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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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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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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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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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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언제 진행하는데?”

“나야 모르지.”


최준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류지호를 빤히 쳐다봤다.


“이제부터 형과 다솜방송이 논의를 해봐야겠지.”

“......?”

“나중에 뒤통수 맞았다고 내 욕할까봐 미리 알려주는 거야.”

“우리는 예능오락 프로 제작할 여력이 없어.”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솜방송 그리고 매니지먼트 CHAN과 협력해서 진행하면 돼. 미리 예능 제작팀이나 꾸려 놔.”

“Aram이 막 벌려도 되는 거야?”

“돈 있지, 아이디어 있지, 뭐가 문제야? 솔직히 사람만 부족해. 그건 형하고 민아가 해결해야지. 내가 다 떠 먹여줄 순 없잖아?”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구르고 깨지고 그러다보면 크겠지. 형의 전성기는 40대야. 그때까지 시행착오도 겪고 좌충우돌하고 뭐 그러면서 버텨봐.”


후우.


최준영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말은 참 쉽게 한다.’


그럼에도 거스를 수 없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사람이 류지호니까.

사실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라고 해도 따를 판이다.


“내년 봄에 프로덕션 들어가려면 서둘러야 할 거야.”

“일단은.... 알겠어. 다솜방송 측과 이야기 해볼 게.”

“영화 공개 오디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면 다다음 주에 아트선재센터에 한 번 가봐.”

“거기서 뭐 해?”

“영화잡지사 두 군데가 ‘씨네스타 오디션’이라고 배우 오디션을 한다더라. 무비서비스하고 몇 개 영화사들이 후원하는 모양이야. 우리가 프로그램 준비한다는 건 알리지 말고 참관해 봐. 도움이 될 거야.”

“알겠어. CHAN의 김민아 대표와 함께 참관해 볼게.”


국내 방송사들의 해외 프로그램 포맷 베끼기가 성행하던 시기다.

코미디 같은 현실은 BS 계열 음악방송이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베껴서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저작권 보호요청을 한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저작권을 내세워 보호를 받으려 하면서 정작 해외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마치 표절한 노래도 저작권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주장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한국 콘텐츠의 수준이 아시아를 넘어섰다며 자화자찬하는 이면에는 그 같은 코미디 같은 모습도 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국내 미디어 시장이 국제화되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들의 국내시장 진입 역시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해외에서 히트한 포맷을 조금만 수정해서 방영하는 행태는 큰 문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상파 방송사와 대형 미디어 그룹들이 남의 저작권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대중들이 불법다운로드로 자사 콘텐츠를 즐긴다고 비난하는 모습은 웃기지도 않았다.

류지호는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해외 프로그램에 대해 꾸준한 리서치를 주문하고 있다.

비용이 들더라도 포맷을 구입해 제작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아직은 포맷을 구입하는 비용이 그리 부담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 한국의 미디어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다.

포맷 구입가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추후 한국판으로 변형된 포맷이 역수출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복수의 꽃>은 무슨 단체에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했다는 뉴스가 나오던데.... 괜찮아?”

“노이즈 마케팅 되고 땡큐야. 신경 안 써.”

“벌써 가게?”

“나중에 다솜방송 드라마국장하고 밥이나 같이 먹자고.”

“수고해.”


류지호는 최준영의 걱정을 뒤로 하고 ARAM 프로덕션을 나섰다.


❉ ❉ ❉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에 우뚝 서있는 랜드마크 빌딩.

바로 가온타워(G-Tower)다.

단일 오피스 면적으로는 서울에서 가장 큰 빌딩으로 진한 파란색 창으로 마감된 건물외관이 시원시원하며 웅장함까지 자아내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대의 차가 이 건물을 드나들었다.

그 중에는 입주 회사의 CEO부터 직원, 방문객, 저층부의 Mall을 출입하는 손님들의 차량까지 뒤섞여 다소 복잡한 편이다.

최근 주차 시스템을 재구축했다.

입주회사 직원들과 외부 손님들의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새롭게 정비했다.

