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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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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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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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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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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무럭무럭 커라!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프라임DVD에서 서플먼트에 한글자막을 넣지 않던 제작사의 관행을 손봐준다면서 불매운동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악평 받는 제품은 시장에서 바로 퇴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동호회가 아니라 마치 이익단체 같이 군다니까요.”


배일환 상무가 치를 떨었다.


큭.


류지호가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모를 수가 없는 동호회다.

이전 삶에서 프라임DVD에서 정보를 얻겠다고 들어갔다가 눈이 돌아갈 만한 타이틀에 대해 알아버린 후 자주 들락거렸던 곳이다.

프라임DVD 때문에 없는 살림에 DVD를 구매하느라 주머니가 가벼워졌던 경험이 있었다.

그 덕분에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엄청 쌓이긴 했지만.

암튼 프라임DVD는 서플먼트에 한글 자막을 요구해 관철시키고 불량 타이틀을 솎아내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일부 몰지각한 유저들에 의해 일부 타이틀이 매장당하는 것 같은 역기능도 있었다.


“온라인 모니터링을 강화하세요. 만약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루머나 선동하는 유저가 있다면 모두 파악해 두고.”

“....예!”

“스펙트럼이 출시한 DVD 타이틀의 리콜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맞죠?”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공장에서 검시해서 내보냈다고 해도 다시 한 번 조이샵에서 무작위 검시를 하도록 하세요.”

“....?”

“가온에서 출시하는 타이틀에 관한 리콜과 관련해 루머가 광범위하게 퍼질 경우 코엑스 몰을 빌려 언론인과 유명 DVD 리뷰어들을 초청해 시연행사를 벌이도록 하세요. 그 자리에서 스펙트럼 DVD의 기술력과 품질을 공개적으로 증명하도록 하세요.”

“의장님.... 새로운 타이틀 출시 때 외에도 정기적으로 시연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류지호가 말을 잘랐다.


“만약 온라인에서 우리 DVD 타이틀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과 근거 없는 루머를 반복적으로 유포하는 자가 있다면 명예훼손이 되었든 업무방해가 되었든 관련 법률을 검토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고요.”

“예, 옛!”


디빅(DIVX)으로 대표되는 동영상의 확산,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들어온 복제 DVD의 범람, 그리고 DVD 제작사들의 무분별한 할인공세 등.

한국의 DVD 시장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초장에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제작사도 좋은 품질의 제품을 출시하는 것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되지만, 고객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도 중요합니다. 불법복제물을 구입하는 것이나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걸 널리 알려야 합니다. 한국이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처럼 해적판의 천국이란 오명을 쓰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품 사용과 불법파일 다운로드 근절 캠페인 부분에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숍은 좋은 고객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장에서의 휴먼터치 부분도 소홀하지 말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시고요.”

“예. 매장 직원 교육에도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류지호가 다소 과할 정도로 잔소리를 늘어놨다.

그만큼 한국영화 부가시장의 미래에 대해 근심이 컸다.

DVD와 불법 다운로드가 판을 치기 시작하면서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나 DVD를 대여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이중판권으로 인해 저질의 DVD 타이틀의 양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무분별한 할인공세를 펼쳐 제 살 깎기를 벌이는 업계.

중국제 해적판 DVD를 국내로 들여와 팔아먹는 양심 없는 업자들.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DIVX파일을 인터넷이나 P2P에 올리는 크래커들과 그를 이용해 돈 벌이는 하는 범죄자들.

이전 삶에서는 관련 법률이 미비해 실효성이 없었다.

이번에는 더 엄격하고 강력한 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불법 콘텐츠 복제와 유통을 하는 업자들에게는 용서란 없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괴롭혀줄 생각이다.

불법 다운로드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개개인을 모두 단속하고 벌할 순 없다.

자신이 법을 어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무지가 가장 큰 문제다.

따라서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인식전환을 위한 캠페인과 계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알고도 불법행위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은 다시는 그런 시도조차 못하도록 가혹하게 굴 작정이다.


“남의 창작물로 돈 벌이 하는 작자들에게 자비란 없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불법을 단속하는 비용이나 저작권침해로 받게 되는 손해나 비슷할 수도 있다.

