소박했다.

JHO Company의 지원으로 재정이 넉넉하더라도 메이저 게임 스튜디오라기에는 본사 규모가 작았다.

아직은 볼 것이 별로 없는 개발사 본사지만, 연이어 히트작을 출시하면서 개발자와 엔지니어를 다수 채용하면서 인근의 사무실을 여러 개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미국으로 오기 전 류순호와 고우찬은 ‘디아블로’를 하며 날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난 엄청 큰 회사에서 만든 게임인 줄 알았어.”

“곧 엄청 큰 회사가 돼.”

“‘디아블로’가 엄청 팔려서?”

“그 몇 배를 팔아치울 게임을 준비하고 있거든.”

“뭔데?”

“‘스타크래프트’라고.”


한국에서 민속게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는 작년 E3 Expo 참가 이후로 기존에 개발했던 게임을 갈아엎다시피 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어떤 게임 개발사의 게임을 보고 충격을 먹었기 때문이다.

류지호가 따로 개발자금을 지원하고 인터플레이 출신 인력도 보강하면서 내년 하반기 출시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별로 볼 것도 없는 게임 회사를 구경하던 류순호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어버렸다.

Snowstorm 창업 멤버들은 작년 창립 5주년을 맞이해서 중요한 전통 하나를 만들었다.

여러 해 동안 헌신적으로 회사에 이바지한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근속 기념품을 수여하기로 했던 것.


“형도 받을 수 있어?”

“나는 창업부터 근속을 계산하지 않고 인수합병 서류에 서명이 이루어진 날부터 계산을 하는 모양이더라.”

“뭘 받는데?”

“게임에 등장했거나 개인적으로 원하는 디자인으로 제작된 검.”

“장난감 칼이지?”

“아니 진검.”

“진짜?”

“응.”


류지호는 이미 자신이 받고 싶은 검을 결정해 두었다.

리치 왕의 서리한이다.

10년 차 베테랑 직원에게는 방패가, 15년 근속한 직원에게는 특별한 반지가 수여될 예정이다.

다만 20년 근속은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회사에 남아 있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것은 실제 오너라고 할 수 있는 류지호도 마찬가지다.

Snowstorm Entertainment가 망할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류지호가 언제든지 회사를 매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 나도 Snowstorm 입사하고 싶어! 대학 입학은 취소할래.”

“지호야! 날 Snowstorm 경비원으로 당장 취직시켜라!”

“미안하지만, 나라고 니들 낙하산으로 꽂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사고 싶다고 하면 안 팔려나?”

"비매품이야."


당연했다.

이 전통은 오로지 Snowstorm Entertainment 직원들만을 위한 전통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류지호의 자격을 두고 개발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류지호가 Snowstorm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고 개발자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지도 않기에.


✻ ✻ ✻


집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설치해 주었더니 동생이고 친구고 ‘디아블로’를 하느라 식음을 전폐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류지호가 친구들을 데리고 팰로앨토(Palo Alto)로 향했다.

가을학기부터 황재정이 다니게 될 스탠퍼드 캠퍼스를 구경했다.


“......”


황재정의 기분은 남달랐다.

새로운 세계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곳이다.

여기서 자신은 이방인이라는 사실.

비서실장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이란 사실까지.

얼른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

JHO Convetion에 황재정 또래들도 몇 명 참석했다.

그들의 면면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았다.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능히 한자리를 꿰차고도 남는 인재들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인재들을 모았는지.


‘까도 까도 그 속을 다 알 수 없는 놈!’


자존심이 상했다.

황재정 자신도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십대부터 사업을 했으며, 중소기업이지만 비서실장으로 실무를 봤다.

의사결정 권한은 없었지만, 자신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 해봤다.

자신이 직접 발안한 웨딩홀 사업의 매출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류지호가 투자했거나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과 비교하면 소박한 수준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대니 최연소 억만장자의 비서실장이니.

다 지워버려야 한다.

언젠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온다.

남과 비교하며 심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괜히 감상에 젖어 허튼 생각하지 말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


스탠퍼드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은 로스쿨로 많이 진학한다.

경영학이나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황재정은 로스쿨에는 관심이 없다.

비록 학교생활이 무척 고되겠지만, 류지호의 곁에서 배울 것이다.


“독일 대학하고는 분위기가 달라?”


류지호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김준우에게 물었다.


“일단 날씨가 달라. 거기 애들도 자유분방하긴 한데, 내가 미국 애들은 잘 모르지만 뭐랄까.... 독일 애들이 더 개인주의적이라고 할까? 독일 사람들이 시간약속을 칼 같이 지키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더라고.”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겠지.”

