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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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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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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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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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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성급하게 솥뚜껑을 열지 않도록....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멀티플렉스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점효과다.

가장 먼저, 좋은 장소에, 많이 지어야 경쟁에서 유리하다.

IMF를 거치며 한국의 땅값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그에 따라서 G.O.M Cinemas는 전국적인 다점포망 구축에 나섰다.

기존 극장과 손을 맞잡고 제휴를 맺거나, 극장 운영에 피로감을 느낀 일부 지방극장과는 임대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그룹개편을 마친 백설그룹 역시 영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강변 테크마트점에 이어 성남, 분당에서 차례로 멀티플렉스를 오픈했다.

광성그룹은 이보다 조금 일찍 일산에 광성시네마 1호점을 오픈했다.

자체 유통 시절이 없는 백설그룹의 JGV 브랜드나 올리온그룹의 CineBox와 달리 광성백화점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던 광성시네마는 경쟁사보다 유리한 입장이다.

5년 내에 유통 매장과 영화관을 엮어 관람객과 쇼핑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잇게 되는데, 여기에서 발생한 시너지 효과는 광성시네마를 단숨에 업계 2위로 성장시키게 된다.

멀티플렉스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상권이 중첩될 수밖에 없다.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게다가 DMB, 스마트폰 기술의 발달과 여가 활동의 다양화는 영화관의 입지를 더욱 좁혀놓게 된다.

당장 10년 내 IP TV를 중심으로 한 부가판권 시장의 빠른 성장이 영화관 산업을 긴장시킨다.

지금은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지고 DVD나 비디오로 출시되기까지 최소 몇 주에서 최대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0년 정도 흐르면 영화를 내리고 며칠 안 가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20년 후에는 IP TV가 아니라 OTT가 대세가 된다.

극장 매출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

집 밖을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멀티플렉스는 다양한 시도를 전개한다.

음향 설비를 전문화하고, 3D 상영관, 스크린X, Eye-Max 스크린을 확대하는 등 시설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한편 국가대항전 스포츠 중계, 클래식 공연, 콘서트 실황을 중계해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OTT의 선전으로 극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류지호만 알고 있는 흐름이다.


“해운대 일대에 재밌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류지호가 신사업추진단장 권호영을 돌아봤다.


“뭡니까?”

“이 일대가 ‘팠다 하면 온천이다‘ 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온천....?”


(주)가온의 신사업추진단은 분양받은 부산정보단지(센텀시티) 부지에 쇼핑, 호텔, 엔터테인먼트, 문화 공간, 오피스가 융합된 복합단지를 기획했다.

차후 분양받게 될 1만 평 부지에는 디지털 영상미디어 및 게임소프트 업체를 유치할 생각이다.


“만약 부지 내에서 온천이라도 터진다면 백화점, 호텔과 어울리는 여가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온천, 스파.... 아이스링크....”


통상 온천을 개발할 때 운이 좋으면 5~6번 파야 한 번 정도 나오는 것을 고려했을 때 큰 기대를 품기 어려운 상황이다.


“온천 개발로 방향을 잡고 실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위성사진을 동원해 수맥을 찾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해운대에 솟아있는 장산의 산세가 흘러내려 오는 방향에 따라 온천 가능성이 있는 후보지를 낙점하고, 부지 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땅 중 몇 군데를 굴착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은 겁니까?”

“부산대 지질학과 교수에게 비공식적으로 자문을 받아봤습니다. 승인해 주시면 정식으로 용역을 의뢰할까 합니다.”

“온천을 파는데 비용은 어느 정도나 들 것 같습니까?”

“굴착 비용만 3억 원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온천이 나오지 않으면 고스란히 날리는 비용이겠죠?”

“그렇습니다.”

“10군데 파면 10억 넘게 들어가겠군요?”

“그렇습니다.”

“백화점 사업팀에서 온천개발까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따로 TF를 꾸릴 필요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영입해야 하겠군요.”

