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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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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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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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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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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업무의 완성은 휴식입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이호준 사장이 VVIP를 상대하는 그 시각.

류지호는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나고 있었다.

최근 장관에 취임한 한재원은 재미교포출신 사업가였다.

미국에서 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로 야당 대권후보 시절 대변인과 비서실장을 수행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공보수석을 거쳐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된 청와대 실세이며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동교동계 가신들이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다.


“도대체 얼마를 투자하려고 하기에 대통령님과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거요?”


류지호의 기억에는 노회한 정치 9단 이미지로 각인된 정치인이다.

파릇파릇한 시기여서 그런지 표정이나 태도가 노회함과는 아직은 거리가 멀었다.


“인천에서 진행하고 있는 송도국제도시급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어디다가....?”

“대통령을 뵙고 직접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대통령님께서는 정경유착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권청탁을 하려는 것도 불법을 용인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뭐요?”

“정치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게 정경유착이 아니고 뭘까.


“무려 20조가 넘는 사업입니다. 평범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디에 무엇을 하려고 하냔 말이요!”

“죄송하지만, 대통령님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안입니다.”

“혹시.... 수도권에 놀이공원이라도 만들 생각입니까?”

“테마파크도 사업의 일부분입니다.”


IMF 체제 하에서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대규모 개발 사업은 정부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건설붐은 경기를 일으키는 손쉬운 방법이다.

건설과 부동산은 각종 경제지표의 숫자를 움직인다.

비리사건으로만 얼룩지지 않으면 정부로서도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대통령님과 뭘 거래할 생각인지만 말해주시오.”

“거래랄 것은 없습니다. 대규모 개발사업과 관련해 정부와 여당이 법률을 개정해주거나 특별법을 제정해 주십사 건의를 드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최근 가장 큰 골칫덩어리고 할 수 있는 대유그룹 문제에 있어서도 조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재원 장관의 눈이 부릅떠졌다. 날카로운 눈으로 류지호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저의를 파악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러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여유만만이다.


“경제부처 일부 관료들이 대유그룹 처리에 있어서 강경한 것으로 압니다. 제가 보기에 얼마 안 가서 김 회장이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채권단은 워크아웃을 선언하겠지요. 현재 대유자동차와 Durant Motors의 협상이 난항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그 부분에서 Durant 쪽에 조언을 조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ARAM Invest와 G&P는 Durant Motors의 중요한 주주다.

G&P는 DM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류지호는 매튜 그레이엄을 통해 DM의 대유차 인수합병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가온이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됩니다. 그 일환의 하나로 대유그룹의 일부 사업을 인수·합병할 생각입니다.”

“혹시 Durant와 함께 자동차 인수를.....”


류지호가 말을 잘랐다.


“가온은 엔터테인먼트와 서비스가 주력 사업입니다. 자동차·중공업, 전자 및 화학 사업 부문을 인수할 생각도 없으며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에도 맞지 않습니다. 대유 계열사를 인수할 때 부채 일부도 떠안을 용의가 있습니다.”


이권에 관한 청탁이 아니다.

거래다.

너희의 최대 골칫거리를 해결하는데 한 손 보탤 테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려달라는.


“대유그룹 부채가 얼만지나 알고 하는 소리요?”

“80조가 넘지요 아마.....?”


이 시기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이 90조 안팎이다.

대유그룹의 부채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같은 기업이 무너지면 외환위기로 힘든 한국경제는 더 거대한 후폭풍에 휩싸이게 되고 재기불능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분식회계까지.

대통령과 총수의 인연과 상관없이 대유그룹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어야만 했다.

한국경제가 또 다른 폭탄에 의해 나락 저 너머 깊은 수렁에 빠지기 전에.


“무역·서비스, 금융, 건설 정도는 인수계약 후 3개월 안에 전액 현금으로 매입대금을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미국의 지인들이 많은 것은 류 감독... 아니 의장도 알거요.”


끄덕.


“그래서 의장이 얼마나 대단한 거물인지 잘 알고 있지요. 그렇다고 해도 정부로서는 미국 회사에 대유를 통째로 넘기는 것은.... 부담이에요. 작년부터 우리 기업들이 해외자본에 의해서 많이 팔려나가다 보니 여론의 질타가 따갑습니다.”

“가온이 인수하는 겁니다. JHO가 아니라.”


가온은 중견기업이다.

결코 대유그룹의 계열사를 삼킬 깜이 되지 않는다.


“가온이 재계 서열 2위의 대유그룹의 계열사를 인수·합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올해 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송도국제도시급 개발 사업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까지.”

