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연재수 :
899 회
조회수 :
3,828,609
추천수 :
118,687
글자수 :
9,955,036

작성
23.01.02 09:05
조회
4,014
추천
142
글자
25쪽

휴식의 완성은 업무죠!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일주일 만에 류지호가 천리포 수목원을 떠났다.

도착한 곳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유명한 스키장.

1990년에 개장한 이 스키장은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치른 바 있다.

그를 바탕으로 무주리조트는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에는 아놀드 파머가 설계한 18홀 규모의 골프장도 열었다.

그러나 과도한 확장으로 인한 부채, 외환위기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치고 모회사가 부도 처리 되면서 현재는 매물로 나온 상황이다.

법정관리가 확정된 상태로 이미 7~8개 외국회사와 매각 협상을 벌였으지만 모두 결렬되었다.

류지호는 그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무조리조트에서 한동안 칩거할 계획이다.


“밀레니엄 호텔을 인수하느니 차라리 이곳을 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스키시즌이 아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빈 슬로프가 쓸쓸해 보였다.


‘이곳을 사서 직원들 복지시설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JHO Company가 매년 캘리포니아에서 컨벤션을 개최하는 것처럼 가온도 비슷한 행사를 열 수도 있다.

꼭 (주)가온의 직원복지가 아니더라도 JHO의 행사를 유치해도 된다.

한국과 미국 회사 직원들에게 콘도와 스키 시즌 할인권을 팔수도 있고.

캘리포니아에서는 여름 행사를, 무주 리조트는 겨울 휴양지가 되는.

그런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음!”


류지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망설여졌다.

왠지 휴대폰의 전원을 켜는 순간 오만가지 업무가 밀려들어올 것만 같았다.


‘쉬기로 했으니까, 일주일만... 딱 일주일만 더 쉬자.’


류지호는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승용차가 티롤호텔 주차장에 멈췄다.

호텔 입구에 미국에 있어야 할 티노와 말릭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이 어쩐 일이에요?”

“수석참모가 보냈습니다.”

“좋지 못한 일 때문은 아니겠죠?”

“보스께서 외부인 방해를 받지 않고 좀 더 편하게 쉬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잘 왔어요.”


알프스 콘셉트로 만든 5성급 호텔 티롤은 마이키 잭슨이 묵었던 스위트룸이 유명했다.

덕유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마이키 잭슨이 투자를 타진했다가 성사되지 않은 일은 유명한 일화다.


“세븐 서미츠 스위트 예약했습니다.”


김영철이 프론트에 이야기하자, 직원이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예.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뭔가를 이야기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잠시 후- 총매니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티롤을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총매니저가 류지호를 안내했다.

류지호가 묵을 예정인 세븐 서미츠 스위트룸이 마이키 잭슨이 묵었던 바로 그 객실이다.


“손님께서 묵으실 스위트룸이 예약되는 일은 1년에 몇 건 없습니다.”


하루 숙박료가 300만 원이 넘는 객실이다.

류지호처럼 장기 투숙하는 손님은 여태 몇 명 없었다.


“원목 자재와 소품들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공수해 온 것들입니다.”


원목에서 발산하는 은은한 나무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세븐 서미츠 스위트는 옆방과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행하시는 분들과 복도를 통하지 않고도 곧장 객실로 건너올 수 있습니다.”


본래는 경호팀이 보안절차를 수행해야 했다.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을 보니, 미리 와 있던 티노와 말릭이 사전조치를 모두 취해놓은 모양이다.


“보스, 식사하시겠습니까? 아니며 좀 쉬시겠습니까?”

“낮잠 2시간만 잘게요.”

“2시간 후에 깨워드릴까요?”

“그래줘요.”


경호원들이 옆방으로 사라졌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 류지호가 낮잠을 청했다.

쉬자고 마음먹긴 했지만, 주로 잠을 많이 잤다.

바쁘게 지낼 때는 못 느꼈는데, 그간 수면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생체리듬이 수면으로 새롭게 초기화되는 것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류지호는 육체가 시키는 대로 모든 긴장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잠을 잤다.

김영철이 자신의 방으로 향하기 전 티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스는 저 방이 마이키 잭슨이 묵었던 방이었던 걸 모르시나?”

“알고 계시지.”

“근데 방 구경도 안 하시고 그냥 주무시네?”

“마이키 잭슨과 지난 대통령 취임식 때 서울에서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로 친교를 이어가고 계셔.”

