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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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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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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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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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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할 일이 많아서 당장 결혼은 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NAB (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 SHOW.

전미 방송인 협회에서 주관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방송·음향 장비 전문 전시회다.

IBC(네덜란드), Inter BEE(일본)와 더불어 세계 3대 방송장비전시회로 꼽힌다.

행사 기간 동안 수백 개의 컨퍼런스와 세미나가 개최되는데, 방송 장비 전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소개된다고 보면 된다.

2만 명이 넘는 업계관계자,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해가 갈수록 각종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디지털과 관련된 최신 제품 및 서비스와 함께 첨단 기술들이 많이 소개되었고, IT기업들의 참여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류.”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스터?”

“마르코 쿠반입니다.”


류지호는 남자와 통성명 하면서 그가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할리우드가 아닌 NAB에서 뵙게 되니 더욱 영광입니다.”

“초대를 받기는 했는데... 솔직히 세미나에서 연설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스터 류는 D-Cinema의 선도자잖습니까.”

“과찬입니다. 루카스씨에 비하면 애송이입니다.”


류지호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그의 정체를 알게 됐다.

마르코 쿠반(Marco Cuban)은 Broadcast.com의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면서 그 회사를 Yaaho!에 매각해 59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받게 된 억만장자다.

이전 삶에서는 NBA 구단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였다.

억만 장자나 IT업계의 기린아라는 이미지보다 수많은 ‘기행’으로 인해 세계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극성인 구단주로 유명했던 인물이었다.


“연단에 서야할 시간이군요.”

“언제 식사 한 번 하죠?”

“마지막 날까지 라스베이거스에 머물 예정이니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류지호는 의례적인 미국식 작별인사를 건넸을 뿐이다.

마르코 쿠반은 진심으로 사교의 기회를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묵고 있는 호텔을 알려주시면 비서를 통해 시간을 잡아보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시회 사전 행사로 이틀 간 각종 세미나가 열렸다.

그 기간 가장 주목받은 인물을 소닉이나 나쇼날 북미 사장도 그 외 글로벌 전자회사 최고경영자들도 아니었다.

류지호와 마르코 쿠반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시회가 열리자 DALLSA, Vision Analysis, Abid Digital Technology 등 JHO Company 계열 회사들이 선보인 신제품과 서비스들이 큰 주목을 끌었다.

Abid Digital Technology는 8,000 달러 가격대의 비선형 DVD 편집기를 선보였다.

일반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한편 Hughes-NVC가 D-ILA 고해상도 영사기를 선보였다.

그로인해 DALLSA Corp.이 처음으로 소개한 2K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 Origin과 함께 D-Cinema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올해 <스타워즈>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소닉과 Panaflex가 공동으로 개발한 HDW-F900가 사용될 예정이다.

HDW-F900은 유효 해상도 1440*880라고 알려졌다.

실제 테스트 촬영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류지호가 조지프 루카스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은 그랬다.


“소닉과의 계약 때문에....”


조지프 루카스 감독은 마음 같아서는 이번 NAB에서 선보인 Origin을 사용하고 싶었다.

계약 때문에 카메라를 교체할 수 없었다.

본인이 직접 소닉 본사에 영화용 개조를 요청하기도 했고.


“우리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Origin은 진정한 24프레임 1920*1080 이미지를 구현합니다. 필름 카메라에 더 가까워진 화질을 끌어올렸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소닉-Panaflex는 <스타워즈> 새로운 에피소드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국제방송장비 전시회에서 HDW-F900를 소개하려고 했다.

그들보다 무려 1년 앞 서 DALLSA Corp.이 진정한 의미의 영화용 디지털 카메라를 선보이게 됨으로써 크게 한 방 맞은 셈이다.


“우리는 영화신동이라 불리는 디렉터 류지호의 작품 두 편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설계의 CCD를 개발완료했습니다. High Definition Production 및 International Programme Exchange의 새로운 권고안을 따르는 최초의 1920*1080 포맷을 완벽하게 지원하면서 업계 최고 수준의 감도인 f10(2000lux)을 실현했습니다.”


DALLSA Corp. 부스에서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는 직원은 신이 났다.

