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연재수 :
901 회
조회수 :
3,838,346
추천수 :
118,862
글자수 :
9,980,317

작성
22.09.14 09:05
조회
4,730
추천
151
글자
25쪽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충청도의 한 사유지 야산.


탕.


산중에 엽총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엽사는 환갑을 훌쩍 넘겨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안경을 쓴 단신이다.

굳게 다문 입매로 인해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보인다.

노인이 엽총에서 탄피를 제거하고, 새로운 총알을 장전했다.


컹컹.


사냥개가 죽은 꿩을 입에 물고 노인에게 달려와 발치에 내려놓았다.

노인은 허허 웃으며, 사냥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유지인 이 야산에서 한가롭게 사냥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오성그룹 집안에서 벌어진 ‘왕좌의 난’이라고 불리는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에 패배한 후,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자신의 몫으로 받은 백설제당은 장남에게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은 채 야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노인은 80년대부터 이미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장남을 보좌하고 있는 것은 부인의 남동생.


“이보게, 처남.”


장손인 이문현의 몫인 백설식품이 93년부터 오성그룹에서 계열 분리 절차를 밟아가기 시작했다.

창업자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내년에는 (주)백설을 지주회사로 하는 식품, 케이블TV 등의 대여섯 개의 계열사를 묶어 그룹체계로 출범할 예정이다.

노인의 처남은 미숙한 조카들의 경영을 돕기 위해 (주)백설의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자네도 함께 사냥을 해보는 게 어떻겠나?”

“저는 사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허허.”


무엇인가를 궁지에 몰아넣고 사냥하는 재미를 가장 잘 아는 이가 바로 처남 손 회장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거늘... 그러고 보면 처남 자네는 너무 인생을 딱딱하게 사는 것 같아.”

“......”

“내 옆으로 가까이 오게. 계속 등 뒤에 서있으면 내가 자네를 돌아봐야 하지 않겠나? 목이 다 아프네.”

“죄송합니다.”


손 회장이 한쪽에 서있는 비서에게 눈짓을 보냈다.

비서 두 명이 재빨리 간의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두 노인 뒤에 놓았다.


턱.


노인은 비서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댔다.

제아무리 야인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노인은 맹수의 새끼였다.

부친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목표를 잃어버려서 그렇지, 그가 몸을 일으키면 다시 한 번 범 오성가문에 파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엽총 한 번 잡아보겠나?”

“죄송합니다.”

“그냥 한 말인데, 죄송할 것까지야.”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이 가만히 야산을 주시했다.


컹컹.

야산 여기저기서 사냥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냥감을 몰아오는 모양이다.


스스스.


노인은 야산의 수풀 쪽을 한참 바라보고만 있다.

손 회장은 이대로 한없이 시간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저어.... 회장님.”

“사냥개들이 조용한 걸 보니, 조금 멀리까지 나간 모양이야.”

“......”

“어떤가? 나와 꿩고기에 소주 한잔 하지 않겠나?”

“네. 감사합니다.”


손 회장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대답을 했다.


“가지.”


일행이 근처의 별장으로 이동했다.

별장으로 들어선 두 사람이 곧장 중앙 거실로 움직였다.


“앉게나.”

“감사합니다.”

“너무 그러지 말게. 자네가 자꾸 그렇게 깍듯하니까, 내 처지를 동정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제가 어찌 매형을....”

“난 끈 떨어진 연이요. 이빨 빠진 호랑일세. 쥐 죽은 듯 시골에 처박혀 소일거리나 하는 늙은이에게 꼬박꼬박 회장은.... 그냥 편하게 하게, 편하게....”


그러고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섯 놈들 중에서 누굴 보낼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온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의견을 모아봤습니다.”

“의외인데. 상당히 골머리를 쓰고 있을 줄 알았거든. 그놈들... 아무리 내 자식들이라도 조막만한 사업에 가라고 하면 좋은 소리 내는 놈이 한 놈도 없을 걸....”


