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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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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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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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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미래는 정해져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한동안 캘리포니아 해안선을 따라서 서핑 포인트 투어를 다녔다.

틈틈이 JHO Company 계열 영화사들의 촬영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터미네이터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의 촬영장도 있었다.

참고로 <터미네이터> 영화 판권 백퍼센트를 JHO Pictures가 확보한 상태다.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로인해 제이미 캐머론의 전 처가 전권을 휘두를 여지를 사전에 차단했다.

이전 삶과 달리 새로운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의견을 빙자한 압력을 행사할 사공이 싹 사라졌다.

아놀드 슈발츠네거의 입김이 세긴 하지만, 류지호와 프로듀서 선에서 충분히 조율이 가능했다.

사실 좀 더 시간을 두고 개발하려고 했다.

아놀드 슈발츠네거가 지금이 아니면 찍을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류지호를 설득했다.

점점 나이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좋은 모습이 영화에 담기길 바랐다.

그에게 <터미네이터>는 매우 특별한 영화였으니까.


‘돈을 아주 길거리에 뿌렸구나.’


400미터 정도의 거리를 세트처럼 만들어버렸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시그니처, 바로 대형 트럭의 체이스 시퀀스 촬영을 위해 조성된 거리 세트다.

영화 스토리와 주제 부분에서 전 세계 팬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던 후속편이었다.

그럼에도 액션장면만큼은 호평을 받았다.

그 중 대형 카크레인(Mobile construction Crane) 체이스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몇 개 유닛이 준비된 겁니까?”


프로덕션 매니저가 류지호를 따라붙으며 설명했다.


“모두 14개 카메라가 준비됐습니다. 한 번 촬영으로 끝장을 내야 하기 때문에 400m 거리 곳곳에 유닛을 대기 시켜놨지요.”


LA 동쪽 리틀도쿄에서 좀 더 남쪽의 창고지역 거리를 통째로 빌려서 세팅했다.

실감나는 파괴 느낌을 살리기 위해 거리의 전봇대와 부서지는 자동차들은 모두 소품으로 준비했다.

그럼에도 위험천만한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이 추가될 예정이다.


“저 앞 쪽 거리의 주차된 차량과 전봇대를 쓰러뜨리고, 마지막에는 저 멀리 있는 상가 건물의 한쪽을 완전히 파괴하게 됩니다.”


프로덕션 매니저가 류지호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 시퀀스를 두고도 아놀드 슈발츠네거가 류지호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제작비 1.5억 달러를 초과할 것이 우려된 제작진은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이 체이스 장면을 캐나다 벤쿠버에서 촬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놀드 슈발츠네거는 반드시 LA에서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지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LA 분위기를 영화에 담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개입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메타보이 회장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세요.”


끝까지 아놀드 슈발츠네거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감독까지 거들었다.

최후통첩으로 자신의 개런티로 예산을 충당하겠다고 선언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아놀드 슈발츠네거는 오랜만에 복귀하게 된 <터미네이터>에 진심을 다 하고 있었다.

새롭게 영입된 감독 입장에서는 전편인 <심판의 날>에 대한 오마주를, 아놀드 슈발츠네거는 시리즈의 시그니처인 실감나는 아날로그 액션을 위해서, 투자·배급사인 트라이-스텔라 회장 모리스 메타보이는 <터미네이터>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류지호를 설득했다.

결국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LA에서 판을 크게 벌이기로 했다.


‘그러면 뭐해? 결국 제작비는 2,000만 달러나 오버할 판인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완벽주의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번 영화 제작을 위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공학 기술자들을 다수 섭외했다.

공학자들이 T-850과 T-X 그리고 탱크형 로봇인 T1-7을 컴퓨터로 제어되는 실제 크기의 로봇으로 제작했다.

특히 탱크형 로봇 T1-7은 영화 속에서 보이는 모든 장면에서 미니어처나 CG가 아니라 100% 실제 조작 제어 되는 실물 크기의 로봇이 등장할 예정이다.

