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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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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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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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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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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한국형 블록버스터 멋진 말 아닙니까?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의전담당 비서 최영미가 봉투를 하나 류지호에게 내밀었다.


“어제 말씀하신 겁니다.”


류지호가 봉투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하와이행 퍼스트클래스 항공기 왕복 티켓 두 장이 들어있다.


“호텔은요?”

“와이키키 해변에 위치한 특급호텔 스위트룸으로 3박씩 세 개 호텔을 예약했고, 두 분의 투어를 안내할 현지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13박 15일이었죠?”

“예.”


마음 같아서는 한 달 일정으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당장 티켓을 무르라고 할 것 같아 2주 일정으로 잡았다.


“자유여행이겠죠?”

“당연합니다.”

“경호는 현지 업체에?”

“나래안전에서 영어가 가능한 남녀 각각 한 명씩 배정했습니다. 그들이 경호뿐만 아니라 통역과 비서역할을 겸할 예정입니다.”

“잘했어요.”


류지호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티켓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렇게 여행도 다니시면서 삶을 즐기시라고 해도, 기껏 여행이라고 가는 곳이 설악산, 경주 또는 온천여행 뿐인 부모님이시다.

이번 기회에 외국으로 바람이나 좀 쐬고 오시라고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미국의 아들 집에 자주 오가느라 여권과 비자를 소지하고 있기도 했고.

다행히 아버지 허리 검사 결과는 크게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때마침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얼마 남지 않아 핑계도 적당했다.

원하신다면 세계 일주라도 시켜 드릴 능력이 있는 아들이다.

보나 마나 싫다고 하실 터.


‘일단 하와이 여행부터.’


인생을 즐기면서 사실 수 있도록 조금씩 물들일 계획이다.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다녀오실 동안 류지호는 재빨리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다.

그 후 한적한 곳으로 잠적할 생각이다.

그래야 어머니의 맞선 등쌀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류지호가 인터폰을 눌렀다.


- 예. 감독님.

“문지열 실장 자리에 있나 확인해 봐요. 김우영 실장도.”

- 집무실로 호출할까요?

“20분 후에 보자고 하세요.”

-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려놓고 보고서에 파묻혔다.


똑똑.


“들어오세요.”


집무실로 김우영 비서실장과 전략기획실장 문지열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서류철이 들려있었다.


“그쪽에 앉아 잠시 기다리세요.”

“네!”


두 사람이 의장 집무실에 마련된 원형 탁자에 둘러앉았다.

잠시 후. 비서실 막내 여직원이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다.


“감독님,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커피는 많이 마셨어요. 얼음물 좀 부탁해요.”

“네.“


막내 비서가 넙죽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보고서를 검토하는데 시간이 꽤 소요됐다.


“미안합니다.”


두 실장에게 사과한 류지호가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소소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눴다.

막내 비서가 가져다 준 얼음물을 반쯤 비운 후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DCN 인수합병은 잘 마무리 된 겁니까?”

“예.”

“노조에서는 반발이 없습니까?”

“백퍼센트 고용 승계했으니까요.”

“별다른 잡음이 없다니 다행입니다.”

“다른 계열사에 눈치가 보여서 대놓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대체로 인수합병을 반기는 분위기가 관측되고 있습니다.”


대유그룹이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다.

게다가 다솜방송은 업계 최고의 영화사 WaW 픽처스와 같은 가온의 계열사다.

대유인터내셔널 계열의 불안정했던 회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DCN 사장은?”

“당분간 현 사장 체제로 운영되도록 했습니다.”


점령군처럼 밀고 들어가 기존 조직을 들쑤실 필요까지는 없었다.

류지호 역시 DCN사장에 낙하산 인사를 꽂을 생각이 없었다.

다솜방송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되 상황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룹체제로 개편되면 인사이동으로 물갈이 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만간 DCN에서 실무자가 미국으로 한 번 넘어가야 할 겁니다.”

“판권 때문입니까?”

“트라이-스텔라와 ParaMax 영화는 WaW가 한국의 판권을 관리하지만, 오라이언 클래식 무비는 새롭게 계약해야 할 테니까.”

“아, 이미 DCN 경영진에게 미국 쪽 영화사와의 계약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또한 다른 직배사와도 재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에 대한 기획도 전달되었지요?”

“예. 감독님.”

“3년 안에 첫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겠어요?”

“이제 막 드라마 사업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DCN 측에 해당 사안에 대해 감독님 의중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두 개의 TV시리즈 대본이 나올 겁니다.”