“그냥 미국으로 올걸 그랬어.”

“독일 생활이 힘들어?”

“독일어가 아주 죽겠어. 진짜 안 늘어.”

“독일은 입학이 어렵고 졸업이 조금 쉽다고 하던데, 진짜 그래?”


김준우가 앓는 소리를 했다.


“몰라. 졸업 생각할 때가 아니야. 쫒아가기도 죽을 맛이거든.”


말은 그렇게 해도 김준우는 적당히 공부하고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독일로 공부를 떠나기 전에 김준우는 한국에서 잘나가는 웨딩 포토그래퍼였다.

학생 신분으로 개인전도 몇 번 열었다.

예술 사진 분야에서도 나름 인정받았다.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도 방학에 개인전을 연다거나 작품집을 출간할 수 있다.

예술활동에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류지호가 뒤를 돌아봤다.

황재정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걸어오고 있다.

류지호는 친구들을 보며 뿌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호야.”

“응?”

“언제나 너는 우리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 그거 알아?”


김준우와 고우찬이 차례로 류지호를 타박했다.


“맞아. 우리 못 미더워?”

“왜 계속 그렇게 무리를 하려고 해. 둥글둥글 살어, 인마.”

“내가 뭘?”

“20대에 다 이룰 거냐?”

“맞아. 30대에 할 것도 남겨두고, 40대에 할 것도 남겨둬야지.”

“내가 뭘 이뤘다고 오버들이야?”

“스물일곱 살에 LA부촌에 주택 사는 게 장난이냐?”

“내가 졸부처럼 돈 지랄하는 것처럼 보여?”

“누가 졸부래?”

“가족도 지낼 거고, 당장 순호도 함께 살 것이고, 재정이도 주말 마다 올 거고. 방학 때 준우도 올 거고, 우찬이도 와서 지낼 거잖아. 그리고 내 소유가 아니라 법인 거야.”


고우찬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툭하고 말했다.


“솔직히 난 좀 그래.”

“뭐가?”

“솔직히 너희들하고 같이 못 갈까봐 겁나.”


친구들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놈!”

“헛소리!”

“점심 먹은 게 잘 못 됐냐?”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왜 없어?”

“국가대표도 못 해 본 태권도? 대학도 겨우겨우 졸업할까 말까하는데?”

“.....”

“왜 그래. 답지 않게.”

“자자. 우찬이 너무 몰아붙이지마. 일단 어디 들어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하자.”

“됐어. LA로 돌아가야 하잖아.”

“조금 머리를 식히는 건 어때?”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해도 모자라다.

속도를 줄이라고?


“대학 졸업할 때가 되면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거야. 생각도 복잡하고. 진짜 경쟁사회로 나가야 하니까. 그리고 두려움은 괜찮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기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우찬이 너는 지금껏 몇 번이나 성장해 왔어. 검정고시, 대학입학, 태권도 4단. 너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목표만을 바라보며 정진했잖아. 순수할 정도의 노력과 집념으로.”


황재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보기에 심하게 포장한 말이다.

정진(精進)과 거리가 먼 녀석이 고우찬이니까.


“조바심. 나도 매일매일 그 놈이 힘들게 해.”

“넌 어떻게 그걸 이겨내는 데?”

“어떻게 조바심을 이기겠냐? 못 이겨 나도. 때로는 그런 마음이 생길 틈도 없이 뭔가에 몰두하고, 단전호흡도 하고, 도장에 나가서 신나게 운동도 하고. 죽어라 영화만 찍고.”


고우찬이 보기에 차라리 조바심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나을 것 같았다.


“일단 졸업만 생각해. 딴 건 고민하지 말고.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오히려 얻은 것은 없고 잃게 될지도 몰라.”


고우찬의 얼굴이 더욱 복잡해졌다.

안도가 되는 것도 있고, 함께하지 못한다는 서운함도 있으면서,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서 불안한 것도 있다.

고우찬을 그런 속내를 친구들에게 더는 드러내지 않았다.


“빨간색 외제 스포츠카 하나 뽑아서 타고 다닌다면서? 그러면 강남의 마담뚜 아줌마들이 서로 모셔가겠다고 난리도 아닐 거라면서? 그것만 생각해.”


황재정이 웃으며 말을 보탰다.


“큭큭. 준우는 초고층 빌딩의 회장실에서 여비서가 타주는 커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고 했었지.”