법률적 소송비용을 제하고 쓰는 시간을 고려하면 도리어 손해일수도 있다.

류지호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과거로 돌아와 악착같이 돈을 번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는 행동이다.

류지호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영화를 찍고 싶기에 돈을 벌고 있다.

불법복제와 불법유통업자를 뿌리 뽑기 위해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된다면 류지호에게도 좋은 일이다.

게다가 류지호 개인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도 좋은 일이기도 하고.

결국 소비자에게도 좋다.


❉ ❉ ❉


류지호와 이사회의장 직속의 전략기획실은 SPECTRUM Home Entertainment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미진함을 느꼈다.

주력사업인 DVD 사업 외에 게임 유통과 Mirinae Games를 통해 비디오게임에도 손을 뻗고 있었고 최근에 스펙트럼 조이숍이라는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문어발식으로 확장을 하고 있긴 했다.


‘뭔가 아쉬웠단 말이지...’


온·오프라인 콘텐츠 유통 전문기업에 어울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와 업체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벤처기업이 인터넷서점 Everyday365다.

2000년 가을, 인터넷서점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오프라인 유통망을 구축한 업체다.

여의도 Everyday365 본사에서 류지호가 사장 윤정식과 만났다.

통신판매라곤 하지만 윤정식 사장은 서점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모는 딴 판이다.

삼겹살집 사장처럼 푸짐한 인상이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는 고객이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물건을 용이하게 주문할 수 있다는 이점은 있지만, 배송업체가 개입함으로써 물건을 받기까지 시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Everyday365는 그런 문제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배송료도 고객에게 부담이죠. 수도권이 2,500원이었던가요?”

“예. 기타지역은 3,500원이고. 3일 안에 받아보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신간의 경우 25% 할인가로 구입할 수가 있다.

경쟁 업체들에 비해 파격적인 할인율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름 Everyday365의 경쟁력 중에 하나이긴 했다.


“배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궁리를 한 끝에 지하철 물류 포스트를 이용한 물류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배송문제를 풀었습니다. 그것이 Everyday365 비즈니스 모델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게 해피숍이죠?”

“맞습니다. 인터넷서점 Everyday365를 통해 주문한 책을 지하철 역내에 있는 해피숍 매장에서 직접 찾아가는 것은 물론 반품과 환불도 가능하도록 만들었죠.”


인터넷서점 Everyday365를 이용하는 고객은 주문한 책을 받는 방법으로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기존 택배를 이용해 집에서 주문한 물건을 받아보는 방법.

둘째는 지하철 역내 해피숍 매장에서 받는 것.

셋째가 전국 1,600개 편의점 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지정해 물건을 받아보는 방법.

마지막 편의점 물류배송은 일본에서 시작한 모델이다.

Everyday365에 이어 오케이24가 이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본격적인 편의점 배송 전쟁이 벌어졌다면서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던 배송방식이다.

주문 후 2∼3일 걸리는 인터넷 서점의 배송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Everyday365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책을 집이나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찾아갈 수 있고, 지하철역의 해피숍에서도 받을 수 있다.

전략기획실에서는 Everyday365의 독특한 물류시스템과 스펙트럼 조이숍의 오프라인매장이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처음에는 전략적 제휴 정도 선에서 제안하려고 했다.

때마침 Everyday365가 매각을 추진하면서 전략이 수정됐다.

제안하던 시점에서 몇 개 업체와 매각협상을 추진 중이던 상황이었다.

인터넷쇼핑몰 온파크와 매각을 위한 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인수금액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로도 대형포탈업체인 NexT를 포함해 2~3개 업체와 매각논의를 진행했다.

좀처럼 협상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SPECTRUM Home Entertainment가 나섰다.

Everyday365측이 제시한 매각대금은 50억 원이었다.

영위하는 사업에 비해 꽤 큰 액수를 요구했다.

닷컴버블이 한창이던 시절 국내 인터넷서점을 무려 40개가 난립했었다.

현재는 많은 기업들이 사라지고 오케이24, 와우북, Everyday365, 램프지니, 리브로, 인터넷한교 등이 시장점유율을 놓고 접전 중이다.

Everyday365 외에도 자금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업체가 한 둘이 아니어서 관련 업계가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는 분위다.

