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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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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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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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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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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모금행사에 앞서 공연을 포함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경매와 사교파티도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자선모금행사에 스타들이 참석하는 것은 모금에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제법 유명한 팝가수가 초대받아 노래를 불렀다.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코미디언이 스탠딩 코미디를 선보였다.

윌리 워커와 샘 잭슨이 무대에 올라 기금모금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류지호는 미리 준비한 연설을 짧게 하고 내려왔다.

그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꽤나 많이 참석했다.

사전행사를 즐기던 류아라가 오빠의 귀에 속삭였다.


“저 연예인들 유명해?”

“나도 잘 몰라.”

“좋은 사람들인가 봐. 이런 행사에 와서 공짜로 노래도 불러주고.”

“글쎄.....”


공짜 아니다.

이런 자선행사에 유명 팝가수를 섭외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한다.

유명세에 따라 그 대가는 크게 달라진다.


“너도 아는 유명한 팝가수가 이런 데 와서 3~4곡 부른다면 수만 달러를 줘야 할 걸. 명품 브랜드 고가의 선물을 줄 때도 있고. 뉴욕이나 LA에 모셔오려고 전용기와 고급 리무진 서비스를 받기도 하고.”

“자선행사에 돈을 받고 오면 그게 무슨 자선이야?”

“그러게.”


몇 년 후, 자선모금행사를 주최해 공금을 횡령하는 사기 사건이 벌어진다.

그때 법원에 제출된 증거서류와 영수증에 미국 연예계 스타들이 각종 자선행사에 참석하면서 수만 달러 혹은 그 이상을 제공받은 것들이 드러나게 된다.

물론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이 대가를 받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팬들 입장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암 환자나 자폐증 어린이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선의에서가 아니라, 돈 때문에 자선행사에 참가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한국도 그런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사례금을 받는 게 흔히 있는 일이야. 유명인사가 참가해야 사람들이 모이니까. 스타급 연예인 섭외도 자선재단의 능력이지.”

“그래두... 자선이란 말이 가난하거나 불행한 처지의 사람들을 딱하게 여겨서 도와주는 일이잖아. 연예인이 거액의 돈을 받고 자선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자선행위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이, 암환자, 청각장애인, 자폐아 등 모든 불행이 돈벌이요, 있는 놈이 더한다는 비난이 쏟아져도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은 대꾸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케이아누 립스 같이 언론에 떠벌이지 않고 꾸준히 선행을 하는 연예인도 많다.


“사실 연예인과 에이전트의 문제인지 이 나라에 만연한 배금주의 때문인지.... 그건 누구도 몰라.”

“오빠한테는 돈 주겠다고 안 해?”

“전용기나 리무진을 보내겠다고 하지.”


류지호는 시간만 허락되면 초청받은 자선모금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때로는 그에게 고급 리무진이나 소정의 선물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거절하고 있다,

그런 류지호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셀럽들도 많았다.


“그게 왜 이상한데?”

“행사 측에서 무엇을 제공하는가에 따라 급이 정해진다나 뭐라나. 초대 받은 곳에서 어떤 대접을 해주는가에 따라서 유명세가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하나봐.”

“무슨 사람들이 그래?”

“그러게. 공연은 재밌어?”

“그냥. 볼만해.”


미국에는 원 히트 원더로 수년 동안 활동하는 가수도 많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류아라가 그런 가수까지 알 순 없다.

신기한 장소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기에 재밌게 느껴지는 것 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선 경매 시간이 찾아왔다.


“모든 수익은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위해 쓰일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경매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

경매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따로 마련된 파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호텔 직원들이 쟁반을 들고 돌아다니며 경매 표지판과 경매물품이 소개된 팸플릿을 나눠주었다.


“별개 다 있네?”


경매라고 해서 무조건 그림, 조각 같은 예술품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와인이나 통기타, 피아노, 어느 유명인이 쓴 펜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출품되었다.


“여기 올라오는 물건들은 다 진품이야. 장인들이 자기 이름 걸고 보증한 것들이고.”

“오빠도 물건 내놨어?”

“응.”

“뭔데?”

“91년에 Timely에서 발간한 <Remo : The Destroyer> 초판본하고 64년에 나온 <X-Man> 코믹북.”