“보스를 수행해본지가 하도 오랜만이라 깜박했네.”


SNS가 활성화 된 시대였다면 류지호가 이렇게 편하게 돌아다니지 못했을 터.

수십 장의 사진이 찍혀 SNS로 공유되었을지도 몰랐다.

LA에서는 파파라치가 일상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간혹 알아보는 사람이 있긴 했다.

사인 해달라고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경호원을 항상 대동하고 다녀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도 있고.


✻ ✻ ✻


다음날부터 류지호는 일행을 데리고 덕유산 국립공원 주변을 돌아다녔다.

덕유산 정상에도 올랐다.

객실에 머물 때는 서울에서 싸온 책을 꺼내 읽기도 했다.


‘휴식 시간을 지적으로 보내는 것은 문명의 최고 산물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솔직히 집중은 잘 안됐다.

류지호가 읽던 책을 덮었다.

소설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새벽마다 배달했던 한국신문에서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1984~1989년까지 연재된 이 소설은 1990년에 단행본 전 7권으로 처음 출간됐다.

바로 <7년 전쟁, 임진왜란>이란 소설이다.

자료수집과 집필기간만 총 15년.

역사 소설로 유명한 작가의 소설 중에서 단연 최고로 치는 작품이다.

류지호가 이 소설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3권 : 조선의 영웅들>이다.

임진왜란의 의병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육지에서는 의병이, 바다에서는 수군이 일본군을 괴롭히는 걸 풀어냈다.

수도를 점령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이상한 전쟁.

왜군은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명의 참전이 임박해지면서 전쟁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는 내용이다.

특히 ‘홍의장군 곽재우‘에 대해 류지호는 관심이 많았다.


‘선비가 사무라이를 이긴 전쟁....’


일본에서 칼 좀 쓰는 폭력배들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에 동원되었다가 그 남의 나라 향토예비군들에게 털렸다.

류지호가 임진왜란의 의병들에 대해 공부하며 짧게 정리한 로그라인이다.

웃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영 우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오로지 돌격밖에 모르는 사무라이에 맞서 의병장들은 전략전술로 싸웠으니까.

비약해서 말하자면 칼과 붓의 대결이라고 할까.

사실 임진왜란 3대 대첩이 너무 부각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이치 전투 같은 숨은 영웅들이 승전한 전투도 많았음에도.

류지호는 소설의 작가가 당시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음에 들었다.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


각권 서두마다 있는 문구다.

조선의 왕 선조는 말할 것도 없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만력제 모두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작가는 세 나라 왕들을 공평하게 비판한다.

왜놈은 무조건 나쁘고 조선은 피해자이며 명나라는 조선을 구원한 대국이라는 사고방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는 점도 신선했다.

위대한 영웅들을 다루면서도 전쟁 책임을 단순히 왜놈들이 아닌 조선 지배층의 무능에서도 찾고, 또한 만력제의 찌질함을 잘 묘사했다.

조선의 입장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그린 최초의 역사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너희는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은 민족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을 세뇌 교육할 때 써먹은 수법이다.

공격은 꿈도 못 꾼, 방어하는데 급급했던 약소국 민족이란 세뇌다.

한때 대륙의 일부를 지배하고, 기마민족으로 기상이 높았던 역사적 사실은 쏙 빼고, 외세에 무력하게 침탈만 당했던 역사만 강조했던 식민사관의 한 예다.

동북아시아 문화와 경제 허브국가였던 백제에 대한 역사도 저평가 받고 있기도 했고.

류지호는 국사교육을 받으며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왜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해야만 하지?”

“우리민족은 왜 남의 나라를 침략하면 안 되지?”

“남들은 침략을 해도 되고, 우린 왜 안 되지?”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그런 의문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평화가 좋은 거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행위는 잘 못된 거야.”

“그러니까 왜 남의 나라는 되고 우리나라는 안 되냐고요. 영국은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면서 몹쓸 짓을 수없이 저질렀는데 신사의 나라로 세탁해 떵떵거리면서 으스대잖아요. 2차 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무고한 사람을 더 많이 죽였을까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이 더 많이 죽였을까요?”


사춘기의 류지호는 진심으로 궁금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런 류지호의 의문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준 교사는 없었다.


“류지호, 선생님 말이 우스워!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걸 질문이라고! 앞으로 나와! 엎드려뻗쳐!”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사과를 하면 된다.

국사 교사는 몽둥이부터 들었다.

류지호는 UCLA 한국학 연구소에 최대 기부자다.

