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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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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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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술사의 한 획!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다 옛날 말이다.

현대에 와서 바뀌었다.

장인은 이미 좋은 도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장비 고르는 안목까지 갖추고 있어야 장인인 거다.

21세기가 되면 AI 로봇자동화 시대가 온다.

고리타분하게 장비 찾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되겠지만.

암튼 류지호에게 좋은 장비가 생겼다.

바로 DALLSA Corp.이 개발한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 Origin이다.

류지호의 D-Cinema 프로젝트를 위해 최근 업그레이드 한 제품이다.

단순히 제작에만 디지털 시스템이 적용되는 영화를 디지털 영화라고 한다.

D-Cinema는 디지털 촬영, 디지털 후반작업 그리고 최종적으로 디지털 배급 및 상영 등 영화제작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것을 일컫는다.

디지털카메라 및 컴퓨터 이미지 작업을 통해 제작된 디지털 영화는 작년부터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배급과 상영까지 이루어지는 D-Cinema는 아직 연구실 테스트 단계다.

류지호는 역사상 첫 번째로 연구실을 벗어나 실제 테스트를 하려고 하고 있다.

어바인 스펙트럼 지구의 GMG Lab.

D-Cinema 주요 연구원들이 모여 있다.

그들 앞에서 류지호가 졸업작품으로 선보일 D-Cinema 프로젝트의 브리핑을 마쳤다.


“여러분은 D-Cinema를 극장에만 한정하고 있습니다.”

“가정에까지 영화를 전송하는 것은 지난 번 보스가 이야기한 인터넷 스트리밍 기술이지 않습니까?”

“현재 Skywalker Films도, 뉴욕의 독립영화 감독들도 그렇고, 모두 위성방송을 활용한 디지털 극장배급과 실시간 상영만을 떠올립니다. 안타깝지만 하루아침에 상용화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기술은 충분했다.

문제는 위성송출 비용과 영화 데이터의 암호화다.


“그렇다고 연구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계속해서 실험하고 시도해야겠죠. 시네콤(Cinecomm) 위성중계 방식을 이용해 디지털 극장배급과 상영을 시도하는 것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대신 그걸 상용화하기 전 중간 단계도 함께 고려해야 하겠죠. 가령 외장하드디스크 방식 같은.”

“혹시 디지털 데이터를 하드 디스크에 담아서 운반하는 방식을 생각하십니까?”

“과도기적 배급과 상영방식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건 엄밀히 말해 D-Cinema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미국에서 100분 러닝타임의 극영화 한편을 프린트로 제작하는 데 약 3,000 달러가 필요합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3,000여 개의 극장에 프린트 한 벌씩만 보낸다고 했을 때 900만 달러가 소요됩니다. 거기에 필름 프린트는 무척 무겁습니다. 각 극장으로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도 상당합니다.”


북미에서 멀티플렉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서 할리우드 배급사들의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어지간한 대작 영화는 3,000여 개 스크린에서 광역 개봉하는 것이 추세다.

순수 극장 상영용 프린트 비용만 1,000만 달러가 넘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 일 년에 생산되는 수많은 영화편수를 감안하고, 더 나아가 세계 각국에서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프린트가 만들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영화 한편 배급에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인공위성을 통해 각지로 영화를 보낼 수 있다면 그 같은 비용은 잊어버려도 되죠. 이것이 D-Cinema의 애초 목적이고 목표입니다.”

“보스의 졸업작품 상영회에서 증명했듯이 현재 D-Cinema의 송출 시스템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 배경은 방송 송출 기술의 노하우와 디지털 압축 기술의 발전이 이미 실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죠.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극장에 파일형식으로 압축된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죠. 하지만 극장마다 위성 수신 장치가 되어있는가와 보안문제가 걸립니다. 때문에 하드디스크로 운반하는 과도기를 거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프린트를 복사하는 것보다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니까요.”

“사실 보스가 지금 말씀하시는 부분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프로젝션, 즉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식에 있어 밝기와 색의 재현입니다.”

