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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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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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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호 사단.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가온경제연구소의 전신 대유경제연구소는 대유그룹에서 대유증권 자회사로 설립한 싱크탱크였다.

원래라면 대유그룹 해체와 함께 규모가 대폭 줄어들어서 별 볼일 없는 컨설팅 회사가 되어야 했지만, 가온GP신탁투자가 대유증권을 인수함으로써 명맥이 유지됐다.

황재정은 전 대유그룹 싱크탱크 경제연구소를 그룹 직속기관으로 격상시켜 다양한 연구과제를 주고, 연구원 중 일부를 정부의 재정경제부 관리로 들여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지호가 보기에는 가당치 않았다.

가온그룹 회장 보좌기구도 있고 오너 직속의 전략기획실도 있다.

굳이 가온경제연구소를 키울 이유가 없다.

대기업 연구소는 분야 불문하고 호떡가게라는 말이 있다.

호떡가게처럼 오늘 내일 구워야 하는 리포트가 있다면 반드시 구워야 하는 곳이란 뜻이다.

그런 연구소에서 얼마나 양질의 연구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의 4대 재벌 경영경제연구소는 그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싱크탱크로는 오성경제연구소, 금성경제연구원, 경일차 글로벌경영연구소, 선경경영경제연구소 등이 있다.

스탠퍼드에서 무슨 물이 들었는지 황재정은 가온그룹 산하의 경제연구소를 4대 그룹에 맞먹는 싱크탱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류지호는 대유경제연구소가 가온경제연구소로 계승되는 것을 반대하진 않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영·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 전문 연구기관이 필요하긴 했으니까.

그런데 모델이 한국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는 아니었다.

한국영화의 도전 그리고 성공전략에 대한 연구.

최근 발간된 오성경제연구소와 가온경제연구소에서 낸 보고서다.

두 경제연구소는 최근 한국영화의 선전이 다른 업종과 비교해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전제했다.

다만 오성경제연구소 발표에는 한국영화가 높은 성공 확률을 기록한 데에 오성벤처캐피털을 포함한 창업투자와 벤처캐피털의 안정적인 투자 때문이라는 식으로 결론지었다.

스크린 쿼터 수호 싸움을 계기로 한국영화가 실력 경쟁을 시작했고, 제작·투자·유통·마케팅 업체의 협업에 사회 인프라 지원이 가세했고, 영화계로 창의적 인재가 몰리며 젊은 산업으로서 매력을 발휘했으며, 엽기·조폭 등 대중성 코드를 정확하게 간파했으며, 멀티플렉스와 인터넷 효과가 융합되어 히트작을 넘어 대박 행진을 계속 이뤄 놓았다고 분석했다.

가온경제연구소 연구보고는 비슷하면서 달랐다.

대기업과 벤처자본이 영화제작에 안정감을 준 것을 인정하면서도 영화계 내부에서 생존의 절박감과 경쟁 압력이 극심해지면서 한국영화가 한 단계 도약하게 만들었고, 어차피 죽게 생겼으니 히트 영화를 만들어 살아남아 보려 한 것이 연속으로 적중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시장의 대형화에 힘입어 한국영화 대작들의 개봉 첫 주 물량공세 효과로 1차 성공을 거둔 다음, 이후 경험마케팅(인터넷 홍보와 입소문)에 힘입어 대박을 실현시켰다며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영화 현장의 저임금·고강도 노동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영화 경쟁력의 근원은 저렴한 원가에서 온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요약하면 오성경제연구소는 대자본의 투입으로 투자안정성이 담보되어 한국영화가 성장하고 있다고 봤고, 가온경제연구소는 후진국형 산업구조에서 오는 반사이익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대중문화 공공성 확충이라느니,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느니.

류지호가 보기에 탁상공론이 주를 이루는 연구발표였다.

경제연구소들은 흥행영화와 관련해서 각종 산업적인 지표를 내놓는다.

산업 파생효과니 고용효과니 경제유발 효과니 같은 것들이다.

이런 지표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영화산업을 지원하는데 훌륭한 명분이 되어 준다.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범오성가는 오성벤처캐피털, 제일미디어 그룹, BS그룹을 통해 영화와 멀티플렉스에 진출한 후, 각종 통계자료를 토대로 한국 영화시장 파이를 키우는데 공헌하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멀티플렉스의 확장에 힙 입어 한국영화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군소영화업자들의 저항을 일정 부분 무력화 시킬 수가 있었다.