류지호로서는 부러운 한편으로 돈지랄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속이 쓰렸다.

본인도 <Remo : The Destroyer>에서 실제 탱크를 날려먹은 주제에.

암튼 류지호가 기억하는 이전 삶의 <터미네이터Ⅲ>는 액션 클립 모음집이었다.

몇 개 액션 시퀀스만큼은 기립박수를 쳐줄만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프로덕션 일정을 보면 액션 시퀀스 스케줄에 중점을 둔 것을 알 수 있다.

아놀드와 크리스틴의 화장실 격투 장면은 무려 4주 간 리허설을 진행하고 2주간 촬영으로 완성되었다.

그럴 정도로 액션 시퀀스 연출에 중점을 두다보니, 영화의 설정이나 스토리를 설명해줘야 하는 장면이나 주인공의 감정적인 교류 또 드라마가 허술해 질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스토리보드를 확인한 류지호는 한숨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뒤죽박죽 설정오류 몇 개를 바로잡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건드릴 수 없었다.

이미 상당 분량을 찍어버렸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영화 오프닝을 보강했다.

클라이맥스에서 다소 맥 빠지게 처리되는 T-X 부분도 바꿨다.

편집에서 T-850(아놀드)과 T-X(크리스틴)의 대결과 지하 벙커로 내려간 존 코너 쪽 장면을 교차시키기로 했다.

본래는 T-X가 영화 내내 열심히 위협을 주다가 너무 쉽게 주저앉은 느낌이었다.

류지호는 지하 벙커에서 진실을 깨닫게 되는 존 코너와 두 터미네이터의 대결을 교차시킴으로써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T-850이 최후의 순간 T-X의 입에 칩을 쑤셔 넣고 하는 대사.


[Terminate!]


이 부분을 강조하는 쪽으로 시나리오를 고쳤다.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고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바꿀 수 없다!”


그 같은 맥 빠지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에 호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안타깝지만 류지호가 스토리에 손대기는 너무 늦었다.

하는 수 없이 잔재주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T-850과 T-X가 입력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과 자신의 사명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던 존 코너가 새롭게 각성하는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기로 했다.

영화의 엔딩도 바꿨다.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결말보다 제목 그대로 ‘기계들의 봉기’를 관객들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로 했다.

T-800 시리즈의 외형을 한 로봇군대가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로 했다.


[터미네이터는 우리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나는 그걸 부정했다. 어쩌면 미래는 운명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모른다. 터미네이터가 내게 가르치려 했던 것은 싸움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난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터미네이터Ⅲ>에서는 전편들과 달리 운명을 극복하진 못한다.

결국 핵전쟁이 벌어지면서 인류는 예정된 파멸로 향하게 되니까.

다만 그 같은 운명에 당당히 맞서겠노라며 존 코너가 선언을 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그리고 다음 삼부작은 기계 군단과 인간 저항군 사이의 악몽 같은 전쟁이 펼쳐질 예정이다.

사실 4편이 제작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다음 편이 제작된다면 미래배경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예고다.


‘액션 시퀀스만으로 망하진 않겠지만, 찝찝하네.....’


본인 영화 찍기도 점점 벅차기 시작한 류지호다.

모든 영화에 관여할 수가 없다.

관여해서 더 잘된다는 보장도 없었고.


‘<다이하드> 프랜차이즈도 손을 봐야 하는데....’


일일이 관여할 수 없다면 믿을 만한 프로듀서를 붙여야 하는데....

쓸 만하고 친분이 있는 프로듀서는 대부분 트라이-스텔라에서 영화를 하고 있다.

믿을만한 친구들은 JHO Pictures에서 기획·제작하는 영화만으로도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업무 부분에서 손발처럼 구는 비서실 수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창작의 영역에서는 찰떡같이 뜻을 같이 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물론 류지호 주변에 프로듀서는 널리고 널렸다.