“엥? 만화책을?”

“둘 다 소장가들이 환장하는 것들이야.”


참고로 <X-Man> 최초 코믹북은 63년 8월에 나왔다.

1년 뒤에 나온 <X-Man>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빠 물건이 경매가가 너무 적게 나오면 좀 그런데.....”

“괜찮아. 자선기금으로 20만 달러 기부했으니까.”

“내가 오빠 물건 경매에 참여하면 반칙인가?”

“한 번 해볼래?”

“해봐도 돼?”

“맷이 옆에서 알려줄 거야.”


매튜 그레이엄은 터무니없는 가격까지 따라가지는 않고, 적당한 선에 류아라가 물건 몇 개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오빠, 더는 안 할래. 이거 무서워.”

“.......?”

“옆에서 손을 들면 나도 막 따라서 손을 들 것 같고... 암튼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

“그럼, 일어나자.”


류지호의 일행은 경매 중간에 자리를 떠났다.

호텔에 마련된 자선모금 파티장은 한 곳이 아니다.

초청장의 색깔에 따라 골드, 실버, 노멀로 나눠 파티를 진행했다.

사회적 지위, 유명세 등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파티 장이 정해져 있었다.


“사람 차별하냐고?”

“응.”

“해. 이 동네는.”


애틀랜타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일부 자선모금행사가 그렇다.

사교모임을 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류지호 일행이 VVIP를 위한 파티장으로 안내되었다.


“Jay!”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류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백인남자의 팔짱을 낀 매우 낯이 익은 여자가 미소를 짓고 있다.

UCLA에서 사귀었던 낸시 카트와이트다.


“낸시....?”

“응. 나아.”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류지호와 낸시가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에게서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류지호가 먼저 근황을 물었다.


“루이지애나에서 살고 있는 거 아니었어?”

“맞아. 지역방송국에서 일해.”

“건강해 보이네.”

“네 이야기는 자주 듣고 있어. 이번에 애틀랜타 시티에서 촬영했다며?”

“내일 LA로 돌아가.”

“아참. 여긴 남자친구.”


낸시의 파트너는 호리호리하고 뿔테 안경을 쓴 지적인 인상이다.

모범생 타입처럼 보였다.


“찰스 데이커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지호 류입니다. 반갑습니다.”


낸시 카트와이트의 전 남자친구와 현 남자친구가 악수를 나눴다.


“뉴올리언즈는 방문 계획이 없어?”

“당분간은.”


두 남자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낸시가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류지호 일행들과 짧게 눈인사를 나눴다.


“일행들이 기다린다. 다음에 봐.”

“그래. 건강하고. 찰스 만나서 반가웠어요.”

“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루이지애나 배턴루지나 또 뉴올리언스에 방문하면 연락해. 내가 멋진 곳들을 구경시켜 줄게.”

“너도. 서부로 올일 있으면 연락하고.”


짧은 만남을 뒤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


✻ ✻ ✻


류지호 일행은 VVIP 파티장으로, 낸시 커플은 그보다 한 층 아래 마련된 연회장으로 흩어졌다.

류아라가 냉큼 류지호의 곁에 달라붙었다.


“오빠 전 여자친구.... 저 언니가 오빠 옛날 애인? 맞지?”

“응.”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

“당연하지.”

“옛날 애인이 남자친구 팔짱을 끼고 나타났는데?”

“그게 뭐.”

“우와. 큰오빠 되게, 되게.....”

“쿨하지?”

“인간미가 없어 보여.”


단호한 류아라의 말에 헛웃음을 흘리는 류지호다.


“미국식이야.”

“아닌 거 같은데....?”

“그럼 가슴이 아려서 슬퍼해야, 아라는 좋겠어? 질투라도 해야 할까?”

“그런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아.”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어. 살다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일상다반사지.”

“피이. 그게 뭐야 바람둥이처럼....”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류아라는 자신의 오빠가 하도 미인을 자주 접해서 눈이 너무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오빠에게 어울리는 짝이야 따로 있겠지만, 너무 대단한 새언니를 집안에 들이는 것도 별로라고 생각했다.


‘엄마한테 맞선 볼 여자들 리스트 다시 추리라고 말해야겠어.’