사인방은 고등학교 시절 아네모네에서 술을 마시며 나눈 대화를 또렷이 기억했다.


“후회 없이 해보자고. 후회하고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했지, 내가.”

“잘 나가다가 노인네처럼 말한다고 우찬이가 짜증을 부렸지, 아마?”

“지호가 자꾸 애늙은이 같이 구니까 그랬지.”

“과거는 말이야 상처를 줄 수 있어.”


김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황재정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


다음은 고우찬의 차례.


“....?”


류지호가 대신 말을 받았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되어보자!”


탁.


세 친구가 일제히 고우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것들이!”

“넌 진지한 거 안 어울려!”

“엉아가 너 하나 먹고 살게 못해주겠냐?”


고우찬이 고릴라처럼 콧김을 품으며 성질을 부렸다.


“나도 태권도장 하면 되거든! 뭘 먹여 살려!”


두 친구가 ‘아 뜨거라‘ 얼른 고우찬으로부터 멀어졌다.


“애들아, 가자!”

“어딜?”

“빨간 색 스포츠카 빌려서 신나게 달리는 거야!”

“그래! 우찬이 소원 하나 들어주자!”

“소원 아니야!”

“그렇다고 마담뚜를 소개시켜줄 순 없잖아?”

“맞아. 민아한테 무슨 욕을 먹으라고!”


사인방 친구들은 여느 대학 졸업반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불안감과 조바심이 있었다.

세 친구가 남몰래 눈빛을 교환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찬아, 웬만하면 지호에게서 도망쳐!’

‘지호 저 자식 때문에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내 말이!’


돈에 잡아먹힐까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욕심이란 놈은 조금 웃긴다.

미래에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 불확실하니까 부리게 되는 게 욕심이다.

언제든 가질 수 있다면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류지호에게 돈이란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가질 수 있는 하찮은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오늘 당장 은행계좌가 비어도 크게 걱정이 들지 않을 정도다.

얼마 안 가서 계좌에 돈이 채워질 테니까.

게다가 오늘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의 가치는 10여 년 후에 수십 배로 뛴다.

2000년 전후로 재산이 수조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돈에 안달복달한 이유가 없다.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되니 한결 여유가 생길 수밖에.

원하는 직업이 잘하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고.


작가의말

300회 기념 연참은 이번 주 토요일에 할 예정입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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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1

  • 작성자
    Lv.99 아르데우스
    작성일
    22.10.11 09:11
    No. 1

    벌써 300화가 넘었네요 ㅎ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2.10.11 09:27
    No. 2

    해외에서 번돈으로 해외부동산구입하는데도 법에 걸리나보네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2.10.11 10:52
    No. 3

    300회 축하드리며 전작에 비교하면 이제 절반에
    가까워진것같은데 이번 리메이크 는 내용을 더 풍성하게해서 1.000회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10.11 11:00
    No. 4

    비밀로 한다고 세금관련해서 이익보는 것은 없을텐데요. 금전거래가 기록에 다 남으니 불법적으로 거래했다면 모를까. 미국과 우리나라는 또 기본적으로 조세협약이 있긴 한데 주인공급 금액에서는 큰 의미가 없고 이중과세가 되겠죠. 연봉 8천까지던가는 한쪽에만 내면 되긴 하는데 ㅋ

    로스쿨이나 경영은 학부전공이 아무 상관이 없으니 뭐 스탠포드 다닐 돈이 있는 애들은 다 그쪽으로 가긴 하겠죠. 스탠포드 학부출신으로 같은 대학 법대 가는 것은 난이도가 조금 있지만.

    마지막으로 집은 저 정도 재산이면 새로 짓는게 맞긴 할듯 합니다. 첫 오너 취향이 대폭 반영되기 때문에 나중에 구입할 사람들에겐 전혀 안 맞는 부분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요.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2.10.11 12:42
    No. 5

    세금 관련 언급 삭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Under85
    작성일
    22.10.11 12:20
    No. 6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10.11 13:45
    No. 7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10.11 16:46
    No. 8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10.13 10:31
    No. 9

    잘보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양냥량
    작성일
    23.08.01 16:18
    No. 10

    고우찬이 젤 싫음 할줄아는거 없으면서 이거해줘 이거 하기 싫어
    다른애들은 노력이라도 하지 잰 그냥 기생충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별작
    작성일
    24.03.15 05:06
    No. 11

    이스트 할이우드 ㅡ 할리우드
    실제 지명인지 할리우드의 오타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해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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