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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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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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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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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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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The Destroyer. (1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앞으로 10년이 흐르면 자동차 액션에서 CG 합성이 기본이 된다.

그럼에도 모든 걸 컴퓨터 그래픽에 의지하진 않는다.

실제 촬영과 스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심지어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컴퓨터 그래픽이 대세인 시대에서 아날로그 카체이스가 어디까지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자동차 액션을 위해 차량개조는 기본이다.

또한 특수하게 제작된 촬영 장비들이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용 촬영 리그(Rig)라 불리는 것들이다.

쉽게 말해 달리는 자동차에 카메라와 조명 장비를 부착할 수 있는 장비다.

달리는 자동차 내부의 인물을 촬영하는 데 많이 활용된다.

달리는 자동차를 외부에서 똑 같은 속도로 달리며 촬영하기 위해서는 ‘카메라 카’도 필요하다.

충무로에서는 ‘슈팅카’라고 부르는데, 할리우드에서는 ‘Shotmaker(camera car)'라고 부른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슈퍼카라 불리는 고가의 스포츠카를 개조해 camera car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호르셰를 camera car로 개조해 사용했다.

또한 카메라 카는 다양한 각도에서 안정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암(camera arm)과 안정 장치(stabilizer)를 갖추고 있다.

배우는 물론 자동차가 복잡한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대리운전장치(Remote Drive POD)도 널리 쓰인다.

즉 배우가 아닌 전문 드라이버가 차를 원격으로 운전할 수 있는 장치다.

보통은 차량 지붕에 리모트로 운전할 수 있는 박스를 부착하고 전문 드라이버가 탑승해서 ‘대리 운전’한다.

공터에 대기하고 있는 특수개조 촬영차량들을 돌아보며 최영웅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이 차들을 모두 돈으로 계산하면 도대체 얼마야.....!”


버기카에 리그를 달고 있는 camera car부터, 지미 집이나 테크노 크레인을 장착하고 있는 camera car, 카메라 세 대와 조명기를 동시에 장착할 수 있는 초대형 camera car 등.

자동차 액션을 촬영하기 위한 각각의 기능을 갖춘 camera car 6대가 대기하고 있다.

최영웅의 뒤에서 류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나라 돈으로 20억이 넘을 걸?”


최영웅이 몸을 돌리자, 류지호가 양손에 들고 있던 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커피를 받아든 최영웅이 물었다.


“이것들을 다 미국에서 공수해 온 거야?”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너도 홍콩에서 작업하면서 본 타입의 camera car는 독일에서 가져왔어. 자이로 시스템을 장착한 암을 달고 있는 것들은 미국에서 공수해 온 것이고.”


자이로(gyro stabilized head)라는 특수 기구가 헤드에 장착된 camera car는 비교적 최신 장비다.

비행기나 선박의 기울기를 평평하게 유지시키는 것이 영화 촬영장비로 전파된 기술이다.

평평한 도로 위를 달리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리든 자이로 헤드가 카메라를 항상 수평을 유지하게 해준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 자이로가 영상분야에 도입된 것도 혁명적인 변화야.”

“정말 내가 말이 안 나온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뭘. 네가 캐머론이나 베이가 촬영하는 걸 못 봐서 그래.”

“진짜 할리우드는 충무로 영화 한 편 제작비 가지고 한 씬을 찍는다고 하더니.... 블록버스터라서 그런가?”

“엄밀히 말해서 블록버스터는 아니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000만 달러가 넘는 예산의 영화는 블록버스터 범주에 들어갔다.

이젠 7.000만 달러 이하 예산 영화에 블록버스터란 문구를 잘 안 붙이는 추세다.


“이번 영화에서 톰 메이포더나 아놀트 슈발츠네거가 출연했으면 나도 이렇게 못 찍었을 걸.”

“왜?”

