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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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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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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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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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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30만 달러(대략 2억 4천) 받았죠?

“응.”

“잘했어요. 그 정도면 500만 달러 예산에서 최고 수준으로 계약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식들이 한국영화 배우를 뭐로 보고 4만 8천 달러를 불러.”


출연 계약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할 초기, MPCA측에서는 한화로 6천만 원의 출연료를 제시했다.

네 주제에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눈치였다.

박중환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따라서 거절의 의미로 한국영화 출연료보다 훨씬 많은 2억 4천만 원을 질렀다.


“내가 그랬지. 미국 촬영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까, 그것도 모두 감안해서 출연료를 책정해 달라고.”


짐짓 으스대는 투로 말하는 박중환을 보며 류지호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 자식들이 내 이름이 발음이 어렵다고 미국식 이름을 쓰자는 거야. 그거로 끝인 줄 알아? 내가 영어발음이 구릴거라면서 오디션을 보래.”


박중환이 말을 마치고, 소주잔을 비웠다.

얼른 류지호가 그의 소주잔을 채워줬다.


“내가 한국 최고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존심이라는 게 있잖아. 곧바로 안 한다고 했지. 그리고 내가 지금 책이 30권 쌓여있다 딱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야.”


류지호가 박중환의 소주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두 사람이 소주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며 동시에 소리를 냈다.


크으!


박중환이 안주를 우물우물 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들이 별수 있어? 결국 내 조건을 다 들어줬지. 침대와 샤워실 딸린 트레일러에, 최고급 호텔, 개인 운전기사와 분장사, 개인 스케줄 전담, 조감독까지 다 들어줬지. 하하하.”


박중환이 마지막에 통쾌하게 웃어재꼈다.


“형이 요구한 조건들, 미국 애들이 보장해준 거 아니에요. 다 대유 애들 돈 인거죠.”

“뭐?”

“트레일러는 로케이션 나가면 주연배우에게 기본이고. 원래 주연급이 쓰는 트레일러에는 침대, 샤워실, 분장 시설 다 갖추고 있어요. 얼마짜리 배우냐에 따라 평수, 시설이 다른 것뿐이고. 주요 촬영지가 서부인데, 배우가 동부에 살고 있으면, 왕복 항공권 보내주고, 개인 운전기사, 호텔은 무조건 4성급 이상 잡아주는 건 기본이에요. 개인 스케줄 전담과 조감독은 오버에요. 할리우드의 조감독과 프로덕션 매니저 주급이 얼마인 줄 아세요? 형님 따라다닌 애들은 그냥 인턴 같은 애들이에요.”

“그런 거냐? 어쩐지 자식들이 어리바리 하더니만....”

“또 형이 알아두셔야 할 건. 천만 달러 이상 받는 스타가 아니라면 할리우드의 거의 모든 배우들이 오디션을 봐요."

“모두가 오디션을 본다고?”

“아마 <Double Edge>에서는 마이클 코엘하고 형만 오디션 안 봤을 걸요. 거기 캐리 히로유키씨 나오죠? 일본계 캐나다 배우?”

“악역으로 나와.”

“그 배우도 오디션 봤을 거예요.”

“그 사람 경력이 얼만데, 오디션을 봐?”

“할리우드는 그래요. 뭐든지 기준은 돈이에요. 형이 비록 저예산 영화지만 30만 달러 받는 배우이기 때문에 오디션 면제와 트레일러와 각종 편의를 제공 받은 거라고요. 물론 대유의 돈으로 그런 편의를 받은 것이지만.”


미국 돈이든 한국 돈이든.

중요하지 않다.

박중환이라는 한국의 인기스타가 할리우드에서 주연배우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할 뿐.


“여기 애들은 배우와 계약하기 전에는 소 닭 보듯 하다가 일단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대접이 완전 달라져요. 그래서 충무로처럼 무슨 끈끈한 정이나 동료애 같은 것이 덜한 편이죠. 사이즈가 큰 영화일수록 강해요.”

“하긴 애들이 자기 것만 찍고 그냥 가더라고.”