하도 떠들어서 목이 좀 아팠다.

수많은 이들이 부스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Origin은 기존 HD 카메라를 분명히 뛰어넘었다.

아쉬운 것은 디자인 부분이다.

소닉의 기존 HD ENG 카메라 무게가 표준 렌즈를 달았을 때 7~10Kg 사이다.

Origin은 무려 20Kg이다.

어쩔 수 없었다.

테이프 기록 방식이 아닌 하드 디스크 내장 카메라였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다.

HD 캠코더와 달리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는 영상을 무압축으로 하드 디스크에 저장했다.

필름의 해상도와 명암비를 재현하기 위해 RAW 데이터 촬영을 하게 된다.

카메라 제조사마다 포맷은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촬영된 원본파일은 동영상의 형태로 저장되지 않고, 수천 수백 장의 이미지 파일로 저장된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jpg가 아닌 보통 RAW파일의 형태다.

현재 DALLSA Corp.의 이미지 파일은 독자적인 포맷을 쓰고 있다.

센서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압축하지 않고 그대로 저장하는 방식이다.

용량이 어마어마한 대신에 후반작업에서 보정을 할 때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하드 디스크 용량이 커야했고, 그걸 카메라에 내장시키다보니 Origin의 경우 크기가 필름 매거진이 달려있는 Panaflex 카메라 크기에 육박했다.

다음 버전의 Origin에서는 하드 디스크를 카메라 외부로 빼낼 예정이다.

그렇게 해서 카메라 보디의 무게를 상당히 줄이기로 했다.

외장하드를 부착하고 각종 액세서리를 달면 결국 20Kg이 넘는다.

무게를 줄이고 사용자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을 완성하려면, 냉각장치, 하드 디스크, CCD 기술이 모두 함께 발전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단 이야기다.


“소닉보다 1년 앞 서 2K 완제품을 내놓게 된 건가?”

“4K에서도 2년 이상 앞 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독자적 4K CCD 기술은 특허등록을 해 놨겠지요?”

“물론입니다.”


정확하게는 특허는 아니다.

일종의 실안실용(Model Utility Right) 등록이다.

디지털 CCD의 원천기술은 달라스 인스트루먼트가 보유하고 있다.

그들이 특허를 보유한 디지털 CCD 개념을 완전히 뒤집을만한 발명이 아닌 경우에는 실안실용권만 가질 수밖에 없었다.


뿌드득.


소닉 북미 사장의 이가 갈렸다.

대규모 전시부스를 운영하는 소닉의 뒤통수를 치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적어도 디지털 카메라와 시네마 부문에서 소닉은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ParaMax Fimls가 제작해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수상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디지털 영사시스템으로 특별 상영한 것 때문이다.

이 특별 상영에 Hughes-NVC가 개발한 고해상도 디지털 프로젝터가 사용됐다.

디지털 카메라 분야에서 DALLSA Corp.이 주목을 받았다면 디지털 프로젝터에서는 Hughes-NVC가 많은 인파를 끌어 모았다.


“<Dream Come True>나 <Escape>가 아니라 왜 <셰익스피어 인 러브>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지.”

“Hughes-NVC 역시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를 개발하고 있잖아. 경쟁사 제품으로 촬영한 영화를 상영하는 걸 좋아할 리 없지.”


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때, 압도적인 화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영화라는 것이 그렇게 관람될 것이란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이벤트를 통해 Hughes-NVC는 색상 순도, 대비, 밝기, 해상도 및 대역폭의 표시 등 디지털 영사기술이 필름 수준에 거의 도달했음을 과시했다.

류지호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었지만.

잔치에 재를 뿌릴 수 없어 박수는 열심히 쳐주었다.

캠코더와 텔레비전 방송 장비 쪽에 선도 기업인 소닉으로서는 영화부문에서 경쟁업체들의 약진을 관람객들과 함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가 갈리다 못해 부러질 판이다.


빠득.


행사 내내 다양한 사람들과 류지호가 교류하는 사이, 도널드 제이콥이 지휘하는 M&A팀이 여러 업체들과 접촉했다.