류지호는 인터넷서점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다만 Everyday365가 전개하고 있는 지하철 물류망과 편의점 택배 시스템 아이디어가 흥미로웠다.

결국 제시한 금액에서 5억을 더 얹어주고 현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인수합병 계약을 타결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서점 업계는 오케이24에 이어 Everyday365가 외형적으로나 자본력 부분에서도 안정된 체제를 갖추게 됐다.


“모회사 차원에서 밀어주고 있어서 향후 오케이24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물류포스트를 더욱 확대할 방침입니다.”

“얼마나요?”

“수도권의 물류 포스트를 70개까지 늘릴 예정이고, 연 내 편의점 택배 망도 2,100개까지 늘려보겠습니다.”


인터넷서점으로서는 파격적인 오프라인 유통망을 조직해 주목받았던 Everyday365가 좀 더 공격적인 경영을 선언한 것이다.


“현재 지하철에 몇 개 매장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습니까?”

“지하철 1호선에서 4호선 역사에 25개의 해피숍 매장이, 그리고 국철 역사에 15개의 바로타존 매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추가로 5호선에서 8호선 줄기에 새로운 물류 포스트 30개를 조직해 전체 매장을 70개까지로 늘리겠습니다.”


좋게 보면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한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Everyday365가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략일지도 몰랐다.

문제는 부담해야 할 유지비용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서점 간의 경쟁 1라운드가 안정적인 물류 시스템 구축이었다면, 이제부터 열릴 2라운드는 물류 시스템을 기반으로 고객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가치를 실현하는 인터넷서점만이 살아남는다고 확신합니다.”


말은 그럴 듯했다.

몇 년 후의 대한민국 일상을 기억하고 있는 류지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말포장에 불과했지만.

Everyday365가 오픈할 당시만 해도 홈페이지를 열어두는 수준의 서점을 포함해 200개의 인터넷서점이 우후죽순 난립했었다.

닷컴버블 붕괴 여파로 현재는 경쟁력을 갖춘 인터넷 서점이 10개 안팎으로 압축된 상황이다.


“인터넷서점을 시작한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100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만 했고, 시장에서 밀려난 서점들은 대부분 물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죠.”


닷컴열풍을 타고 손쉽게 인터넷서점을 시작한 업체들은 엄청난 물류 투자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실제 인터넷서점에서 인터넷 비즈니스의 속성은 30% 정도이고, 나머지는 물류, 상품조달, 고객응대와 같은 오프라인에서 처리해야 할일이 대부분이다.

누구보다 류지호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미국의 StreamFlicks는 물론이고 대형 인터넷쇼핑몰 업체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 초기부터 미국 전역에 물류기지를 확보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현재 살아남은 인터넷서점들은 몇 번의 물류 대란을 겪어봤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운영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스펙트럼 조이숍의 전략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좋은 전략, 나쁜 전략을 떠나서.


“인수합병하면 도움이 될 것 같은 경쟁 인터넷서점은 없습니까?”

“가온그룹의 물류 시스템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타 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인터넷서점은 출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출판권을 따로 확보할 필요는 없다.

이 당시는 한국도서보급회가 운영하는 인터넷서점이 대략 15만종의 책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파격적인 할인정책을 전개하다가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결국에는 오케이24와 램프지니와 삼파전이 되려나?”


류지호로서는 인터넷서점의 성공여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다만 SPECTRUM Home Entertainment는 비디오를 포기하는 대신 인터넷서점을 얻었다.

유의미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도 않고 영업이익 역시 형편없었지만.

물류 시스템과 콘텐츠 확보를 위한 투자가 꾸준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암튼 SPECTRUM Home Entertainment의 자회사로 Everyday365가 편입되면서 스펙트럼DVD.com과 기존 Everyday365 사이트를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또한 2003년에는 지하철 망이 갖춰진 부산, 대구에도 조이&해피숍이 들어가게 되고, 지하철이 없는 광역시의 편의점 택배망도 점차 늘려나간다.

몇 년 후 Everyday365와 조이숍이 스펙트럼조이365로 통합 운영된다.


❉ ❉ ❉


김영철 과장은 가온그룹 VVIP가 타는 1호 의전차량 운전기사다.

그런데 소속은 가온그룹 비서실이나 의장비서실이 아니었다.

