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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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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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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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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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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내 집 걱정이 먼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예정했던 날짜보다 사흘 먼저 무주리조트를 떠났다.

그리고 일정에 전주 노송동이 추가됐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코아호텔 로고가 걸려 있던 빌딩에 가설울타리와 가림막이 둘러져 있다.

코아백화점은 철거 되어 기반공사가 준비 중이다.

(주)가온에서 호텔과 백화점 일대 부지를 전격적으로 매입하면서 한때 전주 지역에서 혹시 업종을 변경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전주를 포함한 지역에 변변한 호텔이 없었기에 대표적인 특급호텔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역 여론의 동향과 상관없이 (주)가온 이사회의장 산하 전략기획실에서는 호텔, 백화점, 멀티플렉스, 예식홀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복합상가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실행했다.

기존 지하 2층, 지상 12층 113개 객실의 호텔은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전주 유일의 프리미엄 호텔로 거듭나고 백화점 터와 주변 부지에는 멀티플렉스와 예식장이 입점한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이다.


“총부채가 60억이었죠, 아마?”


서울에서 내려와 합류한 김우영 비서실장이 냉큼 대답했다.


“고율의 채권과 대출금은 모두 정리했고, 주거래은행을 통해 리모델링 비용과 복합상가 건설비용을 저리로 대출받았습니다.”

“공사는 어디서 합니까?”

“전북에 1군 업체가 없어 전국구 건설사에 맡기려고 했지만, 신정건설이라는 신생업체가 최종 선정된 것으로 압니다.”


엔터테인먼트, 쇼핑, 숙박이 결합된 복합단지가 한국에서 처음은 아니다.

잠실 광설월드가 이미 시도한 모델이다.

(주)가온의 복합쇼핑문화단지 프로젝트는 테마파크가 빠진 미니 광성월드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복합상업문화단지가 들어서는 도시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보여줄 계획이다.

류지호가 지켜보고 있는 전주 노송동 단지는 전통의 도시 전주를 상징하듯이 한옥을 모든 디자인의 기본으로 잡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통로는 류지호의 기억 속에 있는 전북대 한옥정문처럼 지어질 예정이다.

가온호텔 역시 기와지붕과 단청, 궁궐 전통 장식들이 과감하게 반영됐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해서 그렇지 화려하고 순도 높은 채색과 다양한 문양을 자랑하는 한국 단청은 목조 건축의 외부 장식 미술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궁궐에 반드시 들어가는 장식들을 단지 내외부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하기로 했다.

해태와 천록 같은 잡귀를 쫓는 전설 속 영물의 조각상은 물론이고 궁궐에서 화재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사다리, 드므 등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위치시킬 계획이다.

드므는 물을 담아 놓는 커다란 물동이인데 불귀신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가게 하여 화재를 예방하려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불을 쫓는 신성한 동물인 용, 해태 등의 장식을 곳곳에 숨겨놓기로 했다.

류지호 개인적인 욕심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생기면 이곳에서 와서 숨겨져 있는 각종 조각상들을 찾는 놀이를 해봐야지.’


그 외에도 벽사(辟邪)의 의미를 가진 사신과 십이지신 관련한 각종 부조 및 판석을 단지 곳곳에 숨은그림찾기 할 수 있도록 배치하기로 했다.

미신을 믿거나 고고학자는 그 같은 숨겨진 벽사 장식물들을 보며 크게 웃을지도 모른다.

고객들이 재밌으면 그 같은 디자인은 성공이다.


“전주국제영화제 본부 호텔이 될 수 있도록 시와 잘 이야기 해 보세요.”

“올 연말부터 호텔영업이 가능하니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네요.”


한창 리모델링 중인 가온호텔을 바라보던 류지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언젠가 태어날 아이들과 이곳에서 와서 함께 곳곳을 탐험하면서 숨겨진 벽사의 장식물들을 찾아내는 놀이를 하는 상상을 하고 있으려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놀이를 다른 아빠들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고.....’


한옥이 건축에 포함되고 벽사를 뜻하는 각종 장식물이 들어가면서 리모델링비가 꽤나 늘었다.

누구는 빌딩 한 채 올릴 만큼의 예산이 소요되는 최고급 수입산 마감재로 겨우 로비 하나 장식하기도 하는데, 그에 비하면 류지호의 요구는 소박하다고 할 수 있다.


✻ ✻ ✻


류지호의 다음 행선지는 김제에 위치한 상토연구소였다.