35mm 필름 영사기 제조회사 크리스티(Cristie)의 모회사인 우쇼(Ushow) 관계자와도 만났다.

일본의 조명 장비 업체 우쇼는 할로겐램프부터 디지털 조명까지 생산하고 있는 업계 선도 기업이었다.

1992년에 필름 영사기로 유명한 Cristie를 인수하고 램프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한 번도 매각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쇼는 JHO Company의 인수의사를 단칼에 거절했다.

협상의 여지조차 없었다.

대신 캐나다의 TV와 프로젝터 제조사 Electrohomes의 인수전에 발을 걸쳤다.

Electrohomes는 캐나다의 TV 방송국을 보유하고 있다.

프로젝터 사업부가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자 매물로 내놓았던 것.

디지털 프로젝터 시장에서 선두로 치고 나가려는 Cristie가 Electrohomes 인수에 달려들었다.

그처럼 컨벤션 센터에서 전시회가 화려하게 벌어지는 사이, 물밑에서는 다양한 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류지호를 따라 NAB Show를 찾은 고우찬이 오랜만에 만난 황재정에게 물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지호 회사들이 주목을 받는다는 거지?“

“응.”

“지호가 소닉을 이겼으면 좋겠다.”

“일본 기업이라서?”

“소닉을 이기면 세계 최고라는 거잖아.”


최영웅과 안재민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JHO Security Service로 완전히 마음을 정한 거냐?”

“이번에 지호랑 같이 한국 들어가서 비자도 새로 받고, 준비해서 다시 들어오려고.”


황재정은 미국의 보안업체에 취업하는 고우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아는?”

“1년만 기다려 달라고 무릎 꿇고 싹싹 빌어야지.”

“그 이후에는?”

“지호 따라 다니지 않을까?”

“말릭이 있는데?”

“......”

“차라리 김영철 과장이 하는 일을 네가 맡아서 하고 싶다고 해봐.”


류지호의 경호팀 전반을 지휘하는 것은 티노 곤잘레스다.

말릭 해리스는 예비·비상팀 포함 11명으로 구성된 류지호 경호팀의 부팀장이다.

웬만한 국가의 국무총리급 경호다.

한국에서는 김영철이 말릭의 업무를 보고 있다.


“연수 한 번 받아보고.”

“JHO Security Services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거야?”

“규정상 무조건 6개월의 소양교육과 훈련코스를 이수해야 한대.”

“홍 관장님이 특전병으로 보냈다고 생난리를 치더니, 또 훈련을 받고 싶냐?”

“민간경호교육 프로그램이 특수전 훈련만 하겠냐?”

“글쎄, 모르지. 데본 테럴 그 양반이 군 시절에 FM이었다고 하더라.”

“근데 지호도 특전병 차출 간 거 알았냐?”

“나중에 알았지. 왜 섭섭해?”

“아니. 관장님이 손 쓴 걸 지호라고 별 수 있었겠냐? 건강하게 제대했으면 됐지 뭐.”


특전병은 육군특수전사령부에 소속된 병으로 전투지원 및 행정보조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그런데 고우찬이 복무하던 시절만 해도 전투보직을 받기도 했다.

고우찬은 일반 병이었다.

그럼에도 공수기본, 특전사 주특기 훈련을 받았다.

홍 관장의 농간(?)이 때문이다.

자신의 군대 인맥을 이용해 특전사 일반병 가운데 가장 훈련이 혹독한 곳으로 보냈던 것.

군대에서 철 좀 들고 나오라는 의도였다.

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고우찬은 공수훈련을 받은 특전병 출신이다.


“영어는 좀 늘었고?”

“빅키팀하고 매일 부대끼니까, 일상생활은 그럭저럭 가능해. 근데 보안 쪽 용어나 매뉴얼은 빡세게 배워야겠지.”

“괜히 나대다가 총 맞지 말고.”

“나도 총 무서운 걸 알거든!”

“지호는 한국에 얼마나 있을 거래?”

“두 달 정도 보고 있더라.”

“잘 됐네. 지호 저 놈 너무 달렸어. 이참에 푹 쉬고 왔음 좋겠다.”

