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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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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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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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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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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退魔記錄.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두둥.


영화 <퇴마기록>의 오프닝 시퀀스는 폐허가 된 해동밀교 잔해의 빅 클로즈업부터 시작한다.

부서지고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카메라가 천천히 훑는다.

전체적인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잔해 속에 깔려있는 가사를 입은 승려의 신체 일부, 찢겨진 부적, 피 묻은 염주, 화마가 훑고 지나간 검은 그을림 등.

위태롭게 서있는 건물 기둥에 꽂혀있는 고풍스러운 검에서 카메라 멈춘다.

오프닝 시퀀스 내내 짐승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섞이고, 어디선가 귀곡성도 들리는 것도 같고, 건물이 주저앉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 영상 위로 현암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여동생을 요괴에게 잃은 그 날 이후, 나는 내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다. 너무 순진했다. 내가 산에서 수련하는 시간에도 세상은 몰라볼 정도로 변해 갔다. 아름다운 세속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에 도사린 시커먼 어둠이 보인다. 인간이란 내면의 악이 선을 이길 때 돌변한다. 그것을 너무 어렵게 깨달았다. 난 이제 예전과 다를 것이다. 선으로 포장한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목소리는 현암이다.

그런데 준후로 바꿔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내용이다.

내레이션이 끝나면.... 화면에 세 명의 남녀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현암을 중심에 두고 양편에 박신부와 승희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모두 뒷모습이라 얼굴은 알 수 없다.

그들 앞에는 폐허가 된 해동밀교 본산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웅전 건물만이 펼쳐져 있다.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그러지 않길 바라야지.]

[신부님.... 진짜 저 안에 괴물이 있어요? 그냥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이라도 겁이 나면 승희는 빠져.]

[흥. 누가 겁이 난데!]


현암과 승희가 진지한 모습으로 등장해 약간의 분위기를 깨는 만담을 나눈다.

‘가 볼까요!’ 현암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면, 박신부와 승희가 그 뒤를 따른다.


타이틀 <퇴마기록>이 떠오른다.


시간은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평화롭고 온전한 해동밀교를 보여준다.

천진난만한 어린 준후가 해동밀교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통해 해동밀교의 평소 모습을 묘사한다.

한국영화 최초의 스태디캠 롱테이크 촬영으로 만든 시퀀스다.

<살인의 추억>보다 5년이나 앞 선 시도다.

실제로는 여러 곳의 사찰과 서원에서 나눠서 촬영했다.

촬영 트릭과 편집을 통해 한 장소인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해동밀교를 헤집고 다니는 준후와 함께 보이는 풍경들에는 가사를 입고 삭발한 승려도 있고, 늙어서 머리가 하얗게 센 도인도 있고, 소복을 입은 여인도 있으며, 외국인 승려에,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수행자까지 보인다.

건물은 불교 사찰이나 서원처럼 보이지만 구성원은 각양각색이다.

깨끗한 한복에 관을 쓰고 있는 노인.

실사판 <퇴마기록>의 최후의 빌런 서교주다.


‘왕년에 다찌마리 배우들은 다 등장했어. 큭큭.’


방사룡의 <취권>에서 염왕신각으로 유명한 황정이, 70년대 한국과 홍콩의 액션영화를 주름잡았던 배우들, 한국의 대표적인 액션배우였던 김이라, 강일수 같은 수많은 베테랑 배우들이 <퇴마기록>에서 열연을 펼쳤다.

서교주는 폭주하기 전까지 자애하고 푸근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양아버지이기도 한 서교주는 어린 준후가 감당할 수 없는 숙제를 내주곤 한다.

서교주의 지도대련도 선보인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려한 부적술 향연이 펼쳐진다.

클라이맥스 액션 시퀀스를 위한 사전 장치다.

도술을 가르칠 때는 엄하고 무서운 교주이지만, 준후의 식사와 잠자리를 살뜰히 챙길 때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호법의 표정에서 간간이 애잔함이 떠오른다.


[밖의 세상은 어떤 곳이에요?]

[더럽고 지저분하며 온갖 악의들로 가득 차 있단다. 그래도 괜찮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 어떤 악도 침범할 수 없어.]


서교주는 준후에게 해동감결에 대해 들려준다.