여러 개의 진입로를 잘 정비해서 주변 교통체증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했다.

주차 안내 요원도 오랜 기간 교육받고 검증된 전문 인력을 배치했다.

건물을 들어설 때부터 좋은 인상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빌딩에는 가온그룹 본사가 입주해 있다.

건물관리는 특수관계사 나래 Estate & Management가 도맡아서 하고 있다.

나래안전 시스템의 자회사 나래 E&M은 국내 업계 5위에 랭크된 종합부동산 서비스회사로 성장했다.

100여 명의 부동산 전문 인력이 근무하고 있는데, 부동산의 매입 단계부터 매각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부동산 서비스 회사 중 하나다.

대형 오피스 매입·매각처럼 수천억 원이 오가는 부동산 거래는 정보력과 네트워크가 필수다.

그런 내공은 하루아침에 갖추기 쉽지 않다.

때문에 외환위기 전까지는 토종 종합부동산 서비스 회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외국계 부동산 회사들이 한국 부동산을 쓸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서도 대형 부동산회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래 E&M은 GOM Cinemas 극장부지 컨설팅을 시작으로 전국에 산재한 가온그룹 상업시설 대부분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가온그룹 계열사 신사옥 개발 기획, 공사 컨설팅, 빌딩 운영 및 관리 등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래 E&M가 관리하는 모든 시설의 리모델링 및 유지보수는 주로 고성재의 건설사가 하청을 받아 하고 있다.

가온그룹 본사 VVIP 전용통로 앞에 G-Tower 빌딩관리소장과 관리직원들이 도열해 있다.

잠시 후.


끼익.


에쿠스 리무진이 VVIP 전용통로 앞에 멈췄다.

도열해있던 관리부장이 얼른 차문을 열어주었다.

차 밖으로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도열해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류지호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과한 의전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였고.

직원들이 류지호의 기분을 알 리가 없었다.


성큼성큼.


류지호가 재빨리 직원들을 지나쳐 VVIP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관리소장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이렇게 할 겁니까?”


관리소장은 단호했다.


“매뉴얼에 의거한 당연한 의전입니다. 의장님.”

“구태에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나는 재벌 꼰대 오너도 아니고, 여러분이 떠받들어 모셔야 할 주인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월급은 나래에서 받으면서 왜 매번 이런 번거로운 의전을 하는 겁니까?”

“의장님이시니 마땅히 격식이나 체면을.....”

“가온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어요. 외국의 VIP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내가 의전을 받지 않아야 다른 고위임원들도 의전을 바라지 않게 됩니다. 업무 시간에 이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옳은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앞으로 의전을 간소화 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전 필요 없다니까요. 필요하면 사전에 연락을 할 테니까, 내 동선마다 직원들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가온그룹이 대기업으로 올라선 초창기 의전은 정말 가관이었다.

 류지호가 출장이나 사업장 방문 시마다 의전팀이 수주일 전부터 동선을 파악하고 음식이나 심지어 음료까지 미리 먹어보는 등 마치 1세대 재벌회장에게 하던 구태의연한 의전 관행을 답습했다.

심지어 5대 재벌그룹 의전 매뉴얼을 구해다가 그대로 시행하기까지 했었다.

매번 류지호의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소장과 고 대리만 따라오세요.”


류지호는 가온그룹 본사가 입주한 층이 아닌 로비에서 내렸다.


'월가의 파커빌딩 같은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현대적인 디자인도 나쁘지 않네.'


1년이 채 안 된 신축 빌딩이다.

아직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터.

주요 시설이 고장 나고, 건물 일부가 낡고 녹슬고 유지보수의 문제가 생긴다.

대부분 건물주는 문제 해결을 주저한다.

당장 돈이 들기 때문이다.

로비의 바닥이 조금 깨졌다고, 혹은 엘리베이터의 버튼 하나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공실률이 올라가거나 임대료가 깎이진 않는다.

때문에 건물주는 보수할 때 쓰는 돈을 아깝다고 생각한다.