가온그룹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사업 보고와 토론이 한참 이어지다가 황재정이 다시 발언권을 얻었다.


“한국의 미디어 분야와 관련한 한 가지 재밌는 가설과 연구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는 가온 그룹 내부용이니 사장단에서만 알고 계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저 놈이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려고....’


이전 삶에서는 청년시절 운동권 활동을 하며 반재벌적 성향이었던 황재정은 이번에는 엘리트 코스를 단계별로 밟아가며 전형적인 기득권 엘리트가 되어가고 있다.


“오성그룹은 자타공인 한국 최대 기업입니다. 가온그룹이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전체 미디어 분야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분석입니다.”


대부분의 사장들은 말도 안 되다고 생각했다.

가온그룹은 명실상부 한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었으니까.


“영화 부문만 보면 가온그룹이 메이저 중에 메이저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미디어 산업을 놓고 보면 오성그룹, 아니 범오성가문은 무서운 곳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오성그룹은 광고와 인터넷이 연계된 커뮤니케이션 부문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BS그룹은 케이블과 엔터테인먼트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제일신문그룹은 신문 외에 유료방송 시장과 드라마 제작, 전시회 쪽으로 발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시작된 미디어 개혁을 통해 오성과 BS, 제일신문이 미디어 제국을 구축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나 관측됩니다. 겉으로는 계열 분리를 했다지만 범오성가라는 미디어 제국에서 각기 역할을 분담해 협력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전 삶에서, 실제로 영화 산업에서 멀티플렉스 BGV(BS)와 씨네박스(오성미디어)의 점유율을 더하면 70%에 육박했다.

나머지를 광성시네마가 차지하는 형국이었다.

신문 산업은 자본에 종속됐고, 공영방송도 무너진 상태에서 종편과 케이블 채널이 꾸준히 시청률을 늘려갔고, 드라마 제작과 유통, 유료방송 플랫폼까지 범오성 미디어제국이 매우 큰 지분을 가지고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만약 범오성가의 미디어 전 분야를 분업화해서 상호 보완 협력하게 된다면, 온 국민이 오성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고 오성이 원하기만 하면 진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됩니다.”


류지호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한 개 기업이 모든 미디어를 장악할 수도 없고, 설령 미디어를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미디어와 플랫폼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황재정의 논리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나 가능했다.


“어떤 분께서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정치권의 비호를 받으면 버젓이 독점을 할 수 있고, 사회 전반이 친 재벌 위주인 한국에서는 마냥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한 개 대기업이 미디어 산업을 전방위적으로 소유 또는 유지적으로 엮을 수만 있다면 독재국가가 아님에도 의식 통제 산업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오성이 만드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오성이 만드는 뉴스로 세상을 이해하는 시대. 오성이 직접 소유하거나 오성이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사들로 한국 미디어 시장이 점령돼 버린다면. 필요하다면 제도를 바꾸고, 없는 법도 만들어 낼 수 있겠죠. 그리고 국민들의 의식을 통제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일개 기업의 힘으로 정권도 바꿀 수 있을지 모릅니다.”


모두가 어이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황재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범오성 일가는 가장 강력한 광고주이자 미디어 소유주면서 파워 엘리트와 언론인들 사이에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신문 산업이 1990년대 이후 국가통제 시스템에서 자본통제 시스템으로 넘어가면서 직접 소유할 필요가 없게 됐지만, 방송과 영상 산업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여론을 통제하고 의식을 검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범오성의 미디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파워풀한 투자자면서 미디어의 제작과 유통·분배, 그리고 광고까지 장악해 10년 안에 미디어 시장의 제왕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온그룹은 BS 정도가 아니라 범오성가와 미디어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딴에는 가온그룹 사장들에게 경고를 하려고 했지만.

사장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오성 공화국.

범오성그룹의 한국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빗대서 하는 표현이다.

오성그룹이 한국 사회 전 방위에 미치는 파워가 막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미디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언론, 영화, 음악, 공연,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인터넷 등.