개빈 페이지처럼 신선한 생각을 하는 프로듀서가 눈에 띠지 않아서 그렇지.

밖에서는 안 보이지만 안에 들어와 있으면 할리우드가 얼마나 고인물화 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

누군가의 성과를 버젓이 자신의 것으로 포장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과대포장된 이들도 많고.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사람을 들이기 쉽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다. 남 영화 신경 쓸 때냐....’


며칠 동안 신나게 서핑을 즐기던 감정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2차 서핑 투어는 말리부를 시작으로 북쪽의 하프 문 베이(Half Moon Bay)의 매버릭 서핑 포인트까지 훑어 올라가려고 했다.

도저히 흥이 나지 나지 않아서 계획을 전부 취소했다.

대신 주말에 레오나와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식은 감정을 달랬다.


❉ ❉ ❉


LA에서 여러 업무를 챙기는 어느 날.

웨스트우드 집무실로 콜린 우드먼이 찾아왔다.

류지호의 투자를 받기로 한 것이다.


“필름 카메라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려.”

“나는 웹사이트는 알아도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콜린 우드먼이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Kojak 35mm 필름을 이용한 소형 카메라를 손목에 장착하는 스포츠·액션 촬영에 특화된 카메라였다.

기존의 카메라는 너무 크고 무거웠기에 매우 동적인 스포츠·레저 분야에서 활용이 어려웠다.

따라서 더 작고 가벼우며 심지어 입을 수도 있는 새로운 형태의 카메라 개발에 나설 생각이다.

본래 역사에서는 2년간의 개발을 거쳐 2005년 4월 출시된 첫 번째 제품 HERO가 Kojak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카메라였다.

플라스틱 하우징 내부에 필름 카메라를 넣어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밴드를 팔에 감아 고정시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품으로 원천 기술은 하나도 없었다.

기존의 제품들을 활용한 아이디어 조합 상품에 가까웠다.

그런 CamPro의 역사는 사라질 예정이다.

처음부터 디지털 소형카메라를 활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걱정 마. 헤드쿼터는 콜의 원래 생각대로 실리콘밸리에 두도록 해. 대신 액션캠의 연구는 캐나다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게.”

“혹시 DALLSA와 협력하는 거야?”

“워털루 대학에 관련 연구과제를 용역해 둔 것이 있어. 그들과 협력하면 될 거야. 캐나다에서 지내는 김에 D-Origin 카메라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고. 물론 핵심 기술을 배울 수 없겠지만.”


D-Origin 업그레이드에 참관을 할 수 있다면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수 있을 터.

자회사 엔지니어도 아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이를 프로젝트에 끼워준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다.


“고마워.”

“특허가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닥치는 대로 시도 해봐. 나중에 후발주자들이 조금이라도 네가 내놓을 액션캠을 카피한 기미만 보이면 소송으로 엿을 먹여줄 생각이니까.”

“맡겨 줘.”


일반 대중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으며 기존에는 담을 수 없던 장면들을 담을 수 있는 액션 카메라는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래는 2006년 새로운 개념의 시장을 콜린 우드먼이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한 제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한 때가 그 시기 즈음이었다.

최초의 디지털 액션캠 모델은 낮은 해상도의 동영상을 초당 10프레임으로 최장 10초까지만 담을 수 있었다.

그다음에 출시된 모델은 보다 높아진 화소의 동영상을 30프레임으로 최대 1분까지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소형화를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 아니면 LCD마저도 모두 생략하고 최소의 부피로, 그리고 강성 플라스틱 재질로 충격에 강한 설계로 출시됐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후로 기존의 사각형 디자인과 함께 소닉의 핸디캠 스타일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과 함께 가격대별 다양한 제품군을 내놓았다.

그런 역사가 몇 년 앞당겨질 예정이다.


“카메라바디 플라스틱 하우징은 한국 업체를 소개시켜줄게. 디자인이 나오면 내게 알려 줘.”

“알겠어.”

“오늘 중으로 계좌로 500만 달러 들어갈 거야.”