노인에게는 내연녀에게서 얻은 아들까지 슬하의 다섯 명의 자식이 있다.

제 딴에는 야심도 크고, 능력들도 출중했다.


“네 조카 모두 심하게 반발을 했습니다. 그중 셋째 조카는 죽기 살기로 눈을 부릅뜨면서 달려들 기세였습니다.”

“그렇겠지. 건설, 식품, 금융, 케이블방송이 있는데 신생 사업에 가라고 하면 그놈들은 죽어도 스스로 가려고 하지 않겠지. 셋째 놈은 더 그럴 테고, 성질이 더러워서....”

“......”

“쩝, 어째 하나같이 도전 정신이 없어.”


노인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려고 선뜻 나서지 않는 자식들을 보면서 섭섭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자신의 뜻에 따라 줄 것이라 아주 조금이나마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렸다면 어서 말을 해 보게. 그 네 놈들 중에서 어떤 녀석을 찍었는가?”

“홈쇼핑으로 가게 될 조카는 둘째 희경이로 정했습니다.”


(주)백설은 곧 있어 정식으로 그룹 창립을 선언할 예정이다.

또한 영화사업 진출에 이어 홈쇼핑 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미국의 메이저 극장체인과 합자회사를 만들어 멀티플렉스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호오. 희경이가?”

“예.”

“음... 희경이는 영화사업에 뜻이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군.”

“문현이도 동의했습니다. 둘째 조카에게 홈쇼핑을 전담시키고, 종내에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키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과연 녀석다워.”

“사실 희경이는 우리 주력 사업 분야와는 맞지 않는 녀석입니다.”


이희경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국적도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자유분방한 타입이라서 빡빡한 위계질서가 요구되는 한국의 조직생리에 맞지 않았다.

물론 오성전자 미주지사에서 꽤나 성실하게 업무를 봤다는 보고를 받긴 했다.


“녀석은 십중팔구 식품이나 건설, 금융 쪽에서는 못 견딜 거야.”


자신이 아버지라고는 하나 자식들의 삶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서로 경쟁하며 능력을 발휘해야하는 것이 기업가의 숙명이기도 하고.


“녀석이 받아들이겠나? DreamFactory와 협상을 주도한 것도 녀석으로 알고 있는데?”

“둘째 조카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해주십시오. 아이들이 매형을 닮아서 그런지 고집들이 쇠심줄입니다.”

“좋아. 처남 자네의 의견대로 하세나. 오랜만에 희경이와 밥이나 먹어야겠구먼.”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하고 싶지. 아이들이 아직 어려. 처남이 잘 좀 서포트 해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노인의 시선이 문으로 향하였다.


“오는군. 시장한데, 우선 먹고 난 뒤 나머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어.”


드르륵.


문이 열리며 강렬한 식욕을 자극시키는 꿩 요리가 들어왔다.


“요리가 썩 괜찮아 보이지?”

“한 잔 받으시죠.”


손 회장이 노인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영화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긴 한가? 류지호란 아이의 와우인지 바우인지가 한국 영화판을 들었다놨다 한다면서?”

“WaW를 아십니까?”

“내가 한량처럼 빈둥거린다고 무시하는 겐가? 나도 매일 신문도 보고 텔레비전도 봐.”

“회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실 줄 알고.”

“할리우드에서 제법 인정을 받고 있다면서?”

“제법 정도가 아닌 모양입니다. 10년 안에 MSM의 자리가 트라이-스텔라의 것이 될 거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대단한 가문의 비호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난 놈은 난 놈이구만.”


1~2세대 한국 재벌들은 서비스업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오로지 제조업만 높게 쳐준다.

단적인 예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류지호와 PC업계의 신성 사울 델(Saul Dell)에 대한 기업가들의 평가다.

둘 다 미국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기업의 창업자다.

