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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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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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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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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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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자원이 남을 때는 멀티를 건설하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차안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류지호가 김우영 비서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 1단계 공고가 났나 보네요?”

“예. 의장님.”

“접수 했대요?”

“지난주에 사업계획서와 관련 서류 일체를 접수했음 확인했습니다.”

“한 개 필지만 지원할 수 있던가요?”

“예.”

“우선협상대상자는 언제 발표한다던가요?”

“늦어도 9월에는 발표가 날 것 같습니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상암동에 조성되는 디지털미디어시티 필지를 분양받기로 했다.

성사만 되면, 본사를 그곳으로 옮길 생각이다.

가장 큰 필지인 7,000평 대 대지에 총공사비 3,800억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이전 삶에서 누리꿈스퀘어의 단지급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서울시가 발 벗고 나서서 유치해야 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저희를 탈락시키면 서울시만 손해입니다. 이변이 없는 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는 것은 거의 확정적입니다.”

“어차피 주요 방송사들도 1단계 공구에 지원할 거라서. WaW는 크게 생각 안할 걸요? 가온 본사가 이주하는 것도 아니고.”

“저희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도 탈락시킨다면 저희도 모르는 뒷거래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되겠죠.”

“송도경제자유구역, 분당이나 판교에서도 WaW를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저희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서울시 관계자들과 공연히 접촉하는 것은 삼가라고 하세요. 올해 지자체장 선거도 있고 하니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예. 의장님!”


가온그룹은 강남 G-Tower 본사를 중심으로 부산 센텀시티, 경기도 여주 종합촬영소 타운, 전주 미니 복합타운, 무주 리조트 등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부동산을 보유하게 됐다.


‘제주도와 강원도에는 호텔이나 리조트를 세워야 할까....?’


류지호는 웃음이 나왔다.

마치 부루마불 게임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기에.

JHO Company 사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유럽, 남미, 아시아, 중동 등 대륙을 중심으로 큰 그림을 궁리하게 된다.

헌데 서울 사무실에 앉아서 사업을 궁리하다보면 시시한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각 계열사마다 세계전도나 최소한 조형물이라도 눈에 뜨이는 곳에 설치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이다.

오천 만 내수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문제는 주요 소비계층인 중산층이 외환위기로 인해 망가졌다는 점이다.

앞으로 한국의 빈부격차, 소득격차, 고용격차가 해가 거듭될수록 심화된다.

사실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소득분배가 제대로 돼가고 있었다.

그 시대에 산업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돈을 덜 벌더라도 상위층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로 상위계층의 임금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심각한 문제다.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이 전체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삶에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감격한 시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정말?" "그런데 나는 왜?" 이런 반응을 보였다.

3만 달러를 체감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소득양극화 때문이다.

소득불평등 문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큰 족쇄가 된다.

경제는 분배의 문제다.

공정한 분배 구조는 단순히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 경제 전체의 파이(Pie)를 키우는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이다.

공정한 분배가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경제 관료, 경제단체들, 우파교수들은 여전히 대기업에 돈을 몰아주면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고 그로 인해 대기업의 돈이 넘쳐흐르면 언젠가는 중소기업이나 근로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만 돈을 벌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중소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것이며, 어떻게 기술 개발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까.

대기업만으로 한국의 경제를 지탱하려는 생각은 마치 병참 없는 군대가 승리하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절레절레.


류지호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공정한 분배나 생태계 조성은 일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 일꾼은 많을수록 좋으며 틈틈이 꾸준히 뽑아라.

- 기술업그레이드는 꾸준히 하라.

- 자원이 남고, 특별히 해야 할 것이 없을 때는 멀티를 건설하라.

- 자신 있는 종족 한 가지를 골라 그것만 집중적으로 하라. 괜히 여러 종족의 특성을 파악하겠다면서 종족을 바꿔가면서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초보자가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것들이다.

사업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가 있는 조언이다.


❉ ❉ ❉


지하철 목동역 출구를 빠져 나오면 바로 보이는 6층 건물.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외형의 DVD 전문숍이 지난 3월에 문을 열었다.

스펙트럼 조이숍이란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이다.

또 하나의 플래그십 매장인 강남과 신촌점, 노원점 등 네 곳이 동시에 영업을 시작한 스펙트럼 조이숍은 온라인 DVD 쇼핑 및 대여 전문사이트 스펙트럼DVD.com의 오프라인 종합매장이다.