그곳에서 낸 재미있는 논문을 본 적이 있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국가들은 남북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여러 이유에 대해 나름 근거를 가지고 설명했는데, 그 가운데 국경문제도 있었다.

만주 혹은 간도문제.

논문에 따르면 한반도에 통일대한민국이 출범하면 국경선 문제가 불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간도지역은 고구려의 영토임이 여러 사료들로 증명이 되고, 고려와 조선시대까지도 조선인들이 살면서 실효적으로 지배한 사실이 사료에도 남아 있다.

일본과 중국이 국경선을 놓고 체결한 간도협약은 당사국이 빠진 협약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무효라는 주장도 담겨 있다.

논문에 따르면 통일대한민국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 중국정부로서는 골치가 아파진다는 논리를 폈다.

여기에는 중국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동북공정과도 연결되었다고 주장했다.

논문의 주장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한국의 정치·언론·학계에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통일에 대한 로드맵도 없는데, 그 이후의 문제까지 고민할 리가 없으니까.

류지호가 소유한 기업에서 사용하는 모든 지도에는 ‘East Sea‘와 한글 ’동해’로 표기하고 있다.

영화에서 아시아 지도가 나올 때도 ‘East Sea‘로 나온다.

솔직히 계열사 영화사 직원들은 ‘동해’ 표기에 대해 별 관심도 생각도 없다.

오너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따를 뿐이다.

그 같은 모습을 보며 류지호는 알 수 있었다.


‘돈이면 다 된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에 일본보다 더 많은 돈을 풀고, 국제기구에도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기부자가 되고, Yaaho! Googol 등의 닷컴기업 중요 주주가 되어 회사 방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되고, 국제적인 지도출판사를 소유해서 지도 표기를 원하는 대로 쓰고, 전 세계 주요 국가 방송사에 최대 광고주가 되면 된다.

일본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민간차원에서 또 국가차원에서.

류지호는 <Remo : The Destroyer>에서.


[한반도가 없는 지도는 지도도 아니다.]

[역사가지고 장난치는 민족은 그 장난질로 인해 멸망한다.]

[중국놈이나 백인놈이나 뭐가 다른가? 쓰레기는 쓰레기야.]

[지구상 가장 약삭빠른 족속은 왜놈이지.]


그 같은 치운의 대사를 넣었다.

안타깝게도 슈팅스크립트에서 빠졌다.

일본은 세계 3대 영화시장이다.

일본에 영화를 팔아야 하고, 새롭게 열린 중국시장에도 팔아야 한다.

트라이-스텔라 입장에서 그들을 자극할 수 있는 대사를 넣는 건 어리석은 것이다.

때문에 모두가 그 대사들을 넣는 걸 반대했다.

<Remo : The Destroyer>를 한국인 감독이 연출하지 않고, 미국 감독이 연출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고 해도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그런 대사를 넣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한국비하는?’


할리우드가 한국을 마음대로 비하하고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은 시장이 작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커지고, 아시아 시장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순간 대접이 달라진다.

그것이 자본주의 첨병인 할리우드의 진짜 얼굴이다.

한국시장과 한국인을 존중하는 척 하는 것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단해서 비위 맞춰주는 거 아니다.


도리도리.


류지호는 쓸데없이 뒤엉키는 잡념을 털어냈다.

류지호는 임진왜란과 관련해 떠오르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띠는 메모는.


黃進.... Sword Master ...진주성 ....이순신 ...나랏일이 어긋나게 되었구나!


같은 내용들이다.

생각이 계속해서 확장해서 허무맹랑한 영화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심지어 한국이 일본을 식민지배하는 SF영화 시놉시스까지 써재꼈다.

류지호가 온통 공상으로 허우적거릴 때....


“....보스.”

“아, 티노?”

“저와 조깅이라도 다녀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산책이라도.”

“.....응?”

“5시간 동안 방에서 꼼짝도 안 하셨습니다.”

“그랬나요?”


김영철이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사우나에 가셔도 좋고요.”

“다 같이 주변 한 바퀴 돌고 사우나 가서 땀 좀 뺍시다.”


쉬러 왔다가 영화를 기획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류지호다.

쉬는 것도 해본 사람이 잘 쉬는 것일까.


✻ ✻ ✻


무주리조트에서 지낸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류지호의 노트북에 몇 개의 시놉시스들이 새롭게 저장되었다.

동학농민전쟁 배경의 삼부작.