“맞습니다. 일반 램프에 의해 투사되는 필름계의 프로젝션의 밝기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D-Cinema의 시대는 급속화를 타게 될 겁니다.”


류지호 역시 연구원들의 고민을 크게 공감했다.

현재 디지털 프로젝터에 들어가는 램프 즉 DLP(Digital Light Processing)의 특허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댈러스 인스트루먼츠(Dallas Instruments)가 가지고 있다.

DLP가 들어간 디지털 영사시스템은 기존의 LCD 버전과는 달리 DMD(Digital Micromirror Device), 즉 광반도체를 중심으로 개발한 장치다.

아직은 밝기에서 필름 프로젝터에 미치지 못하지만 2000년이 오기 전에 이 문제점의 상당부분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때 댈러스 인스트루먼츠(DI) 인수합병을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오성전자보다 훨씬 큰 반도체 기업이다.

댈러스 인스트루먼트(DI)의 시가총액은 169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수많은 반도체와 디지털 분야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공룡기업이다.

류지호가 소유한 한국과 미국 사업 모두를 합쳐도 상대가 되지 않는 규모다.

GMG Lab의 연구개발비는 5년 기준 2억 달러가 조금 넘었다.

상당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댈러스 인스트루먼츠(DI)가 올 여름 댈러스에서 문을 열 예정인 연구센터의 예산은 무려 15억 달러로 알려졌다.


“디지털 영사기 문제는 Eye-MAX가 DI와 계속 협의를 하는 것으로 하도록 합시다.”


당장 집중해야 할 부분은 디지털 프로젝터가 아니다.

류지호가 트라이포드 위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DALLSA의 첫 번째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 Origin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해도 너무했다.

레드 원(RED ONE)처럼 모듈 형식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크기와 무게가 디지털 카메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카메라의 자체 크기와 무게는 400피트 매거진이 장착되어 있는 파나비전 35mm 필름 카메라와 거의 비슷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멋과 실용성 모두 낙제점을 주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던 Origin 개발자들이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류지호의 눈치를 살폈다.


“2K 해상도를 지원하고 30프레임을 지원하는 35mm 필름 카메라와 유사한 표준 PL 마운트의 시네마 렌즈를 사용하는 거 맞죠?”

“예.”

“데이터는 얼마나 저장할 수 있습니까?”

“약 2시간 분량의 비압축 2K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하드디스크가 카메라 바디 속에 내장되어 있는 모델이다.

기존의 비디오카메라와 컴퓨터의 결합이라는 발상에 머물러서인지 하드디스크와 그 외에 주변기기를 모듈 타입으로 디자인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모듈 타입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내 회사 카메라를 놔두고 소닉이나 NVC 디지털 캠코더를 쓸 수는 없잖아.’


류지호는 속내를 감춘 채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촬영은 총 두 달에 걸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됩니다. DALLSA에서 온 분들은 최종적으로 카메라를 점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촬영 데이터란 일종의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출수치가 얼마일 때 색감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같은 것들이다.

현재까지 Origin은 주로 캐나다에서 테스트 촬영을 진행해왔다.

캐나다의 빛과 환경에 맞춰진 데이터란 의미다.

당연히 캘리포니아의 상황에 맞는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촬영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4K 이상 카메라가 개발되어도 마찬가지다.


“촬영 데이터를 꼼꼼하게 수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주세요.”


카메라만 확보되었다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15개의 크고 작은 기업과 연구소 및 대학이 참여할 예정이다.

그곳들을 조율하는 것도 일이다.

만약 졸업작품 상영회에서 D-Cinema 실험이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다.

류지호는 ‘최초‘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연구원과 개발자들에겐 남다른 의미였다.


❉ ❉ ❉


DALLSA Corp.의 Origin은 지금 시점에서는 업무용 중에서 가장 앞 선 디지털 카메라다.

그런데 촬영현장에서의 운용 면에서 제약이 많았다.

