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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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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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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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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레모 윌리엄스와 콘 맥클리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도착한다.

그들은 바이어로 위장해 무역회사를 운영 중인 아르칸(크리스 워컨)과 접촉할 계획이다.

공항에서 두 사람을 픽업한 남자는 아르칸이 보내준 현지 가이드다.

2m에 육박하는 신장의 현지 가이드는 안경을 쓰고 말쑥한 정장차림에 신사처럼 행동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시내의 호텔에 여장을 푼다.


“액션!”


레모 윌리엄스는 화장실에 앉아 큰일을 보며 치운과 통화하고 있다.

도청을 우려해 아버지와 통화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그런데, 화장실 밖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지 가이드와 콘 맥클리가 사투를 벌이고 있던 것.

사실 현지 가이드는 레모와 콘 맥클리를 죽이기 위해 보낸 킬러였다.

이미 아르칸은 두 사람이 무역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따라서 킬러를 안내원으로 보냈다.

사실 현지 가이드치고 안내원의 덩치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콘 맥클리가 수상함으로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피슝.

슉.


호텔 객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소음은 크지 않았다.

사투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이 소음기를 단 권총을 이용해 총격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샘 잭슨은 파이트 액션이 없다.

건 액션이 콘셉트다.

레모는 방음이 매우 잘된 화장실에서 치운의 잔소리를 듣고 있고, 객실에서는 무시무시한 총격전이 벌이지고 있다.

사실 레모가 나서면 비교적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싸움이다.

그런데 레모는 치운의 설교로 인해 객실에서의 싸움을 알지 못한다.

한편 객실 앞 복도에서는 하우스 키퍼로 위장한 MI6 요원(앨리나 와츠)이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

목소리로 출연하는 치운을 제외하고 주인공들이 한자리에서 소개된다.

샘 잭슨의 건 액션은 <이퀄리브리엄>의 건카타(gun+Kata)도 아니고 <존윅> 같이 멋지고 화려한 건푸(gun+kung fu)는 더더욱 아니다.

서로가 객실 안의 가구들을 은폐·엄폐물 삼아 쏘아대는 현실적인 총격전이다.

무술동작을 섞은 화려함에 치중한 대결보다 투박하지만 거친 총격전이 벌어진다.

호텔 객실 소품들을 어떻게 부수어야 직성이 풀릴까 싶은 액션 시퀀스다.

할리우드 건 액션의 오랜 전통이라고 할까.

류지호는 한술 더 떠서 일부러 최고급 스위트 객실로 설정했다.

비싼 장식물과 가구가 ‘퍽퍽‘ 깨지고 터져 나간다.

고가로 보이는 물건이 파손될 때마다 콘 맥클리가 짜증을 부린다.

CURE의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파괴행위니까.


[빌어먹을 킬러 개자식아! 보험도 안 된단 말이야!]

[비싼 것 좀 그만 쏴!]


스위트룸을 휘젓고 다니며 사납게 총격전을 벌이던 여파가 결국 화장실까지 미치게 된다.

이 대목에서 레모가 바지를 내리고 있으면 <총알 탄 사나이>가 된다.

류지호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진 않았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한국식 예의를 잃지 않는 레모다.

암튼 치열하게 총격전은 벌인 두 사람의 생사투가 무색해진다.

레모가 대결에 끼어들자, 허무하게 현지 가이드가 죽음을 맞이한다.

포크를 챙겨 손에 쥐고, 총을 쏘는 거구의 사내에게 민첩하게 접근해서는.


푹.


그럼에도 거칠게 저항하는 현지 가이드.

다시 한 번.


푹.


포크에 찔리고도 킬러는 거칠게 저항한다.

레모는 거구의 킬러에 매달린 채 포크를 더욱 깊숙이 찔러 넣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좁은 화장실을 안을 휘젓다가 레모의 손에 샤워기가 잡힌다.

결국 사워기줄을 이용해 킬러의 목을 조른다.

킬러는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자쿠지에 빠져 죽음의 안식을 맞이한다.


“컷!”


후우.