The Parker's Fields와 (주)가온의 컨소시엄에 매각된 후로도 계속 상토연구소로 불리고 있다.

현재 호농종묘와 중양종묘는 1961년 설립된 불암육종연구농장이 모태인 조치원 육종연구소를 비롯해 충북음성군 중부육종연구소, 전북 김제 상토연구소 그 밖에 입장, 장흥, 해남, 고성, 제주도에 육종농장을 두고 있다.

전국적으로 9개 지점과 1개 출장소와 중국 인도네시아 등 6곳에 해외지사를 두고 있다.

참고로 조치원 육종연구소는 우리나라 채소종자 대부분을 육종한 제1의 민간 육종연구소다.

컨소시엄에 매각된 호농과 중양은 기존의 회사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경영도 기존 임원진이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IMF 한파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 다른 회사와 달리 인력감축은 9%에 그쳤다.

계약직 및 파견직 전환 인력을 제외한 순수감축은 5∼6%선이었다.

The Parker's Fields에서도 전문 연구 인력을 파견직으로 보내줬다.

반대로 호농과 중앙에서는 The Parker's Fields의 종묘연구소로 연구원을 보내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의장님!”


류지호가 상토연구소를 방문한다는 비서실의 통보가 있었던 모양이다.

사장이 본사가 아닌 연구소에 와 있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영춘이라고 합니다.”


부친에 이어 회사를 물려받은 이영춘 회장은 회사가 안정되면서 더욱 의욕이 넘쳤다.

류지호 일행을 안내하는 내내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류지호가 한참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그의 앞에서 처신을 가볍게 하지 않았다.

예의를 갖추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고 할까.


“악성부채를 깨끗이 해결한 것을 토대로 연구·개발(R&D), 마케팅 및 품질관리 개선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미국에 고추 무 브로콜리 양배추 등의 종자를 독자브랜드로 수출해 온 저희 호농은 미국시장의 경우 파커 필즈의 판매망을 활용하고 있고, 아시아는 자체 판매망을 통해 공략 중입니다. 이를 통해 수출규모를 지난해 1천만 달러에서 5년 뒤에는 두 배 이상까지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아시아 시장은 곧 4억∼5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고, The Parker's Fields 농업연구소의 유전공학 및 종자가공 기술 등을 활용해 아시아 지역 입맛에 맞는 종자를 새로 개발,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중양은 어때요? 거기도 안정되었습니까?”

“IMF 전보다 나아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양은 전품목을 다 육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품목 위주로 경쟁력과 전문성을 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중양종묘는 지난 55년에 설립된 이래 무 53품종, 배추 47품종, 고추 45품종, 수박 23품종, 멜론이 18품종과 기타 양파, 당근, 시금치, 호박, 가지 등 지금까지 선보인 군소 품종을 포함하면 357품종이나 된다.

류지호는 이영춘 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대단한 회사 두 곳이 다국적 농업기업에 홀랑 넘어갔을지도 몰랐으니까.

물론 지분의 49%는 미국계 농업기업인 The Parker's Fields 소유지만.

어쨌든 종묘주권의 절반이라도 지켜낸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의 회사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이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한 그늘 아래 있는 회사니까 좀 더 부연 설명 드리자면. 중양은 생산부분을 전문육종가가 담당하고, 판매는 전문 판매회사가 전담하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서 기존의 방식을 버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저희와 마찬가지로 주요품목에 대한 투자여건을 개선하긴 하되 기타품목은 개인육종가나 군소업체에서 육종하도록 해서 전략적 제휴를 꽤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파커 필즈와 연계해 국내에 없는 우수품종을 공급하고, 수출용 종자 개발에 주력할 방침입니다.”

“신품종 개발에는 어려움은 없습니까?”

“최근 중국 쪽에서 참외와 고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종자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수고가 많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저희가 드려야죠.”

“회장님과 연구원들이 개발한 씨앗으로 재배된 채소들이 제 밥상에 올라오는 거잖습니까. 안전하고 우수한 품종을 개발해주세요.”

“중양종묘가 개발하는 신품종도 말씀드릴까요?”


이영춘 사장은 열의를 가지고 설명했다.

혹시나 The Parker's Fields가 종묘 라이선스를 다른 곳에 팔아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어수선했던 회사를 간신히 정상화 시켜놓은 걸, (주)가온의 오너가 알아주길 바랐다.