“그러고 싶어도 지호를 가만 놔둘까?”

“그래서 어디 지방에 짱 박힐 생각이래.”


NAB Show 공식일정을 마무리한 류지호가 황재정의 배웅을 받으며 한국으로 떠났다.


❉ ❉ ❉


덜컹.


류지호가 한남동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리에 심영숙이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큰아들 왔어?”

“네. 저 왔어요.”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사이 심영숙이 앞치마에 손을 슥슥 닦으며 달려왔다.


“공항에서 곧바로 온 거야?”

“네.”

“그래 피곤할 텐데 잘 했어.”


마침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안쪽에서 고소한 밥 냄새가 솔솔 풍겼다.


“아버지는요?”


심영숙의 시선이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시계 쪽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중이라고 연락 온지 꽤 됐으니까, 금방 오실 거야.”

“설마 지금 이 시간까지 재단 일을 보시는 건 아니죠?”


그렇게 쉬엄쉬엄 하시라 말씀드렸건만.

심영숙이 어쩔 수 있냐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았잖니. 그 버릇이 어디 하루아침에 사라지니. 그래도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니까.... 전 같지는 않아.”

“그래요?”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얼른 가서 손 씻고 와.”


류지호가 2층의 자신의 방에서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공항에서 한남동으로 향할 때는 샤워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안에 솔솔 풍기는 밥과 반찬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요즘 어떠세요?”

“평소랑 똑같지 뭐. 참, 병원에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더라.”

“어디 아프세요?”

“비 오는 날이면 허리가 쑤신대. 노동일을 좀 오래 했니. 탈이 날 만도 하지.”


철강 회사의 일은 고되다.

그런 일을 30년간 했으니 몸에 탈이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창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면서 아버지 류민상이 들어왔다.


“지호 왔냐?”

“이제 들어오세요?”

“밥시간에 딱 맞춰 오셨네. 당신도 얼른 손 씻고 와서 앉아요.”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류민상이 식탁에 앉았다.

모처럼 아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다.

주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식탁이 채워졌다.


“허리 불편하시다면서요?”


류민상이 생선 구이를 젓가락으로 집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가끔씩 뻐근한 것 같고 뭐 그렇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 나이에는 이곳저곳이 조금씩 다 안 좋은 법이다. 물리치료 좀 받고 침 맞으러 다니면 된다.”

“나이도 있으신데.... 그러시지 말고 병원에 가셔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 보세요. 제가 예약해 둘게요.”

“괜찮다니까 그러네.”

“제가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요.”


심영숙이 거들었다.


“그냥 못 이기는 척하고 장남 말 들어요. 그러다가 정말 허리가 안 좋아져서 수술이라도 받게 되면 어쩌려고.....”

“잔소리는.... 알았다. 그렇게 하마.”


건성으로 대답을 했지만 류민상은 살뜰하게 챙겨 주는 장남의 모습에 내심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를 다 끝낸 류지호와 부모님이 거실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사과 깎아줄까?”

“그냥 씻어만 주세요. 뭘 번거롭게 깎아요.”


심영숙은 한사코 사과를 손수 깎아왔다.

류지호가 포크로 사과 한 조각을 찍어 입안에 넣었다.


“집안 일 도와주는 여사님은 오늘 안 왔어요?”

“왔다 갔지.”

“근데 왜 어머니가 직접 저녁을 차리셨어요?”

“그 이도 가정이 있는데, 늦은 저녁상까지 차리라고 할 수 있겠니?”


류지호는 오랜만에 마주한 부모님과 피곤함도 잊은 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껄껄껄.


무뚝뚝한 류민상이 연신 웃음을 흘렸다.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풍경이다.

살가운 사이라고 볼 수 없었던 부자지간이었다.

헌데 밥상머리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후식자리로 이어져 대화를 나눴다.

게다가 막내 류아라가 중간에서 귀염을 떨지도 않음에도.

부자지간의 대화에 어색함이 일절 없었다.

대한민국 수십 만 가정의 가훈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명심보감에도 자식이 효도하면 양친이 즐거워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가정은 삶의 출발점이다.

