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연재수 :
899 회
조회수 :
3,828,100
추천수 :
118,685
글자수 :
9,955,036

작성
23.04.26 09:05
조회
3,419
추천
108
글자
25쪽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가 칭한 여러분은 당연히 높으신 양반들이다.


“해외 영화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교통 접근성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경쟁자인 일본, 홍콩, 태국 등은 모두 공항에서 30~40분 거리에 스튜디오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헌데 가온, 서울 종합촬영소, 올 가을에 개관하게 될 무비아트서비스 스튜디오는 인천국제공항 및 김포공항과 3시간 이상 거리에 위치했습니다. 이들 촬영소까지 고속도로 놔 달라 철도 연결해 달라는 부탁 안 드립니다.”


한국말은 언제나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여기 종합촬영소까지 영동고속도와 연결되는 지방도로 하나만 시원하게 뚫어주십시오. 양수리촬영소와 여주촬영소, 한국민속촌 또 용인의 자연농원과 문화레저영상 벨트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이나 조례 좀 만들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껄껄 웃었다.

여당 대선후보 가운데 한 명인 고유현도 웃었다.

영화인들도 웃었다.

문화레저영상 벨트란 표현은 단지 전시행정적 구호가 아니다.

세금혜택 좀 해달라는 말이다.


‘아휴!’


가온그룹 고위 임원들이 남몰래 혀를 찼다.

각종 매스컴과 정치인 및 관료가 모여 있는 곳에서 대놓고 세금 좀 깎아달라고 말하는 그룹 오너라니....

젊은 재벌의 패기인지 똘끼인지....

어쨌든 모두가 웃었다.

솔직히 류지호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한국민속촌, 설악산 케이블카, 영남대, 희수장학회의 공통점이 뭘까?’


대선후보들을 보다가 뭔가 욱하려던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는 류지호다.

어떤 정당이든지, 정권을 잡자마자 상대 진영 정적 제거의 온 힘을 기울인다.

정작 청산하거나 바로잡아야 할 과거는 필요할 때만 꺼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다가 유야무야 흐지부지해지기 일쑤다.

가깝게는 전직 대통령이 불법으로 형성한 재산 국고 회수가 그랬고, 군부독재 시절부터 켜켜이 쌓여 있는 적폐에 손도 대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어쨌든 류지호는 미리 준비한 인사말과 스튜디오 소개를 엉뚱한 농담(?)으로 마무리했다.


짝짝짝.


테이프 커팅이 끝나고 스튜디오 투어가 시작되었다.

축하객들 손에는 안내책자가 한 권씩 들려있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 가운데 한 명인 고유현이 류지호에게 다가왔다.


“올 가을에는 무비아트서비스가 스튜디오를 개관하고, 부산 영상위원회를 포함해서 다른 지방에서도 이런 영상촬영 스튜디오 건설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때 이르지만 시설과잉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WaW 스튜디오의 경우는 자사 투자제작배급 작품을 중심으로 물량을 얼추 확보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생겨나는 시설은 작품 유치가 쉽지 않을 겁니다.”


WaW 종합촬영소는 걱정 없으니 딴 촬영소나 신경 쓰십시오.


“이천과 여주는 쌀로 유명하지요. 농업 기반 도시에 가온그룹이 영상산업단지로 치고 들어왔어요. 지역별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이 지역은 도농복합도시로 성장하는 것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가온그룹이 특혜나 관련 법규를 위반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이 지역은 과거 도자기로도 유명했습니다. 장인의 도시이기도 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온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장이 전체 여주군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0.8%에 불과합니다. 대신 여주군 전체 예산의 수십 배의 경제유발 효과를 만들어내겠죠.”

“내가 한국프로게이머협회장에 출마하려고 할 때 왜 반대한 겁니까?”

“그냥 정치만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인권변호사만 했다고 컴퓨터 프로그램에 무지한 것으로 아나 본데, 한 때 직접 프로그램도 짜고 한 사람입니다.”

“한국에 버뱅크 시티 같은 스튜디오 시티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일본도 동양의 할리우드를 꿈꿨지만 한때 반짝하고 결국 이루지 못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새만금간척지를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의 허브이자 한류의 코어지역으로 발전시켜서 당대 한국대중문화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베벌리힐스 같은 럭셔리 도시로 개발하고 싶지만.... 다들 외눈박이라도 되는지 넓고 멀리 못 보네요.”