A 카메라를 잡은 레이먼드 쿤디가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다른 유닛의 카메라 오퍼레이터들도 뜨거운 현장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영화 <크로우> 촬영 당시 주연배우가 공포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현장 스태프들은 총기사고에 대해 민감했다.

할리우드 액션영화 촬영할 때 진짜 총알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 화약을 빼고 장전을 하거나 탄창에 진짜 총알을 넣어놓기도 한다.

방금 촬영을 마친 FX팀과 빅키팀의 차량 트렁크에는 실제 총기류와 탄약이 아무렇게 굴러다니고 있다.

리허설 때 실제 권총을 쏘며 연습까지 한다.


“나는 이놈의 할리우드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류지호의 투덜거림에 앨런 포스터가 반응했다.


“또 뭐가?”

“카체이스나 파이트 액션에서는 그렇게 안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 왜 총기에 관해서는 너그러운지 모르겠어.”


격투 장면을 찍을 때는 몸에 작은 상처라도 날까봐 온갖 안전장치는 다 갖추는 주제에 총기 액션을 찍을 때 총기관리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허술할 수가 없다.


“너그럽다고?”

“혹시 공포탄이 배우에게 쏘아질 수도 있잖아.”

“에이, 설마. 어떤 바보가 그런 것도 모르고 총을 쏠까. 너도 군대 다녀왔다며? 군인에게 총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에게도 일상이야. 주먹질과 발길질은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지만 총기는 얼마든지 컨트롤이 가능해. 걱정 마.”


퍽도 그렇겠다.

할리우드 촬영장에서 총기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안전사고는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총격사망자가 더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매년 1만 이상이 총격으로 사망한다.

20여년 후에는 한 해 4만 명이 총격으로 사망한다.


“빌어먹을 NRA놈들.....!”


✻ ✻ ✻


마침내 마지막 촬영 날이 왔다.


“미안합니다. 세 시간만 연장 근무합시다.”


촬영 마지막 날이지만, 재촬영 분량이 생겨서 시간 연장이 필요했다.

연장된 시간만큼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굳이 류지호가 양해를 구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럼에도 스태프들에게 사과와 함께 정중히 부탁했다.

정당한 시간 연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촬영에서 자정까지 연장한다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다.

이럴 때 스태프들이 일손을 멈추고 그냥 현장을 떠나버려도 아무 말 못한다.

현장 진행을 제대로 못한 이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딱히 류지호의 잘못도 아니다.

크랭크업을 하루 미루면 되니까.

그럼에도 류지호는 마지막 날 시간외 초과 근무를 하면서까지 끝내고 싶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스태프들의 작업 텐션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촬영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이나 오늘 촬영과 딱히 관계가 없는 이들까지 자정까지 함께 했다.

촬영종료 축하를 하기 위해서다.


“Set!"

"레디!“

“카메라.”

“롤.”

“사운드.”

“스피드”

“크랭크업. <Remo : The Destroyer> 씬 9, 커트 1, 테이크 1!”


딱!


“액션!”


치운에게 암살기술을 배운 레모 윌리엄스는 무역회사 직원이다.

무역회사는 CURE의 위장 회사다.

일반직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콘 맥클리와 레모 윌리엄스를 포함해 극소수만이 CURE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무역회사가 취급하는 품목은 주로 곡물이다.

회사의 이름이 USA Farmers였는데, 회사 로고가 어딘지 파커 필즈와 매우 비슷했다.

허락 받고 사용하는 로고다.

PPL은 아니다.

여느 날처럼 출근한 레모 윌리엄스를 직속상관인 콘 맥클리가 호출한다.


[준비 됐나?]

[물론이죠. 세계 최강의 암살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잖아요. 뭐든 맡겨주세요.]

[스스로 영웅으로 치장을 하는 군.]

[실제 그러니까요.]


콘 맥클리가 책상 서랍에서 샘플 술병을 꺼낸다.

샘플 병에 들어있는 술을 단숨에 비운다.

그 모습이 일상적이라는 듯 레모 역시 대수롭지 않아 한다.


[마스터 치운에게는 큰 빚을 졌지.]

