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연재수 :
899 회
조회수 :
3,828,110
추천수 :
118,685
글자수 :
9,955,036

작성
23.04.25 09:05
조회
3,427
추천
128
글자
24쪽

어쩌면, 혹시, 설마 했던 일.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제주도 중문 해수욕장.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국내에서 처음 서핑클럽이 생긴 곳이다.

서핑숍 직원 말로는 서핑클럽이 생긴 지 횟수로 7년째라고 한다.

여름 성수기에는 남풍이 불어 국내에서 서핑 최적지로 인정받고 있었다.

일본의 서핑 마니아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고도 했다.

올해 7월에는 제주중문비치국제서핑대회까지 열릴 예정이란다.


“최고 서핑 포인트라고 하더니. 4월이라 그런가? 바다가 한산하네.”

“장비부터 빌리자.”


해수욕장 근처 서핑숍의 사장이 류지호를 알아봤다.


“혹시... 맞죠? 류지호 감독님!”

“예. 맞아요.”

“LA에서만 서핑 하시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바빠서 바닷가 근처에도 못 가봤어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한국에서도 서핑을 즐기고 계셨군요?”

“처음입니다.”

“가온그룹 서핑 동호회원들이 휴가철에 많이들 옵니다.”


서핑숍 사장이 류지호와 레오나를 보드 진열대로 안내했다.


“숏보드 타시죠?”

“나는 펀보드 7.4인치로 주고 여동생은 초심자용 9피트 소프트 롱보드 주세요.”

“숏보드 안타시고요?”

“숏보드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일 정도까지 안 됩니다. 연습이 좀 더 필요해서요.”

“혹시 파손보험은...?”

“대여장비 파손보험도 가능해요?”

“가끔이긴 한데, 강한 파도를 만나서 보드가 부러지는 일이 있더라고요.”


류지호는 자신의 몸무게, 신장, 숙련도를 고려해 적당한 크기의 서핑보드를 골랐다.


“서핑 하려면 해양경비안전소에 방문하셔서 입수 신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런 것도 있어요?”

“그거 신고 안하고 타시다 적발되면 벌금 무셔야 해요.”

“그렇군요.”

“저, 사인 좀....”


류지호는 서핑숍 사장과 직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빠져나왔다.

입수신고서까지 작성한 후에 드디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쏴아아 철썩!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류지호는 서핑을 한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다행히 수온은 따뜻한 편이었다.

물 만난 물고기.

오랜만에 바다에 나온 류지호는 해변으로 나올 생각을 안했다.

레오나도 다르지 않았다,

너무 신났다.

방해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오로지 류지호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힘든 것도 몰랐다.

류지호가 중심을 잡지 못해 보드 위해서 고꾸라지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깔깔깔.


레오나의 입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류지호도 재밌었다.

일부러 레오나를 번쩍 들어 바닷물에 던지기도 하면서 장난을 쳤다.

어릴 때 놀던 것과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 기분이 조금 달랐다.

연인으로 받아들여서 그런 걸지도....


✻ ✻ ✻


해가 지기 직전까지 신나게 서핑을 즐긴 류지호와 레오나가 한적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에는 현무암이 해변 가까이 많이 흩어져 있는 한적한 해수욕장을 산책했다.

레오나가 류지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정말 이상해.”

“......?”

“난 왜 큰오빠를 항상 그리워하고 보고 싶고 그럴까?”


류지호는 대답 대신에 레오나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나만 느끼는 감정일까?”


류지호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

레오나가 대답을 종용했다.


“응? 나만 그런 거야?”

“···나도 그래.”

“그렇지?”


활짝 웃어 보인 레오나가 꾀꼬리 지저귐처럼 속삭였다.


“믿을 수가 없어. 꿈만 같아. 말이 돼? 내가 동경하던··· 당당하고 멋있고, 또 너무나 아름답고 섹시한 큰 오빠 품에 안겨 있지. 날 사랑하고 있지. 이건 정말 기적이야. 기적이 아니고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어.”


류지호의 온기가 레오나의 심장을 빨리 뛰게 했다.

수줍은 듯 몸을 떠는 그녀의 모습은 실바람에 흔들리는 한 송이 꽃 같았다.