정부는 왜 새만금프로젝트의 민간주도 전환에 미온적인가.

승인만 나면 당장 국내 유수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싸들고 찾아올 것이고,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에서도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끌어 올 수 있는데.

도대체 왜?

역사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차기 대권이 유력한 고유현에게 하소연했다.


“부산에도 관심이 많을 것으로 아는데.... 그걸 다 가온이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격이 다릅니다.”

“솔직히 나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티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영화, 드라마, 음악, 우리 전통 음식 등 문화상품은 21세기 전략 산업으로 충분히 유망합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이번 정권의 대중문화 육성 기조를 잘 이어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문화 산업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볼 수 있겠습니까?”

“언제든지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습니다. 제가 후보님 선거 캠프에 합류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허허. 재벌들은 나를 무척 싫어하지요.”


이쪽에 밉보여도 문제 저 쪽에 밉보여도 문제다.

고유현과 대화를 마친 류지호는 야당 쪽 후보로 옮겨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정치와 거리를 두며 오래토록 기업을 일구는 중견기업인들도 한국에는 많았다.

류지호가 벌이는 주력사업이 엔터테인먼트 특히 영화사업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때론 신문이나 방송보다 대중선동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영화니까.

유독 보수진영 그것도 나이가 많은 꼰대 정치인들이 영화계 탄압에 눈에 불을 켠다.


'독재와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영화가 어떻게 선전선동 도구로 쓰였는지 부역자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우파적 성향의 스마트한 영화인을 발굴하고 지원해서 자신들 입맛에 맞는 웰메이드한 창작물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다 함께 발전하는 길임에도 오로지 자기 진영을 반대하는 문화예술인을 때려잡을 생각만 하는 모습이 한심하기만 했다.


절레절레.


류지호는 쓸데없는 고민을 떨쳐냈다.

미국식 캠퍼스 스타일로 조성된 스튜디오를 눈에 담았다.

자신 소유라서가 아니라, 진짜 멋지게 지어졌다.

부산의 센텀시티는 도쿄 롯본기힐,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두바이 페스티발 시티 등을 설계한 미국의 JADE & Partnership가 책임지고 있다.

조경은 플로리다 미키마우스월드를 책임졌던 SMA그룹이 담당하고 있다.

그들이 이곳 WaW 종합촬영소도 설계했다.

지원센터, 미술센터, 사운드 스테이지 구역 곳곳에서 SF영화나 느와르 영화를 찍었을 때 근사한 화면이 만들어질 정도니 말 다했다.

또 골프장 부지로 조성되던 곳이라서 스튜디오 지역과 야외 세트 지역의 경계에는 커다란 연못이 곳곳에 있었다.

사운드 스테이지 지붕 마다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차장은 버스와 촬영지원 차량 수십 대를 수용할 정도로 넓었다.


“종합촬영소 개장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설을 통해 한국영화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와 똑같은 기종 세 대가 동시에 이륙했다.

청와대로 돌아가는 대통령의 전용헬기를 지켜보며 류지호는 생각했다.


‘새만금프로젝트만 예정대로 따낼 수만 있다면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한국이 되는 것이 결코 공상이 아닐 텐데...“


스튜디오 시설은 여주에 계속 두더라도, 새만금간척지의 핵심도시인 아리울에서 매일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는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

WaW 엔터테인먼트와 제휴 영화사들 십여 곳이 아리울로 이주하게 되고, 톱스타들도 세컨 하우스를 아리울에 마련해 두면 일상에서 배우들이 대로변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고 식당에서 식사하는 풍경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작가들이 경치가 좋은 수변 카페테리아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프로듀서가 매니지먼트 관계자들과 캐스팅을 논의하는 모습도 일상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도시.

한국영화사박물관도 있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를 흉내 낸 거리도 있는.

미키마우스월드급 테마파크와 연계되어 일 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도시.

류지호가 그리는 새만금간척지의 핵심도시 아리울의 그림 중에 하나다.


“양수리 세트장은 애들 장난이구만.”

“여기 부지가 다 얼마라고 했더라?”

“65만 평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미쳤다!”


부지가 워낙 넓기에 곳곳에 잔디밭과 아름다운 조경수 지대가 조성되어 있었다.