스테이지에서의 촬영이나 정적인 장면에서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달리나 크레인을 쓰는 것도 문제가 없다.

다만 류지호의 프로젝트가 졸업작품이란 점이 문제다.

제작비에 몇 천만 달러를 쓸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할리우드 데뷔 감독이고 프로듀서였으니까.

그럼에도 수백, 수천만 달러를 제작비로 쓰는 것은 반칙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것이라면 제대로 투자를 받아서 상업적 성공까지 감안해서 제작하는 것이 옳았다.

게다가 또 다른 문제까지 발생했다.


“로저 딕스가 우리 영화에 합류할 수 없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영입한 프로듀서 앨런 포스터(Alan Foster)가 나쁜 소식을 전해왔다.


“갑자기?”

“고언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 촬영이 일주일 연장됐다나봐. 그쪽 스케줄이 꼬이면서 우리도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 연기해야 할 것 같아.”

“<Escape>를 한 달 연기할 수 있겠어?”

“어차피 보스의 친구들이 주로 출연하기로 했고, 크루는 교체 하면 그만이니까.”

“한 달 후로 연기해서 스케줄을 다시 조정해 줘.”

“알겠어.”


류지호는 만약을 대비해서 D-Cinema 프로젝트에 두 편을 준비했다.

한 편은 대부분의 촬영을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진행하는 영화, 다른 한편은 사인방 친구들과 추억을 쌓을 목적으로 반쯤 장난처럼 찍는 영화.

전자는 촬영에 로저 딕스와 미술에 <The Killing Road>의 아트디렉터 한나 쉐릴과 계약했다.

사인방과 추억 만들기 프로젝트는 소닉의 DV 6mm로 놀면서 찍으려고 했다.

김준우와 고우찬이 각각 독일과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황재정 역시 스탠퍼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팰로알토로 떠날 예정이다.

친구들과 헤어지게 전에 보름 정도 시간을 내서 촬영을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가 추억 쌓기 영화였다.


“영화 찍기 전에 꼼꼼히 준비하는 타입으로 들었는데, 아니었어?”


앨런 포스터는 주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작품에서 라인 프로듀서로 일을 해왔다.

류지호의 졸업작품이 첫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작품이다.


“누가 힘 좀 빼고 영화를 찍어보라고 해서.”

“누가?”

“하도 여러 사람이라, 일일이 이름을 대기가 그래....”

“가능하겠어?”

“B무비 스타일이라서.... 발로 찍는 영화야.”

“......?”


졸업하는 마당에 아마추어다운 영화를 한편 찍을 생각이다.

프로 스태프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모두가 재학생들로 구성된 장편영화다.


타이틀은 <Dream Come True>.


예산은 5,000 달러.

현재 환율로 420만 원이다.

말 그대로 초저예산 학생영화다.

프로덕션 제작비만 그렇다.

포스트프로덕션은 수백만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CG, 음악 저작권, D-Cinema 실험 등.

음악 저작권을 제외하고 모두 협찬을 받았다.

반면에 프로들과 작업하는 영화는 ParaMax Films로부터 투자를 받는 상업영화다.

어쨌든 <Dream Come True>는 류지호가 처음으로 찍어보는 장르다.

일종의 영어덜트(Young Adult) 장르라고 해야 할까.

틴 무비(Teen Movie)는 아니다.

청소년부터 성인 세대까지 아우르는 재미 위주의 매우 가벼운 영화다.

류지호는 친구들과의 추억 쌓기 영화를 기획하면서 로맨스든 SF든 수준이 높든 유치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코웃음이 날 정도로 뻔한 설정과 클리셰로 점철된 어떤 이야기이기면 충분했다.

그냥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청년의 치기 어린 갈등과 성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족했다.

사실 그런 의미부여도 부질없긴 했다.

세세히 뜯어보면 류지호의 실제 모습과 영화 속 모습은 몹시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한 번 쯤 비슷한 시기의 고민과 모습이 담겨 있을 터.