나래안전시스템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소속이 가온그룹 이사회의장 비서실로 바뀌었다.

파견 근무가 아니라 직속이 되면서 팀장급 대우를 받게 됐다.

그렇다고 딱히 업무가 바뀌지는 않았다.

류지호가 한국에서 이동할 때마다 1호 의전차량을 운전했다.

한남동 주택 차고에서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빠져나왔다.

김영철이 주택 대문 앞에 차를 주차하고 빠져나왔다.

주택 앞에는 이미 똑같은 모델의 에쿠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예비용 차량인 동시에 디코이(decoy)다.

김영철이 차량 트렁크에서 먼지털이개를 꺼내는데, 새롭게 경호팀에 합류한 고우찬이 말을 걸었다.


“형님, 대통령 비서실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면서요?”

“누가 그래?”

“최 부장님이요.”

“스카웃까지는 아니고.... 경호실 운전요원 연수에 참가해 달라고 제안을 받긴 했지.”


김영철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먼지털이개로 에쿠스 리무진 지붕의 먼지를 털어냈다.

10년 가까이 류지호의 의전차량을 운전했으며 JHO Security의 운전경호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기량을 쌓아왔다.

JHO Security Service의 드라이버 교육에는 대통령급 운전경호, 현금수송차량 운전, 분쟁지역 순찰운전, VIP 의전차량 운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영철은 그 프로그램에 최고 성적을 기록한 국내 최고 운전경호원 중에 한 명이다.


“전에 빅보스가 타던 체어맨은 어떻게 했어요?”

“보안장치 다 떼버리고 중고차로 팔았을 걸.”


그때 백팩을 맨 황재정이 터덜터덜 걸어와 김영철에게 꾸벅 인사했다.

황재정은 한눈에 봐도 피곤해보였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고우찬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건넨 황재정이 에쿠스 리무진 안으로 사라졌다.


“경일자동차그룹 회장이 직접 보스에게 선물한 거라면서요?”

“의장님이 경일자동차를 좀 많이 챙겨줬게. 미국의 JHO Pictures가 제작하는 영화마다 경일자동차가 나오잖아.”


<분노의 질주>에서 엑스트라 차량으로 잠깐 등장하고 최근에는 <본 아이덴티티>에서 대놓고 PPL로 등장한다.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경일자동차그룹 회장이 손수 커스텀까지 챙겨가며 류지호에게 보내 준 협찬 차량이다.


“내년 연말쯤에 페이스오프 출시하면 새 모델로 교체해 준다나봐.”

“실성능은 체어맨이 에쿠스보다 좋다고 하던데.... 에쿠스가 물침대라고 하던데? 운전할 만 해요?”

“미국이었다면 타시게 하면 안 되지. 국내에서야 파파라치와 추격전을 벌일 일도 없고 총격을 당하실 일이 거의 없으시니까 침대처럼 편안한 승차감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형님 드라이빙 실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시겠죠 뭐.”

“근데 의장님은 스포츠카는 안 좋아하시나 봐?”

“글쎄요. 보스 첫차가 세이블이었는데, 원래는 에스페로를 사고 싶어 했어요. 미국에서는 픽업만 주구장창 타고. 벨에어 집에도 스포츠카는 없었던 것 같아요.”


부자들은 슈퍼카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슈퍼카만 갖고 있는 부자는 없다.

부자라면 당연히 세컨드카, 서드카를 갖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에 앞서서 세단형 퍼스트카를 고르는데 심사숙고하게 마련이다.

많은 남자들의 로망이 운전기사 딸린 최고급 대형세단의 뒷좌석이다.

그 모습은 일종의 ‘성공의 상징‘과도 같다.

사실 세단 중에서도 최고 이른바 '슈퍼 세단'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스포츠카들보다 훨씬 앞선다.

과시 이전에 본인의 안전이 중요하니까.

류지호는 최고 비싼 슈퍼 세단을 탈 수 있다.

그럼에도 국산차 체어맨을 타왔고, 이번에 에쿠스를 타게 됐다.

대중들의 시선을 신경 써서 국산품 애용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일환이자 인맥관리다.

에쿠스 협찬으로 류지호는 경일자동차그룹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미 범경일가문의 일원인 아이스하키협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본가의 무게감은 차원이 다른 법이다.