[장차 혼돈에 빠질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는 네 명의 큰 손님. 즉 동방명인(東方明人), 서방진인(西方眞人), 남방신인(南方神人), 북방도인(北方道人)의 존재를 예언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줄 10인의 조력자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지.]


주인공 퇴마사 사인방들 외에 서연희, 백호, 최아라, 장준호, 수아, 로파무드, 바이올렛, 이반 교수, 윌리엄스 신부, 성난 큰곰 등은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등장할 예정이다.


[삼백이 반으로 나뉘고 다섯이 모자랄 때에 절의 주춧돌이 지붕 위로 올라가리라.]


이 구절을 놓고 해동밀교 내에서 해석이 갈리고 있다.

주춧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해동밀교가 여전히 안개에 쌓인 본산에 은둔하며 도래할 혼란을 대비해야 한다는 쪽과 주춧돌이 올라간다는 것을 해동밀교가 세상에 나가 흐트러진 세상에서 세력을 떨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쪽의 의견으로 갈리고 있다.

서교주는 완전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주춧돌을 5대 호법으로 해석하여 호법들이 밀교의 교세를 장악할 것이라고 봤다.

그들을 견제하는 한편 그들 모두와 상대해도 이길 수 있도록 시바와 아수라에게 인신공양까지 하며 무력을 추구하고 있다.

해동밀교 내의 이런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결국 서교주의 폭주라는 비극적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서교주와 호법들이 차를 마시는 장면이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다.

유독 찻잔을 강조하는 클로즈업이 인상적이다.

화산파를 상징하는 도복을 입은 호법의 여유로운 얼굴도 강조된다.

찻잔에 어떤 비밀이 있음을 영화에서 몇 번 암시한다.

눈치 빠른 관객 혹은 원작 소설을 읽은 독자는 찻잔이 암시하는 바를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화산파 출신 호법이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까지도.

영화가 10분이 흐른 시점에서 서교주가 준후에게 해동감결 원본을 구경시켜준다.

해동감결에서 묘사한 현암에서 - 장면이 숲속으로 전환된다.


뻐금뻐금.


식은땀과 일그러진 얼굴의 현암은 입을 한껏 벌리고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깊은 산중에 엉성하게 지어놓은 움막 안에 현암이 쓰러져 몸부림치고 있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뒤틀리고, 입을 한껏 벌리고 비명을 질러보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그의 발치에는 훼손된 태극기공(太極氣功) 비급이 뒹굴고 있다.


[쯧쯧... 홀로 수련하다 주화입마에 빠졌구만.]


장면이 바뀌면 - 승복을 입은 노인(도혜스님)이 대법을 펼치는 광경이 나온다.

자신의 70평생 공력을 현암에게 흘려 넣어주는 숭고한 모습이다.

참고로 현암은 한빈거사로부터 파사신검(破邪神劍), 사자후(獅子吼), 부동심결(不動心訣) 등의 태고적 무예를 배웠다.

그 부분은 다음 편이 제작되면 과거회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꼬인 혈도를 온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해동밀교를 찾아가 보게.]


일부러 이야기를 꼬지 않았다.

영화 러닝타임 10분 만에 주인공에게 목표와 임무를 제시했다.

원작소설에서는 현암을 도운 도혜스님이 홀연히 떠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소설을 보지 않은 관객을 위해 필수로 알고 있어야 할 <퇴마기록> 세계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 현암이 혈도가 꼬인 불완전한 초인임을 관객에게 명확하게 알려준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 사명을 부여받는 법. 네 길을 걸어라. 그 곳에서 너의 삶도 함께 할지니.]

[해동밀교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인연이 닿는 곳에.....]


목표가 생긴 현암은 산중 생활을 청산하고 하산한다.

현암은 6년간의 산중 수련으로 행방불명자로 처리되어 있다.

경찰로부터 불심검문을 받는데,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현암은 덥수룩한 수염에 행색까지 추레하다.

대도시였다면 노숙자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간첩으로 오해 받을 만 한 모습이다.

심지어 도피중인 운동권 학생으로 의심받고 추궁 당한다.

1편의 시대 배경은 90년 초반이다.

이후 프랜차이즈가 되면 10여 년이 흐른 30대 중반으로 재조정하게 된다.

어쩔 수 없었다.