일행은 호텔 직원이 열어주는 문을 통해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파티장은 아주 넓고 화려했다.

자선기금모금 파티라는 명목으로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이들을 모은 자리니 당연히 크고 화려할 수밖에.

영화 촬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한 눈을 파는 것처럼 느껴지고 했다.

한편으로 중요하고 어려운 촬영을 모두 끝낸 것이 류지호의 부담을 줄여주었다.

파티장엔 조지아주립대학의 총장, 시장, 상하원의원, 유명 연예인들, 기업가, 인권운동가, 군 장성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에드윈 터너나 코크 컴퍼니 최고위급 인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류지호 일행은 먼저 시장을 포함한 정치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 기업가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곳에서 매튜 그레이엄이 떨어져 나갔다.

다음으로는 육해공 장성들과 안면을 텄다.

다시 데본 테럴이 남아 해군 장성들과 회포를 풀었다.

류지호는 조지아주 기업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인사를 나눴다.

그때 실버톤의 원피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다가왔다.


“헤이.”

“헤이. 미스.....”

“미첼 패트릭이에요.”

“지호 류입니다.”


30대 초반의 밝은 갈색 머리의 여성이 자신을 소개했다.


“Carmike Theatres CFO 직책을 맡고 있어요.”

“할리우드와 월가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라클 가이라고 불리는 지호 류. 맞죠?”

“오랜만에 듣는 별명이군요.”

“다른 별명으로 불러줄 수도 있답니다.”


류지호는 쓸데없는 과거 이야기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Carmike 본사가 콜럼버스에 있던가요?”

“맞아요.”


Carmike Theatres는 북미에만 3,000개 가까운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으며, 커밍과 스넬빌, 커니어스 등의 멀티플렉스를 포함해 6개 멀티플렉스 극장을 매트로 애틀랜타에서 운영하고 있다.

12개를 운영하고 있는 AMT와 14개 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Regal Theatres 그룹에 이어 조지아주에서 세 번째로 큰 극장체인이다.


“최연소 억만장자, 할리우드 빅7의 오너... 영화신동을 애틀랜타에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스 패트릭.”


이편을 주시하고 있던 몇몇 이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억만 장자, 빅7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타이틀이니까.


“억만 장자는 언론에서 과장한 건데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군요. 암튼 여기는 내 여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아라 류라고 해요.”

“반가워요.”


류아라가 미첼과 악수를 나눴다.


“작년 JHO 작품들이 우리 극장에 큰 이익을 안겨주었어요.”

“영화사를 가진 저로서는 듣기 좋은 말입니다.”


미첼이 류지호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잡지나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잘 생기셨네요.”

“자주 듣지 못하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것보다 뒤에 있는 것이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서.”

“호호. <Dream Come True>에서 연기하는 걸 봤어요. 썩 잘하던걸요?”


생글생글.


‘아휴... 딱 봐도 불여시네.’


류아라는 미첼의 웃음에서 진한 색기를 느꼈다.


“그 영화가 마지막 출연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미스터 류를 만나고 싶어 해요. 콜럼버스에서 갑자기 일정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했어요.”

“아쉽게 되었군요. 대신 안부 전해 주십시오.”


미첼 패트릭은 Carmike Theatres 창업주의 손녀다.

처음 극장이 만들어질 때를 제외하고, Carmike Theatres는 패트릭 집안사람 대신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90년대 내내 영화산업이 호황이었고, 대형 극장체인 간 과열경쟁으로 전국적으로 스크린 확보에 열을 올리다보니, 현재 Carmike Theatres의 재정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대략 6억 달러였다고 했던가?’


류지호가 보고 받기로는 막대한 부채로 인해 매달 막대한 이자가 빠져나가고 있었고, Carmike Theatres가 보유한 북미 448개에 달하는 극장 가운데 상당수가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다.

GARAM Invest 보고서에는 대규모로 극장을 처분하거나 혁신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몇 년 안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북미에 극장을 가질 수만 있다면, Carmike Theatres 측에 인수합병 제안을 넣어볼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한국의 G.O.M Cinemas로는 미국의 거대 극장체인을 인수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하더라도 운영할 능력도 되질 않았다.


“호호. 자신감을 가져요. 디렉터 류.”

“.....?”