“한국 같지 않죠? 그래요 이 동네는.....모든 것이 스타. 돈 많이 받는 놈 위주로 돌아가는 판. 프로듀서와 조감독이 간섭 많이 했을 걸요?”


박중환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소위 유학파다.

1990년 갑작스레 충무로에 마약 사건이 터졌다.

그때 박중환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뉴욕 대학에서 연극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이 당시 순수 한국 배우로서는 드물게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춘 배우였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에서 캐스팅을 한 것이고.


“안타깝지만, 형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을 할 수 있는 것은 딱 지금 같은 영화에요.”

“자존심 상하네.”


박중환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다.

배우로서는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평상시에는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잘 거는 성격이다.

그런데 영화에 들어가면 굉장히 불같은 성격으로 돌변한다.

신인시절 그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고 트라우마가 생겨 피하는 후배들이 있을 정도다.

후배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감독이고, 촬영감독이고 할 말은 무조건 하는 성격이다.


“충무로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하려면 적어도 아시아 최고 배우는 되어야 공동주연은 할 수 있어요. 방사룡도 아직 주연을 못하고 있잖아요. 리앙중이나 홍콩배우들이 형보다 미국에서 더 인지도가 있는데도 무슨 배역을 맡는지 보면 알잖아요.”

“그만 해라. 짜증나려고 하니까.”


류지호가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자존심이 무척 상할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자존심 상했다고, 또 할리우드 벽이 높다고 포기할 사람도 아니다.

박중환이 소주잔을 부딪치며 물었다.


“여기서 성공하려면 빤스 벗고 덤벼야 할까?”

“빤스까지 벗을 필요야 있겠어요? 형은 충무로에서 충분히 여러 배역을 소화해 봤잖아요. 그 과정에서 체득한 연기와 캐릭터는 여전히 살아있지 않겠어요?”

“요새 나보고 코미디 영화만 한다고 공격하는데?”

“그래서 <Double Edge> 출연 결심한 거 아니었어요?”

“후우. 들어오는 책이 죄다 코미디 영화야.”

“형이 충무로에서 독보적이니까요.”

“지호야.”

“예.”

“한국인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최고 스타가 되면 멋질 것 같지 않냐?”

“멋지죠. 세계적인 스타란 말도 되는 거니까.”

“넌 미국에서 영화 찍었으면서 날 왜 안 쓴 거야?”

“아시아계 캐릭터가 나오질 않았으니까요.”

“조연도?”

“형이 어떻게 조연을 해요. 국가대표나 마찬가진데.”

“국가대표는.... 당분간 네 영화에는 못 나오겠지?”

“모르죠.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영어는 소홀히 마세요.”

“날 주인공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면 되잖아?”

“뉴욕에서 공부했으면서 미국 몰라요? 내가 연출하고 형이 주인공 하면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B급 영화나 독립영화가 되버려요. 교민이 봐주면 그나마 다행일걸요? 교민들도 한국 드라마 비디오 보지, 한국영화 잘 안 봐요. 볼 시간도 없고.”

“그 정도냐?”

“차라리 미국영화가 아니라 한국영화를 찍어서 미국에서 개봉하는 게 나아요.”

“말 나온 김에 <투캅스>는 왜 미국에서 개봉 안 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죠. 돈을 못 벌게 뻔하니까.”


창조적 모방이라고 우겼지만 표절임을 부인할 수 없는 영화.

차라리 판권을 사다가 리메이크했다면 ParaMax에 말이라도 꺼내봤을 텐데.


“자막이 문제에요. 더빙을 하고 싶어도 한국 쪽에서 그건 또 싫어하고. 아트하우스에서 제한상영할 수밖에 없는데, ParaMax에서 수입·배급하기 쉽지 않아요.”


“코미디 영화도?”

“미국 애들이 충무로 코미디 코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코미디나 멜로는 조금 힘들어요. 그래서 예술영화나 액션영화 위주로 배급할 수밖에 없어요.”

“감독도 안 통할까?”

“몇몇 선배 감독님들은 이 동네 쌈마이들보다야 훨씬 연출력이 뛰어나죠. 그런데 그 선배들이 여기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겠어요?”