프랜차이즈가 된다고 해도 주연배우들이 출연해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매니지먼트는 시리즈가 계속된다는 보장도 없고, 2년에 한 편씩 <퇴마기록>을 찍는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자칫 <퇴마기록> 계약이 발목을 잡아 다른 좋은 시나리오를 놓치게 될까봐 우려했다.


“류 감독, 자네 말대로 신인배우로 캐스팅할 것을 그랬어.”

“신인배우였으면 서울관객 100만은커녕 50만도 못 넘었을 지도 몰라요.”


충무로는 할리우드와 분명 다르다.

안정기와 이민재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쉬리>의 흥행을 한정원 배우가 견인한 것처럼.


[멀쩡한 사람더러 간첩이라니!]


경찰들의 처사에 화가 난 현암이 시골 파출소를 뒤집어 놓고 달아난다.

시골 읍내를 발칵 뒤집어 놓는 시원시원한 경찰들과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마침 오일장이 열린 날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나름 한국영화 추격 시퀀스치곤 볼거리가 풍부했다.

이후 시리즈가 이어지며 백호란 인물이 신원을 회복시켜주기 전까지 현암은 세상에서 존재가 지워진 신세로 퇴마행을 수행한다.

혈도가 꼬인 것과 함께 현암을 제약하는 약점이다.

보통사람과 다른 특별한 무력 - 주화입마의 후유증으로 완전한 능력을 펼칠 수 없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신분 - 경찰로부터 쫓기는 신세다.

퇴마사라는 직업 아닌 직업 - 평범한 사회생활이 어렵다.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는 주인공의 운명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설정이다.

사회와 분리된 삶 그리고 고독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주인공에게 장애물이 많을수록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옳은 일을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지, 그들 네 명은. 무당이나 사이비종교에 물든 사람이라고 오해를 사지 않으면 다행일 걸. 그만큼 그들이 행하는 선행들이 알려지지 않으니 외롭고 고단한 운명인 것이고.”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되어도 현암의 주민등록을 회복시키지 않을 생각이라고 배창훈 감독이 못을 박았다.


“만약 현암의 주민등록이나 신분이 회복된다면 그때는 그가 훨씬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있을 때가 되겠죠.”


경찰의 추격을 따돌린 현암은 시외버스 안에서 기묘한 기운을 흘리는 박신부와 마주한다.

박신부 역시 그런 현암을 의식한다.

가급적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현암이다.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서 활동하는 지역 건달들과 시비가 붙는다.

그때 박신부가 앞을 막아선다.


[막지마세요. 다칩니다.]

[죽일 생각인가?]

[실수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화려한 액션은 없다.

그저 현암이 오른팔에 공력을 불어넣어 벽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것으로 건달들을 쫒아낸다.


[밥은 먹었나?]

[거지로 보입니까?]

[영이 맑은 청년으로 보이네.]

[뭐 하는 분입니까?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다시는 교회로 돌아갈 수 없는 못난 사람일세.]


박신부로부터 동질감을 느낀 현암은 그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한편 해동밀교에서는 서교주가 송아지를 재물로 바치는 의식을 진행한다.

이를 눈치 챈 장호법이 호법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의견만 분분하다.

거대한 조직 안에서 의견을 통일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로 올라온 현암은 변두리에서 외따로 살고 있는 박신부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틈틈이 막노동을 하며 해동밀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또 한명의 퇴마사 후보이면서 애염명왕의 화신이자, 톡톡 튀는 성격에, 말괄량이 기질이 농후한 승희와 만나게 된다.

주화입마 후유증으로 인해 현암은 오른팔에만 내공을 주입할 수 있다.

그 외의 혈도는 심각하게 훼손되었거나 꼬여있다.

도혜스님의 칠십 평생 공력을 전해 받은 덕에 오른팔 말고도 기본적인 육체적 능력이 괴물 수준이다.

특히 오감이 극도로 민감하다.

때문에 산중에서 생활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도시에서 겪게 된다.

TV를 볼 때마다 화면의 주사선까지 뚜렷하게 보이니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고, 미각과 후각 또한 극도로 세심해져서 음식의 재료와 고기 종류, 조미료까지 구별해 낸다.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가 거미줄 사용이 능숙하지 않아 여러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과 비슷한 에피소드가 <퇴마기록>에서 비슷하게 나온다.

이런 약점이면서 장점이 되기도 하는 부분은 준후도 마찬가지다.

