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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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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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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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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민중의 적 : EMBARGO.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부랴부랴 YNTV 측에서 다른 날짜로 출연을 조정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의장비서실 커뮤니케이션팀이 단박에 거절했다.

보도본부장이 헐레벌떡 그룹 이사회의장실로 달려왔다.

커뮤니케이션 팀장 고현준은 차 한 잔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결국 사장까지 찾아왔다.

출연 부탁이 아니라, 사과부터 전했다.


“유감입니다만, 의장님께서는 올 연말까지 언론노출이나 대회행사에 참석하지 않으실 예정입니다.”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본인에게 사과를 전하는 것이 도리지만, 류지호는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삼가고 있다.

사장이 직접 의장비서실까지 찾아와 사과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온은 대주주임에도 YNTV에서 어떠한 의결권 행사도 하지 않았다.

물론 경영간섭도 일체 없었다.

총수와 다름 없는 류지호의 비서실에서 마음을 바꿔 먹는 순간 YNTV 경영진과 조합원 중심의 운영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사장님....”


고현준 팀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고 팀장.”

“갑질은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게나 하세요.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약 팔지 마시고.”


고현준은 한국 3대 일간지 출신이다.

언론사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온갖 수작질을 다 꿰고 있다.


“의장님께서는 YNTV 지분 써먹는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냥 가온은 가온대로 YNTV은 YNTV대로 자기 할 일만 하면서 지내는 걸로 만족하십니다. 의장님 개인이나 가온그룹 관련 뉴스가 3일에 한 번씩 나가고 있죠?”

“......”

“팩트만 전달하고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나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측, 왜곡, 날조.... 다 모니터링 되고 있습니다.”

“......”

“의장님께서 지분가지고 경영에 간섭하지 말라고 해서 저희가 참고 있습니다만. 괴롭혀 드려볼까요?”

“......”

“못 할 것 같습니까?”

“......”

“방송위 중재 같은 거 안 거칩니다. 바로 민사소송 들어갈 겁니다. 한 5년 지겹게 괴롭혀 드려요? 보도국 전체가 취재도 못할 정도로 법원 들락날락하게 만들어 드려요? 다솜미디어 SO에 말해서 편성에서 빼버릴 까요?”


YNTV사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화가 치미는 걸 애써 참아내는 것이다.

류지호 의장도 아니고, 비서실 팀장 주제에 감히....


“의장님께서는 YNTV이 뭘 어떻게 하든 신경 안 쓰십니다. 가온그룹을 칭찬하든 비판하든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선 좀 지킵시다. 적당히 좀 하시란 말입니다.”


YNTV사장은 협박성 경고를 들어도 가만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커뮤니케이션팀이 화를 내는 것은 송일성 부장의 기사나 갑질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서 류지호 관련 뉴스에 스토리텔링이 가미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류지호가 미디어 부문 사업에서 야심만만한 청사진을 밝혔다고 하면 될 것을 말장난을 섞고 기자 개인의 생각을 기사에 여과 없이 서술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자칫 프레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절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총수=재벌, 재벌=탐욕, 탐욕=불법, 재벌=죽일 놈.

적어도 한국에서 대중들의 인식이 그렇다.

이런 선입관은 가온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와 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 청년재벌 류지호는 그가 소유한 재벌그룹을 통해 부정을 저질렀기에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고, 결국 다른 재벌들이 그러했듯이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한국의 많은 언론이 정론지를 표방한다.

그런데 기사에 스토리텔링을 과도하게 집어넣는다.

인터넷 언론은 그걸 받아서 대뇌망상을 넘어 없는 이야기까지 써재끼고.

특별세무조사가 시작되고 의도가 의심스러운 기사가 넘쳐났다.

무혐의 혹은 일반적인 가벼운 징계로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언론은 절대 정정보도나 사과를 하지 않는다.

선진국 언론들이 잘못을 바로잡는 정정기사를 1면 헤드라인에 개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언론은 안면몰수가 기본이다.

게다가 JHO Company Group은 중요한 M&A를 추진 중이다.