행복의 시작도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현대사회에서 가정이 깨지는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가 가족 간의 소통부재라고들 한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후에 잘 할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그 부분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은 류지호다.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사회에서의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크게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번다고 해도 곁에서 함께 웃으며 따뜻한 대화를 나눌 가족이 없다면 삶은 공허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모습은 류지호가 성공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스트레스와 업무로 지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환하게 맞아주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 ✻ ✻


류지호는 한국에 들어와 이틀간 한남동 본가에서 잠만 잤다.

밥 먹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안 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도 안 봤다.

새벽에 일어나서 가벼운 운동을 한 것 외에는 잠을 자거나 멍을 때렸다.

번아웃 같은 것은 아니다.

일부러 부려보는 게으름이었다.

누구도 류지호를 방해하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을 아는 까닭이다.

류지호가 냉장고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일주일은 늘어지게 잠만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네.”


류지호가 생수병 하나를 챙겨 돌아서는데, 심영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감독님, 일어났어?”

“집에 계셨어요?

“장남이 오랜만에 집에 와 있는데, 엄마가 어딜 나가. 나가기는.”

“잠만 퍼질러 자는데요, 뭘.”

“밥 차려줄까? 잘 때 자더라도 뭘 좀 먹고 자.”

“알아서 라면 끓여 먹을 게요.”

“라면?”

“한국에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갑자기 매운라면이 당기면서 어머니가 담근 총각김치와 곁들여서 먹고 싶어지네요.”

“알았어. 올라가 있어. 엄마가 후딱 끓여서 올라갈게.”

“제가 해먹을게요. 어머니는 그냥 쉬세요.”


심영숙이 한사코 본인이 차려주겠다며 류지호의 등을 떠밀었다.

2층으로 올라 온 류지호가 데스크톱의 전원을 켠 후 인터넷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CineFeel.com을 치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CineFeel.com은 고등학교 방송부 친구 김석민과 서울대 공대생이 창업해 만든 사이트다.

일주일 전부터 본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화 전문 사이트를 표방했는데, 초기 화면에 CineFeel과 WaW 단 두 개의 로고만 떠있다.

그 아래 검색창이 있다.

한국형 포털 사이트의 초기 화면 대신 Googol처럼 단출했다.

류지호는 아이디를 만들고 회원가입을 완료한 후 사이트를 구경했다.

CineFeel의 카테고리는 크게 인터넷 영화잡지와 각종 영화 데이터베이스, 영화 예매 서비스로 나눌 수 있다.

WaW 사이트는 G.O.M Cinemas의 체인 및 임대 극장 정보, 개봉영화 소개, 위치정보 그리고 WaW 픽처스의 개봉 라인업과 제작상황, 게시판 기능이 주요 서비스로 구성되어 있다.

한동안 사이트를 둘러보다 <퇴마기록>과 <쉬리> 두 편의 티켓을 예매했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퇴마기록>은 장기 상영을 마치고 곧 극장에서 내려올 예정이다.

미국으로 가져가 포스트프로덕션을 새롭게 한 <퇴마기록>은 기술시사 당시보다 좀 더 대중 친화적(상업적)으로 변모했다.

류지호는 포스트프로덕션에 관여하면서 지겹도록 <퇴마기록>을 봤다.

더는 볼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예매를 한 이유는 G.O.M 강남점의 스크린과 사운드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쉬리>는 지난 2월 중순 개봉했는데, 영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 볼 겸 관람해 보기로 했다.


후루룩.


류지호가 젓가락을 바쁘게 놀려 ‘매운’ 라면을 흡입하고 있는데, 심영숙이 2층으로 올라왔다.

손에 사진앨범 한 권이 들려있다.


“아들~”


어머니가 묘한 콧소리를 섞어 부를 때는 주로 부탁할 것이 있을 때다.

아니나 다를까.


“라면 다 먹고, 쉬면서 이것 한 번 봐봐.”

“뭔데요?”


류지호가 앨범을 케이스에서 꺼내 활짝 펼쳤다.

20대 여성 사진들이 페이지마다 붙어있다.

간략한 프로필과 함께.