현암과 준후가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우아, 그럼 오빠는 동자공을 익힌 거야? 평생 섹스도 못하고 독수공방해야 해?]


현암은 혈도 문제로 인해 육식을 피해야 한다.

또한 예민한 감각을 죽이기 위해 둔감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걸 놀리는 승희다.


[오빠아..... 울지마 오빠.....]


현암이 울고 있다.

미친 듯이 서럽게 울고 있다.


[...현아...현아야....]

[오빠아... 울지마....울면.....싫어.....]


현암은 악몽을 꾼다.

여동생을 잃은 날과 그날 무기력했던 자신에 관한 트라우마다.


꽝.


악몽을 꾸는 잠결에 움직인 오른팔은 가공할 무기가 되어 벽을 뚫어버린다.

승희는 이 일을 두고두고 놀려대고, 현암은 손수 벽돌과 시멘트를 사와 집을 수리한다.

해동밀교의 장호법이 박신부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멀리 떨어져 있던 현암은 뛰어난 오감으로 인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해동밀교의 단서를 찾았다.

아쉽게도 현암과 승희는 해동밀교로 초대받지 못한다.

박신부가 해동밀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고, 현암 역시 은밀히 두 사람을 따라간다.

정식으로 초대를 못 받았으니 몰래 담을 넘어서라도 해동밀교로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해동밀교 주변으로 진법에 깔려 있어 사시사철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

허가된 박신부가 유유히 안으로 사라지는 것과 달리 현암은 안개진법을 헤매다 탈진 일보직전에 간신히 빠져나온다.

한편 해동밀교의 위기는 점입가경이다.

서교주의 행동이 선을 넘는다.

동물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타락하게 된다.

처음에는 산 아래 세속의 범죄자들을 잡아다가 바친다.

그러다가 죄 없는 주민을, 해동밀교의 승려까지 제물로 바친다.

기존 한국 영화와 달리 편집 템포와 영화 속도가 꽤 빠른 편이다.

LA에서 재편집하면서 류지호의 뜻이 상당수 반영된 결과다.

그럼에도 류지호가 보기에는 상당히 느렸다.

컴퓨터 그래픽도 비슷한 시기 개봉한 <용가리>와 비교하면 한 세대 넘어선 기술력과 연출을 보여준다.

류지호의 눈높이에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현암이 여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악령과 벌이는 대결장면 등은 할리우드 영화와 견주어 봐도 손색없다. 아수라로 변한 악당과 주인공들이 벌이는 화려한 액션은 국내에서도 SF오락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연출력이 축적됐음을 보여준다.]


WaW 픽처스가 배포한 홍보자료로 나간 언론기사내용이었다.

류지호는 얼굴이 뜨거웠다.

창피해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CG의 향연이 <퇴마기록>에서 펼쳐지긴 한다.

류지호도 재편집에서 노력을 많이 했다.

현재 한국영화 CG기술의 유치함을 가리기 위해 빠른 편집 템포와 빵빵한 사운드로 커버했다.

배창훈 감독은 CG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아날로그 특수효과 연출 아이디어를 쥐어 짜냈다.


“한국 경제가 어려워요. 이럴 때는 우울하고 답답한 영화 사람들이 안 봅니다. 공포영화 톤은 절대 안 됩니다. 어둡고 우울한 캐릭터보다 약간 밝은 성격의 승희와 준후 캐릭터를 조금 더 강화해야 합니다.”


류지호의 주장이었다.

주제는 권선징악.

유명소설을 원작으로 할 경우 자칫 상황설명에 치우치기 쉽다.

그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원시원한 플롯으로 에피소드를 간결하게 풀었다.

배창훈 감독은 영화 내내 암시와 메타포를 곳곳에 심었다.

단순한 플롯에 품격을 부여하려고 했지만, 작가적 향기가 너무 지나쳐서 영화 호흡이 분절되는 느낌을 줬다.

류지호는 이명수 감독의 키치적인 연출기법을 <퇴마기록>에 넣었다.

장면전환에서 wipe, iris 같은 현대영화에 잘 사용하지 않는 고전적인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판타지 장르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관객이다.

오컬트 요소를 대중적으로 쉽게 푸는 것이 숙제였다.

류지호는 이명수 감독 방식의 미장센과 고전영화적 감성을 적절히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제작진을 설득했다.


‘배우는 어떤 감독을 만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니까....’