“예.”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팀 하나를 따로 만들어서 일본에 파견하세요. 온천하면 아무래도 일본이니까.”


백화점 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김양호 실장이 깜짝 놀란 얼굴로 류지호를 돌아봤다.


“왜 놀라요?”

“소문의 진위도 파악해야 하고, 해운대 일대에 실제 온천을 이용한 업장이 있는가도 조사해봐야 하고, 연구조사 기간이 최소 6개월은 소요될 것으로.....”

“복잡하게 가지 맙시다. 일단 온천개발부를 만드세요. 결과를 보여주겠다고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난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으니까. TF가 되었든 실무팀을 꾸리든. 올해 안에 온천개발을 위한 준비가 되길 바랍니다.”

“....예.”

“대답이 왜 그래요?”


신사업추진단장이 김양호 실장을 두둔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성급하게 전한 것 같아서.....”

“아닙니다. 어차피 일대에 단지조성을 위한 인프라 공사도 진행되어야 하고, 가온에게도 시공사 선정부터 설계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되잖습니까. 그 시간 동안 온천과 관련된 타당성 검토와 굴착 작업을 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예!”


참고로 2년 후 백화점 사업부의 온천개발팀에서 온천발굴을 위한 굴착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굴착 작업을 시작한 두 곳에서 곧바로 뜨거운 온천수가 꽐꽐 쏟아지게 된다.

그것도 '탄산천'과 '식염천'이라는 두 종류의 온천수가.

진짜 온천이 발견된 이후 복합단지와 온천의 결합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한편으로 온천 트렌드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에 실무진을 파견한다.

2005년에 가서 가온백화점 속 찜질방 ‘스파랜드’가 문을 열게 된다.

원래 역사보다 무려 4년이나 앞서 영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가온 타운 내 특급호텔에서도 투숙객을 위한 온천스파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해보세요. 10억이든 20억이든 지원해 줄 테니까.”

“최선의 결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류지호가 한종혁 팀장을 쳐다봤다.


“멀티플렉스는 백화점 내에 입주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기획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백화점과 연결된 부속 건물에 따로 극장을 세우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백화점과의 시너지 효과가 반감되지 않겠어요?”

“상영관이 독립적인 건물을 가지게 되겠지만, 백화점을 중심으로 호텔과 엔터테인먼트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에 있습니다. 미국의 메가플렉스들을 조사해 센텀시티에 최적화된 모델을 연구 중입니다.”


미국의 메가플렉스들은 대부분 대형 유통시설과 함께 있다.

온 가족을 위한 놀이공간이 된 지 오래다.


“의장님의 비전에 따라 처음부터 다양한 디자인 전략을 구사할 계획입니다. 미국의 극장 체인처럼 영화관 로비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 대비로 관람객을 매혹시킬 계획이며, 테마파크에서나 볼 수 있던 다양한 조명 시설로 공간을 풍성하게 꾸밀 것입니다. G.O.M 브랜드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강화하기로 G.O.M 기획실과 의견조율을 마쳤습니다.”


사실 건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단관 극장과 달리 유통 시설이나 복합문화시설에 입점 형태로 들어가는 멀티플렉스의 로고나 그래픽 디자인은 브랜드를 어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소다.

따라서 내년 5월 코엑스 몰 G.O.M 개장에 맞춰 로고와 그래픽 디자인 그리고 로비 인테리어 등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멀티플렉스의 가장 큰 차별화는 역시 디자인일 겁니다. 단순히 로고나 공간 장식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G.O.M은 차별화된 콘셉트와 공간 디자인 전략이 영화관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 의장님.”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급화 전략을 펼치거나 지역의 특색을 살린 공간을 선보이는 등 입체적인 전술을 구사해야 할 겁니다.”