“영화배우로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하하. 사람마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섹시한 파티용 미니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다가왔다.

단이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꽤 과감한 드레스다.


“미첼,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웃어?”


다가온 여성은 펍에서 류지호에게 명함을 줬던 샤논 챔버스다.


“어서와. 샤논.”

“또 보내요. 지호.”


샤논이 류지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류지호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고 놓았다.

셀럽을 상대하다보면 상대에 따라 악수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여성과 악수할 때는 너무 강하게 잡아도, 너무 살짝 잡아도 실례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 같은 매너 때문에 첫인상에서 점수를 깎이고 대화를 풀기도 한다.


“이렇게 일찍 재회할 것이라고는 미처 몰랐군요. 미스 챔버스.”

“샤논이라고 부르세요.”

“그러죠. 샤논.”

“옆에 아름다운 아가씨는 혹시....?”

“여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아라 류에요.”


오빠 옆에서 류아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 바빴다.

공연히 파티에 따라와 비즈니스에 방해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도, 여자들이 접근하는 것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이 눈을 부릅뜨고 꼬리치는 여자들을 감별해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촬영은 잘 했나요?”

“친절한 애틀랜타 시민들 덕택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인상을 가지고 떠나기 바라요.”

“충분히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행이네요.”

“가죽바지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군요.”


샤논 챔버스는 몸에 착 감기는 화려한 파티 드레스를 입고 있다.


“풋. 안전한 장소에서 입는 드레스 코드에요.”


미첼이 샤논에게 물었다.


“두 사람 아는 사이였어?”

“우연히 펍에서 만났어.”

“재밌네. 이 넓은 도시에서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니....”

“지호가 묵고 있는 호텔이 내가 근무하는 회사와 가까웠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미첼이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디렉터 류가 찍고 있는 영화는 언제 개봉할 예정이죠?”

“빠르면 올 겨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랬군요. 트라이-스텔라 라인업에 들어있지 않아 의아했는데. 내년으로 개봉이 넘어갈 수도 있겠군요?”

“내 영화라고 해서 예정된 라인업을 조정하지 않습니다. 내게 그런 권한도 없고요.”

“내부 시사에 초대해 준다면, LA를 방문할 의향이 있어요. 물론, 실례가 안 된다면. 나 역시 디렉터 류의 팬이거든요.”

“하하, 영광이군요.”

“오오, 기대 되는 데요?”

“미스 패트릭이 LA에 방문하신다면, 깨끗하고 안락한 최고 호텔을 예약해 놓겠습니다.”

“오, 오빠....?”


류아라가 깜짝 놀라 자신의 오빠를 돌아봤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여자를 유혹하다니.

하지만 그녀의 오해다.

배급사에서는 전국의 메이저 극장체인 임원을 내부 시사에 초대하게 되면, 항공권과 숙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A-List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Remo : The Destroyer>의 경우 Carmike Theatres가 내부 시사를 보고, 스크린을 더 많이 열어준다면 그것보다 좋을 것이 없다.

따라서 류지호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말을 한 것 뿐.


“이왕이면 데이트도 함께?”

“미첼, 너무 노골적이야. 베이커씨에게 복수하는 거야?”


샤논이 많이 나간 미첼을 제지했다.


“디렉터 류와 섹스를 할 것도 아니고,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하는 게 뭐 어때서?”

“.....”

“그러면 파티 재밌게 즐기시길.”


미첼이 류지호를 향해 윙크를 했다.

그리고 ‘호호’ 짧게 웃음을 흘리고 총총히 사라졌다.


“약혼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어서, 미첼이 요즘 예민해요. 지호가 이해해요.”

“유머로 받아들였습니다.”

“두 분께 친구들을 소개시켜줘도 될까요?”

“바라던 바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겠습니까?”

“네.”

“아라는 여기 언니와 잠시 이곳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어.”

“응? 아, 알겠어.”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류아라가 더듬더듬 샤논과 대화를 나눴다.

여동생이 제법 대화가 되는 것을 확인한 류지호가 군 관계자들에게 향했다.

그곳에서 데본 테럴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내 부하들이 자네 회사로 많이 갔더군.”

“그들은 봉사와 명예를 아는 참 군인이더군요. 저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멋지군.”

