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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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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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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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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저희 리조트에는 샛길이 없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1990년 12월에 개장한 무주리조트는 충남 이남권에서 유일한 종합레저업체다.

무주군에 소재한 전북 최대 사업장으로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4년에는 종합휴양업 사업계획을 승인받아 호텔·콘도미니엄·유스호스텔·스키장·골프장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당초 무주의 리조트 개발사업은 낙후지역 개발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리조트가 덕유산국립공원 안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80년대 말 대대적인 스키장 공사가 시작될 무렵 왕방울개발이 의욕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무주리조트는 무리한 차입경영과 자금난으로 부도 처리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당시 200여명의 직원이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 기간 무주리조트는 살을 베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자구에 총력을 쏟았다.

노사는 하나가 되어 1인 3역을 해가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전우의 시체가 즐비한 전쟁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때 직원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다.

법정관리 중인 무주리조트의 부채까지 떠안는 것으로 해서 가온그룹이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왕방울 시절 U-대회를 위해 무주리조트에 2,813억 원을 쏟아 부었다.

이자가 14∼15%나 되는 종금사 돈이 대부분이었다.

가온그룹은 인수절차가 마무리되자마자 281% 달하는 부채비율을 낮추기 시작했다.

800억 원 가량의 차입 역시 상환했다.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미 무주리조트가 법정관리가 개시되기 전까지 9,000억 원의 부채 가운데 5,000억 원을 탕감받았기 때문이다.


“정말 가온그룹은 땡잡은 거야.”


뜬금없는 황재정의 말에 류지호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무려 1조 4천억 원 자산가치의 대단위 레저타운이자 종합레저기업을 3,000억 원도 안 되는 자금으로 인수한 거니까.”


국민세금으로 부채 5,000억 원을 탕감 받은 기업을.


“IMF 시기였으니까. 우리가 인수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잖아.”

“뭐 그렇다고.”


법정관리 기간, 살인적인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등을 임직원 모두가 감내했다.

월차, 상여금은 모두 반납했고, 전 직원 한 달씩 무급휴가도 실시했다.

33명에 이르던 이사진을 3명으로 줄였다.

가온그룹이 새로운 주인이 되면서 3명의 임원까지 무주리조트를 떠났다.

가온그룹이 리조트를 인수한 직후 대대적인 종합실사를 실시했다.

하루가 다르게 낡아가는 시설들에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유럽의 마을을 닮은 건물들은 동화 속에 나오는 유럽의 마을 같다.

그런데 목재가 많이 사용돼 보수유지비가 만만치 않았다.


“80억 원의 세금을 내지 못해 완공된 골프장 영업허가를 받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가온그룹에게나 부담 없는 액수다.

무주리조트 재정 상황에서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1인3역을 자처해 직접 연장을 들었다.

큰 자금이 들어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시설 리뉴얼은 여려 해 동안 비수기 때 단계별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넘쳐났다.

개장 때만 해도 덕유산 국립공원이란 천연의 자연조건 덕에 무주리조트가 어렵지 않게 반석 위에 오를 것으로 기대되었다.

문제는 수도권과 다소 멀다는 점이다.

또한 판매관리비가 매출마진보다 많아 영업 적자를 봤다.

부채가 많았던 탓에 이자비용이 지출되며 당기손익은 항상 마이너스였다.

이 과정에서 수익을 위한 온갖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안팎으로부터 참기 힘든 비난이 쏟아졌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납부해야 하는 시설사용료 때문에 1인당 3,000원의 입장료를 걷었고, 회원확보를 위해 신개념 리콜 회원권을 발매했다.

무주리조트 내 상가시설을 임대로 전환해 상업시설을 통제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골프장 건설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해 대물변제로 회원권을 분양해 거친 항의도 받았다.

그 결과 무주리조트는 개장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이라는 걸 발생시켰다.

가온그룹이 무주리조트를 운영하기 시작한지 5년째가 되어가는 올해 부채비율과 차입금 모두 대폭 낮아져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부우웅!