올 하반기에는 인천, 일산, 분당 등 도시에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에서 인접한 곳에 매장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과 수도권 10개 매장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서비스를 진행한 후, 차츰 광역도시로 체인망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2002년 현재 오프라인 비디오대여점 체인 영화마을, 엑스트라, 으뜸과 버금 등의 가명점 중에서 66%가 DVD대여를 취급하고 있었다.

그런데 DVD타이틀 보유편수는 평균 140여 편에 불과했다.

온라인 DVD대여업체로는 CAFÉ DVD, ONDVD등 3~4개 업체가 서비스 중이다.

이들의 대여방식은 대부분 우편대여였는데, 등기우편으로 배송하고, 다 본 후 회원이 등기우편으로 다시 배송 해줘야한다.

일부는 방문대여서비스를 시행중이기도 했는데, 서비스지역이 성남, 분당 등으로 한정되어있었다.

스펙트럼 죠이숍은 ‘홈 엔터테인먼트 전문스토어’를 표방했다.

DVD만 최급해서는 사업성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StreamFlicks 비즈니스 모델은 성공할 수 없다.”


류지호와 전략기획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한국 실정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따라서 미국의 블록버스터, 할리우드비디오, StreamFlicks를 벤치마킹하고, 일본의 대형 비디오 대여점 체인을 연구했다.

보통 일반 비디오 대여점은 7~8천만 원이면 매장을 차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스펙트럼 조이숍은 최소 60평대라고 해도 2억 5천만 원이 소요됐다.

올 해 1차로 들어선 거점 매장들은 80~100평으로 DVD 대여와 판매점, DVD 플레이어 렌탈 및 판매, 음반·게임·굿즈 상품 판매, 중고물품 판매, 커피 테이크아웃전문점 등을 갖춰 백화점을 옮겨놓은 듯한 쾌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디오테이프는 취급하지 않았다.

목동역 매장을 둘러보는 류지호가 물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가지고 있는 DVD타이틀은 모두 몇 개나 됩니까?”


김우영 비서실장을 대신해서 스펙트럼 영업상무 배일환이 얼른 대답했다.


“아직 5,000장 밖에 되지 않습니다.”


류지호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국내 정발 DVD 외에 IVE에서 수입한 공연실황이나 뮤지컬 타이틀이 상당한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영화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수입해 라이브러리를 더욱 다채롭게 채울 계획입니다.”


SPECTRUM Home Entertainment가 보유하고 있는 판권은 영화에서부터 오페라, 콘서트, 발레 등 대중문화 콘텐츠 전반에 걸쳐 있다.

심지어 DVD 토익, 내셔널 지오그래피, 한국의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 실황까지 보유하고 있다.


"아무래도 디지털 콘텐츠 사업에 있어 저작권은 사업 출발의 시작이자 끝일 정도로 절대적이니까요.“

“DVD 타이틀의 단순 유통이 아닌 자체 제작을 통한 판매의 경우 더욱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옛!”


DVD 사업초기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은 LOG나 PARKs, 소닉 등 대형 업체들과의 타이틀 출시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스펙트럼DVD는 다양한 콘텐츠 판권과 기술력으로 할리우드 메이저보다 더욱 활발한 DVD 타이틀 출시를 이어가고 있다.


“Eye-MAX 영화 판권도 구입했다죠?”

“러닝타임이 40분, 최대 한 시간 분량이라서 박스 세트로 출시할지 개별 타이틀로 낼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교양물 DVD도 속속 출시되고 있었다.


“스펙트럼DVD에서는 연내 <잃어버린 문명>, <위대한 자연> 등 시원시원한 영상이 돋보이는 Eye-MAX영화 20여 편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미 <무한질주-카레이싱>, <경이로운 지구>, <신비한 인체탐험> 등 풍부한 볼거리의 디스커버리 컬렉션 시리즈가 출시된 상태입니다.”


타사에서 출시된 <위대한 비상>을 비롯해 TV 수족관을 표방하는 <아쿠아리아>, <산호해의 꿈>과 스페이스셔틀이 지구를 촬영한 <어스 라이트>같은 DVD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올 해 안에 500개 채울 수 있겠어요?”

“한글 자막이 들어가지 않는 국내 가수 콘서트 실황과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 DVD까지 포함하면 너끈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저희를 포함해서 스타맥스, 직배사 다섯 곳에서 DVD 타이틀을 쏟아내고 있어서 연말이면 부록에도 한글 자막이 들어간 신품 700여 개의 DVD 타이틀이 추가로 매장에 깔릴 것 같습니다. 물론 온라인 대여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5,000개라는 타이틀 숫자가 초창기인 현재는 많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100평의 절반을 차지한 DVD 숍 진열장은 휑하기만 했다.