영화와 케이블TV만 좁혀서 보면 이전 삶에서 플래너스 엔터테인먼트와 BS 엔터테인먼트가 합병할 때 주요 주주였던 제일신문그룹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사돈인 BS그룹에 넘겼다.

또한 올리온 그룹의 올미디어와 씨네박스를 2009년과 2012년 각각 BS그룹과 제일신문그룹이 사이좋게 나눠 갖는 과정에서도 그룹 차원의 빅딜이 있었다.

언론사로만 알려진 제일신문그룹은 종합편성채널, 멀티플렉스 극장, 드라마 제작사. 게임개발사 등 다수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소유했다.

제일신문그룹은 자사 언론 외에 한국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경제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BS그룹은 대중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범오성가문이 한국의 미디어를 장악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황재정의 전망은 나가도 너무 나간 상상의 나래다.


“무슨 의식 통제 산업입니까?”


장내 모든 시선이 입을 연 류지호에게 모여들었다.

황재정이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대꾸했다.


“누군가 이 나라를 암중에서 지배하려고 한다는 음모론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특정한 기업이 언론과 모든 미디어에 있어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면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게 되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 안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조금 과장된 생각이긴 하겠지만 권력도 교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뉴스, 영화, 드라마, 음악, 공연, 광고.... 국민들에게 직접 노출되는 모든 매체에 자신들이 바라는 걸 교묘하게 집어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독님도 영화감독이시니까 매스미디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저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이 발전하면 할수록 전통적인 미디어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기존 미디어를 향유하는 계층은 장년층으로 한정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로 나아가는데 국민들이 바봅니까? 의식통제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가 한정적일 때나 가능한 겁니다.”


미디어 전반을 장악한다는 것은 해서도 안 되지만 가능하지도 않다.

물론 권력 차원에서 언론과 대중문화를 통제하려고 시도하긴 하지만.

일개 기업에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한국의 재벌들은 혼맥을 통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20대 주요 대기업과 언론, 사법, 정치권이 넓게 보면 사돈지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한국 시장 독점 같은 것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류지호가 가온그룹 사장단에 확실히 못을 박았다.


“인구 오천만 시장에서 독점해서 돈을 많이 벌겠습니까? 오천만 내수시장에서 여러 콘텐츠회사들이 박 터지게 경쟁한 결과 성공한 콘텐츠를 전 세계 시장에 내다 파는 게 돈을 더 벌겠습니까? 독점하는 기업에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빡세게 경쟁하는 기업에 경쟁력이 생기겠습니까? 홍콩영화가 10년도 채 못가서 힘을 잃었던 걸 생각해보세요. 일본이 애니메이션 분야 빼고 영화 분야에서 침체를 겪는 걸 보세요. 심지어 일본이 자랑하는 애니메이션도 미국의 스튜디오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에 세계 시장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한국이란 좁아터진 시장에서 왕 노릇하고, 국민들 의식 통제해서 어따 써먹습니까? 국민 의식 통제할 생각 말고, 그 시간에 전 세계 사람들을 어떻게 홀릴지나 고민하세요.”


이래서 빨리 한류를 타고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내수시장에 연연하다보니 독점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1등 먹었다고 제국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왕도 못될 겁니다. 겨우 지방 영주 정도? 꿈을 좀 크게 가져 보죠. 미디어 제국이니 뭐니 생각할 시간에 우리가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물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류지호가 말을 마치고, 마이크를 앞쪽으로 밀었다.


탁!


그리고 자신 앞에 놓인 보고서 파일을 덮었다.

이 정도에서 회의를 종료하자는 표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래리 킴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일본의 버진시네마즈에 이어 Loews Cineplex를 인수하게 되면 GOM 브랜드는 글로벌 멀티플렉스 기업으로 위상이 올라갑니다. 중국의 메이저 원선과도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죠. 국내 원탑 같은 작은 성과에 연연하지 맙시다. 대유가온건설은 지난 1년간 해외공사 수주를 9,000억 이상 따냈지요. 새만금 프로젝트가 우리의 바람대로 진행된다면 가온의 건설사업은 오성물산을 뛰어넘게 됩니다. 국내 대기업들과 라이벌 의식을 가지는 것은 좋습니다만... 오너께서 왜 사업장마다 세계전도와 모형을 눈에 잘 뜨이는 곳에 놓으라고 했는지 항상 상기하세요.”