전주를 떠난 가온그룹 1호 의전차량이 무주군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대형 광고판과 표지판이었다.

5년 전 중부고속도로와 덕유산 IC에 설치되었던 성인 손바닥만 한 표지판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연간 4억 원의 광고료를 지불하고 대형 광고판을 임대했다.

무주리조트 입구로 향하는 길에는 스키렌탈숍과 식당, 모텔들이 즐비했다.

특이한 것은 자동차 공업사가 주변에 세 곳이나 있다는 점.

작년 스키시즌까지 무주리조트는 따로 입장료를 받았다.

그것도 1인당 무려 3,000원을.

올해부터 무주리조트 회원에게만 입장료가 면제됐다.

전국 어느 콘도, 스키장, 리조트에서 입장료를 받는 곳은 없다.

그런데 무주리조트는 받고 있다.

실상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받아야 하는 걸 무주리조트가 대리 수납하는 것이다.


“무주리조트 방문객들이 언제부터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거야?”

“무주리조트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시설사용료에 추가로 매년 5억 원을 지불해 이용객 입장료를 대신하기로 계약을 새로 체결하기로 했어.”


따지고 보면 국립공원 안에 대단위 상업시설이 있는 것도 웃긴 일이다.

의전차량행렬이 넓게 분포되어 있는 가족호텔 지역으로 들어섰다.

상가밀집 지역과 콘도 지역 경계에 새롭게 지어진 5층짜리 신축 건물 앞에 차량행렬이 멈췄다.

무주리조트 사업을 총괄하는 본부건물이다.

경영지원 오피스, 응급의료시설, 소방·안전·인명구조대, 종합상황통제실, 시설관리, 고객센터, 직원 교육 센터 등이 모여 있다.

가온 종합촬영소와 달리 무주리조트는 화재진압보다 인명구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사다리차와 구급차량이 주로 구비되어 있었다.

여담으로 무주리조트 구급대는 지역 매스컴에서 자주 소개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사장과 임직원들이 모두 본부건물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의장님!”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고, 얼굴만 보면 환갑이 한참이나 남았을 법한데, 특유의 분위기 탓인지 더 늙게 보이는 정지혁 사장에게 류지호가 악수를 건넸다.


“수고가 많아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먼 길은요.. 서울에서 무주까지 180Km 정도 되던가요?”

“평일에는 2시간 10분 내외, 주말 2시간 40분 정도 걸립니다.”

“개인 차량으로 움직일 경우겠죠?”

“그렇습니다.”

“지금 바쁩니까?”

“의장님께서 방문하신다고 해서 중요업무는 처리해 두었습니다.”

“함께 리조트 구경 좀 할까요?”

“그럼... 차를....”

“걸어서 돌아다녀보죠.”


류지호가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정 사장과 황재정이 얼른 뒤를 따라왔다.

경호원들은 번잡스럽지 않도록 멀찍이 떨어져서 따랐다.

넙죽 허리를 접어 인사한 임직원들이 각자 업무를 찾아 흩어졌다.


“.......!”


법정관리에 들어간 리조트를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쓰러져 가는 집안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방문한 무주리조트를 보면서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변화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누구나 변화를 떠든다.

실제 남을 변화시키거나 스스로 변화하기는 쉽지 않다.

무주리조트가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가온그룹의 투자와 지원도 한몫했지만, 직원에게 지시만 내리는 경영자가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 최고경영자로 있었기 때문이다.

비서실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의하면 밤늦은 시간에 호텔 티롤 로비나 비가 오는 날 스키 베이스에서 정 사장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만큼 솔선수범하는 인물이 정 사장이었다.

순이익을 기록하기 어려운 것이 스키리조트업계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유의미한 순이익을 기록한 스키장이 나타난 것.