한국 재벌들은 컴퓨터 제조판매 사업을 하는 사울 델을 ‘딴따라’ 류지호보다 고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재벌들의 제조업 중시 마인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인식이다.

재벌들이 그러니 임원들도 똑같이 제조업에만 골몰한다.

미래에는 정보통신과 서비스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더욱 클 것임을 알면서도.


“이왕에 하려면 최고가 되어야지.”

“다행히 아이들이 WaW와 그 회사를 이끄는 청년을 얕보지 않고 있습니다. 되레 경쟁심을 품고 있죠.”

“그렇지. 홀로 앞서가는 자는 발전이 더딘 법이야. 한 발 뒤쳐진 경쟁자가 있어야,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법이지.”

“작은 회장님 쪽에서 영화판을 한 번 흔들어댈 모양입니다.”

“뭐 주워 먹을 것 있다고?”

“밑에 아이들이 손을 쓴 것이겠지요.”


작은 회장님.

노인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손 회장은 진심으로 오성의 진짜 회장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매형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장남이니까.


“셋째가 영화광이잖은가.”

“본가에서 조무래기들 정리해주면, 아무래도 조카들이 조금 편해지겠지요.”

“그냥 자금으로 밀어버려도 되는 걸, 뭘 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벌이는지 원.”

“칼은 휘둘러야 칼이지 않겠습니까?”

“진짜 무사는 함부로 칼을 뽑지 않는 법이야.”


이미지 세탁이란 것이 있다.

재벌은 뭘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뒤 따른다.

특히 영화판처럼 영세한 시장에 진입할 때 여론의 따가운 시선과 저항을 받게 된다.

기존의 부패하고 부정한 기득권을 몰아내고, 새롭고 참신한 세력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그림.

때마침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영세하기 짝이 없는 영화판에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맞춰 영화계의 부정과 비리를 일소하겠다는 명분으로 검찰의 대대적인 내사가 벌어지며 전 방위적으로 영화계를 흔들어대고 있다.

거기에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하는 극장 쪽에 편승해서 대기업 계열 영상사업단들이 관계당국을 압박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재벌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영화판까지 장악하려고 드느냐는 비난으로부터 명분을 얻는 방법이다.

기존 충무로는 썩었다.

차라리 대기업이 들어와서 투명한 회계시스템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선진적인 영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낫다.

겉으로는 충무로의 뿌리 깊은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 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매우 공교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96년 봄의 충무로다.


❉ ❉ ❉


대유그룹의 영화사업부는 미디어 산업에만 발을 뻗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문어발식으로 출판, 유통, 서점가에도 다리를 걸쳐두고 있다.

한국의 재벌 계열사답다고 해야 할까.

모기업은 재개 서열 2,3위를 다투는 대기업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권력 기관과도 선이 맞닿아 있다.


“지가 미국에서 잘 나가면 잘 나갔지. 어디 한국에서 까불어?”


대유영화사업부 본부장 김지훈은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극장 임대를 위해 극장들과 협상을 하다보면, 알짜배기 극장은 G.O.M Cinemas와 장기운영계약을 맺고 있었다.

서울 극장 라인은 오성과 무비서비스가, 자신들은 씨네하우스와 지방 대도시 세 곳의 극장을 임대하는 것에 그쳤다.


"왜 트라이-스텔라 영화를 놈들이 독점을 하느냐 말이야!“

“독점은 아닙니다. 비디오는 동우수출의 영성프로덕션을 통해 배포하고 있으니까요.”

“비디오는 우리에게 줄 수도 있잖아. 이건 공정거래 위반이야.“


김지훈이 할 말은 아니다.

대유계열의 비디오업체 우일영상은 20세기 PARKs, CIC 비디오(UPI 홈비디오), 소닉과 제휴를 맺고 있다.

홈비디오 사업을 전개하지 않는 WaW 픽처스를 비난할 입장은 아니다.