[공짜로 무언가를 하는 걸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골치를 썩고 있어.]

[궁금한 게 있는데.... 나는 어디 소속입니까? CURE는 CIA의 하부조직입니까?]

[나와 자네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지. 다만 자네가 궁금해 하는 것은 말해 줄 수 없네.]

[미국을 위해 일하는 건 맞는 겁니까?]

[그건 보증하네.]


어쩐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우리가 다시는 패배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지.]


미국을 돌려 까는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은 모든 전장에서 승리만 한 것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을 빼고도 일반 대중들은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첩보전이나 소규모 국지전에서 패한 일도 많다.

가장 최근에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의 모티브가 된 모가디슈 전투를 들 수 있다.


[무엇을 하면 됩니까?]

[자네가 죽다 살아난 그 곳으로 다시 가야해. 전쟁을 끝내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세력이 있어.]

[은밀하게.....?]

[외로운 비즈니스지. 그래서 우리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것이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자조적인 뉘앙스가 섞여 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자네가 추락했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날아오르게.]

[.....?]

[언어의 유희라네.]


콘 맥클리가 다시 서랍을 열어본다.

남아있는 샘플 술이 없다.


[제기랄!]


신경질적으로 서랍을 닫는다.


꽝.


바로 이어서 유럽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가 편집에서 붙게 된다.

앞 선 서랍 닫히는 효과음과 비행기 굉음이 오버랩 되면서.


“컷!“


류지호는 스크립터에게 눈짓을 보냈다.

스크립터가 재빨리 녹화된 테이프를 되감았다.


“모니터로 모여주세요.”


배우들이 모니터 스테이션으로 모여들었다.

류지호와 함께 마지막 촬영 부분을 모니터했다.


“......!”


류지호가 세 사람과 차례로 눈을 마주쳤다.

모두 후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들의 연기에 만족한 것이다.


“오케이!”


마침내 류지호의 입에서 촬영종료를 알리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16주 동안 진행된 <Remo : The Destroyer>의 모든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와아아아!”

“예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짝짝짝!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손뼉을 치며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류지호도 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히 고예산영화 촬영의 성취감이 대단했다.

그간 작업했던 영화와 비교해 심력소모도 컸고.

결국 제작비는 초과됐다.

제 아무리 예산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프로덕션을 진행하는 류지호라고 해도 도리가 없었다.

온갖 예상 밖의 변수들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The Killing Road>에 비해 10배가 많은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 숫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서 진행한 해외 로케이션, 펜타곤과 CIA의 은근한 간섭, 피아를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기대 등.

류지호가 극복해야 할 것투성이었다.

다행인 점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영화 촬영의 과정은 똑같다는 점.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스태프들과 정을 쌓았다.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모으며, 새삼 영화라는 공동창작활동에서 작은 위대함을 느꼈다.

심지어 세상도 영화처럼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16주 동안 모두 고생했어요. 당신들과 한 여정에 감사를 표합니다!”


류지호는 오늘 촬영에 참가한 배우들에게 먼저 감사를 표했다.

스태프들에게도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촬영이 끝났음에도 크랭크업 현장에 와준 제시 맥티어, 앨리나 와츠 등과 가볍게 포옹했다.

제작팀이 서로 부둥켜안거나 하이파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자, 잠시만 자축은 참아줘요!”

“기념 촬영부터 하고, 마음껏 크랭크업을 즐겨봅시다!”


곧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세트장 앞에 모여들었다.

동시에 사운드 스테이지의 모든 실내등이 들어왔다.


찰칵!


<Remo : The Destroyer> 마지막 촬영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념사진에 담겼다.

이어 IVE Entertainment 다큐멘터리 팀이 류지호와 배우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앨런 포스터와 잭 워든이 케이크를 가지고 왔다.

그들 뒤로 케이터링 트롤리 카트가 세트장 안으로 들어왔다.

카트 위에는 얼음 속에 파묻혀 있는 샴페인과 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 생일은 지났는데?”

“잔 말 말고 촛불이나 꺼.”


류지호는 앨런 포스터와 잭 워든의 장난을 눈치 챘지만, 순순히 장단을 맞춰주었다.