M&A를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피인수기업에 잘못 된 신호를 줄 수 있기에 조심하고 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희 비서실 입장에서는 YNTV가 의장님과 가온에 대한 관심을 접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빨아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일반적인 수준의 이슈만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보도본부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YNTV에 가장 먼저 알리고 의장님 단독도 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로 의장님께 불편을 드리지 않겠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이러저러니 해도, 최근 류지호는 예민한 상태다.

비서들은 그의 심기를 살필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보좌한 비서들은 류지호가 영화 스토리나 캐릭터에 과몰입해 온갖 쓸데없는 잡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루틴에 대해 알고 있다.

특히나 이번 영화의 경우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준비하질 못했다.

<REMO> 최종편에 이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다 보니, 동시에 몇 가지를 결정하거나 선택해야 했다.

강철중을 둘러싼 한국 언론계의 현실에 과몰입하며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사서 하는 고민이다.

그럼에도 꼭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머리와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암튼 YNTV 생방송 펑크가 방송가에 파다하게 퍼졌다.

류지호를 성토하는 언론계 목소리가 거셌다.

가온그룹 홍보실은 무려 보름 동안 어떤 보도자료도 내지 않는 것으로 대응했다.

의장비서실 커뮤니케이션팀은 모든 언론사의 취재요청을 받지 않기 위해 단체로 세미나를 떠났다.


[가온그룹은 레거시 미디어를 통한 홍보마케팅을 축소하고, 인터넷을 포함한 뉴미디어의 비중을 대폭 늘려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기존 신문에 실리던 개봉관 광고도 전면적으로 종료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름이 지나고, 가온그룹에서 나온 첫 보도자료였다.

신문 광고를 축소하겠단 소리다.

가온그룹 계열사를 통틀어 연간 1,700억 안팎의 매체 광고비를 지출하고 있다.

참고로 오성그룹이 국내 신문·방송 광고비에 지출하는 비용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절대 무시하지 못할 규모다.

얼마든지 언론사를 상대로 광고비 압박에 나설 수 있다.


“장사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당장 광고를 거둬들이면 어떤 보도가 나올지 모르는데 가온이 무식하게 그런 일을 하겠어?”

“공식적으로 광고 협박하고 뒤로는 다온로펌 통해 직접적인 조치 액션 취하고. YNTV 가지고 재미 좀 봤잖아? 바로 가온의 노련함이지.”


류지호의 YNTV 생방송 펑크와 이후의 일련의 흐름은 의도한 것과 다르게 한 편의 잘 짜인 쇼처럼 보였다.

기업의 약점을 쥐고 있는 언론이 갑이냐, 광고를 주는 기업이 갑이냐.

명확하게 선을 그를 순 없다.

차라리 한통속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오성그룹은 사돈 집안에 몰아 준 족벌언론을 통해 여론까지 조작하고, 백원일보는 기득권 카르텔의 권력과 이권을 설계하고 지원하고 있으며, 진보언론은 갈라치기로 형성된 정치고관여층의 지지를 통해 기존 기득권의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그런 저널리즘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존재하거나 복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전 삶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족벌언론 소유 종합편성채널 보도담당 사장 겸 뉴스 앵커가 했던 말이다.

세상의 온갖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류지호는 언젠가부터 뉴스는 스포츠면과 사회면의 사건사고만 확인한다.

기자 개인의 의견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은 결코 옳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왜냐하면 저널리즘에는 의견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뉴스라면 몰라도 시사뉴스에는 의견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고 단정 지어서는 위험하다고 여기게 됐다.

게다가 류지호는 언론보도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중전달 활동을 모두 저널리즘의 범위로 보면 영화도 저널리즘이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진실로 굳어져버려 현실에 혼돈을 주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단 의미다.

따라서 실화를 바탕으로 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민중의 적> 후속편은 1990년대까지 한국의 고아원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던 임상실험 실화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근 밝혀진 바이오벤처의 비윤리적인 임상실험에서도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모티브가 된 실화사건은 류지호와도 인연이 있는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제약사업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에는 계열분리 전이라서 그룹 계열사의 일개 사업부였지만.

잊힌 사건을 끄집어내는 것에 대해 해당 기업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따라서 류지호가 아니면 한국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다.

온 사방에서 압력이 가해질 테니까.

<EMBARGO>는 과거의 자행되었던 범죄를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다.

언론과 재벌이 어떻게 유착해 범죄를 은폐하는지.