“영원히... 네 모든 걸 사랑할거야.”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생물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남성은 성관계에 크게 기뻐하고 흥분하며 쾌락을 느끼지만, 여성은 사랑하는 이의 키스에, 진심이 담긴 사랑의 밀어에 감동하고 희열을 느낀다.

레오나는 여성이라는 생물이다.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

류지호의 입에서 나온 달콤한 말....


“사랑해.”


이 마법 같은 말이 레오나의 방심을 격렬하게 흔들어댔다.

순간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레오나가 몸을 틀어 손으로 류지호의 얼굴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런 후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두 사람이 떨어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도 다루 듯.

매우 조심스럽게 류지호가 레오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레오나는 더 이상 어린 여동생이 아니다.

연인이다.

류지호는 가슴 한 구석에서 자란 따뜻한 온기가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평생을 함께할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 상대를 거절하는 것은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다.

남자가 무조건 여자와의 진지한 관계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만약 상대에게 거절당했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의 시작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지는 누군가가 생기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토라지면 떠날까 달래줘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연인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모든 것에 필사적이 되는 사랑.....

그렇게 보면 사랑이라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연애에서 ‘나쁜 남자 나쁜 여자’라는 말이 있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정말 못돼먹은 연인이 아니라면, 슬기롭게 영리하게 사랑할 줄 아는 연인이라는 의미도 된다.

장밋빛 사랑이 되었든, 목련 꽃 같은 사랑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레오나라는 존재가 메말랐던 류지호의 빈 부분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배우만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기술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영화감독도 오랜 시간 영화에 빠져있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기도 한다.

그래서 술, 도박, 섹스에 빠지는 감독도 있다.

어쨌든 짧은 데이트만으로 그간의 피로가 모두 날아간 것 같았다.


❉ ❉ ❉


노는 데도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다.

휴가도 나름의 레벨에 맞게 즐겨야 한다.

제주도는 그런 면에서 비교적 자유스러운 편이다.

성수기도 아닌데다가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은 장소도 많았다.

SNS가 보편화 된 시기였다면 서핑숍에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행동에 제약이 생겼을 터.

온갖 루머에 휩싸였을 수도 있었다.

겨우 이틀 머물 뿐이다.

이것저것 따지며 노는 것도 우스웠다.

류지호는 레오나와 함께 시장을 봤다.

한적한 펜션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경호원들과 손목맞기 카드 게임도 했다.

시 단위, 분 단위로 쪼개서 스케줄을 진행하는 게 습관이 된 두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하루 반나절 소파에 누워 뒹구는 것조차 낙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휴식이랄까.

유치한 장난도 많이 쳤다.

류지호가 잠이 들면 레오나가 그의 얼굴에 낙서를 했다.

어릴 때는 여동생 류아라와 함께 자주 치던 장난이었다.

예전의 추억까지 소환되어 고스란히 가슴에 새겨진 이틀이었다.

곧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레오나는 짧은 데이트가 아쉽기만 했다.

류지호도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오자. 꼭!”

“약속!”


레오나가 류지호의 손가락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자주 연락을 안 하면, 스탠퍼드로 찾아 갈 거야.”

“매일 해도 돼?”

“응.”


레오나가 냉큼 류지호의 품에 안겼다.

포옹으로 작별인사를 마친 레오나가 몸을 돌렸다.


“티노, 말릭. 레오나를 부탁해요.”

“기숙사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류지호는 레오나의 경호에 티노와 말릭을 붙여주었다.

고우찬과 데이브가 남아 한국 경호팀과 보조를 맞췄다.


“보스는 서울로 안 올라가십니까?”

“하루만 더 쉬고 뉴욕에 다녀오려고.”

“의전비서도 압니까?”

“응. 그나저나 고 대리도 서핑 한 번 배워볼래?”

“근무 중입니다.”

“데본한테 약점이라도 잡혔냐? 안 어울리게 왜 자꾸 그러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뭘?”

“보스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괜히 JHO 요원 연수프로그램에 넣어서 내가 친구를 잃었다.”

“그 대신 든든한 경호원을 얻으셨지요.”

“어쭈... 갑자기 말도 잘하고.”