박중환이 크게 공감했다.

저예산 액션영화였지만,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미국이 영화현장을 경험해 봤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타임 테이블에 따라 칼 같이 진행되는 이 곳 촬영 시스템은 한국의 감독들이 당장 적응하기에는 무리였다.


“한국 들어가면 엄청 씹힐 거예요.”

“미국물 들었다고?”

“예.”

“너만 하겠냐?”

“저는 진짜 미국물 들은 거고, 형은 이제 맛만 살짝 본 거고.”

“500만 달러짜리 영화도 그렇게 돌아가는데.... 충무로는 언제 그렇게 작업 하냐?”

“차차 나아지겠죠. 지금 젊은 피디들이 바꿔 가고 있잖아요.”

“너만 할리우드에서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한국 감독하고 배우들 좀 미국으로 불러서 영화 좀 찍어. 한국감독이나 배우들이 빨리 할리우드로 넘어와서 자리를 잡아야지.”

“제가 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요?”

“형이 널 보니까 배 아파서 그래, 인마!”

“뭘 배 아파요? 할리우드에서 데뷔한 양반이!”

“그러면 뭐해? 리앙중이는 <리셀웨폰> 찍는다는데?”

“형은 <다이하드> 찍으면 되죠.”

“다이하... 컥!”


박중환이 소주를 목구멍으로 넘기다가 사례가 걸렸다.


“꿈을 크게 잡으라는 말입니다. 형니임!”

“새끼....! ”


그 동안 한국음식과 소주가 고팠는지 박중환은 가게의 모든 소주를 다 마실 태세였다.

그런 박중환을 간신히 말려 웨스트우드 주택으로 왔다.

박종환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난 대저택에서 살 줄 알았더니, 소박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래요.”

“밥은?”

“학교에서 먹기도 하고, 주로 회사 근처에서 먹어요.”

“그 떡대들하고?”

“그렇죠 뭐. 컵라면 하나 드실래요?”

“봉지라면은 없냐?”


류지호가 주방을 뒤져 라면 몇 개를 찾아냈다.


“라면은 냄비에 끓여먹어야 제 맛인데.”

“미국까지 와서 무슨 냄비를 찾아요? 라면 안주로 소주 마시는 것도 호사지.”

“누가 뭐래?”


두 사람은 라면을 안주삼아 밤새 소주잔을 기울였다.

박중환은 류지호로부터 할리우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Double Edge>는 1998년 겨울에 한국에서 개봉한다.

흥행에는 실패하고 만다.


“할리우드에서는 무명배우인 만큼 차근차근 지명도를 높여 한국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박중환이 당당하게 밝힌 포부였다.


❉ ❉ ❉


한인타운에 나와 해장국을 먹던 박중환이 뜬금없는 요청을 했다.


“네 영화사 좀 구경해보자.”

“딱히 볼 건 없는데.... 가 봐요.”


류지호가 박중환을 컬버시티의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본사로 데리고 갔다.

내근 중인 수뇌부들과 인사를 시켜줬다.

박중환은 영어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류지호가 귀찮게 통역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박중환은 건물 한 층에 빼곡히 늘어선 방들을 보며 호기심을 느꼈다.

복도 양쪽으로 방 숫자만 20개가 넘었다.


“저 방들은 다 뭐냐?”

“감독과 독립프로듀서들 오피스요.”


“저 방이 다 차있는 건 아니겠지?”

“다 차있어요. 높은 레벨의 감독은 따로 호텔을 잡아주죠.”


박중환은 욕이 절로 나왔다.


“아, X발!"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다.

이런 환경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10년 정도 지나면 충무로의 메이저 영화사들도 이런 규모로 영화들을 개발한다.

류지호에게는 대수로울 것이 없는 환경이다.

처음으로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접한 박중환은 그저 부러울 뿐이다.


“할리우드는 모든 게 돈이에요. 저 사람들은 저런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죠.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으니까. 나름 치열하게 영화를 준비해요.”

“저 사람들 진행비만 얼마야 도대체....?”