“그 사람들은 혼자서 제작비의 30%를 가져가니까. 아마 해외 로케이션은 2주 간 진행하고 캘리포니아 어디 한적한 곳에 세트를 만들어 후다닥 찍어야 했을 거야.”

“정말 미쳤다, 미쳤어!”

“장단점이 있어.”

“무슨 장단점?”

“할리우드 영화는 아무리 길게 찍는다고 해도 16주에서 끝내. 충무로처럼 세월아 네월아 6개월 10개월 안 찍어. 그게 다 인건비 부담 때문이지.”

“홍콩은 그 보다 훨씬 빨리 끝내버리는데?”

“그래서 홍콩영화는 작품마다 퀄리티가 널뛰잖아. 할리우드는 공정의 표준화와 철저한 생산관리로 불량률이 적은 반면에 홍콩이나 아시아 영화들은 불량률이 엄청 높지. 뛰어난 장인은 존재해도,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부실하잖아.”

“그건 그래. 나도 방가반에 있으면서 여기저기 불려가 영화를 찍어봤거든. 거기도 쌈마이 천지야. 그냥 날림으로 막 찍더라. 내가 사실은 객지에서 쌈마이 영화 대역하기 싫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

“부럽다고 배 아파만 하지 마. 너도 언젠가 이런 장비보다 훨씬 뛰어난 장비로 멋진 스턴트 디자인을 영화에서 구현할 날이 올 테니까.”

“네가 한국에서 영화 찍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맞다.

이런 규모를 감당할 사람이 한국에는 없다.


“저기 NSS라는 로고가 붙은 camera car 보이지?”

“자이로인가 뭔가 달린 거?”

“저 회사 내가 투자하고 있어.”


Nettmann Shooting Systems.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영상 특수장비 제조 및 렌탈 업체다.

헬리콥터 카메라 마운트, 수중촬영 시스템, Body Cam, 리모트 캠, 자이로 안정화 플랫폼 등을 폭넓게 다루는 업체다.


“네트 시스템 뭐 시기가 네 회사란 거야?”

“투자만 했어. 사장이 회사는 절대 팔지 않겠대.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의 투자도 받지 않아서.”


류지호는 자신이 후원하는 스탠퍼드와 버클리 공대 대학원 유학생 출신 두 명을 NSS에 입사시켰다.

그곳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히라고.

한국에 가온 디지털 센터가 완공되면, 그들을 불러들일 생각이다.

그들에게 투자해 디지털 영상장비에 맞는 장비를 만드는 업체를 설립할 계획이다.

영상장비 시장의 규모가 별 볼일 없을 것 같다.

생각보다 굉장히 큰 시장이다.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영상장비 박람회에는 전 세계 수만 명의 바이어와 관람객들이 모여든다.

영화 산업만 놓고 보면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은 맞지만, 방송으로 영역을 확장하면 전 세계 시장규모가 꽤나 크다.

특히 짐벌, 드론, 스마트 기기용 장비 시장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 못지않다.

아직까지 자이로 시스템은 북미와 유럽 일부국가에서 촬영장비에 적용되고 있다.

5년 정도 지나면 러시안 암, 스콜피오 암 등 경쟁력 있는 장비들이 줄줄이 출시된다.

어쨌든 류지호는 가장 경쟁력 있는 미국 본토의 업체를 당장 가질 순 없었지만,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향후 한국에 디지털 센터가 설립되면 한국도 영상 특수장비 시장에 명함을 내밀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이러다가 Panaflex도 사버리는 거 아니냐?”

“글쎄. 인수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고. 당장은.... 뭐 그래.”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 모를까.

Panaflex와 Kozak을 인수하긴 힘들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


“한국에서는 네 진면목을 정말 모르는 것 같아.”

“그래야 해.”

“일부러 감추는 거야?”

“감추진 않아 정보를 잘 안 줄 뿐이지.”

“그럼 나하고 재민이가 실수한 건가?”