홀로 남은 류지호는 오후 내내 서핑을 즐겼다.

하루 사이에 서퍼들에게 소문이라도 퍼졌는지 많은 이들이 중문해수욕장으로 모여들었다.

류지호는 해외파 서핑 고수들에게서 고급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클럽 사람들과 뒤풀이를 할 때는 의외의 제의를 받기도 했다.


“9월에 열리는 중문국제서핑대회 참가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대회에 참가할 정도는 아닙니다.”

“축제잖습니까. 서퍼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것에 큰 의의가 있는 거죠.”

“망신 안 당할 정도가 되면.... 그때 진지하게 생각해보죠.”

“하하하. 왠지 2~3년 안에 제주도에서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전에 여러분들이 LA로 오세요. 내가 최고의 서핑 포인트로 안내하죠.”

“그 쪽 해변의 포인트는 다 경험해 보셨습니까?”

“주로 초보들 타는데서 놀았죠.”


왁자지껄.


공통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밤늦게까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류지호는 서핑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 ❉


제주도에서 하루를 더 머문 류지호는 월요일 오전에 뉴욕으로 날아왔다.

다른 곳은 들르지 않고 C&W 로펌으로 캐서린을 찾아갔다.

캐서린과 마주한 류지호가 다짜고짜 금테를 두른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십 수 년 전 캐서린으로부터 받은 개인 명함이었다.

당시에 뭐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명함을 쓰라고 말 한 적이 있었다.


“옛날 명함이네.....?”

“이 명함으로 캐서린에게 부탁할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쓰고 싶어요.”


예상하지 못한 말에 캐서린이 멍한 표정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레오나와 정식으로 교제하려고 합니다.”


호호.


캐서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놀라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재밌어 하는 것 같다랄까.


“파커와 불편해지는 걸 걱정했어요. 하지만 쓸데없는 근심이고, 의미 없는 고민이었어요. 그 동안 억지로 회피하고 있었던 걸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이제야 확신이 섰어?”

“예.”

“나와 제임스는 너희가 교제하는 것에 찬성이야. 우리 가족은 네 성품을 잘 알아. 누구보다 믿음직한 청년이지. 다만...”

“....”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는 건 알지만...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 네가 레오나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니.”

“레오나가 로스쿨을 졸업할 때 즈음이면 저도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 보려고요.”


캐서린이 류지호가 꺼내놓은 명함을 집어 들었다.


“겨우 이걸로 내가 애지중지 키운 소중한 레오나를 빼앗아 갈수 있을 거라 생각했니?”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꺼내 봤어요.”

“부끄러워서?”


검지로 볼을 긁적거리며 류지호가 대답했다.


“민감한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오누이처럼 살아왔는데, 갑자기 연인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거니까요.”

“조금은 부끄러워해도 되는데.....?”

“청소년이 아니잖아요. 부끄러운 것보다 죄송한 마음이에요.”

“결혼하겠다는 건 아니지?”

“레오나가 성인이 된지 얼마 안 되었어요. 앞 서 가지 마세요.”

“그럼 이제 어떻게 대해주길 바래.”

“달라질 게 있어요?”

“....없나?”

“저는 윌리엄 파커의 손자이자 레오나의 보호자예요.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이었죠. 거기에 남자친구 자격이 추가된 것뿐이에요. 지금까지와 달라진 것은 없어요.”


새삼스럽게 관계가 달라질 건 없다.


“이미 가족이니까. 그렇지?”

“예.”

“운명이겠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어요.”

“레오나와 제주도에 놀러갔다지? 단 둘이서?”

“언제는 둘이서 안 놀러 다녔어요? 엉뚱한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류지호는 새삼스럽게 뭘 놀라느냐는 투였다.


“그, 그래.”

“함께 저녁이라도 먹었으면 좋겠지만, 텍사스주 날아가 봐야 해서...”


캐서린이 인사하고 떠나는 류지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할리우드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산다.

마초주의에 찌든 남자들이 여자를 그저 성적 소모품으로만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다.

반면에 류지호는 진정한 신사라고 할 수 있다.