“올해 저희와 중양이 선보이게 될 신품종은 온세상고추, 올고추, 두배나고추, 온세상수박, 슈퍼만춘오이, 상아백다기오이, 왕대박고추, 신곱단이열무, 나이스메론, 샤넬퀸메론 등 입니다. 두 종이 더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국내 점유율은 회복했습니까?”

“저희는 예년 점유율인 30%대를 회복했고, 중양은 전보다 점유율을 2.1% 늘려 15.4%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청양고추를 먹어도 외국회사에 로열티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매운 고추의 대명사로 알려진 청양고추 종자를 보유하고 있던 곳이 중양종묘다.

하마터면 매운 것에 환장하는 한국인들이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외국회사에 로열티를 낼 뻔했다.

국내 처음 채소종자를 생산·공급했고 고추 육종기술 역시 세계적인 수준인 호농 또한 상당한 특허 종묘를 보유하고 있고.


“청양고추의 매운 맛이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지길 기대하겠습니다.”

“청양고추뿐이겠습니까? 해외 종묘회사에 인수되어 지사가 된 다른 종묘회사들을 제치고 국내와 아시아 종묘시장의 1등 되겠습니다.”

“의욕이 넘치시네요.”

“제가 열정 빼면 시쳅니다. 하하.”


짧은 일정이었다.

공연히 오래 머물러 봐야 연구원들의 업무만 방해할 터.

떠나기 전 연구원들이 회식이라도 하라고 금일봉을 건넸다.


“격포는 주꾸미와 바지락, 백합 같은 조개류가 맛이 좋다고 합니다.”


저녁은 격포항에서 바지락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다.

변산반도의 한 펜션에서 묵은 류지호는 다음 날 본격적인 변산반도국립공원 탐방에 들어갔다.

류지호에게 변산반도는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아직 지어지진 않았지만, 부안영상테마파크가 있던 지역이니까.

게다가 변산 팔경이라고 불리는 직소폭포는 사극 단골 로케이션지이기도 했고.

암튼 바람꽃길을 걷다보니 선인봉, 실상사 터, 봉래구곡, 산정호수, 선녀탕까지 둘러봤다.

풍부한 피톤치드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기분은 마치 원시림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천리포 수목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류지호는 변산반도를 떠나기 전 관음봉에 올라 멀리 곰소와 줄포를 눈에 담았다.

앞으로 한국에서 찍게 될 영화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또한 저 멀리 서해갯벌을 눈에 담고 산을 내려왔다.


❉ ❉ ❉


부산에 도착한 류지호 일행은 웨스틴 부산 호텔로 향했다.

이미 호텔 로비에는 (주)가온의 주요 보좌관들이 집결해 있었다.

사장도 몇 명 보였다.


“감독님!”


가온 관계자들이 우르르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넙죽.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왔다.

호텔 로비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특별히 시선을 끌지는 않았다.

김우영 비서실장이 대표로 물었다.


“잘 쉬셨습니까?”

“아주 푹 쉬고 업무에 복귀했네요. 사실 티노와 말릭 그리고 김 과장만 없었다면 확 잠수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잠시 잠적하셨다가 어마어마한 신사업 가지고 나타나시는 건 아니고요?”


문지열 팀장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류지호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한데, 회식... 반주로 한 잔 어때요 다들?”


끄덕.


반대가 있을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횟집으로 갑시다. 강은경씨, 양지희씨는 회 먹어요?”


전략기회실 소속 여직원 강은경과 양지희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주 잘 먹습니다. 없어서 못 먹습니다.”

“회가 좋아 고기가 좋아라고 묻는 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하고 똑 같은 거예요. 저는 엄마아빠 둘 다 사랑합니다. 감독님!”

“하하하. 여름이니까 농어와 장어가 좋겠죠?”


류지호의 물음에 김우영이 입을 열었다.


“자리돔도 좋고, 전복도 좋습니다.”

“그래요. 부산은 유명한 횟집도 많고. 아참, 이왕이면 부산에 파견 나와 있는 가온 직원들도 모두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김우영이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사이, 류지호는 일행과 함께 호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 경호팀은 류지호가 묵게 될 객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동했다.

단 이틀만 부산에 머물 예정이다.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예약하는 과소비는 삼갔다.

금방 횟집이 섭외가 되었다.

오후 5시가 가까워질 즈음 류지호와 일행이 호텔을 떠나 해운대 유람선 선착장 근처 외진 곳에 위치한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센텀시티 개발팀, 부산 지사 직원까지 포함해 서른 명 가까운 대인원이 모였다.