“전주처럼 말씀이시죠?‘

“영화관 전체를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포지셔닝해 극장을 찾는 관객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을 방문한 다른 목적을 가진 고객들까지도 다양한 즐거움으로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을 수립해 보세요. 21세기는 지금까지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트렌드나 시대적 흐름이 변화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해요. 마치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는 것처럼.”

“시대적 흐름에 도태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고민하겠습니다.”

“센텀시티 극장에도 1관은 코엑스 몰처럼 600석짜리 70mm 상영관이 들어가야 합니다. 당장 세계 최대 스크린 설치는 불가능하더라도, 차후 Eye-Max 상영관으로 교체할 것까지 감안해야 합니다.”

“Eye-Max 본사 엔지니어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차로 체인망을 깔 때 입지 측면에서 비용을 낮추기 위해 도심 외곽에 출점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고객 특성 상 입지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건 전략기획팀도 잘 알겁니다.”

“프랑스 유통업체 Rond-Point가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가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한국의 대형유통사들에게 좋은 교훈을 줬다고 봅니다.”


한국의 대형유통그룹들은 한국인들의 그 같은 성향을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매니저급 직원을 타 업체에서 스카우트 하는 것에 의존하지 말고, 핵심역량인 주요 직급만큼은 자체적으로 양성하는 방안도 마련해 보세요. 미리부터 2~3년 차 극장 근무 유경험자들을 채용해 직영극장에서 경험을 쌓게 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 보고.”

“예!”

“남은 1만 평은 언제 할당받을 수 있는 겁니까?”

“내년입니다.”

“잡음이나 불미스런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세요. 이런 개발 사업은 나중에 쓸데없는 불똥이 튀기도 하니까.”


부산정보단지 부지를 돌아 본 류지호 일행은 부산영화제 조직위 사무실을 방문했다.

새롭게 출범한 영상위원회 관계자들을 초대해 회식자리도 가졌다.

창원과 거제를 순회하는 일정이 있었지만, 취소했다.

부산지역에서 한가락 하는 인사들이 하도 밥 한번 먹자고 요청해서다.

부산에서 일정을 마치자마자 저녁에 곧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 ❉ ❉


서울로 돌아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박건호 대표와 배창훈 감독이 집으로 찾아왔다.


“<퇴마기록>이 흥행에 성공하면 하고 싶은 영화 찍게 해준다면서?“


류지호를 보자마자 배창훈 감독이 다짜고짜 한 말이었다.

물론 류지호도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박 대표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던데?”


류지호가 슬쩍 확인한 박건호 대표는 평온하게 차를 음미할 뿐이다.


“시나리오 써놓은 건 있으세요?”

“있어.”

“비서실장에게 주세요.”

“어디? LA?"

"강남 집무실의 김우영 실장이요.“

“자네 말대로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되어도 난 후속편까지만 하는 거야.”

“그러세요.”


어차피 <퇴마기록> 3편은 감독을 교체할 생각이었다.

3편은 ‘세계편‘으로 가는 토대를 깔아둘 필요가 있다.

‘세계편‘ 연출을 하게 될 감독이 3편부터 이어받는 것이 영화의 톤과 콘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하는데 좀 더 유리할 듯 싶었다.

박건호 대표와 배창훈 감독은 차 한 잔 대접받고 한남동 집을 떠났다.

류지호는 백수처럼 집안에서 늘어졌다.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남의 빈둥거리는 모습에 심영숙이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들.....?”

“예. 어머니.”

“미국 안 가?”

“원래 넘어가야 했는데.... 갑자기 일이 몇 가지 생겨서요.”

“무슨 일?”

“호텔과 리조트를 하나씩 인수할까 하고요.”


심영숙은 무슨 회사냐고 묻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는 궁금해서 간혹 물어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살고 있다.

장남의 사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심 조마조마한 심정이긴 했다.

겉으로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정말 앨범에 있는 아가씨들은 만나보기 싫어?”

“예.”

“그럼 할 수 없지 뭐....”