“현재 한국영상산업의 규모를 토대로 모두 4만 평 부지에 지상 2~3층, 지하 1층 규모로 8개의 영화방송제작 전문 사운드 스테이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기존 국내 최대 시설인 경기도 양수리 종합촬영소에 비해 두 배 이상 넓은 규모다.


“지금 들어와 계신 H스테이지는 전체 면적이 1,500평으로 국내 최대 규모입니다. B~C 스테이지는 500평, D~E 스테이지는 350평, F 스테이지는 250평입니다. H 스테이지 다음으로 넓은 G 스테이지는 1,000평입니다.”


8개의 사운드 스테이지 건설비용만 400억이 소요되었다.

양수리 종합촬영소 전체 건설비용에 세 배가 넘는 예산이 투입된 것이다.

특히 1,500평의 사운드 스테이지는 할리우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규모다.

사운드 스테이지 숫자에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단일 사운드 스테이지의 규모로는 아시아 최대다.

충분히 자랑할 만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는 중국의 상해스튜디오다.

상해스튜디오는 사운드 스테이지 규모보다 야외 세트장이 유명하고, 향후 홍콩, 말레이시아, 또 다른 중국의 대형 스튜디오가 건설된다고 해도 WaW 종합촬영소의 규모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돈질과 허세로 세계 어느 민족 못지않게 심한 중국이라면 WaW 종합촬영소를 넘어서는 대규모 단지를 만들지 말란 법도 없지만.

아시아 최대 규모의 초대형 스테이지를 비롯한 특수목적 스튜디오, 야외 오픈 크로마키 촬영장 등은 한국에서는 오직 WaW 종합촬영소에서만 활용 가능한 시설이다.


“경찰서, 병원, 법정, 교도소, 공항 입출국장 등을 완벽하게 구현한 특수목적 스튜디오는 제작사들이 겪는 장소 섭외 어려움을 해소하고 촬영기간 단축을 통해 비용절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시설은 완벽한 소음차단과 냉난방 시설을 갖춰 스태프들이 일하기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 자신합니다.”


국내 최대 슈퍼테크노크레인은 최대 15m까지 무소음으로 와이드 장면 연출이 가능했고, 태양광 구현이 가능한 대용량(18K, 9K) 특수조명장비, 전쟁과 액션 시퀀스 촬영에 유용한 와이어캠 등 다양한 특수영상 제작 장비도 들여왔다.


“지금 보고 계시는 공항 세트의 경우 제작진들이 종합병원 로비로 세팅을 바꿔서 찍는다든가 병원 로비를 기업 로비로 둔갑시키는 식으로 다양한 방식의 베리에이션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또한 교도소 사방 세트의 경우 모든 세세한 설계까지 법령에 의거해 그대로 따라 시공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교도소도 마음대로 변형이 가능합니까?”

“원상복구만 해놓으면 되긴 하지만, 굳이 리얼리티를 무시하고 찍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한국영화도 SF 장르를 찍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가서 실무적으로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정도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운드 스테이지 구역을 빠져나온 하객들은 미술센터를 둘러봤다.

각종 소품 보관실과 세트 제작 지원실이 있는 미술센터 한쪽 외벽에 56.7m×11.7m 크기에 대형 크로마키가 만들어져 있었다.

야외 VFX 합성장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할리우드에도 안하는 짓을 해놓았다.

야외 공간의 전체 면적은 대략 1,400평.

만약 일산호수공원 벤치에서 연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순수 자연광을 이용해 촬영하게 된다면, 크로마키 배경 앞에 벤치만 하나 놓아두고 배우가 투입되어 촬영하면 된다.

이후 포스트프로덕션에서 크로마키에 일산호수공원을 합성하면 끝.

크로마키 월 바로 앞은 주차장인데, 지대가 2.5m 움푹 꺼져 있다.

때에 따라서 바다나 강을 배경으로 하는 합성장면까지도 가능한 설계다.

수중촬영 스튜디오도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대전의 R&D 센터에 양보하기로 했다.

한국영화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편집을 위한 기본 시스템이 사운드 스테이지를 포함해 시설 곳곳에서 제공된다.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 Origin 시리즈와 관련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디지털 영화 인프라까지도 갖춰놓았다.

마지막으로 경영지원센터 건물을 돌아보는 것으로 스튜디오 투어를 마무리했다.