끼익!


대문이 열렸다.

청바지 차림에 캐주얼 점퍼를 걸친 류지호가 밖으로 나왔다.

경호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고우찬이 열어준 차 안으로 사라졌다.

고급스럽고 안락해 보이는 시트에는 선객이 있었다.


“래리 회장과 움직이는 거 아니었어?”


황재정이 보고 있던 서류를 덮으며 대답했다.


“내가 업무가 좀 많다. 너는 나보다 더 바쁘고.”

“전주까지 내려가면서 밀린 보고 하게?”

“괜찮지?”

“아침은 먹었냐? 조금 일찍 오지. 오랜만에 우찬이랑 함께 밥 먹으면 좋았잖아.”

“부산 일정까지 쫒아 다니면서 지겹게 같이 밥 먹을 텐데, 한끼 가지고....”

“그것도 그러네.”


가온그룹 이사회의장 의전차량 행렬이 만남의 광장을 통과했다.

본격적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하자, 황재정이 보고를 시작했다.


“음악바다의 저작권침해 소송은 7월 즈음 나올 것 같아. 신변 말로는 서비스 중지 가처분 결정이 나올 거라더라.”

“이제 시작이야.”

“서비스가 중지 되면 망하는 거잖아.”

“다른 방식의 서비스를 들고 나올 거야.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음악바다 하나가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해서 모든 사태가 해결될까?”

“그렇지는 않겠지. 제2, 제3의 음악바다가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실제로 이 당시 P2P는 음악바다 말고도 수십 개나 운영되고 있었다.

P2P사이트 어느 한 곳을 닫는다고 해서 불법 다운로드가 없어질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이트가 폐쇄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돼. 풍선효과만 나타나게 되는 거지.”

“미국의 Lapster 판결이 영향을 미쳤을까?”

“이제 세계적으로 음악바다 같은 케이스의 소송이 계속해서 진행될 거야. 미국에서는 P2P 서비스하는 애들이 무조건 지게 되어있어.”

“미디어 그룹들의 로비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지난 미키마우스법이 통과된 것처럼 미국은 저작권보호와 관련해서 매우 예민하게 굴어.”


황재정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미국은 콘텐츠의 왕국이니까.”

“열 개가 되었든 백 개가 되었든 조금이라도 저작권침해 행위가 있는 사이트가 발견되면 강경하게 대처해야 해. 언론 플레이도 꾸준히 해주고. 업자들 때려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수단을 방법을 가리지 않을 필요가 있어. 이때 소비자들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음악, 영화, 출판업계 모두 나중에 큰 낭패를 볼 거야.”

“알겠어.”

“칼을 뽑았으면 반드시 베어야 해. 깔짝깔짝 칼춤에 머물러선 안 돼.”

“나래안전 특수영업팀에서도 최우선 순위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류지호가 화제를 돌렸다.


“BS 엔터테인먼트가 Loews Cineplex 인수에서 빠지겠단다.”

“그럴 거야.”


류지호가 고개를 돌려 시큰둥하게 대답한 황재정을 쳐다봤다.


“거기 지금 정신없거든.”

“왜?”

“검찰이 3일 전 WaW, BS, 무비서비스, 주브 네 개 배급사와 제작사인 브라이트필름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했거든.”

“혹시 그거야? 촌지사건?”

“응. WaW에서도 주요서류를 일부 가져갔어.”

“촌지와 회사 회계서류가 무슨 관계라고?”

“털어도 나올 게 없으니까.”

“그 핑계로 별건이라도 들춰보고 싶다는 거야?”

“근데 BS와 주브는 사정이 조금 복잡해.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가 압수색한 후에 곧바로 BS와 큐브 두 곳의 회사간부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했거든.”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 게 확 느껴지네.”


빅이슈가 필요할 때마다 터트리는 것이 연예계 사건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스포츠지 영화담당기자들이 조직적으로 촌지 차원을 넘어선 거액을 받아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작되었다.

촌지 사건이 '제2의 윤호식 게이트'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윤호식 게이트‘는 지난 1998년 지문인식기술을 개발하는 패스21세기란 회사를 설립, 회사가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홍콩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을 은폐했던 국정원은 물론 청와대 등 권력 실세들의 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게이트로 발전했다.