“메뉴판의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 먹고 싶은 건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시켜 먹어요. 이 가게에 횟감이 떨어지면 옆집에서라도 가져오라고 할 테니까.”

“잘 먹겠습니다!”


가장 상급자라고 할 수 있는 류지호는 만으로 28살.

무섭게 회를 흡입하고 있는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35살.

가장 연장자인 문지열 팀장이 40대 중반이다.

오너라고, 고위급 임원이라고, 연장자라고.

눈치보고 술시중을 드는 부하직원은 없다.

사실 이 회식에 안 와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문지열 실장이 류지호의 빈 잔을 채우며 물었다.


“신지식인은 정말 사양하실 생각이십니까?”


국민의 정부는 올해 2월부터 신지식인을 선정하고 있다.

학력에 상관없이 지식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에게 부여했다.

여기엔 기존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혁신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다시 말해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의 일과 관련된 지식을 끊임없이 체득하고 공유하며 이를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시킬 줄 아는 사람을 신지식인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시, 도지사가 신지식인 대상자를 발굴해 관련 기관에 보고하면, 심의한 후 행정자치부에 추천했다.

정보 습득성, 창조적 적용성, 방법의 혁신성, 가치 창출성, 사회적 공유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90여 명 안팎의 인재를 뽑았다.

류지호의 경우 경기도와 부산시에서 동시 추천을 하려고 했다.

본인이 극구 사양해서 현재는 심사 후보에서 빠진 상태였다.


“솔직히 내가 신지식인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웃기잖아요.”

“감독님이 대상이 아니면 누가 대상이 되겠습니까?”


기업가는 차치하고, 무려 아카데미 작품상 공동수상자다.

한국인으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

류지호의 신지식인 탈락(?)으로 인해 코미디언 출신의 모 영화감독이 먹지 않아도 될 욕까지 먹고 있다.

게다가 영화계에서조차 영상미디어 산업부문에서 신지식인을 선정해야 한다면 무조건 류지호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도 하고.


“무조건 1호였어야 했어.”

“그러게요, 신 감독은 눈치가 없어. 1호는 감독님께 양보를 했어야지. 괜히 1호 타이틀을 쥐고 있어서 욕을 배로 먹고 있잖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감독님이 1호가 되시면 신지식인 기준이 너무 높아지지 않나?”

“그래서 사양하신 거잖아요.”


류지호는 팀장들이 뭐라 떠들든 조용히 회의 맛을 음미했다.

김우영 실장이 류지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양하신다고 해서 끝이 아닐 것 같습니다.”

“본인이 안 받겠다는데, 억지로 부여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1호 신지식인을 부여받은 감독이 여기저기서 자격시비에 시달리고 있어서.... 유관부처에서는 영화업종에서 새로운 간판을 내세우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지식인 1호를 받은 감독은 코미디언 출신으로 정통 영화인이 아니다.

때문에 충무로에서 배척받고 있었다.

개봉을 앞 둔 그의 괴수영화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신지식인 1호의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했는데 여러 잡음이 끊이질 않으니, 정부로서도 난감한 상황이다.


“대기업 오너인 내가 백 개도 안 되는 칭호의 하나를 가져가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아요.”

“알게 모르게 로비도 치열한 모양입니다. 일단 1호에 선정된 감독 같은 경우는 광고도 꽤 찍었고 매체에서 자주 언급되면서 곧 개봉할 영화 홍보도 되고 있거든요. 벤처 창업자들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고, 벤처를 창업할 기회를 얻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다 류지호에게 귀찮고 성가신 것들이다.

가령 캠페인 광고를 억지로 촬영해야 하고, 정부 행사에 참석하기도 해야 하며, 강연도 몇 번 나가야 한다.


“난 지식인도 아닐뿐더러, 그냥 딴따라가 좋습니다.”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나저나 09 프로덕션의 <용가리> 개봉이 2주 후던가요?”

“7월 17일 개봉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봉관은 많이 잡았대요?”

“전국 85개로 알고 있습니다. 메인 상영관은 세종문화회관입니다.”

“같은 시기에 WaW가 배급하는 영화가 뭐가 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우영이 얼른 벗어놓은 재킷의 안주머니를 뒤졌다.


“됐어요. 그냥 앉아서 회나 먹읍시다.”