❉ ❉ ❉


WaW 종합촬영소에는 외부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곳들도 더러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소방시설이다.

종합촬영소 안에는 자체 민간 소방조직이 갖춰져 있다.

경영센터 2층에 위치한 방재센터의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상황판은 65만 평의 스튜디오 단지와 주변 산림 지역, 인근 농가까지도 감시·감독하는 종합재해관리 시스템이다.

3교대로 근무하는 직원들이 화재 및 가스 감지기, 테러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어떠한 재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완벽한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저희 중앙통제센터는 오성전자의 기흥, 화성 캠퍼스와 맞먹는 규모의 방재센터로 365일, 24시간 빈틈없이 스튜디오를 수호할 수 있습니다. 단지 내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소방차 2대와 구급차 1대, 그리고 구조차와 순찰차가 항시 대기 중입니다.”


소방과 관련해서 현재 마련한 조치들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도 툭하면 화재가 발생해 스테이지를 홀랑 태워먹기 일쑤다.

WaW 종합촬영소는 삼면이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작은 불씨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가온그룹의 모든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안전 표준을 제정해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방방재시설의 경우 법적으로 규제한 연 1회 정기점검 이상으로 시행할 계획입니다.”


나래안전의 임건희 사장이 직접 류지호를 수행하며 설명했다.

사장이 나설 정도로 WaW 종합촬영소는 나래안전시스템에게도 중요한 고객사였다.


“연 2회 가지고 되겠어요?”

“분기별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워낙 대규모 시설이고, 야외 세트장은 목재 건축물이 많다보니 예방안전을 위해 더욱 세밀한 소방점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현재 배치된 소방대원 인력구성은요?”

“소방, 응급, 모니터링 등 32명이 배치되어 평시 3교대로 근무하게 됩니다. 또한 월 별 상황별 비상대응훈련을 비롯하여, 주요 시설물 상주 스튜디오 직원들에게 ERT(초기대응팀) 교육, 부서별 응급처치 양성교육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임직원들의 안전관리 의지를 강화할 생각입니다. 특히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 사용법 등 응급처치법 교육을 이수하고 인증을 받은 임직원이 전체 70%가 넘을 수 있도록 독려할 생각입니다.”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요령은 모든 직원들이 알아두면 좋긴 하죠.”

“그렇습니다. 특히 신입사원 연수기간 중 응급처치법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해 줄 것을 인력관리팀에 제안한 상황입니다.”

“주변에 농가가 많지는 않지만, 여주 관할 소방서에서 우리 소방센터에 지원 요청이 있을 경우 신속하게 출동해 도와주도록 하세요. 외부로 출동을 하게 되면 따로 특별 수당을 챙겨주라고 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대원들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WaW 종합촬영소만 특별히 소방대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오성전자, 금성전자, 경일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큰 사업장에는 자체 자위소방대를 갖추고 있다.

사업장 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중앙 방재센터와 소방차는 기본적으로 구비하고 있다.


“특히 야외 세트장에서 흡연하는 스태프들 관리에 신경 써주고요.”

“예. 의장님.”

“테러대응팀은 언제 준비되죠?”

“굳이 테러대응팀을 둘 필요가 있습니까?”

“데본 테럴이 강력히 권고하더라구요.”

“여주와 이천 이쪽은 군부대도 많잖습니까.”

“북한이나 9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테러단체를 우려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에는 비상식적인 사람이 많아요. 누군가가 홧김에 화염병 하나를 근처 수풀에 던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니면 수도관이나 음식물에 몹쓸 짓을 하면요?”

“우리 요원들로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0년 내에 해외영화를 유치할 생각이에요. 해외 제작사들에게 테러대응팀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면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따겠죠. 게다가 저 강 너머에는 대형 종교단체 본산이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고요.”


여주는 모 종교단체가 사실상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여주군 내 어지간한 부동산과 읍내 주요시설은 거의 그들 소유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들과 특별히 갈등을 벌일 일은 없겠지만, 종교에 너무 심취하다보면 때로 극단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만에 하나라는 거예요. 일이 벌어지고 후회해봐야 소용없잖아요. 뭐든 대비해서 나쁠 건 없어요.”

“알겠습니다. 팀장급에게 염두에 두라고 말해 놓겠습니다.”


보안과 소방 시설을 둘러본 후로 포스트프로덕션 공간을 둘러봤다.