WaW 픽처스는 미디어 그룹이라 불리기에는 손색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계만 한정하면 다르다.

외화 수입·배급, 한국영화 투자·제작·배급, 극장 상영, 비디오 출시까지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걔들이 한 번에 몇 곳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지?”

“전국적인 배급망을 통해 3~40개 상영관에서 동시 개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손익분기점 넘기는 게 누워서 떡먹기지.”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 허용과 맞물리며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영화 프린트 벌수 제한이 1994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전국적인 배급망을 갖춰가고 있던 할리우드 직배사와 WaW 픽처스에게 영업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오죽하면 '충무로'라는 말이 ‘Wa무로'라고 불리고 있을까요.”


그렇게 불릴 정도는 아니다.

후발주자들이 배가 아파서 하는 말이다.

WaW 픽처스는 대기업 못지않은 자금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로 인해 순수한 충무로 자본이라고 보지 않는 영화인들도 많았다.


“듣기로는 미국 쪽에서 자금이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어디서 돈이라도 찍어내나?”


한국의 배급사들은 할리우드의 흥행영화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직배사들이 선점하고 있기에.

대기업 수뇌부에서는 영화 사업에 과연 전망이 있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당시의 한국은 세계 10대 영화수입국으로 꼽히고 있었다.

88년 UPI의 <위험한 정사>로 시작된 직배영화는 89년 12편, 90년 38편으로 쭉쭉 늘어나, 올해는 국내 영화시장의 절반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영화시장 점유율은 직배영화가 41.5%, 직배를 제외한 외국영화가 35.4%, 한국영화는 고작 23.1%에 불과한 상황이다.

영화 1편당 관객수도 한국영화는 17만7천여 명에 불과한데 비해 직배영화는 37만1천여 명으로 압도적이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미국 본사에 송금하는 로열티도 해마다 30% 가까이 늘어나 88년부터 올해까지 5개 직배사의 송금액이 무려 1,100억 원에 이르렀다.

한국 영화시장의 무역적자, 다시 말해 문화역조현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4,000여 편 이상 제작되고 있다.

그 중 한국은 연간 483편의 외국영화를 수입하고 있다.

이중 미국영화가 272편으로 절반이 넘는 56.3%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영화의 외국 수출은 91년 18편, 92년 21편, 93년 19편, 94년 17편, 95년 18편 등 연간 20편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편당 평균 수출가도 91년 27,936달러, 92년 17,815달러, 93년 16,043달러, 94년 44,349달러, 95년 13,912달러 등 외국영화의 편당 수입가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액수다.

극장상영 영화만 역조현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지난 해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중 국산 비디오물은 802편인데 비해, 외국 비디오물은 1,653편으로 67%나 차지하고 있다.

한국영화 시장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랬다.

WaW 픽처스만 따로 놓고 보면 상황이 조금 달랐다.

과장 좀 보태서 한국영화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WaW 픽처스의 역할이 지대했다.

직배를 제외한 외국영화 수입현황 35.4% 가운데, WaW가 22%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영화 편당 평균 관객수에 있어서 26만여 명으로 다른 배급사에 비해 월등했다.

WaW 픽처스는 ParaMax Films을 통해 한국영화를 북미에 배급을 하고 있다.

판권 일괄 판매가격인 5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다른 한국영화에 비해 월등한 수익을 얻고 있다.

올해 초에 문체부에서 발표한 한국영화 동향 보고서의 내용들이다.

김지훈은 배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왜 검찰에서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거야?”


김지훈이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가벼운 잽부터 시작해 보려고 했는데, 아예 싹을 잘라버릴 수 있으면 이번에 거꾸러뜨려야 해.”


김지훈은 독한 마음을 먹었다.


“나요, 영감님....”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남성을 대접하여 부를 때 사용하는 영감이 아니다.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 즉 공무원 사회에서 검사나 판사에게 사용하는 바로 그 영감이다.