DVD는 작은 공간에 많은 양의 소프트를 비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비디오테이프 2개가 차지하는 공간에 DVD는 최대 7장까지 진열이 가능했다.

소형 숍에서 DVD 타이틀만 진열한다면 2만장 정도까지 진열이 가능했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도 DVD가 비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화질과 음질을 재생한다는 것도 큰 매력입니다만 관건은 지금의 비디오 플레이어를 DVD 플레이어로 교체하는데 걸리는 기간과 DVD출시 가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50만 원 이상인 DVD 플레이어의 가격이 현실화되는 시점과 출시되는 DVD 소프트 수량과 가격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류지호가 고개를 매장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 진열대를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뭡니까? 비디오 대여나 판매는 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대여와 판매용이 아닙니다. 일종의 인테리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디오테이프 진열대에는 ‘판매용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인테리어?”

“만지거나 살펴볼 순 있습니다만, 구입하거나 빌릴 수는 없습니다. 의장님께서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주로 고전영화이거나 현재 출시가 되지 않는 희귀 타이틀들입니다. 일종의 한국의 비디오테이프 역사를 전시해 놨다고 보시면 됩니다.”


류지호가 진열대에서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뽑았다.

영화 <십계>다.

10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비디오 타이틀은 거의 찾는 고객이 없었다.

그럼에도 비디오대여점 마다 한 세트씩 반드시 구비하고 있다.


“그래서 테이프들을 진열대에 꽂아놓지 않고, 전면부가 잘 보일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전시를 해놨습니다.”


류지호의 시선이 시대를 풍미한 에로비디오 테이프로 향했다.


“30~40대 남성 고객들은 어릴 때 한 번 쯤 <차타레부인>이나 <칼리큘라> 같은 비디오를 보면서 얼굴을 붉혔던 경험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영화는 월등한 화질과 사운드를 제공하는 DVD로 감상하고, 비디오테이프는 투박한 표지를 보며 그 당시의 추억을 곱씹어보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합니다.”


끄덕.


가볍게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보이고 류지호가 발길을 돌렸다.

DVD 타이틀 진열대 한 편에 주요 가전업체의 최신 DVD플레이어들을 한 자리에 모아두었다.


“조이숍에서는 DVD를 판매도 하고, 1년 이상 회원가입 고객에게는 무료로 빌려주고 있습니다.”

“회수 한 플레이어가 고장 나면 어떻게 합니까?”

“수리 후 다시 사용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중고 플레이어를 초저가로 재판매할 계획도 있습니다만, 유의미한 매출을 기대하고 있진 않습니다.”


스펙트럼 조이숍은 넓은 매장, 밝고 깨끗한 인테리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직원은 기본이고 편의점 시스템과 문화교류 공간을 적절히 융합했다.

고객 취향에 맞는 콘텐츠 안내와 같은 휴먼 터치는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기존 대여점의 구멍가게 같은 영세함에서 벗어나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영화, 음반, 캐릭터 상품은 생선과 마찬가지로 신선도가 중요합니다. 조이숍 10개의 직영점이 POS로 연결돼 신선도가 관리되는 것처럼 재고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플레이어 외에도 DVD 타이틀 자체도 중고로 판매한다고요?”

“예. 의장님.”

“온오프라인 동일합니까?”

“고객이 매장을 직접 방문해서 구입할 때는 10%를 더 할인해 주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배송비용 때문이겠군요?”

“예.”


매장 창가 쪽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마치 커피전문점을 연상케 했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도 되고, 휴대용 DVD플레이어를 이용해 영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커피 마셔볼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배일환의 눈짓을 받은 직원이 매장 안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 바 테이블로 뛰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커피가 빨리 나왔다.


호로록.


커피 맛을 본 류지호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원두는 아네모네에서 받아옵니까? 왠지 아네모네 커피 맛과 비슷하네요?”

“정확하십니다.”

“저기 걸려있는 옷들은 가온백화점에서 온 것들입니까?”


매장 좀 더 안쪽에는 소규모 옷가게를 연상시키는 섹션이 있었다.

일본의 유명 비디오 대여점을 벤치마킹한 중고 의류 판매 공간이다.

일본 대여점 체인은 입지 않는 옷을 싸게 산 다음 수선해 고객에게 웃돈을 붙여 되팔았는데, 스펙트럼 조이숍은 가온백화점에서 ‘땡처리’ 하는 옷들을 떼어와 세탁과 수선을 거친 후에 판매했다.