WaW 종합촬영소에 입주한 업체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개별 회사들이다.

WaW Digi Lab만 WaW 엔터테인먼트 자회사다.

다만 업체들이 최신 장비와 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WaW 엔터테인먼트가 지원했다.

편집실과 음향 녹음실은 Abid에서, DI실은 da Vinci에서, 사운드 믹싱룸은 Doldy에서, 필름 스캔 및 리마스터링 장비는 GMG Lab의 전문가들이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시설과 장비만 놓고 보면 한국 최고를 넘어 아시아 최대·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설과 장비가 다가 아니다.

DI를 하는 이들을 컬러리스트(colorist)라고 하는데, 디지털 영화 역사가 이제 막 태동한 만큼 이들의 연륜·경험 모두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국내에 DI를 담당하는 업체는 WDL, 세방SDL, 모팩스튜디오, HFR 등이다.

곧 인사이트 비주얼, 2L필름이 문을 열 예정이다.

10여 년이 지나면 이 당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업체가 난립한다.

업계 지형도 역시 크게 바뀌게 된다.

기존 대형 업체 출신 컬러리스트들이 독립해 소규모 업체들이 무수히 탄생한다.

포스트프로덕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심각한 문제도 생겼다.

고가의 장비였던 필름 스캐너가 없어지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da Vinci 리졸브와 같은 디지털 툴의 가격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초기투자비용 부담이 대폭 줄어든다.

그렇다 보니 DI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길 수밖에.

안 그래도 작은 시장이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단가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DI 품질도 떨어진다.

OTT가 부상하면서 디테일이 생명인 극장용 영화보다 홈시어터 수준에 품질이 맞춰진다.

결국 영화 포스트프로덕션은 시설·장비가 다가 아니다.

그걸 운영하는 사람.


‘특히 마인드가 중요하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기준을 지나치게 높일 것까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공들여 쌓은 탑도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타협하는 순간 정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는 20년 후에는 더더욱.


“한국에서 쉴래. 미국에 가서 쉴래?”


헤어지기 전에 황재정이 물었다.


“쉬긴... 당분간 밀려있는 비즈니스 처리해야 돼. 알면서 그러냐?”

“또 뭐가 있어?”


황재정이 류지호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는 고우찬을 돌아봤다.

고우찬이 자신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재정아,...내가 멈춰있을 때는 죽었을 때야.”

“미친 놈. 작작 좀 해.”

“너같이 유능한 직원들이 회사를 아주 잘 만들어가고 있는데 내가 더 뭘 하겠냐?”

“밑자락 까는 거 보니까. 또 뭐가 있네.”


도대체 친구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 황재정이다.


❉ ❉ ❉


WaW 종합촬영소 안에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한 곳이 입주해 있다.

(주)ICONS 엔터테인먼트란 업체다.

이 회사의 전신은 경일자동차그룹 계열의 광고기획사 애니메이션 사업팀이었다.

90년대 경일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에서 한국 최초의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었다.

완성도에 비해 흥행에 실패했다.

외환위기로 인해 모그룹이 어려워지면서 애니메이션 사업을 철수했다.

그때 애니메이션 사업부에서 김종혁과 애니메이터들이 독립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업체가 아이콘스다.

작년 9월에 창립했는데, 이 업체에 WaW 엔터테인먼트가 투자를 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류지호의 의중이 반영된 투자였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 잠원동에 회사가 있었다.

WaW 종합촬영소 개장을 앞두고 이주했다.

류지호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김종혁 대표가 벌떡 일어섰다.


“아, 감독님!”

“불편한 건 없어요?”

“딱히 없습니다.”

“한동안 서울에서 출퇴근하려면 힘들겠네요.”


김종혁 대표가 껄껄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 각오하고 회사를 옮긴 겁니다.”


처음 여주로 스튜디오를 옮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당시, 그는 전쟁터로 떠나는 파병용사 같았다.

비장한 한편 불안감을 품은 그런 상태였다.

마치 벼랑 끝에서 서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지금은 약간의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직원들이 지낼 수 있는 아파트가 완공된다고 하니, 조금만 고생하세요.”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공짜로 아파트를 주는 것도 아닌데.....”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죠.”

“1~2년 간 생활환경이 꽤나 열악할 겁니다. 순차적으로 병원, 학교, 마트 같은 기반시설들이 조성될 예정이니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네요.”