모두의 시선이 걷었던 소매를 풀어서 단추를 채우고 있는 류지호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빅보스는 세계적인 복합미디어그룹 JHO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에서 범오성가가 미디어를 장악하든 말든 그들의 빅보스에게는 하찮은 일이다.

영화사업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위성방송사업은 중남미를 넘어 유럽으로 향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에까지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을 홀릴 수 있는 미디어를 가질지도 모르는데, 겨우 한국의 미디어가 대수일까.

회의가 끝나고 류지호는 황재정만 따로 래리 킴의 방으로 불렀다.


“꼭 그래야만 했냐?”

“씽크탱크는 과제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에 관한 문제해결의 방안을 제시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고.”

“재정아, 혹시 재벌 산하의 경제연구소처럼 정부의 경제 조언자 역할을 하고 싶어?”

“가능하다면....”


재벌 산하 경제연구소는 한국정부의 조언자가 아니다.

협잡꾼이다.

그러니...


“가온그룹의 전략을 구상하는 ‘인하우스’ 역할만 수행하라고 해.”

“.....?”

“정책 조언자가 되어도 문제, 되지 못해도 문제야. 넌 이 나라의 정치와 행정부에 어떤 희망을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그쪽하고는 불가근불가원이 좋아. 가온그룹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것만으로도 큰 과제일 걸.”

“미국의 해리티지 재단이나 일본의 오사카노무라재단 한국의 오성경제연구소 같은 씽크탱크를 갖고 싶지 않습니까?”

“응. 필요 없어.”

“아휴, 정말....! 어떤 때는 스케일이 무지막지 하게 컸다가도 또 이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이라니까.”

“친구야, 실용적이라고 이해해 줄래. 내가 생각하는 가온그룹 씽크탱크의 내일은 말이다. 미래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현재의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닥치는지,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에 대해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미래 연구가 핵심이야. 한국 내부의 환경변화에만 집중하다보면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 뿐. 대외적으로 경제성장률·금리·환율 등 전망 지표 내놓아봐야, 각 언론사들이 인용해서 자기 입맛대로 기사에 쓰이는 재료 밖에 안 될 거야. 외부 활동보다 인하우스 연구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옳아. 지금은 자산규모가 10조 원대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50조 100조 규모로 그룹이 커지면 정부상대로 조언이니 그 딴 거 다 사치야.”

“대기업 경제연구소들이 정책에 건의를 해야 경영활동과 투자를 옥죄는 각종 규제를 막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규제를 철회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이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고 고맙다는 말로 끝낼 것 같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걸?”

“줘야한다면 줘야지요.”

“싫어. 줘도 투명하게 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냐? 난 뒷구멍으로 승마용 말 같은 거 사주고, 같잖은 자들에게 뇌물 퍼주고 싶지 않아.”

“한국의 기득권으로부터 고립되면 감옥 갈 수 있습니다.”

“시민권 따서 국적을 아예 바꿔버리지 뭐. 가온그룹을 통째로 JHO에 합병 시켜버릴까. 본사도 버진아일랜드 같은 데로 옮기고. 최대한 한국에서 세금을 적게 내도록 해볼까? 알짜 사업은 아예 미국으로 옮겨버리는 거야. 그런 다음 그렇게 내몬 자들 엿 먹이는 각종 콘텐츠를 마구 찍어낼 거야.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어 주는 거지.”


래리 킴이 슬쩍 농담을 던졌다.


“무섭게 왜 그러십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씽크탱크인지 경제연구소인지가 잘 좀 해 보라고 하세요. 미디어 장악이니 같은 쓸데없는 곳에 심력 소모하지 말고.”


래리 킴이 황재정을 돌아보며 눈을 찡긋했다.

일단 물러서라는 사인이다.


“알겠습니다. 전략기획실과 함께 그룹 내부 연구과제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너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자신들은 젊었다.

차근차근 가온그룹 인하우스 연구과제를 진행하다보면 10년 안에 국내 최고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전략연구소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 와중에 연구원 중 일부가 대학강단에서 가온그룹의 이상과 가치를 설파하는 지식인이 되고, 국가 예산과 경제정책을 다루는 재정부 및 주요 부처 관료가 되기도 하며, 주요 언론에 친가온 성향의 칼럼이나 평론을 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도 있다.