훗!


류지호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자마자.

잭 워든이 케이크를 류지호의 얼굴에 그대로 박았다.


퍽.


즐거운 날이다.

이런 장난쯤은 얼마든지 당해줄 수 있었다.


하하하.

호호호.

짝짝짝.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터졌다.


펑펑.


곳곳에서 샴페인 뚜껑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앨런 포스터가 얼른 류지호의 잔에 샴페인을 채워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어?”

“비록 스턴트맨 로스가 큰 부상을 당했지만, 그 외에는 사고 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류지호가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자, 일제히 허공을 향해 샴페인 잔들이 떠올랐다.


“Good work!"

"Good job!"

"cheers!"


배우와 스태프들이 샴페인을 즐기는 사이, 다큐멘터리 팀의 촬영도 마무리되었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세트가 철거되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촬영해야 그들의 임무가 종료된다.

샴페인 미니파티로 크랭크업을 자축한 이들이 하나둘 스테이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촬영 장비 역시 철수를 시작했다.


“......”


스테이지 빠져나가는 류지호의 곁으로 안재민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촬영이 끝나서 물어보는 건데....”

“뭔데?”

“5,000만 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500억이 넘잖아. 할리우드에서도 아무 감독한테나 영화를 맡기지 않는다고 했지?”

“내가 트라이-스텔라 오너라서 맡긴 거냐고?”


고우찬이 류지호 대신 대꾸했다.


“지호가 단편영화부터 저예산 영화까지 상 받은 게 몇 갠데.”


최영웅이 말을 보탰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자이기도 하고.”


안재민도 잘 안다.

그렇다고 해도.


“충무로 같았으면 서른도 안 된 감독에게 블록버스터를 맡기지 않을 것 같아.”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겁나지는 않아?”

“막상 촬영 쫑하고 나니까... 약간 쫄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하.”


고우찬이 류지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약한 소리는.... 안 어울리니까 방귀 뀌는 소리 말고.”

“간만에 진하게 한 잔 빨아보자.”

“웬일이래?”

“촬영 끝났으니 마셔도 돼.”

“어련하시려고요, 의장님~”


제 아무리 자기 돈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할리우드에서 뭔가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안재민 말처럼 상업영화로는 초짜인 감독이니까.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신인감독에게 5,000만 달러짜리 영화를 맡긴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박스오피스 폭탄이라도 터트리는 날에는 감당해야 할 것이 만만치 않다.

후유증도 꽤 클 것이고.

류지호 역시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기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남의 영화 흥행은 잘 맞춰도 자신의 영화의 결과는 알 수가 없으니까.


“근데, 내가 스태프들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호가 5,000만 달러짜리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해 얕보거나 욕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더라고.”


최영웅의 말을 고우찬이 대신 받았다.


“아마도 지호가 <The Killing Road>, <Escape>를 연출해봐서 그럴 걸.”

“저예산영화로 흥행에 성공해서?”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메이저 스튜디오 임원이란 사람들이 선호하는 신인감독이 스릴러 장르나 공포영화 장르를 잘 찍는 감독이야.”


과거부터 스튜디오 임원들은 어드벤처 영화를 선호했다.

스릴러 혹은 공포영화는 어드벤처 장르와 갈등 구조는 다르지만,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넓은 의미에서 공포영화와 스릴러 영화가 어드벤처 범주에 포함 될 수도 있고.


“어드벤처 영화의 미장센이나 스토리텔링이 공포·스릴러 영화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해.”

“아하~”


최영웅과 안재민이 류지호의 설명을 금방 납득했다.


“어드벤처나 공포·스릴러에 재능을 가졌거나, 추구하는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잘 만들 수 있거나 그런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는 거구나?”

“맞아. 스티븐 아들러, 제이미 캐머론, 빌 하워드, 리드 스콧 같은 감독들.”


그들의 데뷔작이나 혹은 초기 작품에는 공포영화나 스릴러 장르가 꼭 포함되어 있다.

적은 예산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를 선택하는 것은 감독 지망생들에게 기본이다.