이번 촌지 사건 역시 ‘윤호식 게이트‘로 언론사 사장이 구속되는 망신을 당한 것처럼 언론사 간부들이 연루된 것으로 보고 수사확대 방침이 정해졌다.


“시기가 매우 의심스럽지? 공정위가 편법 증여 및 축재 혐의로 조사 중인 BS그룹이 검찰의 수사대상에 포함된 것이나 제1 야당 총재의 아들 연루설이 재기되어서 금감원이 내사중인 구화제약 주가조작 사건에 주브 계열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언론계 비리 차원을 넘어서 게이트로 비화될 수도 있다?”

“여의도 바닥에 가온이 정의국 의원을 서울시장으로 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 야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군들이 합심해서 검찰인맥을 총동원해서 WaW도 함께 건드려보라고 하는 모양이야.”

“혹시 촌지 사건을 이쪽에서 터트렸냐?”

“아냐. 장 이사 요새 불법복제업자들 족치느라 바빠.”

“서울시장 후보 지원할 수도 있지. 그것 때문에 가온을 턴다고? 특수부도 아니고 지능수사부가?”

“그게 아니라. 너도 들으면 웃길 걸? 혹시 빠나나TV라고 아냐?”

“인터넷 성인방송?”

“우리 의장님 시간 널널한가 보네... 성인방송도 다 보고?”

“보기 뭘 봐. 이름만 들어봤어. 암튼!”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에서 거기를 수사하다가 스포츠투데이 모 기자가 2,000만 원을 촌지로 받았다는 걸 밝혀낸 거야. 돈 받고 그 대가로 선정성 기사를 써준 거지. 더 웃긴 건 검찰에서 그 사건에 대해 출입기자단에게 정식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엠바고를 걸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더라. 기자들이 수사대상으로 포함된 사안이었으니까. 근데 두 신문사가 반대해서 일부 내용이 기사화 됐어.”

“세상에서 제일 의리 없는 새끼들이 기자란 말도 있지. 말 안 해도 엠바고 깬 신문사가 어딘지 알겠다.”

“더 웃긴 건 빠나나TV에서 뇌물 받은 기자 놈이 스포츠지들의 영화홍보와 관련된 금품수수가 단순한 촌지가 아니라 스포츠신문사 영화담당기자들간의 담합에 따른 '조직적 부패'라고 검찰심문에서 자백을 한 거야. 지 살겠다고 동료를 판 거지.”

“plea bargainin이냐? 우리나라는 그거 인정도 안 될 텐데.”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이란 범죄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람에게 형량을 감경 또는 감면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전 삶에서는 2011년 도입을 시도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국정농단 사태 때도 논의가 되었다가 흐지부지 됐다.


“뇌물 액수를 검사가 엄청 줄여주겠지. 불구속 수사에다가 여러 편의를 봐주지 않겠냐?”


한국에서는 법적근거는 없지만, 수사과정에서 검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암묵적으로는 '플리바게닝' 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다.


“그거랑 BS는 무슨 상관인데?”

“2월에 개봉한 <로스트메모리 2009>, 그 두 회사가 공동제작·배급했잖아. 그거 홍보할 때 스포츠지 영화담당기자들이 집단적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홍보성 기사를 써줬대.”


WaW 엔터테인먼트가 유별난 것이지 여전히 관행으로 기자들에게 돈봉투가 전달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여간 받아 처먹어도 적당히 챙겨야지.”


한때 기자라는 직업이 정의롭게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기득권 부패카르텔의 한 축에 반드시 언론계 인물들이 한자리를 꿰차는 것이 현실이다.

연예부는 액수라도 적지, 과천종합청사 출입기자들의 경우는 일진기자가 되는 순간 팔자가 핀다는 웃지 못 할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돈다.

검찰청 출입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 두 회사 사무실에서 압수한 자료들을 통해 금품수수 사실을 확인한 검찰이 일부 스포츠지 기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 브라이트필름과 무비서비스로부터도 금품을 수수했다는 자백을 얻어냈나 봐.”

“설마 우리 회사도?”


작가의말

벌써 5월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 가정에 화목하고 행복한 기운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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