마치 지갑에서 수표책을 꺼내 금액을 적어서 건네주는 것 같았다.


“....응. 고, 고마워.”

“첫 제품이 출시 될 때까지 내가 투자한 사실을 비밀로 하는 것 잊지 말고.”


류지호가 소형카메라에 투자했다는 걸 경쟁사에서 알게 되면, 곧바로 따라서 시장에 들어올 수도 있다.

소닉과 나쇼날이 들어오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생각보다 D-Origin 카메라의 시장 반응이 좋았다.

특히 뉴욕과 유럽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활발하게 D-Origin 카메라를 활용해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카메라 성능과 관련해 피드백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부분이 일본의 전자업체를 자극하고 있었다.

D-Cinema를 류지호가 소유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하고 있기도 하고.

일본 전자업체들이 류지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콜린 우드먼에게는 당분간 디지털 액션캠 개발에 대해 보안을 신신당부했다.

아무리 천재고 좋은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고 해도 1~2년 만에 카메라를 뚝딱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의 눈이자 심장인 이미지센서는 콜린 우드먼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류지호가 관여하지 않았다면 소닉에서 센서를 구입했을 터.

이전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RED Ⅰ이 시장에 처음으로 4K 카메라를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DALLSA Corp.의 Origin이 최초의 4K 디지털 카메라였다.

2003년 NAB SHOW에 처음 선보였고 이때 혁신상도 여러 개 탔었다.

베이어 패턴 RAW 센서에 16비트 이미지를 담을 수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엄청난 성능이었다.

이번에는 류지호가 개입함으로써 4K 실물 카메라가 훨씬 전에 세상에 출현했다.

본래 역사에서는 REDⅠ 카메라 개발팀에 DALLSA 디지털 카메라팀의 엔지니어가 CTO로 영입되었다.

그 엔지니어가 REDⅠ개발에 많은 기여를 했었다.

그런 역사는 이제 없다.


‘REDⅠ 카메라는 관심을 접어도 되겠어.’


전문가용 D-Origin 시리즈, 고속카메라 Phantom시리즈, 액션캠 HERO 시리즈.

류지호는 디지털 카메라 제품군을 완벽하게 갖췄다.

IT분야에서 스테픈 잡스가 명실상부한 혁신의 아이콘이 된다면, D-Cinema 분야의 혁신 아이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류지호다.

반론을 펼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해지고 있었다.


❉ ❉ ❉


미국은 스포츠 천국이다.

그런데 글로벌 스포츠 축구만큼은 정말 인기가 없다.

미국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분위기를 특별히 느낄 여지가 없었다.

딱 한군데.

한인타운은 달랐다.

미국 내 한인사회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별다른 기대 없이 맞았던 한일월드컵이다.

그런데 이변의 연속이었다.

한국대표팀의 승승장구에 교포들이 속된 말로 '미쳐' 버렸다.

16강에 이어 8강 그리고 4강까지 연승에 연승을 거듭하면서,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한 달 간 LA 교포들을 열병 속으로 몰아넣었다.

예선 첫 경기 때만 해도 아니었다.

한일월드컵 경기는 JHO/DirecTV의 스포츠 채널을 통해 위성 생중계로 미국에 방송됐다.

적어도 캘리포니아에서는 한인교포의 JHO/DirecTV 가입률이 높아서 주로 위성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

또한 LA 한인 TV방송인 미주한국방송(KTE) 역시 한국 경기를 생중계했다.

그를 통해 대부분의 한인들이 집에서도 한국국가대표팀을 응원할 수 있었다.

폴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

결과는 2-0, 한국의 믿을 수 없는 승리.

이 승리로 인해 한인들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이 유럽 강호 폴란드를 제압하자, LA지역 한인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월드컵 16강행을 기원하며 대규모 응원할 장소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한인타운 최대 식당과 가든 스위트 호텔, JJ그랜드호텔, 팔레스 호텔을 섭외해 그 다음 경기부터 합동응원을 펼쳤다.