“할리우드는 충무로의 진행비 같은 거 없어요. 계약서 쓰기 전까지는.”

“저 사람들은 뭘 먹고 살아?”

“개발비와 각본료를 받고 일하죠. 이 동네는 입금 안 되면 일을 하면 안 돼요.”

“영화가 엎어지면?”

“그냥 엎어지는 거죠. 형도 <Double Edge> 계약 해봐서 알잖아요. 얼마나 세분화 되어있고, 꼼꼼한지.”


박중환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이 되었어도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고......”


박중환도 익히 들어봤고, 뉴욕에서 공부할 때 어깨 너머로 봤다.


“언제든지?”

“계약서가 꼼꼼하고 세세하다니까요. 해고되어도 미련 없이 빠져요. 원래 그런 시스템이니까”


그런 입장이 되지 않기 위해 류지호가 악착같이 돈을 벌고 영화사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A-List 감독은 영화 도중 해고되는 일이 거의 없다.

또한 자신이 직접 제작하면 영화가 엎어질 이유도 쫓겨날 이유도 없고.


“여기서 일 년에 몇 편을 제작하는 거야?”

“인하우스 영화는 몇 편 안 되요. 5~6편 정도? 많을 때는 10편까지 했어요.”

“배급은?”

“작년에 17편 했을 걸요?”

“뭐?”

“한 달에 두 편 꼴로 배급하는 것 같아요. 다른 메이저는 30편 안팎으로 하는 편이이에요.”

“정말 무시무시하구나.”

“형도 대충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학교에서 알려주는 거와 이렇게 직접 영화사를 구경하면서 확인하는 것과 같냐?”

“WaW도 일 년에 10편 이상 배급하고 있어요.”

“사이즈가 다르지.”

“......”

“네가 투자·제작한 영화가 다 대박이 터졌다며?”

“다는 아니고, 삑사리가 있긴 해요.”

“충무로 파워랭킹 1위답다.”


매년 영화잡지 씨네마21에서 충무로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의 랭킹을 발표했다.

95년 창간부터 2년 연속 파워랭킹 1위가 류지호다.

한국영화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류지호가 파워랭킹 1위다.

2위는 WaW 픽처스의 박건호 대표, 3위가 무비서비스의 강은석 감독이다.

가장 시설 좋은 극장으로는 G.O.M 강남점이 2년 연속 선정되었다.


“유능한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하는 거죠.”

“어쭈? 겸손한 거 봐라~”

“진짜에요. 괜히 훈수 두었다가 잘 돌아가는 판에 훼방이나 놓지 않으면 다행이죠.”

“넌 존재 자체가 충무로 1위야 인마! 그러니 할리우드에서도 1위 먹어.”


충무로 파워랭킹 1위가 시시하게 느껴지는 류지호다.

한편으로 빅6가 건재 하는 한 할리우드에서 만년 2인자일 수도 있고.


“언제 귀국해요?”

“눌러 앉고 싶은데.... 들어가 봐야지.”


박중환이 아쉬움에 말을 길게 끌었다.


“조연이나 단역도 상관없다면, 형이 할 만 한 배역 한 번 찾아볼까요?”

“하고 싶어도 못해.”

“.....?”

“올 해 4편 찍어야 된다.”

“영화배우가 아침 드라마 전문 배우도 아니고.”

“책이 수십 편씩 들어오는데 어떻게 일 년에 한 편만 할 수 있겠냐?”


충무로 제작사들이 기본적으로 일순위로 찔러보는 배우가 박중환이다.

1996년 한 해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63편.

그 가운데 박중환에게 전달된 시나리오가 절반 이상이었다.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의 웬만한 시나리오가 박중환에게 간다고 보면 될 정도.


“이미지 소모가 너무 심해요. 영화 캐릭터도 다들 비슷비슷하고.”

“인마, 뽀빠이 아저씨는 끝까지 어린이를 즐겁게 해줘야지, 김동헌씨처럼 점잖은 국민 MC 되겠다고 하면 되겠냐?”

“그래도 90년까지 찍은 영화들 속의 형님이 더 좋네요.”