“술 한 잔 합시다.”


김지훈은 일찍 퇴근해 검사들이 단골로 애용하는 강남의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서울대 동기동창 고위직 검사와 질펀한 술판을 벌였다.

일반인들이 출입하지 않는 술집이다.

왜냐하면 술 맛이 나지 않기에.

검사와 고위 공직자들이 단골이다 보니 술집에서도 딱히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당연히 양아치들도 접근을 안 한다.

한정된 손님이 출입하다보니 술값이나 안주값의 단가가 매우 높다.

술값?

설마 검사들이 먹는 술값을 각자 부담할까.

그렇다고 검찰청 운영비를 쓰지도 않는다.

대부분은 접대를 받는다.

자기들끼리 와서 술을 마셔도 전화 한 통화이면 술값이 해결된다.

술값을 대신 내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자들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러니 검사의 퇴근 후 한잔은 거의 일상생활이 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다.

매일 공짜로 밥 먹고, 술 먹고 휴일에는 골프도 치고 휴가철에는 돈 한 푼 안 쓰고 가족들과 피서를 다녀올 수도 있다.

군부 독재시대에는 검사들도 딴에는 눈치를 봤다.

문민정부가 되면서 완전 바뀌었다.

대한민국 검찰은 내부적으로 사치와 향락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정재계와 결탁하여 그 권력을 사유화하기 시작했다.

검사들 술자리에는 일반 접대부들이 없다.

현역 여자연예인들이 동석한다.

김지훈이 마련한 룸싸롱 접대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은 영화인 출신의 송영석이 책임졌다.

충무로에서 임화수가 처음으로 연예인 성접대를 시작했다.

그 이래도 여의도와 강남의 모처에서 밤마다 더러운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문제가 되어도 연예인만 다치는 그런 어둠의 세계다.


❉ ❉ ❉


꽝!


김재욱이 문을 박차고 박건호 대표실로 들어왔다.


“어허, 그 큰 덩치로 문을 과격하게 열면 부서지지 않겠어요?”

“대, 대표님! 지금 그런 한가한 말씀하실 때가 아닙니다!”

“어디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습니까?‘

“호떡집이 문제가 아니라. 충무로에 난리가 났어요!”

“<은행나무 침대> 보고는 이미 받았으니, 흥분을 가라앉혀요.”

“그런 게 아니라고요!”


김재욱이 신문을 박건호 대표 앞에 펼쳐 놓았다.


“.....음!”


박건호 대표의 입에서 신음을 흘러나왔다.

마치 올 것이 왔다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기사 타이틀.


[매출액 줄여 신고··· 세금 4억대 포탈 관련 가능성... 세무공무원도 수사키로.]


검찰의 영화계 비리 중간수사발표가 신문지면을 수놓고 있었다.

영화배급사와 극장들의 탈세와 횡령 혐의에 관한 내용들이 매우 자세하게 적시되어 있었다.

심지어 일부 관련자들의 실명까지 거론되어 있었다.


“언젠가 터질 줄 알았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기 시작하는 1996년 봄이다.

그런데 한 겨울의 강추위보다 더 매서운 한파가 불어오고 있다.

충무로에 불어 닥친 한파가 강남대로에 위치한 WaW 픽처스로 몰려오고 있다.

바야흐로 꽃샘추위보다 더욱 매서운 한파가 영화판에 불어 닥치고 있다.


❉ ❉ ❉


- [영화계 비리수사] 구조적 비리··· 탈세-공무원유착 파악 초점


[영화업계 탈세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2부(김민철 부장검사)는 수입 및 국산 영화를 공급하면서 매출액을 줄여 신고하는 수법으로 4억8천여만 원의 세금을 포탈한 태양영화사 이모 대표(58)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씨는 지난 94년 3월 말 직접 제작한 영화와 미국 콜롬비아스사 등 외국 영화사로부터 ‘단매방식’으로 매입한 영화를 지방 배급업자에게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팔면서 세금계산서를 허위로 작성, 매출액을 실제보다 7억1천여만 원이 적은 72억3천여만 원으로 신고해 법인세 2억4천여만 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단매방식’이란 영화의 흥행 및 상영권을 일괄적으로 매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씨는 또 지난 93년부터 95년까지 흥행수입을 조작해 매출액의 10%씩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1억2천여만 원도 포탈한 것으로 밝혀졌다.]