“경제부총리도 아니고 관련 부처 장관도 아닌 나한테 말을 꺼낸 이유가 뭐요?”

“동교동계 어른들과 접촉하면 말 그대로 정경유착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한재원 장관은 현 정부 집권 후반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된다.

국민의 정부 2인자로 올라서는 인물이다.

김태평 대통령은 비서들에게도 존댓말을 쓴다.

단 한 사람 한재원에게만 반말을 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에서 사셨으니까 Se7ven Flags도 아실 거고, Playa Vista 지역이 얼마나 넓은지도 잘 아실 겁니다. 그 사업을 제 소유한 부동산개발회사에 진행합니다. 한국에서 못 할 이유가 없겠지요.”


한재원 장관은 도깨비놀음에 빠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케이블TV 개국 기념식에 참석해 뭔가 엄청난 말을 들은 것 같긴 한데,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대유’ ‘국제도시 개발’ 두 말만 연신 되새길 뿐.


“늦어도 내년 초에는 대통령님과 오늘 장관님과 나눈 대화를 청와대에서 나눠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IMF에서 빌린 달러를 상환하는 기간이 조금이라도 더 단축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청탁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다.

헌데 류지호는 두루 뭉실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 저는 수도권에는 관심 없습니다. 개발 사업을 하게 되면 전라도가 될 것입니다.”


전라도에 놀이공원을 짓는 것은 한재원으로서는 알 바 아니다.

사업성이 있으니까 하겠거니.


“도대체 얼마나 큰 사업이기에.....”


송도국제도시는 국가차원의 개발사업이 아니었다.

민자사업이었다.

10년 넘게 투자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개발이 난항인데, 아무 것도 볼 것 없는 전라도라니.....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정권차원에서 또 여당이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그래서 대통령님께 직접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암튼 올 가을이면 류 의장이 뭘 하려는지 감을 잡을 것 같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보겠소.”

“그러십시오.”


전라도 일정 지역을 대규모로 개발하는 것이야 공수표라고 할 수 있지만, 대유그룹 처리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부분만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대유그룹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오늘 난 못 들은 걸로 하겠소.”

“가온에서 M&A는 주로 신사업추진단에서 다룹니다만 대유 관련 사안은 전략기획실장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금감위가 되었든 산업은행이든 채권단 대표가 되었든 재정부 관리가 되었든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쓸 만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경제 부처 관계자에게 말은 한 번 해 보리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소통령이라고도 불리게 될 한재원 장관이다.

다솜방송 재개국 기념식을 일부러 한재원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에 맞춰 개최했다.

밀실에서 음침하게 만나고 싶지 않았다.

공식행사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나서 원하는 바를 전달했다.

분명 대통령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대유그룹의 알짜 기업들을 이번 기회에 인수할 수 있으면 최선의 결과다.

한국에서 테마파크를 포함한 대규모 개발 사업을 승인 받는 것까지.

그 같은 것들을 명분으로 닷컴기업들 주식도 처분하고.

꼭 대유그룹 계열사는 아니더라도 인수할 기업은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대유그룹의 계열사를 인수한다는 것은 재계 2~3위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까지 함께 영입하는 효과가 있다.

자칭 대유맨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임원급들은 물갈이해야 하겠지만.


“그나저나 그 E-스포츠라는 거 말이요.”


이전 삶에서는 한재원 장관이 e스포츠라는 용어를 공식 석상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인물이었다.

이번에는 다솜방송의 이호준 대표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비공식적으로는 류지호였지만.


“스타크래프트 게임 경기가 열릴 경기장 구경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그럽시다.“


류지호가 한재원 장관을 동우극장빌딩에 마련된 게임 스튜디오로 이끌었다.


“다솜방송이 그 E-스포츠라는 것과 관련해서 상표권과 실안실용등록을 걸어놓았다던데.... 중계권도 있다면서요? 신생 사업자들은 관련 사업을 펼치려면 다솜방송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요?”

“예.”

“너무 일방적인 거 아니요? 독점은 산업을 망치는 길입니다.”

“깜냥도 안 되는 이들이 달려들어 판을 교란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겁니다. 또 재벌 끼고 협회랍시고 이권단체 만들어서 장난질 치지 못하게 미리부터 룰을 만든 셈이죠.”

“그 게임 대회라는 것에 진심인 모양입니다?”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스포츠가 되는 순간 한국은 태권도 외에 또 한 종목의 종주국이 됩니다.


하하하.


한재원 장관이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다.

기분 좋은 웃음이다.

류지호 정도 되는 거물이 허언을 할 리가 없으니까.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의장은 참 괴짜 중에 괴짜요. 전자오락을 스포츠화 할 생각을 다 하다니.”