그를 통해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다.

BS그룹을 비롯해 제약회사들이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할 리는 없겠지만.

대비는 해둘 필요가 있다.

한국 제약회사 가운데 고아원 임상시험에서 자유로운 곳이 몇 없기 때문이다.


❉ ❉ ❉


색을 통한 공간연출은 영화의 줄거리 전개를 암시하고, 관객의 정서와 감정을 이끌어 내는 서사 전달의 기능을 한다.

즉 색채는 그 영화가 갖는 의미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파란색.

영화 미학적 관점에서 재밌는 색이다.

서구권과 한국 관객 사이에서 느낌이 조금 다르다.

서양에서는 우울, 고독으로 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나고 자란 관객에게 청량함을 느끼게 하는 색이다.

파랑색이 주는 색채 심리는 도시적이며 차갑고 신뢰감을 주는 색상이다.

또 절망, 이별, 고독의 색이 되기도 한다.

치유, 희망, 자립, 진실의 색이 되기도 하고.

영화에 따라서 또는 감독에 따라 같은 색도 다르게 활용된다.

따라서 어떤 쇼트에서 유독 파란색이 도드라진다면,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 심리, 극적 전개 등을 따져봐야 한다.

도시 위로 펼쳐진 하얀 구름이 드리워진 파란 하늘은 한국 관객에게 치유, 희망, 청량함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사시사철 안개가 끼는 런던에 살고 있는 영국인은 고독, 절망을 먼저 떠올릴 수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자립, 진실의 색이 되기도 한다.

미학이나 색채심리학에서는 색의 상징과 의미를 규정하지만, 때로 예술가들은 그것을 보기 좋게 비틀기도 한다.

그래서 재밌다.


“윤 디자이너는 강철중에게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을 부여하고 싶다는 거지?”

“예. 감독님.”


프로덕션 디자이너 윤민구가 프랑스 사진전문잡지에서 발췌한 사진 몇 장을 제시했다.

촬영감독 윤기수가 사진을 집어서 살펴봤다.


“...음. 노란색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광기를 암시할 수도 있는데....”

“윤선영 캐릭터의 대표 색은 붉은색으로 가는 걸 생각해봤습니다.”


류지호가 슬쩍 웃으며 물었다.


“할리우드 스타일이네?”

“조금 뻔하죠. 붉은색이 투쟁의 상징이니까.”


붉은색은 주로 욕망, 분노, 위험으로 대표되는 상징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악녀 혹은 자존감 세고 투쟁적인 여성에게 붉은색 포인트를 준다.

Timely Comics 히어로들의 코스튭에 붉은색이 많은 것은 색이 내포한 투쟁의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포인트만 주자고. 노골적으로 붉은색 의상을 입히는 건 반대야.”

“스카프, 양말, 가방 등에 포인트를 주는 정도는 어떻습니까?”

“신문사 세트에서 첫 등장할 때 살짝 포인트를 주는 것이 좋겠네.”


윤민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어리에 메모했다.

송라원이 연기할 선영이라는 캐릭터는 초고에서 NGO 시민운동가였다.

류지호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너무 분산되어 있는 것 같아, 강철중의 사회부 후배 여기자와 캐릭터를 합쳐버렸다.

정치부 기자가 꿈인 선영은 강철중이 캡(팀장)으로 있는 사회1팀 막내기자로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보육원 불법임상 시험을 파헤친다.


“레드의 보색이 그린이니까, 김현수의 대표 컬러는 그린이겠군?”


윤민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김현수는 재벌가 막내 자식으로 바이오벤처의 젊은 CEO다.

자기 자식은 끔찍하게 여기고, 키우던 애완견의 죽음에는 눈물을 찔끔할 인물지만, 고아원생의 죽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비정한 인물이다.

1편에서는 패륜을 저지른 외국계 금융회사 펀드 매니저.

후속편에서는 소시오패스 성향의 재벌가 금수저 출신 벤처 사업가.

후속편의 빌런은 부모를 살해한다는 1편의 패륜아보다 파괴력이 약할지도 모른다.

고아들을 마루타처럼 실험했다는 것 또한 패륜이기에 관객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남을 이용하고 거짓을 일삼아 성공을 성취한 사람들이 존경받고, 양심껏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경쟁사회.