뿐만 아니다.

100인치 이상 대형 스크린을 갖춘 업소들 모두에서 한국 VS 미국전 경기를 보여주었다.

한국팀 경기가 열린 날은 한인 업소마다 무료 음료 서비스를 했다.

한인 마켓과 자동차 딜러들도 앞 다투어 월드컵 16강 기원 할인행사를 벌였다.

LA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그 같은 행사들이 열렸다.

미 서부시간으로 밤 11시 30분 생중계임에도 많은 교민들이 한인타운으로 몰려들었다.

함께 모여서 한국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를 시청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엔 한인타운 갤러리아, 알렉산드리아 쇼핑몰, 6가에 그럴듯한 대형 합동야외응원장도 마련됐다.

이때만 해도 야외응원에 참석한 한인 규모는 천 명 단위였다.


[LA지역 한인들의 16강 진출 염원이 너무 강해 우려스럽다. 만약 미국에 패할 경우 군중들이 문제(폭동)를 일으킬 수도 있다.]


LA타임즈는 한인들의 합동응원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마치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이라는 뉘앙스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LA 지역 언론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대표팀은 미국과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응원전을 펼친 한인들 사이에서 어떠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한인타운 순찰을 강화한 경찰 당국은 한인 교포들의 질서 있는 열광에 황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문제는 한국팀의 16강전이었다.

한인사회가 뜨겁게 요동쳤다.

LA 교민들도 한국 응원단 붉은 악마들의 물결에 감염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전이 열린 날 대형 TV를 갖춘 업소들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가 됐다.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합동응원을 하던 교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다.

LA 레이커스가 NBA 포스트시즌에 선전을 펼친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자 LA 시민들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인들은 한국국가대표 축구팀의 선전을 한껏 즐겼다.

응원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이 응원복장이었다.

조별 리그 당시만 해도 교포들이 붉은색 티셔츠를 입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새 합동응원장에서는 다른 색깔의 옷은 용납하지 않았다.

색깔뿐만 아니라 디자인 로고도 똑같았다.

Be the Reds!가 박힌 셔츠가 물결쳤다.

그도 아니면 치우천왕 그림으로 복장을 통일했다.

한국팀이 8강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또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 응원단처럼 교민들 패션도 점차 다양해 졌다.

미국에서 태극기는 한인퍼레이드나 특별한 행사에서 보는 것이 전부였다.

미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태극기가 한인타운을 온통 뒤덮었다.

한인들은 자신의 차량에 너도나도 태극기를 꽂았다.

젊은 여성들은 옷 대신 태극기를 몸에 감고 나타났다.

한국의 붉은 악마가 LA에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레오나, 태극문양이 뒤바뀌었어.”


레오나 파커가 태극문양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탱크탑 스타일의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LA시내에 나타났다.

함께 온 류순호 역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있다.


“순호 넌 한국 사람이 태극기도 그릴 줄 모르냐?”

“내가 그려준 거 아니야. 유학생이 그려준 거라고.”


류지호가 레오나를 페이스페인팅을 해주고 있는 교포 여학생에게 데리고 갔다.

태극이 뒤집어져 있는 그림을 다시 그리도록 했다.

류지호와 두 동생은 한국VS스페인 월드컵 8강전을 한인타운의 에쿼터블 빌딩 주차장에서 교민들과 함께 관람했다.

류지호는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미가 없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고 박수를 치진 않았다.

그럼에도 승부차기 끝에 한국이 스페인을 꺾고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이뤄내자 저절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방방 뛰었다.

심지어 레오나를 목마 태우고 거리를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짝!


류지호는 경찰관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기쁨을 표출했다.

월드컵 4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역사를 쓴 날.

LA 한인타운은 온통 붉은 물결에 휩싸였다.