<Dream Come True>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LA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Jay는 UCLA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아르바이트로 B급 호러영화와 세미 포르노를 찍는 마이너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말이 영화감독이다.

사실은 삼류 중의 삼류다.

영화 속에서 고우찬은 포르노 배우, 황재정은 유학생, 김준우는 불법체류자다.

이들 사인방은 초라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다.

Jay의 호러영화나 세미 포르노 영화를 촬영하는 스티븐이란 친구는 게이다.

이 두 사람은 언젠가 할리우드의 유명한 감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Jay는 미성년자 여자 친구가 있다.

그런데 꿈속에서 만난 여인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꿈속에서 봤던 이상형의 여자(아이보리)가 실제 현실의 눈앞에 나타난다.

Jay는 우연을 가장한 데이트를 통해 그녀와 점점 가까워진다.

어느 날 호러영화 촬영장에서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남자들을 만난다.

콘솔 게임 같은 결투 끝에 제압한다.

그리고 듣게 된 충격적인 사실.

습격자는 아이보리의 전 남자친구 중 하나였던 것.

결투 이후로 Jay에게 미션이 내려진다.

아이보리의 전 남자친구들과의 결투에서 이겨야만 한다.

그래야만 아이보리를 계속 만날 수 있다.

전 남자친구들은 시도 때도 없이 Jay를 습격한다.

Jay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대결을 펼쳐나간다.

유치찬란한 스토리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썼다.

진지해지기 싫어서.


“그런데 혹시 DALLSA 카메라에 문제가 생겼어?”

“아니.”

“그런데 왜 디지털 카메라 회사를 인수했어?”

“혹시나 싶어서 했는데.... 당장에 활용은 못할 것 같아.”


최근 GARAM Invest에서 뜬금없이 고속 카메라 전문업체 Vision Analysis Company를 인수했다.

류지호의 D-Cinema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문제는 Vision Analysis는 고속카메라 전문이라는 사실이다.

류지호도 기억하고 있는 팬텀(Phantom) 시리즈가 바로 이 회사 제품이다.


“왜? 디지털 카메라 분야에서 꽤 앞 서 가는 회사라며?”

“고속 카메라 전문이라서.”


즉 슬로우모션을 위한 업무용 카메라 제품이 주력이다.


“아직은 화질이나 저장 용량이 적어. 몇 쇼트 찍지도 못하고 데이터를 백업해야 할 거라서.”


Vision Analysis Company의 팬텀은 CMOS 이미지센서를 장착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반면에 DALLSA Corp.은 CCD 이미지센서를 장착했다.


“독립영화 감독과 영화과 학생들이 주로 영화촬영에 쓰는 디지털 카메라가 소닉 HDW-900, 나쇼날의 DVX100이지?”


테이프 녹화 방식의 업무용 HD 디지털 캠코더다.

반면에 팬텀 디지털 카메라는 하드디스크에 저장되는 HD급 카메라다.

팬텀은 미국 회사 제품답게 내구성 하나 만큼은 짱짱했다.


“두 기종 모두 HD 24 프레임을 지원하지.”

“Origin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못할 것 같다면서?”

“<Dream Come True>는 소닉의 HDW-900로 찍으려고.”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팬텀이나 Origin을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다.

룩이나 색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따라서 세트 촬영을 하는 두 번째 디지털 영화에서는 Origin을 사용해 보면서 소닉 및 나쇼날 제품과 비교해볼 생각이다.

류지호는 8K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까지 경험해 보고 과거로 왔다.

그를 통해 팬텀과 Origin 개발진에게 팁과 영감 정도는 줄 수 있다.


“어쨌든 보름 안에 세계 최초의 D-Cinema 프로젝트의 막이 오르겠군.”


앨런 포스터가 마치 역사적인 사건을 마주한다는 듯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에 류지호는 별 감흥이 없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디지털 영화가 일상이었으니까.

심지어 개인들도 쉽게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던 세상을 살았으니까.


