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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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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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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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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우리 잘 해봐요.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부산국제영화제 본부호텔인 낙원호텔으로 돌아오자 한국의 영화사업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감독님!”

“회장님!”

“대표님!”

“류 감독!”

“오셨습니까? 보스!”


류지호를 부르는 호칭이 제각각이었다.

반가운 얼굴들 가운데 미국에서 귀국한 CG맨 박준우와 사운드 엔지니어 김정혁도 끼어 있었다.

박준우는 함께 Hues & Rhythm Studios에서 연수를 받았던 CG맨들과 VFX 회사를 설립했다.

워크스테이션을 포함해서 회사를 세팅하는데 6개월이나 걸렸다.

비슷한 시기.

선릉 역 주변 건물 지하에 영화 포스트프로덕션 업체가 들어섰다.

Blue Cave.

김정혁이 후배 몇 명과 문을 연 영화전문 녹음실이다.

WaW 픽처스가 49% 지분투자를 했다.

업체 두 곳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충무로에서 류지호 사단이 추가되었다.


“......!”


본부호텔 로비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류지호에게 모여들었다.

누구는 호기심에, 누구는 소란스러움에 짜증을, 또 누군가는 재수 없다는 표정을, 다른 누군가는 질투심에.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니 일단 장소를 옮깁시다.”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섭외하느라 비서들이 분주해졌다.

사전에 준비된 장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의전과 사무비서 최영미와 오영환이 류지호 일행을 근처 식당으로 안내했다.


“쳇. 재수 없는 새끼.”

“뭐가 불만 인데?”

“그냥 주는 거 없이 미운 놈 있잖아.”

“미울 게 뭐있어. 충무로에서 쟤들만큼 영화인 챙겨주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새파랗게 어린 자식이 선배 알기를 개똥으로 알잖아.”

“언제 만난 적 있어?”

“아니.”

“근데 왜 욕하는데?”

“소문이 그렇잖아, 소문이....”

“그걸 믿어? 남 잘되는 꼴 보니 배 아파서 뒷담화 까는 거지.”


충무로에서 류지호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이다.

이유 없이 적대감을 보이는 부류.

맹목적인 호의를 품은 부류.

WaW 픽처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가장 어이없어 하는 것은, 전날 어딘가 술집에서 류지호와 WaW를 신나게 씹어대다가도 다음 날 뻔뻔하게 WaW 사무실을 방문해 찬양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욕을 하려면 영화인들이 출입하지 않는 곳에서 하든가.

공공연하게 영화인들이 자주 가는 술집에서 험담이란 험담은 다 늘어놓고는, 정작 WaW 관계자 앞에서는 어떻게든 떡고물 떨어지길 바라는 심보가 가증스러웠다.

그런 속 좁은 사람들은 근거 없는 소문을 충무로에 퍼트렸다.

그런 소문의 일부는 진실로 둔갑해 일반 대중에게까지 전해졌다.


- 억만장자 류지호가 미국에서 여자를 건드려 임신을 시켰다더라.

- 유부녀 마리아 베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다더라.

- 할리우드 배우들과 어울리며 마약을 한다더라.

- <Life Goes On>을 찍으면서 흑인 갱스터 래퍼와 친해져서 그들과 어울리며 대마초를 피운다더라.


미국의 타블로이드에서도 안 쓰는 루머가 한국에서 돌고 있다.


“황 실장, 용산경찰서는 언제까지 가면 되는 거야?”

“출국하기 전에 잠깐 들렀다 가래.”


류지호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머리카락만 뽑으면 되지 뭘 소변검사까지....!”


그는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출석요구명령서를 받았다.

시중에서 떠도는 마약 관련 소문의 진위를 파악해 보겠다는 것.


“신변이 굳이 경찰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잖아.”

“당당하게 경찰 조사 받을래.”

“괜히 포토라인 섰다가.....”

“가서 소변검사만 받고 오는 것인데 뭘 포토라인에 서.”