최영웅이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LA에서 사귄 한국 교포들에게 류지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


“미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뭘. NSS 같은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건 잘 모르겠지만.”

“한국 가서는 입조심 해야겠네?”

“그래주면 고맙고.”

“재벌들이 최대한 자신들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 뭐, 그런 거야....?”

“꼭 그런 건 아니고. 세상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만 하는 게 아니라 해코지하려드는 사람도 있고, 미친놈도 많거든.”

“미, 미친 놈?”

“무슨 민병대인가 하는 백인우월단체 놈들이 툭하면 협박 편지나 전화를 걸거든.”

“그런 놈들을 가만히 둔단 말이야! 콩 밥을 먹여야지!”

“콩밥 대신 시리얼을 먹고 있겠지. 눅눅한 빵이랑.”


감옥에 갔다는 의미다.

간혹 웨스트우드 헤드쿼터나 트라이-스텔라로 요상한 편지와 소포가 배달되고 있다.

협박이나 테러 위협이다.

물론 류지호가 직접적으로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신 나간 인간들을 두고 볼 데본 테럴과 도널드 제이콥이 아니다.

Pinkerton Corp.을 움직여 크게 혼내줬다.

매년 미국 참전용사회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류지호다.

때문에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상류층 백인우월주의자라고 해도 대놓고 류지호를 공격하기 쉽지 않았다.


“눈물 젖은 빵 먹으면서 오늘을 이겨낸다는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말자, 영웅아. 쌀밥도 먹고 짜장면도 먹고, 스테이크도 썰면서 훈련하고 공부하고 실험도 하고.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성과... 돈으로 매일 프랑스 코스 요리 먹어.”

“자식이... 그건 너니까 가능한 이야기고.”

“생판 남한테도 공부시켜주고 먹을 거 입힐 거 지원해주거든, 내가. 친구한테 그 이상을 못 해주겠냐?”

“....친구.”

“내가 옛날하고 달리, 가오도 있고, 돈도 엄청 많다. 내가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오늘보다 더 좋은 장비, 더 숙련된 전문가들, 더 풍족한 환경에서 해 보고 싶어.”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일개 스턴트맨일 뿐인데.”

“처음 빅키를 만났을 때.... 빅키는 비디오 영화나 TV시리즈 스턴트 디자인을 하고 있었어. 헌데 지금 봤지? 블록버스터 주로 하고 있는 거.”

“네가 도와줘서 그런 거 아냐?”

“그걸로 되겠냐? 스스로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결과지. 실력과 성실함으로. 당당하게.”

“네가 도우니까 최고의 팀원을 꾸릴 수 있었던 것 아니었어?”

“오늘 최고가 내일도 최고라는 보장이 없는 곳이잖아.”

“그렇지. 이놈에 딴따라 판은.”

“한두 편 말아먹으면 바로 평판이 추락하는 곳이지. 단가 후려치기는 할리우드도 똑 같아.”

“빅키가 오픈 마인드이긴 하더라. 방사룡도 <캐논볼> 찍을 때 텃세 때문에 엄청 힘들었다고 하더라고. 사실 빅키팀에도 날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애들도 있어.”


최영웅은 아차 싶었다.

마치 Vic & Jay의 내부사정을 고자질하는 셈이다.


“원래 그래.”


인종차별주의였다면 류지호가 당장 잘랐을 터.

최영웅의 실력을 경계하는 것이다.

아시아 출신들이 할리우드 스턴트업계에 진출하게 되면 그만큼 밥그릇이 줄어드는 것이니까.


“홍콩 영화판은 안 그러디?”

“그랬지. 홍가반 놈들 중에 제 보스를 닮아서 안하무인처럼 구는 놈이 있었는데... 내가 아주.... 그냥...!”


최영웅이 이를 박박 갈았다.

홍삼모는 한국에서 흑사회 간부라는 루머가 있을 정도로 안하무인이란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홍콩영화계에서 폭군으로 통한다.