- 한국신문. 사회부 하동훈 기자.


와락.


장문식이 읽고 있던 신문을 구겨버렸다.


“이거.... 우리 예상보다 빠른데....?”


강현도가 의아해 되물었다.


“빠르다고요?”

“초여름, 늦으면 가을 쯤 터트릴 줄 알았거든.”

“왜요?”

“작년까지 초대형 사건사고가 팡팡 터졌잖아. 지금은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조용하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평온한 적이 있었냐?”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죠. 이놈의 나라는.....”

“강석이형 죽은 것 말고는 별 사건이 없다는 거지.”


올 1월, 아이돌급 가수의 죽음으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포크 가수 김강석마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여담으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썼던 허준우 감독이 김강석의 활짝 웃는 영정사진을 보고 큰 감흥이 일어나 <8월의 크리스마스>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형님보다 동생뻘입니다만.”

“강석이는 형이야 형. 따지지 마. 영필이형, 강석이형. 우리에게는 영원한 형이야.”

“.....”

“암튼 이 시점에서 충무로 비리사건을 터트렸다? 수사 진척이 50%가 막 넘어가는 시점에서.....?”


달달달.


장문식이 방정맞게 떨며 생각을 정리했다.


“....현도야?”

“예. 형님.”

“아무래도 우리 말고도 움직이는 놈들이 있는 모양이다.”

“누가요?”

“대유나 오성, 경일 정도 되어야 검찰이 바짝 성실하게 일하지 않을까?”

“걔들이 영화판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요.

“검찰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할 이유가 없잖아. 무슨 고관대작 비리사건도 아니고.”

“것도 그렇습니다.”

“지들도 구린 게 없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구린 게 없다고요?”

“대기업 영상사업단 걔들도 국세청 세무감사 들어가면 다 뽀록 나게 돼있어.”

“외화 수입가 축소 신고하는 거야 영화판에서는 특별한 일도 아니지요.”

“어쭈? 네가 그런 것도 알아?”

“서당 개 삼월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치고..... 지들은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는 말이렸다....?”


장문식의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 ❉ ❉


며칠 후.


YnTV에서 영화계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화 수입가격 축소신고 뉴스가 났다.

거기에 더해 극장과 지방배급업자 간 커미션 관행이 탐사보도 형태로 방영되었다.

사회부 송일성 기자의 단독보도였다.

MBS 9시 뉴스는 한술 더 떴다.

비슷한 시장규모의 해외 사례와 일일이 비교해가며 한국의 외국영화 수입 가격에 대한 의혹을 제시했다.

토착 충무로 수입사뿐 아니라, 후발주자인 대기업 계열 영상사업단, 할리우드 직배사 모두가 포함된 관행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연일 언론에서 충무로의 구시대적 관행과 비리가 터져 나왔다.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았다.

어지간한 규모의 수입배급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예외가 없었다.

WaW 픽처스 역시 실무책임자가 조사를 받은 데 이어 박건호 대표까지 검찰로부터 소환조사통보를 받았다.


- 회장은 미국에 있습니까?

“우리 회사에는 회장이란 직함이 없습니다.”

- 류지호씨 말입니다.

“이사회 의장이십니다.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

“이번 사안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 언제 들어옵니까?

“졸업하면 돌아오시겠죠. 미국에서 쭉 영화를 하실 수도 있고.”