실망하시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때가 되면 운명처럼 아내 될 사람이 나타나겠죠. 독신으로 살 생각도 없고, 때가 되면 가정을 꾸릴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저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엄마는 좋은 집안, 많이 배운 며느리, 그런 조건 같은 건 따지고 싶지 않아. 그냥 네게 잘하고, 내조 잘하는 며느리면 만족해. 다만 결혼도 때가 있고, 남자는 가정을 갖는 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야. 사업과 영화 찍는 것에만 너무 몰두하지 말고, 네 짝을 찾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봐.”

“예.”


류지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심영숙을 안아줬다.


토닥토닥.


류지호를 떨어뜨린 심영숙이 입을 열었다.


“엄마가 하와이 놀러갔다 오는 거랑 며느릿감 고르는 거에만 정신이 팔려서 네게 보약 지어준다는 걸 깜박했지 뭐니. 며칠 더 머물 거라면 엄마와 한의원에 한 번 가보지 않을래?”

“보약 먹을 정도로 허약하지 않은데요? 그냥 아버지랑 어머니 지어 드세요. 제가 지어드려요?”

“네 아빠는 알아서 엄마가 챙기니까 걱정 할 거 없고. 공진단이 옛날 황제가 먹은 보약이라더라. 그거 지어줄 테니까, 미국 가서 먹어.”

“공진단이 벌써 유행해요?”


류지호가 기억하기로 건강보조식품이 본격적으로 일반대중에서 널리 유행하는 것은 2000년 중반부터다.

주로 홍삼이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공진단의 경우 고가여서 일부 사람들만 복용한다.


“압구정에 유명한 한의원이 있는데, 사향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쓰지 않고, 한국 산을 쓴다더라. 네 아버지도 그거 드시고 효과가 있다고 했어.”


류지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한국은 사향노루가 거의 멸종했을 텐데... 아닌가?”

“순호 것도 지어줄 테니 미국 들어갈 때 가지고 들어가.”

“한 재에 얼마인데요?”

“400만 원인가 할 걸.”

“믿을 수 있는 한의원이에요?”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회장님도 거기서 공진단 지어서 먹는다더라, 여기 한남동 부자들도 거기 단골이고.”

“같이 한 번 가 봐요.”

“내일 예약해 놓을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머니는 언제가 괜찮아요?”

“난 아무 때나 좋아.”

“공진단 만드는 시간도 있을 테니, 내일 아침에 가보는 걸로 해요.”

“그래.”


그때 류지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대자, 전략기획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 회장님, 다음 주에 가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수고했어요. 자세한 건 여의도에서 보고 받는 걸로 합시다.”

- 예!


류지호가 통화를 종료하고, 휴대폰에 저장된 김자영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 좀 봐.”


어느새 류지호가 옷을 차려입고 현관을 나섰다.


“어머니, 저 좀 나갔다 올게요.”

“언제 들어오니?”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저 기다리지 마시고 주무세요.”


갑작스럽게 외출한 류지호는 김자영을 통해 밀레니엄 호텔을 소유한 대유개발의 최고 경영자와 비밀리에 회동했다.


삼 일 후.


모든 일간신문 경제면에 (주)가온의 인수합병 기사가 실렸다.


- 법정관리 중인 전북 무주리조트가 1,600억 원에 팔렸다.


[전북도와 ㈜왕방울개발은 5일 무주리조트를 (주)가온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매각금액은 일시불로 지급하는 조건이다. (주)가온은 오는 29일 가계약을 체결해 계약금으로 100억 원을 지급하고, 정식계약은 오늘 가을께 할 계획이다. 최종 매각대금은 실사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북지사는 ‘자연환경이 뛰어난 무주리조트를 탐내는 외국회사들이 많았으나 가격 등 조건이 맞지 않아 매각협상이 수차례 무산됐다’ 며 ‘다행히 한국의 중견기업에 매각됨으로써 동계올림픽 유치작업에 활기를 불어 넣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한국신문. 경제부 이동필 기자.