유명 인사임에도 섹스스캔들이나 가십으로 논란을 만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모 배우처럼 몰래 스트립 클럽을 다닌다거나, 콜걸을 불러 욕정을 해소한다거나, 권력을 이용해 여배우에게 성상납을 강압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답답이도 그런 답답이가 없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줄 안다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가정을 이끌 사람으로서 장점이다.


‘결국 어릴 때 인연이 이렇게 발전하게 되는 건가?’


운명이란 것이 참 재미있다.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인연 아닌가.


‘파커에 새로운 타입의 남자가 들어오겠어...’


워커홀릭(막내)이거나, 근육질 마초맨(장남과 차남)이거나, 깍쟁이(삼남)이거나.

윌리엄 파커 자식들의 스타일이 그랬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장 윌리엄 파커와 닮은 남자가 류지호가 아닐까.

그런 청년이 진짜 파커가문으로 들어오게 될 것 같다.

물론 교제를 한다는 것이지 당장 사위가 된 것은 아니지만.


✻ ✻ ✻


파커 가족에게 잔잔한 파문을 던져놓은 류지호는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날아왔다.

주정부청사의 주지사실에서 짐 페리(Jim R Perry)와 면담을 가졌다.


“시더 포트 지역에 테마파크를 짓겠다고요?”


천연덕스럽게 말을 하는 짐 페리 본인이 부지사로 있을 때부터 줄기차게 논의했던 사항이다.

처음 알았다는 듯 말을 꺼내기는.

류지호로서는 가증스럽게 짝이 없었지만.


“대략 2만 에이커 부지에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지요?”

“맞아요. 산업단지죠.”


2만 에이커는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다.


“그 엄청난 부지에 기업을 다 유치할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겠죠.”

“2만 에이커를 전부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절반은.....”

“플로리다의 미키마우스월드 규모가 얼마인 줄 모르지 않을 텐데요?”


그동안 JHO Company 그룹의 테마파크 유치에 미온적이던 텍사스 주지사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올해 연말에 미국 중간선거가 있다.

짐 페리는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2000년 12월부터 조디 워커에 이어 주지사를 물려받은 짐 페리로서는 유권자들에게 성과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미키마우스월드급 테마파크 유치는 주지사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까지 될 수 있는 대형 투자유치다.


“Se7ven Flags Theme Parks와 트라이-스텔라 컨소시엄이 요구하는 금융·세제 혜택은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을 비춰볼 때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미스터 류.”


류지호를 오스틴까지 불러들인 이유가 바로 그 문제다.

오너의 결단에 의한 JHO 테마파크 컨소시엄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미스터 페리, 테마파크 비즈니스 부분에서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텍사스주가 제공할 수 있는 혜택에 대한 조정을 하고 싶다면 컨소시엄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류지호는 순순히 짐 페리 페이스에 말려들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협상에서 발을 아예 빼버렸다.


“당신은 소득세율 감세와 다양한 금융·세제 혜택을 통한 기업유치로 텍사스주의 경제를 활성화 시켜서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추구하는 작은 정부의 모델을 텍사스에서 구현해보이고 싶어 하죠.”


짐 페리는 작은 정부와 감세 정책을 선호했다.

독실한 기독교(감리교) 신자로 보수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전 삶에서는 2002년·2006년·2010년 3회 연속 당선되면서 2015년까지 주지사로 재직했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공화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짐 페리를 후원하게 된다면 적어도 텍사스 주에서의 비즈니스는 술술 풀릴 수 있다는 의미다.


“미스터 페리.”


류지호가 힘을 쫙 빼고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는 당신이 다음 4년도 텍사스 주를 이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친민주당 성향 아니냐고요?”


끄덕.


짐 페리는 민주당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가 공화당으로 갈아탔다.

재정 정책에 대해서 공화당의 노선과 너무 밀접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정치적 기반이 보수 감리교 신자들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미스터 페리를 직접적으로 후원하거나 지지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친구를 위해서 언제든 투자를 늘리거나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지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척.


짐 페리가 손을 내밀었다.

류지호가 그의 손을 잡았다.

당장 친구가 될 순 없겠지만, 협력관계가 될 순 있다.

100만 달러 선거 캠페인 후원도 큰 힘이 된다.

그런데 수억 달러짜리 투자유치는 주지사 재선의 프리패스 티켓이나 마찬가지다.