주인공이 바로 무주리조트다.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지난겨울 국내 스키리조트 가운데 최다 방문객,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골프장도 ‘2001년 한국 뉴코스’ 최상위권에 이어 ‘2001년 한국 10대 골프코스’에 선정됐다.

환경이 정비되고 시설이 향상되고 서비스가 좋아지자 방문객의 반응과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무주스럽다는 말을 듣던 그 리조트가 맞아?’


이전 삶에서 무주리조트를 조롱하던 말로 쓰였던 것이 ‘무주스럽다’. ‘어영부영’ 이다.

이번에는 그런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티롤호텔 주차장은 주차권만 가진 사람만 입장할 수 있었다.

폐지했다.

주차권이라는 것이 VIP회원들에게만 할당되는 특혜였다.

이전에는 호텔 객실이나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고객들조차 가까운 곳에 주차장을 놔두고 멀찌감치 돌아가야만 했다.

현재 티롤호텔 VIP 주차장 확장 방안에 대해 연구 중이다.


“.....!”


멀리 보이는 스키장에 파릇파릇한 잔디가 그림 같이 깔려있었다.

법정관리 시기에는 붉은 황토를 드러낸 흉물 같았었다.

리조트 경영이 정상화 되면서 비수기 슬로프까지도 잘 관리되고 있었다.


“정말 몰라보게 화사해졌네요. 건물이고 거리고 간에.”


류지호의 감탄에 정지혁 사장이 의욕적으로 말했다.


“일단 시급한 구역부터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지만, 직원들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직접 손볼 수 있는 곳에는 직접 보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체 부지가 어떻게 됩니까?”

“212만 평입니다.”


휘유.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무주리조트는 경쟁 리조트에 비해 숙박시설을 지을 여력이 많은 게 매력입니다. 부지가 넓기는 한데 보유한 스키 슬로프 시설 대비 숙박시설 비중이 낮은 편입니다. 경쟁 스키장인 용평리조트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요. 현재 가족호텔 2동을 더 건설하기 위해 허가를 요청해 놓은 상황입니다.”

“콘도만 짓지 말고, 가족 펜션, 방갈로 같이 단독 숙박시설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세요. 무작정 대규모 숙박시설을 지어 캐시카우로 활용할 생각보다는 다양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고민을 하시라는 말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원권 시세는 어때요?”

“허니문 4장의 경우 500~600만 원 수준입니다.”


한때 매물이 쏟아져 시세가 폭락했던 적도 있었다.


“인근 주민들과 관계는 어때요? 갈등은 없어요?”

“자금력이 탄탄한 가온그룹이 무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인근 주민들 기대도 큽니다. 전북과 무주군 모두 호의적입니다.”


무주리조트가 전북의 지방세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후로 매년 방문객이 늘고 있어 지역경제에도 적잖은 파급효과를 끼치고 있다.


“처음에 와서 보니까 어땠어요. 난감했지요?”


정지혁 사장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모든 시설이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식당은 옛날 그대로인데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였고, 오락실은 완전히 폐허 상태였습니다. 주위가 너무 지저분했지요. 직원들도 뭔가 열심히 회사를 위해 애쓰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그냥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퇴근하면 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당했던 것은 아르바이트생이 고객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뭔가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겠군요.”

“일단 직원들 보고 청소부터 하자고 했습니다. 주변의 종이부터 줍기 시작했습니다. 직원 유니폼도 새로 맞췄고, 당장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식당을 비롯해 시설을 하나하나 새로 꾸며 나갔습니다.”