이민재가 30억짜리 영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원래도 이 시기 즈음부터 연기가 일취월장했다.

<정사>, <이재수의 난> 등을 통해 스타성과 함께 연기력이 썩 괜찮은 젊은 배우 이미지를 갖기 시작했으니까.

시나리오 고르는 선구안이 오락가락해서 배우 커리어에 편차가 심하긴 했지만.

개봉 전 <퇴마기록>은 캐스팅 논란에 시달렸다.

특히 원작에서 박신부는 거구라는 설정이었다.

그에 반해 안정기 배우는 175Cm다.

연배만 보면 결코 작은 키가 아니지만, 이민재가 180Cm인 것과 비교해 원작과 일치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관객들은 대체로 만족했다.

원작 캐릭터와 일치율은 떨어지지만 특유의 카리스마와 비밀을 숨기고 있을 법한 의뭉스러움을 연기로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무명이지만 통통 튀는 신세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 MBS 공채 탤런트, 자신의 사명에 갈등을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상당히 터프하고 시니컬한 현암을 구체화한 이민재,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혈기왕성한 퇴마사들을 바른 길로 이끌려 애쓰는 모습을 적절히 그려낸 안정기, TMT 아역 연기버릇과 사극 연기톤을 쏙 빼고 성인연기자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준 아역배우까지.

배우는 어떤 감독과 작품을 하는가에 따라 큰 폭으로 연기가 달라진다.

배창훈 감독은 안정기 배우를 제대로 써먹을 줄 아는 감독이었고, 신인배우를 조련하는데도 능숙했다.


[외인은 멈추시오.]


우여곡절 끝에 안개진법을 뚫고 해동밀교로 들어온 현암을 승려들이 막아선다.

승려들의 사나운 기세에 결국 현암은 오른팔을 사용하게 된다.

준후까지 싸움에 나선다.

부적술까지 사용하고 나서야 불청객인 현암을 제압할 수 있다.


[허락도 없이 침입했기 때문에 풀어줄 수 없네.]


현암은 도술로 결박당해 갇히는 신세가 된다.

본래는 불청객인 현암의 처리를 놓고 교주와 호법들이 논의를 해야 한다.

서교주는 통제 불능 상태다.

광기를 부리고 있다.

현암을 제압하는데 한 몫 거든 준후가 찾아온다.


[난 해동밀교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요. 세상은 얼마나 커요?]

[엄청나게.]

[그러니까 엄청나게 얼마나?]


준후는 말수가 적고 다소 우직한 성격의 현암과 친해지기 위해 자신이 살아왔던 짧은 인생 이야기도 들려주고 각종 도술을 뽐내본다.

현암은 적당히 준후의 말 상대가 되어주며, 결박을 풀기 위해 애쓴다.

준후를 살살 꼬드겨 꼬인 혈도를 치료할 비급이나 약의 행방을 알아내려 한다.

잘 될 리가 없다.

애초에 현암은 악당을 죽이는 것은 잘 해도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에는 젬병이다.

한편 해동밀교 사태의 해결사로 초대받은 박신부는 자신이 끼어들어도 되는지 고민했다.

호법들 간에도 당장 서교주를 치자는 쪽과 경거망동하지 말자는 쪽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강경파를 대변하는 구호법이 어딘지 수상하다.

준후를 꼬드기는 것에 실패한 현암은 최후의 수단으로 교주의 처소로 잠입한다.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서교주가 아수라로 변태하는 모습이다.

서교주로부터 달아난 현암이 진퇴양난에 빠질 때 준후가 나타나 숨겨주게 되고,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곳은 뭔가 잘 못되었어.]

[준후야, 형 좀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만 해줘.]

[형은 호법님들과 교주님의 허락 없이는 못나가.]


결국 해동밀교에 사단이 나고 만다.

서교주가 폭주를 하게 된 것.

원작에서는 현암과 준후가 같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꽤 많다.

둘의 조합은 다소 의도된 조합이다.

현암은 영력이 부족해 자주 준후에게 도움을 받고, 준후는 소년이다 보니 물리적인 부분이 약해 현암이 채워 준다.

두 사람은 서로 모자란 점을 상호 보완한다.

나이차가 많지 않아 두 사람은 혈육처럼 형아우 사이로 지낸다.