김우영이 기어코 수첩을 뒤져 메모를 훑다가 입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노팅 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8월로 넘어가면 <유니버셜 솔져Ⅱ>, <벨벳 골드마인>, <폴라X>입니다. 경쟁영화로는 무비서비스가 배급하는 <유령>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미이라>, <타잔> 등 입니다.”

“<용가리> 배급사가 삼부 파이낸스지요?”

“예.”

“개봉 첫 주말 <쉬리> 기록을 깼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할 겁니다. 대응하지 말라고 하세요.”

“어차피 관객들은 믿지도 않을 겁니다. 저희는 CineFeel.com을 통해서 개봉영화의 정확한 박스오피스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쪽 발표를 과장광고라고 생각할 겁니다.”

“CineFeel.com DB에 합류하는 배급사는 더 없어요?”

“박 대표가 무비서비스 측을 설득하고 있습니다만.... 그쪽 배급라인은 매표시스템이 전산화가 완전히 갖춰지질 않아서....”


개봉영화에 관객이 잘 드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 첫 주말 관객수 뻥튀기는 기본이다.

수동 매표이기 때문에 관객수 및 매출 장난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다.

반면에 G.O.M Cinemas 계열 극장은 모두 POS(Point of sales)라고 하는 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매표 부분에서는 투명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홍보마케팅에서 SF블록버스터 문구는 좀 빼지. 그러면 욕을 덜 먹을 텐데....”


순수 제작비 110억 원이 역대 한국영화 최고예산영화가 맞긴 하다.

그런데 그들은 이전 삶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운이 지지리도 없다.

그 절반도 안 되는 예산으로 WaW 픽처스와 제휴영화사가 <은행나무 침대>, <퇴마기록>, <쉬리>라는 각기 다른 서사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제시했으니까.

상식적인 홍보전문가라면 <용가리>를 ‘괴수영화’라고 홍보는 할지언정, SF블록버스터라고 광고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흥행산업에 대해 이해도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런데 진짜 <용가리>가 해외에서 270만 달러에 판매가 가능한 겁니까?”


전략1팀 한종혁 팀장이 대답했다.


“<퇴마기록>과 <쉬리>는 그 두 배의 실적을 올렸잖아요.”

“제가 영화를 보질 못해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감독의 전작들로 미루어 봤을 때 영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큭큭.


류지호 주변에 앉아 있는 팀장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 본부장 말에 의하면 '해약' 하는 배급사가 꽤 많을 것 같다고도 하고, 언론에서는 국가신용도에 먹칠할 우려가 크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고. 남의 영화이긴 하지만 기지개를 켜는 한국영화에 찬물을 확 끼얹지나 않을지."

“딜메모 알죠?”

“외화 수입할 때 딜 메모를 기준으로 쓴 공증 계약서를 받고 나서 계약금 20%를 보내지 않던가요?”

“주로 선판매가 이루어질 때 행해지죠. 한 영화가 수출되기까지 계약상 여러 단계가 있는데, 처음부터 완전한 계약서가 작성되면 좋겠지만, 영화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가계약 형태의 '딜메모'는 해외 영화마켓의 일종의 관행이에요. 아마 <용가리>의 200만 달러는 그렇게 성사된 액수일 겁니다.”

“가계약이니까 본계약 체결 전 완성된 영화를 확인하고 해약할 수도 있겠군요?”

“아주 없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자주 벌어지는 일은 또 아니지요.”

“왜 그렇습니까?”

“필름마켓에서 영화를 구입하는 바이어들은 프로들이니까요. 만약 신 감독 영화에 가계약을 걸어놨다면 그에 걸맞은 시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었겠죠. B급 영화라든가, 다이렉트 비디오라든가, 프리세일 가격을 후려쳐서 매우 헐값에 걸어놨다든가. WaW가 해외에 리메이크 판권 판매하는 사례를 떠올려보세요. 한국영화도 해외마켓에서 예전과 달리 관심을 받고 있어요. 조금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지금까지 WaW 픽처스는 5편의 리메이크 판권을 미국과 유럽에 판매했다.

ParaMax Films가 <8월의 크리스마스>, <여고괴담>, <편지>를 구매했고, 파인라인 시네마에서 <301, 302>를 구입했다.

독일의 한 영화사 <접속>을 구입해가서 독일판을 제작해 올 초에 현지에서 개봉한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몇 편의 영화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리메이크 논의가 진행 중이다.