“직원들이 잘 따랐습니까?“

“제가 대표를 맡으면서 JHO Company 그룹의 컨벤션을 유치하기로 했는데, 전제 조건 중에 하나가 한 동을 완전히 새롭게 단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왕이면 완전히 재건축하는 수준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모회사에서 바로 결재를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공사가 진행되는 걸 보고도 ‘저게 뭐야?’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직원을 강제로 데려다가 구경을 시켰죠. 그랬더니 ‘아,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일부 직원은 가온그룹이 돈만 적당히 뽑아먹고 말 것이란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저희 콘도가 7년 넘은 것들입니다. 왔다 가시는 분들이 다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고 합니다. 매년 한 동씩 리뉴얼하겠다고 약속하고 해바라기동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제 봄이 되면 직원들도 ‘이번엔 어디 해?’라고 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바꾸어 나가면서 직원은 물론 고객에게도 신뢰감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무주리조트 콘도에서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스키장, 골프장, 카니발상가까지 시설 전반으로 확산됐다.

스키장은 제설 장비를 보완해 개장일을 앞당겼다.

골프장은 티박스의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꾸고, 오비티와 해저드티 및 코스에 처져 있던 그물망 등을 모두 없앴다.

10개 코스의 페어웨이 잔디를 완전히 교체하고 스타트하우스와 그늘집도 탈바꿈시켰다.


“무주리조트가 기반 여건은 좋습니다. 천혜의 자연 조건을 자랑하는 덕유산국립공원 안이자 국토의 중앙에 자리하잖습니까? 이런 장점이 법정관리를 하면서 많이 깨졌죠. 시설이 노후화되고, 고객에 대한 관념도 약해졌고요. 제가 리조트 분야와 테마파크 쪽에 있었지만 무주리조트는 업계에서 전혀 벤치마킹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게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참에 마침 가온에서 절 불러줬고, 운 때가 맞았던 것 같습니다.”


삼고초려까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헤드헌팅에 꽤 공을 들인 인물이긴 했다.

업계에서는 직접 발로 뛰는 현장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무주리조트 직원들은 끔찍한 회사 부도사태와 법정관리를 겪었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남다른 상태였다.

솔선수범하는 경영인과 회사를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직원의 만남이 4년 만에 흑자 경영으로 돌아서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숙박을 여기 콘도에서 하고 있다고요?”

“주말과 빨간 날도 무조건 여기 있습니다. 간부들도 70~80%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어떻게 하고요?”

“주로 주초에 만납니다. 서울에 회의가 있거나 볼일이 있어 갈 때 집에 들렀다 오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벌써 오년 년째이기 때문에 식구들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들 하는데, 보너스를 안 줄 수가 없다.

무주리조트 곳곳은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환경훼손이라 지탄을 받았던 골프장 늪지는 갈대가 자라고 있었다.

18홀의 각 코스 빈자리에는 붓꽃, 돌단풍, 구절초 등 이름도 정겨운 토종꽃들이 심어졌다.


“봄이면 민들레가, 가을이면 구절초가 만발하는 슬로프도 계획에 들어 있습니다.”


모두 천리포 수목원에서 씨앗과 묘목을 구입해와 심을 예정이다.


“자생화는 서양 꽃에 비해 이식비용이 7∼8배 더 비쌉니다.”

“그래도 해야지요.”

“슬로프 건설 당시 주목, 구상나무, 소나무 등을 이식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비로소 빛을 보는 것 같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연구원들이 때마다 한 번씩 방문해 주변을 돌아보며 자생식물들을 채취해가고 있습니다.”

“덕유산 자락을 파 해친 과거 행태에 대한 반성이라면 반성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정지혁 사장이 류지호에게 묘한 시선을 던졌다.

재벌이 무슨 환경을 걱정한단 말인가.

한곳이라도 더 파헤치면 파헤쳤지.

Playa Vista의 습지 수십만 평에 대해 개발을 포기하고 시에 기증한 것만 봐도 특이한 성향의 재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는 언제든 제기될 수 있어요. 개발해도 문제 방치해도 문제라고들 하니까.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자연을 최대한 보전하며 개발하는 것이 가온그룹의 모토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이 무주리조트가 다른 리조트와 차별되는 점이자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골프장 잡초도 자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농약도 잔디밭에 체류하는 기간이 일주일 안에 분해되는 걸 쓰고 있습니다. 자연을 오염시키거나 훼손하지 않는 것은 물론 복원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가 오자마자 시작한 것이 매년 주목 500그루를 심는 일입니다.”