“현재는 그렇습니다. 그래도 안 팔리는 옷은 후진국으로 보내는 것으로 압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반응이 조금 더 있겠죠.”

“국내 렌탈 비즈니스 수요는 계속 커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생활용품이나 자전거 같은 쪽으로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류지호가 보기에 너무 앞서가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어차피 가온백화점에서 땡처리로 처분되는 옷과 재고들은 상당했다.

그걸 업자들에게 헐값에 넘기느니, 리폼을 거쳐 판매하기로 하는 아이디어도 나쁘진 않았다.


“다른 애로사항은 없습니까?”

“일괄적으로 정가가 매겨져 있는 비디오에 비해 타이틀 별로 들쑥날쑥한 DVD 타이틀 가격은 문제가 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대여점 업주들이 DVD타이틀을 ‘구색 맞추기’ 용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음.”

“저희는 비디오테이프는 취급하고 있지 않지만, 제작사들이 프로 가격을 2만7500원으로 일방 책정하는 고가 정책을 쓰고 있고, 대여점들은 덤핑 가격으로 제살을 깎아먹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서 비디오 시장 침체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시사권을 안 주면서 반품과 애프터서비스가 불가하고 중고테이프 활용이 늘어 몇 번 돌리지 못해 망가지는 점 등 제작사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비디오 출시와 동시에 DVD 타이틀을 시장에 내놓은 것에는 저항이 없던가요?”

“큰 저항은 없습니다.”


북미에서는 DVD가 비디오시장을 추월한 상황이다.


“특히 직배사들이 저희가 하는 방식을 예의주시하고 상황입니다.”


미국과 일본 같은 DVD 선진국에서는 이미 셀스루(소비자직접 판매)와 함께 대여 시장도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형 비디오대여체인 블록버스터의 경우 영화 대여의 90% 이상이 DVD였다.

이제 비디오는 퇴물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StreamFlicks의 북미 회원 수와 DVD 대여 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 DVD 판매와 대여 현황 역시 이전 삶과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전 삶에서 이 시기는 국내 출시 타이틀 숫자가 1,000편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툭하며 리콜이 벌어질 정도로 국내 제작사가 출시하는 DVD 타이틀 품질이 엉망이었다.

서플먼트 한글자막도 극소수의 타이틀에만 국한 되었었다.

이번에는 류지호가 한국의 부가시장에 적극 개입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SPECTRUM Home Entertainment를 통해 정식발매 타이틀 개수, 품질, 부록, 한글 자막 등 많은 부분에서 월등한 발전이 있었다.

단적인 예가.


“작년에 출시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일본판에는 과도한 붉은 기가 돌아 고객들의 불만을 매우 컸습니다. 워낙 많이 팔려나가 리콜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걸 저희 스펙트럼이 조정해서 한국판으로 출시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DTS-ES 6.1 음향을 지원했다.

전반적인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48분 분량의 다큐멘터리가 부록으로 포함됐다.


“저희 제품을 일본 현지팬들이 구매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일본판보다 품질이 월등했기 때문입니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스펙트럼은 DVD 메뉴 화면에서부터 패키지 디자인까지 일일이 지브리의 검수를 받아야 했고, 국내 팬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튀는 서비스를 하려했다가는 퇴짜 맞기 일쑤였다.


“안 그래도 일본판보다 저렴한 국내판 DVD가 뭔가 특출한 구석이라도 있으면 일본으로 역수입이 될 거라는 우려 때문이죠.”


본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DVD는 다른 업체에서 최초 출시했다.

일본판에서의 결함을 바로잡지 못해 리콜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때 스펙트럼DVD 측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에 연락해 화면 문제와 에러를 바로잡을 경우 판권계약을 해 달라는 제의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

화면의 붉은 기와 에러까지 완벽하게 보정한 타이틀 샘플을 지브리 본사로 보냈고, 그걸 담고 있는 특별판 패키지의 디자인 역시 지브리 본사에서 감탄해 한국 판권을 위약금까지 물면서 스펙트럼에 넘겼다.

또 하나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족시킨 것은 우리말 더빙의 수록이었다.

성우들을 고용하고 녹음해서 DVD에 입히는 과정이 번거로울뿐더러 불가피하게 제작비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어린 시청자를 타깃으로 해서 무조건 더빙판을 삽입했다.

LOG 애니메이션을 출시하는 부에나비스타의 경우는 한글자막만 넣는다.

당연히 스펙트럼의 DVD 타이틀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한국에서 출간되는 DVD잡지는 4~5종이다.