“과찬이십니다.”


류지호를 보는 군관계자들의 시선이 이 보다 더 호감이 짙을 수 없을 정도다.

그들로서는 한국전참전용사를 지원하고, 군전역자 특히 해군출신을 다수 고용해주는 매우 바람직한 기업가다.


“자네가 오래 전에 전역한 퇴역군인들도 살뜰히 챙긴다는 걸 알아. 미국 시민도 아닌데 말이야.”

“제가 어르신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데본 테럴이 군 관계자들로부터 양해를 구했다.


“이만 미스터 류를 놓아주자고.”

“가보게.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려야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후로 남매가 샤논과 함께 젊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부분 남매를 반겼다.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군요. 서부 사람들이 화끈하게 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흔히 동부는 좀생이, 서부는 날라리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하버드와 스탠퍼드 학생들이 주로 신경전을 벌일 때 표현하던 것이었는데, 스포츠팬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서로를 깎아내릴 때 쓰곤 했다.


“제 주변에는 고리타분한 이들이 너무 많아서 말입니다. 당신같이 유쾌한 이와의 사교가 너무도 필요합니다.”

“하하하,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류지호의 그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앞 다투어 인사를 건네 왔다.

이런 인연을 거부 할 이유가 없다.

현재 애틀랜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장년층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기 류지호와 경쟁하거나 협력하게 될 젊은 인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 시키는 것 역시 중요했다.

조지아주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의 자제들이다.

훗날 인맥이 되어 줄지도 몰랐다.

또래의 파티참석자들은 시종일관 여유롭게 인사를 나누는 류지호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근육질의 건장한 체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입가의 은은한 미소나 쭉 펴진 어깨, 호쾌하면서도 당당한 말투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역시 할리우드 빅7의 주인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류지호에게 대해 내린 평가다.


‘큰오빠는 볼 때마다 달라져 있네.’


시종일관 당당한 자신의 오빠를 보며 류아라는 새삼 놀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본래 가지고 있던 본성이 그 위치에 가서야 드러나게 된 것인지.

어쨌든 중요한 것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들 남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류아라도 덩달아 허리와 어깨를 폈다.

자신 때문에 큰오빠가 창피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라, 혹시 사귀는 남자 있습니까?”


잘생긴 백인 남자의 물음에 류아라가 말을 더듬었다.


“나, 남자친구요?”


류아라는 재빨리 오빠를 찾았다.

한편에서 샤논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류아라는 오빠의 연애사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연애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는.... 현재 없어요.”

“혹시 지호 류와 LA에 살고 있습니까?”

“겨울 방학 동안에는....”


류아라가 청년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 모습을 힐긋 거린 류지호가 샤논 챔버스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Tox 가문의 앤 부인 손녀인줄 몰랐어요.”

“할머니는 할머니고 나는 나죠.”


미국의 4대 상속부자 가문은 누가 뭐라 해도 락커펠러, 멜란, 엘 두 퐁, 휩스다.

PS의 헨리 게이츠와 INTEG의 얼 무어, 샘마트의 월튼 등이 ‘거부의 사교클럽’에 명함을 내밀었지만, 4대 상속 가문은 성골이 된 지 오래다.

재산 규모가 4대 상속 가문보다는 못하지만, 10억 달러 이상인 미국 상속 가문만 400여개에 이른다.

소유와 경영이 뒤범벅인 한국 재벌과는 달리 상속가문들은 경영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한국의 재벌처럼 경영권을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계열사와 협력업체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과 불법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니 정부나 시민단체와 힘을 겨루지 않는다.

정치자금 스캔들로 기업 전체가 시민사회와 시장의 비판 대상이 되는 상황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직원 구조조정에 나설 필요가 없으니 ‘전기톱’ ‘도살자’ 같은 영예롭지 않은 별명을 들을 일도 없다.

반면에 거액을 기부해 세인의 찬사를 받는다.

우아하고 반듯하며 품위 있는 매너를 자랑한다.

초호화 요트를 타고 지구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그렇게 살면서도 중동의 왕가 후손이나 할리우드 스타처럼 파파라치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미국 부호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경영권에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지난 세기만 해도 ‘가족 기업’ 형태를 유지하면서 대를 이어 경영권을 세습하는 게 일반적이었지요.”


