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3 09:05
연재수 :
899 회
조회수 :
3,828,217
추천수 :
118,685
글자수 :
9,955,036

작성
23.05.20 09:05
조회
3,230
추천
107
글자
25쪽

류지호 사단.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장운영이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리얼리티 쇼의 일종이지요. 아마추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우린 그걸 배우 오디션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오디션....?”

“예선을 통과한 무명의 배우들을 합숙시키면서 매주 연기와 관련된 미션을 수행해야 하고, 일정 수의 도전자를 순차적으로 탈락시키는 거죠.”

“서바이벌 예능이군요?”

“맞아요.”

“근데 가수가 아니라 배우를 뽑아요?”

“최후에 살아남은 10인에게는 DCN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에 조연급 출연기회가 무조건 주어지고, 1위는 내년 제작되는.... 김윤희 작가가 쓴 의학드라마의 중요 배역에 캐스팅 됩니다.”


신소연과 공다연이 동시에 빨대를 쪽쪽 빨고 있는 김윤희를 쳐다봤다.


“오디션과 미션 수행만 방영되는 것이 아니라, 합숙소 생활모습, 멘토와 연습장면, 개별 인터뷰 등 다양한 소스들을 촬영해 편집해서 보여주게 되죠. 전문가 심사 외에 ARS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시청자 투표도 반영합니다.”


신소연은 대형 기획 프로그램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베테랑도 아닌 자신에게 연출을 제안하는 것이 다소 어안이 벙벙했다.


“저는 짝짓기 프로그램을 제의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불쑥 류지호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할 거야. 나중에.”

“......?”

“사이즈가 조금 커. 연예인들의 가짜 짝짓기가 아니라 실제 총각·처녀 또는 혼기를 살짝 넘긴 사람들을 맺어줄 거거든. 그것도 리얼리티 쇼로.”

“미국에서 하는 것처럼? 혹시 세게 갈 거야?”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 수위는 센 편이다.

매우 선정적이어서 그대로 가져다가 한국에서 방영할 수 없었다.


“우리 정서에 맞게 편집해서 내보내야지. 대신 하루 이틀 촬영하지 않을 거야. 서바이벌 배우 오디션처럼 제주도로 아니면 무주리조트로 혹은 방콕이나 하와이로 출연진을 데리고 가서 몇 주간 다양한 짝짓기 에피소드를 만들 생각이야.”

“해외 촬영도 하겠다고? 제작비가 얼마짜리인데?”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


메인 스폰서는 가온웨딩컴퍼니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주요 신혼여행지에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기에 해외 로케이션에는 문제가 없었다.

덤으로 짝짓기 프로그램을 통해 광고도 하고.


“재근 오라버니랑 수호 오빠도 있잖아. 하필 왜 나야?”


하재근과 한수호는 류지호의 신포고 방송부 선배들이다.

두 사람은 지상파 방송국에서 예능과 드라마에서 각각 PD로 활동하고 있다.

동기인 박상은 역시 MBS 간판 시사프로그램에서 조연출을 하고 있다.

이전 삶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셈이지만.


“형들은 지상파에서 한 작품 더 끝내고 부르려고, 상은이는 시사프로그램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더라. 넌 프로그램 하나 말아먹었지만 어쨌든 입봉 PD잖아.”

“말아먹은 거 아니야. 내부사정이 좀 있었어.”

“시청률 문제는 아니라는 건 알겠더라. 어쨌든 제작은 Aram 프로덕션에서 하겠지만, 다솜방송에서 제작비를 댈 거고, 민아도 도울 거야.”

“민아도?”

“응.”


공다연이 갑자기 손을 들어 올리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잠깐!”

“......?‘

“혹시 최 PD 오라버니가 오디션 보라는 게.... 나도 그 배우 뽑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라는 거였어?”

“넌 오디션 참가자가 아니라 스페셜 심사위원.”

“엑! 내 짬밥에 심사위원이라고?”


류지호 대신 장운영이 대답했다.


“전문가 심사위원은 다년간 연기수업 경험이 있는 연극영화과 교수와 중견탤런트 혹은 안정기씨 같은 배우들을 모실 겁니다. 다연씨는 조금 독한 조언을 해주는 선배 연기자 포지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류지호는 설명에서 미진함을 느꼈다.

따라서 직설적으로 말했다.