시나리오는 소시오패스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를 경고하고 있다.


“당연히 채도를 떨어뜨려 탁하게 해야겠지?”


윤기수가 묻자 류지호가 대답했다,


“원색은 고아원 공간 디자인과 원생들에서 사용해볼 생각이야. 밤 장면에 그린 필터 낄 거지?“

“테스트를 해보며 톤을 잡아봐야 필터 넘버를 정할 수 있을 것 같아.”


초록은 심리적으로 생명력과 성장, 자연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초록색을 보며 신선함, 편안함, 건강, 평화, 안전, 여유 등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초록의 순도가 낮아지고 탁해질 경우나 검붉은 색과 어울릴 경우, 창백함과 질병, 공포, 죄책감 등을 느끼게 된다.

헐크나 슈렉 같은 괴물의 몸이 녹색인 것이 그런 연유다.

참고로 초록에 공포라는 상징이 들어간 데에는 유럽 역사와도 관련 있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대부분의 국기에 녹색이 들어가 있다.

과거 이슬람으로부터 수차례 침략을 당한 유럽인들은 녹색에 대한 심리적 공포를 느낀다나.

영화에서 침략자, 외계인, 통제되지 않는 폭력에 녹색이 자주 쓰인다.

녹색의 보색은 빨강이다.

보색관계에 있다는 것은 색상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시각적으로 강한 대비를 이루고,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서로 대립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 보색이다.

고아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드라마를 붉은색과 녹색의 배경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녹색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편안함, 건강, 평화, 안전, 여유를 제공한다.

여담으로 자살다리라 불리던 템스 강 다리의 색을 초록색으로 바꾸자 자살률이 34%나 떨어졌다는 사례도 있다.


“강철중은 1편과 마찬가지로 갈색 계통의 수수한 옷으로 연결하고.”

“김현수의 백신 발표회장에 갈 때는 캐주얼 정장을 입혀야하지 않을까요?”

“강철중은 단벌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어. 열심히 하는 사회부 기자는 형사들처럼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고 알고 있어.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경우는 없다고 하지. 출입처와 사건 현장을 쫓아다녀야 하니까.”

“전편의 형사와는 다른 느낌을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이지. 강철중 특유의 후줄근한 점퍼 안에 와이셔츠를 입히고 넥타이를 매도 될 것 같고. 어떤 장면에서는 점퍼를 벗었더니 와이셔츠 등쪽이 쭈글쭈글해도 재밌겠네.”


출입처에서 상근하는 기자들은 잘 갖춰 입었지만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닌다던가, 경찰출입기자의 경우 장례식장에도 자주 취재를 가기에 검은정장을 항상 예비로 챙겨두기도 한다고 한다.

류지호가 아이디어를 던지면, 윤민구가 알아서 몇 장면을 찾아 적용할 것이다.

감독이 미처 못 본 것을 미술과 촬영, 배우가 볼 수도 있다.

귀가 너무 얇아도 안 되지만, 굳이 성급하게 자기 안에 갇힐 필요는 없다.

주황과 검정을 혼합시킨 것이 갈색이다.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주황은 검정색과 융합되면서 ‘더욱 완고하고 융통성 없는 성질’로 귀결된다.

통상적으로 갈색은 감각이 둔하거나 진부한 느낌을 풍긴다.

성적인 억압이나 강박관념을 불러일으킨다.

갈색 옷은 밝고 화려한 것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중세시대부터 고행을 자처하고 있는 수도사 혹은 죄인 등이 착용하는 복장의 색이다.

사람의 배설물의 색상이기도 하다.

때문에 더러움과 경멸의 존재로 상징될 때도 있다.

하지만 배설물은 천연 비료다.

만물의 성장을 촉진한다.

신경증이나 강박증 환자에게 갈색 그림은 심적 치유를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어린 아이들이 갈색 흙을 주무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고귀함을 상징하는 보라색, 피와 혁명 등을 암시할 수 있는 붉은색 계열은 진짜 잘 사용합시다. 사실 이번 영화는 화려함, 신비로움을 연상시켜서는 안 되니까.”