“졸업하고 한국 들어와서 그런 영화 찍어.”

“같이 하자고 하면 하실래요?”

“책은 봐야지.”


픽.

류지호는 박중환의 대답에 그저 웃고 말았다.

박중환은 이틀을 더 류지호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 시간 동안 류지호는 박중환과 어울리며 LA 명소를 돌아다녔다.

일부러 파파라치에게 사진도 몇 번 찍혀주었다.


‘이 양반이 연기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건 납득하기 쉽지 않지.’


8~90년대 충무로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배우들이 2000년대로 들어서며 간혹 연기논란을 겪게 된다.


‘동시녹음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환경에서 연기를 해서 그런 건데 말이야.’


과장된 연기와 대사 전달 버릇을 좀처럼 극복하지 못해서 벌어지게 되는 오해다.

한국의 동시녹음이나 촬영은 배우의 연기를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제약을 했다.

붐마이크가 배우의 목소리를 좀 더 디테일하게 담기 위해 조금만 가까이 붙으면 꼰대 촬영감독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러면 동시녹음 기사가 배우에게 목소리 크기를 올려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배우는 당연히 동시녹음팀의 요구대로 감정을 과장해서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동시녹음에 대한 배려가 없는 현장에서 배우가 대사 녹음을 위해 항상 톤이 떠있을 수밖에 없었다.

배우는 감정에 따라 낮게 읊조릴 수도 있고, 속삭일 수도 있다.

풀 쇼트든 미디엄 쇼트든 클로즈업이든 상관없이.

그런 것들이 무시되는 충무로 촬영현장이다.

게다가 포스트프로덕션 사운드 작업 수준도 한심했다.

배우가 더빙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빙 노하우가 쌓일 리가 없다.

배우의 연기 블로킹도 마찬가지다.

배우가 화면 안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지를 줘야 하는데, 배우는 무조건 촬영감독이 제한하는 틀 안에서 연기를 해야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작업하는 이들끼리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콘티가 없으니 현장에서 도대체 뭘 찍는지 모를 경우가 많았다.

오로지 촬영장면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은 감독과 촬영감독뿐이었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장났지.’


충무로가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한 해가 저물었다.

그렇게 맞이한 1997년이다.

대종상 <애니깽> 사태와 영화계 탈세비리 수사, 대기업·금융 자본의 충무로 진출 등 충무로에서 구세대는 퇴장하고 새로운 활력이 돌고 있다.

안타깝지만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도 함께 찾아온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급격하게 영화 환경의 변화 역시 맞이하게 되었다.


✻ ✻ ✻


작년 LOG Company는 신의 한수라고 일컬어지는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ABC방송사와 ESPN 인수가 그것이다.

LOG의 CEO 마이크 아이즈너(Mike D Eizner)는 미래는 영화관이 아니라 가정용 엔터테인먼트에 있다고 확신했다.

제프 가젠버그와의 경영권 싸움에서 승리한 후로 LOG의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

그의 첫 행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홈비디오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 ABC 방송 같은 새로운 미디어를 인수 합병하기 시작했다.

이 인수는 많은 면에서 관심을 증폭시켰다.

먼저 190억 달러의 인수가격.

사상 두 번째 규모의 인수 합병이다.

이 엄청난 거래는 단 10일간의 협상 끝에 이루어 졌다.

ABC의 대주주가 에드워드 버펫이었다.

그가 인수합병에 찬성하는 순간 사실상 두 거대 기업의 합병은 성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거대 기업의 인수합병 협상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이루어졌다.

합병이 발표되자 LOG와 ABC 간의 시너지에 대해 엄청난 기대감이 생겨났다.

LOG는 엄청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ABC방송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방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LOG의 다양한 콘텐츠를 ABC를 통해 좀 더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시너지가 기대됐다.

이로서 LOG Company는 영화, 케이블TV, 방송, 유선전화라는 4개 분야를 장악하게 됐다.

급변하는 미디어 세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또 하나의 미디어 업계 대형 인수합병이 벌어졌다.

미국 굴지의 언론기업인 워너-타임과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의 합병으로 LOG Company에 필적하는 복합미디어 그룹으로 도약했다.