✻ ✻ ✻


류지호는 <Dream Come True> 오리지널 스크립트만 썼다.

도저히 윤색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솔직히 손발이 너무 오그라들었다.

그래서 각색을 시나리오 전공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인 김윤희에게 맡겼다.

전형적인 영 어덜트 무비 스크립트가 나왔다.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영화라고 포장하면서 한편으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관람을 추천하지 못하는 B Movie다.

한국에서는 B Movie를 수준이 낮거나 질이 낮은 형편없는 영화로만 여긴다.

유래를 알게 되면 많이 다르다.

B Movie는 1920년대 할리우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미국에 TV·영화 관련 아카데미나 대학이 없었다.

스튜디오 자체적으로 인력을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스튜디오에서 아직 경험이 부족한 감독들을 중심으로 적은 예산을 투입해 연습용 영화를 찍도록 했다.

이러한 연습용 영화가 B Movie의 탄생 배경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을 맞이했다.

관객이 급감했다.

스튜디오는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연습용 영화들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상영이 이때 시작되었다.

즉 저예산 영화를 일반 상업영화 전후에 함께 상영했다.

같은 요금으로 두 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더블 빌’(Double Bill) 전략을 내세웠던 것이다.

유명 감독과 스타가 참여해 많은 자본이 투입된 영화와 저예산 영화가 분업화 되어 체계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 두 종류의 영화를 ‘A Movie’, ‘B Movie’라고 구분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B급‘ 영화라고 번역을 한다.

사실 고급, 저급을 나누는 개념이 아니었다.

적은 예산을 투입, 효율성을 목표로 한 영화들을 B Movie라고 부른다.

80년대부터 B Movie의 조악한 특수효과로 비웃음을 사고 있는데, 1950년대 B Movie는 실험영화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온갖 시도가 폭발했다.

사실적인 재현을 추구했던 A Movie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괴물, 좀비 등의 소재들을 등장시킨 것도 B Movie이 실험성과 도정정신 때문이다.

그를 통해 비주류에 속했던 공포영화, SF영화 등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비디오 시장이 활성화되며 극장용이 아닌, 비디오용으로 수많은 컬트영화가 제작됐다.

최근에는 쿠엔 태런티노 감독의 영화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B급 감성 즉 ‘나는 진지하지 않다’를 전면에 내세운 컬트적 요소들이 A Movie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B Movie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오락영화다.

특수효과 실험영화, 익스플로테이션 영화, 다이렉트 비디오영화, B급 영화들의 관습을 활용한 B급 감성의 블록버스터영화까지 포괄하는 용어로 확장되고 있다.

이 당시 한국의 영화평론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그 같은 유래와 개념을 모른 채 한국영화 아무 데다 갖다 붙이는 경우가 꽤나 있었다.

어쨌든 류지호의 두 번의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다뤄보는 영 어덜트 장르의 B Movie다.


‘또 그러네....!’


첫 도전이라서 그런 것인지.

영화 촬영을 앞 둔 루틴인 것인지.

첫 촬영날을 맞이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뭔가 모를 고양감이 높아졌다.

긴장감은 아니다.

과도한 설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이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문제만큼은 어떻게 안 되네.‘’


류지호가 중얼거리자, 고우찬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뭐가?“

“아니야. 아무것도.”


류지호가 몸을 돌렸다.

사인방 친구들이 웨스트우드 주택 거실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준비 됐어?”


사인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딘지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럴 만도 했다.

난생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다.

어찌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류지호가 찍게 될 첫 번째 디지털 영화 <Dream Come True> 주인공은 류지호 본인이다.

그의 베스트 프렌드로 사인방이 특별출연한다.

친구들의 분량은 그다지 많진 않다.


“애들아, 모여 봐.”


사인방이 어기적거리며 류지호 곁으로 모여들었다.

류지호가 손등이 보이도록 손을 내밀었다.

그 위로 사인방의 손이 차곡차곡 포개졌다.


“본능에 맡겨. 본능에.”

“.....!”