황재정은 쓸 만한 인재를 발굴해 그들을 데려다가 연구소를 채우면 된다.

이전 삶에서는 재벌을 미워했던 황재정이다.

이번 삶에서는 재벌의 방식을 따라하려고 한다.

황재정의 선(善)이 가온그룹이 잘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 친구를 류지호는 복잡한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강남대로 옛 동우극장 건물은 한국 E-스포츠의 성지다.

과거 1,300석 규모의 극장이었던 곳을 500석 규모의 ‘스타크래프트‘ 전용경기장으로 리모델링했다.

그 외에 한국에서는 비인기 종목인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퀘이크‘ 경기장도 있다.

8층 규모의 다솜 E-스포츠 파크에는 경기장 외에도 예선 경기장, 연습실, 선수 대기실, 방송 지원실, E-스포츠 기념품 매장, 커피 전문점 등 다양한 시설이 집약되어 있다.

8월 초 새로운 종목의 전용경기장이 문을 열었다.

새롭게 추가된 E-스포츠 리그는 ‘워크래프트Ⅲ’다.

이 경기장은 콜로세움 스타일로 지어졌다.

NBA 농구장이나 NHL 아이스하키 경기장처럼 경기장 중앙 천장에 사각형의 전광판 스크린이 설치된 실내 스포츠 스타디움 형태다.

처음에는 모두가 반대했다.

다솜방송 측에서는 경기 중계에 곤란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로, E-스포츠 협회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프로게이머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로, Snowstorm Entertainment는 비용 문제를 들어 반대했다.


“가만히 앉아서 마우스만 움직이는 PC게임 중계에 뭐가 곤란한 점이 있습니까? 그럼 농구중계 하는 팀은 어떻게 한답니까? 이런 경기장에서 멘탈이 흔들리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프로게이머 때려치워야죠. 4만 명이 운집한 경기장에서 온갖 쌍욕을 들으며 경기하는 선수들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습니다. 경기장 리모델링 비용은 다솜방송에서 대는데 Snowstorm 코리아가 무슨 비용 타령입니까?”


류지호의 말에 틀린 점이 없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 수밖에.

사각형의 유리방 안에서 방구석 폐인처럼 경기를 치루는 방식.

그 방식이 류지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우주인 코스프레를 한다며 족보도 없는 레이싱복 같은 걸 입혀 놓고 게임을 하도록 한 것조차 유치해서 죽는 줄 알았다.


“리그에 출전하는 팀들은 계절별 팀복을 입고 출전하고 있습니까?”

“춘추와 하복 두 종류 유니폼으로 통일했습니다.”

“선수들 사인 유니폼은 좀 팔립니까?”

“테란의 황제 정도 유명인 유니폼이 나가는 정도입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잘 나간다고 해서 유니폼과 관련 굿즈(goods) 시장까지 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굿즈는 ‘덕후 문화’에서부터 시작됐다.

굿즈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계층은 아이돌 팬덤이었다.

이전 삶에서 굿즈가 한국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다.


“‘워Ⅲ’ 확장팩이 나올까지 프리 시즌과 개인 리그 형식으로 운영된다고요?”

“그렇습니다. 확장팩 출시에 맞춰서 정식 프로 리그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7월 초에 발매된 ‘워크래프트Ⅲ’는 3주 연속 북미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PC게임 사상 또 RTS 게임으로 가장 빠르게 100만장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도 3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보이며 순조로운 스타트를 보이고 있다. 

그 중 PC방을 통해 판매된 숫자만 23만장이다.

꾸준한 불법복제 유통 근절 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Snowstorm 게임은 배틀넷을 통해 재미가 증폭되기 때문에 모든 PC방이 기본으로 정품패키지를 구매했다.

꽤나 근사하게 만들어진 ‘워크래프트Ⅲ’ 전용 경기장을 둘러보는 류지호의 곁으로 Snowstorm 코리아 사장이 달라붙었다.


"1차 판매는 모두 소진됐습니다.“

“게임성에 대한 유저들의 호응에 따라 판매량이 변화하겠군요?”