LA폭동 이후로 한인타운이 이 정도로 난리가 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한인들의 단체응원을 취재하러 나온 기자들이 한인들 사이에 껴서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는 류지호를 알아봤다.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다음 날 LA 지역 신문마다 레오나에게 기습 키스를 당하는(?) 류지호의 사진이 1면 톱을 장식했다.

레오나가 미안한 얼굴로 아침식사 자리에서 물었다.


“혹시.... 내가 잘못한 거야?”


보던 신문을 몇 장 넘긴 류지호가 연예면을 들춰 레오나에게 보여줬다.

대부분의 지역신문 1면 톱은 레오나가 장식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미인이었으니까.

그것도 백인이다.

재밌는 것은 연예면을 채우고 있는 사진은 각양각색의 여성들에게 뽀뽀세례를 받는 류지호의 모습이란 점이다.

일면 톱은 레오나가 장식했지만, 관련 기사는 온통 류지호로 뒤덮였다.

한국의 월드컵 4강에 미쳐서 한인들이 광란에 빠진 것은 그렇다고 해도 왜 히스패닉과 흑인들까지 덩달아 광란에 동참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새벽까지 이어진 한인타운 길거리 난장파티에서 류지호는 다양한 인종·연령의 여성들로부터 볼키스 공격을 수없이 당했다.

레오나가 신문을 자세히 살피며 물었다.


“나 몰래 언제 이 많은 여자들과 키스를 했어?”

“그때 너도 옆에 있었거든.”


레오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좋았어?”

“스탠퍼드 full moon on the quad에서는 어땠는데?”

“난 그 미친 이벤트에는 참여 안하거든!”

“하하하.”

“어휴! 정말! 가슴만 큰 히스패닉 여자들은 어디서 나타나서는...”


한인들의 단체응원에 주변 지역 지인들도 많이 참여했다.

이스트 센트럴에 거주하는 히스패닉들도 함께 중계방송을 시청했다.

JHO재단이 지원하는 저소득층 흑인들도 초청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팀이 골을 넣거나 승리하면 모두가 흥분했다.

너나없이 하이파이브를 나누거나, 포옹하거나, 볼키스를 하거나.

광란의 현장이 연출됐다.

연인사이에서는 스킨십 농도가 더욱 진했다.


“여름학기는?”


류지호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진을 빼기 싫어 화제를 전환했다.


“들어야지.”

“방학 동안에 여행도 다니고, 사회봉사 활동도 하면 좋지 않아?”

“한 학기라도 일찍 졸업하고 싶어.”


쿼터학기제에서는 여름방학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3년 만에 졸업이 가능하다.

스탠퍼드에서 조기졸업을 하려면 매학기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하지만.


“무리하지 마. 캠퍼스 라이프는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니까.”

“Jay는 뭐 하는데?”

“다음 달에 영화 한 편이 한국에서 개봉해. 3주 간 무대인사가 잡혀있어.”

“가을에 돌아오는 거야?”

“아마도.”

“그때 함께 뉴욕에 다녀오면 되겠다, 그치?”

“그럴까?”


갑자기 류순호가 식탁을 두드렸다.


탕탕탕.


류지호와 레오나의 눈이 류순호에게 향했다.


“이제 밥 좀 먹자. 깨 볶는 건 나 없을 때 하면 안 될까?”

“깨를 볶아?”

"Sesame... 그러니까 깨를 볶으면 고소한 냄새가 나잖아.....“


동생들이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며 류지호가 샤니스에게 말했다.


“디저트 내주세요.”

“네~”


명랑하게 대답한 샤니스가 주방으로 향했다.


“근데 이번 월드컵 한국전 결과 형은 다 맞췄잖아. 배팅을 했으면 수십 억 땄을 것 같은데?”


류지호는 대답을 삼갔다.

자신의 추정재산만 조 단위다.

축구도박으로 돈까지 따는 것은 반칙이다.

암튼 오랜만에 세 식구가 가사도우미들이 차려준 정성스런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류지호다.


작가의말

500화 자축 연참은 수요일에 있을 예정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말씀 올립니다.

즐겁고 보람찬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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