사인방은 말이 없었다.

김준우는 침까지 꿀꺽 삼켰다.

제아무리 놀이하듯이 찍는다고 해도 영화 촬영이다.

긴장되는 걸 감출 수 없다.

심지어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고우찬 조차도.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마. 그냥 우리끼리 논다고 생각해.”

“영화 망치면 어떻게 하냐? 지금이라도 그냥 연기하는 애들 쓰지 그래?”

“콘셉트야 콘셉. 모든 걸 아마추어스럽게 찍을 거야. 그리고 너희들은 대사도 별로 없잖아.”

“그래도 명색이 영화인데....”

“이번 기회에 추억도 만들고, 재밌게 놀아보자.”


사인방은 졸업여행 빼고, 무언가 즐거운 놀이를 함께 해본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사업을 시작한 것과 군대 가기 전에 총각딱지 뗀 것 외에 이렇다 할 추억거리가 없었다.


“부담되는데....”


고우찬이 짐짓 허세를 부렸다.


“감독이 괜찮다잖아. 쫄지 마!”


황재정이 단박에 딴죽을 걸었다.


“쫄지 않는 놈이 다리는 왜 떠는데?”

“설레서 그런 거야. 암튼 내가 ‘우정을 위하여’하면 니들도 따라서 해.”

“지호가 감독인데 왜 네가 해?”

“우정을!”

“위하여!”


킥킥.


류지호는 긴장한 친구들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본인은 물론 친구들이 출연하는 것에 어떤 걱정도 없다.

이 영화는 영화과 졸업반 영화학도의 치기로 똘똘 뭉쳐 찍는 영화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D-Cinema는 영화 자체와는 별개 문제이기도 하고.

영어가 서툰 고우찬과 김준우 부분은 후반작업에서 미국 배우의 더빙을 입힐 예정이다.

그들을 대신해서 연기다운 연기는 UCLA TV·영화 연기전공 친구들이 해줄 터.

어차피 영화 내내 온갖 장난기로 범벅될 예정이다.

배우의 연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 ✻ ✻


<Dream Come True>는 코믹스와 게임 같은 다른 대중문화 분야가 뒤범벅된 매우 날리는 영화다.

가령 영화가 시작되면, Snowstorm이 실리콘&시냅스 시절 출시한 ‘블랙쏜’의 배경음악과 전자오락 사운드가 나온다.

그리고 전화벨 소리, 자동차 배기음, 각종 중요한 소음이 카툰처럼 화면에서 그래픽 글자로 떠오른다.


Br- br- br-. crack, rrrrr... Smash!


이런 의성어들이 실제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대전격투 게임 화면 같은 인터페이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만화 같은 장면이 수시로 표현될 예정이다.

류지호는 연출제작전공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초 연기 수업을 안 들은 것은 아니다.

명색이 전직 영화감독이다.

과거로 돌아와 단편영화도 여러 편 연출했다.

좋은 배우들과 장편을 찍어보기까지 했다.

깊고 심오한 연기는 펼쳐 보이지 못해도, 엑스트라보다 잘한다.

연기는 뻔뻔함이 기본이다.

류지호는 본인의 촬영장에서 연기를 하게 된다.

남 눈치 볼 것도, 공연히 창피할 일도 없다.

연기에 있어서 서툰 모습이 드러나도 괜찮다.

그 같은 어설픔이 한심하고 조금은 멍청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가 연기해야할 캐릭터는 별 볼일 없는 전형적인 지질이다.

발연기만 아니면 문제될 것이 없다.

게다가 작정하고 망가질 생각이다.

스스로를 비웃음거리로 만들 정도로.

류지호가 모든 걸 내려놓고 찍을 거란 의미다.

또 JHO Company 산하 여러 기업들의 PPL을 대놓고 영화 속에 넣을 생각도 있다.

분명히 엉터리 같은 짓이다.

그런데 앞으로 영원히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렇기에 학생 신분의 마지막을 장식할 영화로 안성맞춤이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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