류지호는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했다.


“소장. 당장만 보고 빌딩을 관리하지 마세요.”

“예? 예!”

“먼 미래를 보고 빌딩을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당장 들어가는 작은 비용들이 모여서 먼 미래에 건물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빌딩을 항상 최상으로 유지한다면, 결국에는 임대료를 올리고 매각할 때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비용이 아니라 투자인 셈이다.


“사소한 것이 모여서 순식간에 나쁜 이미지를 만듭니다. 누군가 어떤 건물에 들어갔을 때 ‘이 건물이 이렇게 낡았었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 빌딩의 가치는 추락합니다. 비용을 아끼려다가 더 큰 이익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성급한 잔소리가 아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건물주의 비용을 줄여주는 걸 높은 순위로 놓을 수밖에 없다.

사소한 부분을 무시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입주하기로 한 기업들은 모두 들어왔어요?"

“네. 현재 공실률은 20%입니다. 10%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좋은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기업이 입주해 있는가도 중요했다.

좋은 기업이 모여 있어야 빌딩의 가치도 상승한다.

문제는 많은 건물주가 공실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공실이 생기면 그만큼의 임대수익이 줄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누구든 돈만 내면 공간을 내어주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공실률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입주 기업이 어디인가, 그것이 첫 번째 고려대상입니다. 임대를 원하는 기업을 다방면으로 검토해 빌딩의 취지에 맞지 않거나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에게 내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대한 꼼꼼하게 확인한 후 입주기업을 들이고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야할 때는 과감해 지세요. G-Tower에는 좋은 기업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더 많은 기업이 문을 두드릴 겁니다.”

“예!”

“입주사들에게 최고의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프라이드를 심어줘야 합니다.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겨줄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합니다.”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없이 살 때는 쓸데없는 비용을 아껴야 잘 산다.

하지만 사업을 할 때 돈을 아끼지 말아야 더 큰 이익을 거둘 수가 있다.

부동산 임대 사업의 경우도 그렇다.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해 7천여 억 원에 매입한 G-Tower 빌딩은 반 년 사이에 부동산 가치가 상당히 올랐다.

빌딩 절반을 가온그룹 본사가 사용하는데다가 유명한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 지점이 많이 입주했기 때문이다.


❉ ❉ ❉


강남 테헤란로에서 평당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는 G-Tower다.

이 빌딩에 포털사이트 회사 NAVE가 입주해 있다.

항해사를 뜻하는 내비게이터(Navigator)를 줄여서 네이브(NAVE)라 지었는데, 망망대해와 같은 바다를 항해하자는 의미다.

1997년 오성SDS의 사내벤처로 시작해 이후 외부에서 투자를 받으며 지분을 나눠줬다.

지분 교환방식으로 검색 기술 관련 기업 등을 인수합병하기도 했다.

처음 오성SDS가 1.5억 원을 출자해 NAVE 지분 29.9%를 보유했다.

이후 한국기술투자(KTIC)가 100억 원을 투자해 지분율 20%를, 새론테크놀로지가 20억을 투자해 지분율 8.5%를, 가온투자 파트너스가 29억을 투자해 10.3%를 확보했다.

그러던 2000년, NAVE는 게임업체 빅게임과 인터넷 마케팅업체 원큐와의 역사적인 합병계획을 발표하고 사명을 네이브컴 네트워크(NCN)로 바꿨다.

이때 신주발행 및 교환방식으로 합병이 이뤄졌는데, 빅게임의 기업 가치를 NAVE의 4분의 1로, 원큐의 기업 가치를 NAVE의 13분의 1로 산정했다.

추가로 NAVE는 여러 차례에 걸쳐 검색 솔루션업체인 서치솔루션 지분 전량을, Next-G 온라인 자회사 엠플레이의 지분 일부를 동일한 방식으로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NCN의 지배구조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현재 NCN의 주주현황은 이현진(의장) 10.82%, 오성SDS 8.97%, 한국기술투자 10.78%, 서치솔루션 7.81%, 엠플레이 7.61%, 새론테크놀로지 5.64%, 가온투자파트너스 7.34%, 자기주식 0.16%, 기타 40.87%로 구성되어 있다.