“한마디로 심사평을 독설로만 하라는 거야. 참가자들 멘탈 무너지게 상처도 팍팍 주고. 네 특기잖아.”

“소싯적 이야기를 하고 자빠졌어!”


공다연이 성질을 부렸다.

그녀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저 웃기만 했다.

특히 고우찬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에 피가 쏠리기까지 했다.


“야, 고우찬!”

“싸가지 없는 걸로 다연이 니가 인천 캡이었지.”

“이게 죽을라고!”


공다연이 고우찬을 한 대 치려는 듯 주먹을 들어올렸다.

신소연이 한심한 듯 한마디 했다.


"장 PD님 계신데, 애들처럼 잘들 논다. 철 좀 들어 이것들아!“


김윤희가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킥킥.


류지호는 잠시 친구들이 진정되길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침 최 PD가 드라마에 널 캐스팅할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 잘 됐다.”

“드라마와 무슨 상관인데?”

“아마 최 PD가 생각하는 캐릭터가 비호감 캐릭터일 거야. 까칠하고, 인간미 없는 커리어 우먼.”


혹시 공다연이 기분상할까 싶어 김윤희가 부연설명을 붙였다.


“언니, 근데 반전 매력이 있는 여자야. 일본 애니에서 유행하는 츤데레 캐릭터라고나 할까. 우리 식으로 하면 새침데기 정도 될 거야. 인턴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굴다가 중요한 순간에 한 번 씩 어린 인턴들의 편이 되어주거든. 그리고 싱글맘인데, 대쉬하는 다른 유니버스 드라마 남자 캐릭터와... 암튼 범상치 않은 캐릭터야.”


프로젝트 ‘인천 유니버스’는 극소수만 알고 있다.

공다연이 의학드라마 <25시>에서 배역은 크지 않지만, 추후 구급대원을 다룬 드라마 <119>의 주요 캐릭터의 구애를 받아 두 개 드라마에서 출연하게 된다.

두 캐릭터가 시즌이 계속될수록 이어지게 될지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될지는 시즌1의 대본을 쓴 김윤희는 물론 기획자인 류지호조차 알지 못했다.

일단은 시즌2까지 길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의 스토리를 전반에서 적절하게 분산시켜야 했다.

그 안에서 남녀의 감질 나는 밀당이 포인트다.

<25>의 주인공은 응급센터에 들어오는 인턴들이다.

그들을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새침데기라.”


공다연은 아침 드라마의 전형적인 노처녀 캐릭터는 절대 사양이다.

비록 단역이라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장 PD에게 듣는 걸로 하고 난 이만 일어난다.”

“벌써 가?”

“나보다 장 PD가 더 잘 설명해 줄 거야.”


실무자들끼리 대화를 나눠보라며 류지호는 일찌감치 자리를 떠났다.

다솜방송에서 새롭게 버라이어티 채널을 승인받았다.

당장은 지상파 쇼·오락 프로그램을 받아 재전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하반기부터 방송에 나갈 예정이고 내년부터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런칭할 계획이다.

배우 오디션, 가수 오디션, 비보잉 오디션 등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단편영화 감독 및 영화제작가 발굴 프로그램, 연예인 주말 농장, 연예인 스포츠 체험 프로그램, 창업 서바이벌, 청춘 버킷리스트 실행기, 언더커버 보스, 짝짓기 관찰예능, 인디 밴드 버스킹, 토크쇼, 탈출 서바이벌, 무인도 생존 서바이벌 등.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류지호가 기억하는 유행할 포맷까지.

그것들을 제작할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TV드라마라면 모를까 예능은 류지호에게 매우 생소한 분야다.

이전 삶에서 유명했던 PD 몇 명의 이름과 외모는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등장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이전 삶에서 유행했던 방송 포맷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기 요리, 여행, 낚시, 힐링 포맷의 방송을 만들어봐야 통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지상파 시청자를 케이블 채널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류지호로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투자를 진행하려고 했다.

새로운 미디어는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를 만들었을 때 성공한다.

킬러 콘텐츠는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사랑을 받던 기존의 콘텐츠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게 변화하면서 나타난다.

영화는 깊은 맛, 떫은 맛, 시큼한 맛, 슴슴한 맛을 내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TV 쇼·오락 프로그램은 단맛, 매운맛, 짠 맛 등 자극적인 맛을 내줘야 한다.

특히 신선도가 중요하다.