<은행나무 침대> 풍의 한국적인 판타지.

임진왜란 관련 대하드라마.

제2차 진주성 전투.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아이디어 두 개.

애니메이션 아이디어 하나는 한국에서 제작해볼까 궁리해봤다. 도깨비의 기원이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였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전설의 생물 용(龍)과 대장장이의 아들 후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모험담이다.

실사화도 고민 중이다.

다만 도깨비가 서구권에서 통할 수 있을지.

그 부분에서 류지호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다고 해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PIXART나 Dreamfactory 스타일의 3D 애니메이션으로 기획을 잡았다.

도깨비에 관한 애니메이션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다.

고대 대장장이들이 새벽에 횃불을 들고 일터인 대장간으로 향하는 걸 본 사람이 어둠속에서 마치 불만 둥둥 떠다는 것으로 오해해 요괴인 줄 착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기획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도깨비와 관련된 자세한 연구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

일본의 역사학자가 조선의 도깨비에 관련된 책을 펴낸 것을 구해서 읽어봤다.

자기들 요괴전설을 억지로 가져다가 짜 맞춘 수준이었다.

류지호는 하는 수 없이 90년대 초반 한창 인기를 끌었던 상고시대 동이족을 다룬 서적들과 북유럽의 대장장이 신화·전설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역사와 전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다면 판타지로 접근해야 했기에.

이전 삶에서 흥행에 꽤 성공했던 <메리다의 마법의 숲>, <드래곤 길들이기>를 떠올리며 기획을 잡았다.


‘문제는 언제나 제작비!’


할리우드에서 PIXART 수준의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면 1억 달러 가까이 필요했다.

한국은 인건비가 저렴하고 한 사람이 두 서넛 몫을 하기 때문에 훨씬 저렴한 제작비가 들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 제작 자체가 가능한지가 의문이다.

기술은 있다.

문제는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이다.

제작 한다고 해도 애니메이션 시장이 워낙 작아서 제작비 회수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기획서는 정리해 두었다.

좀 더 구체적인 스토리가 정리되면 Hues & Rhythm, 트라이-스텔라 애니메이션 사업부와 논의해 볼 생각도 있었으니까.


‘쉘라와 윤희가 글발이 좀 올라와 줘야 내가 고민을 좀 덜 텐데.’


시나리오 노예 1번은 UCLA 영화과 동기 쉘라 칼라한.

노예 2번은 영화과 후배 김윤희다.

두 사람 다 재능과 잠재력이 있다.

그럼에도 모든 걸 맡기기에는 못미더웠다.

아직 갈고 닦아야 할 게 많았다.

할리우드에서 많은 돈을 받는 작가들은 정말 잘 쓴다.

그들에게 맡기면 꽤 괜찮은 시나리오를 뽑아낼 터.

한편으로는 세상에 완벽한 시나리오 작가도 완벽한 시나리오도 없다.

두 번째로 감독 짓을 하고 있는 류지호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리드 스콧 감독은 시놉시스를 쓰기도 전에 콘셉트 아트 작업을 한다.

주제나 스토리를 먼저 구상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장면 이미지를 콘셉트 아트로 만든 후 그에 맞춰서 스토리를 짠다.

대략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같은 걸작을 만들어냈다.

물론 리드 스콧 같은 명감독도 시나리오 없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순 없다.

결국은 좋은 대본을 써서 그걸 토대로 영화를 준비한다.


“다 때려치우고, 시나리오나 사부작사부작 쓰면서 2년에 한 편씩 영화 연출하면서 살까?”


가능하지 않다.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기 때문에.

류지호가 양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짝!


한 달 동안 한량처럼 지내다보니 나태와 무사안일주의란 놈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것 같았다.


“자! 이제 휴식 끝!”


자리를 박찬 류지호가 스위트룸 베란다로 나갔다.

무주리조트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머릿속으로는 향후 행보를 그려보았다.

충무로에서 입봉.

입봉 작품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국영화 감독으로서의 방향성이 달려있다.

미국에서 연출한 작품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찍는 영화도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배우와 스태프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흥행성적 뿐만 아니라, 평단과 언론의 평가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야 한다.

투자사나 제작사 그리고 주연급 배우들은 감독의 데뷔작을 유심히 지켜본다.

투자사는 흥행감각과 영화적 마인드를 본다.

제작사는 감독으로써의 역량을 우선시 한다.

배우는 조금 다르다.

자신이 무엇을 하게 되는가를 더욱 유심히 살핀다.