하나는 의학드라마, 또 다른 하나는 경찰물이다.


“DCN에 드라마 스튜디오가 그때까지 준비되도록 살펴보겠습니다.”

“여주에 종합촬영소가 개장할 테니까.... 크게 문제없을 겁니다.”

“예.”


문지열 실장이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딴 소리를 늘어놨다.


“DCN인수 협상을 최종 마무리 할 때 대유그룹 쪽에서 묘한 제안을 했습니다.”

“뭡니까?”

“혹시 가온이 호텔사업에 진출할 계획이 없냐고 은근히 묻더니 대유개발 사장과 만나볼 생각이 없냐고 했습니다.”

“그래서요?”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만. 대유 호텔을 매각하려고 하는데 인수할 생각이 있으면 논의를 해보자고 합니다. 단순히 떠보는 수준이 아니라 꽤 적극적인 자세였습니다.”

“이미 외국계 회사와 논의 중인 거 아니었어요?”

“두 군데가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답니다.”

“우리를 끌어들여 입찰을 하려고 하나....?”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호텔이 대유개발 소유였습니까?”

“예. 한국의 밀레니엄 힐턴과 경주에, 베트남 하노이, 중국 연변 세 나라에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흠.”

“다들 부도설에 집중해서 그렇지. 짜라시에는 그룹해체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 파다합니다. 그런 마당에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 일차적으로는 부도를 막고, 채무비율도 낮추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우리 쪽에 제안했다는 건 달러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외부에서는 우리가 달러를 원화로 바꾸고 남은 것도 용처가 정해진 걸 모르니까요.”


류지호가 생각에 잠겼다.

대유그룹이 해체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는 말은 회장이 해외로 도피하는 것도 똑같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회장이 프랑스 국적자로 밝혀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해외도피 기간 중 여러 국가를 자유롭게 오가며 심지어 골프까지 즐겼다는 소문을 증명하는 일화라고 할까.

특히 베트남 하노이 대유호텔의 맨 꼭대기 층은 회장을 위한 회장만의 펜트하우스였고, 오로지 회장만 이용하는 걸로 유명했다.

류지호는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대유그룹 김 회장은 몇 년 간 해외도피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감옥에 가야 하니까.


‘쓸데없는 일에 발을 담글 필요는 없지만.....’


어차피 복합쇼핑문화타운 사업의 숙박시설도 중요한 요소다.

당장 재무상황은 알 순 없지만,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었다.


“서울역 대유본사 건물 뒤에 있는 그 호텔 맞죠?”

“남대문교회와 붙어 있는 그 빌딩입니다.”

“그 제안을 한 사람이 대유그룹에서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입니까?”

“대유그룹 본사 임원이 아니라 대유개발 이사입니다. 김자영 이사라고.”

“김자영?”

“예.”


자신이 귓등으로 들을 것 같아 전략기획실을 공략했던 모양이다.

그 만큼 절실하다는 뜻이리라.

대유그룹과 직접 빅딜을 논의해야 할지.

정부와 담판을 지어야 할지.

류지호로서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대유그룹 총수가 정부에 언제 백기투항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김 실장....”


김우영 비서실장이 얼른 대답했다.


“예!”

“대통령의 그림자 보좌관이라고 불리는 동계동계 좌장 있지요?”

“구성갑 고문 말씀이십니까?”

“그 양반하고 조용히 만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세요.”


문지열 실장이 끼어들었다.


“제가 만나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최종담판을 지을 때 만나시는 것이....”

“....음.”

“비서실장 출신의 문화관광부 장관은 어떠십니까?”

“밖에서 보면 자연스럽긴 하겠네요.”

“행사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암튼 대유그룹 처리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면서 생각을 좀 정리해 봅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지고 만나서 딜을 할지도.”


정권 실세와의 만남은 예민한 문제다.

당장 만날 것이 아니라면 준비지시만 해 두는 것으로 족했다.


“센텀시티 개발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지요?”

“저희 포함 17개 민간기업의 컨소시엄이 부산시와 업무계약을 체결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재개했습니다.”

“우리도 우선 분양을 받게 되는 겁니까?”

“예.”


약 32만평에 달하는 센텀시티는 산업시설용지, 업무지원시설용지, 공공용지시설로 나누어져 있다.

매각대상 토지는 22만7,000평이다.

현재 1차로 7만5천8백 평이 분양되었는데, BEXCO 전시관 4만평, 복합상업유통지역의 1만 2천 평, 해운대구청이 매입한 3,800평의 공공용지시설, 복합첨단정보 단지 2만 평 등이다.