단 하나의 중요한 재미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비용을 지불하게 하고, 방송 시간 동안 TV 앞에 붙잡아 놓게 만들며, 시키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소문낼 수 있는...

바로 그 어떤 것.


'난 여기까지 하는 걸로.'


류지호는 신포고 방송부 선배 두 명만 데려오는 것까지만 하고, 손을 떼기로 했다.

솔직히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까지 일일이 챙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미국과 한국에서 연출해야 할 영화가 세 편이나 대기 중이다.

일본 도쿄다카라 영화사와 합작 영화도 연출해야 한다.

2~3년 간 한 눈 팔 새 없이 영화만 찍어야 할 처지다.


'인재가 부족해. 사람이 없어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류지호에게 인재를 추천하고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들이 인재로 보이겠지만, 류지호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조금 재능이 부족해도 정직한 사람이 낫다.

연예계는 말 만 번지르르하고 남의 성과를 거머리처럼 빨아 제 것 인양 행세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 ❉ ❉


가온그룹은 누가 뭐래도 대기업이다.

법적으로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된 기업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자산총액합계 순위 30위까지 기업집단을 지정해오고 있었는데, 2002년부터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자산총액합계가 5조원이상인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과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자산총액합계가 2조원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구분하여 지정하기 시작했다.

가온그룹은 자산총액합계 5조 원을 훌쩍 넘기 때문에 당연히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모두에 지정되었다.

따라서 대기업으로써의 여러 의무와 규제를 받게 되었다.

물론 법 개정 이전부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었기 때문에 가온그룹 내부적으로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가온그룹은 비상장기업이지만 다음과 같은 규제를 받게 되었다.

대규모 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동일 기업집단 소속회사에 대한 채무보증 금지.

동일 기업집단 소속회사와 상호출자 금지.

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의 국내 계열회사에 대한 의결권행사 제한.

기업집단으로서 소속 회사는 국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자기 회사 순자산의 40%까지만 취득·소유하도록 제한.

참고로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 지정은 2009년에 폐지된다.

또한 상호출자제한기업의 자산기준이 2016년 기존 5조에서 10조 원으로 상향조정된다.

<복수의 꽃>이 의외의 흥행을 이어가자 덩달아 류지호가 소유한 가온그룹이 조명 받았다.

고등학교 때 결혼비디오를 찍어 사업을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대유그룹 알짜 계열사를 인수·합병한 것까지 가온그룹 창업과 관련한 특집기사들이 갑자기 쏟아졌다.

가온그룹이나 의장비서실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복수의 꽃>과 하반기 개봉할 <민중의 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류지호 일가가 15여 년 전부터 여름에는 수재의연금, 겨울에는 구세군에 꾸준히 성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류지호가 지금까지 다울재단과 가온재단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에 쓴 금액이 3,7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500대 기업 가운데 매출 대비 기부금 1위를 놓친 적이 없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류지호 본인이 검정고시 출신이기 때문인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청소년들의 장학사업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류지호는 매년 막대한 돈을 좋은 일에 써달라고 내놓지만 일일이 신경을 쓰진 못한다.

그가 기부한 돈은 가온그룹과 다울재단 차원에서 알아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센텀시티 기공식 쌀 기부, 무주군 버스 기부는 아주 사소한 기부행위일 뿐이다.

류지호의 기부금은 농어촌 지역 노후 초·중등학교를 새로 지어 기부한다든가, 대학에 류지호 이름으로 건물이나 기숙사를 지어 기부하는 등 규모가 큰 기부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었다.

지역 도서관에 수천 권의 책을 구입해 기부하기도 하고, 역사 시리즈물을 발간하는 데 30억 원 넘게 쓰기도 했다.

각 대학의 한국역사 연구 프로젝트에 연 간 수억 원을 투자하고 있었는데, 이는 일본 사쿠라니쿠 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교수들에 대한 맞불 성격의 지원이다.

일제 식민사관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에 맞서는 재야사학자들 중에서 논쟁적인 상고사 연구자를 제외 하고 자주적 시각으로 한국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또한 일부 국문학자를 지원해 가문마다 전해지는 각종 고서들을 발굴·해석하는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영화감독으로써 인문학적 관심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적당히 포장되었지만, <복수의 꽃>에서 동학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류지호의 역사관에 대해 이러저런 구설수들이 나오고 있었다.