“문화관광부의 지원과 협조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내가 장관직에 있는 한 염려 안 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한재원 장관이 다음 일정을 이유로 다솜방송 사옥을 떠났다.

주차장까지 내려가 배웅한 류지호가 다시 게임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이전 삶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토대로 E-스포츠와 관련한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 두었다.

승부조작 예방책과 처벌에 관해서도 만들어 두었다.

승부조작으로 적발되게 되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방안을 궁리 중이다.


‘산사태가 일어나면 멈출 때까지 모든 걸 집어 삼킨다고 하더니....’


E-스포츠 사업은 카오스 스튜디오(현 Snowstorm)에 투자할 때 이미 예정된 일이다.

처음 웨딩비디오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큰 영화사를 소유하고, 그곳에서 마음 편히 본인의 영화를 연출하기를 바랐다.

이제 와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업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한때는 통제를 아득히 뛰어넘어버려 자신까지 휩쓸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기도 했었다.

그런 걱정을 완전히 털어낸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통제가 가능하도록 제계와 조직을 정비하고 있기도 했고.


“여기서 뭐해?”

“누나도 참석했어?”


김자영이 류지호의 옆 자리에 털썩 앉았다.


“대유 관계자가 아니라 네 지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왜?”

“잘 지내지?”

“그냥 그래....”


대유그룹이 어수선한 상황인데 잘 지낼 리가...


“오늘 행사 때문에 일부로 귀국한 거야?”

“그렇지 뭐.”

“혹시 보고받았어?”

“무슨 보고?”

“우리 호텔 매각건에 대한 보고.”

“응.”

“관심 없는 모양이네?”

“해외에 있는 호텔까지 전부 매각하는 거야?”

“일단 밀레니엄 서울만. 경주는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경주에도 있었어?”

“진짜 관심 없나보네....”

“대유개발은 할머니 몫인 것으로 아는데?”

“그룹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아니다.”

“왜 하필 가온이야? 인수금액을 잘 처 줄 것 같아서?”

“아니.”

“내가 착해서....?”


만만하냐고 물어보려다가 돌려서 물었다.


“직원들 고용을 모두 승계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왠지 너라면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을 대량으로 해고 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

“뭘 보고?”

“네가 인수 합병한 회사들이 모두 그랬더라. 자발적으로 퇴사한 사람 말고는 회사차원에서 구조조정 명목으로 대량해고를 하지 않았던데?”

“그거야 덩치가 큰 회사를 인수·합병한 적이 별로 없어서 그랬지.”


Se7ven Flags Theme Parks는 꽤나 많은 인력을 감축했다.

류지호라고 해서 무조건 고용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너도 알겠지만 백화점이나 호텔은 대지를 구매한 뒤 빚을 내서 짓게 되잖아. 시간이 흐르면 평가 금액이 높아지면 그 시세 차익으로 빚을 갚고 이익을 거두지. 후우~ IMF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이 지경에 처하지 않았을 거야.”


외횐위기로 전국의 부동산 매물이 쏟아졌다.

가온은 막강한 현금 동원력으로 전국의 주요 상권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

산업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에 골몰하고 있다면서 언론에서는 연일 비판 기사를 내고 있다.

멀티플렉스 체인점이라고 설명을 하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대자본의 만행이라는 식으로 논조를 바꿔 비판한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인지.

주요 언론의 뒤에는 당연히 재벌과 기득권 카르텔이 있다.

공격적인 투자는커녕 구조조정에 매달리고 대기업들 입장에서 어지간히 배가 아플 상황이긴 했다.


“요 근래 대규모 투자를 많이 해서 자금 여력이 없을 걸?”

“웃기시네. 가온이 밀레니엄 호텔과 백화점 인수하려고 은행권 대출을 신청하면 너도나도 돈 싸들고 빌려주려고 할 걸?”

“그 정도는 아니야. 가온은 중견기업일 뿐이라고.”

“미도파 입찰에서 물 먹었다며? 여유 자금이 있다는 소리 아닐까?”


1997년 대농그룹의 모기업인 미도파가 적대적 인수·합병 대상이 되면서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 회사정리절차를 개시, 이듬해 9월 회사정리계획 인가가 결정되었다

이후 기업매각 공고를 냈는데 20여개 업체가 입찰의향을 내비쳤다.

그런데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20여 개의 회사 중 단 6개 회사만 최종 입찰서를 제출했다.

그나마 가장 유력한 경쟁사로 떠올랐던 광성과 뉴월드, 가온이 각각 목동점 오픈과 본점 리뉴얼 공사, 부산 센텀시티 부지 분양 등 여유 자금이 부족해 입찰에서 빠졌다.