기타지분은 NCN과 빅게임 창업멤버들이 분산해서 보유하고 있다.

창업자의 지분이 상당히 적은 편이다.

포털사이트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 사업은 매출이 나오지 않고, 대규모 조금조달이 필요한 IT업종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다.

당장 회사가 유지되느냐 마느냐 상황에서 창업자는 비계획적이다 싶을 정도로 투자에 목을 맬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경영권 약화로 이어졌다.

창업자 스스로 경영권 방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도 했고.

닷컴기업 창업자들은 사업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경영권 방어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회사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줄 예상할 수가 없다.

때문에 먼 미래보다는 당장의 상황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런 상황에서 NCN은 코스닥시장(KOSDAQ) 상장을 준비했다.

그런데 새론테크놀로지가 딴죽을 걸었다.

두 차례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경쟁사 NEXT 포털사이트가 연매출이 2,000억 원을 넘는 등 업계 최강자로 군림하며 NAVE의 목을 조이던 시기다.

새론테크놀로지의 딴죽으로 NCN 코스닥 상장의 꿈은 멀어져갔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주요 주주인 가온투자파트너스(류지호)가 대주주 소집을 요청했다.

왜 새론테크놀로지가 코스닥 상장을 방해하는지 이유나 알자는 생각에서다.


“애초에 추가로 투자를 유치할 때 우리와 사전협의한다고 약속했으면서 3사 합병 당시 우리 측과 의논하지 않았지요. 계약에 명시된 사전양해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새론테크놀로지 측의 항의였다.


“3개사 합병은 NCN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지 않습니까. 지분율 떨어지는 것은 다른 주주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올 해 상반기 NAVE가 매출 300억 원, 영업이익 100억 원을 돌파해서 분위기가 좋았다.

코스닥상장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는데, 새론테크놀로지가 주주들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멋대로 벨류에이션을 책정해 우리 지분율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그것은.....”

“지분율에 손해를 본 것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심의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협의를 안 한 것은 저희 측 실수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주주가 피투자사의 공개시장 입성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NCN과 새론테크놀로지 측의 논쟁을 지켜보며 류지호는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새론테크놀로지는 실적악화, 경영권 분쟁 등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영업 손실이 250억 원이 넘었다.


‘주식상장에 반대하면서 피투자사 삥 뜯어서 자사 적자를 메우려는 건가?’


한마디로 줄어든 지분율을 원상복구 시켜달라고 강짜를 부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기만 하면 못 이기는 척 코스닥 상장을 동의해 주고, 상장이 통과되어 보호예수가 풀리면 곧바로 처분해 어려운 자사 재정을 해결하겠다는 속셈이다.

상식을 벗어난 행태였다.

마침내 이현진 대표가 결단을 내렸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지분율 1.6%에 해당하는 제 주식을 싼값으로 넘길게요. 이거면 되겠습니까?”


NAVE 초창기 멤버들은 이 대표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는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일화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의 지분을 새론테크놀로지에게 넘겨주고, 코스닥상장을 이뤄낸 것이다.

공모로 단비 같은 자금을 확보해 NAVE 가 새로운 서비스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흠!”


류지호가 가벼운 헛기침을 하자, 장내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만약 NCN이 상장 못한다면 가뜩이나 다른 포털에 뒤처져 있는 상황에서 자칫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결국 Exit에 실패하지 않겠어요?”

“.....”

“최대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는 NEXT 포털과 NAVE의 격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지기 전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똘똘 뭉쳐도 경쟁에서 이길까 말까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복안이라도 있으신지....?”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류지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최근 새론이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압니다.”

“헛...흠!”


새론테크놀로지 측에서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


“가온에서 새론이 보유한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 어떻겠습니까? NAVE에서 계획한 공모가보다 주 당 만원을 더 쳐주겠습니다.”