아직은 충무로에 한정되어 떠도는 소문에 불과했다.

그런데 곧 스포츠신문 연예면에 기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때 가서 수습하는 것이 더욱 복잡해진다.

그래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최초 유포자는 색출해 두었다.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이 사단의 원흉도 파악하고 있다.


‘대유영화사업단....!’


대유영화사업단의 상무 송영석이 말 퍼트리기 좋아하는 충무로 인사 몇 명을 구워삶아 루머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증권가 사설정보지 공장(?)에 유포한 것도 송영석이다.

그 모든 일을 사주한 것이 김지훈 사장이었고.

황재정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 개자식, 섹스스캔들 터트리자니까....!”

“지금은 아니야.”

“네가 왜 쪽을 팔아야 하냐고! 잘 못한 것도 없는데....”

“김지훈 정도 혼내주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 대유그룹 직계가족도 아니고 전문경영인 축에도 못 끼는 조무래기와 코엑스몰 지하 임대 건을 바꾸는 것은 손해야.”


코엑스몰은 대유, 경일, 금성, 금호서울 등 건설사가 참여해 내년 5월에 착공해 2000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외환위기만 아니라면 G.O.M Cinemas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 삶에서는 백설그룹과 대유그룹의 2파전이었다.

이번에는 외환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G.O.M Cinemas가 끼어들어 삼파전이 예상되었다.


“이미 제일생명사거리에 점포가 있잖아. 형평성을 문제 삼아서 무역협회에서 우리를 배제하지는 않을까?”

“대기업이란 것만 빼고 경쟁자들이 G.O.M보다 나은 것이 없잖아.”

“정정당당한 입찰이 진행된다면야 당연이 우리가 밀릴 이유가 없지만.”


대기업이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는 보증금과 임대료다.

G.O.M Cinemas가 대기업은 아니지만, 충분히 감당이 가능했다.

입찰 직전에 대유그룹의 김지훈을 스캔들 문제로 탈락시키고, 임대조건을 백설그룹보다 무조건 높게 제안할 계획이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백설그룹이 G.O.M Cinemas처럼 크게 배팅하기 어려울 터.


“내년에 미국에서 8억 달러를 한국으로 들여올 거야.”


현재 환율로 6,700억 원이다.

역사대로 외환위기가 닥치게 되면 한화로 1조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그때 가면 환율이 문제가 아니다.

달러라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한국정부가 IMF에 긴급 융자를 요청하게 되는 2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구제금융의 총금액인 210억 달러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기업과 시중은행들이 미국에서 WaW 픽처스로 들어오는 달러를 차지하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현재 WaW 픽처스는 달러가 오르기 전에 외화대금 결제를 마치고, 한국영화 해외수출 대금은 천천히 받는 것으로 조율하고 있다.

올 연말부터 해외 지사 설립과 투자 명목으로 원화를 달러로 바꿔둘 계획도 수립해 놓은 상황이다.

그렇게 해서 최대 10억 달러를 준비해 외환위기로 헐값에 매물로 나온 것들을 확보할 예정이다.

부동산일 수도 있고 기업일 수도 있고.


“전국적으로 멀티플렉스를 짓겠다고 뻥을 좀 쳐야겠지. 실제로는 미미한 수준이겠지만 고용창출 효과니 죽어가는 건설경기에 숨통을 트여줄 거라느니 언론플레이를 좀 해야 할 거야.”

“코엑스몰이 계획대로 준공된다면 황금상권이 될 것 같긴 한데.... 이미지 관리를 잘 해놓았는데 이번 일로 너에 대한 호감도가 망가질까봐서 그게 걱정이다.”


류지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물며 대마초 같은 걸 손댈 리가 없다.

둘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UCLA 학부생들의 난잡한 파티는 물론 할리우드 파티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여자 친구 낸시 카트와이트 이후로 여자 손 한 번 잡아 본 적 없다.

친구들로부터 수도승이냐는 말을 들을 정도다.