뒤에서 졸졸 따라오던 무주리조트 영업부장이 끼어들었다.


“저... 의장님. 혹시 골프 치십니까?”

“미국에서 지인들하고 가끔 치긴 해요. 열심히 안 쳐서 그런지 실력이 늘지 않네요. 나중에 연예인들하고 한 번 와서 쳐야겠네요.”

“연예인이시라면?”

“안정기 선배가 회장으로 있는 싱글벙글이라는 영화배우 골프모임이 있어요. 박중환 선배가 몇 번 골프 치자고 했는데, 바빠서 못 치고 있죠.”

“미리 부킹을 하셔야 합니다. 의장님이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류지호가 걸음을 멈추고 영업부장을 돌아봤다.

그룹에서도 하위권 계열사 영업부장이 오너에게 할 법한 발언은 아니었다.


“의장님... 죄송하지만, 더 이상 무주리조트에는 샛길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 인간적인 관계로 또는 ‘력을 넣어서 무주리조트의 골프장·콘도 시설을 이용하는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골프장이나 리조트 사업을 하는데, 사회에서 힘쓰는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무주리조트는 아니었다.

가온그룹과 류지호의 이름을 팔아서 그 같은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절차가 불편하다, 융통성이 없다, 매정하다, 지역에 환원하지 않는다는 등 비판을 듣고 있다.

매출과 광고마케팅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편의들을 근절하니 당연히 영업이익 부분이 좋아질 수밖에.


“여기 영업팀이 고생이 정말 많았습니다.”


정지혁 사장이 영업부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지난 회기 경영수지 중 영업팀의 매출만 180억이었고, 영업이익은 130억 원이었습니다.”

“영업팀은 모두 몇 명이 있지요?”

“2개 팀으로 나눠져 있는데, 여기 박 팀장의 영업 2팀이 레저팀과 리프트팀을 골격으로 겨울에는 스포츠팀, 춘하추계에는 골프팀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1팀은 호텔과 콘도, 유스호스텔 영업을 담당하고 있고, 두 팀 합쳐 50명입니다. 영업2팀이 37명으로 1팀보다 많습니다.”


리프트팀장은 시설물 운용, 관리, 정비에 12명의 직원과 130명의 동계 아르바이트 요원을 통솔한다.

레저팀은 어린이나라와 스키 렌탈을 담당하는데, 어린이 고객과 단체 영업을 책임진다.

또 스포츠팀은 스키학교와 패트롤을 담당하는데, 동계 아르바이트까지 150명이 일한다.

무주리조트 영업팀은 효율 그 자체를 내뿜는 핵심 부서였다.

그만큼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뛰어 나고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다.


“저희가 활동적인 일을 하는 특성상 신체가 튼튼한데다가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신력도 강합니다.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도 있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거쳐 왔기 때문에 서로 아끼는 마음이 각별합니다.”


골프운영팀은 각계각층의 부팅 청탁을 안면몰수로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팀에만 130명의 골프도우미와 50명의 각 하우스 근무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 밖에 골프코스팀에는 잔디관리를 전공한 10명의 직원이 그린을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한참 동안 영업부장이 자랑을 늘어놓고 빠졌다.


“전기는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지금은 일반용으로 주로 쓰고 있습니다. 산업용으로 해 준다든가 국유지 대부료를 인하해 준다든가..... 이런 국가적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개정해야하는 문제라 그룹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군요.”


한국의 전기요금 수준은 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해 주택용의 경우 60%, 산업용의 경우 80%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중에 하나가 싼 전기요금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정권마다 특정 용도나 업종에 대한 전기요금 인하계획을 검토하지만, 실현된 적은 없다.