“....!”

“여기 모인 주주들은 모두 코스닥에 등록되고 주식을 처분할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렸습니까?”


모두가 대답을 삼가고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굴렸다.

NCN 코스닥 상장, 시초가 2만2,000원.

새론테크놀로지가 보유한 주식은 대략 40만 주 조금 넘었다.

공모가에 주당 1만원을 더해 매입한다고 하면 대략 150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

새론테크놀로지 입장에서는 꽤나 큰돈이다.

반면에 가온투자파트너스로서는 한국영화 두 세편 투자할 자금 정도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모두가 손해를 보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새론테크놀로지 측 대리인을 제외하고 모두가 류지호를 향해 묘한 시선을 던졌다.

가온그룹의 금융회사에는 투자귀신들이 득실득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식, 채권, 금, 부동산, 선물투자 등.

지금까지 투자한 것마다 엄청난 이익실현을 보여줬다.

그들의 보스인 류지호는 최근 영화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월가에서 리틀 버펫이라고 불릴 정도의 거물 투자자다.

새론테크놀로지가 가진 NCN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제안하자,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바빴다.


“길게 이야기 해봐야. 평행선을 달릴 것 같군요. 차후 다시 한 번 날을 잡아 NCN의 미래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죠.”


류지호가 주주모임의 종료를 선언했다.

최대주주가 아님에도 그의 뜻을 거스를 사람은 없었다.

오성전자를 대리해서 참석한 인사까지도.


“혹시 가격 협상도 가능합니까?”


새론테크놀로지의 제안을 류지호는 흔쾌히 수락했다.


"얼마든지요."


그들 입장에서야 이왕 지분을 매각하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야 했다.

류지호는 최대 4만원까지 받아들일 생각이다.

어차피 몇 년 가지고 있으면 몇 배를 뽑을 수 있다.

장기보유하면 수 십 배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고.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NCN을 떠나고, 류지호가 이현진 대표에게 넌지시 물었다.


"커피 한 잔 얻어먹고 가도 되겠습니까?"

“그, 그러시죠.”


오늘 모임에 류지호가 직접 올 줄은 이현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보통은 대리인을 보내니까.

따로 남아 자신과 티타임을 갖자고 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이현진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상장으로 공모금을 모두 채우지 못할까봐 그러십니까?”


회의 자리에서는 호기를 부렸지만, 실리콘밸리 엔젤이자 세계적인 투자자 류지호와 독대하는 자리가 몹시 부담스러웠다.

류지호의 헛기침까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류지호의 말 한 마디로 인해 NCN의 미래까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이현진은 Amazonia.com, A-Web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이 닷컴버블 붕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회사가 살아남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문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이 대표의 경영권 문제가 걱정이 됩니다.”

“제.... 경영권 말씀이십니까?”

“여태껏 현명한 처신과 나름 성공적인 사업행보를 통해서 리더십을 유지했지만,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혹시 경영권을 빼앗겠다는 것일까.

순식간에 이현진의 낯빛이 하얗게 떴다.


“NCN이 코스닥에 등록되고, 기업 규모가 커지게 되면 스타플레이어보다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자본이 주주로 들어오게 되겠죠. 삐딱한 시선을 가진 대주주가 등장하면 회사가 얼마든지 변화가 찾아올 수 있지요. 예기치 못한 고충은 계속될 것이며, 끊임없이 특약처방을 고민해야 할 겁니다."

"저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NCN만의 이상과 기업문화가 흔들리지 않도록 경영권 방어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길 바랍니다.”

“....예, 예?”

"코스닥에 상장되면 얼마 후 이 대표의 우호지분이 현재의 절반으로 쪼그라 들겁니다. 오성전자를 포함해 몇몇 대주주가 경영에 간섭하면 대책이 있습니까?"


류지호는 할 말이 많았다.

뉴스 서비스와 편집 논란, 댓글 관리, 추천 조작, 블로그 등.

아직 벌어지지도 않을 일을 지적할 순 없었다.