“이르면 9월말부터 PC방 업체들의 2차 수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출시 한 달이 경과한 현재 북미와 한국 그리고 유럽 등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이머가 속속 등장하고 있고, 일반 유저층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전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여담으로 원래는 ‘워크래프트Ⅲ’의 국내 판매량이 ‘스타크래프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류지호가 개입했으니까.


“한 가지 더 고무적인 상황은 이달 중순께 Snowstorm이 출시한 게임 3종 즉 스타, 디아2, 워크3가 국내에서 700만장 판매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는 겁니다. 1998년 4월 판매하기 시작한 ‘스타크래프트’와 2000년 6월 출시한 ‘디아블로Ⅱ’ 각각 330만장, 310만장이 팔렸고, 지난 달 선보인 ‘워크래프트Ⅲ‘도 3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 중이서 무난하게 판매 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판매량의 43%가량을 차지하는 엄청난 양이다.

그 정도로 Snowstorm은 한국 게임시장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워3’가 출시되었음에도 여전히 ‘스타크래프트‘가 20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고요?”

“잠시 정체기에 있었던 PC방 창업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내 PC방이 대략 몇 개나 됩니까?”

“대략 2만 2천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새롭게 문을 여는 PC방에서 컴퓨터 대수만큼 정품 ‘스타크래프트‘를 구입한데다 정품 사용자만이 배틀넷에 접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게이머들도 정품을 구매하는 문화로 차츰 바뀌고 있습니다.”


성급한 낙관론이다.

여전히 수많은 스타 유저들이 CD키 돌려쓰기나 크랙을 사용하고 있다.


“게임중계방송 시청률은 잘 나옵니까?”

“다솜게임. 올게임넷. MBS 게임즈 세 곳 모두 시청률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 시청률이 게임 타이틀 매출로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워3가 직접 조작하는 유저에겐 손가락이 정신없을 정도로 속도감과 몰입감이 있지만,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어요. 스타의 속도감에 푹 빠져있는 한국 게임팬을 유인할 요소가 다소 적을 겁니다.”

“방송사, 협회 등과 긴밀히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못 믿을 놈들이 그 놈들이다.


작가의말
한국만 거의 유일하게 스타가 워크보다 더 인기 있었던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워크 열풍은 어마어마했다고 하죠. 제5종족으로 불린 장재호 선수는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양입니다. 최근에 우승도 하고 그러는 모양입니다. 워크3가 스타만큼 인기가 많았다면 장재호 선수도 임요환, 페이커처럼 더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았을 텐데.... 즐겁고 보람찬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사비에르님 후원감사드립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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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5.22 09:26
    No. 1

    깜도 안되는게 친구덕에 임원급되니깐 이런일생기지. 다른대기업갔으면 이제 대리정도겠다.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86 도뮤
    작성일
    23.05.22 09:59
    No. 2

    안드로장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la*****
    작성일
    23.05.22 11:31
    No. 3

    거, 마家놈은 잘 지켜보다 이상한 짓하면 짤라버리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유시어
    작성일
    23.05.22 16:10
    No. 4

    친구인 황재정 포지션은 딱 그거죠. 뭣도 모른 채 엘리트 교육만 받은 재벌 2, 3세.
    가만히 있어도 본사 임원으로 단방에 올라가는데, 정작 실무는 수십 년 노하우가 쌓인 임원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임원 명함을 젊음과 도전, 차별성 등으로 포장하지만, 주변에 대한 평가는 겉만 번지르르한 빈 껍데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건나라
    작성일
    23.05.22 18:11
    No. 5

    요즘 공기업인 mbc와 kbs가 본문 내용의 음모론처럼 행동하고 있네요.사기업이라면 어느정도 이해하겠지만 공기업은 어느 진영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야 하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5.22 19:50
    No. 6

    워3는 영웅에 기대는 개인 플레이가 강해서 개인주의가 강한 중국이나 미국에서 더 유행한것 같습니다
    스타는 유리방에 우주복은 유치 해서
    안보게 되더군요.

    주인공은 어른이 되는데 친구들은 모두가
    어른이 된건 아니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5.22 20:50
    No. 7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범패
    작성일
    23.05.22 21:19
    No. 8

    괘나 근사하게 ㅡ 꽤나 근사하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3.05.27 19:23
    No. 9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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