오죽하면 할리우드 타블로이드에서 성불능이라는 루머를 퍼트리고 있을까.

한국에서 돌았던 여성에게 임신을 시켰다는 루머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일 수밖에.


“한국 언론의 못 된 버릇이 ‘아니면 말고’라는 거지. 뜬소문을 열심히 떠들어대다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다른 뉴스로 재빨리 물타기하고 팩트에 근거해서 정정한 후속기사를 구독자들에게 알리지 않는 거잖아.”

“그걸 알면서도 경찰에 출석하겠다고?”

“큰 산불도 처음에는 작은 불씨에서부터 시작한 거야. 불길로 번지기 전에 꺼야 돼.”


호감도를 올리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호감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사소하고 작은 것만으로도 단번에 떨어질 수가 있다.


“대중들에게 주목 받는 사람은 숨만 쉬고 있어도 음해와 모략이 나오게 되어 있어. 감수할 건 해야지. 그런 부분을 관리하라고 PI 전문가가 비서실에 있는 거잖아.”

“이번 기회에 너하고 아버님이 한국에서 전개하는 사회공헌활동 다 까야겠어.”

“비서실에서 알아서 해.”

“영화 개봉할 때까지 TV 노출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괜찮겠지?”

“나야 졸업작품 준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지.”

“언론 관리를 위해서 유력언론사 출신을 영입해도 될까?”

“송선희 비서가 홍보담당 아니었어?”

“선희씨는 마케팅이 전문이고. 대언론을 전담할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아.”


기업의 여론 방패막으로 영입되는 전관이 바로 메이저 언론사 기자다.

언론의 논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장급이나 언론사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경영진이 영입 대상이다.

주요 대기업의 기획실에는 언론사 출신들이 홍보담당으로 대언론 대응을 전담하고 있다.

재벌 대기업이 거물급 언론인 영입에 나서는 시기는 ‘오너리스크’가 불거지는 시점이다.

이미 광고주로서 언론사에 입김을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사 고위급 인사를 영입해 언론사·정관계·기업 사이의 메신저로서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다.

최근 재벌 대기업에서는 중앙에서 주로 하던 홍보 업무를 계열사로 분산하는 추세다.

홍보실 위상도 몇 년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인력도 많이 채용하고 있다.

본래 5대 재벌들은 일찍부터 홍보의 중요성을 알고 관련 업무를 탄탄하게 운영했는데, 30대 재벌까지도 그 같은 홍보실 강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송일성 선배라도 데리고 오게?”

“그 선배는 이제 겨우 부장이야. 부국장 정도는 스카우트해야 힘을 쓰지 않을까?“


언론사 부국장 출신 정도로는 기사가 나가는 것은 못 막는다.

구석으로 기사 배치를 바꿀 수도 없다.

기사 크기를 줄일 정도 로비가 가능하다는 것이 대기업 홍보실에서 통용되는 정설이다.


“부국장급 언론인이 우리 회사에 와?”

“잘 꼬셔봐야지. 네가.”

“내가?”

“우리 잘 나신 의장님께서 현란한 말빨과 삼고초려 흉내 정도 내줘야 그 콧대 높은 작자들이 넘어오지 않을까?”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않을래. 사장들에게 홍보실 신설에 대해 의견을 물어 봐.”

“아예 대기업처럼 그룹 홍보실을 운영하려고?”

“지금처럼 회사별로 홍보팀을 운영할지 통합된 홍보실 체제가 효율적일지. 어떤 것이 좋을지 각 회사 사장들에게 물어보라고.”

“알겠어.”


류지호를 언론에서 다룰 때는 온갖 별명과 수식어가 붙는다.

최근에는 확인되지도 않은 ‘최연소 억만장자’ 수식어가 주로 붙고 있다.

한국에서는 ‘청년 재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붙였다.

한국에서는 재벌 이미지가 최악이다.

때문에 재벌 대기업의 홍보실은 기업 홍보보다는 재벌의 이미지 메이킹에 사활을 건다.