샤논의 말에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한국에는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어요. 정치 지형, 경제 구조, 기업 구조, 시장 흐름의 변화와 함께 후손의 무능·허영·낭비 등으로 창업 세대와 2세 확장기를 거친 부자들이 3대쯤에 이르러선 몰락의 길에 들어서는 게 대부분이라는 거죠.”

“미국도 마찬가지 상식이에요. 건국 초기 또는 산업혁명기에 최고 갑부라는 명성을 얻은 핸콕, 더비, 레이스레어 등은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부호 명단에서 그들 후손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현실이죠.”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혹시 GARAM Invest가 지호의 패밀리 오피스에요?”

“아니요. 순수한 투자회사입니다. Tox 가문에는 따로 패밀리 오피스가 있어요?”

“예.”

“짐작은 가지만 깊이 묻지는 않을게요.”


Tox Enterprises의 상속녀 앤 챔너스 부인은 한때 연방준비은행인 애틀랜타 풀턴 국립 은행(Fulton National Bank) 이사회 멤버였다.

패밀리 오피스가 아니라 더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혹시 지호는 G&P에 재산관리를 맡기고 있나요?”

“글쎄요.”

“짐작은 가지만 더 이상 묻지 않을 게요.”


미국의 상속가문은 재산을 최고의 관리자들이 운영하는 신탁에 맡겨버린다.

경영권을 쥐고 있지도 않고 신규 사업에 진출하지 않는데도 재산이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이유다.

엄청난 부의 증식을 이루면서도 사회적·정치적으로 도드라지지 않는다.

또한 자산 운용의 방침과 상속 원칙 등을 정해 놓기 때문에 자신의 사후에 태어날 미지의 상속자들이 겪을 경제적 어려움까지 우려해 대책을 마련해 놓는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후손이 늘어나는데도 1인당 상속 재산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G&P의 일명 부자펀드의 모토대로 ‘수세대 동안 지속적인 재산 증식’이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부의 영속화 등 신탁의 부작용을 일단 접어둔다면, 미국 부호의 스토리는 ‘경영권 상실=몰락’ 쯤으로 여기는 한국의 재벌가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동시에 류지호에게도 좋은 참고가 되고 있다.


“캘리포니아로 직장을 옮긴다고 했죠?”

“네.”

“혹시 케이블 방송?”

“맨하임(Manheim Inc)은 아니고, 톡스 오토모티브로 옮겨요.”


톡스 오토모티브(Tox Automotive)는 미국 최대의 중고 자동차 딜러다.

참고로 Tox Enterprises는 자동차 딜러 회사 외에 미디어 사업부문이 있는데, 미국 3대 케이블 업체와 16개 TV채널, 86개 라디오 방송국, 4개 매트로 신문 등을 보유한 굴지의 미디어기업이다.


“승진이에요? 임원으로?”

“난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제 막 인턴 딱지를 뗐다고요. 임원이 되려면 20년은 걸릴 걸요?”

“....?”

“최고경영자인 삼촌도 지금의 위치까지 16년이나 걸렸어요.”


백년 이상 된 미국의 상속가문의 무서운 점이다.

아무리 최고의 대학에서 수재란 소리를 들은 후손이라도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올라가야 한다.

샤논의 삼촌인 제임스 케네디 역시 16년이란 세월 동안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최고경영자 후보에서 진작 탈락했을 터.


“애틀랜타를 떠나려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을 해보려는 생각 때문에?”

“네. 샌프란시스코 사업체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업무능력을 향상시켜보려고 삼촌에게 떼를 좀 썼어요.”


그렇게 말하며 샤논 챔버스가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원하는 부서로의 인사이동은 일종의 가족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하다보면, 그곳 생활을 만족할거라고 장담해요.”

“기대가 무척 커요. 서부로 여행은 가봤어도, 오랜 시간 생활한 적은 없었거든요.”

“곤란한 일 생기면 연락해요. 도와줄게요.”

“.....명함도 안 줬으면서.”

“하하. 마음만 먹으면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내 말이 틀려요?”

“날 밀어냈잖아요.”

“지금 휴대폰 가지고 있어요?”

“왜요?”

“줘 봐요.”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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