각종 동호회와 리뷰 사이트에서 스펙트럼이 출시하는 DVD 타이틀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었다.

그런 시장 반응을 확인한 스펙트럼 임원들은 류지호로 인해서 비디오를 포기하고 DVD에 집중하는 것이 잘 한 판단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당초 30개 대형문화상품 편의점으로 기획했던 조이숍을 온라인과 결합한 200개의 DVD 전문 직영점 체인망으로 연결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모든 직영점 물량은 스펙트럼 본사에서 일괄 구매한다.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을 끼고 들어설 예정이고 온라인 대여 및 주문에 대한 물류는 대유그룹에서 인수한 물류회사와 협력하고 있다.


“사실 비디오에 비해 DVD는 렌탈 시장 출시까지 절차가 복잡하다고 합니다. 비디오에 비해 출시가 늦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김우영 비서실장이 대여 시장에서 DVD의 불리한 점을 지적했다.

신작 위주의 대여 시장에서 같은 타이틀이라 할지라도 보통 일주일 정도 먼저 출시되는 비디오를 DVD가 따라잡기 어렵다.

류지호가 배일환 상무를 돌아봤다.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업체들은 렌탈용 DVD를 만들어 비디오 출시와 동시에 뿌리고 있지만, 이중으로 드는 제작비로 인해 별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판매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닙니다.”

“.....?”

“무조건 세 가지 버전의 DVD를 출시해야 합니다.”

“이익을 남길 수가 없습니다. 의장님.”

“우리는 북미와 일본의 DVD 제조사들이 벌이는 다채롭고 화려한 판매 방식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무작정 가격을 내리거나, 소장용만 밀어붙여서는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SPECTRUM Home Entertainment에서는 3가지 버전으로 DVD 타이틀을 발매하고 있다.

마니아층을 위한 한정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통상판, 그리고 대여점을 대상으로 하는 대여판으로 나뉜다.

한정판의 경우는 다양한 서플먼트와 관련 상품을 결합한 패키지 상품으로 구성해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타깃 고객은 애호가들이다.

통상판에도 DVD의 특성에 맞게 여러 가지 서플먼트가 제공된다.

한정판에 비교하면 약간 모자란 수준이다.

대여판의 경우 영화만 들어있다.

간혹 간단한 서플먼트가 들어갈 때가 있다.

또한 특별판도 있다.

대표적인 특별판이 <매트릭스Ⅰ> DVD 타이틀이다.

<매트릭스Ⅰ>의 특별판에는 JHO Company 자회사 Big Smile에서 저가로 제작한 네오 캐릭터 피규어가 동봉되어 있다.

이 특별판은 국내에서 15만 장이 판매되었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수년 후에는 누적 36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타이틀 가격할인 역시 기간 제한을 길게 두거나 제품의 패키지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해서 기존에 구입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을 관망만 하고 있던 직배사들이 저가공세와 무분별한 할인정책을 펼 겁니다. 우리는 그들의 행태에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나가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내년부터 정가에 DVD 타이틀을 사면 바보라는 말이 나온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DVD 할인 공세가 거세게 지펴지기 때문이다.

싸게 파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무차별 할인공세로 인해 정가를 주고 DVD를 산 소비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제 산 2만8천 원짜리 DVD 타이틀이 오늘 1만 원에 팔리고 있다는 것을 보면 자신만 바보가 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시네필인 류지호 역시 이전 삶에서 그 같은 상실감을 느꼈었다.


‘쯧. 불법 복제와 폭탄 세일, 그리고 그저 그렇게 만들어 졸속으로 출시한 DVD 타이틀.....’


한국의 DVD 시장이 꽃이 피기도 전에 질 수밖에 없는 원인들이었다.

문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 류지호다.

똑같이 반복되지 않도록 스펙트럼을 키우고, 대여점 프랜차이즈까지 사업을 떠들썩하게 벌였다.

류지호조차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했다.

왜냐하면 불법복제 문제에 있어서 소비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류지호가 가온그룹을 통해 제아무리 양질의 콘텐츠와 관련 상품을 쏟아낸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이 시기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에서 6명이 불법복제물을 온·오프라인 상에서 이용하고 있다.

그 절반만 줄여도 합법저작물 시장규모를 세 배로 키울 수가 있다.


“지금 국내 최대 규모의 동호회가 프라임DVD인가 그렇죠?”

“알고 계시네요?”

“모를 수가 없죠. 업계에서는 아마 DVD계의 시민단체라고 부르지 않던가요?”

“아휴, 말도 마십시오.”


배일환 상무가 진저리를 쳤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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