류지호는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홍보실의 신설을 지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주)가온웨딩 계열 회사들의 홍보마케팅은 한 마디로 ‘주먹구구’였다.

가온웨딩부터 특수관계사인 아네모네 프랜차이즈까지 체계적인 브랜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지금까지는 사내홍보 즉 임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었다.

기업들이 더 커지기 전에 임직원들이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사내홍보 시스템을 갖춰놓을 필요가 있다.

기자 관리나 언론위기 대응은 그것들이 갖춰진 후다.


“시차적응도 없이 움직여서 피곤할 때 좀 쉬어 둬.”


류지호는 두 시간밖에 휴식을 못 취하고 다시 객실이 나섰다.

본부호텔에서 열리는 WaW 픽처스 주최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 ❉ ❉


부산국제영화제가 난리가 났다.

밤 9시 경 부영극장으로 경찰이 출동했다.

이미 티켓을 발급받은 관객들은 흥분해서 경찰들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영화관은 삽시간에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영화 <크래쉬> 때문이다.

폴 크로네버그(Paul Cronenberg)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자동차를 성적 대상으로 느끼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미 칸과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영화제는 원본 그대로 상영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공연윤리위원회에서 검열을 하겠다고 제동을 걸었다.


“영화진흥법에 따르면 영화제 상영작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어요.”


경찰과 관객이 영화제에서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든 원인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정이다.

국제영화제는 매우 특수한 경우의 대형 이벤트다.

그런데 그런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까지 예외 없이 심의(라고 쓰고 검열이라고 읽는)를 거쳐야 한단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에 앞서 공연윤리위원회는 <크래쉬>의 수입심의를 보류했다.

수입사인 대유영화사업단에서 일부 분량을 삭제한 채 영화제에 출품했다.

영화제 사무국은 이에 대한 정밀한 확인을 하지 못했다.

수입사가 이미 가위질 한 것도 화가 날 지경인데, 심의(검열)를 받아야 상영을 할 수 있다고 하자 가장 먼저 자원봉사자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상영불가 통보에 티켓을 구입한 영화팬들도 들고 일어났다.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해 사태가 커졌다.

문민정부가 들어섰어도 사전 심의(검열)가 횡행했다.

영화뿐만 아니다.

도서, 음악, 공연까지 사전에 검열을 받았다.

권력의 검열 본능은 국제영화제에까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명색이 문민정부임에도.

이 사태에서 부산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완강히 저항했다.

정부 당국에서는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한 편도 상영할 수 없다고 협박했다.

영화제 조직위는 사전 검열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국제적인 망신이 문제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잃게 되면 국제영화제도 자리 잡을 수 없다.

영화팬들도 조직위원회를 적극 지지했다.

마침내 영화 상영을 앞두고 정부 당국과 조직위는 합의는커녕 서로의 주장만 고집하다가 기어코 사단이 일어났다.


“......!”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대치하고 있는 영화제 측과 경찰을 답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류지호에게 황재정이 말했다.


“사실 <크래쉬> 상영 전부터 몇몇 영화가 상영이 취소될 뻔 했어.”


결국 영화 상영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가운데, 해괴한 타협안이 등장했다.

언론 관계자에게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정말 답답해 미치겠네!’


류지호는 가슴에 묵직한 바위를 얹은 것 같았다.

영화 상영을 막겠다는 정부 당국이나, 영화제에서 관객은 배제하고 언론인에게만 영화를 공개하겠다고 결정한 영화제 측이나.

짜증이 솟구쳐서 도저히 그 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포르노도 아니고, 멀쩡한 영화에서 성기가 나오는 건 조금 그렇지 않냐?”

“서울대라는 놈이 포스트모던한 영화와 포르노도 구별 못하냐?”

“그 감독 영화를 안 봐서 난 몰라.”

“고1 때 <플라이> 같이 봤잖아.”

“주인공이 파리가 되는 영화?”