“복합첨단정보 단지 2만 평을 분양받게 되고, 2차로 1만 평을 더 분양 받을 예정입니다.”


이전 삶에서 한국의 대표 백화점 두 곳의 부지를 합친 면적이다.


“잡음이 나오진 않고요?”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긴 합니다.”


언제나 주장은 똑같다.

난개발을 초래하는 호텔과 백화점, 대형 할인몰 등의 사업으로 변질시켜 실질적으로는 부동산 개발사업 단지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반발이지만, 그들 입장에서도 충분히 반대할 명분이 없다곤 할 수 없었다.


“대규모 개발 사업에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부정이나 비리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완전히 깨끗할 순 없겠지만, 가능한 적법한 절차를 따르도록 하세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본래 취지인 정보단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사업체들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또 부산국제영화제와 연계된 종합영상연구단지를 조성할 계획이기 때문에 시민단체와 시로서는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3만 평 부지에는 백화점, 멀티플렉스, 호텔 이 외에 류지호가 소유한 미국 기업들의 한국지사가 입주할 계획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겉으로는 영상연구단지 입주기업의 형태를 띠긴 하니까.

실질적으로 이들 기업들이 부산에서 사업을 벌이는 것은 없다.

다만 차후 DALLSA와 Eye-MAX는 아시아지역 총괄 지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B2B 사업을 영위하는 두 회사의 지사가 굳이 서울에 소재해야 할 필요는 없기에.


“Snowstorm과 다솜방송의 협조는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고요?”

“이번 달 말에 ‘스타크래프트‘와 ’레인보우 식스‘ 게임 시합을 정식 중계 방송할 예정입니다.”

“벌써요?”

“작년에 애니버스에서 방영한 ‘예측! 98 사이버 프랑스 월드컵’을 기획 연출한 프로듀서를 스카우트해 왔습니다. Snowstorm과 아네모네 PC방 체인의 협조를 받아 첫 게임 대회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년 6월에 열린 FIFA 월드컵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축구 붐이 일기 시작했다.

월드컵이 열리기 1년 전,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인 ‘피파 월드컵 98‘이 출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애니버스의 PD 황영준이 피파 게임을 가지고 결과를 예측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실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했는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로 경기를 중계 방송하는 게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마침 1998년 여름 ‘스타크래프트(오리지널)’가 전국의 PC방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기였고, 전국 각지에서 소규모 오프라인 대회도 속속 개최되었다.

황 PD는 이를 보고 텔레비전을 이용한 게임 중계를 제안했다.

애니버스 임원들의 반응을 시큰둥했다.

그때 다솜방송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솜방송으로 옮긴 황 PD는 본격적인 게임 중계방송을 준비해 왔다.


“현재는 옵저빙 기술이 없어서 카메라로 직접 경기내용을 담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최초로 PC게임을 케이블 채널에서 중계방송하게 되었다.

공식 스타크래프트 리그와 레인보우 식스 리그를 출범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다.


“다솜 외에 다른 움직임은 없습니까?”

“PKO라는 곳에서 스타크래프트 온·오프라인 게임대회를 주최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Snowstorm 코리아와 협의를 하고 대회를 여는 거랍니까?”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법복제 단속은 어떻습니까?”

“나래와 다온 로펌에서 경찰에 다양한 루트로 압력을 넣고 있지만, 단속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 혼자 나서는 것보다 음반, 도서, 게임소프트 회사 모두가 함께 나서야하는 일입니다. 다온 로펌이 지속적으로 관련 협회들과 힘을 하나로 모으도록 노력해 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류지호의 <Escape> 역시 불법 복제 비디오로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컸다.

심의가 보류되었던 <스크림>과 <Escape>가 작년 11월 마침내 심의를 통과했다.

정식으로 한국에 수입·배급될 예정이다.

그런데 두 영화는 이미 어둠의 루트를 통해 퍼져나갔다.

볼 사람은 이미 구해서 다 봤다는 뜻이다.

극장개봉하면 10만 명을 동원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일단은 불법비디오 복제 업체들과 P2P 사이트의 활동을 지켜보다가 다른 업계들과 힘을 모아 한꺼번에 공론화시켜 봅시다.”


각 분야가 개별적으로 소송을 걸어봐야 그때뿐이다.

한번 시작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해질 정도로 밀어붙여야 한다.


“G.O.M Cinemas 체인 확장 상황은 어때요?”