(주)가온은 미도파 백화점 입찰에서 발을 빼면서 수천 억 원의 여유자금을 아낄 수가 있었다.

그 자금으로 무주리조트를 전격적으로 인수할 수 있었다.

다소 즉흥적인 생각이긴 했다.

전략기획실에서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

무주리조트가 안고 있는 부채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금액은 대략 30억 원 수준.

류지호가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무주리조트가 (주)가온에 편입되면서 JHO 동계 컨벤션을 유치하거나, 직원복지 차원에서 시즌권 할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현재 할인 혜택을 받는 기업은 포항제철그룹 임직원만 받고 있었다.

(주)가온의 인수합병 발표는 일주일 뒤에도 이어졌다.


[구조조정의 숙제를 안고 있는 대유그룹이 자사가 소유하고 있던 밀레니엄 호텔을 (주)가온의 리조트 사업부에 2.3억 달러(약 2,700억 원)에 매각했다. 대유그룹은 이날 오후 밀레니엄 호텔에서 대유개발 대표이사와 (주)가온의 호텔&리조트 사장 염기훈이 사업양수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매각대금은 룩셈부르크의 GHM사와 싱가포르계 부동산 개발회사인 CD사의 1,490만 달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유 관계자는 “라이부란회계법인의 실사결과 평가금액이 좋게 나와 매각가격을 높일 수 있었다”면서 “11월에 인수대금이 전액 입금되는 대로 밀레니엄 호텔 및 (주)대유의 부채상환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근무 중인 종업원들은 전원 고용이 승계되는 것에도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 백원일보 경제부 조승욱 기자.


류지호는 월드컴 주식의 블록딜로 인해 1조원 이상 현금을 수중에 쥐게 됐다.

그 건 이후로도 자잘한 나스닥 주식을 계속해서 처분하며 잔고를 늘려가고 있다.

어릴 때 짝사랑하던 누나 김자영의 부탁을 들어 줄 겸 밀레니엄 호텔을 전격적으로 인수하기로 했다.

실상은 아주 중요한 포석이 깔린 인수합병이었다.

대유그룹 12개 계열사 실사를 담당하는 한국의 빅4 회계법인 라이부란(Lybrand)과 다온 로펌이 모종의 논의가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라이부란 회계법인은 그룹이 해체될 때 (주)대유를 건설·무역·관리부문으로 분할하는 방안을 제시하게 되는데, (주)가온은 대유그룹의 무역 부문을 빼고 건설과 관리부문으로 묶이게 될 미디어 사업부문을 인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밀레니엄 호텔을 인수하면서 그 같은 뜻을 슬쩍 대유그룹 쪽에 흘렸다.

대략 2,700억 원을 미끼로 던진 후에 수 조원짜리 회사를 두서너 개를 가져오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를 위해서 물밑에서 전략기획실과 다온 로펌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류지호가 마음만 먹으면 대유그룹을 통째로 인수할 수도 있다.

보유중인 나스닥 주식을 모두 처분하면 가능할 듯도 싶다.

대유그룹의 자동차·전자·중공업·화학 및 무역 부문은 (주)가온이 전개하는 사업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뿐이다.


✻ ✻ ✻


“마치 대유그룹을 구원할 것처럼 연기만 피우다가 알짜만 빼먹고 빠지도록 해.”

“감독님이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만.”

“인수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치른다고 하면 앞 서 속임수를 쓴 것 따위는 금방 잊어먹게 될 거야.”


매튜 그레이엄이 JHO 의장비서실 M&A팀과 가온 전략기획실에 전한 말이다.

닷컴버블 붕괴 전에 너무 많은 주식을 처분하는 문제도 그렇고, 또 그렇게 손에 쥐게 되는 현금의 규모가 수십조 원에 이르는 것도 그렇고.

분명히 투자에 대한 정당한 수익을 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한꺼번에 현금으로 바꾼다는 것과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점 때문에 이 시점에서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가 있으니까.