“솔직히 영화 한 편 제작하는데 15층 빌딩 한 채 값이 들어갔다는 걸 믿기 힘듭니다. 영진위 통계로 한국영화 시장규모가 이제 4,000억이 갓 넘어가고 있는데, 손익분기점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예측작업이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이고.”


류지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작비를 과장했을 가능성이 커요. 아니면 제작비의 상당부분이 아무런 의미 없이 줄줄 샜든가.....”


류지호는 감독의 도전, 열정, 집념, 집착을 폄하거나 조롱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전 삶에서도 그의 시도에 박수를 보냈었다.

그런데 중요한 점 하나를 놓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려스러웠다.

제작과 연출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의미 있는 영화를 내놓는 경우는 작가주의 영화나 독립영화에 한정 된다.

상업영화에서 두 부분을 모두 함께 수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심지어 시스템이 매우 잘 갖춰진 할리우드에서도 제작·연출을 동시에 진행하다가 흥행과 연출 모두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낸 사례가 부기지수다.


“감독님은 미국에서 둘 다 잘해내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전혀 아니에요. 내가 오너라고 해도 프로듀서의 조언과 충고를 경청하고, 촬영 현장에서는 조감독과 프로덕션 매니저의 일정을 철저하게 따랐어요. 내 돈으로 찍으니까 비용을 줄이려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이 정도 쯤은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쓰면 돼 라는 마음을 먹는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지니까.”

“영화가 산으로 가겠군요?”


역시 한종혁 팀장은 영화 부문사업을 보좌하는 비서다웠다.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죠.”

“독선에 빠질 수도 있겠습니다.”

“내 돈으로 자기만족적인 영화를 찍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하지만 투자를 받아서 그들에게 이익을 안겨줘야 하고, 본인도 성과를 얻어야 할 경우에는 허풍이나 허세만 가지고는 안 되잖아요. 그리고 할리우드는 일 년에 400편 가까이 제작되기 때문에 영화 한 편 쫄딱 망해도 산업 전반에는 큰 영향이 없어요. 하지만 한국영화는 누군가 장르 하나 망쳐놓으면 수년 동안 기획조차 되지 않아요. 고예산 장르영화에 대해 위험부담을 느끼고 자신도 없으니까 조폭코미디만 단물 빠질 때까지 우려먹을 수밖에.”

“현재 충무로에 불고 있는 블록버스터 기획 열풍은 다소 우려스럽습니다. 말릴 수도 없고.”


류지호라고 별 수 없다.

벤처로 흘러들어가는 돈의 일부가 영화로 들어오고 있다.

소위 눈 먼 돈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한편으로 프로듀서 입장에서 보면 현재 기획되고 있는 블록버스트들의 기획과 소재, 스토리가 나쁘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제작시스템과 노하우의 부재죠.”

“근거 없는 낙관론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려 15편의 영화 연출 경험이 있는 배창훈 감독도 <퇴마기록>을 연출하며 여러 번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영화 한 두 편 경험해 본 감독이 100억 원 대 예산 영화를 컨트롤한다? 저라면 절대 투자하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하잖아요.”


류지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들이 웃었다.


하하하.


모름지기 흥행이 생명인 상업영화란, 기승전결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는 박진감 있는 구도로 적절한 볼거리를 제시해 가면서 적당한 때 조이고 풀어주는 맛이 있어야 한다.

영화를 ‘즐기고자’하는 관객에게 최대한 친절한 자세를 유지해서 극장에 있던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절한‘과 ’적당한‘이 연출력이고 감독의 역량이다.

할리우드에서 1억 달러가 넘는 고예산 영화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감독은 정말 극소수다.

대표적인 감독이 스티븐 아들러, 리드 스콧, 제이미 캐머론 정도....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이 당시 충무로 100억 영화는 할리우드 2억 달러 예산 영화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중견감독도 30억 예산 영화를 작업하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맞이하는데, 그보다 경험이 없는 프로듀서와 감독이라면... 말 할 것도 없다.


‘대강 떠올려 봐도 20편이 넘네.’


류지호가 기억하는 블록버스터를 표방하고 망한 영화 숫자만 스무 편이 넘었다.

WaW 픽처스가 지뢰작들을 피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 영화들이 개봉할 즈음에는 G.O.M 브랜드가 전국 주요도시에서 영업을 하게 될 테니까.


‘남의 집 걱정할 때가 아니라 내 집 걱정이 먼저지.’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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