“응.”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이번 사단을 일으킨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어?”

“영화감독의 비서실장이란 놈이 거장 소리 듣는 감독도 리서치 안 해놓고 잘하는 짓이다. 쯧.”


황재정은 류지호와 노는 물이 다른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널드 제이콥이었다면 가족관계까지 줄줄이 튀어나왔을 텐데.

황재정은 배우고 익힐 것이 많은 비서실장이다.


“암튼 영화제라는 행사가 동시대 새로운 예술적 경향을 함께 공유하자는 거잖아. 단지 성기노출이 있다고 섹스 장면이 너무 야하다고 끔찍한 폭력 장면이 있다고 무작정 상영을 못하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어차피 청소년을 관람도 하지 못하는데.”


황재정은 지은 죄가 있어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사건을 직접 목격하게 되니... 참 기분이 그러네...“


류지호가 툭 내뱉듯 중얼거린 말을 들은 황재정이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

“이럴 것 같았다고.”

“명백히 영화제 사무국의 잘못이야. 그런 일은 사전에 꼼꼼하게 확인을 했어야지. 뭐야 그게? 망신이야.”


방금 전까지 류지호에게 꾸중을 들은 황재정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했다.

이거 다 싶어 욕할 대상을 영화제 사무국으로 돌렸다.


“동석이형 말대로 우리가 영화제를 주최했어도 그랬겠지?”

“우릴 뭐로 보고? 넌 직원들 못 믿어?”

“공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걔들하고 왜 싸워. 여론을 움직여야지. 나라면 영화제 몇 달 전부터 언론플레이 했을 거야.”

“그래그래. 너 잘 났다.”


심드렁한 류지호의 반응에 황재정이 콧방귀를 뀌고, 남포동 거리를 훑었다.


“지호야.”

“왜? 칭찬해 주리?”

“개소리 말고. 여기 남포동은 영화제처럼 큰 행사를 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

“지금은 부산에서 여기만한 데도 없어.”

“대형 안전사고가 터지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야.”


그렇긴 했다.

남포동은 좁디좁은 골목이 바글바글 얽혀있다.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모이면 위험했다.

실제로 몰려든 인파 때문에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부산극장과 대영시네마 사이 작은 공간에 생방송을 위한 방송 세트가 만들어져 있다.

스타가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순식간에 군중들이 쏟아져 몰려오곤 했다.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하긴 했다.

군중들의 열광적인 돌진을 막기에는 사실 역부족이다.

특히 10대들의 광기어린 돌진은 자원봉사자들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았다.

누군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대형사고가 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나래안전과 용역계약을 해줬는데도 그러네.”

“겨우 서른 명 수준이잖아. 이 정도 규모의 행사라면 적어도 백 명은 불러왔어야 했어.”

“비용 때문에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지. 공짜로 나래안전 요원들을 붙여줄 순 없으니까.”

“난 네가 사비라도 털어서 해줄지 알았어.”

“거리 곳곳을 봐. 가온, WaW, GOM... 스폰서를 아주 우리 회사들로 도배를 해놨잖아.”

“그게 뭐 어때서? 우리가 그 만큼 지원했으니까 당연한 거지.”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온과 WaW가 개최하는 기업행사냐?”

“그건 아니지만.”

“딱 스폰서 포지션이 좋아. WaW에는 영화제에 관여나 간섭 하지 말라고 해.”

“메인 스폰서기업으로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겨야지.”


류지호가 거리 곳곳에서 신문지나 돗자리를 펼쳐놓고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서면이나 해운대로 메인이 옮겨가야 숨통이 좀 트일 텐데....”

“그러게. 숙소가 좀 멀리 떨어져 있어. 해외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가기가 좀 불편해.”

“현재 부산에서 제대로 된 멀티플렉스는 부영 하나야?”

“응.”

“극장도 문제겠네.”


아직은 남포동의 극장들이 떵떵거리던 시절이다.

향후 부산영화제는 세계의 여러 영화제들의 일정을 고려해 10월 초에 행사를 열기로 결정한다.