사실 그런 것들은 류지호에게 상관없다.

WaW 픽처스를 통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취미생활이 아닌 이상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건 무척 중요하다.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존재를 증명해 보고 싶다.

류지호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다.

간절하게.

사업가, 기획자, 제작자는 직업일 뿐이다.

반면에 영화감독은 삶 그 자체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원초적인 욕망이기도 하고.


‘영화 한 편 찍는 게 간절했던 내가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될 줄이야.....’


류지호는 자신의 처지가 다소 어이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메모지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잠시 신호가 가고.


- 여보세요?


약간은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접니다. 지호예요.”

- 아이고 이게 누구야? 목소리 까먹겠다. 이 무심한 놈!


목소리의 주인공은 <Help Me, Please!>에 출연한 바 있는 김영찬 배우다.


“조금 무심하긴 했습니다. 하하.”

- 혹시 한국이냐?

“예.”

- 언제 소주 한 잔 해.

“요즘 바쁘세요?”

- 작년에 KBC에서 사극 하나 끝내고 지금까지 놀고 있다. 불러주는 데가 없어.

“야간업소는요?”

- 먹고는 살아야지.

“내일이나 모레도 야간업소 나가세요?”

- 얼굴 한 번 보여주게?

“형님이 얼굴 한 번 보여주세요.”

- 지금 당장이라도 볼 수 있어. 지금 볼까?


감독이 뜬금없이 배우에게 전화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요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당신의 요즘 컨디션이 어떤지 궁금하다.

얼굴 한 번 보자.


“조용히 한국 들어와서 쉬고 있거든요. 형님이 보러 와 주실 수 있겠어요?”

- 그걸 말이라고. 배우가 감독님 계신데 찾아가야지 어디 경박스럽게 감독이 와.

“좀 먼데 있는데 괜찮아요?”

- 한국에 있으면 제주도라고 못 갈까?

“비행기 안 타셔서도 됩니다. 무주에 있어요.”

- 무주리조트? 스키시즌도 아닌데?

“비수기라 조용하네요. 시나리오 작업하러 왔어요.”

- 내일 갈게. 무주리조트로 가면 돼?

“티롤 호텔 아세요?”

- 알지. 무주리조트에서 영화도 찍고 드라마도 찍어봐서 잘 안다.

“내일 이쪽으로 오세요. 방 잡아 놓을 테니 저녁에 소주 한 잔 해요.”

- 그러자.

“저 만나러 간다고는 하지 마시고요.”

- 걱정 마. 내가 쎄리 밟아서 후딱 넘어갈게.

“쎄리 밟다 사고 납니다. 천천히 오세요.”

- 내일 보자.


류지호가 통화를 종료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신의 개입으로 김영찬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배우로서 커리어는 이전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여간 정치 진짜 못하는 형님이라니까.....’


방송사 PD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접대도 좀 하고, 인맥관리를 해야 오랜 간다.

김영찬은 그걸 못하는 사람이다.

국장급하고 오붓한 곳에서 술도 좀 마시면서 비위도 맞춰주고, 골프도 치러 가고, 명절에 선물도 좀 보내고.

그런 거 못 한다.

안하는 것에 더 가깝다.


‘김인륜 선배님도 찾아뵈어야 하는데... 건강은 괜찮으신지 모르겠네.’


<영정 사진>을 함께 했던 김인륜은 몇 년 전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건강관리에 힘쓰면서 방송과 연극에 열정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올해도 단막극에 이어 아침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환갑을 코앞에 두고도 배우로서 몸을 아끼지 않고 영화·방송·연극 가리지 않고 열정을 다 하고 있다.

생각난 김에 김인륜에게도 안부 전화를 했다.


‘잘 지내고 계셔서 다행이네.’


돌아보면 <영정사진>에서 김인륜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기성배우가 아무런 인맥도 없이 학생 작품에 출연하는 일은 없으니까.

게다가 명문 영화과 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의 단편에.

그런 일들로 인해 류지호는 새로운 인생 자체가 영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굳게 믿게 됐다.

그 때문인지 영화제작과 관련된 업체나 기술에 대한 욕심이 유달리 많았다.

한국의 사업체를 지주회사로 개편하면서 사명으로 WaW를 브랜드로 내세우자는 의견이 있었다.

가온이 웨딩관련 사업 부문에서 한정된 브랜드란 이유에서다.

류지호는 가온을 포기할 수 없었다.