“대신 종합촬영소 안에 있을 건 다 있잖습니까? 이곳에서 일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이전 삶에서 김종혁 대표는 <또롱또롱 또로로!>가 인기를 얻기까지 시련이 꽤나 많았다.

경일그룹 계열이라는 울타리가 없어지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국 퍼블리싱으로 근근이 버텼다.

주택 전세까지 빼서 제작하기 시작한 3D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에 놓이기도 했었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매진했던 애니메이션이 결국 크게 성공했다.

바로 어린이들의 대통령 <또롱또롱 또로로!>가 그 주인공이었다.

방영 초기부터 흥행이 폭발한 것이 아니었다.

3기가 방영되면서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또롱또롱 또로로!>가 성공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작 아이콘스의 직원들조차 공중파에서 방영하기만 해도 황송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캐릭터와 스토리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업계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류지호만이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 류지호가 밀어주면 안 망한다!


영화계에서 정설처럼 굳어진 속설이다.

지금까지 손대서 안 된 프로젝트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류지호의 투자를 받았다고 하자 아이콘스 전 직원이 ‘만세’를 불렀을 정도다.

흥행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가온그룹 산하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할 기회는 잡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 제작 중인 애니가 <수호요정>이던가요?”

“예.”

“방송국은 정해졌어요?”

“EBS, KBC와 논의 중입니다.”

“일본 애니는요?”

“<꼬마마법사>를 올 11월에 MBS에서 방영하기로 구두합의를 보았습니다.”

“<또로로>는 시나리오 작업 들어갔어요?”

“시나리오는 주말마다 아이들과 놀아주다보면 어느새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딱 제 아이들 나이 또래가 주 시청층이라서.”

“애니콘과 저작권 부문은 잘 정리가 되고 있지요?”


작가의말

새만금간척개발은 현실세계에서 워낙 복잡한 정치적, 환경적, 법적, 지역이기주의까지 얽혀 있는 사안이라서 소설에서도 빌드업을 좀 길게 잡았습니다. 송도국제도시의 전례가 만들어지는 것에 맞춰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 속 시점이 월드컵 즈음이니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람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51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9 116 24쪽
510 MUJU Rock Festival! +2 23.05.25 3,142 127 21쪽
509 류지호 사단. (5) +4 23.05.24 3,178 118 23쪽
508 류지호 사단. (4) +12 23.05.23 3,152 146 26쪽
507 류지호 사단. (3) +9 23.05.22 3,197 119 25쪽
506 류지호 사단. (2) +11 23.05.20 3,230 107 25쪽
505 류지호 사단. (1) +5 23.05.19 3,255 117 24쪽
504 영화를 하는 한 도전은 계속된다! +5 23.05.18 3,140 118 24쪽
503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2) +10 23.05.17 3,153 131 26쪽
502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1) +5 23.05.17 3,135 111 26쪽
501 실사화에 적합한 감독이라는 걸 증명할게. +12 23.05.16 3,114 121 27쪽
500 미래는 정해져 있다? +23 23.05.15 3,190 134 24쪽
499 Action Camera. +5 23.05.13 3,133 125 22쪽
498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4) +9 23.05.12 3,200 125 25쪽
497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3) +4 23.05.11 3,191 111 22쪽
496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2) +6 23.05.10 3,190 119 25쪽
495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1) +4 23.05.09 3,235 109 23쪽
494 소중한 걸 놓치지 않으려면.... +7 23.05.08 3,328 120 24쪽
493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3) +3 23.05.06 3,419 111 23쪽
492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2) +4 23.05.05 3,263 112 21쪽
491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1) +10 23.05.04 3,246 111 21쪽
490 저희 리조트에는 샛길이 없습니다! +9 23.05.03 3,250 115 25쪽
489 무럭무럭 커라! (2) +4 23.05.02 3,351 109 26쪽
488 무럭무럭 커라! (1) +4 23.05.01 3,420 114 27쪽
487 자원이 남을 때는 멀티를 건설하라.... +3 23.04.29 3,467 114 25쪽
486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3) +4 23.04.28 3,330 110 24쪽
485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2) +3 23.04.27 3,431 116 26쪽
»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1) +9 23.04.26 3,420 108 25쪽
483 어쩌면, 혹시, 설마 했던 일. (2) +3 23.04.25 3,427 128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