보라색은 고독과 우울, 상처, 갈등, 애증의 느낌도 준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는 소품 하나에도 보라색의 심리학을 잘 활용해서 극의 밀도와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엔딩은 무조건 그린이 살짝 돌았으면 좋겠어.”


윤기수가 물었다.


“신문사 앞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말하는 것이겠지?”

“응. 에필로그는... 사실 고민이야.”

“눈 뿌리자.”

“눈?”

“사회를 고발하지만, 영화가 느와르는 아니잖아?”

“....흠.”


촬영시작은 여름이지만, 주된 계절은 가을이다.

에필로그에서 영화적 시간을 점프시켜 겨울이 될 수도 봄이 될 수도 있다.

윤기수가 눈 내리는 장면을 담자고 하는 것은 쉬운 상징이다.

흰색의 심리적 상징은 구원, 용서, 깨끗함, 순수다.

비극적인 임상실험에 희생된 아이들은 순수함의 상징이며 구원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눈은 지상의 더러움을 덮는다.

녹고 나서야 감춰져 있던 것이 세상에 드러난다.


“좀 더 고민해 볼게. 지금의 에필로그가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딱 떨어지는 맛이 있어. 윤 감독 말처럼 하면 관객이 한 더 꼬아서 생각해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어차피 크랭크업 날 촬영하게 될 것 같으니까. 촬영 시작 전까지 고민해 볼게.”


실제 눈 오는 날 촬영할 것인가, 강설기를 동원해 인공눈을 뿌릴 것인가.

기술적인 문제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민중의 적> 같은 장르영화는 관객의 대리만족이 중요하다.

괜히 여운을 남긴다고 멋 부리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메인 컬러는 픽스가 된 겁니까?”

“응. 오늘 확정한 메인 색채로 공간을 디자인 해 봐. 당장 풍부하게 해올 필요는 없어. 그걸 토대로 다시 모여서 확정 작업을 해보자고.”


이렇게 결정된 컬러가 모든 장면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무시되기도 한다.

미술을 억제하고 조명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구도와 앵글로 표현할 수도 있다.

연기를 살리기 위해 모든 기능적 표현 요소들을 절제할 수도 있다.

<민중의 적>은 작가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세심한 색채 디자인이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색상이라도 채도를 빼거나 더하게 된다.

조형적 디자인, 컬러, 빛을 통해 영화 예술가들은 많은 걸 표현할 수가 있다.

예술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영화는 수많은 심리적, 미학적 요소들이 어울려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관객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인물과 서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메시지도 전달하고.


[사람들은 제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한 번을 웃기기 위해 최소한 100번을 연습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100번 연습한 적 있습니까?]


채플린이 한 유명한 말이다.

세상에 게으른 천재영화감독은 없다.

천재영화감독인 척 하는 게으른 삼류가 있을 뿐.


❉ ❉ ❉


<민중의 적 : EMBARGO>의 프로듀서는 김재욱이다.

류지호의 단편영화에서 짐꾼 노릇이나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한국 최고 영화스튜디오의 프로듀서가 되어 있다.

그가 지휘하는 제작부가 어렵게 두 곳의 신문사를 섭외했다.

실제 촬영협조와 별개로 주요 스태프의 신문사 탐방을 주선했다.

신문사 편집국이라고 해서 별 건 없다.

일반 기업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부서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신문 지면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는 것과 곳곳에 실시간 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 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 정도다.

낮 시간에는 거의 모든 책상이 비워져 있다.

대부분의 기자가 취재를 위해 외근 중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부는 부장만 내근한다.

모든 기자들이 회사 출근조차 하지 않고 곧장 출입처로 달려가기 일쑤다.

특히 경찰출입기자들은 형사들과 숙직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경우까지 있다.


“윤 감독, 신문사라고 별 것 없지?”


윤기수가 되물었다.


“혹시 미국 신문사도 가봤어?”

“LA 지역 신문사는 취재 겸 해서 구경해 봤는데, 거기도 별 거 없더라. 프로덕션 디자인팀에 전해준 사진들은 ‘Variety’에서 찍은 것들이야. LA TIMES는 사진촬영을 불허하더라고.”


지금까지 영화에서 등장한 신문사 내부 장면에는 모두 미술이 들어갔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에서조차 영화적 공간으로 재해석되었다.