“올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인천, 일산, 분당이 문을 엽니다. 또 내년 5월 삼성동 코엑스 몰 메가G.O.M 오픈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점이 순차적으로 오픈할 예정입니다. 2차 체인망은 오는 2004부터 광역도시별로 들어서고, 서울은 신촌, 목동, 여의도, 영등포 지점이 문을 열 계획입니다.”

“자금은 괜찮아요?”

“1차 체인망 확장은 무리 없습니다. 2차 확장에는 은행권 대출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내년 말, 늦어도 내후년에는 10억 달러 규모로 증자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극장체인망 확장이란 명목으로 기존 극장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금융사업부에 닷컴버블 붕괴 조짐 전에 주식을 처분하라고 일러두었다.

향후 1년간 각종 주식투자에서 보수적으로 임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IT버블이 꺼지면서 주식시장이 폭락한다는 것까지는 알아도 어떤 규모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지 못하는 류지호로서는 그런 식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JHO Company와 (주)가온이 두 나라 증권거래소에 상장이 되어 있었다면 닷컴버블 붕괴의 양상이 이전 삶과 달랐을지도 몰랐다.

워낙에 여기저기 물려 있는 투자금액이 많아서 한꺼번에 지분을 털어낼 수 없어 대부분 블록딜을 통해 처분할 수밖에 없다.

미리미리 매수자를 찾아 둘 필요가 있었다.

뉴욕과 강남의 투자사 임원들 모두가 류지호보다 뛰어난 금융투자전문가들이기에 잘 대처하리라 믿었다.

따라서 류지호는 대략적인 지침만 내려주는 수준이다.


“전략기획실은 올 연말까지 한국의 가온을 지주회사 형태로 정리해주고요.”

“두 달 안에 그와 관련한 보고서를 보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새로운 세기에는 가온 그룹으로 새롭게 태어납시다.”

“예!“


이후로도 오랫동안 류지호는 보고서를 살피며 궁금했던 사항을 꼼꼼하게 질문했다.


❉ ❉ ❉


전국 G.O.M 영업점 및 임대 극장 로비에 대형 스탠디가 두 개 설치되어 있다.

<퇴마기록>과 <쉬리> 두 영화의 극장 스탠디다.

극장 스탠디는 입간판의 일종으로 영화홍보에서 설치형 포스터를 가리킨다.

작년 11월에 <퇴마기록> 스탠디가 G.O.M 극장 로비마다 등장했다.

관객들은 깜짝 놀랐다.


“저게 뭐야?”

“크리스마스에 개봉할 할리우드 영화겠지.”

“아닌데? 제목이 한글이잖아.”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설치형 포스터였다.

극장 스탠디는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유물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50분의 1도 안 되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한국영화가 극장에 거금을 들여 스탠디를 세운다는 것은 <퇴마기록> 이전만 해도 상상 못할 일이었다.

<퇴마기록>에 이어 한 달 전 또 하나의 한국영화 대형 스탠디가 설치되었다.

권총을 든 <쉬리> 주인공의 전신사진이 실린 대형 스탠디였다.

그렇게 G.O.M Cinemas 영업점에 스탠디가 등장하고 얼마 뒤.


- 1999년 1급 프로젝트!


이러한 홍보 문구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쉬리>가 뛰어넘은 것이다.

처음으로 한국의 영화인들은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음을 목격했다.

아쉽게 <퇴마기록>은 서울 관객 기준 124만 명으로 타이타닉의 197만 명 기록은 넘지 못했다.

대신 설 연휴를 맞이해 개봉한 <쉬리>가 개봉 22일 만에 서울 관객 100만 명, 56일 만에 200만 명을 불러 모았다.

<타이타닉>이 1년 전 세운 기록을 각각 15일, 42일 앞당겼다.

결국 최종적으로 개봉 199일 동안 서울에서 291만 명, 전국적으로는 684만 명이 <쉬리>를 관람하게 된다.

국내 최다관객 기록이 수립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기이한 범주가 그렇게 두 편을 통해서 탄생했다.


“저 자리에 무슨 영화 스탠디가 대체합니까?”


<퇴마기록> 스탠디를 해체하는 모습을 보던 오동석이 대답했다.


“<매트릭스>입니다.”

“다른 한국영화는 스탠디 안 만들어요?”

“WaW 말고는 저 비싼 걸 만들 리가 없죠.”


서울 메인 극장에 한두 개 만들어 설치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모든 극장에 설치한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들 감독님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다.