팀원들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쥐 잡듯이 잡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국 돌아가면 똑같은 일을 당할지도 몰라. 거기서도 넌 굴러온 돌이니까.”

“홍콩이나 여기만 하겠냐? 그래도 같은 한국 사람끼리.”

“나도 예전엔 의리니 낭만이니, 참 많이 찾았더랬다. 근데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몇 사람 없더라. 그거 아냐? 두 사람만 있으면 사이좋게 지내거나 서로 반목하고 싸우거나 둘 중 하나야. 근데 세 사람이 넘어가면 그때부터 정치가 생겨. 편이 갈리면서 온갖 이전투구가 벌어지지. 한 사람의 욕망이 집단의 이익으로 변질되면서 온갖 멍멍이 판이 벌어지더라고.”


류지호는 충무로 영화판이 대기업 자본에 휘둘려 망가진 줄 알았다.

이젠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난 운동만 한 놈이야.”

“큭. 그렇지. 너나 재민이는 그런 놈이지.”

“정치 같은 건 관심 없어.”

“걱정 마. 정치는 이 엉아가 하마. 넌 네가 좋아하는 스턴트만 열심히 해라.”

“지호야.”

“응?”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뭔데?”

“우리가 친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넌 나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더라. 너처럼 회장이 되고 높은 곳에서 딱 내려다보면 그렇게 사람을 잘 파악하는 거냐?”

“글쎄... 내가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


그때 2nd 조감독이 달려왔다.


“캄독님! 촬영 시작합니다.”

“하하. 알겠어. 가자 영웅아.”


촬영현장에서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예전엔 미처 몰랐다.

얼마나 위안이 되고 마음에 안정이 되는지.

건방지게 류지호에게 텃세를 부리는 사람은 없지만, 때때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감독의 숙명과도 같은 고독, 그 빌어먹을 놈은 어쩔 수 없지만.


✻ ✻ ✻


부우웅!


낡은 슈코다(Škoda) 자동차를 세르비아계 반군들이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평원을 질주하는 슈코다 브랜드 자동차는 레모 윌리엄스가 운전하고 있다.


[반군들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데, 왜 UN은 보고만 있는 겁니까?]

[유엔헌장 제 6장. 평화유지군의 그 망할 근무지침에 지나치게 충실한 탓이죠.]

[그게 뭡니까?]

[중립을 지키고, 공격받지 않는 한 사격하지 않는다.]

[죄 없는 민간인이 죽어 계곡에 파묻히는데, 그게 무슨....!]

[그런 거 따질게 아니라, 운전에... 악! 놈들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요! 한 눈 팔지 말아요!]


탱크는 등장하지 않지만, SUV 여러 대가 꼬리에 따라붙었다.

차창 밖으로 몸을 뺀 반군들이 슈코다 자동차를 향해 소총을 갈겨댔다.


타타타탕.

퍽.


슈코다 브랜드 자동차의 유리창이 터져나간다.

반군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열심히 달려보지만, 좀처럼 거리가 벌어지지 않는다.

레모 윌리엄스의 눈앞에 기찻길이 나온다.

저 멀리서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는 화물열차까지.

어디서 많이 보던 바로 그 기찻길.... 클리셰다.


[설마? 아니겠지....]


MI6 요원의 우려와는 달리 레모 윌리엄스는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액셀러레이터를 더 힘껏 밟는다.

화물열차가 지나치는 것보다 먼저 기찻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듯.

반군의 지휘관이 세르비아어로 운전병을 닦달한다.


뿌우웅.


화물열차가 경고의 기적소리를 울려댄다.


[자신 있어요?]

[몰라요.]

[자신 없으면...]

[놈들에게 순순히 잡혀줄 겁니까?]


슈코다 자동차와 화물열차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도저히 기찻길을 통과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반군의 SUV는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여유가 넘친다..

슈코다 자동차는 과연 화물열차보다 한발 빨리 철길을 넘어갈 수 있을까.