공포·스릴러 영화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선보인 많은 감독들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할리우드 주류 감독에 다수 포진하게 된다.


“로비 잭슨 알지?”

“<반지의 제왕> 찍는 감독?”

“그 양반처럼 B급 호러만 주구장창 팠다면 조금 문제가 있긴 해. 할리우드 투자자들과 스튜디오 임원들은 대작에 B급 정서 묻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든. 지금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런 기조도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영화들이 계속해서 흥행에 성공하게 되니까.

제아무리 보수적인 스튜디오 임원이라고 해도, 돈이 되는 걸 거부하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거부할 수 없다.


“어쨌든 지호가 이번 영화로 흥행 성공하면, 프로듀싱 능력과 함께 연출력까지 인정받게 되겠네.”


고우찬이 발끈했다.


“이미 연출력은 충분히 증명했거든. 고삐리 때부터 받은 상이 몇 갠데.”

“누가 뭐래?”

“근데 지호야?”

“응?”

“웨스트우드 비서실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복합기업인가 그걸 넘어서 종합엔터테인먼트 지주회사 체제로 통합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재정이도 그렇고.”

“영어도 잘 못하는 놈이 그걸 들었어?”

“야! 내가 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못 들어?”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고?”

“뭔 말이지 모르니까 물어보지.”


겉으로 JHO Company는 지주회사 형태를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콘체른(Konzern) 혹은 한국의 재벌기업 같은 구조다.

미국에서는 복합기업이라고 한다.

여러 산업 분야 혹은 여러 시장에 걸친 많은 계열사를 산하에 두고 법률적으로 독립되어 있으나 경제적으로는 통일된 지배를 받는 기업 집단이다.

JHO Company의 경우 외형상 각 계열사들은 독립되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 소유관계나 임원 겸임 따위를 통해 일관된 체제 아래 활동하는 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의장비서실은 물론이고 계열사 사장단으로부터 그룹으로 개편 및 증권거래소 상장에 대한 건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그 동안 <Remo : The Destroyer> 프로젝트로 인해 결단을 미뤄두고 있었다.

프로덕션을 끝냈으니 결단을 내려야했다.


‘90년대 성장의 토대를 닦았다면, 다음 10년은 도약의 시기가 되어야 하겠지.’


계열사 간의 사업부문을 통합·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지배구조와 관리가 더욱 복잡해지기 전에.

미국과 한국 둘 모두에서.


✻ ✻ ✻


<Remo : The Destroyer> 촬영을 끝내고, 1주일이 지났다.

JHO Pictures에서 첫 번째 JHO Convention을 개최했던 리조트를 통째로 빌렸다.

크랭크업 파티를 열기 위함이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샤니스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그래도 그런 복장은 아니지!”

“내 말이!”


반바지, 슬립 온 슈즈, 푸른색 민소매 셔츠.

파티에 참석하는 류지호의 복장이다.


“명색이 감독이 동네 날라리처럼 차려입고 가면 체면이 서겠어?”

“안 설 건 뭔데?”

“그래도 반바지는 아니지.....!”


‘동방예의지국’까지 들먹이는 잔소리에 항복을 하고 말았다.

친구들의 성화에 면바지와 캐주얼 셔츠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크랭크업 파티에는 동생 류순호도 동행했다.


“진짜 제임스 호너씨가 날 보자고 한 것 맞지? 뻥 아니지?”


로이 호너 음악감독이 류순호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 걸로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런 대단한 음악가가 날 보자고 하니까....”

“인마, 김칫국 마시지마. 네가 가이드 해 준 곡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겨서 확인하고 싶다고 한 거니까.”

“전화로 해도 되는데, 일부러 날 보자고 한 거잖아.”


일부러 보자고 한 적 없다.


“혹시 디렉터의 동생도 오나?”

“리조트에 방이 남아돌 텐데, 오라고 하죠 뭐.”


라고 했을 뿐이다.

류지호는 동생이 로이 호너와 잠시라도 대화를 나눠보면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라 기대했다.


시끌시끌.

북적북적.


파티 시간 멀었음에도 리조트 곳곳이 시끌벅적했다.