류지호는 컨소시엄 요구하는 각종 혜택을 관철시키고, 짐 페리 주지사는 재선을 위한 중요한 공약 하나를 달성하게 되고, 텍사스 주민은 수만 개의 일자리를 얻게 되는.

모두에게 유익한 거래라고 할 수 있다.


✻ ✻ ✻


2002년 5월 초순.

경기도 여주군 영동고속도로 여주IC를 고급세단들이 줄지어 빠져나오고 있다.

고급세단들은 일제히 여주군에 조성된 WaW 종합촬영소로 향했다.

미국의 DeamFactory 스튜디오 정문을 연상시키는 까만 철구조물 기둥 세 개로 간소하게 세워진 정문 위에 WaW라는 세 개 알파벳이 놓여 있다.

군더더기 없는 매우 심플하지만 명료한 입구다.

수많은 세단들이 나래안전 경비요원들의 삼엄한 검색을 통과해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래안전 경비요원들 사이에는 총기로 무장한 사복 경호원들도 보였다.

대통령경호실 소속 요원들이다.

눈부시게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국내 유일 민간 영화종합촬영소인 WaW Studios가 개관식을 갖는 날이다.

스튜디오 개장을 축하하기 위해 각계각층 인사 수백 명이 시골까지 행차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깜짝 방문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로 인해 대통령경호실에서 이틀 전부터 온 스튜디오를 점검하고 나래안전 경비요원들을 괴롭혔다.


“왜 오셨데... 초대도 안 했구만. 부담스럽게.”


류지호의 투덜거림을 들은 황재정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쳤다.


“아. 왜!”

“감사할 줄 아셔야지. 대통령이 아무 개장식이나 참석하는 줄 아십니까?”

“자 봐봐. 스튜디오 세우는데 뭐 하나 도움 준 것도 없는 양반들이 마치 자기들이 한 손 보탠 것처럼 실실 쪼개고 앉아 있잖아.”


대통령이 뜨니 고위급 공무원이 수행하고, 여당 중진도 오고, 경기도 지사와 군수는 당연히 참석, 지방의회 의장, 여야국회의원에 차기 대권 주자까지 행차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니 대형 이벤트에 정치인들이 빠질 리가 없었지만.

영화인들의 축하 자리가 되길 원했던 류지호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레임덕의 대통령은 자식과 측근들의 비리혐의로 시끄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가온그룹 입장에서는 대통령보고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행사장 같지 않아?”

“뭐 어쩝니까?”

“그냥 내년에 대통령 선거 끝나고 개장식할 걸 그랬어.”

“그만 투덜거리고 행사에 집중하시죠. 곧 의장님이 말씀하실 차례입니다.”


한국에서 한 자락 하는 인물들이 운집하다보니 축사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자기들끼리 축사 차례를 놓고 또 얼마나 신경전을 벌이는지.

어쨌든 류지호의 차례가 왔다.


“WaW 종합촬영소 개관을 축하해주기 위해 먼 길을 와주신 하객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개관을 축하할 수 있어서 저에게는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5년이 넘도록 스튜디오 설립에 애써준 우리 임직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단상에 오른 류지호는 참석자들에게 적당히 감사인사를 전하고, 스튜디오 관계자들을 치하했다.

이어 스튜디오를 소개했다.

국내 최대 규모, 현대식 시설, 영화 촬영 관련한 ‘원스톱 서비스’ 등.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WaW 종합촬영소는 서울 중심 기준으로 양수리 종합촬영소보다 거리로나 이동시간으로나 가까워 접근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쾌적한 현대식 지원시설, 모든 영화 스태프들을 위한 뷔페식 식당, 배우들만을 위한 독립된 대기실, DI, CG, 음향 및 믹싱, 촬영과 조명 장비 대여, 다양한 특수영상장비 완비 등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벤치마킹해 서비스를 구성했다고 자신합니다.”


WaW 종합촬영소는 세트 촬영만 지원하지 않는다.

프로덕션디자인, 소품, 의상 등 미술 분야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다양한 촬영기자재 대여, 편집, 컴퓨터그래픽, 색보정, 녹음 등의 포스트프로덕션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가능케 준비되어 있다.