부웅!


슈코다 자동차가 날아오른다.

평원에 약간의 구릉을 만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자동차가 점프하는 것은 영화적인 과장이다.

액션영화에서는 허용범위다.

클리셰니까.

화물열차의 동력차 부분이 슈코다 자동차보다 먼저 철길을 지나친다.

이제 화물칸과 충돌만 남았다.

관객들의 예상을 또 빗나가는 전개다.

원래라면 간발의 차이로 통과해야 하는데....

슈코다 자동차가 화물칸을 향해 돌진한다.


꽝.


그대로 화물칸에 박혀버리는 슈코다 자동차.


[어어! 저 저기....]


세르비아 반군들이 당황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차를 멈추거나, 철길을 넘어가거나.

둘 중 하나의 상황이어야 했다.

그런데 화물칸에 승용차를 돌진시켰다.

결과적으로 무임승차처럼 승용차 채로 화물열차에 탑승한 꼴이 되어버렸다.

화물열차의 기관사는 열차 꽁지에 붙은 세르비아 반군을 보고, 겁을 집어 먹는다.

당연히 열차의 속도를 더 올린다.

마침내 화물열차는 평원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세르비아 반군은 추격을 멈춘다.


[와우!]


레모와 MI6 요원이 화물칸에 박힌 슈코다 자동차에서 몸을 뺀다.

슈코다 자동차 뒷유리 너머로 풍경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다.

그의 무모한 시도가 멋지게 성공한 것이다.


“원래 이렇게 쉽게 찍는 거였나....?”

“서부영화가 득세하던 시절부터 열차장면은 할리우드 스턴트맨들의 전문분야니까.”


류지호의 말대로 자동차 점프, 자동차(혹은 말) 열차추격은 할리우드 스턴트의 단골메뉴다.

촬영은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할리우드 스턴트팀이 밥 먹듯이 하는 것이니까.

실제 평원에는 철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블루 스크린이 슈코다 자동차가 날아오르는 곳에 12m 길이로 설치되어 있을 뿐.

철길, 화물열차, 화물칸에 처박히는 승용차, 심지어 하늘의 구름까지 모두 CG로 재창조된다.

평원을 질주하는 자동차 추격씬은 시원시원한 앵글이 주를 이뤘다.

할리우드 촬영감독들은 와이드 샷을 정말 잘 찍는다.

똑같은 카메라, 똑같은 렌즈를 쓰는데, 세계 어떤 촬영감독보다 와이드 샷이 근사하다.

당연한 거다.

할리우드 촬영감독들은 와이드 샷을 정말 많이 찍어본 사람들이다.

어떤 장소에 가더라도 와이드 샷 감각이 좋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슬로바키아에서 촬영한 각종 추격씬들에는 와이드 샷이 많다.

반면에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도심 추격전은 타이트한 샷과 좀 더 빠른 템포의 장면전환으로 정신없는 편집이 이뤄질 예정이다.

화물열차 무임승차 씬에서도 눈을 시원하게 해 줄 평원의 풍경을 담았다.

넓은 화면과 긴 호흡의 쇼트들이 편집되기 때문에, 레이먼드 쿤디는 화면의 앵글마다 차량의 속도감이 확연히 느껴질 수 있게 프레임레이트를 다르게 잡았다.

즉 차량 측면, 정면, 후면의 고정 카메라의 프레임레이트가 미묘하게 다르게 촬영되고, camera car에 실려서 현란한 카메라 워크를 펼친 지미집이나 스태디 캠은 정상 속도로 촬영했다.

할리우드 스턴트팀은 전 세계에서 자동차 액션을 가장 잘 찍는다.

수많은 경험을 해 봤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장비를 개발해서 사용함으로써 엄청난 노하우들이 쌓아왔다.

빅키팀의 카 체이스 전문가 데니스 풀만은 쉽게 카 액션을 촬영했다.