일각에서 류지호가 대기업 오너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리기 위해 기부활동을 벌인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만 보기에는 기부활동이 너무 꾸준하고 폭넓다는 반박도 있었다.

경영방식을 놓고도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류지호는 지주사인 가온컴퍼니 홀딩스 지분을 70% 가까이 보유한 오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온그룹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한국의 재벌 같은 이미지가 심어져 있었다.

자수성가의 신화로도 불리지만, 구시대적 황제경영이라는 말도 동시에 듣고 있다.

어쨌든 가온그룹은 2002년 현재 재계 20위 안에 위치했다.

공기업을 제외하면 10~15위 사이에 들어간다.

미디어와 유통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광성그룹은 10위, BS그룹은 25위, 올리온그룹은 32위에 랭크 되어있다.


“자산 총액 17조의 광성그룹은 당장 따라잡을 순 없겠지만, 다른 두 그룹과는 계속해서 격차를 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온그룹 이사회의장 직속의 전략기획실장의 말이었다.

G-Tower 상층부의 가온그룹 본사 대회의실.

실질적인 그룹 총수인 류지호를 비롯해 래리 킴 회장,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모두 모였다.

대회의실은 ‘ㅁ’자 모양의 전형적인 회의실 테이블 배치가 아니었다.

한 쪽 면이 유리창인 넓은 실내에 길쭉한 타원형 테이블이 놓여있고, 맞은편 벽에는 각 계열사 실무자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일렬로 놓여 있어서 사장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즉각적으로 보완해줄 수 있도록 했다.

사장들은 저마다 정장 재킷을 탈의한 채 와이셔츠 차림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류지호는 아예 소매까지 걷어붙이고 있다.

각 사업 부문별로 보고가 이어졌다.

때때로 회장인 래리 킴의 질문과 지침이 첨가됐다.

사실 류지호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사회의장은 이사회만 관여하는 직책이니까.

그럼에도 회의에 참석한 이유는 그룹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관행적으로 회사를 창립한 오너 즉, 대주주로 있으면서 법률상의 직함을 갖지 않은 채 회사 경영을 지배하는 사람, 즉 그룹의 총수를 회장이라고 불렀다.

사실 법률(상법)상으로는 회장이란 건 없다.

대표이사, 이사, 대표감사, 감사만 있다.

실제 가온그룹은 이끌고 있는 것은 래리 킴이었만, 그룹의 미래 비전과 사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류지호였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대형 M&A, 증자, 신사업 진출까지 관여하고 있다.

사실상 류지호가 총수라고 볼 수 있다.

회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솜방송의 이호준 사장이 자신 앞의 마이크를 끌어왔다.


“디지털케이블방송시장 선점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각 지역에서 케이블방송을 내보내는 기존 SO(종합유선방송사) 중 일부 업체들이 합작으로 디지털케이블방송 서비스 업체를 세우기도 하고, 일부 MSO(복수종합유선방송)는 독자적으로 디지털케이블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솜은 후자에 속합니다. 또 디지털케이블방송을 위해 새로 업체가 설립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업체로는 국내최대 MSO인 씨앤앰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한국디지털미디어센터, 브로드밴드 솔루션즈 등이 있습니다.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전국 10개 지역에 12개의 SO를 갖고 있는 씨앤앰 커뮤니케이션으로 3월 중순부터 시험방송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에 VOD(주문형비디오) EPG(전자프로그램안내) 등이 가능한 디지털케이블방송을 실시한다는 계획이이지만, 쉽지 않을 거란 전망입니다.”


지난 3월에 케이블디지털방송을 위한 사업설명회를 개최한 바가 있다.

케이블방송의 디지털화는 140여개의 채널을 서비스하는 디지털위성방송 새틀라이프가 3월 본방송에 들어감에 따라 케이블방송 SO들이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케이블방송이 디지털로 전환될 경우 디지털위성방송에 못지않은 많은 채널과 고화질 고음질의 방송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특히 쌍방향서비스는 디지털위성방송보다 더 빠르고 안정적입니다.”


복수종합유선방송사(MSO)인 다솜방송은 독자적인 디지털방송을 준비 중에 있다.