추석 대목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극장들의 비협조적 태도 때문에 고생한다.

때문에 영화제 사무국은 극장이 내세우는 가혹한 조건을 감수하면서 영화제 초청 영화를 상영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G.O.M이 서면이나 해운대 쪽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쉽지 않겠네.”

“기업 행사가 되면 안 된다며?”

“간섭하는 것 같아 사무국에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부산시 협조는 받고 있대?”

“그냥저냥.....”

“빨리 해운대로 센터를 옮겨야 안전, 극장, 숙소 문제 대부분이 해결될 텐데.....”


앞으로 몇 년을 걸릴 터.

영화제센터가 해운대로 옮기게 되면 극장들이 여기저기로 분산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 이유가 없어지고, 숙박시설은 풍부해지며, 해운대 신시가지와 센텀시티에 생기는 멀티플렉스 덕분에 상영관 확보 또한 쉬워지게 된다.

이전 삶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만을 위한 공간인 영화의 전당이 문을 열게 되면서 상영관 문제 역시 깔끔하게 해소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족쇄가 되어 부산지역 정치인과 시장에게 간섭을 받게 되지만.


“인천도 신포동에서 구월동쪽으로 도심이 이동할 것 같더라. 부산도 아마 신도심이 계속 새로 생기겠지?”

“응.”

“빨리 영화제가 이 도떼기시장 같은 동네에서 벗어나야지 원.”

“일장일단이 있어.”


추억에 젖은 목소리에 황재정이 류지호를 돌아봤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

“잃는 게 뭔데?”

“봐. 저기 거리 곳곳에서 술판 벌이는 사람들을.”

“난 좀 그래. 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이야. 아직 우리 시민의식이 후진국 수준인 것처럼 보이잖아.”


분명 부끄러워하는 부산시민도 많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야.”


작가의말

이전 주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자님들 가내 평안하시고 차분한 주말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PS. 니름님, alwls76님, 바람으로님 후원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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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JHO CONVENTION. (5) +8 22.10.07 4,728 143 31쪽
297 JHO CONVENTION. (4) +9 22.10.06 4,911 161 25쪽
296 JHO CONVENTION. (3) +7 22.10.05 4,756 151 24쪽
295 JHO CONVENTION. (2) +8 22.10.04 4,658 150 23쪽
294 JHO CONVENTION. (1) +6 22.10.03 4,892 161 23쪽
293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3) +6 22.10.01 4,779 159 22쪽
292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11 22.09.30 4,791 146 21쪽
291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 +12 22.09.29 4,760 164 21쪽
290 우리 잘 해봐요. (5) +6 22.09.28 4,845 157 26쪽
289 우리 잘 해봐요. (4) +7 22.09.27 4,752 153 25쪽
288 우리 잘 해봐요. (3) +8 22.09.26 4,776 154 23쪽
» 우리 잘 해봐요. (2) +3 22.09.24 4,831 157 21쪽
286 우리 잘 해봐요. (1) +8 22.09.23 4,976 147 23쪽
285 박스오피스는 내가 더 높거든! +11 22.09.22 4,903 173 28쪽
284 토론토 국제영화제. (6) +6 22.09.21 4,836 164 24쪽
283 토론토 국제영화제. (5) +13 22.09.20 4,725 163 27쪽
282 토론토 국제영화제. (4) +13 22.09.20 4,425 140 26쪽
281 토론토 국제영화제. (3) +7 22.09.20 4,473 122 25쪽
280 토론토 국제영화제. (2) +7 22.09.19 4,712 157 26쪽
279 토론토 국제영화제. (1) +4 22.09.17 4,924 162 28쪽
278 쯧.... 역시 생각이 많은 녀석! +6 22.09.16 4,808 153 26쪽
277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3) +5 22.09.15 4,789 162 26쪽
276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2 22.09.15 4,509 140 23쪽
275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7 22.09.14 4,730 15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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