복잡한 주행이 아니라서 더 쉽게 촬영을 완수했다.

참고로 자동차 내부에서 워커와 와츠가 대화를 나누는 커트들은 나중에 LA로 돌아가 세트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할리우드 상업영화는 대체로 자동차 내부는 스크린 프로세스 세트장에서 몰아서 촬영한다.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하면서 빛 반사 문제 등으로 창문을 제거한 채로 촬영한 후에 창문 느낌까지 CG로 구현할 정도다.


“휘유~”


최영웅은 <Remo : The Destroyer>에 참여한 후로 매일 신세계를 만나고 있다.

일명 ‘슈팅카’라 불리는 개조 차량에 카메라를 세팅하는 충무로 촬영 방식은 촬영팀 서너 명과 카메라가 차량 밖에 노출되어 있다.

안전벨트 같은 장치도 없다.

언제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

그렇다 보니 안전을 이유로 아무리 빨리 달려봐야 70km 정도의 속력밖에 내지 못했다.

그것도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이는 미래에도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한국영화의 자동차 추격 씬이 다른 장면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도 느린 슈팅카 속력 때문이다.

자동차 추격 씬을 찍을 때마다 자동차의 느린 속력을 감추기 위해 배우가 긴박한 척하는 연기를 주로 했다.

그렇게 애를 쓴다한들.

인물 뒤의 배경은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

전문가들이 볼 때는 애처롭다.

느린 것도 문제지만, 스태프가 자동차 밖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솔직히 슈팅카 타는 게 무섭긴 하지....’


반면에 류지호의 제작진이 활용하고 있는 camera car들은 스태프들이 자동차 안에 안전하게 있으면서 최대 140km의 속력까지 달리며 원격으로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자이로 시스템의 헤드에 장착한 카메라 덕분에 카메라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화면에 담길 수 있었다.

리모트 컨트롤로 빠른 속력으로 달리며 촬영이 가능한데다가 크레인의 움직임이 기존 장비에 비해 유연한 것도 놀라웠다.

물론 camera car 밖에 노출되어 스태디 캠 오퍼레이터가 촬영을 하기는 했다.

그조차 각종 안전장치로 온 몸을 도배한 후 camera car 정면에 만들어놓은 위치에 탑승해서 촬영했다.

안전조치가 미흡하면 프로덕션 매니저가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는 감독인 류지호조차 나설 수가 없다.

그것이 할리우드 촬영현장의 절대적인 룰이니까.

참고로 내년에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할리우드 camera car를 들여온다.

그 camera car를 <쉬리>에서 쏠쏠하게 써먹는다.

camera car를 만들거나 개조하는 것은 그리 복잡한 노하우가 필요하진 않다.

다만 무거운 크레인이나 지미집을 장착하고 발전기를 올린 상태에서, 그 무게를 안정적으로 끌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동차가 문제다.

때문에 미국산 픽업트럭이 camera car에 주로 쓰인다.

5년 후에는 미니 크레인이나 미니 러시안 암을 슈퍼카인 호르셰나 페르치오 지붕에 장착하기도 한다.

<매트릭스 리로리드>, <분노의 질주 : 도쿄 드리프트> 같은 영화에서 고가의 슈퍼카에 미니 리모트 컨트롤 크레인을 장착한 상태에서 촬영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특수장비에 쓰이는 금속소재의 경량화, 자이로 헤드, 리모트 시스템 등이 크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후우. 눈만 높아져서 큰일이네.”


최영웅은 충무로에 복귀하고 시시하게 느껴지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다.


“별 걸 다 걱정한다.”


류지호의 말에 최영웅이 찔끔했다.


“사실 이런 장면은 촬영이 다가 아니야.”

“......?”

“포스트프로덕션이 더 중요해.”

“그렇지.”


최영웅도 안다.

액션 시퀀스는 커트 순서와 길이가 어떻게 붙는가에 따라 긴장의 밀도가 달라진다.