자칫 닷컴버블 붕괴의 스위치를 류지호가 누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미국과 한국의 금융관련 조사 기관에서 괜히 트집을 잡을 수도 있다.

수많은 호사가들의 구설수로 인해 음모론의 장본인이 될 수도 있다.

그로인해 예기치 못한 상황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무렇게나 처리할 순 없었다.


“GARAM이 엄청난 수익을 보는 것은 문제없어. 내 의동생, Jay가 사람들로부터 악마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아.”

“천만에요. 사람들이 칭송할 겁니다.”

“과연 그럴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역사상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한 투자 사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악마와 투자가는 종이 한 장 차이야. 죄르지 슈바르츠가 많은 선행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그를 악마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지. 그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알고 있으니까.”


류지호는 실리콘밸리의 엔젤로 불리고 있다.

현 시점 벤처캐피탈에서 최대 투자금을 굴리는 투자회사의 소유주다.

만약 실리콘밸리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라도 하고, 그로인해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돈을 잃기라도 하는 날에는.... 류지호는 높은 수익률을 낸 부러움의 대상에서 무자비한 금융자본가로 지탄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닷컴버블을 부추기고 붕괴까지 유도한 원흉으로 지목될 수도 있다.

마치 퀀텀펀드의 죄르지 슈바르츠가 악마로 불리고, 그의 사단이 사냥개로 치부되듯이.


“돈에는 선과 악이란 없어. 다만 그 돈은 얼마나 악하고, 또 선한가.... 대중들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도 잊지 마. 너희들의 보스는 돈을 보고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는 사람이고, 철학과 이상을 자본주의 예술인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사람이란 것도.”


매튜 그레이엄은 류지호 개인이 거둔 수익을 최대한 감추고,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투자회사가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지도록 조치를 취했다.

눈 가리고 아웅 꼴이긴 했지만.


[내가 어떤 프레임을 만들든, 편향되거나 불완전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조심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악마와 천사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헤지펀드계의 거물 죄르지 슈바르츠가 한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은 드물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는 아니다.

일부 유명한 투자자들이 과대평가되어 정답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 투자에도 정답이 없는 법이거늘....”


시장 참여자들은 불완전한 이해를 근거로 행동한다.

거품은 시장 가격의 정확한 가치를 벗어난 편견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거기에 현실을 무시한 채 근거 없는 낙관론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편견이 자기 강화로 시작해 결국에는 자멸하는 거품-붕괴의 과정이 시장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지금의 벤처광풍은 금융과 투자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거품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돈을 싸들고 너도나도 벤처로 달려가고 있다.

제2의 골드러쉬라고 불릴 만했다.

투자 고수의 길은 다수를 따르지 않기에 고독하다.

대다수가 샴페인을 터트리고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서 홀로 고독을 즐기려 축제에서 빠지는 사람이 고수다.

바로 자신의 의동생 류지호처럼.

매튜 그레이엄이 알기로 누군가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다면 그는 다수의 투자심리를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매튜 그레이엄이 뼈저리게 느낀 교훈이 하나 있다.


‘대박이라고 하는 놈은 노력 없이 욕심만 가득한 이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꾸준히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몰래 찾아오는 놈이 대박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동생은 영화감독 따위가 아니라 투자가나 기업가가 어울려.”


작가의말

Rond-Point - 까르푸.

밀레니엄 힐튼이 수십 년 간 부침을 겪은 끝에 결국 허물린다고 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도리어 증축을 해서 규모가 더 커질 듯도 싶습니다.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까지 확보할수도 있습니다. 멀티플렉스나 백화점 리모델링을 궁리했지만, 워낙에 용적률과 건폐율을 초과한 이상한 건물이라서 용도변경할 경우 당시의 법률을 적용했을 때 골치아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소설이니까 무시해도 되겠거니 해도 영 찝찝해서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할 듯 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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