이 둘 사이에 또 다른 가족인 승희가 끼어들면 개그상황이 곧잘 벌어지곤 하는데, 무겁고 우울한 서사에 힘을 빼는 기능을 하게 된다.

구호법이 자신의 계파를 모아 일전을 준비한다.

마침내 서교주는 아수라를 받아들인다.

물론 불완전하게.

인간이 어찌 악신을 품을 수 있을까.


[구호법의 차는 매일 잘 마셨어. 이제는 번거롭게 내 차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알고 계셨소?]

[네 놈이 수작을 부린 걸 모를 줄 알았나? 덕분에 내가 큰 깨달음을 얻었어. 평생을 이 안개진 안에서 수련만 해서는 추락한 세상의 도덕을 바로 세울 수 없음을. 이제 아수라를 내 안에 담아 세상으로 나갈 생각이야.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올바른 인물이 인간들을 이끌어야겠지.]

[흐흐흐. 그것이 교주란 말이요?]

[해동밀교의 교주 말고 세상 누가 자격이 있겠는가! 하하하!]


서교주가 구호법 일당을 처참하게 도륙한다.

장호법은 박신부의 조언을 받아들여 현암을 풀어주기로 결정한다.

현암은 이미 갇혀 있던 곳에서 나와 준후와 함께 혼란한 해동밀교 본관에서 허둥대고 있었지만.

암튼 박신부와 장호법, 현암이 힘을 합쳐 아수라의 힘을 받아들인 서교주에 맞선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결국 목숨을 간신히 건진 현암과 박신부가 해동밀교에서 달아난다.

탈출과정에서 현암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과 절벽 중간에 오른팔로만 의지해 버티는 CG는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할리우드처럼 그린매트 촬영이 아니다.

데이 포 나이트 기법으로 낮에 실제 절벽에서 와이어를 달고 촬영한 후, 와이어만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지워 탄생한 장면이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밤하늘, 주변 숲의 풍경은 모두 CG로 창조되긴 했지만.

해동밀교를 간신히 빠져나온 만신창이 현암의 위기는 끝이 아니다.

경찰에게까지 쫓긴다.

아쉽다.

산을 수색하는 경찰 엑스트라가 더 많았으면, 또 헬기까지 띄워서 더 풍부한 장면이 되었다면.

중요하지 않는 장면에 수천만 원을 쓰는 것은 비효율이다.

결국 적당히 분위기 조성하는 것에서 그쳤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경찰의 수색.

그를 뚫고 달아나야 하는 현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낭당에서 혼령까지 발목을 잡고 현암을 위기로 내몬다.

시리즈 내내 영혼의 동반자가 되는 월향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난꾸러기 서낭신 월향이 깃든 손바닥 크기의 고풍스러운 은장도다.

한번 액션 시퀀스가 시작되면 논스톱이다.

폼 잡고 무게 잡고 설명하는 것 따위 없이 빠른 템포로 편집되었다.

사실상 이 시퀀스가 <퇴마기록>에서 스릴러 장르에 가장 충실한 부분이다.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지만, 장르의 공식에 따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클라이맥스 직전 숨고르기 장면이 이어졌다.

승희가 부상당한 박신부를 치료한다.

현암의 품에 숨겨져 있던 월향이 제멋대로 빠져나와 승희 얼굴 앞에서 공격할 듯 부르르 검신을 떤다.


[애는 뭐에요?]

[월향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월향이 현암에게 돌아와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승희에게 날아가 신경전을 벌인다.

[계속 까불면 혼난다.]


은장도가 사람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승희다.

영력이 있는 승희가 월향검에 서낭신이 깃든 걸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

재정비를 마친 세 명의 퇴마사는 해동밀교로 향한다.

승희는 호기심으로, 현암은 해동밀교가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꼬인 혈도를 해결해줄 방법을 얻기 위해, 박신부는 괴물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승희가 차를 몰고 온다.

빨간색 고급 외제차다.

이번 편에서는 승희의 과거가 자세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부잣집 딸, 현암처럼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었다는 것, 유학 중 귀국해 학업을 다 마치지는 못했지만 매우 똑똑한 아가씨라는 것 등 대략적인 것만 알려준다.


[승희는 우리가 무엇을 하러 가는 줄 아는 겁니까?]

[응.]

[저 상태로 그 괴물과 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겉모습에 속지 말게.]


영락없는 말괄량이 승희가 미덥지 못한 현암이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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