- 뭐요?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는 분은 왜 찾는 겁니까?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본 사안에 대해 조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 오너 아닙니까! 오너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

“WaW는 소유와 경영이 철저히 분리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책임질 일 있으면 최고경영자인 제가 지면되는 겁니다. 공연히 공명심 때문에 관계없는 분 끌어드리지 마십시오.”


담당 검사 중 하나가 은근히 류지호를 끌어들이려고 수작을 부렸다.

김지훈에게 이른바 성접대를 받은 서울대 동창생이다.


“오성, 대유, 한보, SGC. 새한, 진로는 언제 저희처럼 소환조사를 받는 겁니까?”

- 그걸 왜 당신이 궁금해 합니까?

“기존 충무로만 들여다보지 마시고, 이왕에 비리척결을 하려거든 후발주자들도 공평하게 조사 해주시길 바랍니다.”


박건호 대표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 사람이 어디서 훈계질이야!”


이후로 박건호 대표는 다온의 변호사가 리드하는대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영화계 고질적인 비리에 대한 검찰의 메스는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 했다.

다만 영화계가 비리 집단으로 낙인찍혀 국민의 불신이 가중될 것이 박건호는 우려가 되었다.

특히 최근 영화산업에 뛰어든 대기업과 미국 메이저 직배사가 한국영화를 지켜온 기존 영화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언론과 사법기관 모두 본래 영화판을 지켜왔던 이들의 편이 아니다.

대기업의 편이었으니까.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니름님 매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4 영화 기술사의 한 획! (3) +5 22.10.14 4,511 139 24쪽
303 영화 기술사의 한 획! (2) +11 22.10.13 4,532 156 24쪽
302 영화 기술사의 한 획! (1) +7 22.10.12 4,766 148 25쪽
301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2) +11 22.10.11 4,624 151 23쪽
300 인생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어. (1) +9 22.10.10 4,606 144 26쪽
299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12 22.10.08 4,692 156 24쪽
298 JHO CONVENTION. (5) +8 22.10.07 4,728 143 31쪽
297 JHO CONVENTION. (4) +9 22.10.06 4,911 161 25쪽
296 JHO CONVENTION. (3) +7 22.10.05 4,758 151 24쪽
295 JHO CONVENTION. (2) +8 22.10.04 4,659 150 23쪽
294 JHO CONVENTION. (1) +6 22.10.03 4,892 161 23쪽
293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3) +6 22.10.01 4,779 159 22쪽
292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11 22.09.30 4,791 146 21쪽
291 말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1) +12 22.09.29 4,761 164 21쪽
290 우리 잘 해봐요. (5) +6 22.09.28 4,845 157 26쪽
289 우리 잘 해봐요. (4) +7 22.09.27 4,753 153 25쪽
288 우리 잘 해봐요. (3) +8 22.09.26 4,776 154 23쪽
287 우리 잘 해봐요. (2) +3 22.09.24 4,831 157 21쪽
286 우리 잘 해봐요. (1) +8 22.09.23 4,976 147 23쪽
285 박스오피스는 내가 더 높거든! +11 22.09.22 4,904 173 28쪽
284 토론토 국제영화제. (6) +6 22.09.21 4,838 164 24쪽
283 토론토 국제영화제. (5) +13 22.09.20 4,726 163 27쪽
282 토론토 국제영화제. (4) +13 22.09.20 4,427 140 26쪽
281 토론토 국제영화제. (3) +7 22.09.20 4,473 122 25쪽
280 토론토 국제영화제. (2) +7 22.09.19 4,712 157 26쪽
279 토론토 국제영화제. (1) +4 22.09.17 4,924 162 28쪽
278 쯧.... 역시 생각이 많은 녀석! +6 22.09.16 4,808 153 26쪽
277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3) +5 22.09.15 4,789 162 26쪽
276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2) +2 22.09.15 4,509 140 23쪽
» 큰 힘에는 큰 문제가 따르는 법. (1) +7 22.09.14 4,731 151 2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