“거기에 사운드 디자인과 BGM 역시 섬세하게 들어가야 하지. 화물열차 기적소리의 볼륨, 반군들의 떠드는 소리, 자동차 배기음 기타 등등. 그 소리들이 어떻게 디자인 되는가에 따라서 몰입도가 달라지거든. 음악 볼륨이나 Fade In/Out도 중요하고.”


한국영화에서 카 체이싱이 시시하다고 푸념한다.

당연한 거다.

안 찍어봤으니 결과물도 시원찮을 수밖에.

할리우드에서 고급 기술을 배워 와도 자주 해보지 않으면 노하우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한국의 도심에서 카 체이스 절대 못 찍는다.


“장비는 장비일 뿐이야.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은.....”


류지호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화물열차 무임승차 액션 시퀀스에서 류지호는 연출로 관객에게 철길 너머로 건너가야 살 수 있다는 시그널을 계속해서 던졌다.

주인공의 의도가 화물칸에 차를 돌진시켜, 무임승차하려고 했다 하더라도.

여기까지는 스턴트 디자인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이후로는 연출자의 몫이다.

스턴트로 끝나면 재미가 없다.

주인공들이 안전해진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또 다시 위험에 빠뜨렸다.

무임승차한 화물칸 앞뒤로 크로아티아-보스니아계 군대가 탑승해 있다.

외국인 두 명에게 그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류지호는 한 번 더 위기상황을 연출했다.

약간의 코믹한 상황도 조미료처럼 첨가했다.

물론 사족일 수 있다.

파이널 컷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도 있다.


“초이. 고생 많았어.”


앨런 포스터가 최영웅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아직 한 주 더 수고해야 돼.”


최영웅은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6주로 예정된 동유럽 로케이션에서 5주 촬영을 마쳤다.

남은 한 주는 치운과 레모가 보스니악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아르칸 한 개 중대를 박살내는 씬을 촬영하게 된다.

앨런 포스터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첫 번째 영화에서 다 보여주면, 나중에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되고나서 뭘 보여줘야 하지?”

“보여줄 게 없을까봐. VFX 기술력과 제작비가 문제일 뿐. 앞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은 무수히 많아.”

“다음 편에는 1억 달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는걸.”

“박스오피스가 어떤지에 따라 갈리겠지.”

“2억 달러 박스오피스면 대 만족이야.”

“난 1억 달러만 넘어도 선방한 거라고 봐.”

“무슨 소리야! 넌 행운의 부적이잖아.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지극히 현실적인 희망인데?”

“안 돼! 2억 달러! 내가 모리스를 협박해서라도 홍보마케팅에 돈을 많이 쓰게 만들겠어.”


하하하.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3일의 한 번 꼴로 모리스 메타보이의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안다.

막상 모리스 메타보이를 만나면 그런 소리 못하면서.

철수를 서두르는 스태프들을 보며 앨런 포스터가 말했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고향에서 보내야겠지?”

“눈만 내리지 않는다면.”

“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지긋지긋하니까.”


진저리치는 앨런 포스터를 보며 류지호가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미국과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윌리 워커, 오순탁, 앨리나 와츠, 리보비치 마시코프 네 사람만 남았다.


“스위스로 놀러 갔다 올 사람.”


호텔에서 쉬고 있던 배우들에게 류지호가 난데없는 제안을 했다.


“샘이 스위스에서 쉬고 있다고 해. 혼자만 놀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않겠어?”


휴식일을 맞이해 류지호가 배우들과 함께 스위스로 놀러갔다.

쉴 때는 쉬고, 놀 때는 놀고.

일 할 때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평소에 류지호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작가의말

리메이크 하면서 백인우월단체와 갈등을 겪는 에피소드를 써놓긴 했습니다. 안 넣기로 했습니다. 독자님들도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사건이나 사고를 넣는 것보다 주인공의 행보에 주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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