당초 3,500억 원 안팎으로 추정되던 인수금액을 삼원에서 5,000억 원 이상을 써내면서 가장 유력한 우선협상대상자 후보로 부상하게 됐다.

여기에 협상 진행 과정에서 미도파 노조가 줄곧 자금력 있는 거대 유통사의 인수를 강력히 희망한 것에 삼원 측이 미도파 기존 직원의 고용 승계를 보장하는 것으로 화답하면서 현재는 최종 인수의 초읽기에 들어간 듯한 분위기다

무리한 입찰가격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가온은 재빨리 미도파 인수전에서 빠졌다.


“부산에서 정보산업단지 개발한다는 기사가 주요 일간지 경제면에 대문짝만하게 났는데, 못 봤어?”

“밀레니엄은 내가 근무한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매출이 썩 좋은 편이야. 인수한다면 네게도 손해가 아닐 거야.”

“누나, 나중에 호텔 총지배인 하고 싶어? 내 빽으로?”

“네 빽 없어도 언젠가 총지배인 할 수 있거든! 날 뭐로 보고.”

“.....!”

“한 번 고민해봐. 홍콩이나 룩셈부르크 기업에 넘어가는 것보다 같은 한국기업에 인수되는 게 좋지 않을까해.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


김자영이 은근슬쩍 밀레니엄 호텔 인수합병에 관심을 보이는 주요 기업을 흘렸다.

류지호는 화제를 돌렸다.


“누나, 배 안고파? 연회장에 가서 뭐 좀 먹자.”


류지호와 김자영은 건물에 마련된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호텔의 ‘ㅎ'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 ❉ ❉


류지호는 집으로 돌아와 하와이의 호텔로 전화를 걸다.

얼마 있지 않아 호텔 프론트에서 받아 연결해줬다.


- 여보세요.

“어머니, 지호에요”

- 어, 그래 아들.

“잘 도착하셨죠?”

- 이제 막 저녁을 먹고 호텔 객실에 들어왔어.

“뭐 하고 계셨어요?”

- 네 아빠와 가볍게 맥주 한 잔 마시고 있지 뭐.

“시차도 있고 비행기 타느라 힘드셨을 텐데, 하루 정도 푹 쉬시지.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 웬걸 조금 피곤하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호텔로 데려와 반나절 정도 푹 쉬어서 괜찮아.

“그러시다면 다행이고요.”

- 아침에 하리우마 뭐시긴가 갔다가 가이드가 차 태워서 한참 데리고 가더니 바닷가에 바위틈에서 물이 치솟아 오르는 것도 구경했어. 꼭 고래가 물줄기를 위로 내품는 것 같더라.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본 것도 아니고, 미국의 여러 명소를 관광한 경험이 있는 심영숙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단 둘만 떠난 여행은 난생 처음.

심지어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다녀오셨다.

사춘기 소녀처럼 들뜬 어머니의 목소리에 류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일정은 넉넉하게 잡았으니까 여유롭게 천천히 즐기도록 하세요. 따로 드시거나 구경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면 가이드나 경호원한테 이야기를 하시고요.

- 아들 덕분에 엄마가 호강을 하네.

“앞으로 크루즈 여행도 보내드릴 테니까, 두 분 다 건강하시기만 하세요.”

- 호호호. 그래 네 아버지가 옆에서 바꿔 달라신다. 잠깐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아버지가 전화기를 건네받아 말씀을 하셨다.


- 흠흠. 나다

“하와이는 마음에 드세요?”

- 날씨도 따뜻하고 괜찮구나. 그건 그렇고 객실은 왜 이런 걸 잡았어?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 달랑 둘이서 쓰는데 너무 크지 싶다. 고급 브랜드 호텔이라 숙박비도 엄청 비쌀 텐데 다른 걸로 바꿔 달라고 할까 한다.

“그러지 마세요. 그냥 쓰세요. 거기까지 가셨는데 편한 데서 주무시면 좋잖아요.

- 너무 과하니까 그러지.

“아버지 아들도 해외 나가면 그런 호텔 스위트룸에서 묵어요. 그런 아들의 부모님이 단출한 객실에 묵으시면 아들이 남들에게 욕먹어요.

- 그래 알았다. 여기서 묵으마.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한국에 있을 예정이냐?

“오셔도 저 못 보실 거예요.”

- 그 정도로 살펴야할 업무가 많아?

“아니요. 조용하고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시나리오 작업 좀 하려고요.”

- 아들, 현명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난 후 느긋하게 쉬는 법이다. 일의 완성은 휴식이란 말도 있지 않냐? 휴식은 새로움이고 새로움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너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진 말거라.