현장모니터같은 시스템부터 마케팅에서까지 류지호는 이전 삶보다 몇 년을 앞당겨서 충무로에 하나하나 도입하고 있다.

순수 제작비 33억 원, P&A 포함 4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는 이 당시 한국 영화계에선 천문학적인 수준의 금액이었다.

5,000억 원 안팎의 한국영화시장규모에서 수익분기점 맞추기 쉽지 않은 규모다.


“오성영상사업단에서 투자를 할 줄 알았더니... 한국영화에 180억 투자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류지호는 딱히 <쉬리>를 WaW 픽처스로 가져올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없어도 제휴영화사를 통해 라인업을 충분히 꾸려갈 수 있었으니까.


“오성그룹이 영화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하면서 프로젝트가 붕 뜨게 됐습니다. 그 제작비를 부담할 투자자가 충무로에는 없죠. 저희 말고는.”


창업투자사는 절대 메인투자로 나서지 않는다.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그리고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전체 예산에서 25% 이상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BS, 광성 같은 대기업이 충무로를 장악한 미래의 일이다.


“창투사는요?”

“메이저 배급사가 붙지 않으면 돈을 넣지 않습니다.”

“<쉬리> 제작비에 창투사 자금도 들어가 있어요?”

“감독님이 단독으로 투자·배급하길 원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창투사 투자 받으면서 피드백이니 뭐니 잡소리 섞이는 게 싫어요.”


오동석이 킥킥 소리 죽여 웃었다.

본인도 큰 손 투자자인 주제에 투자자들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어쩔 때는 그런 이들을 혐오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영화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이들이 투자자라는 족속이다.

그들이 충무로를 좀 더 존중했더라면, K-Film의 유행을 5년은 앞당겼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충무로를 경험하고 있는 류지호의 생각이다.


‘어쭙잖은 피드백과 선 넘은 간섭 때문에 좋은 영화 여럿 망쳤지.’


지금 이 시간의 테헤란로도 비슷한 분위기다.

IT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이 투자전문가랍시고 사람들의 돈을 모아 벤처기업에 밀어 넣고 있다.

수억 원의 투자금을 받은 벤처사업가라는 이들은 강남일대의 룸살롱에서 매일 밤 여자끼고 유흥을 즐기며 그 돈을 펑펑 써재끼고 있다.

더 큰 투자를 받기 위해서.

그들 사이에 영화인들도 상당수 섞여 있다.

외형적으로 한국은 IMF에 시름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돈으로 흥청망청이다.

물정 모르는 공대 출신 청년들과 일확천금에 눈이 먼 개인투자자들을 이용해서.


작가의말

임인년 호랑이해도 일주일이 채 안 남았습니다. 올 한 해 즐거웠던 기억만 남고 아프고 슬펐던 기억은 자동삭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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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휴식의 완성은 업무죠! (1) +10 23.01.02 4,015 142 25쪽
382 업무의 완성은 휴식입니다. (2) +11 22.12.31 4,039 148 24쪽
381 업무의 완성은 휴식입니다. (1) +7 22.12.30 4,140 139 26쪽
380 退魔記錄. (2) +10 22.12.29 3,990 141 28쪽
379 退魔記錄. (1) +8 22.12.29 3,912 116 25쪽
378 한국형 블록버스터 멋진 말 아닙니까? (2) +6 22.12.28 4,063 138 22쪽
» 한국형 블록버스터 멋진 말 아닙니까? (1) +7 22.12.27 4,140 138 21쪽
376 할 일이 많아서 당장 결혼은 좀..... +8 22.12.26 4,233 143 25쪽
375 심시티 좀 해보렵니다. (2) +6 22.12.24 4,113 149 23쪽
374 심시티 좀 해보렵니다. (1) +11 22.12.23 4,265 146 24쪽
373 월가에서 어느 정도 위치야? (2) +5 22.12.22 4,229 142 24쪽
372 월가에서 어느 정도 위치야? (1) +7 22.12.21 4,268 136 26쪽
371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2) +9 22.12.20 4,076 142 24쪽
370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1) +6 22.12.19 4,103 142 24쪽
369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3) +7 22.12.17 4,105 149 24쪽
368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2) +5 22.12.16 4,105 149 24쪽
367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1) +9 22.12.15 4,132 142 22쪽
366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5 22.12.14 4,156 144 27쪽
365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16 22.12.13 4,173 151 27쪽
364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10 22.12.12 4,245 147 27쪽
363 The Destroyer. (13) +7 22.12.10 4,144 145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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