편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지하의 윤전실로 내려갔다.

잉크와 각종 유기용제 냄새들....

오래있을 곳이 못 된다.

매일 이곳에서 작업하는 직원들의 고충이 이해가 된다고 할까.

안내를 담당한 신문사 직원이 최근 새로운 윤전기를 들여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김 피디, 혹시 신문 출하장에서 촬영도 가능해?”

“실제 출하되는 시간에는 못 찍고, 낮에 한가할 때 만들어서 촬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윤전실에서 나온 신문들이 출하되는 곳 역시 별 것 없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나가는 신문은 2.5톤에, 지방으로 가는 신문은 4톤 트럭에 실려 나가고 있습니다.”


제 시간에 신문이 가판과 보급소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최종판 신문이 나오면 몹시 분주했다.

90년대만 해도 신문사 근처 시내 모처에 각 신문사들의 배달 트럭들이 갓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들을 가장 먼저 배달해 놓고 가면, 기자들이 그 시간에 맞춰 모여들어 각 신문의 주요 뉴스들을 확인했다.


“포털에서 뉴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기자 사회의 그런 문화는 없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광화문 가판에 여전히 초판이 깔리기는 합니다.”


윤기수가 나섰다.


“윤전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출하장은 만들어서 찍자고. 촬영시간이 빡빡해서 조명 세팅하기도 힘들고.”


신문 출하장은 조명이 거의 없어서 어두운 편이다.


“가온 계열사 물류 회사에 공문 보내봤어?”


김재욱이 냉큼 대답했다.


“일요일이면 언제든지 열어주겠답니다.”

“민구씨, 어떻게 생각해?”

“상관없어요. 대신 제작부에서 신문만 좀 구해주세요.”

“들었지?”

“대판형까지는 필요 없겠죠? 그냥 간지만 내면 되잖아요?”

“391×545도 예산 안에서 구해주세요. 화면 가까운 곳에는 실제 신문 느낌을 내줘야 하니까.”


국내 종합일간지의 크기인 대판 사이즈(Broadsheet)는 391×545다.

90년대 말부터 미국과 유럽의 유력 신문들이 판형을 줄이는 것이 트렌드였다.

주요 77개국의 톱10 신문의 40% 이상이 신문의 판형을 바꿨다.

기존 대판 크기의 신문이 너무 커 독자들이 읽기에 불편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다음은 어디로 가지요?”


작가의말

600화 기념 겸해서 이번 영화 제작과정도 가능한 연참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한 주 잘 마무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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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세상으로 나가 옳은 일을 하라. +7 23.09.27 2,292 89 23쪽
628 안정 속의 변화. (5) +4 23.09.26 2,210 88 22쪽
627 안정 속의 변화. (4) +5 23.09.25 2,267 93 22쪽
626 안정 속의 변화. (3) +8 23.09.23 2,375 88 23쪽
625 안정 속의 변화. (2) +3 23.09.22 2,294 94 23쪽
624 안정 속의 변화. (1) +7 23.09.21 2,435 93 27쪽
623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2) +4 23.09.20 2,335 96 25쪽
622 다 해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1) +10 23.09.19 2,342 103 25쪽
621 포토라인에 서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5 23.09.18 2,367 100 23쪽
620 모른 척 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8 23.09.16 2,395 106 25쪽
619 비평가들이 싫어하면 관객이 좋아해. +4 23.09.15 2,318 108 24쪽
618 People Not Profit! +3 23.09.14 2,306 103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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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Only One을 향하여! +6 23.09.12 2,331 112 24쪽
615 살아줘서 고맙다..... +8 23.09.11 2,383 105 29쪽
614 민중의 적 : EMBARGO. (14) +5 23.09.09 2,321 100 25쪽
613 민중의 적 : EMBARGO. (13) +4 23.09.08 2,204 92 26쪽
612 민중의 적 : EMBARGO. (12) +3 23.09.08 2,029 79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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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민중의 적 : EMBARGO. (6) +2 23.09.05 2,134 8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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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민중의 적 : EMBARGO. (4) +2 23.09.04 2,193 84 25쪽
603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395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84 73 24쪽
» 민중의 적 : EMBARGO. (1) +9 23.09.01 2,517 10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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