“예.”

- 휴식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결코 시간 낭비도 아니야. 휴식이 끝난 후 자신도 모르게 일이 잘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수많은 문제점들이 해결되고 사고는 풍부해지며 일처리가 더욱 세련된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는 마치 밭을 갈지 않고 뿌린 씨앗이 성장하여 힘 안들이고 곡식을 수확하는 것처럼 일이 쉽게 진척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버지의 잔소리다.


- 여보, 혹시 맞선 볼 아가씨 골랐냐고 한 번 물어봐요.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도 걱정 다 내려놓으시고 푹 쉬다 오세요.”

- 너도 그래라.

“앞으로 한 달 간 아무생각 없이 푹 쉬다 미국으로 돌아가려구요.”

- 알았다. 미국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가족끼리 밥 함께 먹자꾸나.

“예. 돌아오셔서 뵈요.”


통화를 마친 류지호는 서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을 꺼내 여행용 캐리어에 담기 시작했다.

휴식을 위해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업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 ❉ ❉


“한동안 무주리조트에서 지낼 겁니다.”

“얼마나 지내실 겁니까?”

“최소 보름.... 김영철 대리만 수행하도록 하세요.”


류지호는 수행원 없이 김영철 대리만 데리고 태안으로 향했다.

천리포 수목원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나무 그늘 밑 잔디에 누워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바닷가에 앉아서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보기도 하고, 썰물 때 민 원장과 함께 갯벌을 걸어서 섬으로 넘어가 구경하고 돌아왔다.

휴식의 진미는 일하는 사람만이 안다고 했던가.

몇 년 만에 류지호는 한껏 게으름을 피웠다.


“힘들지 않으세요?”

“젊은이와 모험가에게 위험이나 난관 또 고생이 반갑지 않듯이 초췌하게 나이든 사람들,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휴식은 반갑지 않은 법이다.”


류지호가 쉬엄쉬엄하라고 말하면 민 원장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다.


“지호야. 이 가드닝(Gardening)이란 게 취미활동 중에 최고로 높은 단계의 취미활동 같다. 세계 모든 정원은 돌아보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 한국의 정원이 최고인 것 같아. 언뜻 무질서 같지만 그 안에 질서가 있거든.”

“동북아 삼개국의 전통정원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고 해요. 중국은 경극처럼 정원을 연출적으로 바라본 후에 인공적인 요소로 꾸미고, 일본 정원은 완벽한 구도를 추구하는 그림 같다고 하죠. 한국의 전통 정원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고 하더라고요. 한국 전통 정원에서는 인공 경관은 그저 자연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거드는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 나무는 저 자리가 자신의 것이란 거야.”


통로를 막고 우뚝 자라있는 나무가 몇 그루 있다.

직원들이 나무를 옮기자고 해도 민 원장은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절대 옮기지 말라고 이야기 해 두었지.”

“수목원이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커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보탰단다.”

“사람들에게 할아버지의 업적을 좀 알려야 하는데....”

“몇 번 방송국에서 촬영해 갔어. 지호야, 저 나무 좀 봐라.”


민 원장이 오솔길 사이에 있는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저 나무들을 희수나무라고 한단다.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지만 아주 재미있는 나무야. 저 나무들은 항암제로 사용하기 위해 기르고 있지.”

“항암제요?”

“우리는 매년 이 나무들의 씨앗을 보관했다가 미국의 암연구소로 보내고 있지.”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천리포 수목원의 민원장과 연구원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중국산이나 일본산으로 해외에 잘 못 알려진 우리 고유의 식물들을 되돌려놓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실제로 90년대 중반부터 해외 식물학자들이 수목원에 방문해 세미나를 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 외에 여러 토종 식물을 식물학회에 등재시키기도 했다.


“여자 친구 없어?”

“많은 사람들이 제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무척 많으시네요.”

“내가 죽기 전에 네 결혼식에 초대받을 순 있겠지?”


어떤 결혼 압박보다 무시무시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민 원장이다.

류지호는 그의 말을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없었다.

윌리엄 파커, 강화의 외할머니가 결혼을 언급할 때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류지호였기에.


“그럼요!”


그렇게 씩씩하게 대답할 수밖에.

민 원장이 류지호에게 알려준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은.

가정의 행복, 평화다.

과거로 돌아온 류지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천리포 수목원에 머물며 자연을 벗 삼아 빈둥거릴 뿐.

류지호는 휴대폰까지 꺼놓고 외부와 접촉을 일절 삼갔다.


작가의말

새해에는 더욱 더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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