현행 전력요금체계는 호텔, 골프장, 오피스빌딩 등에서 사용되는 일반용, 제조업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일반가정에서 사용되는 주택용, 가로등용, 농사용, 교육용 등 6가지 용도에 따라 다르게 책정돼 있다.

제조업에서 사용되는 산업용이나, 가로등용, 농사용, 교육용 전력은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을 내지만 호텔, 골프장, 오피스빌딩 등 서비스업에서 사용되는 일반용 전력은 원가에 비해 판매단가가 123.4%에 달할 정도로 높은 요금을 내도록 돼 있다.

서비스업이 주력 사업인 가온그룹으로써는 다른 재벌대기업이 받고 있는 전기요금 관련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관료들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당장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준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한국경제 성장 동력이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으로 옮겨간 지 꽤 되었음에도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간 격차를 줄일 획기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에 꾸준히 건의를 하고 있지만, 검토해 보겠다는 말뿐입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건 어때요?”

“관련 법률도 미비하고 효율도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이사회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궁리해 보죠.”


이사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밖에 없다.

대관업무 지원이다.


“시설사용료와 입장료 부분도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재협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저희 단독으로 나서는 것보다는 다른 리조트들과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류지호는 무주리조트를 곳곳을 꼼꼼하게 돌아본 후에 만선구역으로 왔다.


“무주리조트가 들어선 언덕에는 만선동(滿仙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신선들이 계곡을 가득 채울 것이라는 전설이 어린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설에 부합하도록, 세계 최고의 사계절 휴양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처럼만 하세요.”

“한때 저희 무주리조트가 스키장만큼이나 노천온천으로도 유명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세솔동에 있는 거요?”

“예.”

“가 봅시다.”


모두가 세솔동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노천온천으로 향했다.


“회원은 1만원, 비회원 1만 3천원을 내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수영복과 타월을 빌리는데 2,000원을 추가 부담해야 하지요.”


류지호가 타월을 손으로 만져봤다.

깨끗하게 빨아 소독까지 한 뽀송뽀송한 타월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90년대까지는 온천시설은 탈의실, 락커룸, 샤워실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랬던 걸 일반 사우나 시설처럼 철저히 분리시켰다.

남녀혼탕의 경우 고객에게 빌려주던 수영복 품질까지 신경을 썼다.

기존 온천은 자연석이 군데군데 놓인 탕과 연두색 온천수가 부글부글 기포를 쏘아 올리는 광천수탕, 그리고 냉탕의 기능까지 겸비한 온천풀장이 다였다.

건식, 습식 사우나 각각 하나씩으로 수영복을 입고 즐기는 남녀혼식이며 규모는 동네 사우나 수준이었다.

그랬던 온천시설을 대대적인 공사로 규모를 키우고 여러 가지 시설을 보완했다.

부산의 센텀시티 온천 개발을 위해 많은 직원들이 일본에서 온천 분야를 배우고 돌아왔기 때문에 관련 기술과 아이디어는 충분했다.

아쉬운 점은 천연 온천수가 아닌 뜨거운 물에 온천제를 섞어 만든 인공온천이라는 점이다.


“90년대만 해도 성수기 평일에도 노천온천에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었죠.”


주말에 손님이 몰릴 때는 다음 손님들이 그냥 무작정 앞 손님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이제 그런 일은 좀체 없었다.

여전히 인기가 많긴 했지만.


첨벙.


비수기라 한산한 노천 온천탕에 류지호와 무주리조트 임원들이 몸을 담갔다.

대회협력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올 겨울부터 가온 아이스하키팀이 아시아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작가의말

겨울 스포츠가 예전만 못하죠. 코로나 여파도 있겠지만, 저도 보드 타러 가본지 엄청 오래된 것 같습니다. 강원도 쪽 리조트들이 줄 폐업을 한다는 뉴스도 본 것 같네요. 동계 레포츠가 더 이상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 인기를 끌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스키리조트의 기본 마인드일 텐데.... 무슨 탓들이 그리 많고 안전사고는 왜 끊이지 않는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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