“현재 24개의 SO들이 출자해 만든 한국디지털케이블미디어센터는 올해 안에 디지털미디어센터를 설립하고 시험방송에 들어간 후 내년 상반기에 본방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디지털미디어센터는 채널사용사업자(PP)로부터 방송프로그램을 받아 디지털콘텐츠로 가공해 SO에 제공하는 곳으로, 브로드밴드 솔루션즈(BSI) 같은 업체가 디지털케이블방송시스템을 갖추고 SO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


“디지털케이블방송을 실시하기 위해선 채널사용사업자(PP)들로부터 방송콘텐츠를 받아 이를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디지털헤드엔드, 많은 양의 정보를 소통시킬 수 있는 광대역 케이블망, 이를 받아볼 수 있는 디지털셋톱박스 등이 필요합니다.”

“비용은 얼마나 소요됩니까?”

“SO가 이런 시설을 갖추기 위해선 한 지역당 100억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110여개의 SO들이 있으므로 케이블방송의 디지털화에 소요되는 비용은 1조원 이상이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시스템통합업체, 셋톱박스생산업체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한국디지털케이블미디어센터의 디지털미디어센터 시스템 구축 RFP(사업제안요구서) 설명회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을 비롯해 20여개 업체들이 참여해 이 사업에 동참할 의사를 발표했다.


“경쟁업체들의 SO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겠군요?”

“디지털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SO들이 잇따라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SO간의 M&A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솜방송은 인수합병에 뛰어들 여력이 없지요?”

“여력이 없어도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디지털화에 따른 수익구조 개선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SO를 확보하더라도 기존 가입자 수에 연연하지 말아요. 다솜방송의 주 타깃 시청층을 고려해서 인수합병에 나서도록 하세요.”

“예. 회장님!”


래리 킴의 시선이 영화사업 부문 쪽으로 향했다.


“영화계 D-Cinema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습니까?”


마침 류지호도 궁금하던 차다.

보고 있던 보고서에서 눈을 떼 박건호 대표를 쳐다봤다.


“D-Cinema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초기 투자비용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배급협회 입장은 새로운 영사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관객이 감소할 극장 측에서 영사기 설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극장협회에서는 디지털 전환의 가장 큰 수혜자인 배급사들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갈등이다.

미국의 경우는 배급사와 극장이 분리되어 있다.

서로 비용 부담을 미루고 있다.

영화제작 단계에서 디지털 영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지만, 배급·상영 분야에서는 진도가 제대로 나가고 있지 않았다.

사장들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향했다.

래리 킴 회장이 물었다.


“미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영사기 교체비용에 관한 논쟁에 대해 미국의 DCI는 영화제작사가 기금을 조성해 기본형 디지털 영사 시스템을 설치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극장 측이 고급형 디지털 영사 시스템을 원하는 경우 극장 측이 추가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 같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미국은 참고만 하세요. 우리나라는 메이저가 투자·배급사와 극장체인 또 제작사까지 겸하고 있어서 D-Cinema로 넘어가는데 비교적 수월할 겁니다.”


몇 개 메이저 기업이 결단(합의)만 내리면 영화계 디지털화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어 멀티플렉스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나용근 사장이 보고했다.


“GOM Cinemas는 세계 최초로 자사 멀티플렉스 전 상영관의 디지털화를 목표로 내년 안에 GOM강남점을 비록해 주요 플래그십 극장의 상영관 절반을 디지털 영사시스템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시네마의 선도국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작년과 올해 상반기까지 고예산 한국영화들 성적이 좋지 못한데, 전반적인 극장 상황은 어때요?”


뒤편에 앉아 있던 실무자가 얼른 관련 자료를 나용근 사장에게 전달했다.

그룹의 오너가 영화감독이다.

영화 부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특히나 영화사업 부문 보고에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작년 총 관객은 총 8,300만 명이었습니다. 극장 수입은 대략 5,000억 원입니다. 재작년에 비해 작년에는 29.4%, 올해 상반기까지 48.7% 증가했습니다. 작년 개봉한 한국 영화는 53편에 총관객은 4,072만 명이었고, 외화는 213편에 총관객 4,159만 명이었습니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9.5%에 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영화의 선전은 WaW 엔터테인먼트의 <퇴마기록Ⅱ>(410만), <친구>(820만), <엽기적인 그녀>(490만) 등과 무비서비스의 <달마야 놀자>(346만), <조폭마누라>(455만), <두사부일체>(330만) 등이 견인했다고 볼 수 있다.