“이 아가씨들은 누구예요? 영화출연 부탁이라도 받으셨어요?”

“마음에 드는 아가씨 골라봐.”


류지호는 혹시나 싶어 앨범의 표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했다.

마지막 페이지에 명함 하나가 꽂혀있다.

여성 이름과 휴대폰 전화번호만 달랑 인쇄된 명함이다.

하지만 명함의 재질은 류지호의 것보다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류지호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심영숙이 류지호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나무랐다.


“웃지 말고.”


마치 비밀이라도 말하는 듯 심영숙이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말했다.


“작년인가? 대통령의 조카딸하고 사법연수원 수석한 남자를 연결시켜줬대.”

“결혼정보회사가 영업을 하고 있고, 인터넷으로 커플을 매칭하기 시작하는 시대에 이런 아날로그 중매라니....”

“최상류층은 다 그 중매쟁이 의상실 통해서 짝을 맺는다고 하더라.”

“사기꾼 아니구요?”

“장문식 이사님이 확인해 줬어. 진짜 유명한 마담뚜래.”


장문식도 참 할 일 없다.

마담뚜 뒷조사까지 하고.

내심 류지호가 투덜거리는 것과 상관없이 심영숙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앨범에 있는 아가씨들은 언제든지 만나볼 수 있대. 그리고 진 원장 말로는 너를 만나보고 싶어 하는 아가씨들이 정말 많단다. 넌 그냥 찍으면 된대.”


류지호는 이런 앨범이 필요가 없다.

한국의 거의 모든 연예인, ‘사‘자 붙은 엘리트 여성, 재벌 가문의 자녀, 언론 및 사법계 집안 후손 등 누구와도 결혼할 수가 있다.

재벌 후계자 놀이를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당장 텔레비전을 틀어 눈에 띄는 여자 연예인을 몇 시간 후 호텔로 불러올 수도 있다.


“UCLA에 입학 할 땐 외국 아가씨도 괜찮다고 하시고선.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라세요?”

“네가 아직 마땅한 색시감이 없어서 엄마가 애가 얼마나 타는 줄 알아?”


류지호가 은근슬쩍 앨범을 심영숙 앞으로 밀었다.


“벌써 결혼을 할 나이는...”

“서른이야. 아들!”

“왜 나이를 두 살이나 올리세요. 스물여덟입니다.”

“그건 미국식이고.”

“아직 할 일이 많아서 가정을....”

“안 돼! 결혼은 다 때가 있는 거야. 잔 말 말고, 미국 들어가기 전에 거기 아가씨들 몇 명은 만나보고 가.”


류지호가 드물게 애교를 부려봤다.


“엄마...!”


어림도 없었다.

심영숙이 엄한 눈으로 류지호의 눈과 마주쳤다.

류지호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알겠어요. 일단 앨범을 보기는 해볼게요.”


류지호가 슬쩍 앨범을 다시 자신 앞으로 끌어왔다.

대충 살펴 본 사진 속 신부감들은 십 수 년 후 갑질 논란으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 대기업의 장녀부터 정치인의 손녀, 현직 아나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자연예인 등 스무 명 정도였다.


“이거 사기 아냐....?”


무슨 상류층 중매쟁이가 신부감을 이런 허접한 사진앨범에 담아 신랑후보 측에 보낸단 말인가.


피식.


순간 류지호의 입가가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이전 삶의 결혼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혼에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이전 삶에서는 재혼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궁상맞게 살았다.

헌데 이번 삶에서는 기득권 중에서 최상층 기득권 자녀들의 중매가 들어온단다.


탁!


류지호가 보던 앨범은 덮어버리고, 라면 먹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딱히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원칙을 정하진 않았다.

필요에 따라 정치인 자녀나 재벌 딸과 결혼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한 번 실패해 봤는데, 또 실패할 순 없지.....”


정략결혼 혹은 혼맥을 통해 한국에서 인맥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과거로 돌아와 미친 듯이 일하고 있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맺어진 부부 인연이 행복으로 이어질 리가 없다.


작가의말

한 해 잘 마무리하는 한 주 되십시오.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 해 마무리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PS. 니름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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