엄마 품에 안긴 채 울며불며 보채는 아기부터, 온 리조트를 휘저으며 뛰노는 어린이들, 언제 눈이 맞은 건지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하이틴 녀석들, 오늘은 신경 쓸 게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스태프들과 배우들 그리고 한자리에 모여 앉아 체스를 두고 있는 노인들까지.

가족이나 파트너를 동반해도 좋다고 하자, 모두가 가족들과 함께 참석했다.

그저 영화 관계자들만 모여서 즐기는 쫑파티가 아니다.


“좋네.”


이런 파티가 류지호는 썩 마음에 들었다.

툭하면 집을 비우고 촬영을 떠나는 남편 혹은 아내와 함께 무사히 촬영을 마친 것을 함께 자축하는 자리.

뭐랄까... 정이 느껴지는 크랭크업 파티라고 할까.

피터 웰스 사장과 앨런 포스터가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크랭크업 파티를 이렇게 요란하게 하는 건 처음이야.”

“만드는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오늘 일이 소문나면 너도 나도 JHO와 일하고 싶어 할 거야.”

“그렇지 않을걸?”

"왜?“

“파티보다 더 많은 주급을 좋아할 테니까.”

“킥. 따지고 보면 그러네.”


피터 웰스 사장이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 파티는 보스가 개인적으로 주최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왜 요?”


피터 웰스 사장이 류지호에게는 뭐라고 못하고 앨런 포스터를 구박했다.


“이런 것들이 전통이 된단 말이야, 이 멍청아!”

“그게 뭐 어때서요? 우리 보스는 이런 것에 인색하지 않다고요. 안 그래, Jay?"

"박스 오피스 2억 달러 달성하면, 크루즈 여행을 보내줄 생각도 있어요. 피터.“

“내가 여러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보스 같은 오너를 만난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뭐 어때요? 돈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버는데.”


앨런 포스터가 질색했다.


“제발 그 딴 이야기는 다른 데 가서 하지 마. 재수 없다는 소리 들으니까.”

“글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돈 자랑 엄청 하던데?”

“어떤 놈이? 그런 놈과는 상대하지 마. 쓰레기니까.”

“조지한테 그렇게 말해도 되겠어?”

“조지? 성이 뭔데?”

“루카스.”

“흥. 은둔의 조지라면 맘대로 해. 신경 안 쓰이니까.”

“하하. 앨런이 곧 메이저 스튜디오로 옮길 것 같네.”


류지호의 농담에 피터 웰스 사장이 냉큼 말을 받았다.


“맘대로 해. 지금 옮기면 손해일 테니까.”


앨런 포스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류지호가 킥킥 웃었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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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시역과의
    작성일
    22.12.16 09:28
    No. 1

    오늘도 재미있게 읽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적당한(정당한?) 시간연장이 아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2.12.17 13:59
    No. 2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12.16 17:30
    No. 3

    주말 방콕 하세요. 오랜만에 온도가 두 자리 수 단위로 떨어진다고 하네요. 겨울이 왔어요!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2.12.16 18:38
    No. 4

    벌써 한주가 가네요
    얼마전에도 허리우드에서 촬영중 총기 사고로
    한명이 죽었습니다.
    총 관리도 문제지만 죽인사람도 실수라고
    구속도 안하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양냥량
    작성일
    23.08.01 22:02
    No. 5

    이작품은 왜 가진거 ㅈ 도 없는 애들이 주인공한테 간섭함?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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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심시티 좀 해보렵니다. (2) +6 22.12.24 4,112 149 23쪽
374 심시티 좀 해보렵니다. (1) +11 22.12.23 4,264 146 24쪽
373 월가에서 어느 정도 위치야? (2) +5 22.12.22 4,228 14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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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2) +5 22.12.16 4,105 149 24쪽
367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1) +9 22.12.15 4,131 142 22쪽
366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5 22.12.14 4,155 144 27쪽
365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16 22.12.13 4,171 151 27쪽
364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10 22.12.12 4,244 147 27쪽
363 The Destroyer. (13) +7 22.12.10 4,142 145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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