워너-타임은 TBS로 만족하지 않는다.

2000년에 UOL이 1,640억 달러에 워너-타임를 인수합병하게 된다.

신구 미디어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았던 UOL-워너타임 합병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삐걱대기 시작해서 결국 미국 역사상 최악의 M&A 사례로 기록되게 된다.

UOL과 워너-타임이 합병할 당시 에드윈 터너의 주식가치는 대략 72억 달러가 된다.

2년이 흘러 주식가치는 17억6천 달러로 뚝 떨어지게 된다.

또 다른 합병의 주역 레빈 회장의 재산 역시 4억 달러에서 1,000만 달러로 폭락하게 된다.

에드윈 터너는 잘못된 매각 결정으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CNN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된다.

사실상 자신이 일군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삶에 대한 용기까지 읺는다.

물론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동산 부자에다가 미디어 사업 외에도 벌이고 있던 사업들이 많아서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인수·합병(M&A)에서 파트너 관계란 말처럼 쉽지 않다.

갑과 을의 관계는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매우 명확하다.

류지호는 경영을 따로 공부하진 않았다.

기업운영에 있어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세상사와 기업들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강을 알고 있다.

에드윈 터너의 인수합병 제안을 고민 없이 거절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당장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것이 전부다.

결국 더 큰 자본과 권력에 모든 걸 빼앗기게 된다.

게다가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의 주요 주주에 워너-타임과 텔레커뮤니케이션(TCI)이 각각 18%와 21%를 가지고 있었다.

인수합병이 성사된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 권력 쟁투를 벌여야 했다.

설사 류지호가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쨌든 할리우드 빅6들이 이합집산을 통해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도약하는데 반해, 류지호의 행보는 완전히 달랐다.

할리우드 업계와 언론에서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작가의말

새로운 한 달 바라시는 일들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PS. 송소연님, dlfqjq님 과분한 후원감사드립니다. 평안한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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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2) +11 22.10.11 4,624 151 23쪽
300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1) +9 22.10.10 4,605 144 26쪽
299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12 22.10.08 4,691 156 24쪽
298 JHO CONVENTION. (5) +8 22.10.07 4,728 143 31쪽
297 JHO CONVENTION. (4) +9 22.10.06 4,911 161 25쪽
296 JHO CONVENTION. (3) +7 22.10.05 4,756 151 24쪽
295 JHO CONVENTION. (2) +8 22.10.04 4,658 150 23쪽
294 JHO CONVENTION. (1) +6 22.10.03 4,892 161 23쪽
»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3) +6 22.10.01 4,779 159 22쪽
292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11 22.09.30 4,791 146 21쪽
291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 +12 22.09.29 4,760 164 21쪽
290 우리 잘 해봐요. (5) +6 22.09.28 4,845 157 26쪽
289 우리 잘 해봐요. (4) +7 22.09.27 4,752 153 25쪽
288 우리 잘 해봐요. (3) +8 22.09.26 4,776 154 23쪽
287 우리 잘 해봐요. (2) +3 22.09.24 4,830 157 21쪽
286 우리 잘 해봐요. (1) +8 22.09.23 4,976 147 23쪽
285 박스오피스는 내가 더 높거든! +11 22.09.22 4,903 173 28쪽
284 토론토 국제영화제. (6) +6 22.09.21 4,836 164 24쪽
283 토론토 국제영화제. (5) +13 22.09.20 4,725 163 27쪽
282 토론토 국제영화제. (4) +13 22.09.20 4,425 140 26쪽
281 토론토 국제영화제. (3) +7 22.09.20 4,473 122 25쪽
280 토론토 국제영화제. (2) +7 22.09.19 4,712 157 26쪽
279 토론토 국제영화제. (1) +4 22.09.17 4,924 162 28쪽
278 쯧.... 역시 생각이 많은 녀석! +6 22.09.16 4,808 153 26쪽
277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3) +5 22.09.15 4,789 162 26쪽
276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2 22.09.15 4,509 140 23쪽
275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7 22.09.14 4,730 15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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