“올 상반기는 몇 편의 대작영화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1월 개봉한 <풍운아Ⅱ>, <집으로>, <복수의 꽃>의 선전에 힘입어 예년 수준은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한 것은 영화 <친구>의 흥행 성공에 크게 힘입은 면이 컸다.

<친구>의 전국 흥행기록은 820만 명.

극장에서 배급사 WaW 엔터테인먼트로 보낸 부금이 212억 원이었다.

이 영화의 일본 판권은 210만 달러에 팔렸고, 그 외 해외 수출실적으로 320만 달러 수익을 거뒀다.

여기에 TV, 비디오 등 판권을 합쳐 대략 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박건호 대표가 한국영화의 선전에 대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참고로 2000년 한국영화는 73개 국제영화제에 150여 회 출품했고, 작년 138개 국제영화제에 378회 출품했습니다. 올해는 소폭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영화 콘텐츠의 저력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류지호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전략2팀장 황재정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래리 킴의 허락이 떨어지고 마이크가 전달됐다.


“아직 한국 콘텐츠 산업의 갈 길은 멀고도 멉니다.”


가온그룹 이사회의장 산하 전략기획실은 오성그룹의 미래전략실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발휘하진 않는다.

따라서 황재정의 발언은 도가 지나친 도발적인 언사라고 할 수 있다.


“작년 WaW가 수입·배급한 <해리포터>의 경우, 600억 이상 시장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출판 수입이 최대 260억 원, 극장 티켓 판매 및 부가시장 판권 수입 300억 원, 기타 문구·완구·게임 등 캐릭터 판매에 최소 90억 원 등입니다. 작년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품 <친구>와 비교해 봤을 때 국내 시장만 놓고 봐도 비교가 되지 않는데 글로벌 시장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친구>가 부산지역에 미친 경제적 파생효과는 178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 극장의 상영수입만 56억 원을 올렸고, 생산효과 122억 원을 발생시켰으며 고용효과는 127.7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가온경제연구소에서 분석한 데이터임을 밝힙니다.”


류지호가 뒤를 돌아 황재정을 째려봤다.

마지막에 추가한 가온경제연구소라는 언급 때문이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51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9 116 24쪽
510 MUJU Rock Festival! +2 23.05.25 3,142 127 21쪽
509 류지호 사단. (5) +4 23.05.24 3,178 118 23쪽
508 류지호 사단. (4) +12 23.05.23 3,153 146 26쪽
507 류지호 사단. (3) +9 23.05.22 3,198 119 25쪽
» 류지호 사단. (2) +11 23.05.20 3,231 107 25쪽
505 류지호 사단. (1) +5 23.05.19 3,255 117 24쪽
504 영화를 하는 한 도전은 계속된다! +5 23.05.18 3,141 118 24쪽
503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2) +10 23.05.17 3,154 131 26쪽
502 권력은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1) +5 23.05.17 3,136 111 26쪽
501 실사화에 적합한 감독이라는 걸 증명할게. +12 23.05.16 3,115 121 27쪽
500 미래는 정해져 있다? +23 23.05.15 3,190 134 24쪽
499 Action Camera. +5 23.05.13 3,133 125 22쪽
498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4) +9 23.05.12 3,201 125 25쪽
497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3) +4 23.05.11 3,191 111 22쪽
496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2) +6 23.05.10 3,191 119 25쪽
495 너한테 나는 친구 맞지? (1) +4 23.05.09 3,237 109 23쪽
494 소중한 걸 놓치지 않으려면.... +7 23.05.08 3,329 120 24쪽
493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3) +3 23.05.06 3,420 111 23쪽
492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2) +4 23.05.05 3,263 112 21쪽
491 그 정도 돈은 써도 돼. (1) +10 23.05.04 3,247 111 21쪽
490 저희 리조트에는 샛길이 없습니다! +9 23.05.03 3,250 115 25쪽
489 무럭무럭 커라! (2) +4 23.05.02 3,352 109 26쪽
488 무럭무럭 커라! (1) +4 23.05.01 3,420 114 27쪽
487 자원이 남을 때는 멀티를 건설하라.... +3 23.04.29 3,467 114 25쪽
486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3) +4 23.04.28 3,330 110 24쪽
485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2) +3 23.04.27 3,431 116 26쪽
484 만조 때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1) +9 23.04.26 3,420 108 25쪽
483 어쩌면, 혹시, 설마 했던 일. (2) +3 23.04.25 3,428 128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