독점으로 인해 발생할 폐해가 나타나려면 아직은 멀었으니까.

주요 주주로서 NEVE 포털사이트의 독점 폐해까지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가온투자파트너스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알아서 스스로의 권한을

확보하도록 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이현진은 내심 인수합병이라도 제안할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Yaaho!와 Googol의 주주인 류지호가 NAVE를 탐낼 이유가 없었다.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TV시리즈 <왕좌의 게임>에서 나오는 말이다.

왕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신뢰를 잃으면 목숨이 위태롭고, 반면 신하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수많은 IT 벤처 가운데 지분율이 부족하더라도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무난히 경영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한국의 재벌들도 지분율이 낮은 상태에서 대를 이어서 경영권을 행사하지만, 그들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신뢰도 종류가 다양하지.’


개차반이지만 경영능력만은 탁월해 주주들이 용인하는 최고경영자가 있다.

인격까지 뛰어나 저절로 사람들이 따르는 경영자도 있다.

반면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에서의 권력을 향유하는 경영자도 있다.

류지호는 가온그룹 회장실로 올라가는 V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타며 생각했다.


‘주식회사는 그런 것 따위 다 필요 없지. 주주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사람이라면 인격이니 기업윤리니 뭔 상관일까.’


몇 주 후, 가온투자파트너스는 새론테크놀로지의 NCN 지분을 주당 3만 5천원에 매입한다.

코스닥상장을 반대하던 주주가 사라지자, 상장절차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8월 예비심사에 극적으로 통과하고, 2002년 10월 시초가 2만 2천 원, 물량은 890여 만 주로 NCN이 코스닥에 상장된다.

첫날에만 450억 원의 공모금을 유치하게 된다.

NCN은 수백억 원의 공모금으로 수백 명의 인력을 채용하게 된다.

방대한 DB를 구축하고 막대한 마케팅비용을 책정하게 된다.

NEVE가 검색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서비스, 바로 지식인을 런칭하게 된다.

여담으로 새론테크놀로지가 가온투자파트너스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다면, 15년 후에 가서 4,000억 원 상당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살아남는 것은 걱정해야 할 판이라 의미는 없다.

암튼 코스닥 상장 이후 NCN 지배구조는 빠르게 바뀌게 된다.

우선 오성SDS, 한국투자기술 같은 외부 투자자들이 투자금 회수에 나선다.

창업멤버 대다수가 퇴사와 동시에 지분을 정리한다.

Next-G 역시 공격적인 경쟁사 인수와 일본 상장 준비를 위해 보유주식을 처분한다.

가온투자파트너스만 십 수 년 동안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보유하게 된다.

10년 이상 최대주주 지위를 놓치지 않는다. 

기사를 생산하지도 않고, 언론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뉴스편집 권력을 행사하는 포털사이트.

류지호는 한국에서 언론사를 가지는 것보다 포털사이트 이사회 멤버가 되어 우회적으로 언론 부문을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일반 국민들은 NCN 주주현황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탐욕은 잠들지 않는다!


올해 하반기 코스닥은 주식시장에 나타날 수 있는 온갖 악재의 전시장이 된다.

주가조작, 횡령, 사기, 대주주 지분조작.... 기타 등등.

기관투자가의 계좌를 이용한 델타정보통신사건(8월), 기업사냥꾼의 머니게임으로 파악된 RF로직 사건(9월), 코스닥의 황제주로 불렸던 새론이 유상증자를 앞두고 분식회계를 통해 허위매출과 허위공시로 구속된 사건(11월) 등이 대표적이다.

가온그룹 산하 금융부문은 코스닥의 여러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올 한 해 잠자코 웅크리기만 했다.

한국의 IT거품 붕괴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까지 인내하면서.

준비하고 있는 자본을 쏟아 부을 타이밍을 신중하게 재면서.


작가의말

500회 연재 축하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남깁니다. 습작 완결을 본 소설이지만 끝까지 성실히 연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PS. 아침햇살17님, 루시오엘님 후원감사드립니다. 600회까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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