“WaW 종합촬영소는 연간 50∼60편의 영화를 비롯해 각종 영상물 수십 편의 제작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해외영화 제작도 유치할 계획입니다. 올 여름부터 가온그룹의 영화부문 업체들이 순차적으로 여주로 이주를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이 거주하게 될 800세대 아파트 단지를 건설 중에 있으며, 여주시와 함께 병원이나 학교와 같은 기반시절 구축에 대해서도 충분히 협조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또한 국내 영화 스태프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 제작팀을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될 가온호텔이 가을에 오픈할 예정입니다.”


1,000평이 넘는 사운드 스테이지 두 개 동을 만들어 놓았다.

중국영화 유치는 물론 할리우드 영화까지 유치할 목표로 준비했다.

할리우드의 아시아지역 로케이션이나 세트촬영은 주로 일본, 홍콩, 태국에서 한다.

류지호가 생각할 때 한국이 D-Cinema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가 된다면 할리우드 영화의 프로덕션을 유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들 허무맹랑한 목표라고 여겼다.

잘해야 류지호가 제작하는 할리우드 영화 정도나 몇 년에 한 편 유치할까.

Origin 카메라 시리즈의 아시아 본점, 가온과 JHO 계열사에서 내놓게 될 각종 특수촬영장비의 창의적인 운용, 충무로 현장 편집 시스템, 미래 한양반도체가 생산하게 될 LED 스튜디오용 조명장치... 한국 영화인들 특유의 꼼수(순발력)까지.

현재 가진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홍콩이나 태국보다 더한 경쟁력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이곳 WaW 종합촬영소다.


“10년 안에 할리우드 제작사가 요구하는 영화 서비스, 그 이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짝짝짝.


참석자들의 박수가 터졌다.

영화인들에게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기분 좋은 포부이자 목표였다.

그들의 눈으로 확인한 스튜디오의 위용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대신....”


류지호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현 대통령과 대선 후보들, 유력 정치인들을 눈으로 훑었다.


“여러분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51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9 116 24쪽
510 MUJU Rock Festival! +2 23.05.25 3,142 127 21쪽
509 류지호 사단. (5) +4 23.05.24 3,178 118 23쪽
508 류지호 사단. (4) +12 23.05.23 3,152 146 26쪽
507 류지호 사단. (3) +9 23.05.22 3,197 119 25쪽
506 류지호 사단. (2) +11 23.05.20 3,230 107 25쪽
505 류지호 사단. (1) +5 23.05.19 3,255 117 24쪽
504 영화를 하는 한 도전은 계속된다! +5 23.05.18 3,140 118 24쪽
503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2) +10 23.05.17 3,153 131 26쪽
502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1) +5 23.05.17 3,135 111 26쪽
501 실사화에 적합한 감독이라는 걸 증명할게. +12 23.05.16 3,114 121 27쪽
500 미래는 정해져 있다? +23 23.05.15 3,190 134 24쪽
499 Action Camera. +5 23.05.13 3,133 125 22쪽
498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4) +9 23.05.12 3,200 125 25쪽
497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3) +4 23.05.11 3,191 111 22쪽
496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2) +6 23.05.10 3,190 119 25쪽
495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1) +4 23.05.09 3,236 109 23쪽
494 소중한 걸 놓치지 않으려면.... +7 23.05.08 3,328 120 24쪽
493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3) +3 23.05.06 3,419 111 23쪽
492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2) +4 23.05.05 3,263 112 21쪽
491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1) +10 23.05.04 3,246 111 21쪽
490 저희 리조트에는 샛길이 없습니다! +9 23.05.03 3,250 115 25쪽
489 무럭무럭 커라! (2) +4 23.05.02 3,351 109 26쪽
488 무럭무럭 커라! (1) +4 23.05.01 3,420 114 27쪽
487 자원이 남을 때는 멀티를 건설하라.... +3 23.04.29 3,467 114 25쪽
486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3) +4 23.04.28 3,330 110 24쪽
485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2) +3 23.04.27 3,431 116 26쪽
484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1) +9 23.04.26 3,420 108 25쪽
» 어쩌면, 혹시, 설마 했던 일. (2) +3 23.04.25 3,428 128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