첫 사업의 사명이어서가 아니었다.

순우리말인 가온대(데)에서 따온 가온을 사명을 쓴다는 것은 웨딩분야의 중심을 넘어 ‘영화세상의 중심’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류지호의 영화사들이 최고는 아니다.

21세기로 넘어가서도 최고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그룹 즉 기업집단이 된다면 지금까지와 다른 규모의 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는 점.

또한 필요에 따라서 다른 분야로 사업이 확장될 수도 있고.

이미 대유그룹의 일부 계열사를 인수하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룹이 영위하는 산업분야 모두에서 ‘가온대‘가 되려는 야심을 뜻하는 단어가 그룹명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앞으로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어야 하고, 인재도 많이 필요하다.

당장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여파로 전반적으로 (주)가온 계열사 매출이 주춤했다.

그렇다고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도리어 선방하고 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자금을 풀고 있다.


‘솔직히 돈은 그만 벌어도 되긴 한데.....’


내년 이맘때가 되면 류지호의 계좌에 수 조원이 들어올 수도 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그 자금들을 한국과 미국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투자를 하게 되겠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부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


때마침 밤하늘에 유성이 지나갔다.

유성이 빛나는 동안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사업의 성공을, 가족의 건강을, 자신의 행복을.

그 어떤 소원도 빌지 않았다.

그저....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류지호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중얼거렸다.

삼류가 일류보다 쪽팔림에 민감하다.

곧 죽어도 쪽팔리지 않으려는 게 삼류다.

류지호는 이번 삶에서 일류의 삶을 살더라도 쪽팔리지 않겠다고, 부끄럽게 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과거로 돌아온 것이 꿈이 아니길....

꿈이라면 깨지 않길 간절히 소원했다.

이미 유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지만.


작가의말

뜻 하시는 것들 이루는 한 해 되시길 소망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2 Surfin USA! (2) +8 23.01.12 3,972 143 20쪽
391 Surfin USA! (1) +9 23.01.11 4,044 145 23쪽
390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는 좋아요. 다만.... +9 23.01.10 4,098 140 27쪽
389 잘 익을 때까지 뜸들이기! +11 23.01.09 4,033 147 26쪽
388 성급하게 솥뚜껑을 열지 않도록.... (2) +11 23.01.07 4,063 141 27쪽
387 성급하게 솥뚜껑을 열지 않도록.... (1) +8 23.01.06 4,089 139 24쪽
386 내 집 걱정이 먼저! +3 23.01.05 4,109 136 27쪽
385 휴식의 완성은 업무죠! (3) +8 23.01.04 3,899 141 28쪽
384 휴식의 완성은 업무죠! (2) +8 23.01.03 4,020 146 27쪽
» 휴식의 완성은 업무죠! (1) +10 23.01.02 4,015 142 25쪽
382 업무의 완성은 휴식입니다. (2) +11 22.12.31 4,038 148 24쪽
381 업무의 완성은 휴식입니다. (1) +7 22.12.30 4,139 139 26쪽
380 退魔記錄. (2) +10 22.12.29 3,990 141 28쪽
379 退魔記錄. (1) +8 22.12.29 3,912 116 25쪽
378 한국형 블록버스터 멋진 말 아닙니까? (2) +6 22.12.28 4,063 138 22쪽
377 한국형 블록버스터 멋진 말 아닙니까? (1) +7 22.12.27 4,139 138 21쪽
376 할 일이 많아서 당장 결혼은 좀..... +8 22.12.26 4,233 143 25쪽
375 심시티 좀 해보렵니다. (2) +6 22.12.24 4,113 149 23쪽
374 심시티 좀 해보렵니다. (1) +11 22.12.23 4,265 146 24쪽
373 월가에서 어느 정도 위치야? (2) +5 22.12.22 4,229 142 24쪽
372 월가에서 어느 정도 위치야? (1) +7 22.12.21 4,268 136 26쪽
371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2) +9 22.12.20 4,076 142 24쪽
370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1) +6 22.12.19 4,103 142 24쪽
369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3) +7 22.12.17 4,105 149 24쪽
368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2) +5 22.12.16 4,105 149 24쪽
367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1) +9 22.12.15 4,132 142 22쪽
366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5 22.12.14 4,156 144 27쪽
365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16 22.12.13 4,172 151 27쪽
364 왕족만이 왕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10 22.12.12 4,245 147 27쪽
363 The Destroyer. (13) +7 22.12.10 4,144 145 2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